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704화 (1,603/1,615)

전생검신 90권 14화

츠쿠요미의 말은 무언가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놈은 그 말의 의미를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금 양쪽 손에 흑과 백의 구슬을 띄우더니 말했다.

“헌데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지? 깡통 덩어리와 인간 하나가 지금 나를 상대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

“재미는 있었다. 이만 끝내주마.”

우우웅

츠쿠요미가 다시금 흑과 백의 구슬을 소환하자 아까처럼 끔찍한 기운이 밀어닥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기세에 나도 모르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 기술은 대체 뭐지……? 어떻게 이 혼돈 속에서도 쓸 수 있는 거냐.’

지금 우리가 있는 외우주 사이의 혼돈은 아예 법칙이란 게 적용되지 않는 기괴한 장소라서 모든 종류의 술법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아마 이곳에서는 대라신선이나 [옛 지배자]라고 하더라도 제 뜻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도 츠쿠요미의 저 술법은 마치 당연한 듯이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나 지금 우리는 사실상 대항할 방법이 없다시피 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입을 열었다.

“백웅. 둘 중 하나를 훔쳐라.”

응?

나는 의아했지만,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이미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만상지투(萬象之偸)

샤샥!

나는 되는 대로 흑의 구슬을 훔쳐내었고 막 술법을 발동하려던 츠쿠요미는 멈칫하며 당황한 듯했다. 왜냐하면 두 개의 구슬이 합쳐지지 않으니 술법이 발동되지 않은 것이다.

“아니……?”

“크크크크.”

즐겁다는 듯 껄껄 웃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역시 그렇군. 이 외우주의 혼돈에서 발동할 수 있는 건 외법(外法) 뿐…… 네놈의 힘이 외법이라면 마찬가지로 백웅도 만상지투를 쓸 수 있는 거 아니겠나?”

“……!!”

“자아, 첫수는 봉인했다. 그럼 이번엔 이쪽의 차례다.”

그렇게 말한 제갈사는 내게 외쳤다.

“백웅, 그 구슬을 대가로 이자나기노미코토를 소환해라!”

[아, 알았어!]

나는 제갈사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몰랐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잠시 후 나는 검은 구슬을 꽉 쥐어서 힘으로 터뜨리며 이자나기노미코토의 이름을 불렀다.

[이자나기노미코토!! 이 구슬을 바친다!]

치지지직

‘크윽!’

나는 그 순간 [이름]이 기계의 팔목에 떠오르며 선명한 고통이 느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기계인데도 고통을 느낀다는 게 이상했지만 아마 이것 또한 예전에 설명을 들은 것처럼 팔식(八識)에 이어지는 권능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잠시 후 구슬이 내 몸속으로 흡수됨과 동시에 선명하게 [이름]이 빛을 발하더니 섬광이 일어났다.

파아아앗

그리고 이윽고 내 앞에는 딱 사람만 한 크기의 기이한 촉수생명체가 소환되어 있었다.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사족보행 생물처럼 생겼지만, 전신이 꿈틀거리는 촉수로 얽혀 있는 듯한, 나무의 느낌또한 나는 기이한 생명체였다.

그리고 그 생명체는 소환되자마자 눈에서 시꺼먼 안광을 사출하며 기음성을 내었다.

[크으으으…… 크아아아아!!]

광포한 포효와 함께 터져 나오는 신력!

하지만 나는 그 흉맹함에서 이질감을 느끼고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성이 없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름]을 통해 소환된 존재는 이성이 없는 마수(魔獸)와 같은 상태인 듯했다.

“…….”

그 생명체를 본 츠쿠요미는 잠시 묘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창세신 이자나기여…… 자신의 이름조차 빼앗겨 전생자의 하수인이 된 꼴이 처량하기 그지없구나.”

[……!!]

“이 외우주의 혼돈은 존재의 본질을 여과 없이 반영하는 곳…… 그만큼 쪼그라든 꼴을 보니 전성기에 비해 얼마나 약해졌는지…… 후후.”

촉수생명체는 바로 내가 소환한 이자나기노미코토였다. 츠쿠요미의 조롱을 들은 이자나기노미코토는 잠시 부들부들 떨더니 포효했다.

[크아아아악!!]

쿠르르륵!!

