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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의 마법에 마지막 엘리트 골렘이 쓰러졌다.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이라는 이름답게 놈들이 죽은 자리는 격렬한 마나 반응으로 인해 돌조각 등이 팍팍 튀어 오르고 있었다.
“저, 저거 설마 마석이야? 저렇게 색깔 진한 건 처음 봐!”
튀어 오르는 돌조각 사이에서 용케 마석을 발견한 테레사가 감탄했다.
그녀의 말대로 엘리트 몬스터가 남긴 마석은 일반적인 마석보다 훨씬 진한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담긴 마나의 양이 많다는 뜻이다.
‘하급 중에서는 상등품이겠네.’
도진은 슥 보고 그 가치를 바로 측정했다.
마법사 경력이 몇 년인데.
특별한 마석이 아니면 척 보면 대충 각이 나온다.
“이거 몇 개나 나왔지? 측정해 봐야 알겠지만 색만 봐도 개당 10만 원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가뜩이나 요즘 마석 매물이 부족하다고 난리라잖아.”
들뜬 기색으로 종알대는 테레사의 소박함에 도진은 피식 웃었다.
적어도 30만 원은 받을 물건을 들고 10만 원이라니.
“정확한 건 측정기를 돌려봐야 알겠지만, 그 정도 색에 크기면 적어도 30만 원은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툭 던진 말에 테레사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사, 삼십만 원이여……? 혀도 꼬였는지 이상한 발음으로 되묻더니 조금 있으면 자연히 마나로 흩어질 돌무더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상수야! 빨리 주워! 소소 너도 빨리 와서 도와줘! 이러다 몬스터 리젠돼서 도망치게 되면 다 잃어버릴지도 모르잖아.”
“…네가 사람이냐? 나 방금 전에 골렘한테 갈비뼈 맞고 날아가는 거 봤잖아.”
“난 쉴래.”
“아이……! 김소소, 이거 다 찾아서 주우면 저번에 같이 가자고 했던 카페 같이 가 줄게.”
“어억, 김소소, 이거 놔! 너 혼자 주우라고! 아악! 알았어, 주울게. 주우면 되잖아! 갈비뼈 걷어차지 마! 아무리 게임이어도 다친 데 얻어맞으면 느낌 이상하다고!”
어차피 조금 지나면 몬스터 시체 증발해서 저 고생 안 해도 될 텐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진은 자신이 봐 두었던 지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쯤이었던 거 같은데.’
적의 숨통을 끊는 순간 이질적인 반짝임이 보였던 장소였다.
전투 중에 이질적인 반짝임이 눈에 들어왔다는 건 잡템이나 마석 이외의 다른 게 나왔을 확률이 높다는 뜻.
도진은 염동력으로 주변의 돌더미를 허물어 흩어 놨다.
쿠르릉.
‘역시.’
고인물의 눈이 아이템이 떨어질 때의 반짝임을 착각할 리가 없었다.
도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철강 팔찌]
등급: C
착용 제한: 없음
[마나를 끌어들이는 성질을 지닌 금속으로 만들어진 팔찌.
지속적으로 마나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것을 반복하는 특성을 가졌다.]
마나 회복력 +3%
마법 방어력 +5
지능 +5
마철강 팔찌.
도진도 익히 알고 물건이었다.
<폐쇄된 철광석 광산>의 엘리트 몬스터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이 뱉는 마철강 장신구들은 황제 육성의 대명사쯤 되었던 아이템들이다.
능력치 부분에서만 보자면 마나 회복 옵션이 붙은 것 외에는 그리 대단할 게 없는 40레벨 언저리의 장신구지만.
착용 제한이 전무하다는 장점 덕에 꾸준히 사랑받았었다.
‘그때 시세가 얼마였더라? 팔찌가 50만 원쯤 했었지?’
15년 후의 미래.
온갖 아이템이 풀릴 대로 풀린 그 시점에도 50만 원을 호가하던 아이템이다.
그런데 지금은 장비 아이템이면 다 귀한 시대다.
