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701화 (1,600/1,615)

전생검신 90권 11화

나는 츠쿠요미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뭐지? 왜 가면을 쓰고 있지?’

내가 바로 주목할 정도로 츠쿠요미의 가면은 특이했다.

반백반흑(半白半黑)!

중앙을 경계로 절반은 백색이고 절반은 칠흑으로 되어 있는 가면이었다. 거기에 기이한 문양 같은 게 새겨져 있었으니 특이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저 반백반흑의 가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당장은 알 수가 없었다.

반백반흑의 가면을 쓴 츠쿠요미는 힐끔 이쪽을 보더니 손을 저었다.

일렁…….

[같잖은 수법을!]

파괴신 시바가 분노하며 자신의 염주를 휘두르며 츠쿠요미의 앞에 생겨난 기이한 일렁이는 기류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시바의 염주가 그대로 시공간을 격하고 기류를 분쇄하더니 연이어서 츠쿠요미의 몸통마저 박살 내버렸다.

퍼버벅!!

[……?!!]

어? 뭐야?

츠쿠요미 죽은 건가?

생각보다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기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였다.

두웅!

그 순간 츠쿠요미의 시체를 기준으로 세계가 두 쪽으로 나누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츠쿠요미의 좌측은 어둠이었으며 우측은 빛이었다. 정확하게 음양(陰陽)으로 나뉘어 버린 세계의 변화는 기이하기 짝이 없었고, 그 변화 속에서 제일 먼저 뭔가를 눈치챈 것은 바로 제천대성 미후왕이었다.

“씨발!! 소환된다!”

소환된다고? 뭐가?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이윽고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를 즉시 알 수가 있었다.

구오오오…….

강대한 존재감과 함께 음(陰)의 세계와 양(陽)의 세계에 각각 신(神)이 소환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신적존재가 지닌 힘은 막대했기에 장내에 있던 대부분이 저릿저릿한 존재감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존재감을 간신히 견뎌내면서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신격을 쳐다보았고, 이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아니 저 녀석들은?!]

내가 당황하자 허공에 떠 있던 항우가 힐끔 나를 보며 말했다.

“아는 놈들이냐?”

[…….]

나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어서 잠시 침묵하다가 적들의 정체를 말했다.

[동영 삼귀자(三貴子)인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요……!!]

그렇다.

음(陰)의 세계에 출현한 것은 투신(鬪神) 스사노오!

양(陽)의 세계에 출현한 것은 태양신 아마테라스!

나는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의 신력을 직접 다뤄본 적이 있었고 본체도 보았기에 그들의 정체를 착각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느껴지는 신력이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동영에서 가장 강대하다 알려진 삼대신이 난데없이 츠쿠요미의 죽음과 함께 소환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그리고 스사노오는 아까 소환의 제물로 쓰여서 살해당했을 텐데……? 소멸한 신이 또 소환될 수가 있는 건가?’

그건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게 된다면 애초에 ‘제물’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 스사노오는 광증(狂症)에 걸리지 않은 멀쩡한 상태처럼 보였기에 더더욱 이상했다.

‘아니…… 미치지 않았고 멀쩡한 상태인 것 같긴 한데…… 왠지 아무런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스사노오가 정상이었다면 진작 우리를 보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상한 상황에서 이유도 없이 자신을 이용 해먹은 츠쿠요미를 위해서 부활해서 싸워줄 리가 없는 것이다.

세뇌당하거나 조종당하는 것인가?

대체 지금 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지?

내가 추측하고 있을 때 파괴신 시바가 자신의 힘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무슨 수를 쓰기 전에 처치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이게 츠쿠요미 네 녀석의 술수냐?]

츠쿠요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들려올 수가 없는 게 이미 시바의 염주에 당해서 육체가 산산이 흩어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뻘쭘해져서 시바에게 말했다.

[시바. 츠쿠요미는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놈이 죽었다면 진작 적월(赤月)은 해제되었을 테지만 여전하잖은가.]

[……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시바의 지적에 이상함을 깨닫자 시바가 말했다.

[이렇게 이상한 놈은 처음 본다. 신체(神體)가 파괴되고도 멀쩡히 자신의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신이라니……?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단 말이냐?]

[…….]

[본체…… 츠쿠요미의 진짜 본체를 찾아야 한다!]

쿠오오오

잠시 후 투신 스사노오와 태양신 아마테라스는 거의 동시에 신력을 발하며 이쪽을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스사노오는 공격을 개시하자마자 자신의 한쪽 손을 들었는데 그 손에는 토츠카노츠루기(十握劍)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토츠카노츠루기는 예전과 달랐다.

‘반검(半劍)이 아니라 멀쩡하게 날이 세워져 있다!’

설마 부활하면서 토츠카노츠루기까지 회복되었단 말인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사노오가 토츠카노츠루기를 위맹(威猛)한 기세로 휘둘러 검기(劍氣)를 이쪽으로 떨쳐내었다.