그와 동시에 이자나기의 전신에서 수많은 촉수가 가지처럼 뻗어 나가서 츠쿠요미를 공격했다. 츠쿠요미는 그 공격에 처음에는 은빛 기운을 소환해서 방어하려는 듯했으나, 손쉽게 그 은빛 기운이 촉수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자나기. [이름]을 빼앗기면서 도리어 본질의 힘을 각성했군? 성가시게…….”

슈웅

그렇게 중얼거린 츠쿠요미가 방어를 포기하고 순간이동 능력으로 뒤로 죽죽 물러나자 촉수 또한 그런 츠쿠요미를 쫓아서 맹렬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자나기의 전신은 삽시간에 우거진 덩굴처럼 천지사방으로 촉수를 뿜어내어, 우리는 금세 이자나기의 몸속에 있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꿈틀…… 꿈틀…….

아무리 나뭇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흉맹한 촉수덩굴 한가운데에 있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불쾌함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제갈사에게 말했다.

[츠쿠요미를 이대로 격퇴할 수 있을까?]

“글쎄. 아마 시간 벌이밖에 되지 못할 거다.”

[뭐?]

“츠쿠요미는 전지능력자야. 그런 놈이 전지를 포기하면서 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그만큼 자신의 힘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다는 거지. 이쪽은 그만한 준비는 안 되어 있잖아?”

[…….]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작전을 잘 짜야 하니까.”

[아, 알았어.]

제갈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촉수덩굴 너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놈의 음양쌍신좌라는 술법이 발동되면 이번에는 막을 방법이 없다. 외우주의 혼돈에서도 제 위력을 내는 술법이면 이미 웬만한 신을 일격에 소멸시킬만큼 초월적이야. 일단 그게 전제니까 기억해둬.”

[뭐라고? 두 번이나 놈의 술수를 무효화 했잖아.]

“두 번 다 꼼수였어. 그리고 내가 놈의 술수를 무효화한 건 너와 합신해 있던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거고 현신(現身)한 지금은 그 방법을 쓸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지닌 요령을 지금 당장 너한테 전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만상지투로 훔치면 되잖아.]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할 놈은 아니야. 지금껏 놈이 꽤 방심했다는 게 안 느껴지나?”

[으음…….]

“결국 사대신기밖에 답이 없다. 다른 수단은 사대신기의 보조에 불과해.”

[……!!]

사대신기!

나는 제갈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제갈사에게 말했다.

[여기는 외우주의 혼돈인데 사대신기가 발동할까……?]

“시험삼아 아그니를 소환해 봐라.”

나는 제갈사의 말에 정신을 집중해서 염신기 아그니를 소환했다.

슈우욱!

[돼, 됐다!]

“역시. 결전병기쯤 되면 이런 곳에서도 소환이 되겠지.”

내 손에 소환된 아그니를 보고 당연하다는 듯 중얼거린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그니로는 츠쿠요미를 끝장낼 수 없을 거다. 마왕 정도는 끝장낼 수 있는 신기라지만 대신급을 처치하기에는 위력이 부족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당연히 최강의 신기인 뇌신기 바즈라를 써야만 한다. 아그니도 강하지만 순수한 파괴력은 바즈라에 미치지 못하니까.”

[…….]

“불러내야 해.”

[기, 기다려 봐.]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눈을 감고 사대신기를 불러내는 공간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사대신기의 공간을 보는 순간, 나는 역시나 하는 생각에 당황했다.

‘이, 이런 젠장.’

살기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뇌신 인드라!

그 인드라가 뇌신기의 소환을 막듯이 가로막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환웅이 해줬던 조언을 제때 수행하지 않았던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진작 바즈라에 대화를 걸어서 저새끼랑 결판을 지어놓을걸……!!’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 뇌신 인드라와 협상을 해야 하는 난이도가 얹어지다니!

나를 한 번 불태워 죽이기까지 했던 인드라였으니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이런 난관을 타파할 수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정신을 재빨리 가다듬고는 인드라에게 말했다.

[이봐…… 인드라!! 바즈라 한 번만 좀 쓰자!]

[…….]

[그렇게 노려보지만 말고 대답을 해봐, 좀…….]

내가 괜히 초조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 뇌신 인드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녀석은 그때 서(書) 안에서 힘의 봉인이 일부나마 깨졌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군!!]

