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711화 (1,610/1,615)

전생검신 91권 01화

나는 복희의 말에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돈의 권능을 못 쓴다고? 그럼 일단 가면을 못 쓰는 거고 그 외에도 신력을 다 못 쓴다는 건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트리무르티를 발동해 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그걸 확인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키잉!!

‘……되긴 되는데?’

트리무르티를 발동할 때 나오는 삼면(三面)의 공간과 붉은 보석은 그대로 정신세계에 출현했다. 트리무르티라는 기술 자체는 멀쩡히 사용할 수 있는 걸 알아챈 것이다. 나는 그걸 알아채자마자 곧장 사대신기를 소환했다.

“아그니!”

우웅

그러자 아까처럼 화염의 신기 아그니가 총의 형태가 되어 내 손에 들렸다. 내가 이것저것 시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복희가 씩 웃으며 말하는 듯했다.

[ 눈치챘군. 혼돈에 속하지 않는 신들의 권능은 여전히 쓸 수 있다.]

“……!!”

그렇다. 사대신기는 우주의 근원이자 고대의 대신격인 사대신의 힘을 빌리는 것이니 혼돈이 금제되는 이 공간에서도 당연히 사용가능하다. 트리무르티는 브라흐마의 기술이었는데 그 또한 창조신이며 범천이니 혼돈으로 분류되는 신이 아닌 것이다.

‘사대신기와 트리무르티를 쓸 수 있으면 여전히 싸워볼만 하긴 해…….’

물론 싸울만 하다는 것과 이길 수 있다는 건 다른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걸 알게 된 후에도 이상해서 복희에게 물었다.

“브라흐마나 시바 비슈누가 쓰는 신력도 혼돈의 기질을 품고 있는데 어찌 트리무르티는 써지는 겁니까?”

[ 후후. 지금 생사대적인 내게 가르침을 구하는가?]

“…….”

[ 아주 좋아. 어차피 급한 건 자네이지 내가 아니니 느긋하게 가르침을 주겠네.]

복희가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 자네가 쓰는 기술이 브라흐마의 성명절기인 트리무르티라 알고 있네. 브라흐마는 창조신이니 다른 신들과는 별격(別格)이니 이 반고의 신좌에서도 그의 기술을 쓸 수 있는 거겠지.]

“……창조신이라는 게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겁니까?”

[ 그들은 중용(中庸)을 품고 있는 특별한 존재들이지. 창조의 권능이란 자네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이고.]

“흠.”

[ 물론 혼돈의 신 그 자체가 여기에 들어온다면 그대로 소멸될 테니 자네 동료들을 소환하는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걸세.]

그렇게 대꾸한 복희는 왜인지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 자, 그래서 이번엔 어떤 수를 써볼 셈인가? 뭐든 해 보게.]

크윽…… 완전히 얕보이고 있군!

복희의 저 태연자약한 태도는 자신이 질 가능성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삼황 복희라지만 저렇게나 방약무인하다면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우선 아그니의 총구를 복희에게 향해서 발사했다.

타앙!!

‘바즈라만큼은 아니지만 아그니도 충분히 신을 찢어발길 수 있는 위력이 있어!’

그리고 사대신기!

사실상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공격수단 중에서 최상의 공격력을 갖고 있으며 비교적 쓰기 쉬웠기에 첫 수를 아그니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그니의 흉탄이 발사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퓩.

“……?!”

[ 흠. 따끔하군…….]

이어진 상황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런…….”

아그니는 정확하게 복희를 적중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복희의 용린(龍鱗)에 흠집도 내지 못하고 살짝 박히고는 끝이었던 것이다. 복희가 살짝 근육에 힘을 주자 아그니의 탄이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는데 아무리 봐도 애교 수준으로 받아들인 게 분명했다.

세상에 이런 적이 있었나?

