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706화 (1,605/1,615)

전생검신 90권 16화

그러나 내가 아무리 마음속으로 부정해 보아도 놈이 이야기하는 건 과거에 ‘전생자’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실들이었다.

‘이치는 옳지만…… 인정하기 힘들다…….’

결국 나는 마음속의 울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버럭 외침을 토해냈다.

“네놈이…… 전생자일 리가 없어!! 전생자가 왜 탁록시대에 유소와 소녀라는 식으로 나타나 있냐고! 니가 생각하기엔 말이 되냐?!”

“…….”

내 외침에 츠쿠요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거래했겠지?”

“뭐?”

갑자기 거래를 했냐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내가 어리둥절해서 츠쿠요미를 쳐다보자 놈은 왠지 음침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네 녀석은 서(書)와 거래를 했겠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거래를 해서 제안을 받았을 것이다…….”

“…….”

움찔

나는 츠쿠요미의 말에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놈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천암비서의 거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업(業) - 10년 내에 3회 이상 전생(轉生)할 것.

보(報) - 수련세계 1000년 연장.]

수련세계에서 이강룡과 수련할 때 갑작스레 나타났던 천암비서의 업보! 나는 그 업보의 보상 자체가 그렇게 끌리는 건 아니었지만 천암비서가 내게 직접 뭔가를 제안하는 게 거의 처음이었기에 의논 끝에 받아들여 보기로 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온갖 일이 얽히고섥켜 있어서 쾌도난마(快刀亂魔)처럼 단숨에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데 내가 서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츠쿠요미가 짐작하다니!

내가 당황해서 놈을 쳐다보자 츠쿠요미가 잔잔하게 말했다.

“어떻게 짐작했느냐는 표정이군. 그게 아니고서는 단시간에 이렇게까지 내 전지능력을 깨는 혼돈의 흐름이 밀려들어 오기 힘들 테니까…….”

“뭐? 천암비서가 네 전지능력을 파훼했단 말이냐?”

“정확히는 그게 가능한 인과율을 건드려서 네 행동을 부추기는 느낌이지…… 마치 세상에서 너만이 유일한 주인공인 것처럼 모든 사건이 너에게 맞춰서 진행되는 그 전능감(全能感)을 느껴보지 않았나?”

“…….”

“직접적인 원인은 또 다른 너만의 능력이겠지만…… 서(書)의 존재 자체가…… 전생자를 둘러싼 모든 주변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 나도 그걸 겪어봐서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 네가 뭘 겪어봤다는 거야!”

나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하는 츠쿠요미에게 반발감이 들어서 외쳤지만 이어진 놈의 말에 멈칫하고 말았다.

“백웅, 너는 서에게 업보(業報)를 제안받았을 것이다.”

“……!!”

“서가 제안한 업을 행사하면 그 보상으로 보(報)를 얻는 방식이지…… 의뢰를 수행하면 보상을 얻는 지극히 직관적인 인과율의 행사…… 내 말이 틀렸나.”

“어…… 어떻게…….”

“어떻게 아는 건지 물어볼 셈인가? 이유는 단순하지 않나.”

츠쿠요미는 약간의 원독어린, 그러나 살의어린 미소를 띠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 업보를 이용해서 전생자로서 힘을 쌓았으니까! 네가 겪은 건 나도 겪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업보를 수행한 지는 몇 번째지? 나는 10번도 넘게 해 보았고 그때마다 정상적인 전생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뭔가를 손에 넣었다…… 짐작 가는 게 있겠지.”

“…….”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놈의 말이 너무나 정확하게 요점을 꿰고 있어서 더 이상은 전생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놈은 과거에 서(書)를 소유했던 전생자였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츠쿠요미에게 말했다.

“……네가 전생자였다고 쳐. 하지만 아까 말했던 대로…… 왜 하필 지금 내 전생에 끼어들어서 [큰 굴레]의 과거에서 전지와 전능을 지니고 환생해 있냐고! 전생자라는 게 그런…….”

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츠쿠요미가 말했다.

“전생자의 최후(最後)가 이런 것인지 궁금한 거겠지.”

“…….”

“미안한 얘기지만…… 너도 나도 그렇게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전생자로서 세계의 중심일 때는 그런 것처럼 착각하지만, 이미 우리보다 앞서서 서를 경험했던 존재들이 있지. 그들과의 격차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그리고 전생자가 극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외신(外神) 그 자체를 극복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외신…….”

