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시살라를 보내고, 도진은 모험가 길드에 들러 코볼트 토벌 보상을 수령했다.
얻은 전리품은 싹 다 모험가 길드에 넘겼다.
이런 식으로 모험가 길드에 판매를 위탁하면 수수료 명목으로 20퍼센트 정도가 증발하게 되지만, 그래 봐야 코볼트 사냥에서 얻은 전리품들이다.
얼마 안 되는 금액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이런 식으로 넘겨 버리고 빠르게 돈을 받는 게 오히려 이득이었다.
모험가 길드에 이득을 안겨 주는 만큼 모험가로서의 기여도가 쌓이는 부수적인 이득도 있고.
“여기, F급 토벌 지정 개체 코볼트 처치 보상금 57골드 그리고 판매를 위탁하신 물품에 대한 대금 62골드입니다.”
“감사합니다.”
도합 100골드가 조금 넘는 적은 돈이지만, LOST를 시작한 지 이틀째인 초보자가 번 돈이라고 생각하면 과하게 많은 돈이었다.
레벨도 훌쩍 성장하여 17레벨까지 올랐다.
원래라면 3인에서 5인 파티로 사냥했어야 할 장소에서 혼자 날뛰면서 보상을 독식한 덕이었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긴 해도 필요한 건 다 살 수 있겠어.’
그렇게 돈과 경험치를 챙긴 도진은 제론 시내를 바삐 돌아다녔다.
마법 상점에서 마법사용 무기를 구매하고, 마법사용 연초를 보충했다.
여기에 대략 30골드를 지출했다.
다음은 물약 상점에서 비상용 마나 포션 2병, 힐링 포션 5병을 샀다.
둘 다 F급인데도 마나 포션은 무려 10골드였고, 힐링 포션은 그나마 양심적이어서 5골드였다.
‘괜히 마나 쓰는 클래스가 초반에 말라 죽는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
LOST에서 물약은 꽤나 귀하고 비싼 물건이다.
그래서 비상용으로 취급하지, 포션을 물 마시듯 마시면서 사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차피 그래 봐야 물약 중독 때문에 제대로 효과가 나오지 않기도 하고.
어쨌든 무기, 연초, 포션에 도합 75골드를 지출하고 남은 돈은 30골드가 안 됐다.
허기를 달랠 식료품이면 몰라도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무언가를 사기엔 적은 돈이었다.
하물며 도진이 생각하고 있는, 이번 히든 던전 공략에 필수적인 준비물을 사기에는 터무니없는 푼돈이었다.
하나 걱정은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임플란트를 해 줄 사람을 찾으면 되지.’
도진은 남은 돈의 절반을 시약 제조에 쓰는 유리병을 150병을 샀다.
그리고 광장 분수에서 그 유리병 전부에 물을 채웠다.
‘이제 적당한 호구 하나 찾으면 되겠군.’
그런 뒤 도진은 광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폈다.
마치 도를 전파하기 적합한 사냥감을 물색하는 한 마리의 사이비처럼 신중하게 지나다니는 유저들을 살피던 도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저거다.’
막 사냥을 끝마치고 온 듯 터덜터덜 지친 걸음을 내딛는, 아주 착하게 생긴 사제 유저를 발견해서였다.
힐러 클래스를 찾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적합한 쓰임새를 가진 사제라니.
그것도 상점에서 파는 제한 레벨 41짜리 지팡이를 착용한 걸 보면 레벨도 적당했다.
도진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제 유저에게 달려갔다.
“사제님!”
갑작스런 부름에 약간 놀랐는지 작은 키의 여사제는 어깨를 조금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네?”
그러더니, 도진을 보고는 몸을 완전히 돌렸다.
약간 입꼬리가 움찔거리고, 눈매는 약간 웃는 눈이 됐다.
본인 기준에 호감이 가는 외모를 접했을 때 보이는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도진은 그런 반응을 좀 더 끌어내기 위해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지금 많이 바쁘신가요?”
이 말에 여사제는 이렇게 답했어야 했다.
‘존나게 바빠요’라고.
설사 그렇지 못했어도 최소한 대화를 길게 해서는 안 됐다.
그런 실수만 저지르지 않았다면 겨우 10골드를 받고 장장 1시간에 걸쳐 150병의 물을 성수로 바꾸는 성수 찍는 기계가 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
* * *
길 가던 선량한 사제의 고혈을 짜내어 만든 성수 150병을 끝으로 공략 준비를 마친 도진은 시살라와 합류해 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이 위치한 곳까지는 크고 작은 마을만 5개를 지나쳐야 했는데, 도보로는 이틀을 꼬박 이동해도 도착할 수 없는 거리였다.
