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테레사는 오늘도 망치질을 한다.
쾅쾅쾅. 쾅쾅쾅.
자신이 내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지만, 익숙해져서 괜찮다.
“우웨엑!”
옆에서는 상수가 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퍼엉.
왜냐하면 알아서 커버해 줄 마법사가 파티에 있기 때문이다.
쾅쾅쾅. 쾅쾅. 퍽.
어억. 그래도 잠깐 시선이 분산된 탓인지 한 대 얻어맞았다.
그래도 테레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치유의 빛》
소소가 힐을 해 줄 걸 알아서다.
자, 다시 망치질.
“자리 이동할게요.”
그러다 도진의 말이 떨어지자 테레사는 기계적으로 물러나며 등에 망치를 멨다.
죽은 동태 눈을 한 테레사 앞으로 꿈틀거리는 불꽃이 일어났다.
3성 마법 「기어 다니는 불」이다.
적의 접근을 봉쇄할 때 유용하여 자주 봤던 마법. 하도 자주 봐서 테레사는 꿈틀대는 불꽃이 정겹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센 테레사는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에 맞춰 기어 다니는 불이 골렘들을 향해 이동했다.
테레사는 그 뒤를 따라가며 아이템을 주웠다.
[마석을 확득했습니다.]
[마철강 도끼를 획득했습니다.]
…….
테레사의 움직임은 숙달된 조개잡이 같았다.
그 옆의 상수는 숙달된 모내기꾼이고.
“다 주웠어요!”
보고는 빠를수록 좋았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면 더 쉬게 해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요령을 피우거나 뭔가 실수를 하면 쉬는 시간이 은근히 줄어든다.
이것도 며칠 동안 도진과 함께하며 테레사가 체득한 점이었다.
“길 뚫습니다. 다들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요.”
준비할 것도 없이 바로 따라서 달리면 된다.
콰드드득.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땅에서 솟아난 창들이 골렘을 꿰뚫고, 놈들의 이동을 방해하는 바리케이드가 됐다.
평소에도 이상할 정도로 캐스팅이 빠른 사람이지만, 저 황금색 책을 꺼냈을 때는 그게 더 심해진다.
1성 마법은 캐스팅하는 시늉만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저 사람 말로는 무기인 단검의 발동 효과라는데… 저런 무기는 얼마나 할까?
먹어서 팔면 아마 한 학기 등록금… 아니, 어쩌면 한 해 등록금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비슷한 아이템 시세가 어떻게 되나 좀 알아봐야겠다.
테레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달렸다.
멍하니 달리다 보니 주변 소음이 많이 줄어들었다.
어느새 공터가 아닌 좁은 갱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3시간 휴식하겠습니다.”
도진이 말하기 무섭게 테레사와 상수, 소소는 각자 도진에게 받아 둔 침낭을 꺼내서 펼치고 휴식에 들어갔다.
세 사람은 눕자마자 잠들었다.
잠시 후 도진도 누웠으나 바로 수면에 들어가진 않았다.
「진리의 서」를 활성화한 김에 사냥하면서 사용한 마법의 해석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번 사냥 내내 계속해서 사용한 「연화의 저주」는 벌써 11퍼센트의 해석률을 기록하고 있다.
숙련작의 난이도나 시간, 들어가는 노력 모두 일반적인 마법사보다 최소한 5배는 유리한 수준이다.
‘뭐, 연화의 저주가 2성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되겠지.’
3성 마법은 아직도 10퍼센트를 넘긴 게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건 도진의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올라가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였다.
4성에 올라서고, 5성에 올라서면 그 아래 위계의 주문에 대한 이해가 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
‘일어나면… 더 안쪽으로 가 봐야겠어.’
마법에 대한 생각을 접고, 앞으로의 계획을 정한 도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드드드득.
아직 휴식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간.
도진은 바닥에서 느껴지는 옅은 진동에 눈을 떴다.
