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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는 눈을 번뜩이며 주변 사람들을 살폈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한 마리의 맹금류 같은 눈.
그녀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철광석 골렘 몰이사냥을 함께할 파티원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폐쇄된 철광석 광산> 앞에 있는 모험가들이 모이는 여관, 식당, 술집 등을 전전하며 죽친 지 벌써 사흘이나 됐지만, 그녀는 필요한 파티원인 마법 공격 딜러를 충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힘만 찍은 전사인 그녀도, 같이 게임을 하는 검사 친구도, 살인적인 물리 방어력을 자랑하는 철광석 골렘을 사냥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폐급 딜러이기 때문이었다.
혼자 다니는 사람이 눈에 띌 때마다 접근했지만 번번이 외면받기 일쑤.
테레사는 몇 번째인지 모를 퇴짜를 맞고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취업하는 거보다 이게 더 힘든 거 같아.”
그러자 며칠이나 그녀의 뻘짓을 실시간으로 관람하느라 질린 그녀의 친구, 상수가 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취업이 더 어려울걸? 너 문과잖아. 애초에 문예창작과가 취업을 논하는 게 우습긴 하다. 취업할 생각이었으면 거길 가면 안 됐지.”
“닥쳐어… 그래서 지금 취업 중이잖아. 돈은 여기서 벌 거라고오.”
나름의 장래 계획을 중얼대며 푹 숙이는 테레사.
그런 그녀를 또 한 명의 친구 소소가 타박했다.
“파티원을 구하려면 일단 너희 둘 무기부터 숨겨야 할 거 같지 않아? 탱커만 필요한 사냥터 앞에서 쓸데없이 큰 망치랑 장검을 떡하니 내놓고 파티원을 구하겠다니. 내가 게임은 잘 몰라도 이건 알겠네. 그런 지능으로는 어디서든 돈 못 벌 거라는 거.”
조곤조곤 팩트로 후드려 패는 12년지기 친구 김소소를 보며 테레사는 울컥했다.
“의대생에다 부잣집 딸내미인 넌 날 이해 못 해! 난 이거라도 해야 먹고 산다고!”
“의대 자퇴하고 백수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얘기야? 뭐, 그거랑 별개로 네가 이해가 안 되긴 해. 어차피 안 될 걸 왜 며칠씩 시간을 낭비하는 건지. 그냥 다른 데 가. 아무리 네가 힘만 센 나사 빠진 전사라고 해도 난 너 안 버릴게.”
“…그거참 고맙네. 귀하디귀한 힐러님이 버리지 않으셔서 제가 먹고삽니다. 네, 네.”
사실 테레사도 다른 사냥터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놈의 무기 제작 퀘스트만 아니면 며칠씩이나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여기서 이러고 있는 시간에 돈 벌어서 다른 무기를 사는 게 나았을지도…….’
고점에서 물린 개미 투자자의 심정으로 우울한 표정을 짓는 테레사.
소소는 그런 그녀의 입에 작게 뗀 빵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래도 취업 걱정은 하지 마. 정 안 되면 우리 엄마 회사 다니면 된다니까?”
“나는? 나도 넣어주라. 난 진짜 노예처럼 일할 자신 있는데.”
“미안. 우리 엄마가 낙하산을 싫어하셔서.”
“야! 쟤도 낙하산이잖아!”
“난 우리 엄마 딸. 레사는 내 친구. 근데 넌 레사 친구지 내 친구는 아니잖아.”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진 인연이 하는 막말에 상수가 상처받은 얼굴을 할 때였다.
탁탁.
테레사가 나머지 둘을 양손으로 빠르게 두드렸다.
“야, 야. 조용, 조용. 저기 마법사 하나 들어왔다. 다른 파티에서 말 건 거 다 거절했어.”
오랜만에 등장한 임자 없는 물고기에 테레사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내, 내가 한번 잘 말해 볼게. 오늘은 진짜 사냥해 보는 거야. 둘 다 고수 같은 표정 짓고 있어.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해. 알겠지?”
오랜만에 온 기회에 흥분하여 말까지 더듬는 테레사를 보며 소소는 시큰둥하게 턱을 괴고는 상수에게 말했다.
“어차피 또 실패할 거 같지?”
“어. 다른 파티 제안도 거절했는데 우리 파티에 들어올 리가 있겠냐?”
둘 다 닥쳐. 으르렁거린 테레사는 심호흡을 하며 먹잇감, 아니 마법사를 향해 다가갔다.