사대신기 아그니를 무효화시키거나 피한 적수들은 있었던 것 같지만 정통으로 맞고도 저만큼이나 벌레물린 것처럼 취급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여태껏 바즈라 다음가는 공격력을 보여왔던 아그니는 언제나 확실한 결과를 내 왔으므로 복희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건 믿을 수가 없었다. 웬만한 신이나 마왕들이 맞으면 고통에 울부짖었던 흉탄이 저토록 초라해지다니!

내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있자 복희가 말했다.

[ 백웅이여. 지금의 내 힘은 전성기를 넘어서서 최정점(最頂點)에 도달해 있네. 자네가 계약한 그 사대신기의 사대신 본체와 비교하더라도 내 격이 더 높겠지.]

“……!!”

[ 하물며 이곳은 반고의 신좌. 여기서 내 힘은 사실상 무한대나 다름없으니 기껏 신기를 쓰는 것만으로는 내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할 것일세.]

그, 그냥 단순히 격이 높아서 무시당한 거라고……?!

딱히 아무런 방어술법을 쓴 게 아니란 말인가?

‘괴물이다!!’

나는 지금의 복희가 흉신이나 전성기 황제를 떠올릴 정도의 절대강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과의 차이점이라면 그저 대화를 잘 받아준다는 것과 나를 선공하지 않는다는 것뿐, 어찌 되었든 지금의 내 역량으로서는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절대자가 분명한 것이다.

“으으윽……!!”

나는 이를 악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초조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상지투!

‘복희를 상대할 수 없다면 저 신좌에 있는 반고의 알을 훔치겠……!!’

저걸 훔치면 복희와 정면으로 싸우지 않아도 이길 수 있어!

나름대로 꼼수를 부려본 것이었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싸늘한 여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좀도둑 녀석. 여는 아무것도 안 하는 줄 아는가?]

푸콱!!

“크아아악!!”

그 순간, 나는 번쩍이는 흑광(黑光)과 함께 만상지투를 시전한 팔 한쪽이 허공을 붕 날아가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여와의 본체는 어느 새 흉측하게 변화한 한쪽 팔을 내게 겨누고 있었다.

[ 복희가 널 죽이지 말라고 해서 한번은 봐 주었다. 아둔한 놈!]

나는 여와 본체의 변화한 팔이 만상지투를 끊고 내 팔죽지를 순식간에 절단해 버린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 팔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기에 침음성을 흘렸다.

“……서왕모의 팔…… 천려오잔(天厲五殘)인가!”

[ 전생자라더니 별걸 다 알고 있구나.]

“…….”

나는 불길한 예감에 재빨리 신력으로 내 팔을 고치려 했다. 그러나 원래라면 신력으로 금방 재창조되었을 팔이 아무런 회복도 하지 못했고, 도리어 신경을 지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끄으으읍…… 으윽!!”

이, 이런 젠장!!

나쁜 예감이 맞았어!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쳐다보고 있던 복희가 껄껄 웃었다.

[ 천려오잔은 신력을 차단하고 회복불가능으로 만드는 보조효과가 있지. 대신전투(對神戰鬪)에서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효과라서 모든 신들이 서왕모를 두려워했던 것일세.]

“……!!”

[ 서왕모보다 강한 신격조차 몸을 사릴 수밖에 없지. 서왕모에게 잘못 맞으면 신조차도 평생가는 장애가 생기니까.]

나는 지금 눈앞의 삼황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황제나 흉신처럼 직접 강대한 힘으로 겁박해오지 않고 수비를 하고 있지만 사실 저들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우주의 절대자들인 것이다.

‘제길! 천려오잔을 한 번 더 맞으면…… 본체에 맞기라도 하면 즉사야!’

물론 외신 반고가 내 전생을 막는만큼 여기서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죽은 시간만큼 내가 반고의 부활을 막을 시간은 크게 줄어드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무조건 패배하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복희에게 말했다.

“……복희. 그냥 나를 죽이면 편할 텐데 왜 굳이 죽이지 말라는 겁니까?”

