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알테라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제론.
도진은 마법의 도시로도 유명한 제론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기본 보상으로 받은 메이스 대신 깔끔한 장검이 걸려 있었다.
튜토리얼 보상과는 별개로 시련의 숲 교관 크루거가 떠넘기다시피 준 검이었다.
자기가 교관을 하면서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가능성과 재능이 넘친다면서 열변을 토하더니, 너는 무조건 검사를 해야 한다면서 준 선물이었다.
[관문지기의 검]
등급: C
착용 제한: 없음
관문지기에게 보급되는 평범한 철검. 특출 난 무언가는 없지만, 그래도 질은 좋다.
공격력: 12
튜토리얼 보상보다 더 좋은 옵션을 확인하며 걷는 도진 주변으로는 신비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말이 아닌 마나의 힘으로 움직이는 마차(魔車), 상점 홍보를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마법 골렘.
시선을 조금만 주변으로 돌리면, 과학이 아닌 마법으로 쌓은 문명의 건축물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처음 도시를 본 유저들이 곳곳에서 멈춰 서서 넋이 나간 듯 구경을 하고 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도 심심찮게 보이고.
하지만 전생에 마법사였던 도진에게 제론은 제법 익숙한 곳이었다.
도시를 누비는 도진의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최적의 동선으로 필요한 물품을 파는 상점가를 거친 도진은 전직 장소에 도착했다.
제론 중심에 우뚝 솟은 제국 마탑 엘토마기아.
현대의 지구에서조차 볼 수 없는 높이를 자랑하는 구조물의 위용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도진의 목적지는 이 탑이 아니었다.
애초에 출입 자격이 없는 자는 접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게 엘토마기아다.
도진은 까마득한 탑에서 고개를 돌려 저 멀리 구석진 곳에 있는 1층짜리 건물을 바라봤다.
엘토마기아의 마탑과 비교를 해 보면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건물.
이름하야 제국 마탑 출장 접수처다.
“…오세요.”
삐걱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 앉아 있는 여자 마법사가 건성으로 인사를 해 왔다.
어서 오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오라는 건지.
읽고 있는 논문에서 눈도 떼지 않고 하는 인사에선 성의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야 이 접수처는 건물에 들인 공만 봐도 알 수 있듯 어중이떠중이를 마탑에 들이지 않기 위해 밖에 설치한 거름망이었다.
저기 앉아 있는 여자도 말단 마법사들 중에서 순번대로 돌려 가면서 앉혀 놓은 사람 중 하나일 게 분명했다.
‘이러니까 다들 아카데미로 몰려가지.’
사실 도진처럼 제국 마탑에서 마법사 전직을 하는 유저는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관문에서 받은 추천장을 내밀어도 의무적으로 마법회로만 뚫어 줄 뿐 그 어떤 지원도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 가장 핫한 전직처로 떠오른 제국 아카데미의 경우 전직과 동시에 아카데미의 학생 신분을 부여해 준다.
그러면 유저는 마법학과 학생이 되어서 기초 강의를 듣고, 자동으로 기초적인 마법 스킬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엘토마기아는 마탑의 일원으로 받아주기는커녕 구걸하다시피 해야 마법 스킬북 한 권이나마 받을 수 있는 수준.
LOST 서비스 시작한 지 5개월 차에 접어든 현재 마법사 전직 장소 중 한 곳인 이 출장소가 이렇게 한산한 이유였다.
마법사 전직이 가능한 그 어떤 곳도 여기보다 대우가 박하진 않기 때문.
하지만 그건 아카데미와 엘토마기아의 특성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몰라서 발생한 일종의 오해였다.
‘엘토마기아는 아카데미처럼 알아서 떠먹여 주는 데가 아니거든.’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그러니 기초적인 마법 또한 체계적으로 가르쳐 준다.
또 원한다면 그곳에 계속 남아서 중급, 고급 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
그러한 곳이니까.
그러나 엘토마키아는 목적성 자체가 아카데미와는 아예 다른 곳이었다.
이곳은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 집단.
인재를 길러 내는 곳이 아니라 엘토마기아에 필요한 마법사만이 일원으로 선택되는 그런 곳이다.
‘편하기는 다른 데서 전직하는 게 훨씬 더 편하지만, 알아서 찾아 먹을 수만 있으면 엘토마기아랑 다른 곳은 비교가 안 되지.’
떠먹여 주는 아카데미는 편하다.
하지만 알아서 찾아 먹을 줄 알면 이쪽이 훨씬 리턴이 크다.
