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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710화 (1,609/1,615)

전생검신 90권 20화

대륙의 수백 배가 넘는 그 장대한 본체의 크기가 아니었으나 내가 기억하는 그의 용체(龍體)와 틀림이 없었다. 또한 그가 내뿜고 있는 거대한 신력(神力)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복희의 성질과 똑같았으니 어찌 착각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나는 복희의 옆에 있는 이계의 존재 같은 무언가를 보고도 침음성을 흘렸다.

“여와(女媧)…….”

그랬다.

저 알의 양옆에 서 있는 강대한 신적 존재들 - 그것은 바로 내가 알고 있는 삼황(三皇), 복희와 여와 남매였던 것이다.

본체를 드러낸 채 이 신령스러운 공간에 그들이 나타나 있는 이유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큰일났다…….’

지금 상황은 아무리 봐도 내가 큰일 난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저 삼황 두 명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를 마음속에서 재어봤지만,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나로서는 탁록시대의 복희조차 일대일로 이길 가능성이 까마득하게 낮은데, 지금 눈앞에 있는 저 복희는 부활해서 전성기의 힘에다가 반고의 도끼까지 손에 얻은 존재였다. 그 복희만 하더라도 이길 수가 없는데 여와 본체까지 합공하면 도대체 무슨 수로 당해낼까? 지금 내가 저 둘을 상대로 승리할 가능성은 백만 분의 일도 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의외로 눈앞의 삼황들은 바로 공격해오려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렇기는커녕 그저 알 주변을 지키며 떠날 생각이 없다는 게 느껴졌다.

대신에 복희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웅 그대에게 개인적 유감은 없네. 그저 그대가 전생자이기에 적대할 수밖에 없게 된 것뿐.]

“할 말은 그게 전부입니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서 이를 으득 악물며 말했다.

“난 설마 당신이 배신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내가 전생자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신뢰를 주었기에 반쯤은 아군이라 생각했던 복희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

잠시 침묵하던 복희가 말했다.

[그대라면 아마 알고 있겠지…… 태초에 나와 여와가 어버이 반고를 도와 [기어오는 혼돈]의 군세와 수억 년 이상 항전했다는 사실을.]

복희가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았기에 나는 감정을 추스리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랬다고 알고 있습니다. 탁록시대의 당신이 내게 직접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던가? 그럼 얘기가 빠르겠지. 나는 [기어오는 혼돈]이 영겁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자의 약점을 찌를 방법을 연구했네. 그리고 츠쿠요미와 손을 잡고 어버이 반고를 부활시키려 노력하던 중 한 가지 뜻밖의 사실을 깨달았지.]

“뭘 깨달은 겁니까?”

[그자의 약점은 사실 외신 본체의 약점이 아니라는 걸…… 내가 그때 알아냈다고 생각한 약점이란 건 [기어오는 혼돈]의 가장 강력한 가면의 약점이었네. 약점을 찌르게 되면 가장 강력한 가면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언정 본체까지 쓰러뜨릴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나는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츠쿠요미가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었던 사실이겠지.]

“……!!”

뭐지? 그렇다면 정말로 [기어오는 혼돈]과 니알라토텝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건가?

‘그리고 츠쿠요미는 전생자의 지식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고……?’

뜻밖의 사실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복희는 약간 우울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때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지…… 그리고 전생자가 아닌 이상…… 이 현세에서 그 어떤 존재가 어떠한 방식으로 힘을 쌓더라도 외신에게 타격을 줄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네.]

그렇게 말한 복희는 나를 심유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굴레]를 초월하지 못하면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네……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굴레를 초월하는 방법을 손에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

나는 복희의 말뜻을 깨닫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결국…… 당신도…… 내 천암비서를 노린 겁니까? 전생자가 되려는 거란 말입니까?”

[그렇네. 그걸 위해 츠쿠요미와 손을 잡았지.]

“……복희. 이 전생능력을 쓰고 있는 내가 말하기도 그렇지만, 이건 마냥 좋은 능력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서(書)가 나를 갖고 노는 것 같단 말입니다. 어쩌면 이걸 쓰고 있는 내가 가장 불행해질지도 모르는데 이딴 걸 빼앗겠다는 말입니까……!!”

삼황이라는 천상의 고대신조차도 전생능력을 얻으려는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단 말인가!

내가 쥐어짜듯 말하자 복희는 말했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지. 그대 또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기약 없이 반복을 거듭하겠다 맹서(盟誓)하지 않았던가? 나도 모든 걸 감수하겠네.]

“……!!”

[이해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네. 자네의 말대로 천암비서 그 자체가 불행이라면, 나는 이 세상을 혼돈의 운명에서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그 불행을 짊어져 주지…….]

“복희…….”

나는 마음 깊은 곳이 쓰라리게 아파짐을 느꼈다.