“하지만 힘으로는 절대 넘어설 수 없어. 몇 번을 반복해도 무리라는 건 금방 느끼게 되지. 아무리 평범한 신격을 쉽사리 쓰러뜨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자들은 정말로 격이 다르니까…… 그러면 마지막으로 손을 뻗게 되는 것은 결국 서(書)의 시련 그 자체다.”

“서의 시련?”

츠쿠요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자로서 천암비서 최심지에 있는 [문]의 시련을 극복한 자는 전례 없던 힘을 얻게 된다. 단순히 전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그런 특별한 힘을 말이야…….”

나는 츠쿠요미의 말을 듣는 순간, 과거 [문]에 대해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 가설을 말해주지. 저 [문]을 열고 나서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존재가 바로 다음번 전생자가 되는 거야. 혹은 자네가 직접 들어가게 되면 바로 승천에 도달하는 것이고.]

[전생자여. 생사입멸(生死入滅)의 업(業)을 깨닫고 예까지 온 것이냐?]

[그렇지 아니하다면 여기에서 발걸음을 돌리기를 권하겠다. 지금 그대의 힘으로는 나조차 이길 수가 없다.]

[호오…… 정녕 알고 찾아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깟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게 도리어 대단하다 해야겠군…… 그대는 최단기간에 찾아온 도전자일 수도 있다…….]

[동도(同道)로서의 후의(厚意)로 권하노라. 이 시련은 그대의 수준에 맞지 않으니 되돌아가거라.]

[문]을 열고자 천암비서에 침입했던 나일라토프와, [문]의 제1시련의 문지기였던 전대 전생자 달마대사.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걸 머릿속에서 다시금 통찰했다.

‘……난…… 전생자 달마대사가 나를 무시해서 그런 얘기를 한 줄 알았어. 하지만 애초에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얘기를 했던 것뿐인 거였지.’

전생자로서 회차를 할 만큼 하고 온갖 힘을 쌓은 끝에 외신에게 대항하려다 한계를 느껴서 천암비서를 통해 특별한 힘을 얻고자 도전하는 시련…… 그것이 바로 천암비서 최후의 [문]의 시련!

전생자가 힘의 한계를 느낄 정도라면 도대체 몇 번 전생해야 하는 걸까?

최후의 최후에나 도전할 법한 최종도전의 시련이었기에 그 시련관인 달마는 지금 30번밖에 전생하지 않은 내 힘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동시에 시련이 끝나고 나서 달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대여. 만일 그깟 하찮은 힘으로 2번째 시련에 가서 시련관에게 순식간에 패배하면 어찌 될 것 같은가?]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시련관이 새롭게 전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월자들의 욕망은 감히 우리가 잴 수가 없는 차원에 존재하느니, 여태껏 그대가 지옥이라 생각했던 게 우스워질 정도의 사태를 초래할 수가 있다.]

[…… 아무튼 좋아. 도전자가 무엇을 얻는지는 모른다 그 말이지?]

[그렇다.]

과거 달마와 얘기하면서 마음속으로 정리했던 것을 생각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일단은 놈이 알고 있는 걸 유도하듯이 운을 띄우는 게 필요했다.

“……그 [문]의 시련은 그저 승천(昇天)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었나? 그래서 그냥 나왔는데…….”

내 말에 도리어 츠쿠요미가 흠칫했다.

“설마 모르고 도전한 적이 있는 건가?”

“그래. 첫 시련관인 달마와 싸워서 어찌어찌 이긴 다음에 그냥 나왔는데…….”

“그 [문]의 시련은 하나하나의 시련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힘을 해금(解禁)하는 방식이다. 즉 첫 관문을 통과한 너도 뭔가 보상으로 특별한 능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뭐라고?”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하는가? 허나 나는 뭘 얻었는지 알 것 같군…… 네 녀석이 내 전지를 깬 바로 그 능력…….”

츠쿠요미는 뭔가를 중얼거리다가 비직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고작 30회차짜리가 최종시련인 [문]에 도전해서 첫 시련만 깨고 자기가 무슨 보상을 얻었는지도 몰라? 그걸로 날 쓰러뜨렸고?”

