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9화 (3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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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최대 LOST 커뮤니티 로트라넷.

매시간, 매초마다 화제가 급변하는 사이트답게 오늘도 수많은 종류의 화제가 떠오르고 사라지고, 또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 로트라넷 한 게시판에 조약돌 하나가 던져졌다.

[(실시간) 폐철광 골렘들 망치에 가루 되는 중]

안 그래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던전 중 하나인 폐철광 던전에 관한 글이어서 그런지 조회 수는 빠르게 올라갔다.

글의 내용은 겨우 5초짜리 동영상이었다.

[“흐아압!”]

동영상에는 작은 체구의 여전사가 큰 전투망치를 휘둘러 철광석 골렘 세 마리를 동시에 쓸어버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시발, 내가 뭘 본 거지?

-광산 골렘들 존나 딴딴하지 않음? 나 초기에 저기 얼씬거렸다가 쓰던 칼 수리 불가 떠서 가져다 버렸는데;;;

└ㄹㅇ 저기 몹들 전부 개딴딴해서 마딜 아니면 절대 못 잡는데;

-방깎 스킬 있는 클래스들도 저기서는 기스도 못 내던데 미친 전사 새끼들 징징거리더니 개사기 직업이었네 ㅅㅂ

└뭔 개소리야 시발 내가 방깎옵 달린 도끼까지 사 들고 저기 도전했다가 이빨 다 빠져서 수리비로 한 달 용돈을 다 날렸는데

상식에 위배되는 장면에 사람들은 갑론을박을 펼쳤다.

‘특수한 스킬 혹은 장비를 가진 게 아닐까.’

‘어쩌면 전사가 아니라 다른 클래스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지금 저 사람이 쓰는 스킬은 전사 스킬이 맞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이런저런 추측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야야, 다른 동영상 떴음

첫 번째 동영상에 이어 종군기자들이 보내오는 새로운 소식들이 연속해서 게시판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 최고의 조회수와 댓글 그리고 추천을 받은 건 당연히 가장 좋은 앵글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야, 곽상수! 내가 적당히 좀 몰아오랬지!”]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그냥 뛰다 보면 벌떼처럼 달려드는데!”]

서로 꽥꽥대며 망치질과 칼질을 하는 두 사람.

땀을 뻘뻘 흘리며 죽는 소리를 해 대고는 있었지만, 정작 죽어 나가는 건 골렘들이었다.

그들이 장검과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잘리고 부서져 바닥을 뒹구는 골렘들.

특히 전사가 「파쇄격」을 쓰면 파편에 휩쓸리며 몇 마리씩 쓸려나갔다.

-미친… 저 정도 공격력 나오려면 레벨이 몇이어야 함?

└저 정도면 랭커 수준 아님?

└아무리 랭커여도 철광석 골렘을 저렇게 순두부 자르듯 자를 수 있을 거 같진 않은데. 지금 레벨 높은 애들도 기껏해야 50대잖아.

-글 내려주세요. 마딜러들 겨우 일자리 생겼는데 이거 퍼지면 저희 다시 천민 됩니다. 진지하니까 글 내려주세요.

└ㅋㅋㅋㅋㅋ 뭔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꼼수 밝혀지는 순간 마법사고 정령사고 마딜들 다시 관짝행이네 ㅋㅋㅋㅋㅋㅋ 꺼어어어억

└ㄹㅇㄹㅇ 태생적 천민 새끼들 꿀사냥터 하나 생겼다고 잘난 척하면서 다른 클래스 게시판에서 분탕 치는 거 좆 같았는데 개꼬시네 ㅋㅋㅋㅋ

└응~ 어차피 폐철광 이후로는 다시 불가촉천민행이었어~ 근데 이젠 거기서도 천민 될 예정 ㅋㅋㅋㅋㅋㅋ

글이 올라오고 1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10분이 넘는 영상의 앞부분만 슬쩍 보고 판단을 마친 사람들이 댓글로 투닥거리고 있을 때였다.

-병신들, 끝까지 좀 봐라. 마법사 지금 개떡상 준비 중이구만 뭔 천민이야, 천민은.

동영상을 끝까지 본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너, 너무 많이 몰아온 거 같은데?”]

[“야야, 몸으로 막아! 뒤로 보내면 안 된다고!”]

골렘을 학살하던 장검, 망치 듀오가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 몰이를 하던 검사가 몬스터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리젠되는, 일명 폭젠 현상에 휘말리는 바람에 감당 못 할 몬스터를 몰고 온 탓이었다.

후방에 있는 파티원들에게까지 몬스터의 어그로가 튄 위기 상황.

이때 처음으로 동영상 앵글에 힐러와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들어왔다.

‘힐러는 그렇다 치고, 저 마법사는 왜 있지?’

어차피 딜러는 저 두 사람이잖아.

그 구간을 재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

힐러를 향해 달려들던 철광석 골렘의 주먹이 얼어 부서졌다.