복희가 츠쿠요미 같은 경우와 달리 진심으로 질서진영의 승리와 세계의 선(善)이 바로 서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내 천암비서와 전생능력을 손에 넣으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복희에게 일말의 사심이라도 있었다면 진작 눈치를 챘을 테지만, 그 또한 자신만의 대의(大義)를 위해 선택을 한 것이었다.

‘복희 또한 천암비서가 얼마나 흉맹한 것인지 눈치를 채고 있다. 그러나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기어오는 혼돈]을 없애고 세상을 선한 흐름으로 이끌려는 것인가…….’

복희는 사실상 절대 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여태껏 그가 상고시대의 강력한 고대신격으로 살아오며 수많은 우주의 약소종족을 구원하고 혼돈을 구제했으며, 인간에게도 술법과 보패 등의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게다가 복희가 천계를 설립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여전히 혼돈의 마물들에게 잡아먹히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으리라.

그런 복희가 하는 말은 여태껏 내가 마주쳐왔던 적수들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여태껏 그가 행해온 선업(善業)만 하더라도 충분히 그의 말을 뒷받침해주었다.

동시에 내 마음도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 복희라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도 더 이상 이 미친 모험을 계속하지 않아도……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 채…… 복희에게 세상을 구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절대자에 가까운 힘을 지닌 복희라면 몇 회차 지나지 않아서 외신에게까지 송곳니가 도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복희는 내게 개인적 감정이 없으니 나를 행복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기꺼이 들어줄 것이리라. 또한 내 동료들의 운명 또한 구제해 주리라.

“…….”

그런 내 마음을 이미 읽은 건지 복희가 천천히 말했다.

[자네와 자네의 모든 동료들을 반드시 구해주겠다고 내 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나는 자네 또한 억지로 말려든 피해자라고 생각하네. 또한 내게 전생능력을 준다면 충분히 세계의 구원자이자 나의 은인이라 할 만하지.]

“복희…… 진심입니까.”

[진심일세. 나는 자네를 설득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부른 것일세.]

“…….”

나는 복희와 여와 사이에 있는 거대한 알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복희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반고는 아직 부활하지 않은 거 아닙니까? 어떻게 황금월을 단숨에 해치우고 저를 여기로 데려오신 겁니까.”

[…… 그렇군. 투지가 살아 있어.]

복희는 뭔가를 눈치챈 듯 훗 하고 웃었다.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캐낸다는 건, 이 판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군.]

…… 역시 복희였다.

멍청한 척하는 내게 말려들지 않고 단숨에 내 진심을 알아챈 듯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옛날이었다면 당신에게 그냥 전생능력을 양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한두 마디 감언이설에 넘어가기에는…… 내 맹세 또한 그렇게 가벼운 무게가 아닙니다.”

[맹세라. 어떤 맹세인가?]

“최소한 검신(劍神)! 그것도 되지 못했으면서 포기할 리가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무신도 될 건데 벌써 포기하겠냐고!

그리고 그 외에도 동료들과 그 수많은 고난을 함께 헤쳐나왔고 그때마다 마음속에 큰 다짐을 했는데…….

아무리 복희가 절대 선이라 하더라도 이런 데서 포기할 것 같으냐!

[…….]

복희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한참 후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하…… 검신이라? 과연…… 어째서 탁록시대나 지난 전생에서 내가 그대에게 많은 후의(厚意)를 베풀었는지 비로소 실감이 나는군! 그대는 정말 재밌는 자야.]

“질문에 대답을 전혀 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내가 따지듯이 말하자 복희는 웃음을 서서히 그치며 말했다.

[하하…… 그래. 자네 말대로 아직 반고는 부활하지 않았네. 이제 겨우 2할 정도 부활했을까? 허나 그 약간의 힘을 인과율을 이용해 빌어와서 그대를 데려온 것이지.]

그랬던 거군.

나는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질문했다.

“황금월은 왜 죽이신 거지요?”

[글쎄. 난 딱히 어버이의 권능에 그걸 부탁하지는 않았네. 허나 그건 아마 어버이 스스로의 뜻이겠지. 황금월이 무척 거슬리는 존재라 생각한 것일지도…….]

“흠.”

[그리고 그대는 황금월과 혼백이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이더군. 그래서인가 자네를 여기 데려왔을 땐 이미 죽어 있었다네. 그런데 좀 기다리니까 알아서 부활해서 깨어나는 걸 볼 수 있었다네. 나나 여와가 딱히 그대에게 부활의 주문을 걸지는 않았지.]

“…….”

[눈치챘나 보군.]

나는 복희의 말에서 상황을 눈치채고는 힘겹게 말했다.

단 하나의 진실만이 지금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삼황 두 명이 내 앞에 있음에도 딱히 선공하지 않는 이유.

그들이 전혀 서두르지 않는 이유.

아니,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이유…….

“외신 반고가…… 아직 부활하지도 않았는데 저의 전생을 막고 있는 거군요…….”

