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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2화 (2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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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순식간에 굴락 앤트들에게 점령당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아슬아슬하게 마을 사람들이 숨는 데는 성공했다는 것.

그리고 거센 비와 자욱하게 내려앉은 비안개 덕에 개미들의 감각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쉴 시간이 생기니까 더 나은 거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 울타리에 기대어 몸을 숨긴 도진은 충분히 생명력과 마나가 회복되길 기다렸다.

그런 도진 앞에는 죽은 굴락 앤트 시체 세 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숨어 있는 먹잇감을 찾기 위해 조를 이루어 순찰하던 놈들을 조용히 처리한 것이었다.

도진은 검을 쥐지 않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해 봤다.

추위로 인한 신체 능력 저하를 체크하는 것이다.

LOST는 현실의 거의 모든 부분을 재현하는 만큼 이런 부분도 전투에 앞서 철저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체력 스탯이 높아서 그런지 오한이나 탈진으로 인한 신체 능력의 변화는 없었다.

처벅, 처벅, 처벅.

비에 젖어 진창이 된 땅바닥을 헤집는 소리.

‘벌써 다른 놈들이 오는 건가? 아, 이것들 냄새를 맡고 오는 걸지도 모르겠네.’

사람 냄새로 가득한 곳에서 집 지하에 파놓은 굴속으로 숨은 인간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죽은 동족의 체액 냄새는 특정하기 쉬웠겠지.

자신이 처리한 시체를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었다.

도진은 조용히 마법을 준비했다.

앞선 3마리를 처치한 것과 동일한, 얼음 화살을.

따닥, 따닥.

그때쯤 비안개 너머에서 턱관절이 사납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놈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더욱 급박해진다.

가시거리 안으로 달려드는 놈들의 모습은 마치 장막을 뚫고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푸부북.

그와 동시에 도진이 날린 얼음 화살들이 놈들의 머리에 꽂혔고, 그대로 몸통을 관통하며 등 쪽으로 빠져나갔다.

촤아악.

즉사한 개미들은 돌진하던 기세 그대로 바닥을 쓸며 미끄러졌다.

높은 마법 공격력과 완벽한 조준의 하모니였다.

‘이제 충분히 회복된 거 같으니까 움직여야겠어.’

미리 죽은 개미들의 시체 위로 시체 세 구를 추가해 준 도진은 자리를 벗어났다.

거센 빗줄기와 더불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비안개, 거기다 여전한 어둠까지.

가시거리가 5미터가 채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도진은 자신이 마을 어디쯤에 있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암시」를 활용하기에는 공격 마법에 쓸 마나도 부족한 상황이고.

그래도 환경은 나빠졌어도 전투 자체는 훨씬 더 쉬워졌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개미보다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놈들이 상대하기 쉬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진은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굴락 앤트들을 차례차례 처리했다.

그렇게 한참 빗속을 누비며 개미들을 처치할 때였다.

어디선가 희미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소피!’

도진의 고개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틀어졌다.

거센 비를 뚫고 닿은 겁에 질린 비명소리는 소피의 목소리였다.

콰작.

이어 들리는 무언가 부서지거나 무너지는 소리.

도진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렸다.

“비켜!”

담벼락 사이에서 튀어나온 개미들의 목이 순식간에 공중을 날았다.

미리 완성시켜 장전하고 있다가, 튀어나온 적의 연결 부위를 정확하게 노린 「바람 칼날」의 위력이다.

잘린 개미들의 목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도진이 그곳을 지나쳤다.

“젠장……!”

소리가 들린 집은 이미 개미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집 외벽은 이미 처참히 부서졌고, 개미들은 집 지하를 거칠게 파헤치고 있었다.

분노한 도진의 검극에 바람의 마나가 맺혔다.

연속으로 쏘아지는 바람의 칼날들이 소피의 집에 모여 있던 개미들을 사정없이 베어 냈다.

놈들은 키이- 키이- 하는 소리를 냈지만, 그래 봐야 먼저 죽은 놈들을 따라갈 운명이었다.

순식간에 소피의 집을 둘러싸고 있던 놈들을 처치한 도진은 땅굴이 있을 법한 자리에 쓰러져 있는 개미의 시체를 염동력으로 치웠다.

