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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702화 (90권 12화) (1,601/1,615)

전생검신 90권 12화

[경계]?

나는 그 말을 듣자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해가 하나도 안 되잖아.]

“스승님은 [경계]를 겪어 본 너라면 경험적으로 이해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대꾸한 천우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진짜 단순하게 설명해주지. 이 세상은 총 3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꿈], [경계], [공허(空虛)]이다. 그리고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저 츠쿠요미의 시체는 [경계]를 발생하는 쐐기가 되어 버렸기에,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다.”

[……?]

“후우, 역시…… 알아듣긴 뭘 알아들어. 신격들도 거의 못 알아듣는 얘기인데. 스승님이 이걸 외부인한테 설명하라고 한 게 어이가 없군…….”

천우진은 왠지 바로 못알아듣는 나를 보자 분노보다는 한탄부터 나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반응에 내심 황당해하며 말했다.

[아니 인마! 너만 혼자 이해하는 얘기를 씨부렁거리면 내가 어떻게 알아듣냐? 좀 더 친절하게 설명을 해보라고.]

“……원래 엄청난 기본설명이 필요한 얘기니까 그렇지. 게다가 우주의 진실 중 일부이기도 하고. 좋아, 그럼 아주 기초부터 시작하자.”

천우진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듯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백웅. 너는 스승님을 늘 오솔길에서 만난다고 들었다. 그러면 네가 스승님을 만나는 그 장소에서 너는 너의 힘을 쓸 수 있었나?”

[아니. 그냥 정신만 멀쩡해서 말만 할 수 있었다. 다른 힘을 써보려고 한 적은 없는데 아마 안 써질 것 같았어.]

“왜 그렇게 생각했지?”

[왜냐니…… 꿈이잖아. 꿈 안에서 대체 무슨 힘을 쓴다는 건데?]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었기에 내가 어이없어하자 천우진이 말했다.

“바로 그 인지(認知)가 중요한 거다. 너는 꿈을 꾸고 있다고 자각(自覺)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네가 스스로 만든 인식의 감옥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꿈]이 아닌 [경계]이기 때문이다.”

[……?!]

“잘 생각해 봐라. 그곳은 몽환(夢幻)이지만 네가 알고 있는 꿈과 달랐을 거다.”

나는 천우진의 말이 워낙 의외였기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 들었다.

[어? 무슨 소리야?]

“[꿈]과 [경계]의 차이는 그리 어렵지 않아. [꿈]은 모든 혼돈이 자유로우나 [경계]는 현실의 법칙성에 어느 정도 얽매이게 되어있지. 대신에 [경계]는 현실에 간섭하기 쉬우나 [꿈]은 그 꿈을 초월할 수 있는 자가 아닌 한 절대 그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어.”

[…….]

“너는 그동안 스승님과 만나는 오솔길을 꿈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스승님이 너를 끌어들이는 방식 때문에 꿈이라고 여겼을 뿐 그 장소는 어디까지나 [경계]다. 즉 사실 너도 마음만 먹으면 그 세계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다.”

[……!!]

“물론 네가 거기서 능력을 발휘해봤자 스승님 앞이니 무의미하지만.”

그, 그게 꿈이 아니었다고?!

꿈과 현실의 중간지대였다니!!

30번이나 전생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있자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저 츠쿠요미라는 놈의 능력은 [경계]를 발생시키는 거다. 아마도 처음부터 자기자신의 죽음을 전제조건으로 해서 발동시키는 술법이겠지.”

[경계를 발생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거냐?]

“아주 쉽게 말해서…… 경계란 바로 존재가 인식하는 현실과 몽환의 경계다. 그러므로 경계를 중심으로 생겨난 이 양쪽 공간은 모조리 [꿈]으로 치환되어 버린 것이다.”

[뭐? 꿈이라고?]

내 반문에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장소는 [꿈]으로 바뀌어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신언(神言)!

나는 갑자기 천우진의 몸이 강력한 신력(神力)을 띄는 신체(神體)로 뒤바뀌어 있으며 그 또한 강력한 신의 힘을 사역하는 걸 보자 당황하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천우진은 인간처럼 생긴 [옛 지배자]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니 어떻게 네가 신력을……?]

[신(神)이 되고 싶다고 염원했을 뿐이다. 꿈에선 뭐든 되잖아?]

슈우욱

천우진은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도로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봤자 이건 꿈일 뿐이지만.”

[……!!]

순간 나는 예전에 28번째 삶에서 진소청과 함께 [꿈]의 세계에서 항아와 일전을 벌였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조금씩 천우진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맞아……!! 그때 나는 항아가 나를 [꿈]의 세계에 끌어들여서 함정을 팠을 때…… [꿈]의 특징을 이용해서 도리어 상상력을 발휘해서 뭐든지 할 수 있었어! 도리어 창힐의 힘을 지닌 항아보다 더 강해질 수가 있었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설마……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전성기의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가 적으로 출현해 있는 이유도…… 꿈이라서 그런 거냐?]

