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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허름한 건물에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러자 들어올 때 보았던 광경 대신 별세계가 펼쳐졌다.
어떤 문이든 나무 반지를 지니고서 열면 도서관과 이어질 거라는 시온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도진은 문을 넘어갔다.
밀도 높은 막을 통과하는 듯한 감각과 함께 느껴지는 세계가 달라졌다.
과하게 높은 마나 포화도 탓이다.
공간 전체를 채운 순수한 마나가 밀려들자 머리는 핑 돌고 숨을 쉬는 게 불편해졌다.
마법회로가 새겨진 오른손에서 뜨겁고 뻐근한 통증이 일어났다.
전생에 들어왔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
하기야 그때는 이렇게 낮은 레벨에 들어온 게 아니었으니.
그래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리를 향한 첫걸음> 업적 달성]
[업적 보상: 지능 능력치 +10]
하물며 이런 메시지가 눈앞에 떠다니는데 못 견딜 상황이어도 견뎌야지.
만리의 도서관 방문과 동시에 업적 달성 보상으로 지능 10이 올랐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꽤 많은 지능 스탯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게 숨만 쉬어도 강해진다는 건가?’
도진은 몇 번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전히 끈적한 무언가를 마시는 듯 괴롭지만, 이게 다 성장의 비료라고 생각하니 꿀맛이었다.
“콜록! 콜록!”
아니, 꿀맛까진 아니었다.
계속 조금이라도 더 마셔 보려고 했더니 폐에 물이 찬 것처럼 통증이 일어났다.
한참을 멎지 않는 기침에 고생한 도진의 호흡은 더 이상 얌전해질 수 없을 정도로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뒤지는 줄 알았네.’
괜한 헛짓거리 하지 말고 빨리 해야 할 거나 시작해야지.
한차례의 호흡곤란으로 이성을 되찾은 도진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에 맞춰 주변의 경관이 휙휙 바뀐다.
한 걸음 옮겼을 뿐인데 흘러가는 주변은 까마득하다.
마치 걸음 하나에 몇백 미터를 걷는 것 같았다.
이러한 공간에서 어떻게 원하는 장소를 찾고, 원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은 필요 없었다.
시온 그레이스의 예술적인 공간 마법의 결정체인 이곳은 방문자의 의식은 물론 무의식까지 읽어 내어 그가 원하는 것이 보관된 장소로 안내한다.
물론 1성 마법사에게 허락되는 구역은 가장 낮은 1층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도진은 감지덕지였다.
‘…더럽게 많네.’
대략 열 걸음 만에 도착한 곳은 책이 빼곡하게 꽂힌 책장 수십, 수백 개가 끝없이 늘어서 있는 장소였다.
이걸 다 읽으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실 도진은 이곳의 책을 다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다.
만리의 도서관에서는 급이 안 되는 마법사는 갈 수 있는 장소뿐만 아니라 열람할 수 있는 자료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1성 마법사인 도진은 당연히 가장 낮은 층에서도 가장 낮은 등급의 보관물만 건드려 볼 수 있었다.
해서, 도진은 책장에 꽂힌 책들 중에서 자신도 뽑을 수 있는 책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마나에 대한 이해]
-기초 마법 지식서
-저자: 에릭 켄드라 교수
-열람 자격: 1성 마법회로
첫 번째로 찾은 책을 뽑자 책에 대한 정보가 허공에 나타났다.
유저에게만 보이는 홀로그램 화면이 아니라 마법으로 만들어진 빛의 활자다.
도진은 다른 책도 연속해서 골라냈다.
[술식의 기초적 개념 이해]
-기초 마법 지식서
-저자: 뮤이 본드레이 공작
-열람 자격: 1성 마법회로
[마법진의 구성요소]
-기초 마법 지식서
-저자: 세르게이 베네르 교수
-열람 자격: 1성 마법회로
책의 정보를 확인한 도진은 ‘마나에 대한 이해’를 제외한 책을 바닥에 대충 던져 놨다.
그런 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책을 펼쳤다.
「마나란 모든 것을 이루는 가장 근원적인 무언가를 이른다. 그래, 무언가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저 현상으로서 보고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을 따름이지. 이 순수한 마나를 우리 마법사는 마법의 재료로 사용한다. 마법을 발동하기 용이하게 가공한 마나로 만든 마법적 힘을 마력이라 부르는 경우를…….」
그렇게 독서가 시작됐다.
단순한 독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여기에 꽂혀 있는 책 한 권 한 권이 평범한 책일 리가 없지 않은가.
당장 도진이 쥔 책만 해도 수준 높은 마법사가 본인의 지식과 이해를 담은 마법서였다.
가죽, 종이, 잉크, 펜… 하다못해 가죽 표지에 무늬를 새길 때 쓴 나이프까지도 마법 기물을 사용한 진짜배기 마법서.
가치를 따지자면 한 권 한 권이 보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마법적 성취를 담은 ‘진짜’인 셈.
읽는 것만으로 저자가 담은 ‘이해’의 일부가 독자에게 전해지는 마법적 현상이 일어난다.
[마나 친화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지능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마나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책이니, 마나 친화도가 성장하는 것처럼.
‘뭐, 어디까지나 설정이 그렇다는 거지만.’
탁. 다 읽은 책을 덮은 도진은 옆에 놓인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무한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니, 한정된 시간 안에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얻어야 한다.
도진의 손이 조금은 바쁘게 책장은 넘기는 이유였다.
사락… 사락… 사락…….
이번 ‘술식의 기초적 개념 이해’는 종이가 아닌 어떤 동물의 가죽에 쓰인 책이었다.