살아 있을 때야 생물이 지닌 고유의 마력장과 그로 인한 마법 저항력으로 인해 「염동」이 와해되지만, 죽으면 그냥 고깃덩이일 뿐.

시체는 힘없이 들려 내동댕이쳐졌다.

‘이미 들어갔어……!’

도진의 표정이 무너졌다.

이미 굴을 더욱 크게 파헤쳐서 비집고 들어간 흔적이 보여서였다.

“흐흑……!”

그때 안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소피?”

대답이 없다.

그래도 울음소리는 계속 흘러나온다.

일단 살아 있다는 소리였다.

소피의 생존을 확인한 도진은 굴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유사시 대피하기 위해 열심히 파 놓은 굴은 ㄴ자 모양으로, 아래로 내려가니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그 굴 끝에 손에 단검을 쥔 채 덜덜 떨고 있는 소피와, 그런 소피 옆에 쓰러져 있는 하놀즈와 제니가 있었다.

그리고 죽어 있는 굴락 앤트의 시체도.

“오, 오빠……!”

새파랗게 질린 채로 울고 있던 소피는 도진을 보자마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제 부모님들 쳐다봤지만, 입을 달싹이기만 할 뿐 무어라 말을 못 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아빠와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진 엄마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괜찮아. 다 괜찮아.”

도진은 급히 다가가 소피의 앞을 가로막았다.

혹시라도 두 사람이 죽었거나 죽어가는 중이라면,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도진은 이런 순간이 가장 싫었다.

살아남은 아이 앞에서 부모의 생존을 확인해야 하는, 이런 상황이.

“으윽……!”

하아. 도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구리가 벌어져 피를 흘리고 있던 제니가 밭은 숨을 뱉은 것이다.

살아 있다면, 이 정도 상처는 힐링 포션으로 살릴 수 있었다.

도진은 힐링 포션을 꺼내 제니의 상처에 뿌렸다.

다만 먹이는 건 조금 있다가. 당장 급한 건 하놀즈의 생존 확인이다.

‘다행이다. 맥박은 뛰고 있어.’

너무 긴장한 탓일까.

둘 모두 살아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눈앞이 핑 돌았다.

어쩌면 마나를 너무 많이 써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하놀즈와 제니 모두 살아 있었다.

“어, 엄마랑 아빠 괜찮아요?”

작은 손이 로브 자락을 건드렸다.

조심스러운 손길은 겁에 질려 있었다.

도진은 반쯤 남은 포션을 바닥에 두고, 새로운 포션 한 병을 꺼내 소피의 손에 쥐여 주었다.

“엄마랑 아빠 둘 다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엄마랑 아빠 지켜 주고 있을래? 여기 이거 두 분한테 먹여 드리고.”

“오빠는요?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러다 다치면요? 그냥 저랑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울먹이며 묻는 말에 도진은 소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다른 사람들도 구해야지. 대신 여기는 개미들이 얼씬도 못 하게 해 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소피는 대답도 못 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울었다.

“걱정 마.”

말하며 도진은 몸을 일으켰다.

그래 봐야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있어야 할 만큼 높이가 낮았지만.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던 도진의 시선이 쓰러져 죽어 있는 굴락 앤트 시체에 꽂혔다.

머리가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진 단면.

지나치게 깔끔하다.

절대 약초꾼이 베어 낸 흔적이 아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칼을 들고 있던 건 소피였잖아.

도진이 소피를 돌아봤다.

어느새 단검은 내려놓고, 도진이 준 포션을 조심조심 엄마와 아빠에게 먹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설마…….’

도진은 재빨리 세 가족의 손을 살폈다.

처음에는 당연히 하놀즈가 싸우다가 개미를 죽이고, 기절을 한 줄 알았는데.

‘체액이 안 묻어 있어.’

하놀즈의 손은 깨끗했다.

손과 소매 그리고 팔뚝이 개미의 체액으로 더러워져 있는 건 다름 아닌 소피였다.

[퀘스트 내용 변경!]

