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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마무리됐다.
고생은 했지만, 레벨도 올렸고 많은 아이템도 얻었다.
이런저런 헤프닝이 있긴 했어도 누구 하나 죽은 사람 없이 탈출했고, 다쳤던 테레사도 멀쩡해졌으니 남은 것은 분배뿐이었다.
그것을 위해, 처음 만났던 술집에서 도진 일행은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마철강 팔찌]
[마철강 반지]
[마철강 반지]
[마철강 목걸이]
[마철강 귀걸이]
…….
파티 사냥을 하며 얻은 전리품이 표시되어 있는 화면이었다.
황제 육성 아이템으로 유명했던, 아니, 앞으로 유명해질 예정인 「마철강 장신구 세트」만 해도 처음 엘리트 몬스터를 잡았을 때 팔찌를 얻은 뒤 보스를 잡고 반지 두 개, 목걸이와 귀걸이를 각각 한 개씩 더 얻어 총 다섯 피스를 얻었다.
15년 뒤에도 개당 50만 원은 넘던 물건이고, 목걸이 같은 경우는 더 귀해서 100만 원을 넘겼던 걸로 도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시세 자체가 없지만… 아마 대충 잡아도 피스당 300만 원은 넘을 거고, 목걸이는 500은 가뿐히 넘겠지.’
마철강 장신구 다섯 개만 따져도 대충 2,000만 원쯤 번 셈이었다.
파티를 짤 당시에 도진은 파티가 얻는 것의 50퍼센트를 갖기로 했었다.
즉, 도진의 몫만 해도 1,000만 원이 된다.
‘거기에 이것저것 얻은 게 많으니까 투자한 금액은 회수하고도 남겠네.’
슥 전리품 목록을 훑어본 도진은 자신에게 떨어질 금액을 1.5만 골드 언저리.
현재 골드의 현금 교환비를 따질 때 1,500만 원 정도로 예상했다.
도진이 던전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투자한 금액에는 못 미치지만, 애초에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와 시간을 돈으로 사기 위해서 벌인 일.
그런 만큼 도진은 이 정도 회수한 것만으로도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마철강 장신구 세트가 여러 개 나와 줘서 예상보다 더 큰 금액을 메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부수적으로 얻은 게 있기도 하고.’
낭인회 놈들은 전부 살인자, 그러니까 혼돈 성향 유저였다.
특별히 좋은 걸 뱉은 놈은 없어도 잔돈푼은 챙길 만한 수준은 됐다.
계산을 마쳤을 때쯤 한참이나 허공을 몽롱하게 바라보고 있던 테레사가 억눌린 감탄사를 뱉었다.
“으으흐으윽……!”
이상한 소리에 도진이 시선을 옮기니,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부들부들 떠는 테레사가 눈에 들어왔다.
‘…왜 저러지?’
도진이 의문을 품는 순간 테레사가 홱 고개를 들더니, 소소와 상수에게 말했다.
“이거 보여? 내 눈에만 보이는 거 아니지? 이게 도대체 다 얼마일까? 마석만, 그래 마석만 따져도 거의 300만 원은 넘을 거 같은데. 거기다 질 좋은 철광석은 요즘 40레벨대 장비 제작 때문에 엄청 귀하잖아. 이것도 마석만큼은 받을 거고… 거기다 이런저런 장비 아이템까지 합치면…….”
주절주절 혼잣말로 얻은 아이템의 가치와 시세, 대략적인 합산 금액 등을 주워섬기는 테레사의 얼굴에는 황홀함이 가득했다.
“고생한 게 얼만데. 넌 다리까지 뭉개졌잖아. 현실에서 그 정도 다치면 바로 쇼크사해도 이상할 거 없는 부상이야. 당연히 이 정도는 나와야지.”
소소는 호들갑을 떠는 테레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톡 쏘아붙였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요즘 가상현실에서 죽거나 부상 입으면서 받은 충격 때문에 트라우마 생기는 사람들 많다던데. 숨기다 들키면 알지?”
그러나 덧붙이는 말은 퉁명스럽기는 해도 친구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에휴, 이래서 금수저들이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 무 몰라요. 소소 씨, 이 비정한 세상에서는 말이에요.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에서 다리가 뭉개질 일을 해도 이렇게 단기간에 이런 돈을 만지는 건 불가능해요.”
쯧쯧쯧.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이는 테레사.
그런 그녀의 볼을 화가 난 소소가 쭉쭉 늘렸다.
밀가루 반죽 같은 테레사의 볼은 정말 잘도 늘어났다.