[ 글쎄.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적에게 그런 걸 하나하나 물어보는 자가 어디있나, 후후.]

“…….”

[ 뭐 굳이 궁금하다면 이야기해주지. 지금 자네에게는 타살을 전제로 발동하는 인과율이 걸려 있는 걸로 보이는군.]

“뭐라고요?”

[ 자네가 의도한 건지 아닌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눈에 뻔히 보이는 함정을 밟는 바보가 아닐세. 안 죽이고 느긋하게 상대해주도록 하겠네.]

“……!!”

나한테 함정이 걸려 있다고? 대체 뭐지?

나는 뜻밖의 사실에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복희의 치밀함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당장 죽지는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쓸 수 있는 수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본능에 맡기고 아무거나 시도할 수는 있다. 그건 내 자유였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의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나는 더더욱 봉쇄당하고 종래에는 눈만 멀뚱히 뜨고 있는 멍청이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복희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싸움이었기에, 나는 마치 내 모든 행동을 복희에게 조종당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아…… 안 돼. 지금까지의 적들처럼 복희를 상대하면!! 복희를 상대로 본능에 맡기고 행동하면 더 쉽게 당할 뿐이야!’

나는 그제서야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아무 패나 내버리면 눈앞의 현룡 복희의 계책에 휘말릴 게 뻔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으나 그걸로 굳이 나를 직접 패지 않아도 내가 제풀에 지쳐서 지게 만들 수 있는 게 복희였다. 그리고 그런 복희를 상대로 어지간한 기책(奇策)은 도리어 복희를 유리하게만 만들어줄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지금 복희의 우위를 뒤집고 이길 수 있지?

어떻게 해야 반고의 부활을 막을 수 있는 거지?!

바로 그때였다.

[ 백웅. 들리나?]

나는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 뛸듯이 기뻤다. 그리고 생각으로 의지를 전했다.

[…… 제갈사!!]

아공간에 있던 제갈사가 깨어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황금월이 죽으면서 그에게 걸려 있던 수면의 술법도 풀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제갈사는 왠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 먼저 네가 알아둬야 할 건…… 지금 상황은 극복이 불가능한 외통수다. 너도 느꼈겠지만 복희는 이미 질 수가 없는 판을 깔아 버렸다.]

[…….]

[ 지금 상태에서는 나도 답이 없다. 좀 더 정보가 필요하니 복희에게 질문을 해 봐라.]

[ 어떤?]

나는 제갈사의 지시를 듣고는 잠시동안 팔이 잘린 아픔을 잊기 위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복희에게 말했다.

“복희. 분명 내가 마지막에 봤을 때는 테스카틀리포카와 당신들이 혈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전투를 무시하고 이 반고의 신좌로 올 수 있었던 겁니까?”

[ 구천현녀가 자기 할 일을 다 해 주었기 때문이지.]

“구천현녀가? 무슨 말입니까.”

[ 자네가 구천현녀의 삼황오제 소환을 효율적으로 막았으나 본디 계획을 세울 때는 실패하는 경우도 미리 대비를 하는 법. 그 술식에는 구천현녀의 소환이 중도에 실패할 경우 구천현녀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서왕모를 소환하게끔 해 놓았는데, 우리는 또다시 그 서왕모를 제물로 바쳤다네.]

“……?!”

[ 자네가 츠쿠요미를 잡으러 전장을 이탈하자마자 서왕모를 제물로 만들어 버렸지. 그 후 우리가 그 전장을 이탈해서 반고의 신좌로 미리 올 수 있었던 것일세.]

나는 복희의 말에 황당해서 말했다.

“이, 이 반고의 신좌는 아무리 당신들이 삼황이며 반고의 적자라도 쉽게 올 수 없는 곳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서왕모 하나를 제물로 바쳤다고…… 아무리 서왕모가 최강의 화신이라지만…….”