눈을 깜빡여 들러붙는 수마를 빠르게 쫓은 도진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폐철광은 갱도 - 공터 - 갱도 - 공터가 반복되는 구조를 지닌 던전.
몬스터는 오직 공터에서만 등장한다.
덩치 큰 골렘들이 사람 하나 지나갈 크기로 만들어진 갱도로 들어올 수는 없다.
그러니 갱도 중간 위치에서 가만히 있으면 몬스터를 마주칠 일이 없는 게 정상이었다.
그럼 이 진동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골렘보다 더 덩치가 큰 놈이 나타나는 바람에 여기까지 진동이 전해진 거다.
‘주변에 엘리트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가 있다는 소리다.’
전생의 도진도 이곳의 보스 몬스터와 엘리트 몬스터는 잡아 본 적이 없었다.
생성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붕괴되어 사라지는 놈들의 특징 때문이었다.
골렘을 유지하는 마나가 워낙 불안정해서 몸뚱이를 긴 시간 유지할 수 없어서라는데… 그런 자질구레한 사정 따위 모르겠고.
‘중요한 건 빨리 찾아서 잡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거지.’
도진은 빠르게 파티원들을 두드려 깨웠다.
“으으, 1분만 더요…….”
“오, 오늘은 학교 그냥 빠질래… 아직 결석 두 번밖에 안 해서 괜찮단 말이야…….”
설정한 기상 시간이 아닐 때 눈을 뜨게 된 파티원들은 잠에 취해 헛소리를 해 댔다.
소소는 아예 꿈쩍도 안 하는 게 시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도진은 손에 냉기를 모았다.
착. 그리고 테레사의 안면을 손바닥으로 잡았다.
“힉-!”
갑작스럽게 얼굴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기가 닿자 테레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한 바퀴를 굴러서 벽에 뒤통수를 박았다.
끄이익, 하고 억눌린 비명을 지르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도진은 상수에게도 냉기를 뿌리려 했으나…….
“야, 김소소, 일어나! 하하, 저희 다 일어났어요.”
눈치 빠른 상수는 이미 소소를 강제로 깨우고 있었다.
테레사의 비명을 듣고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한 것이다.
“내 코에서 손 떼. 손 잘리고 싶지 않으면.”
시체처럼 가만히 있던 소소도 상수가 깨우자 바로 눈을 떴다.
하는 말이 살벌하긴 한데, 어쨌든 일어났으면 됐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세 명의 시선이 도진에게 모였다.
특히 테레사는 억울함 가득한 눈으로 노려… 보지는 못하고 그냥 보고 있었다.
“엘리트 몬스터가 나온 거 같아요.”
“네? 엘리트 몬스터요?”
테레사가 펄쩍 뛰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에서의 취업을 포기한 프로 쌀먹 ‘지망생’인 그녀는 엘리트 몬스터의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대박이잖아요!”
필드마다, 던전마다 등장 조건도 다르고 빈도도 다르고, 등장해도 바로 잡혀 버리는 탓에 구경조차 힘들지만… 잡을 기회만 되면 대박 보상을 노릴 수 있는 게 엘리트 몬스터였다.
드드드득.
다시 약한 진동이 울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간격이 이상할 정도로 빨랐다.
하나 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적었다.
“놈이 움직이는 거 같습니다. 우리도 빨리 움직여야겠어요.”
갱도 안쪽으로, 안쪽으로. 던전 깊숙한 곳으로 도진의 발이 침범했다.
그에 맞춰 진동은 점차 잦아지고, 거세지고, 심지어 겹치기까지 했다.
진동의 근원지에 가까워질수록 확연히 느껴진다.
이건 일반적인 골렘이 내는 소리가 절대 아니었다.