“아니…….”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아도 정도가 있지 정말 어이없는 놈이군…… 많은 전생자가 있었겠지만, 너처럼 이상한 놈은 처음일 것이다.”

“…….”

이런 젠장…… 전대 전생자한테 이런 소리를 듣다니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아무튼…… 이젠 좀 알 것 같군.’

제 1차 시련관인 달마는 만일에 어설픈 힘을 가진 내가 패배해서 전대 전생자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를 염려했었다. 또한 진공가향만이 목적이었던 달마는 [문]에 도전하지 않았기에 시련관이 얻는 보상만 알고 있을 뿐 도전자가 얻는 보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츠쿠요미와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것 같았다.

‘시련관이 얻는 보상은 새롭게 전생의 기회를 얻는 것…… 그에 반해 도전자가 얻는 것은…… 승리할 때마다 천암비서에게서 특별한 힘을 해금받아서 더욱 강해지는 것!’

[문]의 시련은 그런 구조로 되어 있었던 건가!

‘어쩐지 달마의 얘기대로라면 도전자가 너무 불리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애초에 승천을 노릴만큼 강대해야 도전자격이 생긴다는 것 -

그것은 그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탐을 낼 정도로 도전자가 얻는 보상 또한 막대하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받았던 [보상]이 전지능력자인 츠쿠요미를 박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듯했다.

내가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 츠쿠요미가 말했다.

“나는 네가 말한 그 [문]에 도전했다. 그리고 몇 번인가 시련을 이겨냈지만 결국 마도황제라는 존재를 만나서 패배하고 말았다.”

“마도황제…….”

“그자는 격이 다르다. 애초에 그자는 외신에 대항할 힘이 부족해서 천암비서의 시련관이 된 게 아니라…….”

그 순간이었다.

후와아악!!

갑자기 어둠의 기운이 나타나더니 츠쿠요미의 입을 봉쇄했다. 마치 반투명한 어둠의 손이 억지로 츠쿠요미를 짓누르는 듯한 모양새였다.

“……!!”

슈욱

잠시 후 반투명한 어둠의 기운은 사라졌다. 그리고 츠쿠요미는 갑작스레 생명력이 크게 꺼졌는지 목소리가 크게 쉬어 버린 듯했다.

“하아…… 하…… 흐으…… 그래…… 그렇겠지…… 아무리 전생자의 지위에서 탈락했다 하더라도 시련의 정보를 누설할 수 없다는 법칙은 그대로냐…… 아하하…….”

천암비서가 츠쿠요미가 [문]의 시련에 대해 말하려는 걸 막아 버리는 듯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천암비서의 힘을 실감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천암비서라는 건 대체 뭐지? 뭐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사용자에게 줄 수 있는 거냐.”

전생(轉生)을 시켜줄 수 있는 것도 그렇고 [큰 굴레]를 되돌릴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이미 탈락한 전생자를 임의대로 계약에 따라 억제하는 게 가능하다.

세상에 그 어떤 마도구가 이런 게 가능할까?

내가 살면서 품어왔던 가장 큰 의문을 츠쿠요미에게 질문하자 놈은 히죽 웃었다.

“그걸 알면 내가 이런 꼴이 되었을까? 후후후…….”

“…….”

“확실한 건…… 네가 만일 현역 전생자로서 시련에 도전했다가 패배하면 나처럼 된다는 것이다.”

“너처럼 된다는 건…….”

“패배한 순간 영육(靈肉)이 갈가리 찢겨나가지. 그리고 모든 힘과 기억을 잃고, 창세(創世) 이전의 혼돈에 흡수당해서 억겁의 세월을 떠돌게 된다…… 그게 얼마나 처절한 고통이며 존재의 소멸인지…… 너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나는 순간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내, 내가 미쳤었구나!!’

그냥 전생자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설마 그런 끔찍한 꼴을 겪는다니!

츠쿠요미가 말한 ‘대가’를 알고 있었다면 나는 겁이 나서 도저히 [문]의 시련에 도전하지 못했으리라!

츠쿠요미의 말이 이어졌다.

“전생자로서 실패한 내가 탁록시대에 부활한 이유…… 그리고 전지와 전능으로 나눠진 이유…… 그런 건 나도 모른다. 나도 전지능력으로 현세에 와서 츠쿠요미로서 신의 정신력을 얻은 후에야 내 봉인되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으니까.”