이어, 검은 로브 마법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골렘을 바라봤다.

동시에 남자의 오른손이 빛나는가 싶더니, 화염 덩어리 하나가 철광석 골렘에게 작렬했다.

쿠르릉. 그대로 돌과 철광석으로 변하며 쏟아지듯 부서지는 골렘.

[“물러나요.”]

낮은 읊조림에 맞춰 생겨나는 황금 책자.

그사이 달려드는 골렘들.

남자가 빠르게 물러난다.

그 걸음 하나마다 실시간으로 바람으로 벼린 칼날이 생성됐다.

그리고 뻗는 손에 맞춰 일제히 사출된 바람 칼날들은 허무하리만치 가볍게 골렘 다섯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마법에 대한 내성이 미천한 골렘들은 목 잘린 죄수처럼 무릎 꿇고 죽었다.

어느새 근접 딜러 둘이 흘린 몬스터들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공격하는 것들이 사라져 움직일 필요가 사라지자 조금 더 밝은 빛으로 물드는 남자의 오른손.

1… 2… 3초가 되기 전.

화르륵. 완성된 마법진에서 화염이 뛰쳐나갔다.

《기어 다니는 불》

바닥을 통해 번지는 불길.

철광석 골렘 무리를, 바닥을 기는 불이 외곽에서부터 갉아 들어갔다.

[“길 뚫렸다! 테레사 일단 탈출하자!”]

그렇게 생긴 활로로 몬스터에게 포위되었던 검사와 전사가 탈출한다.

그들에게 꽂히는 힐.

촬영자의 시야가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다 다시금 앵글 안에 들어온 검은 로브.

마법사임이 거의 확실한 남자의 손끝에 어느새 새로운 마법진이 생성됐다.

그것도 연속으로 같은 마법진이 몇 번인가 빠르게 떠오른다.

그러나 딱히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제 공격 통할 거예요.”]

침착한 한마디.

그리고…….

콰앙-

다시금 망치가 철 섞인 돌 부수는 소리가 울렸다.

[“시발… 내가 뭘 본 거야?”]

촬영자의 거친 감탄과 함께 동영상이 끝났다.

동영상 전체를 제대로 본 사람들이 늘어나자 댓글 여론은 완전히 달라졌다.

-??? 저 새끼 말대로 지금 내가 뭘 본 거임? 저거 마법사 맞지? 마법이 저렇게 막 나가는 거였냐? 나랑 파티했던 법사들은 마법 하나 쓸려면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필요하던데.

└ㅅㅂ 그러면 내가 천민 취급을 받았겠냐? 저 속도 말 안 돼. 그것도 움직이면서? 더 말 안 돼.

-법사들 좀 나와서 말 좀 해 봐. 이 새끼들 인구수 딸려서 정보 뱉는 놈들이 없네.

-본인 45레벨 마법사. 설명 들어감. 캐스팅 속도랑 안정성은 마법 숙련도 올리고 마법진, 마나 패턴, 주문 같은 거 외우는 걸로 올라감. 1성 마법은 지금도 숙련작 한계까지 하면 저 법사 속도 나옴. 근데 움직이면서는 안 나옴. 마법 쓸 때 개집중해서 마법진 모양이랑 마나 패턴, 주문 같은 거 머릿속으로 빠르게 떠올려야 하는데 움직이면서는 그게 안 되기 때문. 아마 저 금색 책이 저 사람 무기 같은데 저게 존나 쩌는 발동형 아이템이라 보정을 받는 거 같음.

└놀람 포인트 1. 이 미친 사람은 법사로 45를 찍었다 2. 법사는 숙련작만 하는 게 아니라 마법진이니 뭐니 공부까지 해야 한다 3. 이걸 다 해도 쓰레기 직업이다 4. 나도 마법사다…….

-법사 새끼들 이제 보니까 개사기 직업인데 징징거린 거였네

└위에도 있네. 마법진외워야돼충이랑 아무튼 쓰레기임충. 지들끼리 꿀 빨려고 여론 조작하는 거 역겹네.

└그렇게 사기 같으면 너도 법사 하든가 병신 새끼야. 아, 학력 딸리는 대가리 빈 새끼라서 주문이랑 마법진 못 외워서 못 하나?

└ㅋㅋㅋㅋ 법사 새끼들 암기부심 좀 그만 부려라 게임하면서도 책잡고 공부하는 게 뭐가 자랑이라고. 조금 있으면 마법 공식 수능 과목으로 지정해 달라고 지랄하겠어 아주.

-근데 마지막에 쓴 마법은 뭐야? 저거 쓰니까 물딜 두 마리가 딜 시작하는데. 잘 보면 그전에는 물딜 두 마리는 처맞기만 하지 한 마리도 못 잡았음.

└내가 흑마법사 컨셉으로 저쪽만 파는 중이라 아는데… 저거 저주 마법임. 마법진 보니까 연화의 저주네. 방어력 떨구는 거.