[……?]

어? 무슨 소리지?

힘의 봉인이라니?

나는 인드라의 뜬금없는 말에 영문을 몰라서 반문했다.

[무슨 소리냐? 힘의 봉인이라니…… 그때라는 건 언제를 말하는 건데.]

[외신이 관여했던 바로 그때다.]

[아.]

[아마 ‘그녀’는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네놈이 전지를 깰 수 있는 발단을 그때 이미 마련했던 것이지…… 과연 전우주에서 서열 3위라 할 수 있는 존재이다.]

[…….]

[하지만 알고 있나? 놈의 호의는 결국 자기자신의 재미를 위한 것일 뿐…… 외신의 관심을 끄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존재치 않는다는 걸. 너는 결국 해금(解禁)된 그 힘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드라의 말에는 짙은 냉소가 배여 있었다. 내가 대꾸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자 인드라가 천천히 뇌신기 바즈라의 앞을 가로막던 장소를 비키며 말했다.

[동족끼리 상잔하는 꼴이 재미있어 보이니 이번에는 특별히 도와주마.]

번쩍!!

다음 순간, 내 손에는 뇌신기 바즈라가 잡혀 있었고 내 의식도 현실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뇌신기 바즈라에는 숨길 수 없는 강대한 뇌전(雷電)의 기운이 맺혀 있어서, 인드라가 심술을 부리지 않고 똑바로 기운을 부여했음을 알 수 있었다.

파지지직!!

‘방금 그건……?’

대체 뇌신 인드라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슨 뜻이지?

무슨 힘의 봉인이 풀렸단 말인가?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말했다.

“좋아. 바즈라를 성공적으로 소환했군. 그럼 이제 그걸 츠쿠요미에게 때려박는 데만 집중하자.”

[아, 알았어.]

나는 제갈사에게 내가 방금 겪은 것을 이야기해줄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나기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지만, 엄연히 전투 중인 데다가 너무나 불투명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작전은 이렇다…….”

나는 제갈사에게서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잘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는 수밖에!

우리가 막 작전계획을 마치던 바로 그때였다.

윤회지법(輪回之法)

황금월영(黃金月影)

지이이잉……!!

츠쿠요미가 소환한 금광(金光)이 어디선가 거대한 폭으로 날아들며 이자나기의 촉수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지금껏 이자나기가 펼쳐냈던 강맹한 기세가 마치 거짓인 것처럼 츠쿠요미의 금광은 지나쳐간 궤적에 있는 모든 촉수들을 잔인하게 터뜨리고 있었다.

퍼퍼펑

[끄오오오오!!]

이자나기가 기괴한 비명음을 지르면서 한층 더 강하게 촉수를 뻗쳐냈지만, 한계가 있는지 고작해야 금광의 전진을 조금 막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윙 윙 윙 윙

어느새 츠쿠요미는 육안으로 명확히 형체가 보일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고, 놈의 몸 주변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회오리 같은 게 잔뜩 소환되어 있었다. 아마도 저 회오리에서 황금빛을 뿜어내는 게 분명했다. 츠쿠요미는 순식간에 이자나기의 기운을 제압하고는 차갑게 웃었다.

“이자나기…… 전성기 시절이라면 몰라도 고대신의 힘도 잃고 본연의 힘까지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나를 상대할 수 있다 여겼느냐?”

나는 그런 츠쿠요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뭐? 이자나기가 고대신의 힘을 갖고 있었다고?]

“모르고 있었나 보네. 그럼 조금 알려줄까.”

츠쿠요미는 잔잔히 말을 이었다.

“태초에 이자나기는 그저 [옛 지배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과 대칭으로 태어난 고대신인 지모 이자나미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합신(合身)을 시도했지.”

[합신?!]

“그래. [옛 지배자]와 고대신의 합일이라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들의 힘이 합쳐지자 일시적으로 이자나기는 전 우주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힘을 손에 얻는 데 성공했지."

[……!!]

“허나 그 시도는 몇만 년밖에 가지 못했다. 아마츠카미(天津神) 전체를 합친 것보다 고대신 이자나미가 품고 있는 질서의 기운이 강할 줄은 예상치 못했고…… 이자나기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해치는 고대신 이자나미의 힘을 ‘자식’이라는 형태로 방출했다.”

