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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악!”
의식이 대충 돌아오던 비실이는 머리통이 타오르는 걸 자각하자마자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은 버둥거리는 비실이를 발로 차서 밀어 버렸다.
남은 셋은 도진의 폭거에 질려 말을 잃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호들갑을 떨어 댔다.
“힐! 일단 힐부터 해!”
“미친 새끼! 사람 얼굴에 불을 붙여?”
하마터면 도진은 박장대소를 할 뻔했다.
사람을 죽여서 아이템 뺏어 보려던 놈들이 하는 말이 고작 저거라니.
칼로 찔러 죽이든 태워 죽이든 그 차이가 도대체 뭐라고.
현실이면 잔인한 살해가 더 나쁜 짓이 되겠지만, 여긴 가상현실이다.
저렇게 얼굴에 불 질러 봐야 느껴지는 통증은 통상적인 설정값을 기준으로 기껏해야 저온 화상 정도.
얼굴이 불타오르고 숨 쉴 때마다 열기가 폐로 넘어가는 실감 나는 경험 탓에 PTSD를 겪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선빵 치려고 한 놈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병신, 엄살은.”
통증보다는 상황에 겁을 집어먹고 불붙은 얼굴을 긁어 대는 비실이를 꾸욱 밟고 넘어가며, 도진은 달려들려는 놈들 앞으로 기름을 흩뿌렸다.
얼굴이 불타오르는, 고스트 라이더 같은 몰골로 죽어가는 동료의 꼬락서니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놈들은 염산이라도 뿌려진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물러섰다.
‘병신들. 그냥 불탈 각오하고 달려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실시간으로 불타고 있는 병신의 친구들은 또 다른 병신이었다.
이것도 마법일지 모른다. 끼리끼리의 마법.
차갑게 조소한 도진은 이번에는 왼손에 박혀 있던 비실이의 단검을 뽑아 던졌다.
노린 것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회복 마법을 시전하던 힐러였다.
어차피 장착한 게 아니고 이런 식으로 노획한 장비는 기껏해야 철 조각을 던지는 수준이지만.
“우왁!”
현실보다 실감 나는 가상세계에서 그걸 다 감안해서 움직일 뉴비는 드물었다.
역시나 날아드는 날붙이를 본 힐러는 본능적으로 몸을 굴렸고, 시전되고 있던 치유 주문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사이 벌레처럼 꿈틀대던 인간 장작의 움직임이 멎었다.
슬쩍 바라본 비실이의 머리통은 뭉크의 그림 절규와 비슷한 몰골이었다.
약간의 차이라면 얼굴과 손이 새까맣게 타고, 눌어붙은 기름 찌꺼기 때문에 명화 속 인물보다 조금 더 흉측하다는 정도였다.
도진은 비실이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러고는 조용히 살아 있는 자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무감정한 눈에 질린 놈들이 한 걸음씩 물러난다.
“어쩌냐?”
뭘 어쩌냐는 거지? 셋이 동시에 품은 의문.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이제 너희한테는 희망이 없는 거 같은데.”
넷은 힘들어도, 셋은 문제없거든.
기세에 밀려 꼬리를 내린 늑대에게 승산이 있겠는가.
하물며 이것들은 늑대도 못 되는 들개 새끼들이다.
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것조차 짐승과 닮아 있는 못난 것들.
이번에 선공을 한 것은 겁먹은 짐승들이 아닌 도진이었다.
도진은 가장 먼저 남은 기름의 절반가량을 쏟아부어 만든 불의 폭포로 힐러를 덮어 죽였다.
그때가 돼서야 전사 둘이 불타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듯 달려들었으나 한참이나 늦은 결단이었다.
협공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동선으로 짓쳐드는 놈들에게 도진은 「빛」으로 섬광을 만들어 대응했다.
“헉!”
순간적으로 터진 섬광에 움츠러든 놈이 무엇을 하기도 전에, 물 흐르듯 연계되는 공격이 그를 춤추는 불덩이로 만들었다.
“으아아악!”
그때 불타는 동료의 뒤쪽에서 마지막 놈이 뛰쳐나왔다.
