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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등장 메시지는 <폐쇄된 철광석 광산> 안에 있던 모두에게 표시되었다.
게임을, 특히 MMORPG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 ‘보스’란 단어는 일종의 흥분제와 같다.
전투할 때는 짜릿한 스릴을, 처치했을 때는 큰 성취감을, 그리고 정산할 때는 많은 돈을.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모든 걸 주는 사냥감이기 때문.
그러니 보스 등장 메시지를 본 사람들이 보스를 찾기 위해 던전을 샅샅이 뒤지려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도진이 뚫어 놓은 통로를 가장 먼저 발견한 남자, 낭인회의 가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구멍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중얼거리는 사이 연락받은 그의 길드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비슷한 레벨대의 길드원들이 다 모여서 사냥을 나왔기에 그 인원은 열 명이나 되었다.
가토는 길드원들을 향해 물었다.
이런 통로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그 질문에, 일행 중 유일한 여자인 히로미가 대답했다.
“저도 여기에 통로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히로미 말이 맞아요. 제가 사전 조사를 통해 던전 내부 구조를 미리 숙지를 해 뒀으니 확실합니다.”
말을 보태며 은근슬쩍 히로미를 힐끔대는 돼지 한 마리. 낭인회에서도 편집증적인 정보수집으로 유명한 카미나리였다.
가토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낭인회의 두뇌 카미나리의 말이라면 믿을 만하군. 그럼 이 던전에 등장한 적 없는 보스는 이 안쪽에 등장했을 확률이 높겠어.”
가토는 카미나리의 말에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진입을 결정했다.
빠른 판단과 행동력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훨씬 빠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보스의 죽음이었다.
그들이 걸음을 떼 보기도 전에 보스가 처치됐다는 메시지가 던전 내의 모두에게 전달된 것이다.
“…….”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낭인회.
‘설마 보스가 등장해서 길이 생긴 게 아니라… 이 구멍을 누가 뚫고 들어간 건가?’
특수한 퀘스트를 받아서 비밀통로를 개척하고, 안쪽에서 보스를 잡았을 개연이 없지 않다.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짜 내린 가토의 결론은 일정 부분 진실에 닿아 있었다.
이어지는 사색.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보스가 잡힌 이상 추가적인 위험을 감수하느니 원래의 사냥터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낭인회는 달랐다.
안경을 슥 치켜 올린 돼지, 카미나리가 말했다.
“후후, 보스가 아니라 다른 걸 사냥하게 생겼군요.”
낭인회는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1세대 가상현실 게임의 길드로 시작된 집단.
시작점이 된 게임 자체가 전쟁과 살인을 테마로 한지라, 그곳에서 이름을 날렸던 낭인회는 무차별 PK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미 1세대, 2세대, 3세대 가상현실 게임을 거치며 이곳저곳에서 악명을 떨친 전적이 있을 정도.
보스를 잡은 자들을 죽인다고 꼭 보스가 남긴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말의 가능성만 있으면 사람 사냥에 나서는 것이 그들의 스타일.
살인 행위로 인해 따라붙을 원한이나 혼돈 수치 등 유무형의 페널티는 그들에겐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보스와 전투하느라 부상도 당하고 지치기도 했겠지. 회복하기 전에 빠르게 마무리한다.”
챙. 가토가 자신의 검을 뽑으며 말했다.
가토가 앞서 달렸다.
옛날 영화 속 낭인 혹은 사무라이들이 달리는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며.
이름부터 하는 짓까지 전부 낭인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놈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들고 있는 검이 레이피어라서 그다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 * *
보스를 잡고, 전리품까지 챙긴 도진은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첫 번째 이유는 테레사의 부상.
다리가 뭉개진 부상은 포션이나 저레벨 힐러의 힐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부상이 아니었다.