[뭐라고……?]

“고신 이자나미의 [정신]은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되었고, [육체]는 투신 스사노오가 되었다. 그리고 합신(合神) 과정에서 생겨난 정제되지 않은 공허(空虛)는 바로 나, 츠쿠요미가 되어 [꿈]의 세계에 스며들게 되었지.”

[그 말은…….]

“그래. 동영의 삼귀자는 모조리 사생아(死生兒), 아니 자식조차 아니란 소리다. 우리 모두가 사실은 고대신 이자나미의 조각이다!”

[……!!]

그, 그랬단 말인가?

‘그래서 [옛 지배자]인 이자나기의 자식이 전부 고대신의 성향이었구나……!!’

뜻밖의 진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츠쿠요미가 이자나기를 보며 요이(妖異)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나는 고맙기 그지없구나, 이자나기. 네가 [옛 지배자]와 고대신의 합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이렇게 특별한 허(虛)의 신좌(神座)를 얻을 수 없었을 테니.”

그러자 뜻밖에도 지금까지 마수처럼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던 이자나기가 잠시동안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마치 넋을 잃은 듯 중얼거렸다.

[츠쿠요미…… 츠쿠요미…… 너는…… 츠쿠요미가…… 아니다…….]

“글쎄. 그럴지도. 허나 지금 내게 잠들어 있는 츠쿠요미의 신격은 간절히 원하고 있군……."

츠츠츠츠

츠쿠요미의 눈에서 신광(神光)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서 마치 만월(滿月)과 같은 후광(後光)이 일어나더니 츠쿠요미의 광소가 울려 퍼졌다.

“자신이 암천향(暗天鄕)의 달(月)에서 얻은 힘을 자신의 아비에게 간절히 보여주고 싶다고!!”

번쩍……!!

다시금 츠쿠요미의 만월 같은 후광에서 어마어마한 광채를 지닌 월영(月影)이 천지사방을 메웠다. 그 공격은 아까 상대했던 음양쌍신좌에 못지않은 것처럼 느껴졌기에 나는 츠쿠요미의 힘이 확실히 지금의 나와는 격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제갈사의 말대로 필멸자로서는 상대조차 불가능한 존재가 맞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제갈사의 비직 뒤틀어진 미소가 보였다.

“아주 뻔한 수로군. 백웅!”

[알았어!!]

그 순간, 나는 사전에 작전을 짰던 대로 제갈사의 명령대로 행동했다.

‘폭광(暴狂)의 가면(假面)이여, 기만(欺瞞)의 가면(假面)이여, 음모(陰謀)의 가면(假面)이여!’

트리무르티(三位一體)

삼대신성가면(三大神聖假面)!

‘내가 쓸 수 있는 트리무르티의 조합 중 가장 강력한 조합……!!’

현재의 미약한 신력으로는 탁록시대의 진짜 육체만큼 힘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어찌 됐든 조합 자체의 사기적인 공능에 기댈 수밖에!

그리고 세 개의 가면이 합쳐져서 하나의 가면이 되어 내 얼굴에 딱 달라붙는 느낌이 든 순간, 나는 그대로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황금빛의 월영을 향해 쌍장(雙掌)을 뻗었다.

기만(欺瞞)의 가면이 상대의 신력에 파장을 맞춰서 동화(同化)한다.

폭광(暴狂)의 가면이 내 미약한 완력을 무한대에 가깝게 증폭시킨다.

음모(陰謀)의 가면이 황금빛 월영에 걸려 있는 속성을 읽어내어 파해(破解)한다.

콰칭!!

황금빛의 기운이 내 쌍장에 부딪히자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막혔다. 세 가면의 힘이 한데 모이면서 상대의 힘을 일순간 정지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가볍다.

가면을 쓰니까 마치 처음부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모든 가면의 힘을 끌어내는 느낌!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악물며 그동안 수행해왔던 무공(武功)의 성취를 발휘했다.

천화뇌룡신공(天華雷龍神功)

뇌룡종(雷龍鐘)!

두웅 - !!

파지지직

“음?!”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츠쿠요미의 전신이 뇌공의 파장에 둘러싸였다. 뜻밖의 반격에 츠쿠요미는 예상치 못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나는 이미 제갈사의 전략이 먹혔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아아아……!!]