한 방만 노리며 기회를 엿본 듯 동귀어진이라도 할 기세였다.
힘도 속도도 전사인 상대가 우위에 있는 상황.
피하기엔 늦었다.
그리 생각한 순간 날붙이가 오른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푸확.
피가 크게 튀었다.
조금만 더 파고들었으면 가슴 한복판까지 내려오며 즉사했을 공격이었다.
마법사의 평균적인 방어력을 생각하면 그렇게 됐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 왜……?”
비슷한 레벨대의 마법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질긴 손맛에 의아해하는 눈빛.
도진은 친절히 답해 줬다.
“체력에 몰빵했거든.”
레벨업을 통해 생긴 보너스 포인트를 전부 체력에 몰빵한 도진은 방어력과 생명력(HP)이 동레벨 마법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았다.
한번 크게 찔리면 픽픽 쓰러지는 다른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단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고 한 방만 꽂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으니, 무지한 자의 패배는 필연이었다.
“혹시라도 어디서 마주치게 되면 알아서 피해 다니는 게 좋을 거야.”
가까이 붙어 있으니 기름에 불을 붙일 수는 없다.
그저 현재의 마법회로에 흘릴 수 있는 최대한의 마나를 밀어 넣고,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렬한 화력을 투사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체력만 올렸다고 하나 다른 경로로 얻은 지능의 총량은 체력과 엇비슷한 수준.
도진이 마음먹고 쓰는 마법의 위력이 약할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퍼엉.
적의 얼굴을 뒤덮은 손에서 폭발하듯 화염이 일어났고.
털썩.
마지막 들개 새끼가 바닥에 쓰러졌다.
죽은 적들 사이에서 도진은 연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화려하게 불타는 시체를 성냥 삼아 불을 붙였다.
순간적인 화력을 뿜어내느라 과열된 마법회로가 안정되어 간다.
“후우…….”
만족스레 연기를 뱉은 도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맛에 게임 하지.”
도진은 PVE만큼이나 PVP도 사랑하는 유저였다.
* * *
승리를 만끽하며 연초 하나를 태워 마법회로를 식힌 도진은 비실이와 일당들이 남긴 전리품을 확인했다.
중립 유저는 죽어도 확률적으로 아이템을 잃어버리지만, 살인(PK)을 저지른 혼돈 유저는 죽으면 확정적으로 아이템을 잃는다.
‘꽤 쓸만한 걸 들고 있었네?’
역시나 힐러가 죽은 자리를 살피니 반짝이는 반지가 눈에 띄었다.
장비하고 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유저들한테서 빼앗은 건지는 몰라도 마나 최대치를 올려주는 반지였다.
당장 가져다 팔아도 몇만 원은 건질 만한 쓸 만한 옵션이다.
‘새끼, 속 좀 쓰리겠는데.’
감히 자신을 습격하려 한 놈들의 불행에 고소해하며 다음 전리품을 확인하는 도진.
‘전사 두 놈은 별거 없군.’
전사 두 놈은 코볼트가 드롭 하는 평범한 장비 아이템만 떨어져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비실이 도적 하나였다.
“뭐야. 벌써 없어졌잖아?”
비실이의 시체는 시간이 지나 사라진 뒤였다.
그래도 놈이 남긴 아이템은 아직 시체가 있던 자리에 남아 있었다.
다만 모양을 보아하니 단순한 쇳조각이었다.
코볼트들이 여기저기서 주워 와서 모아 놓은 흔하디흔한 쇳조각 잡템.
혼돈 유저가 죽었는데 잡템만 떨궜다고?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거야, 뭐야?”
[마력 깃든 의문의 청동 조각]
…인 줄 알았으나 주워 보니 아니었다.
“…이게 여기서?”
도적 놈이 남긴 쇳조각의 정체는, 제론 주변의 몬스터가 아주아주 극악한 확률로 드롭하는 히든 던전의 입장권이었다.
* * *
쓰임새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기껏해야 조금 비싼 잡템처럼 보일 쇳조각.
하지만 도진은 이것이 히든 던전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의 결계를 해제하는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던전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던전의 위치도 알고 있고, 열쇠도 손에 넣었다.