마지막으로 시전된 마법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관심에 대한 답변이 등장하자 댓글창은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저주 한 번 쓸 마나면 동급 공격 마법 3번은 쓸 수준이어서 사장된 거 아니었냐는 말부터 숙련도가 낮을 때는 아예 저항이 뜨면서 몬스터에게 적용도 안 되더라는 경험담까지.

LOST 오픈 약 한 달도 안 되어 쓰레기 낙인이 찍히고 버려졌던 ‘저주’에 관한 담론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주와 연관이 조금이라도 있는 클래스에 한정된 관심이었다.

실시간 급상승 게시물: [마법사의 재조명]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보다는 쓰레기 직업으로 유명한 마법사의 화려한 전투씬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도진 파티의 사냥 영상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새롭게 편집되어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다.

* * *

방금 내린 커피를 내려놓은 도진은 태블릿을 터치했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들어간 곳은 로트라넷.

여기저기 둘러볼 것도 없이, 도진은 바로 마법사 게시판을 확인했다.

[저주 마법 써 본 사람 있음?]

[방금 저주 마법 써 봤는데 마나 소모 심해서 못 써먹겠는데?]

[그 동영상에서 법사가 썼던 그 책 장비 이름 뭔지 아는 사람?]

[저주 좀 써 보려는데 시세 왜 이러냐? 가격 장난 아니게 올랐네. 미친놈들 개빠르네 진짜.]

게시판은 뜨거웠다.

인구수 최하위를 자랑하는 직업군이어서 하루 동안 올라오는 게시물이 가장 적은 편인 마법사 게시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화력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 바로 자신임을 도진은 모르지 않았다.

‘이쯤이면 동영상이든 뭐든 퍼졌을 테니까.’

LOST를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정보가 퍼지는 속도나 루트, 그리고 퍼지는 방식은 뻔하다.

그로 인해 발생할 여파 또한 대동소이하고.

마법사들의 뜨거운 논쟁을 짧게 살핀 도진은 거래소 페이지로 넘어갔다.

실시간으로 인게임 거래소 시세를 알려 주는 주는 페이지다.

입력한 검색어는 ‘연화의 저주’.

[2성 마법 스킬북-연화의 저주]

[가격: 799골드]

쌓여 있던 물량은 이미 싹 사라져 있었다.

대신 새롭게 올라온 매물의 가격은 기존 가격의 2배가 넘게 비싸진 상태.

정상적이라면 이런 속도로 물량이 녹아내릴 리는 없고, 아마도 돈 냄새를 맡은 장사꾼들이 대량으로 사재기를 한 것일 터.

이에 도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거의 딱 2배 올랐으니까… 대충 잡아도 1만 골드는 벌었겠네.’

왜냐하면, 사재기 열기가 피어오르기 전.

아무도 저주에 관심이 없을 때 이미 가진 돈을 털어서 스킬북을 구매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가진 돈이 별로 없어 그리 큰 이윤을 남기지 못했겠지만, 운 좋게 운명 등급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1만 골드라는 거금을 얻은 게 천운이었다.

그 덕에 더 많은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었고, 그게 고스란히 수익이 되어 돌아왔다.

시세 확인은 됐고. 사람들 반응이나 더 살펴볼까? 생각하며 가장 핫한 게시물로 들어간 도진은 댓글을 보며 놀랐다.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현시점에 쌓을 수 있는 숙련도의 한계를 돌파한 듯한 속도와 안정성 그리고 깔끔한 마법 활용 등에 놀란 반응들.

-안녕하세요. 유튜브 채널 운영하는 헤무트라고 합니다. 이번에 마법사 클래스 장인 초청 방송을 기획하고 있는데 꼭 모시고 싶습니다. 영상 속 마법사님, 혹시 이 댓글을 보시게 되면 꼭 제 프로필에 적힌 메일로 연락 주세요.

발 빠르게 냄새를 맡고 관심을 보이는 유튜버는 물론이고, 각 게임 커뮤니티 기자들, 심지어 로트라넷 측에서도 인터뷰 요청을 댓글로 남기고 있었다.

그것을 본 도진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면에 잠들어 있던 관종 본능이 꿈틀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도진은 미련 없이 태블릿 화면을 껐다.

저기에 댓글을 남긴 누구와도 인터뷰나 방송을 할 생각 따위 없었다.

‘겨우 이런 걸로 나서기엔 부족하지.’

아직, 아직 때가 아니다.

삐비빅- 삐비빅-

그때 기다렸다는 듯 알람이 울렸다.

파티원들과 약속한 시간이 됐다는 뜻이다.

“그럼 오늘도 달려 볼까.”

먹다 남은 커피를 싱크대에 버리고, 캡슐로 걸어갔다.

현재 레벨 43.

폐쇄된 철광석 광석에서 사냥을 시작한 지 4일차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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