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90권 13화
분명히 유소가 맞았다. 여성보다는 좀 더 무성적인 면모가 보이지만, 어찌 되었든 절세의 미인이라 할 수 있는 저 이목구비는 결코 헷갈릴 수가 없는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유소가 탁록시대에 없으며 다른 시대로 갔다는 사실은 확인했고, 언젠가 전지능력을 이용해서 내 앞에 적수로 나타날 거라는 것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츠쿠요미가 유소라는 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지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인간인 네가 대신격인 츠쿠요미가 될 수 있는 거지?]
가장 큰 의문은 바로 그것!
신(神), 그중에서도 대신이라 불릴 정도의 강력한 신격이 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신의 반열에 오르는 것도 힘들어서 온갖 마왕들이 널려 있었으며 설령 신격이 된다 하더라도 그중에서도 급수가 큰 차이가 났으며 격(格)을 올리기 위해 대단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낱 인간이었던 유소가 대신격인 츠쿠요미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유소 - 아니, 츠쿠요미가 말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전지(全知)를 지니고 있으니 대신격이 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
[…….]
“사실 방법 정도는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신좌(神座)를 차지하고 신체(神體)와 신력(神力)을 얻으면 끝이지. 과정이 귀찮을 뿐이지 원리는 무척 간단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츠쿠요미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이질감을 느꼈다.
‘……달라.’
과거에 만났던 유소의 성격이긴 하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아니, 정말 눈앞에 있는 게 내가 알고 있던 그 유소가 맞는 걸까?
좀 더 이야기를 하면서 놈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츠쿠요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유소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왜?”
[츠쿠요미는 아주 먼 고대부터 존재했던 동영의 삼귀자다. 삼귀자는 인간이 존재하기 수억 년 전부터 존재했는데 네가 어떻게 삼귀자가 된다는 거지? 탁록시대에서 바로 시간을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시간상 말이 안 되잖아!]
내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마테라스, 스사노오, 츠쿠요미.
이 동영의 삼대신인 삼귀자(三貴子)는 이자나기에게서 갈라져 나온 존재들로서 사실 수십억 년 전부터 이미 존재해왔던 자들이었다. 탁록시대가 수십만 년 전의 고대라고 할지라도 삼귀자의 탄생에 비하면 엄청나게 현대에 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소가 [큰 굴레]의 미래로 넘어가서 츠쿠요미가 되었다는 건 이치상 말도 되지 않는 일인 것이었다.
‘당연히 그래서 유소가 츠쿠요미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거였는데…….’
어떻게 이 논리적 모순을 뚫고 저놈이 츠쿠요미가 되어 있을 수가 있다는 거지?
설마 츠쿠요미가 유소인 척하면서 나를 기만하고 있는 건가?
내가 츠쿠요미를 응시하자 놈은 나를 마주 보며 대꾸했다.
“백웅. 겨우 그런 게 궁금한가?”
[뭐?]
“전지의 힘마저 포기하고 혼돈에 몸을 담궜다. 너와 결판을 내기 위해서.”
스으으
츠쿠요미의 양손에서 스산한 기운과 함께 한쪽 손 위에는 백색의 구슬이, 다른 한쪽 손에는 흑색의 구슬이 떠올랐다. 내가 그 구슬에 담겨 있는 기운을 쳐다보았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아찔해지고 말았다.
‘저, 저건 대체 뭐지……?’
저기에 담겨 있는 건 신력(神力)이 아니다.
뭔가…… [다른] 힘이다.
츠쿠요미는 더없이 냉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끼리의 싸움은 의리도 정의도 없는 진흙탕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원인과 결과를 따질 이유조차 없지. 네가 그것조차 모르는 애송이라면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
나는 그 순간, 츠쿠요미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 놈은 나처럼 모든 걸 걸고 여기 온 것이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는 자는 모든 걸 얻을 것이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런 상황인데 이제 와서 ‘왜’ 싸우는지가 더 이상 중요할 리가 없다. 도리어 그런 걸 일일이 따지는 게 멍청한 짓일 수밖에 없었다.
여태 숱하게 겪어왔던 약육강식(弱肉强食)!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납득이 가지 않아서 이를 악물었다.
[씨발!! 그러니까 더 알아야 할 거 아냐! 살아남은 놈은 죽은 놈을 기억해야 하니까!]
“…….”
내 말에 츠쿠요미가 공격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놈은 정말로 내 말이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기억해야 한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끝이 아니니까!!]
나는 내 직감에 맡긴 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나를 이긴다 해도, 내가 널 이긴다 해도 끝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 모든 걸 꾸민 게 누군지는 몰라도 마지막에 존재할 놈과 결판을 짓기 위해서는 뭐든 필요하다고!]
“…….”
