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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30화 (3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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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있던 상수는 터벅터벅 다가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테레사다.

“왔냐.”

상수는 피곤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

마찬가지로 지친 기색으로 답하는 테레사.

두 사람 모두 현실에서 하루를 푹 쉬었지만, 피곤한 기색이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닥칠 일을 너무 잘 알아서였다.

한동안 말없이 허공만 응시하던 중 상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물었다.

“또 엄청 달리겠지?”

“…….”

테레사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걸 꼭 말해야 아냐는 듯이.

아니, 테레사는 말할 기운조차 아까워 입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테레사와 상수는 도진을 만난 그날을 떠올렸다.

사냥을 시작했던 바로 그날을.

「헉… 헉… 체력이 떨어져서 더는 안 되겠어요. 소소도 아직 스태미너 회복 쪽은 배우질 않아서. 이대로 가다간 탈진 걸릴 거 같으니까 마을 가서 좀 쉬어야 할 거 같아요.」

몰이꾼 겸 서브 딜러로서 가장 고생하느라 가장 빨리 지친 상수의 호소였다.

그런데 도진은 다 예상했다는 듯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상수에게 건넸다.

[스태미나 포션]

웬만한 사람들은 비싼 가격 때문에 들고 다니지도 않는 체력 회복용 포션이었다.

도진은 지치면 쓰라며 테레사의 손에도 같은 것을 쥐여 줬다.

이때까지만 해도 둘은 도진을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비싼 물약까지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러나 9시간이 경과했을 때 상수와 테레사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정말 쉬어야 할 거 같네요. 몸이 아니라 정신피로가 쌓여서. 시야 흐려지는 거 보니까 조금 있으면…….」

「저도요. 생명력이랑 체력은 괜찮은데, 가끔 현기증이 나는 거 보니까 저도…….」

두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아, 괜찮아요. 여기, 이거 마시면 됩니다.」

[각성제]

테레사와 상수의 손에 도핑용으로도 쓰이며, 강제로 정신을 각성시키는 약물이 쥐여진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마약이 주어졌다고 했던가.

공포와 졸음, 피로, 배고픔 등을 잊게 만들어, 사람이 망가지든 말든 싸우는 기계로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함이 그 이유였다 했다.

각종 포션은 넉넉히 챙겨왔으니 걱정 말라며 웃는 도진의 눈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가긴 어딜 가? 아파? 걱정 마. 진통제는 잔뜩 있으니까. 졸려? 그것도 걱정 마. 커피도 있고, 에너지 드링크도 있어. 그래도 못 참겠으면 마약도 잔뜩 준비해 뒀어. 퇴근은 죽은 다음에 하면 되는 거야.’

결과적으로 테레사와 상수는 강제로 각성제를 투여당하며 사흘 동안 62시간이라는 사냥 시간을 소화해야 했다.

72시간 중 10시간밖에 쉬지 못한 것이다.

회상의 끝에서 두 사람이 한 생각은 같았다.

도망치고 싶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도진을 기다리는 이유는…….

“레벨이 너무 잘 오르잖아… 도망도 못 치게.”

드디어 입을 연 테레사의 말.

“…그게 문제지. 사흘 동안 1.5업이라니. 우리끼리 했으면 열흘… 아니, 2주는 걸렸을 거야. 그런데, 우린 그렇다 치고 소소 넌 괜찮냐? 어째 네가 조용하다?”

고개를 돌리며 어느새 나타난 소소에게 상수가 물었다.

“뭐가?”

“아니, 그 사람. 고맙기는 한데 솔직히 빡세잖아. 넌 원래 이 게임 하는 것도 별로 내켜 하지 않았고.”

뭔 소린가 했더니.

그제야 나누던 대화가 어떤 건지 눈치챈 소소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난 괜찮은데? 몬스터가 나한테 달려와도 그 사람이 알아서 다 처리해서 나중에는 그냥 앉아서 힐 했어. 그리고 솔직히 재밌어. 너희 둘이 이리저리 구르는 거 구경하는 거.”

“…….”

“…….”

파티의 육체노동자 둘은 서로가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자조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힘들면 관두든가.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약속 시간이네. 그 사람 오면 양해 구하고 갈라지면 되잖아.”

후우. 깊은 한숨을 동시에 뱉는 두 사람.