자체 옵션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걸 감안해도 족히 수백은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파티원들과 나눠도 굵직한 수익이 되어 줄 물건을 챙긴 도진은 기분 좋게 돌아섰다.
그러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테레사가 보였다.
“많이 나왔어요?”
“이거 보세요! 4개나 찾았어요!”
테레사뿐만 아니었다.
상수는 돌무더기에서 찾은 검을 쥐고 웃고 있었고, 테레사와 노리고 있던 카페를 같이 갈 수 있게 된 소소도 드물게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힘들지만, 얻은 것이 많으니 파티 분위기가 밝고 좋았다.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파티 사냥을 하는 건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자의와 타의가 합쳐진 극한의 아싸였으니.
그런, 자학적인 회상을 할 때였다.
골렘들의 잔해가 빛으로 화해 터지듯 흩어졌다.
가장 순수한 마나로 환원되어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기에 도진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혹시나 놓친 아이템은 없나 둘러볼 뿐.
그런데 그 순간.
쿠웅.
주변의 마나가 얼어붙은 듯 멈추었다.
마법사가 아닌 테레사나 상수, 소소마저 뭔가 이상을 느끼고 주변을 돌아봤다.
마법사인 도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세계의 마나와 가장 밀접하게 이어진 클래스가 바로 마법사이니, 이상현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그였다.
심지어 도진은 이런 현상이 주로 어떨 때 일어나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특별한 마법적 현상이 아니고, 또 이곳처럼 특별할 게 없는 오픈형 던전에서 세계를 순환하는 마나가 순간적으로 멈출 정도의 일이라면…….
‘설마……!’
보스 생성.
그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도진은 빠르게 고개를 돌려 좌우 벽을 살폈다.
적(赤), 청(靑). 상반된 색을 가진 보석이 결정 단계에서부터 빠르게 응집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들어온 쪽으로 뛰어요! 빨리!”
보석을 확인한 도진은 파티원들을 향해 외쳤다.
저 보석이 생겼다는 건, 이 방 중앙에 보스가 생성될 거란 신호였기 때문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던 파티원들은 도진의 외침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뛰었다.
도진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게 없다. 그간 쌓인 신뢰로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움직인 것이다.
그런 신뢰가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카드드득.
허공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팔뚝이 방금 전까지 그들이 서 있던 공터의 중심을 휩쓸었다.
“어어어……!”
뒤통수를 스치는 풍압에 고개를 돌렸던 상수가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비명을 지르기에는 눈에 담긴 광경이 너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사철(沙鐵)이 사방에서 끌어올려져 소용돌이치고, 그것이 커다란 골렘을 만들어 가는 과정.
팔이 만들어지고, 어깨가 만들어지고… 점점 더 빨려 들어가는 사철의 양이 늘어나며 가슴이, 배가, 반대쪽 팔이 만들어졌다.
콰앙. 쓰러지듯 추락한 놈이 바닥을 짚고 도진 일행을 노려봤다.
-쿠오오오오!
[<폐쇄된 철광석 던전>의 보스 ‘응집된 마력의 사철 골렘’이 등장했습니다!]
포효하는 사철 골렘을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뭐가 이렇게 진도가 빨라?’
던전이 미친 건가?
안쪽으로 들어온 게 자신들뿐이니 엘리트 몬스터든 보스 몬스터든 만나게 될 확률이 높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엘리트 몬스터 다섯 마리를 동시에 사냥하고, 바로 이어서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올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사실 당연한 현상이었다.
<폐쇄된 철광석 광산>이 폐쇄된 이유 자체가 마나가 응집된 장소에 골렘이 태어나는 현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진이 뚫고 들어온 이곳은 오랜 시간 폐쇄된 채 마나가 고일 대로 고인 상태였고 말이다.
거기다 쌓이고 쌓인 마나가 만들어 놓았던 몬스터를 학살하기까지 했으니… 놈들이 죽어 환원된 마나가 다 어디로 갔겠는가.
천천히 죽였다면 자연스럽게 퍼져 나갈 수 있었겠지만, 워낙 빠르게 잡아 죽인 탓에 바로 옆 공터로 대량의 마나가 흘러든 것이다.
