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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707화 (1,606/1,615)

전생검신 90권 17화

스으

나는 가볍게 허리춤의 검을 들어서 놈에게 겨누며 말을 이었다.

“천암비서에 대해 얘기해준 건 고맙다. 그럼 이제 이 상황을 설명해.”

츠쿠요미는 비웃듯이 대꾸했다.

“뭘 설명하라는 건지?”

“나는 분명 네놈에게 역전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바로 자살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서 원래의 몸으로 눈을 떴고…… 제갈사가 갑자기 사라진 거지?”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라.”

“말해주기 싫은데?”

이렇게 나온다면 더 이상은 가벼운 감정풀이로 끝날 수 없다.

“그래? 그러면 어차피 소멸하는 거 내 칼침이나 좀 맞아라.”

촤좌좌좍!!

순식간에 내 검강(劍罡)이 얇은 면도날처럼 날아가서 놈의 살을 저몄다. 마치 생고기에서 피를 빼듯 놈의 절단면에서 핏줄기가 치솟았고 동시에 나는 뇌기(雷氣)를 흘려넣어서 놈의 육체를 감전시켰다.

파지지직!!

“크아아악……!! 아악!”

츠쿠요미는 비명을 내질렀다. 여러 번 고문을 해 본 나는 그 비명이 지어내는 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고통에서 우러나는 비명임을 느끼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촉수에 묶여 있는 걸 보고 짐작했지만, 역시 이 공간에서는 네녀석도 신이 아니라 그냥 필멸자의 육체인가 보군. 뇌기로 직접 신경을 지져지는 기분이 어때?”

“아아악!! 크으…… 아아아아아…… 아아악!!”

“이강룡의 말로는 상대의 몸속에 뇌기를 뻗쳐서 전신의 신경을 건드릴 경우 생이빨을 뽑는 고통의 열 배가 넘을 거라던데.”

파지직

“아아악!!”

츠쿠요미는 내 말에 대꾸도 못하고 그저 고통 때문에 발광하고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천화뇌룡신공을 익히면서 뇌기의 다양한 응용법을 알게됐다. 그 전까지 내가 아는 뇌기를 활용한 고문법은 아주 기초적인 것이었단 말이다. 천화뇌룡신공은 촉수로 만들어진 혼돈의 마물조차 고문할 수 있는 수법이니 네 녀석이 소멸할 때까지 괴롭게 해줄 자신이 있다.”

“……!!”

파직…….

나는 잠시 뇌기를 회수해서 놈의 고통을 멎게 만들었다.

“허억…… 헉…….”

츠쿠요미가 고통에 허덕이며 가쁜 숨소리를 내자 나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나를 심하게 미워하지만 난 별로 네가 그렇게 밉지 않아. 난 얼굴 본 적도 없는 놈을 그렇게 싫어할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순순히 말해주면 더 이상 고문을 할 생각은 없다.”

이건 진심이었다. 츠쿠요미가 괜히 짜증나는 놈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띠꺼운 녀석은 전생하면서 차고 넘치도록 봐 왔기 때문이다. 그런 놈들 하나하나에 모든 감정을 쓰기에는 귀찮기까지 했다.

“…….”

“정말 나처럼 까마득한 애송이한테 잿더미가 될 때까지 고문당하고 싶냐? 굳이 그걸 원한다면 해주지.”

스슥

내가 위협적으로 놈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치자 츠쿠요미가 흠칫하더니 필사적으로 외쳤다.

“기, 기다려라!!”

멈칫

내가 손을 멈추자 츠쿠요미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말했다.

“……네놈들은…… 이혼대법을 써서 황금월(黃金月)의 혼백과 동화했을 것이다. 그건 내 책략을 깨는 유일한 기책이었지만…… 동시에 황금월에게 인과율을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소리냐?”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반문하자 츠쿠요미는 조금씩 고통이 진정된 듯 입에서 피를 퇫 하고 뱉더니 말했다.

“혼백을 동화한 상태에서 네놈의 삶과 죽음은 황금월과 연동된다. 그게 그런 주술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

“네놈이 죽으면 황금월도 죽는 건데 ‘살아있는 존재’인 황금월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것 같으냐?”

“……?!”

뭐, 뭐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한마디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여기서 황금월이 나온다고?

츠쿠요미는 고통 때문에 흐릿한 얼굴을 억지로 좌우로 왕복시켜서 정신을 차리려 하며 말을 이었다.

