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0화 (1/271)

프롤로그

좆 됐다.

화성에 갇힌 맷 데이먼은 심사숙고라도 했지만, 도진에겐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사람 머리통만 한 구멍이 배에 뻥 뚫렸는데 심사숙고는 무슨.

이게 좆 된 게 아니라면, 아마 세상에 좆 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으윽……!”

조금 몸을 움직이자 묵직한 통증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가상현실이기에 통증이 현실과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어설프게 마취한 상태에서 상처를 헤집는 것 같아 불쾌하기 그지없는 감각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

도진은 이를 악물고 혹시나 살인적인 광선 포격에서 살아남은 다른 플레이어가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타고 녹은 암석과 자신이 떨어진 까마득한 틈새로 보이는 검은 하늘뿐.

‘젠장, 이번 이벤트는 정말 이렇게 실패하는 건가?’

하기야 융단폭격처럼 광선이 지상을 뒤덮고, 그 여파로 지반이 갈라지고 무너지며 사람들을 집어삼켰던 걸 생각하면 도진이 살아 있는 게 더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운 좋은 놈이 또 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고, 설령 몇 명 더 살아 있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그나저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게 랭커 중 최하위에 유리대포라는 멸칭으로까지 불렸던 자신뿐이라니.

도진은 어이가 없어서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하하, 하- 으윽……!”

다시 움직인 대가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진다.

도진은 꼼짝도 않고 있으리라 마음먹고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통증 대신 앞으로 닥칠 암울한 미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레벨 다운, 아이템 드롭, 접속 제한 같은 사망 페널티는 별문제가 아니다.

역대급 월드 이벤트 보상도 날아가겠지만, 그것까지도 감수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월드 이벤트 실패로 인해 발생할 페널티였다.

하다못해 월드 보스 레이드에 실패해도 월드 전체에 엄청난 영향이 발생하는 게 LOST라는 게임이다.

대표적으로 부활한 독각룡 갈란테 토벌에 실패했을 때 독기에 잠식된 지역은 지금까지도 죽음의 땅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정도 규모의 적을 막아 내야 하는 이벤트가 실패로 끝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도진은 우울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뫼비우스 이 거지 같은 새끼들. 적어도 클리어 각은 보이게 만들어야 할 거 아냐.’

도진에게 있어 LOST는 단순한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었다.

현실이라는 지옥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제 다리로는 걷지도 못하는 비참한 몸뚱이를 잊을 수 있는 도피처였다.

이런 도피처마저 없었다면 도진은 자신을 덮친 불행에 짓눌려 벌써 스스로를 죽였을 것이다.

물론 게임에 미쳐 살며 많은 걸 잃었고, 삶은 피폐해졌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도진은 LOST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세계가 어떻게 망가질지 가늠도 안 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도진은 그게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그리고 동시에, 겨우 그런 걸 두려워하는 자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한심했다.

“병신 새끼…….”

스스로에게 향하는 혐오에는 한계가 없다.

지독한 자괴감이 목을 졸라 온다.

분명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었지만, 그래도 봉합할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인생을 나락에 빠뜨린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도진 본인이었다.

도망치는 것에도, 한심한 자신에게도 모습에도 지쳐 버린 도진은 생각했다.

죽고 싶다고.

‘아니…….’

다시 한번 살고 싶다고.

그때였다.

“이번에도… 여기가 한계인가.”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자연스레 도진의 고개가 돌아갔다.

무너진 암석들 틈으로 비치는 하얀 인영이 보였다.

LOST 랭커들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전장에서, 홀로 수많은 몬스터를 학살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준 이번 월드 이벤트의 주인공, 성해공주.

헌데 지금은 그런 그녀조차 시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로 보였다.

찬란했던 백금발은 흙먼지와 피로 더럽혀졌고, 아름답던 백색 갑옷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온몸 곳곳에 보이는 심각한 부상들.

당장 눈만 감으면 시체처럼 보일 몰골에, 도진은 무심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성해공주…….”

도진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성해공주가 고개를 들었다.

은하수를 그대로 옮긴 듯한 성해안(星海眼)이 도진을 담았다.

“이번에도… 그대인가.”

도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이번에도라니? 그러고 보니까 방금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았다.

현실의 모습이 어떻든 간에 LOST에서 도진은 랭킹 998위에 빛나는 랭커다.

그것도 본인보다 3년이나 먼저 게임을 시작한 경쟁자들을 찍어 누르며 올라온.

그런 도진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성해공주가 뱉은 ‘이번에도’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은 키워드임이 확실하다고.

‘설마 이 상황에 히든 퀘스트가……?’

아니, 이런 상황이니까 히든 퀘스트다.

빌어먹을 뫼비우스 놈들이 어렵다 못해 더러운 난이도로 유저 괴롭히는 걸 즐기는 변태 새끼들인 건 이미 증명된 정설이다.

허나 그걸 감안해도 이번 월드 이벤트의 난이도는 너무했다.

그런데 애초에 깨는 게 불가능하게끔 난이도가 설정되어 있고.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지금 성해공주와의 대화에서 발생하는 히든 퀘스트라고 가정하면……?

앞뒤가 맞는다.

머리가 회전하면 회전할수록 도진의 심장박동이 거칠어졌다.

방금 전까지 인생에 회의를 느끼며 중증 우울증 환자처럼 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안다. 히든 퀘스트 하나에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이 얼마나 구제 불능처럼 보이고 한심한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도진은 이 세계에 중독될 대로 중독되었으니까.