“크윽.”

“허나 지금은 하나 짐작 가는 게 있다.”

나는 츠쿠요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걸 느꼈다.

“뭔데?!”

이어진 츠쿠요미의 말은 워낙 엉뚱했기에 나는 내 귀를 다시 의심했다.

“서(書) 때문이다.”

“……뭐라고?”

“네 상황이 어디에서부터 꼬였지? 그저 외우주로 튕겨 나간 것뿐이었다면 평소에도 겪는 일이라서 수습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일라토프 같은 게 끼어들면서 서의 내부까지 침입해오는 바람에 네 단말이 어쩔 수 없이 [큰 굴레]를 과거로 돌렸다 알고 있다.”

“…….”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나? 그 상황 자체를 서(書)가 스스로가 의도했다는 걸…….”

천암비서가?!

예상치 못한 말에 내가 당황할 때 츠쿠요미의 말이 이어졌다.

“넌 결과적으로 서가 제시한 거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은 처지가 되고 말았어…… 그 모든 걸 서가 의도했다고 생각지 않는가?”

“……그 말은…….”

나는 츠쿠요미의 말을 간신히 이해하고는 말했다.

“그저…… 천암비서와 나 사이의 업보(業報)의 거래를 성립시키기 위해…… 천암비서가 너를 부활시켰고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의도했다는 말이냐?”

“그렇다.”

“그게 말이 돼?! 이깟 거래가 대체 뭐라고…… 천암비서의 부탁을 들어줘서 내가 얻는 건 고작해야 수련세계 1000년 연장일 뿐이라고! 겨우 그걸 위해서 이 지랄을 했다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어이가 없어서 츠쿠요미를 쳐다보자 놈은 순간 새하얗게 웃었다.

“아하하…… 너는…… 그게…… 살아 있다는 걸 어떤 의미라고 생각한 거지……? 수많은 굴레의 흐름속에서 유수한 전생자의 손을 거치며 온갖 재액의 원흉이 되는 귀물(鬼物)이……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느냐?”

“……!!”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 너는 서(書)가 제공하는 힘에 매료되는 거지…… 그리고 결국은 [문]에 도달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유도되는 거야…….”

나는 츠쿠요미의 말에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한 전율이 흘렀다.

‘저, 정말 저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암비서는 숫제 괴물이 아닌가?

단순히 나와 업보의 거래를 성립시키려는 이유만으로 츠쿠요미는 물론이고 이번 회차 전체를 이용해 먹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너무나 믿기 힘든 이야기였기에 나는 츠쿠요미의 말을 일단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비약이야! 어찌어찌 말은 되는 거 같아도 전부 억측일 뿐이잖아! 뭣보다 지금까지 날 그렇게 죽이려 했던 네놈 말을 내가 믿을 거 같아?!”

“아하하…… 아하하하……!!”

내 거센 외침에 츠쿠요미가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모르겠느냐? 난 이제 어차피 끝이야! 전생자인 네놈의 적이 되었으니 전생(轉生)토록 보복당하거나 짓밟힐 테지! 혹은 아예 나 따위는 관심도 주지 않고 억겁의 세월 동안 잊혀질 뿐이겠지! 나도 전생자였으니까 패배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안다!”

“……!!”

츠쿠요미의 눈에 약간 핏발이 서 있었다.

“어차피 끝장난 거…… 네놈이 들고 있는 그 천암비서라는 물건이 얼마나 흉측하고 무서운지 알려주려는 것이다…… 그래봤자 파멸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나를 이긴 네놈이 그렇게 쉽게 천암비서에게 당하는 것도 보기 싫으니까…… 아하하하!!”

“…….”

말도 안 된다.

상식이 있다면 저놈의 말이 말도 안 되는 억측만 구구절절 늘어놓을 것이라 할 것이다.

나를 저토록 증오하는 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이유 또한 전혀 없다.

도리어 악의를 품고 나를 망가뜨리려는 흉계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리라.

하지만…….

‘사실일 거 같다.’

이상하게도 전생자의 직감은 놈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심증(心證)을 담고 여태껏 전생자로 살아온 내 삶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놈의 말대로 그냥 넘기기에는 천암비서의 행동이 너무나 수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무리 황제에 맞먹는 힘을 가진 나일라토프라 해도 어떻게 그리 쉽게 천암비서의 심처까지 침입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초과학력이라 하더라도 그게 가능한 것일까?