[ 자네 말이 맞아.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 우리는 이 신좌로 와서 우주의 균형을 뒤집어엎었겠지. 통상적으로는 그런 식으로 신좌에 오는 건 불가능하지만, 츠쿠요미가 있었기에 가능했네.]

“츠쿠요미?”

[ 츠쿠요미만의 기술인 윤회지법(輪回之法)이라는 게 있더군. 그 술수의 힘을 빌어 반고의 신좌로 직접 오는 게 가능했다네.]

“그, 그런 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 츠쿠요미도 전생자였네. 그것도 자네보다 훨씬 많은 회차를 쌓아온 전생자. 그는 이미 반고의 신좌로 통하는 술식을 모두 해석했으며 인과율의 파장을 맞출 줄 알더군. 이미 해답을 알고 있는 자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지. 자네가 전생하면서 동료들에게 기연을 줬던 것과 다를 바가 없네.]

“…….”

뭐지? 아까 상대한 츠쿠요미는 강해보이긴 했지만 절대 상급신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놈의 윤회지법이란 게 그렇게 강력한 술법이라면 왜 그 술수를 쓰는 본인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머릿속에 의문을 띄우고 있을 때 복희가 말했다.

[ 또 하나…… 츠쿠요미는 그동안 검은 달을 이용해서 전 세계의 인과율을 지속적으로 흡수해 왔었네. 그만큼의 인과율을 하나의 제물에 몰아주었으니.]

“검은 달……? 그걸로 인과율을 모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이어진 복희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충격을 받고 말았다.

[ 츠쿠요미가 왜 세상에 대홍수를 일으켰다 생각하는가? 당연히 인과율을 모으기 위해서였다네.]

“……뭐라고요?”

[ 인간의 역사에 남겨져 있는 치수(治水)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지. 삼황오제들은 은둔하고 있던 중에 인과율을 얻어서 자신의 힘이 약화되는 걸 방지하려 했고, 그걸 위해 츠쿠요미에게 의뢰했었네. 자기자신은 몰라도 부하들에게 먹이를 줘야 하니까.]

“서, 설마.”

[ 츠쿠요미가 대홍수를 일으킨 동안 떠 있던 검은 달은…… 그 기간 동안 세계의 영혼을 흡수한 것일세. 그리고 영혼을 소화하여 인과율로 만들어서 츠쿠요미가 우리 삼황오제에게 분배해준 거였지. 광범위한 작업이었기에 서방의 신격들과도 협력했고.]

“……!!”

[ 우리는 츠쿠요미에게 일을 잘 해준 대가로 동영의 대지에 간섭하지 않고 놈에게 신력을 쌓을 수 있는 선물을 주었던 거였지. 일종의 거래였던 것일세.]

그렇게 말한 복희는 쓴웃음을 주었다.

[ 나는 그동안 미쳐 있었기에 상황을 잘 몰랐지만, 아무래도 여와는 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츠쿠요미와의 거래에 동의했던 모양일세. 천계의 신선들도 모르게 말일세.]

“…….”

그제서야 나는 고대 대홍수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삼황오제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진실은 명확했다.

삼황오제가 인과율을 먹기 위해 츠쿠요미에게 의뢰해서 벌인 참극!

나는 머릿속에 과거에 들었던 곤 임금의 절규가 생각났다. 그는 삼황오제에 대항해서 싸우다가 결국 타락하여 마왕이 된 후 황제에 의해 봉인당했었다.

[ 흐흐…… 나 또한 그랬었지…… 내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모든 걸 다 바쳤었는데…… 삼황오제가…….]

[ 그렇다…… 삼황오제가 아닌 삼황오제의 대리자, 흉행의 집행자라 할 수 있는 그 신격이 출현했을 때…… 흑월(黑月)이 중천에 떠오른 걸 보았다. 그 신의 신력에 감응한 자연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사노오의 말도 기억났다.