[진짜 결판을 내고 싶다면 네 정체를 내게 말해! 어차피 네 녀석은 전지능력으로 내가 누군지 알 테니까.]
“말해 주기 싫다면 어쩔 거냐?”
[마음대로 해! 어차피 네 선택이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 내가 이긴다면 넌 후회할 거다.]
후회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다.
결국 패배자가 남길 수 있는 건 기억뿐이기에.
내 말에 츠쿠요미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러더니 문득 낭랑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말하는 걸 보니 이미 심연에 존재하는 진짜 관문을 보고 온 모양이네. 30회차면서 그게 가능한가? 정말이지 너는 느린 듯 빠른 존재로구나.”
[…….]
“좋아. 다 결판난 마당에 주절주절 설명하는 건 내 성격이 아니지만 네 말대로 어느 정도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츠쿠요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탁록촌에서도 내가 말했지? 너는 곧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될것이고, 네 의지로 인과율을 잇는지 잇지 않는지에 따라 내 운명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츠쿠요미의 말에 과거 탁록촌에서 유소를 처음 만났던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나는 분명히 유소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츠쿠요미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말했었지. 그게 어쨌단 거냐.]
“그때 나는 또 하나를 질문했었다. 예언자가 자신의 과거를 예언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
“다시 묻지. 어째서 예언자는 자신의 과거를 예언할까?”
탁록에서부터 수십만 년의 세월을 격해서 츠쿠요미의 질문을 새삼 듣게 되자 나는 감회어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공간을 방랑해 왔던 내 체감으로도 족히 수백 년 전의 일이었기에 새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흠…… 뭐지…… 깊게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그저 유소가 좀 있어 보이려고 잘난체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츠쿠요미가 된 유소가 지금 다시 질문하는 걸 보면 저 질문에는 뭔가 심각한 의미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서 츠쿠요미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예언자는 왜 자신의 과거를 예언할까?
‘예언자 본인한테 이득이 되기 때문이겠지?’
여기서 예언자는 유소이자 츠쿠요미다. 저놈은 남의 얘기인 척 자기 얘기를 했던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츠쿠요미가 된 유소가 과거를 예언했던 이유는…….
[…….]
아 씨발…… 어려워…… 모르겠다…….
나는 츠쿠요미의 말에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사실 그때도 풀지 못한 어려운 수수께끼인데 지금 갑자기 풀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모르겠네…….]
내가 솔직하게 털어놓자, 츠쿠요미는 피식 웃더니 자신의 양손에 있던 흑과 백의 구슬을 띄웠다.
“그래? 자신만만하게 얘기해 놓고는 우둔해지는 꼬라지라니…… 그럼 죽어.”
[잠깐……!!]
아니 잠깐 이게 아닌데!!
오늘 잘 풀리나 싶었는데 갑자기 왜 이래?!
“잘 가거라, 백웅.”
내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츠쿠요미는 이미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윤회지법(輪回之法)
음양쌍신좌(陰陽雙神座)
번쩍……!!
흑과 백의 구슬이 합쳐지며 섬광을 내뿜는 순간, 나는 이 혼돈의 공간에서 혼돈이 갑자기 소멸되며 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폭열(爆熱)이 마치 물감처럼 공간에 번져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속도는 느려보였지만 이 한도끝도 없는 혼돈을 도리어 잠식하면서 내게로 향하는 것을 보니 그 위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이, 이 공격은 대체……?’
전생하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술법이야!
설마 외우주의 혼돈에서도 쓸 수 있는 술법이 존재하다니?!
[크악.]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음양쌍신좌의 기운이 나를 에워싸 버렸다. 그리고 내 팔다리가 온통 강대한 기운에 붙잡혀서 옴짝달싹못하고 있을 때 회색의 기운이 내 몸을 분해시키기 시작했고, 나는 기계몸뚱이가 서서히 불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츠아아아앗
이…… 이렇게 끝인가?
여기서 죽으면 전생이 가능한가? 아니…… 나일라토프와 싸울 때도 외우주조차 아닌 혼돈의 공간에서 죽으면 어찌될지 몰라서 가장 두려워했었는데 진짜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 그것까지 다 계산하고 나를 여기로 끌어들인 건가?
나는 죽을 때가 다 되니 엄청난 속도로 머리가 회전하는 걸 느꼈다. 그러자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야 모든 걸 예지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듣고 나서 행동하나 아니면 미래를 듣고 행동하나 똑같은 거니까…….]
[그게 정말로 같은 걸까요?]
[그건 결국 미래를 보는 ‘나’ 자신이 예언을 했기에 예언자 자체가 미래에 간섭한 게 아닌가요? 그리고 당신은 예언자의 간섭으로 변한 미래가 정말로 원래와 차이가 없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그 기억이 떠오른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뇌내에 울려 퍼졌다.
