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4화 (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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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을 보는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안전 구역에 있는 유저들은 물론 밖에서 수정구를 통해 보고 있던 크루거까지 전부.

그의 발이 안전 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벌어질 일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 처음 들어온 새낀가?’

‘아무리 처음이라고 해도 그렇지. 여기 사람들 모여 있는 거 보면 모르나?’

‘저런 놈은 다시 들어와서 얼쩡거려도 절대 파티에 끼워 주지 말아야지.’

‘저렇게 앞뒤 안 재고 설치는 놈 하나 있으면 괜히 나까지 위험해진다니까.’

시련의 숲을 이미 겪어 본 사람들은 혀를 차고 고개를 저었다.

뻔한 결말을 예상하고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안전 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느릿느릿 움직이던 슬라임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것에 일차적으로 당황하고, 이어서 물컹물컹해서 제대로 타격을 주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우적대다 게임 오버 되겠지.

시련의 숲을 겪어 본 경험자들 대부분이 달려드는 도진을 보며 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파앗.

가까이 다가온 도진을 향해 슬라임들이 일제히 뛰어오른 것까지는 맞았다.

다만 다음 장면이 달랐다.

퍼억.

도진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슬라임 내부에 있는 핵을 깨부순 것이다.

퍼엉, 하고 슬라임이 공중에서 터지며 끈적한 젤리 조각들이 흩어졌고, 그 광경은 도진을 바라보던 모두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스, 슬라임을 한 방에?’

핵을 부수면 슬라임을 즉사시킬 수 있는 건 맞다.

그 난이도가 지랄 맞아서 문제지.

완충제를 잔뜩 채운 가방 가운데 들어 있는 호두를 일격에 깨부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걸 한 방에 박살 내 버렸으니 보는 입장에서 놀랄 수밖에.

‘우, 우연이겠지? 그냥 미친놈처럼 휘둘렀는데 아다리가 맞았을 뿐-’

지나친 놀라움에, 구경꾼들은 눈으로 목도한 장면을 단순한 ‘운’으로 치부하려 했다.

퍽! 퍽! 퍽!

달려드는 슬라임을 차례대로 황천길로 보내 버리는 도진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딱 필요한 만큼만 휘두르고, 그 공격은 정확하고도 낭비 없이 슬라임의 핵만을 노렸다.

뛰어드는 슬라임과 완벽한 궤도로 만나는 둔기의 하모니.

‘내가 상대하던 슬라임이 맞나……? 저번에 우리 파티는 슬라임 처리가 늦어져서 다른 몬스터들한테 포위당해서 전멸했었는데…….’

‘다른 게임에서 프로게이머 하다 넘어온 사람 아니야?’

‘야구 선수나 용역 깡패 출신인가……?’

비웃음과 조소는 사라졌다.

대신 도진에게 향하는 건 감탄과 의문 그리고 경악이 그 자리를 채웠다.

더러는 도진을 자신과 비교하며 자괴감을 느끼는 자들도 있었다.

“저거… 고블린이잖아?”

“왜 입구에 고블린이 나와? 이쪽은 슬라임만 나올 텐데.”

슬라임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 때쯤 사람들이 웅성대며 동요했다.

웬만하면 입구 쪽에서는 보기 힘든 고블린 몇 마리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탓이었다.

슬라임이야 맷집이 좋은 걸 제외하면 공격력이 뛰어난 몬스터는 아니다.

그러나 고블린은 돌칼, 돌도끼, 더러는 녹슨 날붙이로 무장한 놈들.

아직 방어구를 갖추지 못한 초보 유저 입장에서는 놈들의 공격 하나하나가 유의미한 부상으로 직결된다는 의미다.

아무리 전투에 익숙해 보인다 해도 같은 초보자 신세.

자신들과 능력치 차이가 나는 게 아니니 분명 이번에야말로 끝이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함께 게임을 시작한 친구에게 말했다.

“야, 우리 저 사람 돕자.”

“네가 웬일이냐? 평생 여자 아니면 신경도 안 쓰더니.”