[ 삼황오제가 서방의 [옛 지배자]들과 짜고 인류를 한 차례 몰살시킬 작정으로 일으켰던 세계적인 대홍수. 나는 그걸 막으려 하다가 삼황오제의 손에 봉인당했다.]

나는 모든 대홍수의 진실을 알게 되니 홀가분해지면서 동시에 기가 막혔다. 그 말대로라면 스사노오는 자기 형제가 사실 모든 흉계의 근원이라는 걸 까맣게 모른 채 꼭두각시처럼 휘둘리다가 처참하게 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희에게 외쳤다.

“……인간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냥 삼황오제가 간식 먹으려고 모든 인간을 전멸시키고 문명을 없애 버리려 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 흐음. 직관적인 비유로군.]

“빌어먹을……!! 신이면 전부 그렇게 제멋대로 해도 되는 겁니까!”

내가 버럭 외치자 복희는 왠지 뚱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이제 와서 자네가 인류를 구하려 하는 것도 위선이며 기만인 것 같네만.]

“뭐…… 뭐라고요?”

[ 지금은 자네의 목표가 바뀌었다지만 원래 목표는 진공가향 아니었나? 어차피 그것도 인간이 망하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말일세.]

“…….”

[ 그리고 진공가향이 목표가 아니라 해도 문제 아닌가? 어차피 전생하면 다음 생으로 가게 될 텐데 그럼 이전 전생에 있었던 인류는 어찌 되지? 그냥 없던 걸로 치고 새로 시작한다 그건가? 자넨 그게 궁극의 기만이라 생각지 않나? 어찌 보면 자네는 우리 삼황오제가 일으킨 대홍수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짓을 매번 저지르고 있네만…….]

“그, 그건…….”

내가 순간 할 말을 잃고 얼어붙자 복희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 츠쿠요미가 최근 우리와 접촉했을 때 자신이 전생자라는 걸 밝혔지. 그때 츠쿠요미는 지금 내 질문에 뭐라 대답했는지 알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하셨군요. 놈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 전생자조차도 누군가의 의도대로 휘둘리는 존재일 뿐이므로 진정한 힘을 손에 넣지 못하면 그 어떠한 의문도 쓸모없다고 하더군. 이 세계의 진리는 약육강식(弱肉强食) 그 자체라고.]

“…….”

[ 그는 힘을 숭앙하는 자였네. 그리고 자네 이상으로 세상을 단순하게 생각하려는 자였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복희는 나를 주시하며 말했다.

[ 나도 츠쿠요미처럼 세상을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네. 절대신이 되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말일세…….]

절대 내게 양보를 해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큭, 젠장.’

뭔가 대화는 많이 나눈 것 같지만 이 대화가 쓸모가 있는 거였을까?

내가 초조해하고 있을 때였다.

[ 백웅. 잘했다. 복희에게서 충분히 정보를 얻었어.]

제갈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제갈사의 목소리에 뛸듯이 기뻐졌다.

‘그래, 제갈사라면 뭔가 답이 있을 거야!’

나는 급히 제갈사에게 물었다.

[ 제갈사!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이제 보여?!]

[…….]

왠지 침묵하던 제갈사가 이윽고 뜻밖의 말을 했다.

[ 본디 복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너를 이만큼 궁지에 몰 수 없었다. 전지능력을 지닌 츠쿠요미가 전폭적인 지원을 했고 특히 윤회지법을 써서 편법으로 반고의 신좌에 들어온 게 결정적이었던 거지. 그러므로 해법 또한 마찬가지다.]

[ 마찬가지라는 건…….]

[ 츠쿠요미의 힘 때문에 기울어진 판은 츠쿠요미로 뒤집는다는 거지.]

나는 제갈사의 말 뜻을 알아채고는 말했다.

[ 설마…….]

[ 그래. 지금 네 품속에 있는 츠쿠요미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

츠쿠요미의 가면!