해서, 도진과 시살라는 마법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빠른 속도와 승차감을 자랑하는, 정원 50명짜리 커다란 상자가 지상에서 1미터 부유하여 이동하기를 1시간.
[다음 역은 다누미네 계곡 역, 다누미네 계곡 역입니다. 하차하실 때에는 두고 가시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 후에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목적한 역에 도착했다.
척박함으로 유명한 다누미네 계곡이 목적지인 사람은 도진과 시살라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에 내릴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황량하네요.”
열차가 떠나고, 바람에 나부끼는 로브 자락을 추스른 시살라가 뱉은 첫 감상이었다.
“그런 만큼 남에게 숨기고 싶은 연구를 할 마법사가 숨기엔 딱 적당한 곳이죠.”
“음, 악마에 관한 연구가 그렇게까지 숨겨야 하는 연구인가요? 환영 받을 만한 건 아니어도 딱히 금지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진은 시살라의 순진한 소리에 픽 웃었다.
“확실히 악마에 관한 연구 자체는 금기가 아니긴 하죠.”
그 말을 끝으로 도진은 별말 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지형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이쪽인 거 같네요.”
그런 뒤 눈에 익은 바위를 찾자마자 움직였다.
“가, 같이 가요!”
시살라는 헐레벌떡 도진 뒤를 따라갔다.
“얼마나 가야 해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도진은 빠른 걸음으로 계곡 깊숙이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간 말없이 걷고 있을 때였다.
“어? 저기 동굴이 있어요.”
시살라가 한 곳을 가리키며 도진의 어깨를 톡 하고 건드렸다.
“우리가 갈 곳은 저쪽이 아니에요.”
하나 도진은 동굴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신 동굴의 반대편.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계곡 벽에 ‘마력이 깃든 의문의 청동 조각’을 가져다 대고 걷기 시작했다.
가가각 하고 듣기 싫은 소리가 한참을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웅.
한 지점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덤으로 마법사라면 놓치기 힘든 규칙적인 마나 파장 또한 일어났다.
자연에 분포하는 순수한 마나가 아니라 마법에 깃든 힘이 내는 파장이었다.
“여기군요.”
“네.”
“그게 열쇠고요.”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낮게 경고했다.
“꽤 위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인이 죽고 방치된 공방이니까요.”
“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시살라는 마법사용 단검을 들어 올려 보이며 답했고, 도진은 청동 조각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복잡한 선과 문양이 청동 조각 표면에 떠오르며 특정한 마나 패턴을 발산한다.
그그긍.
그에 반응하여 서 있는 장소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땅이 갈라지며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벽이 열릴 거라 짐작하고 벽만 노려보던 시살라는 황망한 눈으로 멀리서 나타난 계단을 바라봤다.
“…여기가 열릴 줄 알았는데 입구는 다른 곳이었네요.”
“열쇠를 사용해야 하는 잠금장치랑 문을 분리한 겁니다. 혹시라도 입구가 있는 곳을 의심하거나 발견하더라도 마법적인 장치는 발견하기 어렵게. 상대적으로 발견되기 쉬운 물리적 입구가 들켜도 강제로 뜯어내려고 들면 공방이 무너지거나 완전히 소각되게끔 해 놓으면 적어도 다 털릴 일은 없을 테니까요.”
마탑에 갇혀 공부만 해 온 시살라는 감탄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감탄은 딱 거기까지였다.
“윽.”
그녀는 계단에 다가서자마자 느껴지는 짙은 악취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건 너무 심한데?’
도진 또한 전생에 겪었던 것보다 훨씬 지독한 냄새에 놀라 소매로 코를 가렸다.
‘역시 히든 던전은 다르다 이건가.’
하긴 전생에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최초 공략이 끝나 일반적인 인스턴스 던전이 된 이후였다.
악취나 기운의 강도가 차이 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예상했던 대로 방치되고 있는 동안 문제가 발생한 것 같네요. 정상적인 공방이라면 이런 악취가 날 리가 없을뿐더러… 악취만이 문제가 아닌 거 같으니까요.”
“확실히 그래요. 이 악취, 단순한 악취가 아니네요. 주변 마나 자체가 오염되고 부패돼서 나는 냄새예요.”