그게 가능했던 건 천암비서의 묵인(默認)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나일라토프가 깽판을 친 결과 나는 [큰 굴레]를 돌리게 되었고 그 결과는…….

“…….”

내가 침묵하고 있을 때 츠쿠요미가 히죽 하고 웃었다.

“아하하…… 천암비서한테 해가 될 이야기를 잔뜩 했는데도 아까와 달리 천암비서가 내 입을 안 막는 이유가 궁금하지? 이런 경고를 해봤자 결국 네놈이 천암비서의 뜻에 따르게 될것이라고 놈이 자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놈이 몇천 번을 전생할지 몰라도 결국은 천암비서에 의지하게 될 거라 그 말이지…….”

“말도 안 돼.”

“백웅, 너는 힘이 부족하니까 뒷감당 따위 생각하지 않고 수백이나 되는 [옛 지배자]에게 사기를 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태허천존한테도 사기를 쳤지…… 맘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전생자가 힘이 부족해서 뭔가를 하지 못할 때 얼마나 답답한지 이해하고 있겠지…….”

“…….”

“넌…… 결국 나 같이 될 거다. 천암비서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놈의 유혹에 걸려줄 것이다. 그리고 뻔한 결말이 나고 말겠지.”

츠쿠요미의 말은 숫제 저주나 예언처럼 들렸다. 전생자의 삶을 겪어본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어조의 말이었기에 그 말은 더욱 내 마음속에 박혀 들었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 불쑥 츠쿠요미에게 말했다.

“그것도 네놈이 겪어본 일이니까 하는 말이겠지? 너도 전생하면서 천암비서가 위험하다는 경고를 들은 적이 있는데 [문]의 시련에 도전한 거 아냐.”

“……!!”

내 일침에 츠쿠요미는 잠시 흠칫했다. 그러더니 픽 하고 웃었다.

“너는 뭐 다를 거 같나?”

“다를 거다. 나는 너처럼 내 욕심만을 위해서 전생하는 게 아니니까.”

“……?”

내 말에 츠쿠요미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뭐냐…… 30번째라서 애송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아직도 세상에 대한 같잖은 정의감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던 거냐?”

놈의 말에는 조롱기보다는 어이없음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내 생각은 전생자에게 있어서는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나는 츠쿠요미의 말에 냉막하게 대꾸했다.

“같잖은 정의감이 끝이었다면 여기까지 올 이유도 없었겠지. 나는 나만의 길을 찾았다.”

“나만의 길? 설마…… 진정으로 세상을 혼돈에서 구제하겠다는 말이냐?”

“…….”

“정녕 웃기는 놈이로군…… 설마 그 땡중 같은 놈이 하나 더 있었을 줄이야. 네 전생동료들과는 그냥 그런 컨셉으로 노는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뭐라 하든 간에 나는 할 수 있어.”

“하아……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텅 비어 있는 듯한 허무한 장소(長笑).

츠쿠요미는 숫제 미친놈을 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한 전생자가 둘이 있었는데 그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너 따위가 해내겠다고?”

“그렇다만.”

“아하하. 안 봐도 뻔하군. 샛길로 빠진 그놈처럼 자기만의 세상을 창세해서 모형정원이라도 만들 셈인가 보지? 마음대로 하라고…….”

그놈은 또 누구야?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나는 내심 투덜거렸지만 츠쿠요미의 비웃음에 대꾸했다.

“너 같은 놈한테 내 이상(理想)을 다 말해줄 생각 없어.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가 뭔지 아나? 나는 이겼고 너는 졌다는 거다.”

“……!!”

“이 패배자 놈아.”

“이놈…….”

간결한 한마디였지만 츠쿠요미는 인상이 구겨졌다. 나는 그 반응을 보자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지.’

아무리 백마디 조롱을 해도 결코 승패우열의 진리는 바꿀 수 없다.

승리를 확신하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츠쿠요미를 상대로 충분히 깔아뭉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승리감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기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굳이 원한다면 전생자로서의 내 길에 대해서 말해주지.”