“그런 거지. 현실에서 인과율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존재해서는 안 되는 자들. 그러나 [꿈]은 무한대의 혼돈이므로 그 제약이 무의미해지는 거다. 현실이야 어찌 됐든 꿈속에서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가 전성기일 수도 있지?”

[…… 그럼 저놈들하고 싸우는 것도 무의미한 거 아니냐? 그저 [꿈]일 뿐인 거 아니냐?]

“이제야 깨달았군. 지금 이 전투 자체가 쓰잘데기 없는 거다.”

[…….]

나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설마 츠쿠요미가 인위적으로 경계를 만들어내서 세상을 꿈으로 뒤덮이게 만들 수 있다니!

‘전지능력도 그렇고 이놈은 진짜 대체 뭐지? 어떻게 [경계]를 발생시킨 거야?’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잠시 후 냉정을 되찾고는 천우진에게 말했다.

[그러면…… 지금 싸우고 있는 저 천계 신선들에게 알려줘야겠군. 여기는 꿈 속이니까 상상하는만큼 마음대로 강해질 수 있다고!]

그러자 천우진이 비직 비웃음을 흘렸다.

“하…… 너 그게 된다고 생각하냐?”

[어? 무슨 소리냐. 전생하면서 과거에 나는 [꿈]속에서 상상력으로 싸운 적이 있었는데.]

“그건 네가 [꿈]과 [경계]를 똑바로 이해 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진심으로 마음속의 빗장을 허물고 현실이 아닌 꿈이라고 신념할 수 있어야 [꿈]의 이점을 살릴 수가 있지. 그런데 저 천계의 신선 놈들에게 대뜸 ‘이건 현실이 아니라 꿈이니까 마음껏 망상하시면 뭐든 이뤄집니다’라고 하면 그게 될 거같아?”

[…….]

“인지(認知)의 장벽은 굉장히 견고한 것이다. 네 녀석은 쉽게 얘기하지만 [꿈]의 이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건 결국 현실의 핍진성(逼眞性)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너뜨린다는 거라서 신선들 만큼 고위정신체들이라면 도리어 더욱 힘들어.”

천우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꿈]의 이점을 살려서 싸운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망상을 실현시키는 것이기에 웬만한 정신상태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내가 신선들에게 그 얘기를 해봤자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젠장. 이거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능력인데…….’

이대로 [꿈]을 상대로 백날 싸워봐야 승리도 패배도 무의미하다. 그저 이쪽만 피해를 입고 소진될 뿐인 것이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가 문득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잠깐. 그렇다면 [경계]를 만들어서 세상을 꿈으로 만들어 버린 저 츠쿠요미의 시체를 없애 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그 얘기를 할 줄 알았지. 그런데 저건 지금 현실이 중첩(重疊)되어 버려서 그리 쉽지 않아.”

[현실이 중첩되었다고?]

내 반문에 천우진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지금 츠쿠요미는 살아 있으며 죽어 있다. 살아 있는 츠쿠요미의 가능성과 죽어 있는 츠쿠요미의 가능성이 혼재되어 있는 거야. 저걸 처리하려면 저 가능성부터 깨야 해.”

[…….]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나는 당황해서 외쳤다.

[야, 너 무슨 개소리냐? 살았으면 살았고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게 어딨어?]

“존재와 비존재의 중간에 바로 [경계]가 있다. 그리고 경계에 존재하는 자는 [공허(空虛)]와 통해 있기에 자신의 존재가 무(無)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어. [경계]의 능력을 다루는 술사를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과거 탁록시대에서 이환웅과 이야기했던 기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환웅……!!’

나는 이환웅이 비슷한 기술을 이미 보여줬다는 걸 알아채 버리고 만 것이다.

[슈뢰딩거 온 더 루프(Schrödinger on the loop).]

[하지만…… 해석되지 않는 null이 가끔씩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아스키코드 0번에 있는 표현이지. 말 그대로 0이야. 더 쉽게 말하자면 무(無)이자 공(空)이라고 할 수 있지.]

[내 스승인 나일라토프는 늘 이런 얘기를 했어. 이 우주를 창조한 창조신이 존재하며 그 신이 이 세계를 코딩했다면 반드시 null의 존재를 넣을 수밖에 없다고. 존재와 비존재의 중간값이라는 게 이 우주에는 무조건 존재한다는 거야.]

[흐음, 그러니까 말이지…… 아무리 평온한 상태라 하더라도 존재가 중첩될 확률이란 게 존재한다는 거야. ]

[이건 내가 존재할 확률을 인위적으로 양자중첩시켜서 만들어낸 존재야. 즉, 이건 또 다른 나 자신이란 거지. 그러므로 이건 분신이 아닌 또 하나의 본체이기도 해. 재밌지?]