그리고 도진은 제국 마탑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골수까지 빨아먹을 자신이 있었다.
톡톡.
생각을 마무리한 도진은 카운터를 살짝 두드렸다.
그제야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리는 여자 마법사.
그러고도 계속 힐끔힐끔 논문을 바라보는 걸 보니, 정말 제대로 된 마법사가 분명해 보인다.
마법사는 일단 괴짜인 게 기본이니.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이긴. 당연히 전직하러 왔지.
묻는 여자 마법사에게 속으로 답한 도진은 관문에서 보상으로 받은 ‘추천장’을 내밀었다.
“음.”
아쉬운 기색으로 논문을 뒤집어 놓은 여자 마법사가 추천장을 확인한다.
“…확실히 마법사 추천장 맞으시고, 발급처는 모험가 길드… 10급 모험가에…….”
빠르게 항목을 확인하던 여자 마법사의 시선이 ‘관문’이라는 단어에 고정됐다.
관문을 통해 넘어왔다는 건 상대가 리제니안. 즉, 죽어도 다시 살아나 괴물을 잡아 죽이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냥꾼이라는 뜻.
빨리 마무리해서 보내 버려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여자는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상대가 관문을 통해 넘어온 리제니안이라면 약간은 조언을 해 주는 게 맞겠지.
로스타니아인으로서 가진 최소한의 의무감에, 여자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조언을 입에 담았다.
“근데요. 제국 마탑 소속인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여기보다는 아카데미에서 전직하는 게 나을 거예요.”
말을 하면서도 여자의 손은 회로 개통용으로 가공된 마석 꾸러미를 뒤적였다.
낭비되는 시간 없이 무언가를 하는 게 버릇이 된 탓이다.
“엘토마기아는 엘토마기아의 마법적 발전에 기여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어요. 당신처럼 관문을 넘어온 사람이든 뭐든 간에요. 반면에 이 추천장이면 아카데미에서는 기초적인 교육도 해 주고, 지원도 좀 나올 거예요. 당신 입장에선 그쪽이 낫지 않겠어요?”
여자는 나름 생각해서 해 주는 충고였으나 도진은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진에겐 도진 나름대로 이곳에서 전직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괜찮습니다.”
“…뭐, 제 충고를 들을 거라고 생각은 안 했어요. 저도 마법사지만, 마법사들 고집이 어지간해야지.”
휴우. 한숨을 내쉰 여자는 슥 손을 내밀었다.
그에 맞춰 도진도 오른손을 내민다.
“회로 뚫는 거, 어디서 들어봤어요?”
“관문에서요.”
대충 답하는 도진의 오른손에 여자 마법사가 골라낸 마법진이 새겨진 마석을 올렸다.
그런 뒤 무언가 주문을 외더니, 엄지와 검지로 마석을 파삭 하고 부수었다.
그러자 마석이 부서지며 방출된 날카로운 마나가 도진의 손에 상처를 냈다.
따끔거리는 통증. 작은 통증은 따로 설정을 않는 한 경감되지 않기에 선혈이 흐르는 감각이 선명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시원한 무언가가 손 안쪽을 내달리는 감각이 통증을 대체했다.
“됐어요.”
기껏해야 1성 마법을 저장하고 발동할 때 사용될 회로는 허망할 정도로 간단히 뚫렸다.
도진
레벨: 8
클래스: 마법사
근력: 7
민첩: 8
체력: 46
지능: 6
상태창에는 어느새 클래스 항목이 추가됐고, 직업은 마법사로 표시되고 있었다.
상태창을 확인하는 사이 여자는 벌써 논문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도진이 리제니안이든 뭐든 간에 자신이 할 일은 여기까지고,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태도였다.
‘여기부터 시작인가.’
하지만 도진의 용무는 이제 시작이었다.
톡톡.
다시금 그녀의 시선을 끈 도진은 확신을 담아 물었다.
“특별 추천 대상은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혜택이 있다고 하던데요.”
“으음…….”
애매하게 신음을 흘린 여자의 미간이 좁아진다.
“딱히… 전해 들은 게 없는데요. 사실 제가 여기 담당이 아니라서. 그래도 기초 마법 스킬북 한 권 정도는 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저기에 저렇게 꽂혀 있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옆을 가리켰다.
1성 마법 스킬북이 종류별로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장이 보인다.
사실 저것도 귀한 건 귀한 거였다. 사용하는 순간 마법에 대한 지식이 순식간에 주입되어 스킬이 생성되는 아이템이니까.