이제 공략만 하면 따끈따끈한 보상을 남김없이 먹어치울 수 있다.
레벨도 쭉쭉 오를 것이고, 목표한 성장치를 달성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일반 인던으로 바뀐 다음에도 난이도가 꽤 어려웠는데… 히든 던전이면 혼자서는 힘들겠지?’
어려운 난이도와 그로 인해 필수불가결이 될 파티 플레이가 그것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당연히 문제가 된다.
기껏 얻은 히든 던전 공략의 기회를 누군가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도진은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 배가 아파 오는 것 같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불쾌해진 도진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이 좋은 걸 누구와도 나눠 먹지 않고 혼자서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을까를.
파티를 꾸리는 건 일단 무조건 최후순위다.
뒤통수를 맞을 위험도 높고, 보상을 나누기도 싫으니까.
NPC 용병을 고용하는 것도 보류다.
돈도 돈이지만, 하급 용병과 하급 모험가는 그야말로 할 거 없어서 칼을 든 양아치들이 대부분.
칼 맞을 확률은 오히려 그쪽이 더 높다.
그러면 결국 혼자서도 공략이 가능할 정도로 레벨을 올린 후에 공략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어쩔 수 없나. 적정 레벨을 넘어가서 공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파티원이랑 보상을 갈라 먹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당장 마음대로 부려 먹을 능력 좋은 노예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잠깐만. 노예……?
부질없는 바람을 중얼대던 도진의 표정이 묘해졌다.
생각하다 보니 있었던 것이다.
보상을 굳이 나눠 줄 필요도 없고, 뒤통수를 치거나 등에 칼 꽂을 가능성도 한없이 낮고, 지금 당장을 기준으로 둔다면 능력도 출중한 그런 노예가.
‘제국 마탑 황색위면 대충 어느 정도였더라?’
회귀한 후로 도진이 마주친 제국 마탑 엘토마기아의 마법사는 단 두 명.
엘토마기아의 정점 시온 그레이스와 말단까지는 아니어도 말단 비슷한 위치에 있는 시살라 오멘.
둘 중 황색위는 당연히 시살라였다.
즉, 도진이 떠올린 노예는 시살라였다.
당연하게도 노예 본인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도진은 그녀를 부려 먹을 자신이 있었고, 그러면 그게 곧 노예다.
부려 먹는 것은 확정되었고, 중요한 건 노예의 능력이었다.
‘황색위면 최소한 4성 마법사일 거고.’
4성 마법사, 그것도 엘토마기아에 소속된 마법사라면 유저로 치면 50레벨은 훌쩍 넘을 터.
도진은 속으로 박수를 쳤다.
평균 30레벨 수준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히든 던전을 손쉽게 클리어할 방법을 찾아낸 스스로에게 보내는 박수였다.
* * *
엘토마기아의 마법사는 위계가 낮을수록 바쁘다.
본인의 연구에만 몰두하며, 가끔 있는 마법계의 굵직한 행사만 신경 쓰면 되는 청색위 이상의 마법사들과 달리,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본인의 발전을 위한 수련과 공부는 기본.
거기에 더해 엘토마기아의 마법사로서 주어지는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만약 고위계 마법사의 조수 역할까지 맡게 되면 숨 쉬는 시간조차 없어질 정도다.
현대에 비교하자면 대학병원의 인턴 내지는 레지던트 같은 처지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으으… 이러다 정말 죽겠어…….”
이러한 사정은 광활한 복도를 비척비척 걷고 있는 시살라 오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니, 벌써 4년째 황색위에 머물며 승급을 못하고 있는 그녀는 다른 비슷한 위계의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상황이 안 좋았다.
반짝반짝 빛나던 재능은 상한선이 그어진 가짜였음이 밝혀졌고, 마법의 성취는 17살에 4성 마법사가 된 뒤로 쭉 답보 상태.
밑천을 드러낸 재능을 덮을 만큼 돈, 권력, 인맥과 연이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시살라는 평민에다 고아였다.
“으윽.”
우울한 생각이 피로를 부추긴 걸까.
참기 힘든 어지러움이 그녀를 덮쳤다.
비틀대던 그녀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짚었다.
