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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는 장비 제작 퀘스트 때문에 꼭 철광석 골렘을 사냥해야 하고, 나름의 방법도 있다며 운을 뗐다.
딜전(딜러 전사)인 자신과 검사 친구는 탱커는 아니어도 「쳐내기」, 「흘리기」 스킬로 탱커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다른 파티에 비해 사냥 효율이 떨어질 건 알고 있고, 그런 만큼 파티가 얻는 전리품 절반을 분배해 주겠다.
“…그러니까 경험치 부분에서는 조금 손해를 보실지 몰라도 돈은 더 벌 수 있을 거예요. 네? 제발 도와주세요. 저 이 퀘스트 때문에 여기서 사흘이나 이러고 있었어요.”
거절로 점철된 그간의 설움으로, 테레사의 표정은 간절함 그 자체였다.
이번에도 거절당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도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좋아요. 어차피 출발할 거 지금 당장 가죠.”
“네? 그, 그 말은 우리랑 같이 간다는 뜻이죠?”
거절하려 들면 물약값까지 지원해 준다는, 설득을 위한 새로운 카드를 장전하고 있던 테레사였다.
그런데 도진은 너무나도 쉽게 수락하고, 시간 낭비할 거 없다며 바로 자리를 정리하고는 일어났다.
“이, 이렇게 급하게요?”
엉거주춤 자신도 일어서서 묻는 테레사.
상황의 급전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도진이 말했다.
“이러고 있는 거 다 시간 낭비고 경험치 손실이에요.”
“그… 렇긴 하죠. 그럼 잠시만요. 다른 파티원들 불러올게요!”
“아, 그 전에.”
무언가 생각난 듯한 도진의 부름.
테레사는 달리려던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사냥할 때 시험해 보고 싶은 게 하나 있거든요. 그것만 좀 협조해 줄 수 있을까요?”
돌아온 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 * *
짧은 인사와 통성명을 나눈 뒤 도진은 확인해야 할 사항을 물었다.
“혹시 「파쇄격」이랑 「충격검」 스킬 있으세요?”
각각 테레사와 상수를 향한 물음이었다.
상수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한테는 초반부터 필수 스킬이라서 배워 놨어요. 꽤 많이 써서 숙련도도 꽤 되고.”
“저도요! 망치 전사한테는 필수 스킬이라 계속 썼던 스킬이에요.”
테레사도 자신의 전투망치를 내밀며 대답했다.
“그런데 얘들 스킬이 중요해요?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텐데. 그쪽 마법이면 몰라도, 얘들 공격으로는 여기 몬스터한테 흠집도 안 날걸요?”
질문을 한 소소 말고도 상수와 테레사도 궁금한 눈치였다.
왜 자신들의 ‘공격 스킬’에 대해 묻는지.
도진은 웃으며 답했다.
“보면 알아요.”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폐쇄된 철광석 광산 입구였다.
* * *
광산 내부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각 파티의 탱커들이 몬스터를 끌고 다니는 소리.
몰아놓은 몬스터를 마법사가 마법으로 일소하는 소리.
더러는 동선이 꼬여 전멸하는 파티가 지르는 비명 소리.
“썅! 조준을 그따위로 하면 어쩌자는 거야! 조금만 늦었으면 나까지 쓸렸을 뻔했잖아!”
“탱커님, 정해진 자리까지 몬스터 제대로 끌고 와 주세요. 그런 식으로 계속 흘리지 마시고. 법사랑 힐러 휩쓸리면 그대로 전멸이에요. 예?”
그 외에도 남 탓과 욕설이 난무하는 소리까지.
개인 혹은 파티별로 독립 공간이 생성되는 인스턴스 던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쪽으로.”
도진은 머뭇거리는 파티원들을 이끌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갔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시선이 모인다.
탱커가 필수적인 사냥터에 방패 든 사람 하나 없이, 전투망치와 장검을 든 구성원이 끼어 있는 조합은 그만큼 튀었다.
“뭐지, 저 신선한 조합은?”
“요즘에는 망치 모양 방패도 나오나?”