굴락 마을의 소녀

등급: 운명

[오늘 밤 한 인간의 추악한 탐욕으로 인해 하나의 마을이 지워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지워질 위기에 놓인 마을에는 아직 피어 보지 못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를 불행으로부터 구해 주십시오.

로스타니아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목표: 소피의 불행 막기

보상: 경험치, 골드, 인연

그것을 도진이 깨달은 순간 퀘스트 내용이 수정됐다.

이번 퀘스트에서 반드시 살려야 하는 사람은, 저 소녀였던 것이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도진은 눈앞에 뜬 퀘스트 창을 치웠다.

거센 폭우에도 불구하고 개미들이 이 굴 앞에 모여들었다는 건 다른 사람들도 위험하다는 의미.

살려야만 하는 사람을 알아냈다 하여 살려야 할 사람이 소피 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금방 올게.”

자신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아이에게 웃어 보인 도진은 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대지의 창을 응용해 굴 입구를 막아 버렸다.

그러자마자 다른 비명이 울린다.

“쉴 시간을 안 주는구나.”

거센 비를 뚫고 개미들을 죽이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했다.

그러는 사이 도진은 자신의 마법적 역량이 부쩍 성장한 것을 체감했다.

하긴. 이렇게 미친 듯이 마법을 난사하는데 성장 안 할 수가 있나.

도진의 마법은 전부가 도진 본인. 즉, 진리의 서에 기록된 것을 꺼내어 구현하는 방식.

마법을 쓰다 보면 기록 장치인 진리의 서가 성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다시 기록 장치의 성능이 좋아졌으니 기록물을 선명히 담고 또 구현할 수 있게 되는 완벽한 선순환.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시전 속도를 얻기 위해 새로운 마법을 배웠다 하면 사흘 밤낮을 같은 마법만 써 대며 숙련작을 하는 다른 마법사들이 들으면 거품을 물 만한 특혜라고 할 수 있었다.

‘잠깐. 방금 마나 파장이-’

직업 만족도 최상을 달리는 사색을 하던 도진의 발이 멈췄다.

이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 느꼈던 마나 파장이 다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향은…….

‘저기다.’

몇몇 개미들이 몰려들어 있는 건물.

도진은 몰려 있는 개미들을 처치하고 파장이 느껴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흩어진 감자와 밀알들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식량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

마나 파장의 근원은 잔뜩 쌓여 있는 밀이 담긴 포대 안쪽이었다.

“설마 이게 있을 줄이야.”

발견된 것은 구체 모양의 금속에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에는 마석이 박혀 있는 마법 장치로, 몬스터를 유인할 때 쓰는 ‘유인의 법구’였다.

끌어들일 수 있는 몬스터의 레벨도 낮고 종류도 한정적인 데다 몇 번 쓰면 다시 쓸 수 없게 되는, 가성비가 바닥을 치는 물건이다.

‘사용 방법도 더럽게 불편하기로 유명했었지.’

유인의 법구는 구체 모양의 본체와 발동 장치 2개의 세트로 이루어진 마도구로, 본체가 마나 파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발동 장치를 지닌 술자가 일정 거리 안에 있어야 한다.

즉, 멀지 않은 곳에 범인이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도진은 정신을 집중했다.

「진리의 서」도 발동했다.

조금이라도 마나 감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추적할 수 있겠어.’

그러자 단순히 퍼지는 것으로만 느껴졌던 마나 파장이 사실은 두 방향으로 갈라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개미들이 넘어온 협곡을 직선으로 가르는 것은 당연히 개미들을 부르기 위한 파장이고.

조금 옆으로 틀어진 북서쪽을 향하는 선이 이어지는 쪽은.

‘이 짓거리를 꾸민 새끼가 있는 곳이겠지.’

찬연히 빛나던 황금의 책이 증발했다.

다시 어두워진 사위에서 수많은 발소리가 다가왔다.

마을에 흩어져 있던 굴락 앤트들이 장치에 이끌려 다가오는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

“그래, 다들 잘 따라와라. 너희 얼굴 보고 싶어 안달 난 새끼가 있는 거 같으니까.”

서늘하게 읊조린 도진은 마나의 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렸다.

거치적거리는 커다란 벌레들을 도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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