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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708화 (1,607/1,615)

전생검신 90권 18화

나는 황금월만 해치우면 전생해서 다음번 삶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지체없이 공격을 시작했다.

사대신기 아그니!

순식간에 내 다른 쪽 손에 화총(火銃)의 모습으로 소환되어 들린 아그니의 총구가 빠르게 황금월을 겨누었고, 나는 이 겨눔만으로 황금월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빠르게 살폈다. 고수가 되면 될수록 공격행위 그 자체를 통해 상대방의 심리를 읽고 그걸 통해 심리전을 거는 능력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이 아니라 권능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 내가 강한 권능으로 공격하려 하면 어떤 기괴한 수를 쓸 작정이냐?’

뭘 쓰든 나는 그걸 먼저 보고 나서 다시 대응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하나?’

그런 심리가 담긴 첫수였지만 황금월은 뜻밖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으며 심지어 뭔가 권능을 발휘하는 기색도 없었다. 숫제 전투 의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저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기에 나는 즉시 아그니를 발사했다.

단순위협이 아니라 공격이라는 걸 보여주지!

타앙

다음 순간 아그니의 흉탄이 총성과 함께 황금월의 몸통에 쐐기처럼 박혔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게 사대신기 아그니는 신적인 존재라 해도 방어를 무시하고 관통하는 성격이 있는 것 같았기에 설령 사전에 어떤 방어를 해놨다 하더라도 무의미했다.

끼기기긱…….

“……!!”

하지만 아그니의 흉탄이 놈의 가슴팍에 조그마한 소용돌이 같은 상처를 육안에 보일 정도로 만들었음에도 놈의 몸에는 핏방울 하나 나지 않았고 도리어 아그니의 탄이 회전력을 잃고 멈춰 버리는 듯했다. 아무리 봐도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것이기에 내가 내심 놀라고 있을 때 황금월이 말했다.

[이런 싸움은 무의미하다…… 지금의 네게는 나를 소멸시킬만한 힘이 없다.]

“흥!”

촤좌좍

뇌신류(雷神流)

비기(秘技)

천참만륙(千斬萬戮)

나는 코웃음을 치며 이번에는 빠르게 아그니를 소환해제하며 달려들어서 검섬(劍殲)으로 황금월의 전신을 수백 조각으로 회쳤다. 단순한 무공처럼 보였지만 예전과는 달리 천참만륙의 베기 하나하나에 강렬한 의념이 서려 있어서 설령 절대지경이나 투선이라도 이 공격을 당해내기 쉽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천참만륙의 절기가 시전되자 황금월의 몸은 갈가리 찢겨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나풀거리는 종이 같은 재질처럼 변하더니 순식간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것처럼 원상 복구되어 있었다. 심지어 방금 전 아그니에 당한 피해도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자식…… 일반적인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아!’

소멸의 속성이 있는 아그니의 신기공격은 물론이고 무공의 의념으로 공격해도 씨도 먹히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내게는 남아 있는 공격수단이 굉장히 많았지만, 나는 고수였기에 그 모든 수단을 하나하나 다 동원해도 눈앞의 적에게는 통하지 않으리라는 직감이 느껴졌다. 수백 번이 넘는 신적인 존재와의 전투경험이, 눈앞의 저놈이 얼마나 압도적인 방어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지 실감하게 한 것이다. 일일이 다 해보는 건 다른 문제긴 했지만 안 해보고도 어느 정도 결과가 눈에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신력으로 밀어붙이나? 무량단이나 신역 절기를 쓰면 될까? 절연의 능력을 일깨워서? 전륜성왕의 권능? 천축 삼대신의 권능? 나 자신에게 축복을 걸까? [이름]을 이용해서 아까처럼 누군가를 소환하나? 삼황오제의 가면을 다시 써볼까? 세피로트를? 선검술? 만상지투? 눈에서 파괴광선? 다시 인드라한테 빌어서 바즈라를 다시 써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트리무르티 같은 걸로…….’

내가 빠르게 회전하며 뒤로 물러나면서 머릿속으로 수백 가지 공격법을 구상하고 있을 때 다시금 황금월이 귀찮다는 어조로 말했다.

[이건 시간 낭비일 뿐이다…… 어째서 네가 날 죽일 수 없는지 알려주마.]

“뭐?”

[신기(神器)를 쓸 수 있는 건 너뿐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스스슥

황금월이 갑자기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츠쿠요미의 아름답지만 창백한 얼굴에서 귀기 어린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 함께 놈이 알 수 없는 능력을 발동했다.

외신기(外神器)

[얼굴없는 자의 고향]!