엘토마기아의 황색위 마법사답게 시살라는 빠르게 현상을 파악했다.
물론 도진은 이런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단서를 찾고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이미 다 알고, 또 준비까지 마치고 왔으니까.
“시살라.”
도진은 성수가 담긴 병을 던졌다.
“앗?”
그것을 받아든 시살라는 깜짝 놀랐다.
병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기운 때문이었다.
“이건… 성수잖아요?”
시살라의 물음에 도진은 제 몫의 성수를 삼키며 눈짓으로 답했다.
다음으로는 연초를 꺼내 불을 붙여 태우며 전투를 위한 도핑을 시작했다.
“마셔요. 조금은 도움이 될 테니까.”
“…엄청 철저하게 준비하셨네요. 전 마법이랑 관련된 것들만 챙겨 왔는데. 성수라니… 생각도 못 했어요.”
“그게 마법사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죠. 모든 걸 마법적인 사고로만 접근하고, 모든 걸 마법으로만 해결하려고 드는 거.”
“음… 부정할 수가 없네요. 저부터가 챙긴 게 전부 마법과 관련된 것뿐이라. 그래도 이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말하며, 시살라는 조심스레 마석 한 움큼을 꺼내 보였다.
‘저건?’
그것을 본 도진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이 단순한 마석이 아니라 인위적인 과부하를 발생시켜 폭발을 일으키게끔 가공된 마석 폭탄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아무리 싼 걸, 심지어 실패작 소리를 듣는 불량품을 사려고 해도 개당 100골드는 하는 엄청 비싼 물건이었다.
한마디로 아무리 싸구려라도 마석 폭탄 하나를 던지면 최소한 현금 10만 원이 허공에서 펑펑 터져 나간다는 소리다.
“그걸 다 산 거예요?”
놀라 묻자 시살라는 손사래를 쳤다.
“설마요. 이건 그냥… 개인 연구에 쓰라고 달마다 나오는 마석으로 제가 직접 만들어 본 거예요. 실패를 많이 했는데도 몇 달 모으니까 이 정도가 모이더라고요.”
시살라는 수제 쿠키라도 만든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마석 폭탄은 적어도 5성 마법사쯤은 돼야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충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폭발할 만큼의 충분한 ‘불안정성’과 충격을 받지 않으면 절대 터지지 않을 충분한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게 꽤 어려운 공정이기 때문이다.
[F급 마석 폭탄]
심지어 집어 들어 확인해 보니 시살라가 만든 마석 폭탄은 실패작도 아니었다.
엄연히 등급이 있는 제대로 붙어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역시 시살라 오멘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닌 시살라 오멘이라고 생각하면 납득이 가기도 한다.
그녀는 마법과 관련된 물건의 제작에 있어서만큼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니.
‘역시 오멘 코인은 무조건 타야 되는 코인이었어.’
이런 마법 아이템 제작의 신과 커넥션을 미리미리 쌓을 수 있다니.
역시 회귀는 신이고 인맥은 무적이다.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도진은 성수 30병을 꺼내 시살라에게 주었다.
“이, 이렇게 많이요?”
“안에 들어가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까요. 마시는 것 외에도 다른 용도로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혹시 모르니 마석 폭탄 절반은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물론 성수보다 훨씬, 매우, 엄청 비싼 마석 폭탄 절반을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료니까.
좋은 건 나눠 쓰는 게 당연한 거니까.
“아, 네.”
시살라가 성수 30병을 아공간 마법이 걸린 엘토마기아 제복 로브 안쪽에 넣는 걸 확인한 도진이 말했다.
“제가 뒤에서 진입하도록 하죠.”
선봉은 당연히 시살라였다.
저벅저벅.
디딜 때마다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훅, 훅, 흩어졌다 다시 뭉치는 계단을 한참 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히든 던전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을 발견하였습니다.]
[최초 발견 및 최초 입장 보상으로 지능이 5만큼 올랐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공기가 착 가라앉았다.
툭.
거의 동시에 앞서 걷던 시살라의 발치에 무언가가 걸렸다.
“히익!”
바라보니, 그건 죽은 지 오래되어 미이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어린아이의 시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시살라는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쳤으나.
퍼억.
도진은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염동」으로 시체를 계단 밑으로 날려 보냈다.
말라비틀어진 아이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리는 걸 보아서였다.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
이곳은 한 마법사의 실험에 희생된 자들의 망령과 그 망령에 이끌려 새롭게 태어난 악령들의 보금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