그중 테레사가 세상 쓴맛 다 본 아저씨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기엔… 너무 큰 경험치야.”

“이하동문이야…….”

테레사의 말을 받는 상수.

소소는 그런 두 사람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그때 가벼운 걸음으로 도진이 나타났다.

지치거나 피로한 기색 따위 없는 평온한 안색이었다.

“일단 가죠.”

긴말 필요 없다는 듯 벌써 앞장서서 걷는 도진.

테레사는 망치를 질질 끌며 그 뒤를 따랐다.

* * *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스위치가 올라간 듯 눈빛이 변한 도진은 이번에도 파티를 거침없이 이끌었다.

조금의 낭비도 허용치 않는 빡빡한 운영.

숨을 헐떡이며 몰이와 몹 처리를 담당한 노예 겸 딜러 둘은 정말 숨이 넘어가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깨고 부수고 썰며 중노동에 시달렸다.

테레사와 상수는 자신들이 게임에서 사냥을 하는 건지 채석장 노예로 팔려 와서 노가다를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쉴 수 있을 거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냥을 시작함에 앞서 배급 받듯 오늘치 ‘약’을 이미 받아 뒀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힘내라면서 약을 쥐여 주는 악마의 미소를 봤을 때 테레사와 상수는 생각했다.

‘이 새끼가 이제는 배급 시간까지 아끼려고 드는구나……!’

1시간… 2시간… 4시간… 그리고 더, 더, 더.

마약 빤 광부처럼 묵묵히 몰고 깨고 부수고 썰기를 반복했다.

경험치가 오른다. 아이템이 나온다. 많이 나온다.

그런데 힘들다. 죽도록 힘들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땀이 나고 마르기를 반복한 피부가 마치 모래사장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들을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생각보다 잘 버티네.’

도진은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를 제외하면 저주 거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

힐러도 소모되는 생명력만 채워 넣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하지만 저 둘은 휴식 시간 없이 계속해서 전투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장시간 강행군을 지속할 수 있다는 건, 그걸 견디고 있는 플레이어의 의지력이 상당하다는 증거였다.

‘못 견디겠다고 주저앉으면 그거에 맞춰서 조절하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이 악물고 따라올 줄은 몰랐네.’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도진

레벨: 43

클래스: 진리의 서

근력: 22

민첩: 24

체력: 102

지능: 237

스킬: ( 1 ) [열기]

특성: ( 2 ) [열기]

노예 둘이 열심히 저주 걸린 골렘을 두드리는 사이 도진은 여유롭게 상태창을 살폈다.

지난 나흘 동안 2레벨이 올랐고, 오늘 사냥으로 경험치의 1/4 정도가 차올랐다.

하루는 휴식 시간으로 썼으니, 사실상 사흘 만에 이룬 성장이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빠른 속도다.

슬슬 필요 경험치가 살벌하게 늘어나는 구간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어쨌든 고무적인 성장이다.

이런 성장 속도에는 분명 근성 있는 딜러 두 명의 지분이 아주 약간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원래 노가다성이 짙은 사냥은 실력보다는 끈기와 근성이 필요한 법인데 저 둘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저주 한 번 돌리고 나면 한동안 하품만 하고 있어도 알아서 경험치가 오른다.

그동안 상태창도 좀 보고, 진리의 서로 마법 해석도 돌리고.

여유 넘치는 사냥에 도진은 나른하고 지루한 기쁨을 느꼈다.

그러면서 도진은 둘이 얼마나 이곳에 익숙해졌나 잠시 살폈다.

검사는 조금이라도 덜 뛰고 몹 몰이를 하려고 효율적인 루트를 찾는 경지에 도달한 게 보인다.

테라사라고 했던가? 전사 쪽은 아주 효율적인 망치질을 터득한 것 같았다.

뭐랄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할 수 있게끔 알아서 몸을 비트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전사로서의 성장보다는 차라리 공사판에서 구르고 구르다 골병 나기 싫어서 알아서 요령 익힌 노가다꾼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어쨌든 성장한 게 보인다.

‘저 정도면 안쪽에서 굴려도 되겠어.’

역시 사람은 빡세게 굴려야 빨리 배운다니까.

생각하며, 도진은 막 몰아온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심장 터질 것처럼 헐떡대는 두 딜러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장소를 옮겨도 되겠네요.”