그게 엘리트 몬스터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 다섯이 동시에 생성된 이유였고, 보스 몬스터 ‘응집된 마력의 사철’ 골렘이 생성된 이유였다.
하지만 아무리 도진이 회귀한 고인물 출신이라 해도 모든 던전의 시시콜콜한 설정까지 다 외울 수는 없는 일.
도진 입장에서 그저 던전이 미쳐서 한꺼번에 속에 담아 둔 걸 게워 내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저게 뭐예요? 보스 몬스터? 그게 왜 지금 나와? 방금 엘리트 몬스터 잡았는데!”
테레사도 허공에 뜬 보스 몬스터 등장 메시지를 보고는 황망함 가득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게요. 여기 처음 들어왔다고 서비스 주는 거 아닐까요?”
긴장한 낯으로 도진이 말했다.
그게 말이 되냐며 되묻는 테레사.
그러나 도진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한참을 쌓이고 쌓여 대량으로 생성된 몬스터들과 그것에서 이어지는 이 현상은 최초 진입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할 거예요? 아무리 봐도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닌 거 같은데요.”
상수가 도진을 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도진에게 모여 있었다.
결국 이 파티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에게 달려 있다는 소리였다.
이에 도진은 반대로 그들에게 물었다.
“저놈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아요?”
물음에, 상수가 철가루로 이루어진 소용돌이로 계속해서 몸을 만드는 중인 골렘을 슬쩍 보며 말했다.
“버틸 자신은 없고 1초 만에 죽을 자신은 있는데요.”
“저거 조금 있으면 다 만들어질 거 같아요. 일단 나가서 생각해 보고, 사람도 더 구해서 오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여기 안쪽까지 올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텐데.”
어느새 한쪽 다리까지 완성되어 반쯤 몸을 일으키는 골렘을 가리키며 테레사가 말했다.
도망가서 사람을 더 구해 오자. 머릿수가 늘어나는 만큼 보상은 나눠야겠지만, 괜히 잡아 보겠다고 무리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그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안 돼요. 보스가 생성됐다는 메시지는 던전 안에 있는 사람 전체한테 뜹니다. 마법사 천지인 곳이니 마나가 이상 현상을 일으킨 것도 다 알아챘을 거예요. 밝혀진 장소에 보스가 없으면 숨겨진 장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테고, 우리가 뚫어 놓은 구멍도 금방 발견될 겁니다.”
그러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저놈은 다른 사람들에게 잡힐 거고,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되겠지.
그럴 생각이 도진은 전혀 없었다.
도진은 거의 다 생성되어 움직일 준비를 하는 사철 골렘을 가리켰다.
“저거, 잡으면 보상이 엄청날 텐데 도전도 안 해 보고 다른 사람들한테 넘길 생각이에요?”
오픈형 던전에서 보스를 독식할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을 텐데?
“목숨 걸 자신 있다면서요.”
“…….”
테레사가 자신의 친구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상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해. 나야 어차피 이 게임 길게 하지도 못하는데. 한 번 죽는 게 뭐 대수라고.”
소소도 말했다.
“여기서 죽으면 난 좋은데? 대신 게임 못 하는 시간 내내 나랑 내가 가고 싶은 가게 다 돌아다녀 줘야 돼. 그게 내 조건이야.”
“상수야… 소소야…….”
테레사는 친구들의 말에 감동해 눈물을 글썽이려 했다.
하지만 도진은 감성팔이를 허용치 않았다.
“마음 정했으면 준비해요.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쿠우웅. 도진의 말대로 사철 골렘은 어느새 완성되어 완전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수한 철가루로 이루어진 놈은 마치 현실에 강림한 노이즈 덩어리처럼 보였다.
“길어야 3분. 3분만 저놈 어그로 끌면서 살아남아요. 그 안에 저놈을 처리할 방법을 만들 테니까.”
사철 골렘의 육중한 몸이 움직였고.
도진은 파티원들과 떨어져 저 멀리 벽에 있는 붉은 보석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