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709화 (1,608/1,615)

전생검신 90권 19화

나는 놈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했다.

“외신의 이름? 그게 왜?”

[…….]

내 말에 황금월은 조금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전생자여. 너는 그 의미를 잘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 뭔가 대단한 것 같긴 하지만…… 이미 강력한 마도서(魔道書)에는 웬만한 외신들의 진명(眞名)이수록되어 있지 않냐? 마법주문이란 것도 그 진짜 이름을 부름으로서 힘을 빌려오는 걸 텐데…… 이미 널리 알려진 지식인 거 아니냐.”

내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방금 얘기했던 것은 과거 제갈사에게 마도에 대해 배울 때 들었던 것이고, 애초에 마법주문 자체가 [옛 지배자]나 외신의 이름을 모르면 성립하지 않는 공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외신씩이나 되는 존재들이 이미 널리 알려진 공용지식을 또 내게 알려준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황금월이 웃는 듯했다.

[…… 후후…… 이만한 위업을 달성한 전생자 치고는 생각보다 마도의 지식이 얕군. 마도서에 적혀 있는 외신의 이름은 진짜 이름이 아니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뭐라고?! 무슨…….”

[하찮은 필멸자들이 아무리 목숨을 건다고 한들 그 위대한 이름을 올바로 이해하고 미치지 않은 채 기억할 수 있다 생각하는가? 그들이 알고 있는 건 외신의 진짜 힘의 편린을 담은 조각일 뿐…… 진짜 이름은 알려진 적이 없다.]

“……!!”

[인간의 표현으로 하자면…… 그것조차 일종의 가명이 적힌 명함 같은 것일 뿐이지…… 그것만으로도 필멸자들은 충분히 잘 써먹는 것이다. 또한 [옛 지배자]들조차도 외신의 진짜 이름을 아는 자는 극소수……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황금월의 눈이 파르스름하게 빛났다.

[그리고 외신들이 그런 겉치레가 아닌 진짜 이름을 그대에게 전한다는 건…… 하계의 타 존재들과 맺은 장난 같은 계약과 달리…… 그대와 동등한 계약관계를 맺을 생각도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진명을 담은 계약이란 아무리 외신이라 하더라도 의무를 피할 수 없는…… 쌍방의 이름을 건 계약이기 때문이지…….]

“그, 그런 거냐?”

[그렇다…… 이만한 권리를 하사한 일은 아마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도 거의 없겠지…….]

“…….”

외신의 진짜 이름을 이용하면 그 상대와 동등한 계약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차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음…… 뭔가 내가 모르는 활용법이 더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 써먹기에는 뭔가 막연한 권리였다. 나는 나중에 책사나 머리 잘 쓰는 녀석들한테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고민하다가 황금월에게 말했다.

“근데 내가 이 권리를 받고 나서 그냥 죽어도 상관없지 않냐?”

[뭐?]

“그렇잖아. 다음 생에도 이 권리가 넘어갈 건데.”

[…….]

“대답 좀…….”

내 말에 잠시 침묵하고 있던 황금월이 약간의 노기를 띤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쩌라는 거냐! 죽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가!]

“아 왜 화를 내고 그러냐…….”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은 없다. 어리석게 죽으려 하지 말고 그냥 살도록 하라.]

예전이었다면 저 정도로 상대가 밀어붙이면 찔끔해서 그냥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에 없이 감이 예리해져 있었기에 상대가 아직도 뭔가 숨기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예리한 눈으로 황금월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넌 아마 츠쿠요미의 모든 힘을 흡수했을 건데 기억도 함께 흡수했겠지? 그러면 츠쿠요미가 현세에 내 전생을 방해하려고 어떤 함정을 팠는지 알고 있지 않냐?”

[…….]

“그 함정이 뭔지 말해줘. 그걸 알아야 죽든가 살든가 하지.”

[그런 건 모른다. 무슨 함정을 팠는지 내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흠, 그래……?”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한 후 모든 신력을 모아서 권능을 시전했다.

규룡(虯龍)의 권능!!

우웅

그와 동시에 내 눈에는 츠쿠요미의 육신을 지닌 황금월의 모습이 은은하게 빛나 보였다. 그리고 놈의 몸 주변에는 시뻘건 빛이 감돌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래. 곤의 말대로 저건 거짓의 붉은빛…….’