치치치칭

순간 기이한 소리와 함께 황금월의 근처에 있던 공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새하얀 뭔가가 소환되었다. 나는 그게 뭔가 사악한 마법이나 공격인 줄 알아서 긴장했지만, 다음 순간 그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면]!

말 그대로 수십만 개도 넘게 떠 있는 저 모든 게 [가면]이었다. 난데없이 수많은 가면을 소환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저 [가면]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모두 달랐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저 모든 가면에서 제각각 다른 종류의 [힘]이 느껴진다……!!’

콰칭!

놈이 수십만의 가면을 소환함과 동시에 황금월의 뒤편에 있던 가면 수만 개가 단숨에 깨지고 말았다. 너무 많이 깨져서인지 단숨에 등 뒤의 빈 공간이 휑하게 보일 정도였다. 깨져서 우수수 박살 나는 가면을 힐끔 뒤돌아보던 황금월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사대신기 아그니의 파괴력은 정녕 대단하군…… 예상했던 것의 수백 배나 되는 피해를 감수해야 하다니. 네가 바즈라를 소모했기에 망정이지 귀찮을 뻔했구나.]

슈슉

하지만 그런 말이 무색하게 황금월이 다시 손을 휘젓자 사라진 만큼의 가면이 재창조되어서 그 공간을 메웠다.

“…….”

나는 놈의 말을 듣자 머릿속에서 뭔가가 스쳐 지나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내가 예상한 것을 말했다.

“네놈…… 설마 네가 원래 받을 공격을……?”

[정답이다. 단순히 [기어오는 혼돈]의 권속에 있는 모든 가면에게 떠넘기는 것일 뿐이지.]

“…….”

[표정을 보니 눈치챘군.]

황금월은 이내 권태로운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지니고 있는 이 외신기의 능력은 오직 하나, [기어오는 혼돈]의 직계권속인 내가 멸(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우주(全宇宙)의 [가면]에게 대신 피해를 받게 하는 것뿐이다. 허나 이 능력을 뚫고 네가 나를 죽일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

[이 우주에 몇 개의 가면이 있는지 알고 있다면 너는 아마 놀랄 것이다.]

“이런 미친…….”

나는 황금월이 갖고 있는 외신기가 기가 막힐 정도로 단순하며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해를 자기 부하한테 떠넘기기!

단순히 그것뿐이었지만, 아마도 여태껏 [기어오는 혼돈]의 권속인 [가면]에 대해 모은 정보에 따르자면 그 가면들의 숫자는 상상을 불허했다. 광대한 대우주에 셀 수도 없이 퍼져 있을 것이며 그 숫자는 최소한 수억 단위가 넘을 수도 있었다. 지금 황금월이 이 자리에 소환한 가면 또한 그저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요식행위일 뿐 실질적으로는 원래부터 [죽일 수 없는] 존재로 분류되는 게 마땅하리라.

‘젠장……!! 죽이고 또 죽이다 보면 언젠가 황금월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저놈이 얌전히 당해줄지도 의문이었다. 지금까지는 황금월이 그냥 맞아주기만 했으나 만일 저놈이 반격이라도 하면 그때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소모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내가 이번 회차에서 거대한 힘을 얻었다 해도 한계가 분명히 있었기에 이런 식의 지루하고 긴 소모전을 하다 보면 어찌 될지 몰랐다. 하물며 외신 [기어오는 혼돈]의 직계권속쯤 되면 숨겨진 능력이 또 뭐가 있을지 몰랐다.

생각보다 더욱 까다로운 황금월 죽이기 때문에 내가 주춤하고 있을 때 황금월이 말했다.

[나는 본디 그대 앞에 나서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츠쿠요미가 전생자로서 지니고 있던 윤회지법(輪回之法)이라는 능력으로 강제로 나를 소환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들었으니 이 판에서 손을 떼고 싶다.]

“뭐? 강제로 소환했다고?”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츠쿠요미가 대신이라 하더라도 내가 놈과 소환계약을 맺을 것 같은가? 나는 내 주인이신 [기어오는 혼돈]의 명 때문에 암천향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다.]

“…….”

나는 힐끔 내가 품 안에 넣었던 츠쿠요미의 가면을 쳐다보았다.

‘그 말대로라면 츠쿠요미는 원래 소환할 수 없는 존재까지 소환하는 능력을 전생자의 고유능력으로 갖고 있단 건가…….’

생각보다 츠쿠요미가 더 강한 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황금월이 말을 이었다.