“암천향의 황금월은 [기어오는 혼돈]의 직계 권속이다. 언뜻 무생물로 보이지만 분명히 자기 의지가 있으며 고위생명체이지. 너의 자살의지와 함께 피해가 들어오는 순간 죽기 싫어서 뭔가 수를 썼을 것이다.”

뭔가 어려운데…….

나는 츠쿠요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요점을 알아채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황금월이 만들어낸 것이란 말이냐?”

“그렇다.”

암천향의 [달]인 황금월이 죽기 싫어서 내 자살행위를 거부하고 이상현상을 만들어냈다고?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츠쿠요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눈앞의 상황이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츠쿠요미에게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내가 기계의 육체 대신 원래 몸으로 되돌아온 게 설명되지 않아. 네 녀석은 황금월과 직접 계약을 했으니 뭔가 더 알고 있겠지?”

츠쿠요미는 내 말에 머리를 굴리는듯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해줄 테니 하나 약속해라.”

“뭘?”

“다 얘기해주면 고통 없이 날 죽여주겠다고.”

“약속하지.”

츠쿠요미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더 고문해도 무방하겠지만, 일단은 지금 상황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내가 대꾸하자 츠쿠요미가 입을 열었다.

“황금월은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암천향에서도 가장 특별한 존재이다. 츠쿠요미 또한 [꿈]에 속한 존재이기에 그런 황금월과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리고 황금월은 [꿈]의 경계를 무너뜨려 현실과 바꿔치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츠쿠요미의 설명이 이해가 안 되니 화가 났다.

“씨발…… 너 일부러 나한테 어렵게 설명하는 거지? 죽어볼래?”

“크윽…… 지금 네가 탁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는 [꿈]의 세계를 통해서 과거의 네 모습을 여기에 소환해줬기 때문이란 말이다!”

“뭐? 그런 게 가능한가?”

“너와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이 어디라 생각하느냐? 나는 이미 황금월에 나 자신을 제물로 바쳤으니, 이곳 또한 황금월의 내부…… 심장과 같은 장소다! 이곳은 이미 [꿈]의 공간 그 자체야!”

“……!!”

설마 여기가 황금월의 심장 같은 거라고!

‘[꿈]이기 때문에 내 탁록시대의 육체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가……!!’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게 있어서 질문했다.

“……황금월이 왜 그런 짓을 한 건데? 내 탁록시대의 육체를 왜 만들어준 거지?”

“죽기 싫으니까!”

츠쿠요미가 버럭 하고 말을 이었다.

“네가 인생에 불만이 있어서 자살하는 거라 여긴 거다! 그 이유가 허접하기 그지없는 깡통 육체 때문이라 생각하고 전성기의 강력한 육체를 제공해준 거지! 그리고 강한 육체를 줬으니까 이제 죽지 말라고 하는 거 아니겠냐!”

“…….”

“네가 죽으면 자기도 죽으니까!”

뭐야……?!

뭐가 그렇게 단순해!!

‘근데 말이 돼!’

나는 츠쿠요미의 말이 황당하게 들렸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츠쿠요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윽고 당황해서 말했다.

“그럼 설마 제갈사는…….”

“너한테 자살을 종용한 게 제갈사니까, 다시 너를 자살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를 배제한 것뿐이지!”

“……!!”

이런 제기랄!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제갈사는 이미……!!

나는 으득하고 이를 악물었다. 굳이 직접 듣지 않아도 지금 제갈사가 어떤 상태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잘해봐야 소멸일 것이고 최악의 경우는 어딘가 꿈의 공간에 유폐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눈앞의 츠쿠요미처럼!

‘제길…… 일이 너무 꼬였어!’

설마 황금월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라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대체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우선순위가 헷갈려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츠쿠요미를 통해서 상황을 알아낸 건 좋은데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황금월을 직접 때려 부수는 게 맞을까?

하지만 [기어오는 혼돈]의 직계권속이라는 존재를 아무리 지금 내 힘이라도 쉽게 때려잡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이런 방법은 뭔가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전성기의 육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 황금월의 몸속에 있는 거나 다름없는 이 상태에서 대체 뭘 해야…….’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주변을 뒤덮고 있는 흉측한 촉수들과 육벽(肉壁)을 쳐다보며 말했다.

“살아 있다…… 그 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황금월이 [꿈]의 존재라면 왜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거지? 꿈속에서 삶과 죽음은 의미가 없을 텐데?”

내 질문에 츠쿠요미는 설마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꿈] 속의 존재라도 충분히 죽을 수 있다. 황금월은 그저 [꿈]을 이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 존재 자체를 초월한 건 아니니까 당연히 사망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가…….”