……!!

이, 이건…….

’사용하는 용어가 조금 다를 뿐 이환웅이 이야기했던 것과 거의 같지 않은가? 특히 존재의 중첩에 대해서는 그때 이환웅의 설명을 들은 덕분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나일라토프와 이환웅이 이야기했던 null이라는 건…… 바로 경계를 의미하는 건가?!’

그리고 나일라토프와 이환웅은 과학의 힘으로 경계를 조작했던 게 틀림없다!

과거에서부터의 경험이 연동되는 것을 느끼자 나는 약간의 희열을 느끼고 말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저 츠쿠요미의 시체는 가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츠쿠요미라는 말이군.]

“……!!”

그러자 천우진이 크게 당황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뭐? 네가 진짜로 [경계]의 원리를 이해했단 말이냐?”

[…….]

이 새끼는 자기가 설명해놓고 정작 이해하니까 놀라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거 뭐냐…… 아는 놈이 그러던데…… 츠쿠요미의 저 상태는 통상적인 외력을 거의 다 무시할 수 있는 통합체(Unitary body)라던가? 그래서 웬만한 공격도 잘 안 통한다던데 그런 거 맞지?]

“……전생자 라더니 과연. 스승님이 말한 대로 별의별 경험을 다 해봤던 모양이군…….”

살짝 질린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웬만한 공격 정도가 아니라 신(神)조차도 타격을 먹이기 쉽지 않지. 네가 어떤 수준의 경계술사를 마주쳐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필멸자가 아닌 신격이 직접 존재를 중첩시켰으면 더더욱.”

콰과광

그때 스사노오를 상대하던 천계의 전장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나는 힐끔 그쪽을 쳐다보았는데, 수많은 천계의 강자들이 달라붙어서 동수를 이루고는 있었지만 스사노오가 워낙 강맹해서 자칫했다가는 천계가 당할 것만 같았다. 항우나 제천대성 같은 자들이면 몰라도 비교적 실력이 하급인 자들은 시간을 끌면 큰일 날지도 몰랐다.

나는 그 기색에 조급해져서 말했다.

[지금 우는소리만 할 때는 아니거든. 너도 뭔가 츠쿠요미를 쓰러뜨릴 방법이 있으니까 얘기하는 거겠지?]

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천우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제길…… 도와주러 왔는데 말하는 꼬라지 하곤…… 그래, 방법은 있다.”

[뭔데?]

스윽

천우진은 자신의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츠쿠요미의 술법은 이론상 환신지경(幻神之境)과 같은 경지. 하지만 나는 스승님에게 잠시 권능을 위임받고 왔으니 저놈의 [경계]를 잠시 해제할 수 있다.”

[뭐? 네가 그럼 설마 망량선사의 사도가 되었다는 거냐.]

내가 깜짝 놀라서 반문하자 천우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다면 너한테 설명이나 하고 있었겠나? 나 혼자 다 때려잡았지. 스승님은 저 츠쿠요미란 놈을 파해 할 만큼의 힘밖에 주지 않으셨다.”

[흐음.]

“하지만 놈의 [경계]를 해제하더라도 뭔가 함정이 또 있다. 지금 그 함정을 타파할 수 있는 건 너뿐이라고 스승님이 말씀하셨지.”

[…… 함정이 또 있어? 제기랄.]

“그럼 마음의 준비는 되었나?”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우진이 이제 눈앞의 츠쿠요미에게 펼쳐진 [경계]의 술법을 잠시 해제하면 그 사이에 내가 츠쿠요미를 해치우면 되는 건데, 웃기게도 그 상황에 또 함정이 펼쳐질 거라는 말이었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그러나 망량선사가 나라면 그 함정도 파해 할 거라고 얘기했으니 피할 수도 없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말했다.

[시작해.]

“간다!”

스스스스……!!

다음 순간, 천우진의 손이 앞으로 쫙 펼쳐졌다. 그리고 갑자기 눈앞에 있던 츠쿠요미의 시체가 빛나더니 놈에게서 새하얀 영체(靈體) 같은 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꾸물거리며 흘러나온 영체는 잠시 후 두 개로 분열되었는데, 하나는 시체처럼 보였고 또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형상으로 보였다.

‘좋아, 지금…….’

나는 사대신기를 소환하려고 마음속으로 준비했다.

그러자 천우진이 이마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말했다.

“속지 마라!! 지금 살아 있는 형상을 공격하면 안 돼!!”

꾸물텅

마치 천우진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죽은 듯 누워 있던 시체의 형상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벌써 한 번 속임수가 시전된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미친…… 당연히 살아 있는 형상을 공격하게끔 해서 내 기술을 낭비시키려고!’