[애초에 왜 그대는 생을 스스로 박탈하려 하는 것이지? 살 수 있으면 살면 되지 않은가? 내 인과율을 직접 소모해서 그대의 육체까지 현세에 소환해주었으니 이로써 만족하라.]

이제보니 황금월이 인과율을 소모해서 내 육체를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어째 황금월 저놈은 정말로 내 적이 아닌 거 같은데…….’

지금까지 상황만 본다면 저놈도 억지로 말려들어서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본 모양새였다. 하지만 나는 황금월의 말을 얌전히 납득하기에는 아직까지 불확실한 게 많았기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만족 어쩌고를 말하기 전에 제갈사부터 내놔! 네 녀석이 제갈사를 납치했는데 이대로 전투를 포기할 것 같으냐?”

[여기 있다.]

우웅!

그러자 기이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차원이 열리더니 기절한 제갈사가 툭 하고 떨어졌다. 나는 급히 제갈사를 부축하며 외쳤다.

“제갈사!! 괜찮냐?”

나는 제갈사의 몸에 혹시 기생체나 수상한 주술이 걸려 있지는 않은가 감지해보았지만 잘 알 수가 없었다. 여전히 제갈사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자 나는 황금월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 제갈사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가면] 중 하나의 고유능력으로 영겁의 수면에 빠지는 주술을 걸었지. 물론 해제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이 개새끼가…… 무슨 속셈이냐!”

내가 다시 칼을 뽑아 들자 황금월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놈이 이 대화에 끼어들면 귀찮다는 말이다. 그냥 자고 있을 뿐 다른 짓은 하지 않았다.]

“무슨 속셈이냐고!”

[그대와 나의 일대일 대화로 결론짓고 싶다.]

그렇게 대꾸한 황금월의 말이 이어졌다.

[그대가 사대신과 계약을 맺어서 사대신기를 쓸 수 있듯 나 또한 [기어오는 혼돈]과 계약을 맺어 외신기를 쓸 수 있다. 이제 그만 나를 죽이겠다는 건 포기해라.]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냥 살아라.]

“…….”

[내 요구사항은 그것뿐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으니, 나와 생명이 연동된 그대가 죽기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까지 살라고? 내가 늙어 죽으면 너도 얌전히 다 포기할 거냐?”

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황금월이 말했다.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단 늙어 죽기를 택한다면 내가 갖고있는 가면들의 수명을 그대에게 주도록 하지.]

“……내가 절대 죽지 못하게 하겠다는 소리냐?”

[당연한 거 아닌가? 그대가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아라. 그대라 하더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생명을 연장시키겠지.]

“…….”

이거 참 골치 아픈 놈이네…….

나는 상황이 이상하게 꼬인 걸 알아채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죽이기도 힘든 놈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죽지 못하게 하다니! 그 순간 나는 과거 제갈사의 말이 떠올랐다.

‘전생자가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없다는 건 전생자로서는 약해졌다는 거라던가…….’

나는 그때는 제갈사의 말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전생하고 싶어도 누군가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는 건 무척이나 불쾌할 뿐만 아니라 결국 내게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

‘제갈사 말대로야. 지금 지상에는 츠쿠요미가 어떤 함정을 파놨을지 몰라. 저놈 말대로 그냥 이번 전생을 이어나가려고 무작정 바깥으로 탈출했다가는 더 성가신 상황만 이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살하는 게 최선이라는 제갈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황금월이라는 방해요소가 생겼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성급하게 저놈과 타협하는 건 좋지 않다. 뭔가 이 상황을 반전시켜야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맨입으로?”

[무슨 말이지?]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면서 작정하고 이죽거렸다.

“나는 죽고 싶은데 네가 가로막아서 강제로 살아야 되는 거잖아? 네가 나한테 육체를 줬다고 해도 전혀 은혜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지.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으니까.”

[…….]

“나한테 살아가게 하고 싶으면 대가를 내놔! 그러면 특별히 살아볼까 고려해주지.”

[어이없는 놈이군…… 네가 살아가는 것조차 대가를 받고 싶다는 건가?]

“난 죽으면 그만이야.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인데, 살아가는 대가를 못 받을 이유가 뭐가 있지?”

[…….]

내 말은 억지였지만 이 상황에 한해서는 황금월도 내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죽는 게 도리어 낫다는 존재 같은 건 전생자밖에 없으니 저놈도 난감할 수밖에 없으리라.

잠시 후 황금월이 말했다.

[…… 네가 원하는 [가면]이 있다면 뭐든 빌려주마. 그 어떤 가면이든 빌려줄 수 있다. 이건 어떠냐?]

엥? 가면을 빌려 준다고?