달마 같은 경우가 아닌 다른 전생자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츠쿠요미에게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걸 말하고 싶다는 욕구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무한히 쳇바퀴를 도는 듯한 이 전생(轉生)을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놈이었기에 적이라 하더라도 이건 꼭 말해두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뭘 할려고? 땡중처럼 진공가향이라도 할 셈이냐? 그런 게 답일 수 있을까?”

츠쿠요미가 조롱했지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너 때문에…… 아니, 어쩌면 천암비서 때문에 이번 생은 꽤나 많이 미궁 속을 헤매였다. 하지만 그 덕에 나 나름대로의 길에 대해서 느낀 게 있다.”

“…….”

“너무 복잡하고 규모가 큰 대안은 생각하지 않겠어. 그러기에는 내 능력도 부족하고 심지어 내 동료들까지도 상황에 휘둘릴 뿐이야. 그래서 내 목표는 단순해졌다고.”

그것이 바로 이번 30번째 삶에서 느낀 것이었다.

안빈낙도를 추구하려다 살짝 삐끗한 결과 시공간이 마구 엉켜 버릴 정도로 복잡해진 것이다.

별다른 목적도 없는데 방만하게 현상유지를 하려는 오만함이 불러일으킨 실책이라 할 수도 있었다.

“……어떤 목표냐?”

그러자 츠쿠요미는 약간의 호기심을 느낀 듯 말했고, 나는 씩 웃으며 대꾸했다.

“검신(劍神)이 되어서 무신(武神)을 만날 거다.”

“……?!”

“어떠냐, 간단하지?”

당초 목표는 검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주검성 아지다하카와의 대결에서 다짐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는 검신으로서 무신을 만나는 것!

그것보다 더 확실한 목표는 달리 없으리라.

‘흉신을 상대해야 하고…… 황제도 상대해야 하지만…….’

그런 강적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버텨내기 위한 힘을 이번 30회차동안 기른 것이다.

검신이 되어 무신을 만나겠다는 야망 정도는 품어도 될 것이다.

그러자 츠쿠요미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무신……? 그 허깨비를 뭐하러 만난단 말인가? 네놈은 무(武) 따위가 우주적 존재에게 통하지 않음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냐?”

“글쎄. 허깨비든 뭐든…… 일단 만나 봐야 결정할 수 있지 않겠냐.”

“시간낭비군.”

이 새끼가?

퍽!

나는 그 순간 츠쿠요미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아까부터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게 짜증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츠쿠요미가 컥 하고 피를 토해냈다.

“으윽…… 이 놈…….”

나는 으르렁대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랄 마! 내가 하고싶다는데 니가 어쩔거냐고.”

“네 녀석…… 무슨 전생자가 수십회차가 지났는데도…… 이런 시정잡배 같은…….”

츠쿠요미가 내 행동에 어이없어했지만 나는 놈의 반응을 무시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 무신 못 만나봤지? 못 만나봤으면서 뭘 아는척이냐!”

“…….”

“나는 만날 거거든!”

내 말에 츠쿠요미는 분한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러더니 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만나봤자 별거 없을 것이다! 놈이 신역절기 이상의 뭔가를 갖고 있다면 왜 세상의 힘의 균형이 바뀌지 않았겠느냐. 나는 그래서 무공따위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츠쿠요미의 말에 약간 흠칫했다.

‘음…… 전생자는 저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인가.’

달마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무공을 상당히 천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과 권능으로 얻을 수 있는 힘의 한계치가 무공에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들이 볼 때는 무공 또한 열심히 연마해서 무신까지 만나겠다고 하는 내가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리라.

나는 감정을 추스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만나봤자 별거 없을 수도 있긴 하지.”

“그렇다. 그럴 땐 어쩔거냐.”

“어쩌기는.”

이어진 내 말에 츠쿠요미는 멍해져서 굳어졌다.

“그때는 내가 무신이 될 거다.”

“…….”

츠쿠요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진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층 마음속으로 결의를 품으며 생각했다.

‘무신이 존재하든 아니든 나는 이미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세상을 구하고 나면 다 끝일까?

진공가향의 원념을 해소하면 다 끝일까?

아니……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삶은 무(武)의 삶이다.

삶이 이어지는 한 포기할 수 없기에 - 결국 그 끝을 보고싶을 뿐이다.

수련세계에서 수많은 수행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무신이 존재하든 말든 이미 중요하지 않다.

그 길의 끝에 누가 있든간에 일단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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