아무리 플레이어(리제니안)라 해도 이런 부상을 치료하려면 모험가 길드 지부나 신전 같은 곳에 있는 고위 힐러에게 데려가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보스 냄새를 맡은 놈들이 몰려들면 골치 아파져.’
안쪽으로 갈수록 갱도가 미로처럼 복잡해지긴 하지만, 도진이 뚫어 놓은 곳은 복잡해지기 이전 구간.
사냥을 하던 사람들이 새롭게 뚫린 통로를 발견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이후에 벌어질 일은, 전생에 숱하게 겪었던 일의 반복이 될 확률이 높고.
도진은 포션 및 소소의 도움으로 테레사의 출혈이 멎은 걸 확인하자마자 상수에게 그녀를 업게 했다.
“너 레사 놓치면 죽을 줄 알아.”
붉게 충혈된 눈으로 경고하는 소소.
상수가 쓰게 웃었다.
“평소처럼 무표정으로 말해 주면 안 될까? 네가 울먹이는 거 보니까 진짜 무섭다, 나.”
“닥쳐.”
오랜 친구 사이의 대화를 들으며 도진은 온 길을 되짚어 걸었다.
그런데 그때. 전방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들렸다.
도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돌아보자 마찬가지로 긴장한 두 사람이 보였다.
상수가 툴툴거리듯 말했다.
“…앞쪽에 저 소리, 보스 잡혔다는 소식 듣고 피로와 부상에 지친 우리를 위해 길을 뚫어 주려는 선량한 사람들이 내는 소리는 아니겠죠?”
도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쁜 쪽으로 흐를 확률이 훨씬 높을 것 같은데요.”
“역시 그렇겠죠. 빌어먹을…….”
도진은 남은 마나를 가늠했다.
전투가 끝나고 마신 마나 포션이 어느새 마나를 80퍼센트까지 회복시켜 놓은 상태였다.
“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가 나가는 데는 문제없을 겁니다.”
불안에 젖은 소소를 보며 말한 도진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뗐다.
얼마 후.
“어? 가토 씨, 저기!”
갱도를 지나 공터로 나오자 누군가가 그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뭐야? 저 돼지 새끼는.’
낭인회의 카미나리였다.
도진은 출렁이는 턱살과 더욱 출렁이는 뱃살을 가진 돼지와 그 주변으로 포진한 놈들을 훑어봤다.
‘10명. 마법사 하나에 힐러 둘 그리고 근딜이 일곱인가.’
10명이면 풀 파티로 두 개 파티다.
파티라기보단 공격대에 가까운 인원.
짧은 시간에 주변 몬스터를 정리해 놓은 걸 보면 실력도 없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 쪽으로 마나가 전부 쏠려서 리젠이 잠시 멈춘 걸 감안해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정면으로 붙는다면 승산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기껏해야 접근하는 동안 하나나 둘, 많으면 셋쯤 보내 버리는 게 한계겠지.
도진은 빠르게 자신과 적의 전력을 분석하는 사이 가토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넷… 아니, 셋뿐인가?”
필패를 가늠한 도진과 반대로, 가토는 도진 일행을 보자마자 승리를 확신했다.
당장 전투가 불가능한 부상을 입은 여자 하나, 소모되었음이 빤히 보이는 떨거지가 셋.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다.
절대적 우위를 확인한 가토는 오만한 자세로 도진에게 검을 겨눴다.
“어떻게 하죠? 쪽수가 너무 많은데.”
상수가 속닥거리며 도진에게 물었다.
“신호하면 출구 쪽으로 뛰어요.”
마찬가지로 작게 대답해 준 도진은 가토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칼을 겨누고 있다는 건 싸우자는 뜻일 테고, 이유는 보스 메시지 때문이겠지?”
가토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걸 묻는군.”
“보스를 잡은 게 우리가 아니라면?”
“그거야 배를 갈라 보면 알게 될 일이지.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라. 낭인회의 대검호 가토의 검에 죽는 것만큼 의미 있는 죽음은 드물 테니.”