도진도 신기해서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그래서 대충 우리 몫이 얼마라는 거야? 처음 시작할 때 분배 비율을 마법사님 50퍼, 우리 50퍼 이렇게 정했었으니까… 50퍼를 우리끼리 또 나누면 음, 그래서 얼마야?”
상수가 테레사에게 묻고, 테레사는 볼이 꼬집히는 와중에도 빠르게 답했다.
“엘리트 몬스터랑 보스 몬스터한테서 얻은 장신구는 매물이 없어서 가격을 모르니까 일단 빼고, 나머지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품목만 계산하면 대략 1만 하고도 1,511골드 정도. 현금으로는 오늘 시세 기준으로 1,200만 원 정도야. 이걸 반으로 나누고 그걸 또 셋으로 나누면 우리는 일인당 200만 원 정도 먹는 거지. 뭐, 수수료를 따지면 좀 적어지겠지만.”
도진은 테레사가 보이는 의외의 모습에 놀랐다.
대충 계산한 자신과 달리 구체적인 금액 단위까지 계산을 하는 정확함은 그간 그녀가 보인 모습과는 상반된 이미지였기 때문.
“계산이 빠르네요?”
“후후, 여기서 사냥할 마음을 먹었을 때 폐철광에서 뜨는 아이템 시세를 다 외워 뒀거든요. 엘몬이랑 보스한테서 나온 마석만 따로 계산하면 금방이죠. 문제는…….”
말을 흐리며 그녀의 시선이 다시금 허공에 머문다.
도진은 굳이 묻지 않아도 그녀가 무얼 보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매물이 없어 시세를 알 수 없었을 장신구 세트.
“이 장신구들이네요. 이거 아마도 우리가 최초로 얻은 아이템인 거 같아요.”
그녀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들어간 게 우리가 최초니까요. 뭐, 당장 시세가 책정이 안 됐다고 해도 나누는 데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다섯 개이기는 해도 목걸이는 값이 두 배 정도로 나가는 게 보통이니까. 그럼 장신구 여섯 개라고 치고. 반지 두 개에 귀걸이, 그리고 팔찌에 목걸이를 묶어서 나눠 가지면 될 거 같네요. 그 뒤로는 팔든 쓰든 알아서 하면 되고.”
말을 마친 도진은 화면을 조작했다.
파티 단위로 공유되는 화면에서 빠르게 전리품 목록이 수정된다.
마석이 측정된 등급별로 수량이 나뉘고 재료 아이템들의 수량이 각 인원에 맞게 분배되었다.
그때였다.
“저기…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테레사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도진을 불렀다.
도진이 그녀를 봤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도진이 눈으로만 말하는 것에 나름 익숙해진 테레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희끼리 얘기해 봤는데요. 엘리트 몬스터랑 보스한테서 나온 장신구는 역시 마법사님이 전부 갖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도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괜찮겠어요? 꽤 비쌀 텐데.”
“솔직히 아쉽긴 해도… 양심이란 걸 챙겨야 할 거 같아서요. 기여도를 따지면 그게 맞는 거 같아요. 그 갱도 뒤쪽에 그런 공간이 있는 걸 찾아낸 것도 마법사님이고, 거길 뚫고 들어갈 생각을 하고 실현한 것도 마법사님이니까. 거기다… 그때 쓰셨던 거 꽤 비쌌을 거 아니에요.”
잠시 테레사를 바라보던 도진은 상수와 소소에게 시선을 옮겼다.
“미리 얘기를 끝냈다고 하긴 했지만, 두 분은 괜찮겠어요?”
“뭐, 우린 들러리였고 중요한 일은 법사님이 다 한 게 사실이니까요.”
“게임 돈에는 별 관심 없어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상수와 말 그대로 별로 관심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소소.
도진은 그런 셋을 보며 생각했다.
나눠야 할 것이 커지면 가족끼리도 제 몫을 더 챙기려고 싸우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평균이다.
기여도가 높으니 더 많이 가져가라. 자신들은 이 정도 몫에 만족할 테니. 말은 쉽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고.
하나 당연함을 당연하게 지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걸 전생에 꽤 긴 시간 동안 여러 경험을 한 도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놀랍네.’
도진은 자신의 기여도를 운운하며 더 많은 몫을 요구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있어 이 지점은 스쳐 가는 과정일 뿐.
아주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곳에 도달하리라 확신하고 있기에 이 정도 돈은 같이 사냥한 사람들과 기분 좋게 나눠도 좋을 금액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주겠다는 것까지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알아서 양보를 하겠다는 사람에게 고개를 저을 생각은 없었다.
“그럼…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도진.