“뻔하다, 뻔해. 예쁘장한 여자애들이 꼬시니까 탱커도 없는 파티에 들어간 거겠지. 여왕벌보다 저런 일벌 새끼들이 더 문제야, 문제. 어차피 커스터마이징으로 다 뜯어고친 얼굴일 텐데.”
피식피식 웃으며 하는 말들.
심한 소음 때문에 저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도진 일행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비웃음 담긴 눈길만으로도 의미는 짐작할 수 있었다.
“기죽지 마. 저런 놈들이 뭐라고 네가 기가 죽어?”
망치에 몸을 숨기고 찌그러진 테레사를 보고 소소가 짜증을 내는 순간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돌들이 뭉치며 일어났다.
철광석 골렘이 생성된 것이다.
돌과 철이 뒤섞인 놈은 커다란 동체를 일으키자마자 가장 가까이 있는 적을 인식했다.
“마법사님은 뒤로 물러나세요! 저희가 맡을게요!”
그걸 보자마자 테레사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따라서 상수도 나선다.
콰앙.
철광석 골렘의 주먹과 테레사의 망치가 부딪쳤다.
그러자 서로가 퉁겨지듯 멀어진다.
「쳐내기」 스킬의 효과였다.
그러나 물리 방어력 및 내성이 뛰어난 철광석 골렘은 충격에서 쉽게 벗어났다.
테레사가 몸을 추스르기 전에 공격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상수가 비스듬히 받쳐 든 장검으로 철광석 골렘의 묵직한 주먹을 「흘리기」로 빗겨내려 했다.
그 순간 도진의 마법이 완성됐다.
동레벨 마법사에 비해 현저히 빠른 캐스팅이다.
《연화(軟化)의 저주》
저주계 2성 주문 「연화(軟化)의 저주」.
말 그대로 단단한 것을 연하게 바꾸어 상대의 방어력을 떨어뜨리는 아주 기초적인 저주 마법이 골렘을 훑고 지나갔다.
칵.
공격을 빗겨 내기 위해서 비스듬히 들어가던 장검이 그대로 철광석 골렘의 손목에 박혔다.
“어?”
상수는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까가강, 하며 불꽃이 튀어야 하는데 손맛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경험 부족한 검사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또 박혀 버린 검에 놀라 몸이 굳었다.
그 틈을 파고드는 철광석 골렘의 다음 공격.
“상수야!”
놀란 테레사가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휘두른 망치가 골렘의 어깨를 후려쳤다.
꽈앙. 퍼버벅.
그러자 골렘의 어깨는 물론이고 가슴 부근까지 훅 무너지듯 부서졌고, 깨진 파편이 후드득 상수에게 튀었다.
졸지에 돌과 철의 비를 맞게 된 상수는 어어억, 하고 당황한 신음을 흘렸으나 골렘의 주먹에 정면으로 노출되는 것에 비하면 경미한 피해였다.
쿠웅, 하고 육중한 소리와 함께 쓰러진 철광석 골렘은 곧 원래 모습인 철광석 조각으로 변해 부서졌다.
“…….”
“…….”
두 사람은 벌어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마주 봤다.
“어… 원래 이런 애들이었나……?”
“전에 들어왔을 때는 안 이랬는데……?”
놀라기는 도진 파티를 주목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게 뭐야? 뭔데 철광석 골렘을 버터처럼 뭉개?”
“미친! 레벨이 몇이면 망치로 한 방 후려쳤다고 골렘이 박살이 나?”
뭔가 특별한 스킬이라도 쓴 게 아닐까?
아니다. 저건 레벨이 높은 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니다. 장비를 보면 레벨은 우리랑 비슷하다.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한다.
심지어 전투망치로 철광석 골렘을 황천길로 보내 버린 테레사조차 자신이 어떻게 한 건지 모르는 상황.
그런 와중에 대충이나마 상황을 파악한 건 소소였다.
“이쪽이 뭐 하는 거 같던데?”
소소의 말에 상수와 테레사의 고개가 무서운 속도로 도진을 향했다.
“아, 역시. 망치로 치는 순간에 마법이 꽂힌 거구나. 너무 긴장해서 그것도 못 보고. 하하.”
