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도진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시간을 끌었으나, 낭인회로선 상상도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젠장! 이건 또 뭐냐고!”
“소리칠 여유가 있으면 저주나 뿌려! 칼이 전혀 안 들어가잖아!”
그래도 명색이 이 게임 저 게임 전전하며 PK를 저지르던 자들.
빠르게 당황을 수습하고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시작한다.
낭인회의 인원은 총 10명.
그들에게 있어 폭젠 현상은 당황스러운 일일 수는 있어도 위기라고 하기엔 애매했다.
그들 스스로 적으로 돌린 도진만 없었다면 말이다.
“커억!”
저주 마법을 시전하던 낭인회의 마법사가 비명을 질렀다.
잠시 신경이 분산된 틈을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온 「바람 화살」에 적중됐기 때문이었다.
「바람 칼날」보다 위력이 떨어지는 마법이지만,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숙련도가 부족한 마법이 완성되는 걸 방해할 정도는 됐다.
“큭!”
마법사의 억눌린 신음과 함께 그의 입에서 핏물이 한 줄기 흘렀다.
마법 방어력이 높은 만큼 피해는 미미했으나 마법 시전 실패로 인한 마나 역류가 문제였다.
숙련도가 부족한 만큼 마나 역류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일어났을 때의 피해도 컸다.
“저주! 저주 빨리 걸어!”
“바제투, 뭐 하고 있어요!”
“시발! 저주 타령할 시간 있으면 저 새끼 좀 어떻게 견제를 하든 뭘 하든 하라고! 그게 안 되면 몸으로 막아 주기라도 하든지!”
저주의 공백은 순식간에 낭인회 진영을 혼란에 빠뜨렸다.
‘저런 것 때문에 마법사뿐만 아니라 캐스터 클래스가 전반적으로 평가가 박살 난 거지.’
생각하며, 도진은 앞을 가로막는 골렘을 처리했다.
달리며 쏘아 대는 마법은 백발백중이었고, 골렘들은 달려드는 족족 철 섞인 암석으로 돌아가 무너져 내렸다.
진리의 서를 전개하고 마나를 아낌없이 퍼붓는 도진에게 폐쇄된 철광석 광산의 일반 몬스터는 허수아비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반격을 꿈꿀 여유 정도는 있다 이건가?”
골렘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낭인회 인원들까지 살피던 도진의 눈이 빛났다.
저쪽 마법사가 새로운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렁이는 붉은 마나와 희미하게 떠오르는 마법진을 본 도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상황에 「화염 파도」라니.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건가?’
위력도 괜찮고, 비교적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마법이긴 해도…….
‘우리 레벨대에 3성 마법은 캐스팅이 많이 느리지.’
도진도 진리의 서의 힘을 빌리지 않을 때는 3성 마법 하나 쓰는데 5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해석이라는 사기적 기능으로 공짜 숙련도를 얻고 시작하는 데도 이 정도이니, 해당 마법 숙련도를 0부터 올려야 하는 입장에 놓인 다른 사람들은 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그 차이를 ‘겨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긴박한 전투 중에는 1초가 소중한 법.
이번에는 아예 전담해서 공격을 막아 줄 인원이 배치돼서 그걸 믿고 한 방 큰 걸 노리나 본데, 어리석은 선택이다.
‘저건 끊을 필요도 없지.’
굳이 방해를 하지 않아도 대처할 시간이 길게 주어지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도진은 마법을 준비했다.
저 멀리, 몇 초 뒤에 자신과 일행이 도착할 지점을 겨냥하여.
“방패 생기면 그 뒤쪽으로 숨어요.”
“헉, 헉, 뭐, 뭐라고요?”
“…그냥 내 뒤로 붙어요.”
죽어! 혼잡한 전장을 뚫을 정도로 커다란 외침.
마법사가 의기양양한 눈으로 자신의 손끝에서 출발하는 불꽃을 바라본다.
그것이 노리는 것은 당연히 도진이었다.
물결치며 달려오는 불의 파도.
그때 도진의 마법도 발동됐다.
차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골렘이었던 부서진 암석들이 빠르게 치솟아 방패를 만들었다.
《암석 방패》
적의 캐스팅 시간을 예측하고, 적과의 거리, 마법이 도달하는 시간, 그리고 자신이 달리는 시간까지.
모든 것을 계산한 위치에 엄폐물이 생겨났고, 도진은 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노골적으로 도진을 노리며 날아온 뜨거운 파도는 단단한 엄폐물에 충돌했다.