번쩍 -

츠츠츠츠 -

평범하게 진공을 가르는 검기처럼 보였으나 나는 순간적으로 신역(神域)의 경지가 반응함을 느꼈고 저 검기에 숨겨져 있는 진짜 힘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급히 외쳤다.

[막지 말고 피해!!]

기교로 감당하기에는 힘의 단위가 너무 달라!

대부분의 아군이 내 충고대로 피했지만 이랑진군과 항우가 내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정면으로 받아내었다. 그리고 이랑진군은 자신의 삼첨창과 함께 그대로 썰려서 몸뚱이가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슈카칵

[크아악…….]

이랑진군은 외마디 단말마를 내지른 후 갑자기 흔적도 없이 소멸당하고 말았다. 저것은 대선(大仙)급 존재가 너무 큰 피해 때문에 자신의 영체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서 소멸당하는 전형적인 현상이었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이, 이랑진군의 보갑(寶甲)또한 강력한 상급보패일건데 저렇게 쉽게 일격사한다고?’

이랑진군 또한 투선 중 손꼽히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랑진군이 일격에 죽는다는 건 결국 천계 대부분의 투선들이 다 일격에 죽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투신 스사노오다웠다.

반면에 똑같이 정면으로 방어하고 나선 항우는 달랐다.

“흐음…… 재밌구나.”

항우의 손바닥에는 거대한 검흔(劍痕)이 남아 있었고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손이 잘려나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항우는 손 하나로 스사노오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듯했고 그나마 입은 부상도 순식간에 다 완치된 것 같았다.

나는 항우의 경우 제대로 막아낸 것을 보자 역시 내 예상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사노오의 참격은 격하(格下)의 존재를 무조건 썰어 버리는 속성인 건가! 그나마 항우는 순수한 힘의 단위가 스사노오를 어느 정도 따라잡았기에 방어가 가능하지만 그 이외에는 모조리 죽는 거군…….’

위이이잉 -

그리고 그때 연속해서 아마테라스가 뿜어낸 태양의 광선이 아군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광선은 스사노오의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약해 보였지만, 그 광선을 향해 제일 먼저 달려든 것은 다름 아닌 장삼봉 진인이었다.

“아니되오!!”

무쌍패(無雙覇)!

쿠웅!

태양의 광선을 막아낸 장삼봉 진인의 무쌍패는 완벽하게 무위전변을 이루고 있어서 설령 신의 일격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그 위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실 아무리 무쌍패가 대단해도 아마테라스의 권능을 단숨에 소멸시키기는 쉽지 않았기에 나는 장삼봉 진인이 무슨 수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장삼봉 진인이…… 신역절기를 썼구나!’

무쌍패라 하더라도 다 같은 게 아니었다. 장삼봉 진인은 무쌍패를 더욱 연구하고 발전시켜서 따로 신역의 경지에서 쓰는 무쌍패의 기술이 있었고, 그건 일반적인 무쌍패와 구분이 되었다. 그리고 신역절기를 쓴다는 건 인과율을 쓰는 것이었기에 장삼봉 진인또한 큰 출혈을 한 셈이었다.

선제적으로 아마테라스의 공격을 무쌍패로 막아낸 장삼봉 진인이 나직이 말했다.

“놔두었으면 수억 갈래로 뻗어져 다시 폭발했겠지…… 너무나 흉험한 공격이구려…… 이것이 신인가.”

장삼봉 진인은 아마테라스의 공격이 사실 무시무시한 위력을 담은 범위공격임을 알아채고 자신이 손해 보는 한이 있어도 미리 막아낸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바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백웅 네가 데려온 놈들도 제법 쓸 만하구나.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

[내가 저놈들 둘 중 하나를 상대하겠다. 대신에 나머지 전부가 한 놈에게 달라붙어서 시간을 끌도록 해라.]

시바의 말은 현재의 전력대칭을 볼 때 옳은 소리였다. 대신격이 대신격을 상대하고 나머지 천계의 고수들이 전부 대신격 하나에 달라붙으면 딱 맞았다.

하지만 나는 왠지 마뜩잖아서 중얼거렸다.

[시간을 끌라고? 이기는 건 기대도 안 하는 거냐.]

시바가 흉소를 터뜨렸다.

[크흐흐.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소환된 저놈들은 전성기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너희 필멸자들이 시간이라도 벌 수 있으면 다행일 것 같구나.]

[…….]

[그리고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츠쿠요미는 형태가 부서졌으되 여전히 이 공간에 있다. 그 본체를 찾아야만 한다!]

[본체라고……!! 잠깐만. 내가 찾아보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화안금정을 발동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수상한 점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스러워할 때 시바가 말했다.