“아냐, 나도 못 봤어. 와… 아무리 얘들 공격력이 높지 않다는 걸 알아도 더럽게 큰 주먹이 눈앞에 날아오니까 아찔하더라.”
이제야 알았다며 하하 웃는 두 바보를 보며 소소는 한숨을 쉬었다.
“저기요? 설명 좀 해 주시죠. 그쪽이 뭔가 한 거 맞죠? 검은 연기 같은 게 저 덩치한테서 일렁이던데.”
“그냥 저주예요. 되나 싶어서 실험해 본 건데, 되네요. 효과도 상상 이상으로 좋고.”
도진은 자신도 놀랐다는 듯 자신의 손을 보며 감탄한 얼굴을 했다.
누군가와는 달리 능청스러움이 극에 달한 연기력이었다.
“아……! 아까 실험해 본다고 했던 게 이거였어요? 그런데 저주… 그거 마나 엄청 달지 않아요?”
테레사의 말대로 저주 마법은 마나가 많이 소모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그건 바로 소모되는 마나의 상당량이 저주를 거는 대상의 마법 저항을 뚫는데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상대의 방벽이 약하면 그만큼 뚫기가 쉬워지니 소모되는 마나의 양도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철광석 골렘은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아예 없지.’
뚫을 방벽도 없고, 걸린 저주의 효과를 감소시킬 최소한의 저항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이런 철광석 골렘에게 방어력을 감소시키는 종류의 저주를 걸면 어떻게 될까?
그나마 자랑이던 물리 방어력마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사정과 원리를 하나하나 설명하자니 귀찮다.
그 시간에 차라리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게 이득이었다.
“범위 마법이랑 비교하면 마나 효율도 그렇게 떨어지는 거 같지 않은 거 같은데… 차라리 이렇게 사냥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다른 파티만큼 몬스터를 몰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아요.”
반대는 없었다.
소소야 그냥 흘러가는 대로, 아무래도 좋다는 입장이었고.
테레사와 상수도 탱보다는 딜이 하고 싶은 부류였다.
애초에 권력의 추가 도진 쪽으로 기울어 있기도 했고.
“검사님이 제일 발이 빠르니까 몰이꾼 역할 하시고. 전사님은 제가 저주 걸면 바로 처리하는 역할 해 주세요. 아마 이편이 힐러님 부담도 적을 거예요. 아무래도 탱커 없이 몰이사냥을 하다 보면 위험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어서.”
파티원들은 도진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누가 이끌어야 할지 애매한, 서로가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지시가 내려오니 자연스럽게 도진을 파티의 리더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방향이 정해지고, 도진의 지시에 따라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냥은 일사천리였다.
“떼레사아아! 나 죽는다!”
엄살이란 엄살은 다 피우면서 상수가 몹을 몰아오면.
《연화의 저주》
도진이 저주를 걸었다.
거뭇거뭇한 연기 같은 것이 골렘들을 감쌌다가 훅 흩어지면 그걸 본 테레사는 전투망치를 야구선수처럼 붕붕 돌리며 준비하다가.
“흐아악!”
비명인지 기합인지 헷갈리는 소리를 내며 휘둘렀다.
《파쇄격》
그러면 꽈앙, 하는 소리와 함께 골렘의 일부분이 터지면서 후방의 골렘들까지 휩쓸어 버린다.
힘과 공격력에 올인한, 심지어 무기마저 일격필살에 특화된 커다란 전투망치를 고른 전사다운 공격력.
그렇게 테레사가 묵직한 공격으로 전열을 뭉개 버리면 몰이꾼이었던 상수가 서브 딜러로 역할을 바꿔 마무리를 돕는다.
소소는 그런 그들에게 힐과 버프를 뿌려서 떨어진 생명력과 체력을 보충한다.
다른 파티에 비해 한 번에 몰아 잡는 마릿수는 적지만, 전체적인 속도와 안정성은 훨씬 높았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냥하며, 오히려 훨씬 더 많은 몬스터를 같은 시간 안에 해치우는 도진 파티의 모습은 처음의 비웃음과 조롱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