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화 (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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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앉아 바닥만 바라봤다.

그러기를 한참.

이번에는 손을 쥐었다 폈다.

몇 번이나 반복해 본다.

희다. 깨끗하다. 그래서 낯설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에 맞춰 움직이는 이 손이 타인의 것일 리 없다.

“정말 돌아온 건가……?”

말로서 뱉으니 비현실적인 이 상황이 조금은 실감이 난다.

돌아왔다.

다치기 전.

인생이 부서질 대로 부서지기 이전으로.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낭비할 수는 없다는 것.

이 기적이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일어난 건지는 다음 문제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무섭게 도진은 스마트폰부터 들었다.

지금 처한 상황부터 파악해야 했다.

그래야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 먹지 않을 테니.

‘제일 중요한 건 날짜다.’

사고를 당하기 전으로 회귀했으니 교통사고부터 피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한 도진의 움직임이 멎었다.

‘……?’

날짜가 교통사고를 당한 날로부터 사흘이나 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지나갔다고……?’

도진은 뻣뻣한 고개를 움직여 침대를 바라봤다.

그러자 한순간도 떨쳐 낼 수 없었던 사고 당일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흘 전… 아니, 그날. 도진은 바로 저 침대에서 눈을 떴고, 시간을 확인했었다.

「아, 늦었잖아!」

아르바이트 교대 시간에 늦었음을 깨닫고 헐레벌떡 집을 나섰다.

계단을 날 듯 뛰어 내려간 뒤 달려서 도착한 횡단보도.

신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녹색불로 바뀌었다.

최악은 피했구나. 아슬아슬한 와중에 찾아온 작은 행운에 미소 지으며 달렸다.

굉음이 울렸다. 콰앙. 몸으로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의식이 날아갔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모든 게 어그러진 뒤였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로 끔찍했던 사건이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처박았던 그 순간이 이미 흘러가 버렸다니.

도진은 멍하니 스마트폰에 쌓인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교대 시간 한참 지났는데 어디예요?]

첫 번째 메시지는 오전에 일하는 편의점 전 타임 근무자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이어서 편의점 사장, 다음은 오후에 일하는 카페와 격일로 야간에만 일하는 캡슐방에서도 도진을 찾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놈이었나. 허탈하게 중얼거린 도진은 툭 손을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웃기 시작했다.

작게 시작된 웃음은 점점 커졌다.

종국에는 온 힘을 다해 배를 잡고 웃는다.

15년이나 자신을 괴롭혔던 저주였다.

도진이라는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부수고 쪼개고 갈아 버렸던 아주 끔찍한 저주.

그런 사건이 이렇게 간단하게 빗겨 가도 되는 건가 싶었다.

명색이 운명이란 놈이 지조도 없이 휙휙 바뀌었다고 생각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진은 한참을, 있는 힘껏 웃었다.

도진은 뱉는 웃음에 많은 것을 실어 내어 토했다.

절망, 슬픔, 회한, 원망, 기쁨……. 그간 쌓인 많은 것들이.

* * *

한껏 감정을 쏟아 내서 그런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일까. 사흘을 굶은 육체가 공복감을 호소했다.

이런 상황에도 배고픔을 느끼는 게 우스웠지만, 그래도 안 먹으면 죽을 거 같아서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런데 있는 게 닭가슴살이랑 브로콜리, 토마토밖에 없었다.

삭막한 냉장고 내부를 보고서야 도진은 과거의 자신이 아르바이트 3개를 돌리면서도 틈틈이 운동을 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에너지팩만 먹고 살던 때가 나은 거 같기도 하고.”

적응하기 힘든 건실함에 질린 도진은 대충 토마토만 꺼내고는 냉장고를 닫았다.

아무리 젊고 싱싱한 몸뚱이지만 사흘을 굶은 상태에서 닭가슴살을 위장에 넣으면 탈이 날 것 같아서였다.

나중에 죽이라도 끓이든지 해야지.

‘일단 문자는 돌려야겠다.’

꺼낸 토마토를 씹으며 도진은 쌓인 메시지에 일일이 답장을 했다.

사흘 동안 잠수 탄 것에 대한 사과와 급한 사정으로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내용으로.

“급한 사정은 급한 사정이지.”

무려 시간을 거슬러 왔는데 이보다 더한 사정은 드물지 않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피식거린 도진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이전에. 회귀한 시점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되짚어 보았다.

지금 도진은 보육원을 퇴소한 뒤로 정말 자는 시간마저 줄여 가며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이유는 캡슐을 사기 위해서였다.

아니, 정확히는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다 그렇듯 도진도 성공에 목말라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가진 것도, 기댈 곳도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진의 갈증과는 별개로 현실은 냉혹했다.

남들과 똑같이 노력하고, 비슷하게 살아 봐야 결국 없이 시작하면 그들보다 못난 인생을 살 확률이 높은 건 당연한 일.

그래서 도진은 기껏 합격한 대학 입학을 포기했다.

출시 3개월 만에 억 단위 유저가 모였다고 떠드는 가상현실 게임 LOST에 대한 기사를 보고서 자신의 미래를 베팅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문제는.

‘캡슐 살 돈만 모으다 차에 치였다는 거지.’

그 후로는 뻔한 이야기다.

재활은커녕 의족과 의수로도 커버가 안 될 만큼 철저히 망가진 몸을 깨닫고 절망.