내 말에 복희가 빙긋 웃었다.

[정답일세.]

제기랄!!

반고가 내 전생을 막고 있다는 진실을 복희의 입으로 확인하게 되자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외신이 내 전생을 막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머리가 하얗게 비는 느낌이다. 다른 경우와는 차원이 다른 시련이었기에 내가 멍하니 있자 복희가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몇 가지 해법을 말해줘도 될까?]

“…….”

[첫째. 외신 반고가 부활하기 전에 우리 둘을 모두 쓰러뜨리고 반고의 알을 소멸시킨다. 둘째는 외신 반고가 부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반고를 쓰러뜨린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꿔서 반고의 소환을 취소시키는 경우가 있겠군.]

“……놀리시는 겁니까? 전부 가능성이 없잖습니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첫 번째 경우이지만 과연 지금의 내가 저 복희와 여와, 삼황의 둘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복희는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흐음, 그렇군…… 가능성이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 또한 앎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공격해서 날 없애 버려도 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여유만 부리고 있는 겁니까!”

내가 거칠게 외치자 복희는 의외의 말을 했다.

[아니. 내 입장에서는 이게 최선일세. 나는 자네를 선공(先攻)하거나 봉인하려 들지 않을 것이야. 내 옆에 있는 여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일세. 물론 자네가 도전한다면 싸워주지.]

“……?!”

[유리한데도 왜 그러느냐는 표정이군. 사실 나는 츠쿠요미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네의 행적과 과거를 전해 들었고, 자네라는 전생자를 어떻게 해야 가장 쉽게 상대할 수 있는지 결론을 내렸다네.]

이어진 복희의 말에 나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자네를 섣불리 겁박하고 봉인하려 들었던 자들은 예외 없이 역풍을 맞거나 뜻밖의 변수 때문에 상황이 뒤바뀌는 일을 겪었네. 알 수 없는 운명의 흐름 같은 게 그런 식으로 자네를 봉인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아 버리는 편이지. 나는 그런 변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자네에게 선공을 함으로써 가능성을 주는 것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다네.]

“그, 그 말은…….”

[가만있을 생각이라네. 자네는 우리를 공격하든, 아니면 여기서 도주하든 마음대로 하게나.]

“…….”

나는 황망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 있는다고……? 저렇게나 유리한데?’

지금 복희의 신력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강대했다. 몸뚱이는 작아졌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은 말 그대로 정점(頂點)의 수준이라, 나 정도는 10명쯤 몰려와도 못 이길지도 몰랐다. 과거 전성기 공손헌원을 연상케 했으니 그가 반고의 도끼를 얻고 난 후에도 또 다른 힘의 상승을 이룩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선공하지 않고 그저 관망만 하겠다니?

하지만 나는 그게 도리어 더욱 무서운 복희의 한 수이자 공격임을 깨달았다.

‘변수를 막는다…… 결국…… 나는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패배하는 거야!’

내가 여기서 도주하더라도 결국 반고는 부활할 것이다. 복희는 그런 확신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어차피 부활한 외신 반고한테 죽을 것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 이 공간에서 결판을 내지 못하면 어차피 끝장나는 것이었으므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야 했지만, 이 상황에서 복희와 여와를 상대로는 승산이 1푼도 되지 않았다.

우우웅!!

게다가 복희는 선공만 하지 않을 뿐, 이미 그의 몸 주변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반고의 도끼를 소환한 후였다. 반고의 도끼 때문인지 복희의 신력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저런 상대를 선공하다니 원래 나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도주를 선택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으…… 으윽…… 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겁니다!!”

하지만 다른 수가 없어! 어떻게든 전투를 시도해보는 수밖에!

‘일단은 삼제(三帝)의 가면을…….’

나는 이를 악물며 그대로 초장부터 내가 아는 것 중 가장 강력한 조합법인 삼제의 가면을 트리무르티로 합쳐서 복희와 싸우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트리무르티를 발동한 순간, 나는 갑작스럽게 트리무르티의 술법이 풀리는 것을 깨달았다.

콰칭!!

“……?!”

나는 머리에 큰 두통이 찾아옴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삼제의 가면이 깨져 버리는 환영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권능의 발현이 깨진 것은 처음이었기에 당황하고 있을 때 복희가 말했다.

[가면의 능력을 사용한 모양이군. 허나 이곳이 어디인지를 몰랐던 모양일세.]

“무…… 무슨 말입니까? 여긴 어디죠?”

[아까부터 자네의 모든 혼돈의 힘이 봉쇄되는 걸 느꼈겠지…….]

이어진 복희의 말에 나는 점점 더 승산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은 반고(盤古)의 신좌(神座)…… 태초에 우리가 태어난 요람! 이곳에서 모든 혼돈의 권능은 봉인되니, 자네의 장기라 할 수 있는 가면의 능력은 모두 봉인된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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