그리고 붉은빛을 확인한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하나의 진실을 알아채고는 눈을 부릅떴다.

“……!!”

이런…… 개 같은 상황이…….

츠쿠요미 이 개새끼가!!

나는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굳어 있었다. 그런 내 기척을 살피던 황금월이 말했다.

[무슨 권능을 썼지?]

“……규룡의 권능…… 곤 임금이 삼황오제 요순의 침식능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술수다.”

이어진 내 말에 황금월이 약간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이 능력은…… 상대가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을 알아채게 만들어 주지.”

이런 상황에 쓰기에 딱 좋은 능력.

이번 30번째 삶 초반에 얻어둔 이 능력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

“능력의 발동조건은 상대의 몸 근처에 거짓을 말하는 붉은빛 영기를 확인하는 것…… 발동횟수에 제한이 있는 만큼 지금의 내 신력으로 시전하면 더없이 강력해지지.”

[이런…….]

“네가 숨기고 싶은 진실은 방금 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를 악물며 씹어뱉듯 말했다.

“이런…… 개 같은 새끼들……!! 진짜 미친 거 아니냐?! 나 하나 전생을 방해하려고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무래도 츠쿠요미의 계획을 알아챈 것 같군.]

“그래!! 알아챘다!!”

나는 버럭 소리를 쳤다.

“외신 반고를 부활시킨다고?! 이런 씨발 놈들이!!”

그렇다.

방금 전 규룡의 권능으로 알아낼 수 있었던 ‘숨기고 싶은 사실’.

그것은 바로 [반고를 부활시킨다] 라는 계획!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활시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지 그 한 줄의 사실만으로도 내가 충격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어차피 놈들이 계획을 짠 이상 츠쿠요미와 삼황오제가 보기엔 현실성이 있기때문에 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황금월은 거짓말이 들켰는데도 태연자약한 태도로 말했다.

[헌데 알면 어쩔 셈이지? 어차피 그대가 이 암천향에서 벗어나서 갈 곳이 현세밖에 더 있을까? 그리고 현세에 가게 되면 이미 부활해 있을 반고가 그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츠쿠요미의 계획에 따르면 지금 부활할 반고는 전성기의 힘을 모두 지닌 상태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대의 하찮은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지.]

“뭐?! 전성기의 힘? 그게 가능한가?”

[글쎄…… 나도 그건 모르겠지만 츠쿠요미는 전지능력을 지니고 계획을 짰다. 헛짓거리를 할 이유가 없겠지.]

“…….”

나는 전성기 반고의 힘이라는 사실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탁록시대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전성기 반고의 힘은 전성기 [기어오는 혼돈]의 힘과 거의 대등했다…….’

몇억 년이나 사투를 벌이고 나서야 겨우 결판이 날 정도였으니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리라.

애초에 [기어오는 혼돈]과 전투가 성립된다는 점에서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떠한 존재보다 강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무리 지금 내 신력이 높은 편이라 하더라도 전성기 반고를 상대로는 벌레처럼 죽어 버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리라.

‘잠깐…… 죽는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아채고는 히죽 웃었다.

“츠쿠요미도 멍청한 녀석이군. 까짓거 외신 반고의 힘을 체험해보고 죽으면 그만 아니냐? 전생하면 될 텐데.”

[오. 그렇군…….]

“…….”

뭐지? 별거 없어 보이는데 바보취급 당하는 느낌은?

황금월의 대답에 나는 되레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권능을 발동했다.

규룡의 권능!!

그리고 또다시 ‘숨기고 싶은 사실’을 읽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반고는 전생(轉生)을 방해할 수 있다.

“……?!”

이,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내 표정이 급속도로 변하는 걸 알아챈 황금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사용자가 삼류라면 별거 아닌 능력일 텐데…… 네 강대한 신력으로 쓰니까 성가신 권능이구나.]

“제, 젠장할…… 이게 사실이냐? 정말로 반고가 전생을 방해할 수 있다고?”

[뭐 눈치채 버린 것 같으니 말해주도록 하지.]

황금월이 나를 비웃듯 말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네 입으로 외신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굴레 바깥의 존재에게 전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

[츠쿠요미와 삼황오제의 입장에서 네가 죽음을 이용해서 전생으로 도주하는 것 자체가 패배조건. 그러므로 네 전생을 막을 방법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럴 존재는 외신 반고뿐이니 당연한 것이다.]