“무수히 반복되는 나의 죽음에 어울려 주는 건 언제나 그대였지.”

반복되는 죽음. 새로운 키워드가 나왔다.

‘회귀자 콘셉트일 확률이 높겠군.’

도진은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 결론을 도출했다.

좀 더 신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점점 둔해지는 감각이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강제 로그아웃이 되기 전에 빠르게 히든 퀘스트를 얻어야 했다.

도진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죽음을 반복하고 있다고?”

성해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처음보다 두 번째의 내가 강했고, 세 번째는 그보다 더 강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강하지. 하지만 우습게도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약하구나. 전부 포기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사소한 힌트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던 도진의 표정이 처음으로 흐려졌다.

이건 히든 퀘스트를 발생시키기 위한 대화다.

쓸데없는 감정을 이입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진은 지칠 대로 지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성해공주의 말을 그저 NPC의 대사로 치부할 수 없었다.

감당하기 힘든 불행 앞에서 처참하게 뭉개져 폐인이 됐던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 탓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렵게 뱉은 도진의 말에는 적지 않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포기하면 안 돼.”

성해공주가 직시하며 묻는다.

“왜지?”

도진은 답하려 했으나…….

“그건…….”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혀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만 치며 살아온 자신이 과연 무수한 삶을 반복하면서까지 멸망에 맞선 그녀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도진의 침묵이 성해공주에게는 다른 의미로 비친 모양이었다.

“그대는 나를 동정하는가? 더없이 불행한 년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도진은 다급히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성해공주의 이어지는 말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고맙군.”

“……?”

황망히 바라보는 도진을 보며 성해공주는 소리 없이 웃었다.

“질투와 애정, 선망과 원망, 경외와 공포, 기대와 불안… 나는 수많은 감정과 시선에 둘러싸여 살았다. 제국 최강의 창이자 방패로서의 생은 그러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누구도 나를 동정하는 이는 없었어. 내 눈에 담긴 그 누구도… 나를 그런 눈으로 보아주지 않았었지.”

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해공주의 눈에 담긴 지독한 피로와 세월에 닳고 닳은 회한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꼼짝도 못 하고 압도되어 있는 시우를 향해 성해공주가 물었다.

“그대는 후회스럽고 후회스러워,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나?”

“있지.”

이번에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바라왔고, 심지어 방금 전에도 그와 같은 망상을 했기에 도진의 대답은 거의 본능적이었다.

대답을 하고 잠시 후에야 자신이 대답했음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였다.

워낙 빠르게 돌아온 대답이 우스운지 성해공주는 어깨를 들썩여 가며 웃었다.

그러면서 허공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장식물이었다.

그녀는 장식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긴… 후회 없는 생을 보낸 이가 몇이나 될까. 그대에게도 분명 바꾸고 싶은 것이 있겠지. 이건 반복되는 죽음이 외롭지 않도록 줄곧 말벗이 되어 주었던 보답이다. 그리고…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의무를 내팽개치는 못난 자를 동정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고.”

분위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제 곧 히든 퀘스트가 시작되리란 걸.

아쉬웠다.

무엇이, 왜 아쉬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사람다운 생각과 감정을 향유한 부작용인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참기 힘든 졸음마저 쏟아졌다.

‘젠장… 로그아웃되는 건가……?’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 성해공주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미 흘러간 그대의 시간을 돌려주마. 그러니 살아라. 후회와 얼룩 없는 생을.」

황족답게 근엄하고 딱딱한 말투였지만, 따뜻한 목소리였다.

* * *

뭔가 이상했다.

눈을 뜨면 얼룩덜룩한 캡슐(가상현실 접속기기)의 덮개가 가장 먼저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너머로 칙칙한 골방의 풍경이 비쳐야 정상이다.

그런데 보여야 할 건 보이지 않고, 웬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잔뜩 붙은 천장이 보였다.

문제는 저 유치한 스티커가 도진에게 매우 익숙하단 것이었다.

“꿈……?”

몽롱하게 웅얼거리던 도진은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에 놀랐다.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이건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 젊은 목소리였다.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오랜 기간 지속된 폐인 생활로 병들대로 병든 도진의 육체는 만성적인 통증과 피로감을 호소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만족스러운 숙면 끝에 깨어난 것처럼 나른하고 기분이 좋았다.

작지 않은 위화감이 하나둘 쌓여 간다.

그리고 그 위화감은 결국 몽롱한 정신을 순식간에 각성시켰다.

“허억!”

게슴츠레하던 도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자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하다. 예전에 살던 원룸이었다.

도진은 꿈인가 싶어 자신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치는 동시에 몸을 일으켜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멈춰 서서 바닥을 봤다.

멀다. 설 수 없게 된 이후로 이렇게 먼 바닥은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내가 걷네.”

황망히 중얼거린 도진은 떨리는 걸음을 내디뎠다.

우당탕.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때는 괜찮았던 걸음이 의식하고 나니까 엉망으로 엉켜 넘어졌다.

그러나 통증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도진은 주변에 잡히는 걸 닥치는 대로 의지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

거울 속에는 도진이 있었다.

사고로 장애를 얻기 이전의 젊고 활력 넘치는 도진이.

도진은 멍하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계속 봤다.

이것이 비현실이 아닌 현실이란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