갱도 끝에 도착해 공터 안쪽을 바라본 도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건…….’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
엘리트 몬스터가,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다섯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최초 진입자에게 주는 특혜? 아니면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이미 생성되어 있던 놈들이 뒤늦게 활동을 시작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느 쪽이든 지금 신경 쓸 게 아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저것들을 빠르게 잡아 죽여야 했다.
놈들이 자연적으로 붕괴하기 전에.
까다로운 점은 저놈들이 꼴에 엘리트라고 마나가 방출되며 자연 형성된 마나역장을 두르고 있어서 마법 저항력이 높다는 건데.
그것도 다 해결책이 있었다.
도진은 뒤쪽에 옹기종기 모여서 경악하고 있는 파티원들에게 빠르게 말했다.
“저놈들 몸 보입니까? 유독 탁한 부분 말이에요.”
“어, 어디요?”
젠장, 맞다. 자세히 볼 수 있는 건 나뿐이지. 「암시」의 특혜를 보는 게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도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자연스럽게 마법의 힘을 빌리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빛」을 썼다가는 바로 전투가 시작될 거고.
결국 도진은 평소 스타일대로 하기로 했다.
“제일 가까운 놈은 무릎이 약점일 확률이 높습니다. 양쪽 무릎만 광택 없이 탁한 걸 보면. 그 뒤에는 양쪽 팔 관절에 균열이 있고, 왼쪽 놈은 가슴, 오른쪽은…….”
설명은 생략하고, 해야 할 것만 알려 주기로.
역시 이게 편하다니까.
“자, 잠깐만요. 왼쪽이 뭐라고 했어요?”
“무릎, 팔꿈치, 고관절, 가슴, 복부. 다섯 군데니까 대충 보고 색깔 다르거나 균열 보인다 싶으면 후려쳐요. 지금은 멀어서 잘 안 보여도 근접하면 눈에 확 띌 거예요. 딱 봐도 잘 부서질 것처럼 보일 테니까.”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싶지만 마음이 급했다.
언제 저놈들이 자연 소멸해서 후드득 무너져 내릴지 모르기에.
그러면 돈이 도대체 얼마나 손해가 나고 경험치 손실은 또 얼마나 될지.
적어도 사흘은 잠을 못 잘 게 분명하다.
“힐러님은 그냥 힐이랑 보조만 신경 써 주면 됩니다.”
“자, 잠-”
파티원들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파악, 하고 빛이 밝혀졌다.
순간 휙 하고 골렘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시, 시발…….”
두 근접 딜러는 쿵쿵쿵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엘리트 골렘을 보며 욕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은 조용히 읊조렸다.
“맨 앞, 무릎.”
으아아! 테레사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눈에 띄는, 도진이 말한 광택 없이 탁한 부분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퍼걱.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간 골렘의 움직임이 몸에 익은 건지.
테레사의 망치는 정확히 골렘의 무릎에 꽂혔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금이 간 무릎 관절은 일반 철광석 골렘보다 훨씬 육중한 놈의 무게를 못 이기고 그대로 부서졌다.
순간 놈이 두른 마나역장이 일그러지는 듯싶더니 쿠웅, 하고 무릎을 꿇자 아예 완전히 사라졌다.
《화염창》
그 순간을 노려 미리 준비되어 있던 도진의 마법이 작렬했다.
귀신같은 타이밍. 그리고 정확한 조준이었다.
가슴이 뻥 뚫린 불안정한 마철강 골렘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어? 이렇게 쉽게……?
허망할 정도로 쉽게 죽어 버리는 엘리트 몬스터의 모습에 테레사는 눈을 깜빡였다.
“뭐해요?”
그런 그녀가 혼잣말에 가까운 의문을 뱉었다.
“…엘리트 몬스턴데 이렇게 쉬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막 엄청 힘겹게 싸우고 그래야 하는 거잖아.
그게 예의고 이런 상황에 일어나야 할 클리셰잖아…….
묻는 눈치에 도진이 픽 웃었다.
“시킨 것만 해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