“크윽.”

설마 이런 수가 있었다니?

‘막연히…… 반고가 부활하면 니알라토텝에 대항할 강력한 아군이 되어 줄 거라 생각 했는데.’

설마 내 전생을 끝내버릴 수 있는 최악의 패로 소환될 수 있을 줄이야!

그것도 삼황오제의 의지를 대변하는 자객으로서!

이게 전지능력을 지닌 츠쿠요미의 계획이었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뭔가를 눈치채고는 눈이 날카로워졌다.

“……제갈사의 말이 맞았군. 현세에 츠쿠요미가 흉계를 마련했으니 여기서 자살하는 게 맞는 거야. 그렇다면 결국 네 녀석을 죽이는 게 정답이란 얘기군.”

스릉

나는 검을 다시 들었다. 그러나 황금월은 내 투기(鬪氣)를 정면으로 받고 있음에도 전투자세를 취하지도 않은 채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나를 난도질하고 싶은가? 허나 내가 외신기로 본격적으로 싸워준다면, 결과적으로 이기는 건 무조건 내가 될 것이다. 그대는 아직 나를 없앨 정도의 역량이 되지 못해.]

“…….”

[전투는 내키지 않지만, 만일에 그대가 정말로 포기하지 못한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 그대를 쓰러뜨리고 영겁토록 봉인할 수밖에…….]

키기기긱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금월의 등 뒤편에서 다시금 기괴한 소리와 함께 수십만 개의 가면이 소환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중얼거렸다.

“야. 너는 나와 초면이 아니겠지?”

[무슨 소리지?]

“……기억하고 있다고.”

이어진 내 말에 황금월이 굳었다.

“내가 대웅제국 모두의 염원을 담아 외신을 찔렀던 바로 그 공간에서…… 어둠의 하늘에서 회전하고 있던 황금의 달. 그건 바로 너였을 거다.”

지금까지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황금의 달이라는 게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고, 아까도 저 녀석은 회전을 하면서 소환되려 하고 있었다.

회전하는 황금의 달 - 아마 내가 그때 봤던 것은 눈앞의 황금월과 같은 존재일 게 분명했다.

[…….]

황금월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무한한 어둠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그 얼굴에서도 숨길 수 없을 정도의 환희를 내비쳤다.

[하하…… 하하하하…… 깨달았는가? 그래…… 네 말대로다. 우리는 구면(舊面)이지.]

“……!!”

[진정한 [옥좌]의 앞…… 그 공간에서 나는 너를 보았다…… 외신들이 노래하는 그 아비규환속에서 나는 진정한 혼돈을 축복하고 있었노라.]

황금월이 잔잔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외신에게 검을 겨누어 적중시킨 자여…… 그 만용으로 인해 도리어 외신들이 그 호기를 높게 샀다…… 그대의 광기는 이미 전 우주에 먹힌 것이라 할 수 있는 것…….]

“…….”

[그대는 뭔가 다른 존재다…… 전생자 중에서도 이질적인 존재가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그대를 그리 싫어하지 않으나 이리도 서로의 뜻이 맞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

“흥. 칭찬이냐 욕이냐?”

나는 코웃음을 쳤지만 내심 씁쓸해졌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상황이 꼬인 것일까? 이상할 정도로 초월적 존재들과 계속 얽히는 중인 데다 이상하게 혼돈에 속한 놈들일수록 나를 좋게 보고 있었다. 이미 보통 사람과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는 생각에 심경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도 잠시, 이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제갈사를 아공간에 일단 집어넣고는 투지를 굳히며 말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어디 싸워보자!!”

저놈이 자기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나도 이번 30회차에서 키운 힘이 만만치는 않다. 잘 싸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와라……!!]

그렇게 나와 황금월의 전투가 시작되려고 하는 그때였다.

두쿵!!

갑자기 천지(天地)가 크게 뒤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소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공간 전체가 마치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마냥 엄청난 기세로 떨렸다. 그것은 단순한 진동이 아니라 마치 내 영혼까지 송두리째 비명을 지를 만큼 격렬한 파동이 이 공간에 몰아치고 있는 것이었다.

쿠구구구구!!