“하여간 이래서 멍청한 새끼들은 안 돼요. 저 사람이랑 파티하면 시련의 숲 통과하는 게 쉬워질 거 아냐. 저 사람 무조건 시련의 숲 고인물이야. 절대 처음 도전하는 거 아니라고. 아니면 최소한 다른 게임에서라도 날리던 사람이거나.”

“아하.”

“형님의 날카로운 추리력과 처세술에 감탄했냐?”

“아니, 어떻게든 빌붙어 먹을 수 있는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 네 빈대력에 감탄한 건데.”

꽤나 오랜 친구 사이인 둘은 자연스럽게 티키타카를 나누며 무기를 챙겨 들고 도진을 향해 뛰었다.

다른 놈들이 선수를 치기 전에 실력 좋은 유저를 파티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이곳에서의 파티만이 아니라, 운만 좋으면 꽤 좋은 인맥을 다질 수 있는 기회라 여긴 것이다.

“잠깐 뒤로 물러나-”

“저희도 도울 테니까 일단-”

그러나 두 사람은 뱉던 말을 나란히 삼키고 말았다.

열심히 놀리던 발도 어느새 우뚝 멈췄다.

도진에게 덤벼든 고블린들이 슬라임처럼, 아니 슬라임보다도 더 처참하게 도살당하는 것을 본 탓이었다.

“흡!”

짧은 호흡과 함께 수평으로 휘두른 도진의 둔기가 사람보다 작은 키를 가진 고블린의 옆통수를 후려쳤다.

고블린의 돌진 타이밍과 완벽하게 맞춘 타격 기술에 고블린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옆으로 쓰러진다.

도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쓰러진 고블린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연속으로 내리쳤다.

섬뜩한 피륙음과 뼈 부서지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졌다.

“캬아악!”

동족이 눈앞에서 곤죽이 되는 광경에 자극받은 나머지 고블린들이 도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도진에겐 그것이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쉬운데?’

전생에서 워낙 유리몸으로 살아서 스치면 죽는 전투에 익숙해진 탓일까.

도진에게 고블린들의 움직임은 너무 단조롭고 느리게만 보였다.

휙. 고블린의 돌도끼가 허공을 가르면.

뻐억. 공격을 하느라 놈의 몸이 쏠린 방향에서 둔기가 올라온다.

턱뼈가 으스러지고 고빌린의 이빨이 허공을 수놓는다.

그렇게 바닥에 쓰러지면 사정없는 마무리 공격이 얼굴이며 뒤통수에 꽂히는 식.

잔혹하게 죽은 고블린의 숫자가 4마리가 됐을 때쯤 광분했던 고블린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틈을 놓치지 않고, 도진은 과감하게 고블린 대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짓쳐드는 메이스를 피해 보려고 혼비백산하여 흩어지는 고블린들.

하지만 서로서로 엉켜서 제대로 피하지 못한 탓에 한 놈이 메이스에 스쳐 맞았다.

두개골을 빗겨 맞은 고블린은 휘청거리다가 뒤로 넘어가며 대자로 뻗었다.

기절 상태이상에 걸린 것이다.

뻑- 뻑- 뻑-

고블린 안면부에서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완전히 죽어 버린 후에도 도진은 몇 번이고 고블린의 얼굴을 내리쳤다.

고블린이란 몬스터가 갖고 있는 ‘자신보다 훨씬 세 보이는 상대에게 위축되는’ 특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한 무력시위였다.

더욱 위축된 고블린들은 무기를 휘휘 저으며 도망갈 기회만 엿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도진은 놈들에게 도망갈 기회조차 주지 않고 철저하게 학살했다.

그러던 중에 어디선가 나타난 슬라임 몇이 도진의 등을 공격했지만.

“으음……!”

짧은 신음을 내뱉은 도진은 그대로 달려든 슬라임을 붙잡아 누르고 메이스로 으깨 버렸다.

