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파티원이 다시 모인 날.
테레사와 상수는 물론이고 남에게 무관심한 소소까지 호기심 짙은 눈길을 도진에게 보내고 있었다.
분명 그곳에서 뭔가를 눈치챘고, 그것 때문에 사라진 건 확실한데…….
아무리 살펴봐도 알아낼 수가 없었기에 그들의 궁금증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특히 셋 중 가장 LOST에 진심인 테레사는 그 증세가 심해서, 유튜브에 ‘히든 피스’, ‘히든 피스 발견 사례’, ‘히든 피스 보상’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고 온갖 동영상을 보느라 한숨도 자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진은 그들의 궁금증 해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때는 죄송했어요. 그때 갑자기 그렇게 사라진 이유가 궁금하겠지만… 일단 그 얘기는 뒤로 미루고. 그에 앞서 동의를 구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슨 동의냐고 묻는 파티원들.
도진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먼저, 오늘 사냥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겁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 가능성이 높고, 위험도도 그만큼 뛸 거예요.”
그때, 도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테레사가 끼어들었다.
“저, 저희도 바보는 아니에요! 그때 법사님이 거기서 무언가 발견했고, 그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쯤은 다 생각했다고요. 그래도 함께할 수 있다면 함께하고 싶어요. 법사님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저는 이 게임 되게 진지하게 하고 있어요. 나름 인생 걸었다고요.”
위험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겠죠! 경험치 잃고, 레벨 떨어지는 거? 감수할게요. 안 무서워요. 짐 안 되게끔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데려가 주세요.
지금까지와 달리 위험할 수 있다고? 이거 완전 전형적인 히든 피스 떡밥이잖아!
테레사는 급발진하며 폭주했고, 도진은 당황했다.
이 여자, 처음 만날 때도 그랬지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데 아주 도가 텄다.
‘뭔 각오가 이렇게 거창해?’
그냥 좀 위험도가 올라갈 테니 실수하지 않게끔 긴장 좀 하라는 의미로 말을 꺼낸 건데…….
이건 뭐 사지로 걸어가는 장수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도진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까지 결연할 필요는 없고. 단순 반복 사냥보다는 위험할 테니까 긴장 좀 하라는 뜻이었어요. 죽을 각오까지 하라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웬만하면 파티원들 죽을 일도 안 만들 거고.”
테레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도 자신이 급발진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상수가 피식 웃으며 그런 테레사의 등을 팍 두드렸다.
“걱정 마세요. 얘처럼 인생을 여기에 걸었다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게임이니까 대충 해도 된다고 여기는 놈들 싫어하는 성격이고, 소소 쟤도 까칠하긴 해도 남한테 피해 주는 건 또 지독하게 싫어하는 녀석이라…….”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내 말이 틀려?”
“뭐, 맞긴 한데.”
도진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져서 동의 구하려던 걸 깜빡할 뻔했네요.”
조금이나마 훈훈해지려는 순간 도진이 덧붙인 말은 찬물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는 대충 쉬어 가면서 사냥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을 거 같아서요. 시작하면 정말 한계의 한계까지, 도저히 움직이기 힘들 때까지 해 볼 생각입니다. 최소 사흘, 길면 일주일 정도 사냥터에서 아예 안 나올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이 부분은 서로 맞춰야 하는 부분이라 동의를…….”
말하던 도진은 테레사와 상수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그들의 표정과 얼굴은 시체를 닮아 있었다.
“서, 선생님……?”
찰나에 언데드로 종족이 바뀐 테레사가 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지금 들은 게 맞나요? 지금까지 대충 쉬어 가면서 사냥했다고……. 상수야, 너도 그렇게 들었어?”
테레사가 물었지만, 상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장 격하게 혹사당한 몰이꾼 겸 서브 딜러 노예는 이미 거무죽죽해진 면상으로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각오니 뭐니 뱉은 말만 아니면 지금 당장 로그아웃하는 건데…….
공황 상태에 빠진 둘을 보며, 도진이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요. 전투력 유지를 위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거니까. 식량이나 침낭도 준비했으니 가볍게 캠핑한다 생각하면 됩니다.”
캠핑이라고? 역시 저 인간은 악마야. 떨리는 두 쌍의 눈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 두 쌍의 눈에게 도진은 눈으로 물었다. 그래서 안 갈 거야? 그러기엔 너무 큰 경험치랑 보상일 텐데.
눈싸움의 승자는 당연히 도진이었다.
* * *
결국 다시 서게 된 갱도 끝자락.
도진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도대체 저 벽에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 건가 궁금해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비밀 통로? 아니면 마법사에게만 보이는 마법진이라도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뭐지?
‘설마 저길 뚫으려는 건 아닐 텐데…….’
이미 망치로 두드려 본 결과 저건 웬만한 힘으로 뚫릴 벽이 아니란 사실을 테레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능성 없는 가설에 가위표를 치고 있는데.
“잠시 뒤로.”
도진이 뒤로 물러나라는 손짓을 하며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거침없는 동작으로 무언가를 하더니, 빛나는 마법진이 생겨난다.
아주 복잡하고, 커다란 마법진이었다.
그 순간 철이 많이 함유되어 단단하다 못해 딴딴한 벽에 붉은 점 하나가 찍혔다.
처음에는 화려한 마법진이 만든 형상치고는 너무 초라해서 뭔가 잘못됐나 싶었다.
“……?”
그런데 잠시 후. 테레사를 포함해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작은 점에서 시작된 붉은 열기가 넓게 퍼지면서 빠르게 벽을 녹여 내기 시작한 것이다.