사납게 웃는 가토.
그를 둘러싼 낭인회 길드원들도 같이 사납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뭐 이런 병신 새끼들이 다 있어?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시간을 끌어야 하는 상황에는 상대가 컨셉에 취한 병신들인 게 낫지.’
LOST를 하면서 온갖 컨셉충을 다 겪은 도진이지만, 이 정도 병신들은 오랜만이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도열한 모습이 마치 싸구려 전대물 악당들 같다.
“후후, 가토 씨, 저런 놈들 상대로 우리가 다 나설 필요가 있을까요? 저 하나로 충분하답니다.”
심지어 그 병신력은 실시간으로 고점을 갱신하고 있었다.
사람 닮은 돼지 하나가 살에 파묻힌 안경을 슥 올리며 앞으로 나선 것이다.
한 손으로 단검 저글링을 하며 덩치에 걸맞지 않는 경박한 스탭까지 밟으니 가관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
수준 떨어지는 모습에 도진은 두통과 현타를 동시에 느꼈다.
상대 진영에서 ‘오오, 역시 낭인회의 회색잔영 카미나리 군!’ 같은 헛소리가 흘러나오니 마주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일 지경.
도진은 토할 것 같은 속을 다스리며, 앞으로 걸어 나온 카미나리인지 토사물인지 하는 돼지를 바라봤다.
“어이, 이 몸이 자비를 베풀어 네놈들에게 살 기회를 주마. 한 명씩 나와 승부를 겨뤄 셋 중 한 명이라도 날 이기면 살려서 보내주지.”
“로스타니아가 멸망에 가까워진 세상은 맞나 봐. 정육점에 걸려 있어야 할 막고기가 말을 다 하네.”
“뭐, 뭐라고?”
LOST의 완벽한 통번역 기능이 도진의 막말을 그대로 카미나리에게 전달했다.
인게임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기능의 한계치까지 체중과 키를 조절했음에도 뚱뚱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미나리에게는 치명적인 언어폭력이었다.
“네, 네 녀석……! 그 말 취소해라!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취소하라고!”
격분한 카미나리는 씩씩거리며 땅을 쿵쿵 발로 찍었다.
그 모습에 도진은 바닥을 보며 ‘지진이라도 났나, 왜 이렇게 흔들려?’라고 말하며 더욱 카미나리를 자극했다.
“넌 무조건 내가 죽여 버린다! 거기 뒤에 다른 새끼들,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저놈 난도질하는 걸 방해하는 순간 내 동료들이 너희를 전부 쓸어버릴 테니깐!”
도발은 완벽하게 들어간 것 같으니, 이제 슬슬 데굴데굴 굴리면서 시간을 끌어 볼까. 그렇게 생각한 도진이 흥분한 카미나리를 불렀다.
“야.”
“훗. 말해라. 마지막 유언이라면 들어주-”
그리고 그가 대답하는 순간을 노려, 미리 짜 두었던 술식을 발동시켰다.
빠르게 완성된 「바람 칼날」이 돼지의 멱을 스치고 지나간다.
카미나리의 얼굴이 확 구겨진다.
“비겁한 새끼가!”
카미나리가 도진을 향해 달렸다.
거리가 꽤 멀지만,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머릿수에서 밀리는 놈들이 일대일 승부라는 제안은 거부할 수 없을 테니 옆에 있는 놈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럼 남는 건 마법사 하나. 도적 클래스인 자신의 사냥감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도 보스전으로 지칠 대로 지친 놈이니,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다.
‘캐스팅 속도를 보니 주력 마법은 바람 속성 쪽인 거 같군. 그것만 한 번 더 피하면 이 몸의 승리란 말씀!’
숙련도 높은 마법 한두 개만 조심하면 마법사는 쓰레기다.
그렇게 생각하며 카미나리가 다섯 걸음쯤 뗐을 때였다.