[관전(觀戰)은 여기까지군.]
번쩍!!
다시 한번 눈앞에 섬광이 펼쳐지더니, 내 몸을 지글지글 익히고 있던 회색의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머리가 아파서 허우적댔는데, 그런 내 앞에 낯익은 누군가가 서 있는 게 눈에 띄였다.
‘어?’
설마…… 저 녀석은…….
‘이, 이럴 수가!!’
이게 말이 돼?!
내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멍하니 있을 때 새로이 장내에 출현한 누군가를 보고 츠쿠요미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이런 가능성은 전지에 읽히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이 자리에 나올 수가 있는 거지?”
츠쿠요미의 질문에 그 누군가는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큭큭…… 아마테라스의 양(陽)과 스사노오의 음(陰)을 이용해서 신격조차 분해해 버리는 무서운 술법이라지만, 그 원리는 결국 혼백(魂魄)과 맞닿아 있더군. 내가 백웅의 내면에 있던 사신지혼의 기운을 이용해서 이혼대법으로 네 술법을 무효화시켰을 뿐이다.”
“호오, 그렇군. 하지만 네가 술법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온 걸 보면 두 번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겠지.”
그는 무슨 같잖은 소리를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두 번 쓸 필요까지 있겠나? 넌 여기서 끝장날 텐데.”
“…….”
그 자의 말에 츠쿠요미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되었든 지금의 츠쿠요미는 대신격이었는데 그런 츠쿠요미에게 일개 인간이 자신만만하게 나서는 것이었다.
그 자는 힐끔 나를 돌아보더니 킬킬 웃었다.
“그동안 잘 했다, 백웅. 유소의 흉계까지 네 힘으로 밝혀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워낙 사특한 흉계라서 어쩔 수 없긴 하군.”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의 출현에 나는 그만 당황해서 말했다.
[어, 어떻게 여기에……? 설마 여기도 28회차처럼 [꿈]속인 거냐?]
내 말에 제갈사는 피식 웃었다.
“멍청아. 저 영악한 놈이 네가 힘을 발휘할 여지를 남겨두었겠나? [꿈] 속에서는 네가 유리할 수도 있기에 일부러 꿈조차 아닌 혼돈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는데.”
[아. 그럼 정말로 너는…….]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쳐다보며 외쳤다.
[제갈사!! 돌아왔구나!!]
그렇다.
제갈사가 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자리에 출현한 것이다!
제갈사는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돌아왔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 육체를 잃은 후 쭉 너에게 혼(魂)을 기생한 채 살아오고 있었으니까.”
[어? 그럼 설마……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나도 네 안에서 다 보고 겪고 있었다. 그러니까 굳이 지금 상황을 설명 안 해도 돼.”
[…….]
기가 막히다. 제갈사가 진작 회복되어 있었는데 그냥 가사상태인 척하고 있었다는 게!
그 순간 머릿속에 예전 제갈유룡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두 가지로 해석되는군. 하나는 그대를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서 불확정적인 변수 하나하나를 수집하게 만들고 동시에 당신이 진짜 백웅인지를 지켜보려는 것. 또 하나는 당신과 함께 성장하려는 것이오.]
나는 그때 제갈유룡의 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아마 제갈유룡과 대화하는 그때도 제갈사는 이미 의식이 깨어서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야……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그냥 말 좀 하라고!]
내가 어이없어하자 제갈사는 큭큭 웃었다.
“크흐흐…… 저 유소이자 츠쿠요미가 뻔히 존재하는 걸 아는 상태에서 그럴 수는 없었지. 나는 설령 네가 죽어서 전생하더라도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각오로 끝까지 잠복하고 있었다.”
[뭐?! 대체 왜…….]
“전지능력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읽어내는 거나 다름없지. 내가 조금이라도 너를 도우려고 출현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순간, 그 의지조차 미래에 반영되어서 수를 읽힌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이대로 끝까지 관조자로만 있으려 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전지능력에 읽혔을 것이다.”
[……!!]
“하지만 이 외우주의 혼돈은 다르지. 놈의 전지능력이 봉인된 이 공간, 바로 이때만이 내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시기인 거다.”
[그, 그런 건가……!!]
나는 그제서야 여태껏 제갈사가 은둔해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모든 판을 전지능력자에게 읽히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전지가 쓸모없어진 지금에 와서야 모습을 드러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제갈사는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 해도 넌 대단한 녀석이다. 무의식에서 내가 널 돕긴 했지만 설마 여기까지 전지를 파해할 수 있다니…… 큭큭.”
[음……!!]
“여기까지 왔으니 책사로서 할 일은 다 해주마.”
내가 침음성을 흘리자 제갈사는 휙 하고 츠쿠요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뜸 말했다.