“어떻게, 저거라도 드릴까요? 그냥 활자만 적힌 게 아니라 저건 진짜 마법이 담겨 있거든요. 돈 주고 사려면 엄청 비싼 거예요.”
“스킬북은 됐고, 그보다는 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은데요.”
“…….”
여자의 움직임이 멎었다.
약간 서늘해진 눈빛으로 도진을 바라본다.
“지금 뭐라고…….”
“도서관을 이용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엘토마기아에 도서관은 없는데요? 책은 대부분 마법사 개인이 개인적으로 보관하는 게 보통이라.”
다시금 나른한 눈으로 시치미를 떼는 여자에게 도진은 쐐기를 박았다.
“제가 말한 도서관은 만리(萬理)의 도서관입니다.”
만리의 도서관. 다른 말로는 만리서고라 부르는 그곳은, 엘토마기아가 오랜 세월 모은 마법적 자산들이 보관되어 있는 보물창고를 이르는 말이었다.
“…장난이라면 도가 지나친 것 같군요. 도서관은 최소 7성, 색으로 따지면 청색위(靑色位) 이상의 마법사만 제한적으로 열람이 허용되어 있는 곳이에요. 당신같이 이제 막 마법사가 된 사람은 얼씬도 못 할 금지(禁地)라고요.”
제국 마탑 엘토마기아에서는 진리에 이르는 길을 상징하는 무지개의 색을 따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그리고 검은색으로 위계를 나눈다.
그리고 엘토마기아에서 ‘청(靑)’까지 오른 마법사는 변두리 마탑의 마탑주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경지.
그런 자들에게나 겨우 제한적 열람 허가가 나오는 만리의 도서관에 들어가겠다는 소리는, 아무리 리제니안이라 해도 막 마법사로 전직한 풋내기가 해서 될 말이 아니었다.
언젠가 청색 이상의 위계에 올라 자신의 발로 만리의 도서관을 밟는 것이 꿈인 여자 입장에서 불쾌함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하여간. 잡스런 소설에서도 만리의 도서관, 만리의 도서관 하면서 써먹으니 이런 머저리들이 꼬이지.’
탁. 마법사는 신경질적으로 논문을 펼치며 시선을 내렸다.
이제부터 당신을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의미가 고스란히 담긴 제스처였다.
약간이나마 비쳤던 친절의 편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나 도진은 차가운 상대의 태도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그녀가 찬 통신용 팔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알 만한 사람한테 물어보시죠. 분명 엘토마기아와 모험가 길드가 체결한 계약에는 특별 추천 대상에게 ‘한 가지 혜택’을 주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이건 엘토마기아의 가장 위대한 분께서 직접 작성하신 계약서에 명시된 부분입니다.”
“당신 정말……!”
하다 하다 엘토마기아의 유일한 ‘흑색위(黑色位)’까지 거론하다니.
여자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났다.
그럼에도 그녀가 당장 눈앞의 남자를 내쫓지 못하는 건, 관문을 넘어온 이방인은 모두가 모험가 길드의 특별 추천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엘토마기아의 탑주가 모험가 길드와 얽힌 인연은 어린애들이 읽는 동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워낙 거물의 이름이 튀어나와서일까. 그녀는 쉽사리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사실이면…….’
모험가 길드에서 항의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위쪽에 멍청한 질문을 한 대가로 내려올 불호령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곤란한 처지가 될 수도 있었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고민을 거듭하던 마법사는 결국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그래. 물어만 보자. 어차피 아니면 저 사람 책임인 거니까. 그리고 솔직히… 정말로 그런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음을 정한 여자가 도진을 응시했다.
“바보 같긴 하지만, 일단 물어는 볼게요. 하지만 거짓말을 한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분은 농담 삼아서 입에 담아도 될 만큼 가벼운 분이 아니니까요. 아무리 당신이 리제니안이라 해도 말이에요.”
도진은 옅은 미소를 짓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에서는 일말의 불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확신으로 가득했다.
왜냐하면.
[퀘스트]
탐욕스런 진리의 방
등급: 히든
[제국 마탑 엘토마기아의 비밀스런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엘토마기아의 고위 마법사뿐.
다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는 외부인도 만리의 도서관에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방법을 찾아 그곳을 방문할 수 있다면, 그들이 탐욕스레 모은 진리의 파편을 훔쳐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목표: 엘토마기아 소속 마법사 신분이 아닌 상태로 만리서고 입장
보상: ???
지금 나눈 대화 끝에, 기다리고 있던 메시지가 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