“꿈속에서 진짜 초월자가 될 수 있는 건 꿈의 주인공뿐이지.”

꿈의 주인공…….

어쩐지 의미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리고 너는 왜 아까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거지? 그 이유를 듣고 싶은데.”

“…….”

별거 아닌듯한 내 말에 츠쿠요미는 침묵을 했다. 뭔가 정곡을 찔린 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 반응을 보는 순간 뭔가를 알아차리고는 추궁했다.

“……그 반백반흑의 가면은 어디 간 거냐?”

“여기에 제물로 바쳐졌을 때 빼앗겼다.”

나는 츠쿠요미의 대답을 듣자마자 명쾌하게 말했다.

“좋아…… 일단 네 [가면]을 벗겨야겠구나!”

이 새끼 거짓말하는 거 같아!

만일에 [가면]을 못 벗기더라도 저 녀석 얼굴 가죽이 뜯길 뿐 나는 손해 보는 거 없지!

“잠깐……!!”

츠쿠요미가 당황한 듯 몸을 버둥거렸지만 나는 금세 달려들어서 츠쿠요미의 가면을 벗겨 버렸다.

만상지투(萬象之偸)!

촤좍

맨얼굴로 보였던 츠쿠요미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뭔가 촤좍 하고 뜯겨 나오면서 내 손에는 [가면]이 잡혀 있었다.

‘역시!’

아까 싸울 때는 츠쿠요미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왜 안 쓰고 있을까 이상했는데 역시나 그저 형태를 가렸을 뿐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면을 벗겨내자, 츠쿠요미의 얼굴 안쪽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황금의 빛이 소용돌이처럼 새어 나오는 공간이 나타나 있었다.

키기기기긱

키기기기기긱……!!

끔찍한 귀곡성(鬼哭聲)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가 치직거리면서 영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파동을 내뿜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 일렁이는 파동 그 자체가 [말]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는데 내 머릿속으로 직접 목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뭐가…… 불만이냐…….]

나는 그 파동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짐작했던 게 맞다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네가 황금월이냐?”

[…….]

촤좌좌좍

내 말이 끝나는 순간 그때까지 츠쿠요미의 전신을 묶고 있던 촉수들이 모두 해제되었고, 마치 뻥 뚫린 듯한 황금의 혼돈이 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얼굴에 달고 있는 듯한 존재가 자유로워져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몸뚱이는 츠쿠요미의 몸이었지만 저 기이한 형체는 도저히 필멸자라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기괴했다.

츠쿠요미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황금월이 말했다.

[백웅이여. 너와 혼이 연동되어 나 또한 죽음을 맞이할 순 없다…… 내 모든 힘을 다해서 절대 네가 죽지 못하게 하리라…….]

이런 젠장…… 츠쿠요미의 말이 사실이었군.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내 손에 들려 있는 [가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츠쿠요미는 진작 너한테 제물로 흡수되어서 껍데기만 남았을 뿐이었군. 이 [가면]이 츠쿠요미인 거겠지.”

[그렇다…….]

“젠장.”

나는 웅웅거리며 내 손에서 떨고 있는 반백반흑의 가면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설마했지만 이게 바로 천상천하를 떨게 하던 월신 츠쿠요미의 말로인 것이었다. 자폭하듯이 황금월에게 자기자신을 제물로 바친 탓에 모든 신력(神力)과 몸뚱이를 빼앗겨 버리고 마지막 영혼이 가면에 앙금처럼 남아 있었으리라.

‘아마 이 가면을 쓰면 다시 츠쿠요미와 얘기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눈앞에 츠쿠요미의 육신을 차지한 황금월을 쳐다보며 말했다.

“황금월. 네 녀석도 츠쿠요미처럼 암천향에서 [꿈]의 힘을 쓸 수 있지만, 완전히 [꿈]에 속하는 존재는 아닌 거겠지. [꿈]의 존재라면 생사를 초월했으니 더 이상 자신의 소멸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테고.”

[…….]

“그럼 얘기가 간단하군. 너도 어쨌든 육신과 영혼이 확실히 존재하는 놈이고 죽일 수 있는 존재라는 거잖아.”

[그래서……?]

츠츠츠

나는 간만에 이야기가 간단해졌다고 생각하며 검을 들어서 놈을 겨누었다.

“너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

놈이 [기어오는 혼돈]의 직계권속이며 츠쿠요미의 신력을 흡수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내 전생을 방해하는 놈부터 해치우면 그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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