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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얻은 클래스의 성장 기대치는 얼마나 될까.
적어도 평범한 마법사로서 성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도진은 확신했다.
그런 확신은 곧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앞으로 한 달. 한 달 안에 무조건 50레벨 이상 올린다.’
LOST가 오픈한 날부터 밥, 잠, 하다못해 똥오줌까지 줄여 가며 레벨업을 한 상위권 유저들이 레벨이 대충 50레벨 초중반대다.
아직 랭킹 시스템이 추가되지 않아 이 시점의 랭킹 1위를 정확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방송 등으로 노출된 최고 레벨 유저가 겨우 56이니, 레벨 50은 절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진은 정말 한 달 안에 50레벨을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15년 후면 몰라도 지금은 무조건 할 수 있어.’
15년 후에는 다른 사람들과 나눠서 먹어야 하거나 이미 먹혀 버린 꿀단지일지라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는 여기저기 널린 꿀단지를 혼자서 독차지할 수 있었다.
앞에 깔린 사냥터가 험지가 아니라 꿀로 도배된 그야말로 허니로드인데 그까짓 50레벨 못 할 게 뭔가.
‘앞으로 LOST에서 최초는 다 내가 해 먹는다.’
눈을 빛내며, 도진은 본격적인 사냥 준비에 나섰다.
* * *
관문 교관에게 받은 검을 아무렇지 않게 팔아넘긴 도진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사냥 준비를 했다.
그런 도진이 향한 곳은 제론 북쪽에 있는 <야생 코볼트 동굴>이었다.
야생 코볼트가 모여 사는 곳이야 널리고 널렸지만, 제론 북쪽의 코볼트 서식지는 조금 특별했다.
운 좋게 마나가 풍부한 동굴을 차지한 코볼트로 인해 최근 던전화된 곳으로, 모험가 길드에서 내건 지정 토벌 퀘스트까지 있는 사냥터였다.
이런 식으로 지정 토벌 퀘스트가 걸린 사냥감은 기본적인 보상에 더해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퀘스트]
이상하게 많은 코볼트들
등급: 일반(파티)
[초보 모험가들의 성장을 위해 박멸하지 않고 놔두었던 코볼트들이 최근 이상할 정도로 불어나 던전이 생겼다.
모험가 길드에서는 코볼트가 적정 개체수로 유지되길 원한다며 코볼트 사냥에 추가적인 보상을 내걸었다.]
목표: 최대한 많은 수의 코볼트 처치
보상: 코볼트 10마리당 추가 경험치 및 1골드
다만 퀘스트 창에 적혀 있듯 적정 레벨의 유저일 경우 파티 플레이가 필수적일 정도로 꽤 난이도가 있는 곳이다.
5인 파티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탱, 딜, 힐 하나씩 있는 균형 잡힌 3인 파티는 되어야 적자를 면하는 사냥이 가능했다.
하지만 동굴 입구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 도진은 당연하다는 듯 혼자였다.
‘원래 입구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해야 정상인 곳인데.’
15년 뒤와 현재의 풍경을 비교하며 태평하게 동굴 입구를 통과했다.
“크릉!”
그러기 무섭게 삶의 터전을 침범당한 코볼트들의 사나운 으르렁거림이 도진을 향해 다가왔다.
타닥타닥. 인간보다 작은 발이 바삐 바닥을 차는 소리는 덤이다.
접근하는 코볼트는 셋.
이렇다 할 무장도 없이 혼자 있는 마법사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하나 도진은 무기만 없다뿐이지 무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 정도 거리면 되겠지.’
무작정 달려오는 코볼트들이 적정 거리에 들어섰다 싶은 순간.
도진은 인벤토리 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는 동시에 염동력으로 날렸다.
푸확.
“케헥?”
기름 냄새가 확 퍼진다.
공중에서 풀어 헤쳐진 가죽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이 검고 진득한 기름이었던 탓.
기름은 날아가던 기세 그대로 코볼트들을 향해 방사됐다.
코볼트들은 생전 맡아 보지 못한 냄새에 당황해 멈칫했다.
그게 놈들의 마지막이었다.
딱.
도진이 손가락을 튕기면서 완성된 점화 술식이 불씨를 튀겼다.
화르륵.
“캬아아악!”
그것으로 충분했다.
무엇을 더 할 필요가 없다.
기름을 따라 번진 불길이 코볼트 셋을 덮쳤다.