나는 아까 빼앗았던 츠쿠요미의 가면이자 놈의 영혼이 담겨 있는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을 갖고 있었다. 제갈사의 말은 그 츠쿠요미의 가면을 쓰게 되면 이 상황을 역전할 수도 있을 거라는 계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 복희한테서 들은 얘기 때문에 머뭇거렸다.

[ 하지만…… 이 반고의 신좌에서 모든 혼돈의 권능은 무력화 되잖아. 아까 내가 쓰려던 가면의 술법도 전부 파괴되었고…… 이 츠쿠요미의 가면을 쓰면 즉시 파괴되지 않을까?]

[ 백웅. 너는 지금 어떻게 이 반고의 신좌에서 살아서 숨쉬는 거지?]

[ 어?]

[ 잘 생각해봐라. 아까 복희는 혼돈의 신 그자체가 이 신좌에 진입하면 소멸된다고 했다. 그러나 너는 소멸되지 않았고 멀쩡히 살아 있어. 그 말은, 전생자란 혼돈의 신으로 판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 또한 트리무르티로 소환한 가면은 깨졌으나 네 품속에 있는 츠쿠요미의 가면은 여전히 형태를 온존하고 있다. 그것은 츠쿠요미의 가면 또한 혼돈의 권능이나 신격으로 판정되지 않는다는 말이야.]

[ 서, 설마…….]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크게 놀랐다.

[ 바로 그거다. 전생자는 혼돈의 신도 질서의 신도 아니야. 마찬가지로 츠쿠요미도 ‘전생자’로 판정되므로 이 공간에서 멀쩡히 힘을 쓸 수 있는 것이고 소멸되지도 않는다. 즉 츠쿠요미의 영혼이 고스란히 봉인되어 있는 그 가면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이 반고의 신좌에서 사용가능한 가면인 거다!]

[……!!]

[ 엄밀히 따지면 가면 그 자체가 아니라, 가면의 형태를 한 전생자일 뿐이니까!]

그, 그렇구나!!

나는 순식간에 그만큼이나 계책을 짠 제갈사에게 감탄했다. 도저히 일말의 희망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대화 몇 마디로 이만큼이나 유추할 수 있다니!

나는 제갈사와 머릿속으로 대화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머릿속으로 말했다.

[ 좋았어! 지금 당장 츠쿠요미의 가면을 쓰면 되는 거지?]

[ 그래. 가면을 써서 츠쿠요미만의 전용기술인 윤회지법(輪回之法)이란 것을 사용해서 역전할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거다. 지금 네가 가진 기술만으로는 절대로 눈앞의 복희를 타파할 수 없지만, 그건 전대 전생자의 전용기술인 만큼 뜻밖의 가능성을 갖고 있을 거야.]

[ 알았어. 그럼…….]

[ 잠깐.]

[ 왜 그래?]

[ 문제가 두 가지 있다.]

[ 문제?]

내 반문에 제갈사는 전에 없이 침중한 말투로 말했다.

[ 첫 번째…… 가면을 써서 윤회지법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해결책이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아까부터 네게 계책을 진언한 걸 망설인 이유지. 모든 걸 운에 맡기는 건 비참한 일이니까.]

나는 이를 악물었다.

[…… 크윽. 어차피 방법이 없으니까 그건 감수할 수 있어. 두 번째 문제는 뭐야?]

[ 이게 진짜 문제다만…….]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일생일대의 각오를 해야함을 깨달았다.

[ 두 번째. 츠쿠요미의 영혼이 고스란히 봉인되어 있는 그 가면은 너보다 훨씬 많은 업(業)을 쌓아온 강대한 전생자의 영혼 그 자체다…… 그리고 너도 과거에 남극선옹의 가면을 쓰고 느꼈겠지.]

[……!!]

그때 나는 남극선옹의 능력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남극선옹 본인이 된 것처럼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말았으니 -

[ 그래…… 자칫하다가는 너는 그대로 백웅의 자아를 잃고 전생자 츠쿠요미가 되어 버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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