나는 크게 숨과 기운을 조절하며 한 손에 들려 있는 뇌신기 바즈라를 투척할 준비를 했다. 이 공격이 빗나가면 두 번은 없기 때문에 나는 모든 기운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던 츠쿠요미가 비웃듯 말했다.

“아하하…… 뭔가 했더니 무공? 대신격을 상대로 무공이라고?"

[…….]

“고작 이딴 걸로 나를 붙잡아두려 했느냐? 이런 건 힘으로…….”

파지지직!!

“……!!”

하지만 츠쿠요미는 신력을 방출해서 바로 탈출하지 못하고는 허우적댔다. 확실히 천화뇌룡신공 뇌룡종의 초식이 놈의 전신을 뇌장(雷場)에 가둬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물을 잡는데 특화된 천화뇌룡신공의 초식, 뇌룡종!! 그 진짜 위력은 뇌전의 파장으로 상대를 묶어놓는 데 있었다. 직접위력은 검뢰를 난무하는 것보다 약할지라도 확실히 적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츠쿠요미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외쳤다.

“무공 따위로 어떻게 이 나를……!!”

그 모습을 유유자적하게 지켜보던 제갈사가 큭큭 웃었다.

“확실히 신을 잡기에 천화뇌룡신공은 터무니없이 약하지. 허나 백웅의 트리무르티로 소환한 세 개의 가면은 이미 네 신력파장을 모두 읽어내어 파해했다. 그 파장에 따라 펼쳐진 천화뇌룡신공은 충분히 신에게도 통하는 무공이 되는 것이다.”

“……!!”

“꼭 신역절기의 경지에 이르지 않더라도 신력의 근원만 파훼할 수 있으면 충분히 신살무공 아닐까? 큭큭큭.”

궤변이다.

신역에 오른 고수들이 들으면 다 기가 막혀할 궤변!

‘이기면 장땡이지 뭐!’

하지만 제갈사가 내 편이었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즈라에 정신을 집중했다.

제갈사의 전략이 통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편법이었기에 뇌룡종의 효력이 신에게 오래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가라, 츠쿠요미!!]

이렇게까지 묶어두었다면 지금 내가 바즈라를 빗맞힐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아!

다음 순간, 나는 바즈라를 던져 츠쿠요미의 미간을 꿰뚫었다.

콰득!

마치 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즈라는 츠쿠요미의 이마 정중앙에 꽂혀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승리를 확신하고 말았다.

‘이겼다!!’

지금껏 바즈라를 정통으로 맞은 놈들 중에 멀쩡한 놈은 단 하나도 없었어!

츠쿠요미가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도 이번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아…… 아아…….”

츠쿠요미가 순간 비통한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내가…… 내가 이렇게 당할 것 같으냐……? 그 억겁의 혼돈 속에서…… 이제 겨우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었는데…….”

[…….]

“좋아…… 나도…… 멀쩡히 이기는 건 포기하겠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네놈이 결코 멀쩡히 전생할 수는 없게 만들어주마!!”

퍼버벙!!

츠쿠요미가 원독 어린 저주를 남긴 순간, 츠쿠요미의 전신이 빛과 함께 폭발했다. 원래부터 초현실적 기운으로 이루어진 신체(神體)이기 때문인지 피와 살점이 비산하지는 않았고 그저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흩날릴 뿐이었다. 역시 츠쿠요미가 아무리 날고기는 신격이라 하더라도 바즈라를 급소에 맞고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뭐지?!’

나는 츠쿠요미의 최후를 보고도 끝장냈다는 생각보다는 무척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놈이 마지막에 남긴 말은 결코 얌전히 죽어줄 놈이 하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직감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괴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

이윽고 츠쿠요미가 사라진 그곳에서 기묘한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검은 구(球)?’

그 구체를 쳐다보던 제갈사는 어느 순간 구체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뭔가를 알아챈 듯 내게 말했다.

“……백웅. 아무래도 유소이자 츠쿠요미인 저놈은 [기어오는 혼돈]과 계약을 한 것 같다.”

[뭐?]

“지금 소환되는 저건…… 내 생각이지만…….”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암천향(暗天鄕)에 있는 황금월(黃金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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