놈들은 바닥을 뒹굴며 불을 꺼 보려 노력했지만, 끈적이는 기름에 붙은 불이 겨우 그 정도에 꺼질 리 없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횃불 셋은 마시는 열기에 폐가 익어 버렸는지 숨 새는 소리를 내며 죽었다.
“효과 확실하구만.”
코볼트 셋을 죽이는데 들어간 자원은 고작 「염동」과 「점화」를 최소한으로 발동하는데 들어간 약간의 마나와 기름 주머니 하나가 전부였다.
소모된 마나 총량을 비교하자면 1성 공격 마법 속성 화살 시리즈의 1/5도 안 되는 양이고, 기름 주머니는 같은 용량의 마나 포션과 비교하면 가격만 30배 이상 차이 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도진이 저지른 건 지독히 효율적인 살해 행위라 할 수 있었다.
‘이적에만 기대는 마법사만큼 약한 것도 드물지.’
마법사란 클래스는 단점이 많은 직업이다.
굵직한 마법 몇 번 쓰면 바닥나는 마나, 마법 스킬북과 마나 포션의 살인적인 가격, 굼뜬 데다 물렁한 몸까지.
초반에 더욱 도드라지는 이러한 단점들로 인해 마법사는 독보적으로 약한 직업이란 인식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마법에만 기대는 태도를 버리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단점이었다.
오히려 응용만 잘하면 특정 조건하에서는 타 직업보다 훨씬 효율적인 전투도 가능하고.
‘순수하게 마법이 빚은 이적에만 기댈 수 있는 것은 진짜 마법사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이 말을 한 뮤이 본드레이 본인은 마법의 순수성을 훼손한 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진짜 마법사가 아니다’라는 경멸의 의미로 한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조건을 스스로의 마법 아래에 둘 수 있는 ‘진짜 마법사’가 되기 전까지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걸 활용해야 했다.
“벌써 다음 놈들이 오나 보네.”
사색의 끝은 짐승의 향이었다.
오래 씻지 않은 개에게서 날법한 누린내.
이어지는 소리들.
코볼트로 넘쳐나는 동굴다웠다.
입구에서 기다리기만 해도 계속해서 몰려나오겠지.
하지만 도진은 이곳에서 더욱 깊이 들어갈 생각이었다.
안쪽으로 갈수록 몬스터의 레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름에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전투를 하면 가장 깊은 곳에 사는 놈들도 손쉽게 정리가 가능할 터.
굳이 입구 쪽에서 레벨 낮은 놈들과 실랑이를 벌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겨우 레벨 1, 2 차이이긴 해도 그것도 쌓이면 보상의 격차가 꽤 벌어지는 법이었다.
“커어엉!”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비슷한 울음소리가 울리고서 잠시.
남은 것은 검게 탄 시체들과 저벅저벅 움직이는 도진의 걸음뿐이었다.
* * *
과할 정도로 인벤토리를 채운 탓에 준비한 기름은 흐르고 넘쳤다.
상점 주인이 미친놈 보듯 할 정도로 사들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많고 많은 기름은 훨씬 무거운 무게의 코볼트 피로 환원됐다.
잔뜩 죽이고 죽여 경험치와 전리품을 기름 대신 챙긴 도진은 계속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충분히 몬스터들의 레벨대가 높아졌다고 느껴질 때쯤 자리 잡기에 적당한 공터를 찾아냈다.
입구보다 레벨이 3쯤 높은, 깊은 곳의 코볼트들이 있는 곳.
슬슬 자리를 잡고 사냥을 할 때다.
“후우, 기름 냄새 때문에 돌겠네.”
겨우 찾아낸 공터를 정리하고 털썩 주저앉자마자 나오는 불평.
타 죽은 놈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질 기름과 코볼트가 뒤섞여 타는 냄새는 그 자체로 폭력이었다.
코는 물론이고 눈마저 따가울 지경이다.
냄새를 감내하는 대가가 워낙 달기에 참을 수밖에 없지만.
‘확실히 혼자서 사냥하는 게 빨라.’
코볼트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도진이 도달한 레벨은 11.
10레벨까지는 금방이었지만, 11레벨까지는 2시간 가까이 걸렸다.
평범한 사람들은 레벨 10부터는 하루에 1~2레벨이라도 올리면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성장세였다.
파티 사냥으로 나눠 먹어야 할 경험치를 혼자 독식하는 데다 여럿이서 몰려다니며 사냥하는 속도보다 도진 혼자서 잡는 속도가 더 빠른 덕이었다.