인생 끝났구나 싶어 천장만 주야장천 쳐다보면서 2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었다.

그러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멀쩡히 걷던 시절 기분이나 내보자고 LOST에 접속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합의금, 보험금, 장애연금 등등 현실의 모든 걸 게임에 갈아 넣는 폐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왔다.

불행이 시작되기 전으로.

이제는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도진은 고민했다.

어떻게, 왜 회귀를 했는지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자.

중요한 건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새롭게 얻은 생을 어떻게 써야 후회가 없을지.

고민 끝에 도진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어떻게 돌아와서도 생각나는 게 하나밖에 없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전부 LOST라는 것.

심지어 염원하던 ‘성공한 인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LOST를 통해 이루는 게 가장 쉬울 것 같았다.

지금부터 15년 후까지 현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거의 모르다시피 하지만, LOST에 대한 정보는 빠삭하다 못해 편집증적으로 모았었으니 말이다.

전생에는 병상에서 궁상떨다 오픈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 시작했지만, 지금은 LOST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5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란 것도 호재다.

이런 조건에서 시작하고도 실패하면 그건 병신이 분명하고, 도진은 이번만큼은 병신으로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 번 더 얻은 생에도 도진은 LOST로 향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회귀의 비밀도 자연스럽게 풀리겠지.’

풀리지 않을, 풀 방법이 사실상 없는 고민은 다가올 미래에 맡겨 두자.

LOST에서 위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실마리를 풀 수 있겠지.

다만… 전과는 다르게.

현실을 외면하고, 스스로 망치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말고.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을 멋진 삶을 사는 걸 목표로 하자.

기껏 찾아온 기적을 낭비하는 건 너무 아까운 짓이니까.

도진은 조용히, 희고 깨끗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 * *

도진은 감격스런 표정으로 원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캡슐을 바라봤다.

구형에 싸구려 모델이라 덩치만 커다랗긴 해도, 지금 도진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건이었다.

‘3천이 넘는 게 안 소중할 수가 없지.’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전 재산 900만 원을 몽땅 투자했음에도 갚아야 할 리스 금액이 이자까지 2,500만 원쯤 남았다.

LOST 이용권 구매 비용까지 제하고 나면 통장 잔액은 겨우 24만 원.

이 정도면 과감함을 넘어 처절한 투자였다.

그러나 도진은 수중에 있는 돈을 거의 다 썼음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향후 15년간 LOST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 도진에게 있어 돈은 이제 문제 될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

전생에서는 성공의 기준과 목적이 돈이었지만, 이제부터 돈이란 그저 인생의 재미, 행복, 편리 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도 인생이 재미있으려면 단기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하는 법.

막연히 행복한 삶, 성공한 인생, 삶의 보람 같은 건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가.

무엇이 좋을까.

LOST 접속을 준비하며 도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나 그 고민은 사실 의미 없는 것이었다.

게임에 미친 그에게 다른 목표는 사실 필요 없었으니 말이다.

“이왕 시작하는 거… 이번에는 해 봐야지.”

LOST의 정점에 서는 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참 간단해서 좋다.

철컥.

캡슐에 누운 도진은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LOST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 * *

【로스타니아를 비추는 창세(創世)의 별빛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슬픔이 묻은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LOST의 프롤로그가 시작됐다.

불타는 대륙과 검은 구름, 붉은 번개가 요동치는 하늘.

눈앞으로 로스타니아라는 세계가 지르는 단말마가 펼쳐졌다.

【창세성(創世星)의 힘이 약해지기 시작한 이래 로스타니아에서는 끝없이 괴물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정해진 멸망을 집행하려는 듯 계속해서, 계속해서 위협하는 그것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그대들뿐입니다.】

로스타니아로 소환된 다른 세계의 존재. 즉, 유저들이 검과 마법을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대여, 모험을 사랑하는 용사여. 로스타니아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응답해 주십시오. 모험이 가득한 로스타니아로 그대를 초대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헌신에 가슴 벅찬 모험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절절하면서도 힘찬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진은 생각했다.

‘이건 언제 봐도 전쟁통에 젊은 애들 입대하라고 뿌리는 선전물 같단 말이야.’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창세성의 힘이 약해진 탓에 한없이 몬스터가 불어나는 걸 처리할 모험가로서 불려 가는 게 우리 유저들이라는 설정이니까.

[영혼이 깃들 새로운 육체의 외형을 설정해 주십시오.]

어쨌거나 스킵도 안 되는 프롤로그를 전부 지켜본 대가로 캐릭터 생성이 가능하게 됐다.

‘외형 변경 없음.’

도진은 고민 없이 외형을 현실과 같은 모습으로 설정했다.

흰색 지점토로 만든 마네킹 같던 도진의 외형이 날카로운 눈매에 훤칠한 키를 가진 미청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로스타니아에서 사용할 이름을 설정해 주십시오.]

이번에도 고민은 없었다.

‘도진.’

전생에도 겉모습은 달리했었지만 이름은 본명과 같은 이름을 썼기 때문이다.

겨우 두 가지를 설정하는 것으로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 LOST 캐릭터 생성이 끝났다.

“이 길을 또 걷게 될 줄이야.”

전생에도 걸었던 빛의 길.

그 길을 다시 걷는 감상은, 그래.

또 한 번 회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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