“어?”
갑자기 바닥이 솟아올랐다.
파악. 카미나리는 급하게 몸을 틀었으나 옆구리가 스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 무슨 캐스팅이-’
이렇게 빨라! 경악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도진은 새로운 마법을 준비했다.
카미나리가 아슬아슬 균형을 회복할 때쯤 그에게 얼음 화살이 날아들었다.
하나를 피하면 또 하나가, 하나를 쳐 내면 또 하나가.
그 간격이 지나치게 짧았다.
발을 떼기 힘들 정도로.
카미나리는 꼴사납게 이리저리 굴렀다.
자존심을 구긴 카미나리는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 보려 했지만, 도진은 귀신같이 그의 접근을 차단했다.
“컥!”
하나씩 겨우 막아 내던 카미나리는 복부에 얼음 화살이 박히고 말았다.
감각동기화율과 무관하게, 받은 고통과 충격을 계산하여 시스템이 카미나리의 육체를 잠시 마비시켰다.
“카미나리 군!”
히로미가 애타는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힐을 해 줬다.
관망하던 다른 동료들도 지원에 나서려 했다.
그 모든 게 과히 쓸데없이 열정적이고 감정 과잉이다.
마치 소년만화 속 장면을 부러 연출하는 듯이.
저런 것 또한 놀이의 한 방식이겠으나 도진으로서는 공감해 주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하물며 그에게 적의를 드러낸 놈들이 하고 있는 짓이기에 더더욱.
도진은 일대일 승부를 방해하지 말라며 일갈한 카미나리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 마법사용 연초에 불을 붙였다.
슬슬 기다리는 때가 오는 만큼 도핑을 해 두기 위해서였다.
그때, 몸을 수습하고 카미나리가 연기를 뱉는 도진을 보며 중얼댔다.
“그딴 눈으로 날 보지 마…….”
“뭐?”
“그딴 눈으로 날 보지 말라고……. 키 좀 크고 잘생겼다고 사람 무시하는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이 개자식아! 그 면상 내가 난도질해 버리기 전에!”
열등감이 폭발한 카미나리는 훨씬 더 빨라진 움직임으로 도진에게 접근했다.
순간, 도진에게서 황금빛 일렁임이 퍼져 나왔다.
“덕분에 시간 잘 끌었다, 정육점 막고기. 아쉽지만 놀아 주는 건 여기까지 해야겠어.”
폭언에 화를 낼 새도 없었다.
“어어?”
‘적당히’를 그만둔 도진의 마법은 카미나리가 감당할 것이 못 되었다.
하나씩 날아오던 마법은 셋, 다섯이 되었다.
파바바바박.
“카미나리!”
순식간에 얼음 화살 세 개가 꽂힌 카미나리를 보고 당황한 낭인회.
얼마나 당황했는지 방금 전까지 우월함에 취해 열중하고 있던 열혈 놀이마저 잊고 바로 달려들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진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끄, 끄윽……!”
죽지는 않았으나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카미나리 그리고 나머지 병신들 주변으로 엄청난 숫자의 철광석 골렘들이 생성된 것이다.
보스가 죽으며 환원된 마나가 일시에 일반 몬스터 생성에 쓰이면서 생긴, 예견된 폭젠 현상.
도진이 수준 떨어지는 것들과 굳이 대화를 나눠 주면서까지 시간을 끈 이유였다.
‘하여간 병신들. 시작부터 10명이 한꺼번에 덤볐어야지.’
그러나 경험상, 유리한 위치에 선 놈들은 그 상황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정말 쓸데없이.
‘뭐… 그걸 믿고 나선 거긴 하지만.’
도진이 가장 믿는 부류. 그건 스스로의 강함에 취한 머저리들이었다.
그들의 패턴은 언제나 비슷한 맥락을 품고 있었으므로.
“뛰어요. 마무리는 탈출로부터 끊어 놓고 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