‘이 속도면 오늘만 여기 있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옮겨도 되겠어.’
순조로운 성장에 만족한 도진은 인벤토리를 열어 싸구려 마나초 가루와 종이를 꺼냈다.
기름과 마찬가지로, 사냥을 위해 준비한 준비물이었다.
도진은 마나초 가루를 종이로 잘 말아 연초 형태로 만들었다.
그런 뒤 손가락 끝으로 불을 붙여 피우기 시작했다.
마법 상점에서 파는 마법사용 연초를 살 돈이 없어 부리는 궁상이었다.
“후우…….”
퍼지는 연기와 향이 지긋지긋한 기름 냄새를 중화했다.
물론 연초를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피우는 건 아니었다.
겉보기는 잡초여도 마나가 풍부한 곳에서 자란 풀은 일단 마나를 품은 풀이다.
이런 식으로 피우면 몸속으로 퍼져 마법회로를 안정시키고 마나 회복을 돋우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래. 슬슬 몰려올 때가 됐지.”
냄새와 마나에 민감한 것들을 유인하는 미끼로도 훌륭한 게 바로 이 마나초 연기다.
익숙한 것들이 내는 기척에, 도진은 슬며시 기름 주머니 하나를 풀어헤쳤다.
이어지는 장면은 같았다.
사람과 짐승을 반씩 닮은 괴물들은 단순하게 달려들었고, 도진은 놈들을 태워 죽였다.
그러기를 한참.
주변에 있는 놈들이 다 죽었는지 공터를 향해 오는 놈들이 끊겼다.
도진이 워낙 빠르게 코볼트들을 끌어모아 학살한 탓에 주변에 잠시 몬스터 공백기가 생긴 것이다.
‘이 틈에 확실하게 쉬어 둬야겠다.’
쉴 틈이 생기자마자 도진은 휴식에 들어갔다.
호흡을 고르게 정돈하고 마법회로를 최대한 쉬게 하는 것이다.
연초는 태우지 않았다.
혹여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 곳의 몬스터를 불러들일 위험이 있어서였다.
몇 분쯤 쉬었을까.
노곤한 피로감에 졸음마저 느껴질 때.
“이쪽은 몬스터가 거의 없는데?”
“쉼터 같은 거 아닐까? 길도 복잡하고 코볼트 새끼들도 이렇게 많은데 이런 곳이라도 있어야지.”
“야, 이제 그냥 입구 쪽으로 나가서 사냥하면 안 되냐? 계속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도 일이야 일.”
“입구 쪽에는 사람이 많잖아. 그런 곳에서는 이렇게 자유를 만끽할 수가 없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다가왔다.
아마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사냥을 하다가 쉴 곳을 찾는 파티인 모양.
‘신경 거슬리게.’
조용한 휴식을 방해받은 도진의 마땅찮은 시선이 소리의 방향을 향했다.
“어? 사람인데?”
가장 먼저 공터로 들어선 통통한 탱커가 얼빠진 소리를 했다.
그래, 사람이다. 사람 처음 보냐?
어이가 없어 웃을 뻔한 도진은 고개를 까딱였다.
어쨌든 같은 사냥터에서 레벨 올려 보겠다고 고생하는 유저끼리 인사는 하고 살아야지.
명색이 함께 마물에 맞서기 위해 이 세계에 불려온 리제니안 사이 아닌가.
“뭐? 여기까지 들어온 파티가 또 있어?”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통통이 뒤에서 비실이 하나가 나타났다.
“아니, 혼잔데?”
그런데 이놈들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일단 눈인사를 보냈음에도 반응이 없는 통통이도 이상하고.
뒤이어 나타난 비실이의 태도와 눈빛도 매우 이상했다.
방금 전 다른 파티가 있느냐고 물을 때의 비실이 목소리에 묻은 약간의 불안을 도진은 놓치지 않았다.
또.
‘내가 혼자인 걸 확인하자마자 안도를 해?’
혼자인 걸 확인한 지금은 약간 탐욕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기까지 한다.
‘이거 참…….’
그림으로 그린 듯한 놈들이네.
도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태도를 보이는 놈들은 인간 사냥을 즐기는 머저리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 * *
중국 시골구석 마적 떼처럼 ‘하하하! 이런 인적 없는 곳에 혼자 돌아다니다니! 지금 당장 저놈 내장을 꺼내서 마라탕을 만들자고!’ 하며 달려들 거라 생각한 도진의 예상과는 달리 비실이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런, 다른 파티원들이랑 떨어져서 혼자 남으신 건가요?”