“츠쿠요미여. 내가 백웅 대신 네 수수께끼의 정답을 말해 주지.”
“호오, 네 녀석은 그 해답을 알고 있단 말이냐?”
츠쿠요미가 의외라는 듯 관심을 보이자 제갈사는 싱긋 웃으며 뜻밖의 한마디를 했다.
“예언자가 과거를 [예언]하는 이유는 사실 그게 자신의 진짜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자 츠쿠요미는 움찔했다. 그러고는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의 표정을 드러내었다.
“한낱 인간 따위가…… 정말로 전지능력의 실체를 알아챘단 말이냐?”
“그래.”
제갈사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굴레]의 과거를 예언함으로써 전지(全知)의 범위에 편입시킨 거지. 그리고 과거를 바꿈으로써 미래이자 현재를 저절로 끼워 맞춘 것이다. 그게 바로 네놈이 갖고 있던 전지능력의 진짜 실체…….”
이어진 제갈사의 단호한 말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현실에 신(神) 츠쿠요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너는 츠쿠요미의 비어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지능력을 악용한 것이다!”
[……?!]
뭐, 뭐라고?!
츠쿠요미가 존재하지 않아?!
그런 말도 안 되는…….
나는 제갈사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딴지를 걸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츠쿠요미가 낭랑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하하. 알아차리는 게 늦었네. 만일 백웅이 탁록시대에 그걸 알아차렸다면, 난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텐데.”
[……!!]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지…… 진짜라고?’
제갈사의 말이 진짜란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내가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힐끔 나를 보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백웅. 전지능력이 뭐라고 생각하냐?”
[모든 걸 아는 능력이잖아…….]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사실 모든 걸 아는 것만으로는 그 자체로 현실을 무분별하게 변화시킬 수 없지. 네가 전생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으나 어찌 되었든 힘과 능력이 부족하면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잖은가?”
[그건 그렇지.]
“전지능력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공능……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예언에 맞춰서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
뭐, 뭐라고?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외쳤다.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알기만 하는 건데 어떻게 현실이 변화된다는 거야.]
“유소의 말 기억나나? 예언자의 간섭으로 변한 미래가 정말로 원래와 차이가 없는 건지 놈이 화두(話頭)를 던졌었지.”
[…… 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바로 방금 전에 떠오른 기억이라서 나는 제갈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갈사가 츠쿠요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놈의 전지능력은 미래를 예언함으로써 자신이 직접 그 미래에 간섭할 수 있다. 그리고 간섭을 함으로써 원래 자신이 존재하던 [굴레]와 관련 없는 별개의 굴레에도 연기(緣起)를 이어 버려서 원하는 미래로 가버릴 수가 있지.”
[……!!]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생각이 번뜩 하고 떠올랐다. 그러고는 급히 제갈사에게 말했다.
[서, 설마 망량선사가 날 도와준 이유는…….]
“맞아. 전지능력자 유소가 먼저 멋대로 미래와 탁록시대 간의 연기를 이어서 자신이 대신격 츠쿠요미가 되는 미래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탁록시대에서 사라진 순간 츠쿠요미의 힘을 얻어 버린 거지. 그 때문에 인과율이 왜곡되자 망량선사도 너한테 탁록시대와 현실 사이에 연기를 이을 수 있는 권리를 줘 버린 것이다.”
[…….]
“너는 처음부터 유소가 [큰 굴레]를 넘을 수 있는 매개체로서 이용되었던 거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설마 저놈의 전지능력이란 게 [굴레]를 뛰어넘어서 현실을 왜곡시키는 수준일 줄이야!
나는 제갈사의 설명에 아연해져 있다가 문득 한 가지 이상함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잠깐…… 그렇다 해도 츠쿠요미 자체는 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던 신격이잖아. 아무리 현실을 왜곡시켰다지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거냐고?]
“백웅. 스사노오한테서 들은 얘기가 기억나나? 츠쿠요미는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평상시에는 이 우주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꿈의 힘을 빌려서만 출현한다는 얘기를.”
[…… 그랬었지.]
“그 누군가가 바로 유소인 거다.”
[어? 그 말은 설마…….]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유소의 꿈속 존재가 바로 츠쿠요미이고, 츠쿠요미의 꿈속에 유소가 있다. 아마 처음부터 츠쿠요미가 [꿈]에 속하는 존재이기에 가능했던 일일 거다.”
[…… 신이…… [꿈] 속의 존재라고? 그런 게 가능해?]
“지금 네 눈으로 보고 있지 않나.”
제갈사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츠쿠요미를 노려보았다.
“월신(月神)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농락하는 존재를…….”
제갈사의 말이 끝나자 츠쿠요미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러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제갈사. 설마 이자나기노미코토의 비밀을 전혀 모르는데도 거기까지 추리하다니……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