천우진이 조언해주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조각난 존재여…… 경계를 헤매이지 말라……!!”

내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릴 때 천우진이 자신의 손을 천천히 모아서 수인(手印)을 형성했다. 그러자 두 개의 형상은 발버둥을 치며 강제로 서로 모여들어서 합쳐지기 시작했다. 츠쿠요미의 영체가 합쳐져서 빛을 내자 천우진이 말했다.

“위대한 자여! 더 이상 버티면 그대는 이 세계에서 추방되리라! 망량선사의 위대한 이름을 거스를 생각인가.”

끝까지 버티는 츠쿠요미를 향해 천우진의 호통이 내질러지자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야. 선배(先輩)의 진짜 이름은 그게 아니란다.]

뭐?

그 순간, 나는 사방이 온통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츠쿠요미에게서 폭발적으로 일어난 빛이 나를 휘감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고, 빛의 바깥에서 천우진이 크게 당황하는 듯한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려왔다.

“설마…… 스스로 [꿈]을 만들어내다니…… 대체 저자의 정체는…….”

번쩍!!

…….

나는 잠시 후 내가 의문의 혼돈어린 공간에 들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금 전에 츠쿠요미가 이상한 술법을 써서 천우진의 기술에 반항했고 나를 여기로 납치해 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주욱

[…….]

천우진은 없다.

역시 나만 납치한 건가…….

나는 손을 내뻗자 갑자기 손이 지평선 끝까지 뻗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방향감각이 제멋대로였으며 마치 숨쉬는 순간 하나하나가 모조리 혼돈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기이한 공간 속에서 내가 침묵하며 가만히 있자, 눈앞에 누군가가 서서히 형체를 만들어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황하지 않는구나. 벌써 [경계] 바깥에 있는 혼돈의 지옥을 겪어보았던 모양이지?”

나는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를 쳐다보았다.

[츠쿠요미.]

그랬다.

이 혼돈의 세계에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츠쿠요미!

아까 보았던 대로 반백반흑의 가면을 쓰고 있는 여자였다.

‘아니…… 여자…… 인가?’

아까는 호리호리해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무척 아리따울 뿐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뜻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츠쿠요미가 예전에 들었던 대로 무성(無性)의 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던 나는 차분히 말했다.

[넌 대체 누구냐? 어떻게 외신 주시자를 볼 때나 겪었던 외우주의 혼돈을 여기에 구현시킬 수가 있는 거지?]

나는 사실 츠쿠요미의 말대로 이미 이 혼돈의 세계를 겪어본 적이 있었다. 처음 겪을 때는 영겁의 지옥이나 다름없는 끔찍한 실감에 몸서리를 치지만 혼돈 그 자체에 익숙해지면 괜찮은 이 세계 - 여기는 바로 외우주를 돌아다닐 때나 볼 수 있는 외우주의 혼돈인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알기로 아무리 신격이라 해도 이런 걸 구현화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신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닌 게 있었다. 츠쿠요미의 능력은 뭔가 보통 신격을 아득하게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힘의 강함과 별개로 무척 이질적인 존재라는 게 느껴졌다.

내 질문에 츠쿠요미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너를 없애는 전지(全知)의 길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어도 그때마다 망량선사가 방해했지. 하지만 이곳이라면 망량선사도 방해하기 힘들 것이다. 나 스스로의 전지마저 봉인되는 영역이니까.”

[…….]

“더 이상 너를 도와줄 존재는 없다.”

나는 츠쿠요미가 허언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스스로 전지능력이 봉인된다는 약점을 털어놓는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놈의 말대로 이 혼돈의 공간에서는 망량선사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리라.

진짜 외통수 같다.

아마 망량선사가 말했던 함정이 이것이리라.

나는 긴장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츠쿠요미에게 말했다.

[이 자식…… 대체 나하고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이러는 거냐? 난 태어나서 너를 처음 보는데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를 이렇게까지 끝장내려고 드는 거냐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네가 가진 전생능력이라는 건 전 우주에서 가장 사기적인 능력 중 하나인데 전력을 다해서 뺏으려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

문득 츠쿠요미가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후후, 농담이야. 사실 너는 나와 구면(舊面)이거든.”

[뭐?]

“몇 년 만이라고 해야 하지? 동방삭이 삼천갑자일 테니 그만큼의 세월이 흐른 걸까?”

달각…….

츠쿠요미는 천천히 자신의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반백반흑의 가면을 벗은 모습을 드러낸 츠쿠요미가 말했다.

“그 시간 동안 줄곧 나는 지금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

“오랜만이구나, 백웅.”

나는 츠쿠요미의 얼굴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정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는 믿기지 않아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소(有巢).]

탁록촌의 전대 촌장이었던 유소가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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