‘역시 체력에 올인해서 그런지 별로 안 아프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부족한 공격력을 올리기 위해서 근력부터 투자하는 다른 유저들과 달리 도진은 얻은 보너스 포인트 10을 모두 체력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완벽한 자세와 무게중심 배분, 카운터 판정 등을 노려서 온갖 추가 피해 보정을 기본으로 깔고 갈 기량을 갖춘 도진이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헛스윙을 비공식 패시브로 장착한 평범한 초심자가 따라 했다가는 튼튼한 샌드백이 될 가능성이 높은 그런 짓이었다.

‘혹시 피하는 게 힘들까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전부 체력에 투자해도 되겠어.’

도진

레벨: 3

근력: 6

민첩: 6

체력: 16

지능: 5

상태창을 확인한 도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벌써 허수아비 구타와 슬라임, 고블린 학살로 근력, 민첩, 체력이 각각 1씩 추가로 상승한 게 보인다.

예전에는 레벨 하나를 올리려면 꽤나 긴 시간 고생해야 했고, 스탯 하나 더 올리려고 돈이며 시간이며 어마어마하게 투자해야 했었다.

반면 저레벨 시절로 돌아온 지금은 레벨이고 스탯이고 확확 변하니 게임하는 맛이 났다.

랭킹에 목을 매며 잊고 살았던,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 설레던 순수함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괴물을 바라보는 듯한 저 시선이 도진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꽤 관종이야.’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하긴 그러니까 랭킹에 목을 맨 건지도 모르겠다.

‘관심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은 어두운 기억에 닿았다.

젠장, 이제 그럴 일은 없는데. 혀를 차며 읊조린 도진은 메이스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 내고는 시련의 숲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처음부터 다시 살 수 있게 된 인생이다.

어두울 틈 없이 밝게 비추기로 마음먹었다.

아쉽고 불행했던 전생의 기억으로 얼룩을 묻힐 필요는 없다.

이번에는 즐겁고 유쾌하게.

또 행복하게.

도진은 자신에게 행복을 줄 자극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 자극은 말할 것도 없이 전투, 살생 그리고 그로 인해 찾아오는 성장이었다.

* * *

시련의 숲을 통과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투를 빠르게 마무리하다 보니 시간이 끌려 몬스터가 떼로 몰려들 일도 없었고, 그런 만큼 성장도 빨랐다.

포션 소모도 적어서 지급 받은 퀘스트용 힐링 포션 5개 중 2개를 사용한 시점에는 벌써 레벨 6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파티 플레이를 하지 않으니 경험치를 독식할 수 있었던 게 컸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련의 숲에서 가장 위험한 몬스터인 오크조차 도진의 상대가 되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퀴이익-”

돼지 멱따는 듯한 단말마를 남기고 오크가 죽기를 수차례.

도진은 결국 혼자서 시련의 숲을 통과했고, 포탈이 있는 장소를 찾아냈다.

[<혼자여도 괜찮아> 업적 달성]

[업적 보상: 모든 능력치 +1]

[<한 번이면 충분해> 업적 달성]

[업적 보상: 보너스 포인트 +5]

그런데 포탈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업적 달성 알림이 떴다.

눈앞에 부유하는 홀로그램 창과 거기에 적힌 글자들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건 또 뭐야?”

그저 도전 삼아 한 번에 깨려고 했고, 짐짝밖에 안 될 것 같아 파티원을 구하지 않았을 뿐인데 예상도 못한 업적 달성과 보상이 뚝 떨어지다니.

‘이런 업적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설마 아무도 이 업적을 달성 못 했던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LOST가 얼마나 많은 괴물을 품은 게임인데.

오픈 초기로 한정한다면 몰라도 무려 15년 동안이나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는 건.

‘업적을 달성해 놓고도 밝히지 않은 거겠지.’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도진 본인부터가 튜토리얼에서 추가 스탯 보상을 얻은 방법을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원래 고통은 떠넘기면 줄어들고 행복은 독점할수록 더 달콤한 법이니까.

“이건 진짜… 시작이 너무 좋은데.”

뜻밖의 수확에 시련의 숲을 통과하면서 쌓인 피로가 풀렸다.

밖으로 나가는 포탈로 향하는 걸음이 부쩍 가벼운 것도 그 덕이겠지.

이제 드디어 튜토리얼을 마무리하고 진짜 게임을 시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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