“하아…….”
뱉는 한숨에 짙은 피로가 묻어나왔다.
벌써 며칠째 잠을 못 잔 지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그녀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잡무를 자처하여 떠안고 있었다.
원래라면 엘토마기아에 갓 입탑한 적색위 마법사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지만, 어떻게든 고위계 마법사의 눈에 들어 정식 조수가 되려면 이런 일이라도 해야 했다.
‘어렸을 땐 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차라리 아카데미에 곱게 남았다면 어땠을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는 습관적 후회를 떠올리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시살라를 불렀다.
“시살라 오멘?”
“…르네.”
복도 반대편에 차가운 표정을 한 르네 다시아가 보인다.
돈 많은 귀족가 여식답게 값비싸고 화려한 로브를 두른 르네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걸어왔다.
“시살라 오멘,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죠? 벌써 실험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 가잖아요. 비에고 님께서 정확한 시간에 실험을 시작 못 하시면 얼마나 화를 내는지 당신도 알지 않나요?”
한눈에 보아도 멀쩡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을 텐데도 르네는 거침없이 시살라를 힐난했다.
위계가 더 낮음에도 이러한 태도다.
하지만 시살라는 르네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
“최대한 빠르게 준비할게요. 아직 30분쯤 남았으니까 충분히 시간 안에 준비할 수 있어요.”
르네는 청색위 마법사 비에고의 정식 조수 중 한 명이고, 지금 언급되고 있는 실험 준비는 시살라가 그녀에게 사정하여 얻어 낸 잡무였기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해 놓는 게 좋을 거예요. 비에고 님이 정말 화나시면, 당신이 하고 있는 다른 잡무들마저 끊길 테니까. 명심하세요.”
찬바람을 쌩 휘날리며 사라지는 르네를 노려볼 시간조차 시살라에겐 사치였다.
촉박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시살라는 이를 악물고 움직였다.
얼마나 바삐 움직였는지 로브 안쪽이 땀으로 흥건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뒤. 시살라는 실험실 구석으로 향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비에고가 나타나면 한 번이라도 눈에 띄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정말 운이 좋으면 오늘 마법 실험에 참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살짝 품었다.
로브 안쪽의 땀이 식으며 일어나는 오한을 견디기를 몇 분. 비에고는 정확한 시간에 조수들을 우르르 몰고 나타났다.
“음.”
그는 깔끔하게 정돈된 실험실을 휙 둘러보았다.
그러다 구석에 엉거주춤 서 있는 시살라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불렀다.
“자네.”
“네, 네!”
잡무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지목된 시살라는 기대감을 품고 대답했다.
괜히 목소리를 떨어서 점수가 깎였으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하며.
“안 나가나? 실험을 시작해야 하는데 거슬리는군.”
그러나 돌아온 것은 차가운 축객령이었다.
킥, 하고 웃는 르네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울렸다.
“…죄송합니다.”
시살라는 겨우 고개를 숙여 보이고 도망치듯 복도로 나왔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바닥만 바라보던 시살라는 애써 밝게 중얼거렸다.
“…익숙해서 그런지 아프지도 않네.”
그리고 속으로 자신이 지닌 몇 안 되는 행복들을 주워섬겼다.
그나마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이라 다행이네.
방으로 돌아가면 3시간쯤은 푹 잘 수 있는 여유도 있고.
끼니를 한 번 포기하면 10분쯤은 늦잠을 자도 되지 않을까? 같은.
불행에 매몰되지 않고 버티기 위한 그녀만의 생존전략이었다.
위로 안 되는 억지 행복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기우며 걷다 보니 방 앞이었다.
그런데 막 방문을 열려고 할 때 손목의 통신 팔찌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제발 봐주라… 나 이번에도 못 자면 진짜 죽는단 말이야.”
급한 호출만은 아니어라. 간절히 바라며 팔찌를 확인하는 시살라.
발신자는 오늘 출장소 당번을 맡은 마법사였다.
[“시살라 님? 지금 어떤 분이 시살라 님을 찾고 있는데요. 이름이… 도진이라고. 리제니안입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바쁘고 비참한 현실에 치여 뒤로 밀려 있던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