그걸 본 테레사는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애써 말을 꺼냈다.
“저, 저기 그 대신 치, 친구 추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친구… 추가요……?”
이번 말도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도진은 몇 번의 배신을 겪은 뒤로 ‘친구’ 기능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지금 와서는 언제가 마지막으로 친구 추가를 하고, 인게임 친구와 대화를 주고받았는지조차 가물가물할 지경.
‘친구라…….’
전생에 친구라 부를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기억에 남아 있는 친구들이 로스타니아가 고향인 NPC들이 대부분일 뿐이지.
잠시 낯선 단어의 등장에 감상에 빠졌던 도진은 의도적으로 그 생각들을 몰아냈다.
겨우 친구 추가다.
같이 사냥을 했던 인연으로 메신저에 이름을 등록하는 정도의 행위.
한없이 약해졌던 시기에는 이런 얕은 인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매달리고, 그러다가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젠 그러기에는 여러 의미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도진의 단단함도, 현실의 상황도, 그 모든 것이.
이젠 이런 제안에 화들짝 놀랄 필요도 경계할 필요도 없어졌다는 것을 느낀 도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달라졌다. 이 짧은 말을 자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도진이었다.
“그… 막 귀찮게 하려는 건 절대 아니고요. 앞으로 같이 사냥하자, 어디 데려가 달라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서로 정보 공유? 막 그런 거 있잖아요. 아, 상부상조. 상부상조할 기회가 생기면 협력하기? 뭐 그런 의미로…….”
도진이 감상에 빠진 사이 테레사가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침묵을 못 견딘 이유도 있고, 도진의 입가에 번진 처음 보는 종류의 웃음에 놀란 탓도 있었다.
“좋아요.”
“예?”
그러다, 도진의 한마디에 테레사의 폭주가 멈췄다.
했던 긴장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받아 낸 승낙에 테레사는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좋다고요? 하고.
“네. 뭐 별거라고 다시 물어요?”
“아, 네. 그, 그렇죠. 별거 아니긴 하죠. 하하.”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우스워 피식 웃은 도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아, 그리고. 다음 사냥터 따로 정하지 않았으면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갈리엘 숲에 한번 가 봐요. 우연히 그쪽 퀘스트를 하나 얻은 게 있는데… 어쩌면 거기 뭔가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그러나 내용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테레사의 눈이 개구리처럼 커졌다.
상수도 눈을 빛내긴 마찬가지.
며칠 동안 도진을 겪을 그들에게 있어 그가 뱉는 말의 무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갈리엘 숲 쪽 퀘스트라고요? 그러면 직접 클리어하는 게 낫잖아요?”
“전 다른 데를 가야 해서. 그쪽까지 처리하기는 좀 힘들어요. 그냥 방치하느니 차라리 아는 사람한테 주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퀘스트는 그냥 둘러대기 위해 꾸며 낸 말이지만, 갈리엘 숲에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건 사실이었다.
갈리엘 숲은 상처 입은 거인 하나가 숨어 있는 곳이다.
그 거인이 발견되어 사냥되는 건 아직 조금 이후에 일어날 일이고.
‘히든 피스까지는 아니어도 필드 보스가 있는 위치 정보 정도면 장신구값으로는 충분하겠지.’
“저도 직접 확인한 게 아니라 확신은 못 합니다.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 정도지. 그러니까 내키지 않으면 그냥 잊어버려요.”
“아, 아니요! 꼭 가 볼게요. 감사합니다. 이런 정보도 다 돈인데 이렇게 저희한테 알려 주시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테레사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잘 보이길 잘했어.’
테레사가 친구들을 설득하면서까지 장신구를 도진에게 양보한 건 양심 때문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이해타산이 깔려 있었다.
당장 눈앞에 아른거리는 돈보다 인맥을 다지기로 한 것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상수는 군대 가고 소소는 가업 이으러 갈 텐데, 혼자 남기 전에 최대한 대비를 해 둬야 해.’
테레사가 방긋방긋 웃으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도진이 분배를 마쳤다.
“분배 다 끝냈습니다. 목록 확인해 보시고, 딱히 문제없으면 여기서 마무리하죠. 서로 바쁜 때니까요.”
“문제 있을 게 있나요? 다 알아서 해 주셨겠죠. 저희는 며칠 쉴 생각인데 마법사님은 바로 다음 사냥터로 넘어가시게요?”
용무를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던 도진은 눈앞에 뜬 친구 요청을 수락하며 말했다.
“네. 아직 쉬기에는 할 게 너무 많아서요.”
현재 레벨 48.
도진의 1차 목표까지 겨우 2레벨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