어쩌면 종이 대신 쓰인 가죽이 인간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뮤이 본드레이는 미친놈들로 가득한 마법사 사회에서도 알아주는 꼴통 마법 근본주의자이니 말이다.
「술(術)이라 함은 인위적으로 이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술식은 다양하다. 마술, 요술, 주술 등 수많은 말로 불리고, 또 그것들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방식과 방향성으로 술식을 빚어낸다. 하지만 결국 인위적으로 세상의 법칙에 개입하여 작든 크든 자연적으로는 발생하기 힘든 현상을 불러오기 위한 행위라는 점은 같다. 이는 곧 그것들 모두를 마법이라 불러도 좋다고 할 근거가 되는…….」
관성적으로 게임을 하면서 잊고 지냈던 LOST의 설정을 복기하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마법회로의 내구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마법회로의 마나 처리 효율이 소폭 상승합니다.]
[지능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오른다. 뭐든 오른다. 아무튼 오른다.
이런 상황에 쉴 수 있는 게이머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도진은 그중에서도 극성인 부류여서, 휴식이란 없었다.
마법진과 관련된 책을 미친 듯이 탐독한 도진은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꺼내 읽었다.
개중에는 기초적인 마법 지식이 아니라 스킬 자체가 담긴 마법 스킬북도 섞여 있었다.
찾을 때마다 스킬북값이 굳는 맛이 달달했다.
[「점화」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1성 마법 「점화」를 시작으로, 기초적인 공격 마법이 스킬창에 쌓여 갔다.
이게 다 위대한 대마법사 시온 그레이스 님께서 이 공간에 설치한 대마법진과 때 묻지 않은 순정 저렙 몸뚱이의 시너지 효과였다.
고레벨 유저가 들어와도 어느 정도 성장이 가능한 공간에 텅텅 빈 깡통 상태로 들어왔으니 쌓이는 것도 빠른 것이다.
‘슬슬 배고픈데.’
한참 책을 읽던 도진은 공복감에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리제니안이라고 해도 굶으면 죽는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도진은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들어왔고, 그만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질 나쁜 육포]
[딱딱한 빵]
[물]
제론에 도착하자마자 식료품점에 들러 구매한 식량 목록이다.
관문에서 보상으로 받은 골드의 절반을 여기에 썼다.
1성 스킬북 한 권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육표와 빵을 산 것이다.
그것도 ‘질 나쁜’, ‘딱딱한’ 같은 싸구려 냄새 풀풀 나는 수식어가 붙은 것으로.
심지어 물은 마탑 근처 분수대에서 퍼왔다.
극한까지 돈을 아껴서 마련한 식량의 양은 이곳에서 한 달을 버티고도 남을 만큼 많다.
물론 이런 식단으로 한 달을 살면 건강은 나빠지겠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건강? 그거 어떻게 챙기는 건데?
그런 건 나중에 브로콜리 열심히 먹으면 다 해결된다.
지금은 더 중요한 것을 취할 때였다.
도진은 질기고 비린 육포를 씹고, 딱딱한 빵을 입안에서 물로 녹여 먹었다.
「이번에는 술식의 구성요소를 생략하여 술식을 발동하는 방법에 대하여-」
그러면서도 도진의 눈은 책에 적힌 활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 * *
[<독서가> 업적 달성]
[업적 보상: 체력 +1]
하루에 20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 달성되는 업적을 땄다.
[<책벌레> 업적 달성]
[업적 보상: 체력 +3]
그 짓을 일주일 동안 꾸준히 해야 달성되는 업적도 땄다.
[<독서광> 업적 달성]
[업적 보상: 체력 +5]
그리고 보름이 흘렀다.
탁.
또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한 도진은 주변을 둘러봤다.
‘음… 이젠 아무리 봐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없는 거 같은데.’
얼마나 지독히도 읽어 댔는지 벌써 이 구획의 책은 다 읽어 버렸다.
정확히는 ‘1성 마법사가 읽을 수 있는 책’을 다 읽었다.
“으그그극……! 뭐, 책이 없어서 못 읽겠어. 밥 떨어져서 굶어 죽는 게 문제지.”
도진은 정말 오랜만에 두 발로 서서 기지개를 켰다.
오래도록 앉아서 책만 읽느라 굳어 버린 몸뚱이는 가벼운 스트레칭에도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뼈 부러지는 게 아닌가 싶은 스트레칭을 마친 도진은 자신이 고생고생하며 보름이나 책을 읽은 성과를 확인했다.
도진
레벨: 8
클래스: 마법사
근력: 7
민첩: 8
체력: 61
지능: 54
스킬: ( 5 ) [열기]
보름 동안 시스템 공인 책벌레 소리를 들어가며 수련한 보람이 있었다.
보너스 포인트를 단 1포인트도 투자하지 않은 지능 스탯이 어느새 54까지 오른 것만 해도 동레벨에 적수를 찾기 힘든 스탯 괴물이 된 셈이다.
스킬 쪽도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시살라 오멘에게서 스킬북을 받아서 배운, 활용도가 높기로는 수위를 다투는 마법 「염동」.
「점화」, 「바람 화살」, 「얼음 화살」, 「빛」 등 기초적인 속성 마법까지.
제국 아카데미에서 전직한 마법사 유저가 두세 개의 마법을 배우고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부유한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직 도진은 도서관 안에 있다.
읽을 수 있는 책만 더 찾으면 여기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뜻.
‘어느 정도 쉬었으니까 가 볼까?’
도진은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너무 오래 가수면 모드로 잠을 대체한 탓일까?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어쩌면 워낙에 오래 앉아만 있다가 일어나서 문제가 생긴 걸 수도 있었다.
약 1초에서 2초.
도진의 의식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