“이번엔 나도 다 생각이 있거든요?”
나름대로 세운 계획을 떠올리면서.
* * *
“후우.”
도진은 짜증 섞인 한숨을 뱉었다.
회귀 후 한 번도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계획이 어그러졌다.
30레벨 중후반 구간 최고 효율 사냥터인 <폐쇄된 철광석 광산>에 온 것까지는 좋다.
거래소에서 새로운 스킬도 배웠고, 소모품도 넘치도록 챙겼고, 사냥에 나서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다 갖췄으니 이제 사냥만 시작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금 여기가 탱커랑 힐러 밭이라는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파티 조합을 위해 필요한 물리 공격 딜러가 하나도 안 보인다.
하기야 철광석 골렘이 높은 물리 방어력과 버그 수준으로 낮은 마법 방어력을 지니고 있다는 정보가 공공연히 퍼져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 물리 대미지를 주력으로 삼는 클래스가 이 근처를 기웃거릴 이유는 없는 게 맞다.
어차피 와 봐야 파티에 끼워 줄 리도 없고, 혹시라도 파티를 구한다 해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예 없는 수준이니까.
나중에야 탱, 힐, 마딜 조합이 비주류로 전락하고, 도진이 구상하고 있는 물딜을 주축으로 한 조합이 대세가 된다지만… 그건 미래의 일.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도 필요한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서울 한복판에서 고라니를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는데.’
낙담하며, 도진은 손을 들어 올렸다.
점원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벌써 몇 군데나 근처 여관과 식당을 돌며 살피느라 피곤하고 배고프고 목이 말랐다.
뭐라도 먹어야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와중에도 점원은 도진의 부름을 잘도 캐치하고는 쪼르르 달려왔다.
“네, 손님! 식사, 음료, 술. 뭐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엇으로 드릴까요?”
도진이 대충 식사를 주문하려 할 때였다.
“시원한 맥주 한 잔.”
누군가가 대신 주문을 하며 팅 하고 동전 하나를 튕겼다.
어설프게 튕겼음에도 점원은 귀신같이 동전을 잡아챘다.
“시원한 맥주! 주문 받았습니다!”
점원은 다시 쪼르르 주방을 향해 달려갔다.
털썩.
대신 도진 앞에는 웬 여자가 하나 앉았다.
양해를 구하는 과정도 없이 멋대로 합석한 상대를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뭐 하는 새끼지? 하고.
어설프게 폼을 잡고 앉은 상대는 물만두를 닮아 있었다.
도진이 곱지 않은 눈빛으로 쏘아보자 움찔한다.
그런데 분명 움찔대 놓고는 애써 그런 기색을 감추더니 여유를 가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 근처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참인가?”
무슨 콘셉트지?
도진은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리제니안인 걸 숨기고 토종 로스타니아인 흉내를 내면서 역할놀이에 심취하는 부류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건 뭐 적당히 어설퍼야지.’
LOST에서는 외모를 수정할 수 있는 폭이 크지 않다.
저 얼굴이면 어리고 어리게, 최대한 뜯어고쳤다고 생각해도 20대 중반을 넘기 힘들 터.
겉으로 보면 그냥 갓 스물쯤 된 여자다.
앳된 물만두처럼 생긴 게 베테랑 모험가 흉내를 내니, 웃어 주기도 민망했다.
지금도 애써 웃는 입꼬리는 바들바들 떨리고, 여유 있는 척하는 눈은 연신 눈치를 살피는 게 뻔히 보였다.
평소 같으면 우스워서라도 장단을 맞춰 주며 놀아 줬겠지만… 애석하게도 도진은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아니지. 역할놀이에 취한 거면 어떻게 반응하든 알아서 장단을 맞추려나? 생각하며, 도진은 웃음기 없이 말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그쪽 역할극에 어울려 줄 기분이 아니야. 용건이 있어서 왔으면 용건이나 빨리 말해.”
웃음기 없이 말하는 도진에게서는 날카로움과 차가움이 풀풀 풍겼다.
“요, 용건은 무슨. 여기는 처음인 것처럼 보여서 조언이나 좀 할까 하고 온 거지.”
“난 괜히 말 빙빙 돌리는 거 싫어해. 용건이 있으면 말하고, 혹시나 정말 주제넘는 충고나 해 볼까 하고 앉은 거면 저기 점원이 들고 오는 맥주 들고 사라져. 난 술은 안 마시거든.”
상상 이상으로 냉정한 반응에, 애송이 물만두 테레사의 동공에 지진이 났다.