나는 그 말에 호기심을 느끼고는 말했다.

“네가 [가면]을 빌려줄 권한이 있다는 말이냐? 어떻게?”

내 질문에 황금월은 곤란한 듯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흐음. 그렇단 말이지.”

[받아들이겠는가?]

“안 받아들일 건데?”

[왜냐…….]

“내가 지금 [가면]을 빌려서 뭣에 쓰게? 지금 지상세계에 나가면 삼황오제랑 싸울 건데 그게 도움이 되긴 해? 그냥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게 백배 낫지!”

[크윽…… 이런 짜증 나는 놈……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한 건 창세 이후로 네가 처음이다……!!]

역정을 내던 황금월이 잠시 후 말했다.

[정 그렇다면…… [기어오는 혼돈]의 영토에서 무조건 환대를 받는 영패를 주겠다! 이건 어떠냐?]

이것도 왠지 들어보면 사기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여기서 타협하는 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질 틈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다 필요 없고 죽고 싶다고~ 죽여줘!”

[이런 건방진…….]

“근데 얘기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데? 어차피 내가 너를 못 죽이는 거면 왜 이렇게 나한테 대가까지 줘 가면서 자살하는 걸 포기시키려는 거냐?”

[…….]

“설마 네놈이 내 죽음을 방해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런 얘기인가?”

내 말에 황금월은 정곡을 찔린 듯 움찔했다. 그러더니 사납게 말했다.

[이제 됐다!! 무리를 해서라도 이 자리에 [기어오는 혼돈]을 소환해서 네놈을 영겁토록 봉인하는 게 낫겠구나!]

“어?”

[좋게 말할 때 받아들였으면 서로 좋았을 것을……!!]

우우우우

잠시 후 황금월의 몸 주변에 알 수 없는 기이한 어둠의 마법진이 수백 겹으로 떠올랐다. 그 마법진 하나하나에서는 끔찍하고 흉맹한 마기(魔氣)와 신력이 꿈틀거리고 있어서 놈이 전력으로 펼치는 주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황금월의 대처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저 녀석 진심으로 [기어오는 혼돈]을 소환하려는 건가? 하지만 이제 와서야 마지못해서 소환하는 걸 보면 틀림없이 실패확률도 있는 것일 테지…….’

이대로 황금월의 주문실패만을 기원하거나 놈의 주문시전을 방해할 것인가?

나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뭔가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왜 그걸 깜빡하고 있었지?

나는 그걸 떠올리자마자 황금월에게 바로 외쳤다.

“야! 너 나한테 줄 선물이 있지 않냐?!”

멈칫

그와 동시에 황금월이 펼쳐내던 강대한 주문의 전개가 멈추고 놈의 파리한 시선이 나를 쳐다보았다. 황금월이 대꾸했다.

[무슨 말이냐?]

“너…… 나한테 줄 선물 있잖아.”

[네가 방금 다 거절했잖느냐.]

“아니. 네가 호의로 베푸는 거 말고.”

이어진 내 말에 황금월은 당황한 듯했다.

“외신(外神)들이 나한테 줄 선물을 황금월에 남겨두었다고 들었거든!”

[……!!]

“그건 일단 주고 나서 이야기하지? 안 주면 인과율에 위배되고 뭐 어쩌고 아니었냐?”

[크, 크윽……!!]

황금월의 반응을 보면 놈은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은근슬쩍 나와 싸우거나 타협하면서 그걸 능구렁이처럼 넘겨 버릴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놈은 크게 고뇌하다가 말했다.

[주겠다…… 하지만…… 제발 자살만큼은 하지 말아다오…….]

“생각해보고.”

[내가 이 선물을 준다면…… 너보다 더 큰 축복을 지닌 자는 천상천하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생을 포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아 시끄럽네!! 선물이나 빨리 내놓으라고!!”

[…….]

구차하게 징징거리던 황금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양손을 모아서 마치 물을 떠서 마시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모은 두 손바닥 위에 둥실하고 무언가 빛나는 구체 같은 게 소환되었다.

[받아라. 외신의 선물을…….]

파아아아

은은한 빛을 띠고 있던 그 구체는 잠시 후 내 쪽으로 날아오더니 그대로 내 심장에 흡수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무언가’가 흡수되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어리둥절해했다.

“뭐야? 아무런 변화도 없잖아?”

[…….]

“외신의 선물의 정체가 뭐야? 말해줘.”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달라고 했던 건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던 황금월이 잠시 후 한 말에 나는 당황해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단 1회 한정, 외신 중 누구든 간에 그자의 진짜 이름을 알 수 있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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