화악- 하고 뜨거운 열기가 도진 그리고 상수와 소소를 덮쳤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그 정도 방사열로는 상수나 소소는 물론 높은 체력과 마법 방어력을 지닌 도진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진짜… 이번에 나가면 며칠 동안 잠만 자야지.”
“…기분 나쁘니까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지 마.”
상수와 소소가 거뭇거뭇 그을린 바닥을 보며 나누는 대화였다.
그러나 친구 사이에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도진이 말도 없이 달려 나갔고, 그들은 도진을 따라가야 했다.
드디어 도착한, 도진이 뚫어 놓았던 입구이자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출구.
“밖으로 나가면 사냥하다 다친 것처럼 자연스럽게 던전에서 빠져나가요. 그러면 웬만하면 건드리는 놈들은 없을 겁니다.”
도진은 상수와 소소에게 말했다.
그들이 눈으로 물었다. 같이 가는 거 아니냐고.
“저것들은 처리해야죠. 빨리 가요. 괜히 시간 끌면 치료비만 느니까.”
상수는 도진과, 저 안쪽에서 도진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낭인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들, 상대 잘못 골라서 피 좀 보겠네요.”
피곤함 묻은 웃음을 남긴 상수는 바쁜 걸음으로 밖을 향했다.
그런 그를 따라가던 소소가 휙 도진을 돌아본다.
그러고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그쪽, 생각보다 마음에 드네요.”
“…갑자기요?”
끄덕. 소소는 더도 말고 딱 한 번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 웃고 있는 거 자각 못 하고 있죠? 엄청 신난 것처럼 웃고 있어요. 난 나 건드린 새끼들은 절대 안 잊는데, 그쪽도 나랑 비슷한 거 같아서. 그냥 그렇다고요.”
그 말을 끝으로 소소는 상수와의 거리를 좁히려 달려갔다.
도진은 자신의 입가를 만져 봤다.
‘정말 웃고 있었네.’
내가 지금 신났나? 신이 난 게 맞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릇 영화, 드라마, 소설, 그 무엇이 되었든 창작물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가 복수 장면이다.
이는 나한테 좆같이 군 놈을 철저하게 짓밟고 싶어 하는 걸 인간이 소망하고 희망하고 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 상황에 앞을 가로막고, 보스 잡고 먹은 템 뺏어 보겠다고 떼로 덤빌 궁리나 하고.
무엇보다 짜증 나는 컨셉질을 하며 두통을 유발한 놈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할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절대 자신이 모나거나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사람이란 게 다 그렇다고, 도진은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시선을 들었다.
“후우, 인류애로 똘똘 뭉친 나에게 이런 역할을 맡게 하다니. 정말 나쁜 새끼들이야.”
그런 나쁜 놈들은 지옥에 가야지. 그것도 최대한 빨리.
“도망칠 생각 마라, 이 비겁한 지나(支那) 자식아!”
일본에서 중국인을 비하할 때 쓰는 단어를 외치는 마법사.
도진의 눈썹이 꿈틀댔다.
“누굴 짱깨 취급을 하고 있어, 미친 쪽바리 새끼가.”
중국은 가상현실 게임 규제 때문에 가상현실 게임은 접속도 못하는데.
짜증이 확 오른 도진은 마법사를 향해 마법을 날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도진을 주시하고 있던 몇몇이 마법사 앞을 가로막는다.
저주든 공격 마법이든 마법 시전을 방해하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서였다.
채채챙!
놈들은 솜씨 좋게 도진이 날린 얼음 조각들을 쳐 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던져 준 미끼에 불과했다.
덩치 좋은 골렘들 사이로 생긴 사각을 이용해 「바람 화살」을 마법사에게 꽂아 넣는 도진.
“크아악! 젠장,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막아 주면 어쩌자는 거야!”
다시금 캐스팅이 끊기고 마나 역류가 발생한 마법사는 악다구니를 뱉었다.
“힐! 힐 줘!”
“여유가 없어요! 아직 저주는 멀었어요?”
“저 새끼부터 처리해야 저주든 뭐든 쓸 수 있을 거 같다고!”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도진은 한 번씩 툭툭 잽을 날리듯 1성 마법으로 적들을 견제했다.
큰 피해를 못 줘도 상관없었다.
적에게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를 쌓아 주는 한편 저쪽 마법사가 저주를 뿌리지 못하게만 하면 충분하다.