그 말에 망치에 기대고 있던 테레사가 반응했다.

“장소를요? 굳이 옮길 필요가 있나요?”

저 죽을 거 같으니까 제발 여기서 좀만 앉아서 쉬자고요. 자리 옮기려면 걸어야 하잖아!

그녀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으나 도진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만 할 말을 할 뿐이었다.

“던전 안쪽으로 가 보려고요. 입구 쪽보다는 던전 내부로 진입할수록 몹도 더 많아지고 경험치도 더 주잖아요.”

거기다 운 좋으면 엘리트 몬스터를 볼 수도 있고, 보스 몬스터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오픈형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를 보고, 또 잡는 건 너무 큰 욕심이겠지만…….

도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테레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 여기 안쪽으로 가 봐야 별거 없는데요? 그지, 상수야?”

테레사가 자신을 부르자 주저앉아 있던 상수는 말할 기운도 없는지 손을 내저었다.

알아서들 하라는 듯이.

테레사는 그를 한번 쏘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폐철광은 입구에서 갱도 타고 들어오자마자 나오는 이 방이 제일 큰 사냥터예요. 그래서 큰방이라고 불러요. 저쪽 갱도 타고 가면 여기보다 작은 공터가 있는데 그건 작방이라고 부르고요. 방 크기나 몹 개체수가 여기보다 별로라 큰방이 포화 상태 아니면 잘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폐철광 관련 팁이나 정보에 꼭 나오는 건데 모르셨어요? 묻는 말에 도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방이 두 개뿐이라고?’

그럴 리가 있나.

<폐쇄된 철광석 광산>이 얼마나 넓은 던전인데.

‘뚫려 있는 갱도만 해도 수십 개는 되는… 아.’

수십 개의 갱도를 따라 그보다 훨씬 많은 공터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던 곳이 지금은 겨우 두 개의 공터밖에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을 것도, 생각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다.

‘원래는 막혀 있었던 거야.’

새로운 깨달음에 오소소 등을 따라 소름이 돋았다.

“작은 방이 어디라고요?”

“저, 저쪽이랑 저쪽이요.”

달라진 도진의 눈빛에 테레사가 주눅 들어 답한다.

“갑자기 왜 그래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시큰둥하게 힐만 하던 소소가 반응할 정도로 도진의 표정은 생기가 돌고 있었다.

“일단 확인은 해 봐야겠지만, 조금 짚이는 게 있어서요. 잠시만요.”

“어어? 저쪽이랑 저쪽이라니까요? 다른 갱도는 다 막혀 있어요. 몬스터도 안 나오는데……!”

전혀 엉뚱한, 막다른 길이 확실한 갱도를 향해 걷는 도진에 당황한 테레사가 망치를 어깨에 걸치고 뛰어서 따라붙는다.

테레사가 움직이니 자연스럽게 소소도 일어나서 따랐다. 쉬겠다는 상수의 머리채를 잡아채서.

“잠깐, 잠깐만요! 정말 가 봤자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답답해하는 테레사를 향해 도진이 말했다.

“확인할 게 있어서요.”

“뭐를요?”

“확실해지면 말해 줄게요.”

갱도가 막힌 지점까지 도착했을 때 소소가 툭 말했다.

“얘 말이 맞네요. 완전히 막혀 있잖아요. 무너진 것도 아니고 그냥 판 적도 없는 벽인데요?”

소소의 말대로 벽은 파내어진 적도 없는 것처럼 완전히 막힌 암석층이었다.

하지만 도진의 눈에는 그게 아니란 것이 보였다.

‘마법으로 틀어막았어.’

주변의 암석의 무늬들이 마치 끌려 들어간 듯 정면의 벽 쪽으로 미세하게 쏠려 있다.

지형을 변형하는 종류의 마법으로 만든 벽이란 뜻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상당한 고위 마법사가 만든 벽임이 분명했다.

그런 만큼 벽을 이루는 암석층은 아주 두껍고 길 터.

지금의 도진의 마법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벽이었다.

‘적어도 5성 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녹일 수 있겠어.’

그러면 불가능한가? 그럴 리가 있나.

고인물에게는 다 나름의 방법이 있는 법이다.

도진은 툭툭 벽을 두드려 본 뒤 돌아서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사냥은 여러분끼리 해야 할 거 같네요. 저는 아무래도 조금 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할 게 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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