“으윽……!”
벽 쪽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열에 놀란 파티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딱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크기로 점점 더 깊게 파고드는 붉은 기운.
그것은 말 그대로 암석층을 용암으로 바꾸며 구멍을 뚫고 있었다.
“마법사는 저런 것도 돼요?”
그럴 리가 있나.
지금 시점에 저런 벽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유저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저 사람은 했다.
어떻게 한 걸까? 테레사뿐만 아니라 상수와 소소도 함께 느끼는 의문이었다.
이에 도진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냥 돈 쓰면 돼요.”
말하는 도진의 손끝에서 차가운 기운이 뿜어졌다.
순식간에 엄청난 수증기가 발생했으나 도진은 그것마저 끌어모아 다시 얼려서 뚫린 구멍 안쪽으로 계속 쏘아 보냈다.
도진의 작업이 다 끝났을 때.
단단한 3~4미터 두께의 벽에는 사람 하나가 지나다닐 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 * *
“잘 들어요. 안쪽에 있는 놈들이라고 해서 밖이랑 많은 차이가 나진 않겠지만, 숫자는 엄청 많을 겁니다. 이 안쪽엔 우리들뿐일 테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벽을 등지고 싸우는 방향으로 움직일 겁니다. 저랑 힐러를 보호하면서 적을 막아 내기 편한 진형으로.”
테레사와 상수는 생각했다.
미리미리 좀 말해 주지. 저 사람은 꼭 닥칠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해 주더라.
합당한 불만이었다.
하나 도진은 상황이 닥치기도 전에 구구절절 설명하는 걸 선호하지 않았다.
애초에 전생에는 파티란 걸 해 주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럴 기회가 없기도 했고…….
어쨌든 도진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러했다.
‘구구절절 설명할 게 뭐 있어? 그냥 던져 놓고 바로바로 시키면 그만이지.’
어려운 걸 같이한다면 그래야겠지만.
이건 어렵진 않다. 그냥 매우 힘들 뿐이지.
그리고 힘든 걸 잊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기회를 주면 안 된다.
“준비해요.”
말하며, 도진은 마법회로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완성하려는 마법은-
《빛》
더 넓은 범위의 시야를 밝혀 주는 주문.
파악- 하고 밝아진 시야로 잠들어 있는 골렘들의 동체가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육안에 들어오는 것들만 그 정도였고.
서서히 나타나는 붉게 빛나는 점들은 더욱 많았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철광석 골렘의 눈동자였다.
그중 하나가 휙 움직이며 도진을 바라봤다.
[<폐쇄된 철광석 던전>의 숨겨진 장소에 최초로 진입하였습니다!]
[최초 진입 파티에게 1회 한정 경험치 버프가 주어집니다.]
[최초 진입 파티에게 1회 한정 드랍률 버프가 주어집니다.]
[해당 버프는 던전을 벗어날 시 자동으로 소멸합니다.]
그 순간 ‘최초’에 대한 대우가 확실한 게임답게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골렘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전투하기 편한 자리를 선점해야 했다.
“이리로!”
도진의 낮고 힘 있는 목소리에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던 파티원들은 불에 댄 것처럼 빠르게 반응했다.
벽을 따라 달리는 도진을 따라 세 명이 미친 듯이 달렸다.
그사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철광석 골렘들이 몸을 일으켰다.
꽈드득, 꽈드득. 놈들의 관절 사이에 끼어 있던 불순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턱.
도진이 구석진 벽에 닿았다. 도주로는 없지만, 밀려오는 적을 맞이하기에 좋은 자리였다.
“뭐 해요? 전사랑 검사 좌우로 한 방향씩 막고! 힐러님은 제 뒤로 서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제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그러니까 따로 콜 없으면 무슨 일이 있든 당황하지 말고 자리 지켜요. 힐러님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두 사람 피랑 버프만 신경 쓰시고.”
허겁지겁 자리를 잡는 두 근접 딜러.
소소도 도진 뒤에 딱 자리를 잡았다.
쿵. 쿵. 쿵.
일정한 리듬감으로 다가오는 적들.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어, 어떻게 해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데?”
“이거 정말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많아도 너무 많은데요? 백은 기본으로 넘겠는데…….”
테레사와 상수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눈에 밟히는 붉은 점이 너무 많긴 하다.
하지만 과한 긴장감으로 그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작은 놈도 키가 2미터는 훌쩍 넘는 거 안 보여요? 저 덩치로는 아무리 많이 몰려들어 봤자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가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건 많아야 3마리에서 5마리예요. 적당히 긴장해요, 적당히. 겁먹으면 잡아먹힙니다.”
도진의 말을 듣고 고개를 세게 끄덕이는 테레사.
상수도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들 뒤로 전투 개시를 알리는 도진의 말이 들려왔다.
“드디어 경험치 이벤트 시작인 거 같네요.”
쿵쿵쿵쿵.
그 말에 맞춰, 골렘들이 인간에 대한 적의를 폭발시켰다.
《연화의 저주》
최대한 범위를 넓게 퍼뜨린 저주 마법이 철광석 덩어리들의 전열을 감쌌다.
단일 대상에게 시전하는 게 아니니 효과가 떨어져야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이 던전의 철광석 골렘은 LOST에서 마법 저항력이 가장 낮은 몬스터이니.
콰앙.
저주 걸린 철광석 골렘의 어깨를 테레사의 망치가 사선으로 내려쳤다.
으깨지는 어깨. 튀는 파편. 그것들을 보며 도진은 마법사용 연초를 태웠다.
그에 맞춰 마나로 만들어진 그의 심장이 조용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