“크아악! 진짜 미치겠네! 이 시발 똥 같은 지나 새끼야! 좀 정정당당히 이쪽으로 와서 붙자고!”
공격 마법도, 저주 마법도 무엇 하나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상황에 낭인회 마법사는 거의 거품을 물고 지랄을 해댔다.
그런 그에게, 도진은 큰 소리로 외쳤다.
“혼자 당하기는 억울하다는 말이지? 알았어. 공평하게 해 줄게.”
도진은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사만을 소극적으로 노리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힐러 둘을 포함하여 쇄도한다.
골렘에 맞고 사라지는 마법도 있고, 낭인회의 다른 놈들이 막아 내는 것도 있고, 빗나가는 것도 있었지만, 도진은 꾸준히 마법을 날려 댔다.
“저 새끼, 무슨 마나가 끝이 없어!”
“꺄아악!”
“히, 히로미!”
끝이 없긴. 벌써 마나 절반을 날려먹었는데.
적들의 절규를 들으며 마법을 날리던 도진이 어느 순간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훌쩍 뒤로 뛴다.
“헉!”
그때 도진이 서 있던 자리에 카미나리가 나타났다.
도진의 목을 노린 공격이 빗나간 것에 놀라 헛숨을 들이켜며.
「은신」을 쓴 상태로 벽에 딱 붙어 접근을 했던 것이었다.
“10명이던 놈들 사이에서 그 덩치가 사라졌는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익!”
카미나리는 다시금 단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도진이 더 빨랐다.
퍼버벅, 하고 1성 마법 몇 방이 연속으로 카미나리의 육중한 육체를 두드렸고.
그로 인해 굳은 놈에게 대지의 창이 꽂혔다.
깔끔한 콤비네이션을 얻어맞은 카미나리는 제 복부를 꿰뚫은 굵고 뾰족한 암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아챈 거지? 혼잣말에 가까운 의문에 도진은 굳이 대답을 해 줬다.
“비밀.”
카미나리. 즉, 도적이 사라진 건 애초에 알고 있었다.
습격을 노리는 속셈 또한 그때 바로 알았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저레벨 도적의 은신은 완벽할 수가 없다.
놈도 그걸 알기에 골렘의 덩치에 숨어들어 벽에 접근하고 거기에 찰싹 달라붙어서 접근한 거겠지만, 그건 곧 동선의 제약이 생긴다는 뜻.
도진은 그걸 노리고 적을 공격하는 척 계속해서 측면을 살폈고, 뚱뚱이가 공격을 위해 격한 동작을 취하면서 드러난 그림자를 보고 몸을 뒤로 뺀 것이었다.
“보아하니 정말 이 돼지가 날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은 모양이네?”
도진은 분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낭인회를 즐겁게 바라봤다.
그러면서 카미나리의 머리통을 화염창으로 날려 버렸다.
“이 새끼!”
동료가 죽어서인지 아니면 노리던 바가 수포로 돌아가서인지.
소극적으로 방어만 하던 낭인회는 전격적인 공세로 돌아섰다.
그래 봐야 중간에 깔린 골렘들이 계속 달려들어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도진은 발악하는 놈들을 하나둘 저격하며 숫자를 줄여 갔다.
가장 먼저 마법사를, 다음으로는 힐러 둘을.
남은 놈들은 철광석 골렘과 씨름하는 것을 즐거이 감상하다가, 1성 마법으로만 집요하게 괴롭히는 방식으로 죽여 나갔다.
여유롭게 중간에 마나 포션 타임까지 즐겨 가면서.
“잘 들어라, 똥 같은 새끼야. 네가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 누구와 있든, 우리 낭인회가 널 계속해서 죽이고 죽일 거다. 우리는 낭인회의 극히 일부다. 넌 지금 한 번 죽으면 끝날 걸 정말 최악의 방식으로 자살을 결정한 거라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골렘의 공격을 막아 내던 가토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도진을 노려보며 나불댔다.
그 말에 도진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너희가? 나를?”
웃기고 자빠졌네.
“내 기억에 낭인회란 길드는 있지도 않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 삼류 새끼들이 어딜 나한테 비비려 들어.”
난 저 위로 올라갈 몸이신데.
도진은 이후로도 가토가 죽을 때까지 그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결국 가토는 골렘들 사이에서 탈출을 해 보려 노력하다, 도진에게 공격당해 추락했고.
다섯 마리의 골렘에게 둘러싸여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