사실 그녀가 되도 않는 콘셉트를 잡고 연기를 했던 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벌인 일이었다.
지금까지 저자세로 굽실거리는 족족 퇴짜를 맞았던지라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던 건 아닌가 싶어 당당한 모습을 연기하려 한 것이다.
다만 그 당당함을 꾸며 내기 위해 참고한 인물이 요즘 읽는 웹툰 속에서 주인공에게 접근했던 베테랑 용병 아저씨라는 게 문제였다.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고른 것도 모자라 어설픈 연기로 첫인상을 완전히 뭉개 버린 테레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시원한 맥주 대령이오!”
점원의 경쾌한 목소리 사이로 테레사는 도진의 눈빛이 자신을 찌르는 것을 느꼈다.
도진은 그냥 테레사가 말을 하길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잔뜩 쫄아 버린 테레사의 눈에 도진의 날카로운 눈매는 마치 ‘뭐해? 안 꺼지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결국 기가 죽을 대로 죽어 버린 그녀는 입술만 몇 번 달싹이다, 어설픈 연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했습니다.”
나름 몰입했던 제2의 인격을 벗어던지니 뒤늦게 후회와 창피함이 몰려온다.
이 촌극을 벌여 놓고서 ‘저기 혹시 저희랑 파티 해 주시지 않으실래요? 그런데 저희는 폐급 딜러 두 명이 있답니다. 아, 탱커는 없고요.’ 하는 말을 할 용기가 테레사에게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힘 빠진 목소리로 사과하고는 도망치듯 일어나 터덜터덜 친구들이 있는 방향으로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역할극에 취한 물만두가 무슨 말을 할지,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있던 도진으로서는 김빠지는 전개였다.
‘너무 매몰찼나? 이러면 다른 일로 난 짜증을 저쪽에 푼 게 되잖아. 뭐 먼저 선을 넘은 건 저쪽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컨셉질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면 이 정도는 받아쳐야 하는 거 아냐?
생각하며, 도진은 찌그러진 물만두를 바라봤다.
그리고 발견했다.
그녀가 걸어가는 방향에 놓인 커다란 전투망치를.
저런 걸 들고 탱킹을 하겠다는 놈은 거의 없다.
있어도 그건 그냥 미친놈이다.
저건 누가 뭐라 해도 공격만을 위한 무기다.
그리고 어린아이만 한 망치가 놓인 자리 앞에 앉은 남자의 등에 메인 긴 장검.
저건 전사보다는 검사들이 선호하는 종류의 무기였다.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이 동네 한정 천연기념물 두 마리가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굴러들어온 호박을 잔뜩 으깨서 쫓아냈다니!
도진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자책했다.
그리고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바로 행동에 나섰다.
“잠깐.”
물만두를 불렀다.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듣고도 모른 척을 하는 건지. 물만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도진은 포기할 수는 없다.
구식 조합으로 사냥을 하면 사냥 효율이 반 토막 이상으로 나빠질 테니.
자리에서 일어난 도진은 걸어가는 상대의 어깨를 붙잡았다.
놀란 테레사가 눈을 크게 뜨며 돌아본다.
“왜, 왜 그러세요? 제가 뭐 더 실수한 거라도 있나요……?”
잔뜩 쫄아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테레사는 테이블에 놓인 맥주를 발견했다.
“아……! 죄송합니다. 술 안 드신다고 하셨죠. 지, 지금 치워 드릴게요.”
허둥지둥하는 그녀를 도진이 만류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괜히 짜증을 낸 거 같아서 사과하려는 거예요. 별일도 아니었는데…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예민하게 굴었습니다.”
갑작스런 도진의 태도 변화에 테레사는 적응하지 못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손가락을 대면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만 느껴졌는데.
“할 말 있어서 온 거였잖아요. 어설픈 연기 안 해도 되니까 말해 봐요. 그쪽이 시켜 놓은 맥주는 직접 마시고. 버리면 아깝잖아요.”
도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화를 내다가 이렇게 사과하는 것이 멋쩍다는 듯이.
“그, 그래도 될까요? 그렇게 엄청 중요한 건 아니긴 한데…….”
방금 전과는 온도차가 명확한 웃음에 순진한 테레사는 넘어가고 말았다.
‘어떻게 찾은 딜런데 죽어도 그냥 못 보내지. 너랑 저놈은 당분간 내 딜 노예다.’
서글서글한 미소 뒤에 악마의 웃음이 걸려 있는 것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