처음의 불온한 시선은 어디로 가고, 안타까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연기를 하든가.’
도진은 만에 하나라도 비실이와 일당들이 호인일 가능성은 머릿속에 들이지도 않았다.
잠깐 사이에 저렇게 표정이 확 변하는 놈을 믿으라고?
차라리 정치인이 정말로 나라 걱정, 국민 걱정 한다는 개소리를 믿고 말지.
저런 놈 믿다가 갑자기 칼 맞으면 찌른 놈보다 찔린 놈이 더 나쁜 놈이란 게 도진의 평소 지론이었다.
‘전사 둘에 도적 하나, 힐러 하나.’
추가로 공터에 들어선 놈들까지 총 네 얼간이를 잠재적 적으로 규정한 도진은 놈들의 파티 구성부터 살폈다.
근접 딜러만 셋이라 밸런스가 좋은 파티는 아니지만 수의 열세가 문제였다.
둘이었으면 바로 선공부터 박고 생각을 시작했을 텐데.
이러면 승산 낮은 싸움을 벌일 생각보다는 탈출 각을 보는 게 기본이지만, 놈들도 바보는 아닌 모양이었다.
후에 공터로 들어온 전사 둘이 티 나지 않게 퇴로를 가로막고 선 것을 보니.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하지. 칼 쥔 손에 저렇게 힘주고 있으면 속아 주고 싶어도 속아 줄 수가 없잖아.’
아무래도 싸움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진은 전투를 준비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다니실래요? 사실 저희 파티도 궁수 한 명이 빠지는 바람에 원거리 딜러가 없어졌거든요. 마침 마법사이신 거 같은데 같이 다니시죠.”
정말 파티원을 잃고 홀로 고립된 사람이라면 충분히 혹할 만한 제안을 하며 비실이가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접근하는 걸음에는 상대의 경계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발만 신경 쓰면 뭐해. 손이 저렇게 티 나는데.’
다만 오른쪽 어깨와 손이 뻣뻣하게 굳어 있어서 티가 난다.
신경 쓰지 않으면 발견 못 할 어색함이었으나 도진의 눈에는 훤히 보이는 초보 살인자의 실수였다.
도진은 비실이가 자신에게 달려들 거리를 가늠했다.
‘세 걸음.’
비실이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기습을 저지를 간합까지 앞으로 세 걸음.
그 간합을 내주면 민첩이 월등히 높은 도적 클래스인 비실이의 기습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서, 도진은 적의 기습 타이밍을 빼앗기로 했다.
“정말요? 와, 진짜 다행이다. 파티원들 다 죽고 저만 살아남아서 탈출도 못 하고 죽나 싶었는데.”
그 방법은 순진하게 속고 있는 희생양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쓸며 목덜미를 내보인다.
하얗고 매끄러운 수사슴 같은 목덜미를 보고서도 풋내기 살인자가 세 걸음을 참을 수 있을까?
아니, 비실이 같은 초보는 이 기회를 절대 참지 못할 것이다.
탓.
역시.
고개를 숙인 상태로 도진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푸욱.
이어 들리는 날카로운 날붙이가 사람의 살을 뚫는 소리.
“헉!”
하지만 비실이의 입에서는 성공의 기쁨이 아닌 당황으로 억눌린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목덜미를 노린 단검이 사냥감의 왼손에 의해 가로막힌 탓이었다.
“큭!”
그러나 비실이가 당황할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필살의 공격을 하느라 쏠린 균형을 회복할 새도 없이, 도진의 오른손이 목깃을 잡고 끌어당긴 것이다.
포식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탓에 반격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비실이는 제대로 된 대응 한번 못 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찰나에 일어난 일이기에 비실이의 동료들도 반응을 못 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퍼억.
어? 어? 하는 사이 비실이는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히며 제압되고 말았다.
“으윽……!”
바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헤롱대는 비실이.
저레벨 도적이 체력을 찍으면 얼마나 찍었겠는가.
상태 이상에 대한 내성 따위 없는 놈이 머리를 바닥에 처박혔으니 기절 상태 이상은 필연이었다.
“이, 이 새끼가-”
비실이의 동료들은 기절에 걸린 게 아니기에 뒤늦게나마 무기를 빼어 들며 화를 냈지만.
꿀럭꿀럭.
도진은 놈들이 무슨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비실이의 뒤통수에 기름을 부어 버렸다.
그리고 진부한 대사가 나오기도 전에.
딱.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