‘크, 크윽……?! 저놈의 공격인가?’

나는 약점을 노출했다는 생각에 급히 눈앞의 황금월을 보았는데 뜻밖에 황금월 또한 멀쩡하지 못했다. 츠쿠요미의 육체를 벌벌 떨면서 나 이상으로 크게 영향을 받는 듯 이 거대한 파동 속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황금월의 반응을 보며 이건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황금월이 공격한 게 아니면 이건 대체…….’

두쿵!!

두쿵!!

마치 거대한 거인이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파동!! 나는 이 파동에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있어서 내가 가진 신력으로도 몸을 가누기 힘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 공간에 밀어닥치고 있는 이 파동에 내가 진을 빼고 있을 때 황금월이 당황한 듯 외쳤다.

[이럴 수가…… 복희! 여와! 츠쿠요미의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제 놈들끼리 부활의식을 진행했단 말인가……?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무슨…… 말이냐?”

[…… 으으으…… 설마…… 지금 이 파동은…….]

황금월은 뭔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지, 지금 내 주인님을 소환해보겠다…… 안되도 어떻게든 해야…….]

그리고 황금월이 주문과 함께 뭔가 소환의식을 시전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콰직.

마치 벌레를 눌러서 터뜨리는 듯한 그 소리와 함께 - 이 공간에는 예고 없이 새하얀 연기와 함께 백색의 거수(巨手)가 출현해 있었다. 그 거수는 마치 손바닥으로 파리를 내리치듯 시공간이 단절된 듯한 순간에 츠쿠요미의 육체를 지니고 있던 황금월을 순식간에 짓눌려서 터뜨려 버렸다. 거수의 손바닥 밑에서 천천히 배어나오는 시뻘건 선혈이, 황금월이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살해당했음을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황금월이…… 불멸(不滅)이나 다름없는 외신기를 쓰고 있었을 텐데…….’

반항도 못 하고 죽었다고?

가면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권능을 무시당한 건가?

뭐지?

저건……?

새하얀 거수의 손목이 서서히 세워지며 어둠 너머에서 ‘무언가’가 나를 주시한다는 느낌이 드는 그 순간이었다. 새하얀 거수는 갑자기 벼락처럼 달려들어서 나를 덮쳐왔고, 나는 그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어둠 속에서 나는 한없이 가라앉는다.

의식 그 자체가 영겁의 어둠이 새겨져있는 심해(深海)에 침잠해 들어가는 이 기분…….

이것은 죽음인가?

아니…… 아니다.

죽음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감각은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여태껏 태어나면서 처음 느끼는 건 확실한데도.

어둠의 바다 속에서 심장이 두근대고 있었다.

[절연사막(絶緣沙漠)은 코앞에 와있으니.]

그리고 그 어둠의 바다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대여,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을 잊지 말아라…….]

무슨 말일까…….

나는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희미하게 기억해내었다.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목소리였다.

* * *

…….

“흐헉!!”

나는 갑자기 정신이 끊겼다가 기절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일어났을 때, 나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황금월의 행성 안쪽의 기묘한 공간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와 있었다.

‘여기는?’

새하얀 구름 같은 대지였다. 마치 양털 같은 구름에 감싸여 누워 있었으며 신령스러운 영기가 가득한 장소였고, 단 한 줌의 사기(邪氣)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앉아 있는 동안 내가 품고 있는 혼돈의 기운이 저절로 와해되고 혼탁한 권능도 저절로 힘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돈으로 가득한 사악한 장소는 많이 가봤지만 이렇게나 신령스러운 장소에 와 본 것은 처음 아닌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저 너머의 휘황찬란한 천공(天空)의 제단(祭檀)에서 마치 그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츠쿠요미의 계획이 성공했군. 본디 죽음을 맞이했을 그대가 다음 전생으로 넘어가지 아니하였으니…… 과연 내 어버이의 권능이다.]

그것은 용언(龍言)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제단의 중심을 보자, 그곳에는 단 하나의 거대한 알(卵)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알은 무려 삼 장이 넘어 보이는 크기였다. 거대괴조의 알만큼이나 커다란 그 알의 양옆에는 두 명의 존재가 서 있었는데 나는 그들 모두의 면면을 보자마자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게 용언을 날린 그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천룡(天龍)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복희(伏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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