[갑자기 왜 멍청한 짓을 하는 거냐? 그깟 필멸자급 눈의 술수로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라면 여기까지 왔겠느냐.]

[으음.]

[츠쿠요미는 우리 신들조차 모르는 기이한 술수를 쓰고 있다. 네놈이 정말 전생자라면…… 그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한테 또 모든 게 달려 있단 소리인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잠시 생각한 후 시바에게 말했다.

[너는 아마테라스를 맡아줘. 스사노오가 차라리 우리 입장에선 상대하기 쉽겠다.]

[알았다!]

우웅

시바는 대답이 끝나자마자 재차 염주를 들고 아마테라스를 향해 돌격했다. 그리고 거대한 성광(星光)이 눈을 에일듯이 뿜어져 나오며 두 신격들이 격돌하자 거대한 폭풍이 장내에 몰아쳤다.

쿠콰콰쾅

[으음!]

나는 그 폭발의 위력에 놀라는 게 아니라 이 기이한 공간이 어떤 구조인지 알아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마테라스가 있는 양(陽)의 공간에서는 마치 핵폭발의 수백 배 위력이 터지는 것 같은데…… 이 음(陰)의 공간에는 눈곱만큼의 여파도 오지 않는구나!’

즉 음과 양의 공간은 겉으로는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방금 전 아마테라스의 광선이 이 근처까지 날아온 걸 보면, 소환된 신격들은 그 구분을 무시하고 공격할 수 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아군이 음에 있느냐 양에 있느냐에 따라 커다란 전술적 변화가 생길 것이다.

내가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꽈르릉!!

항우가 제일 먼저 달려들어서 역발산기개세의 힘으로 스사노오를 후려쳤다. 여태껏 그 어떤 상대든 간에 일격으로 잠재워오던 항우의 주먹이었지만, 연기가 드러나자 거기에는 토츠카노츠루기의 검면(劍面)으로 항우의 공격을 받아낸 스사노오가 있었다.

스사노오는 무술의 기예로 항우의 공격을 받아내자마자 마치 물 흐르듯이 유수검(流水劍)의 검결으로 항우의 목을 베었고, 항우는 그 공격을 숙여서 피하고는 이번에는 스사노오의 멱살을 단단히 잡았다.

꾸욱

콰앙!!

스사노오의 멱살을 잡은 채로 다시금 항우의 강타! 그 공격에 얼마나 큰 힘이 서려 있었는지 스사노오는 잠시 몸을 떨며 움직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더 이상 맞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그대로 검을 휘둘러 멱살을 잡은 항우의 팔을 베려 했고, 항우는 급히 팔을 빼야만 했다.

타앗

항우가 일대일로 싸우다가 살짝 물러서자 연이어서 스사노오가 아까 방출했던 무시무시한 힘의 검격(劍擊)이 또다시 허공을 수놓았다.

번쩍!!

[크아아앗.]

“젠장 할. 성가신 새끼인 건 알고 있었지만 지랄 같네!”

제천대성은 그 검격이 한층 더 강맹해지자 욕지기를 하며 맞서듯이 뛰어들었다. 그런 제천대성을 시작으로 천계의 맹자들이 다 같이 합공을 개시하자, 삽시간에 전장은 온갖 권능과 보패, 힘의 난무로 인해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콰과과광

스사노오를 다 같이 열심히 공격은 하고 있었지만 스사노오 자체가 너무 강력한 방어력과 체력을 갖고 있어서 거의 먹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양상을 보자 스사노오가 대신격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뼈저리게 알 수가 있었다.

‘괴물이군. 교토에서 봤던 그 스사노오와는 천지차이다…….’

항우나 제천대성 같은 천계 최강급 존재들이 있지 않았다면 진작 다 당해버렸지 않았을까?

[…….]

나는 차마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아서 멀리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을 지나쳐가던 여동빈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연자여. 설령 저 둘을 쓰러뜨린다 해도 승리한 건 아닐 것이다. 이 기이한 술법의 파해법을 반드시 찾아내 다오.”

말이 끝나자마자 여동빈은 어검비행술을 써서 스사노오를 합공하는 흐름에 참여하는 듯했다. 나는 여동빈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파해법…… 이 술법의 파해법이라는 건…… 소환된 저놈들 자체가 술법이 아닌…… 공간 자체가 술법…….’

도대체 이 공간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있는 걸까?

이 음양의 공간은 대체 뭐길래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가 소환되어있는 거지?

머리도 별로 좋지 않은 나에게 머리가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운 문제가 주어지자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경험과 기지로 해결하기 좋은 분야였지만 지금의 문제는 왠지 수수께끼 풀이 같아서 정답을 찾기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였다.

“정신없어 죽겠군. 이 개망종아.”

어?

무척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누군가가 출현해 있었고, 그 누군가는 무척이나 짜증에 가득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산하사직도의 ‘진짜 사용법’을 사형한테 들었다. 네가 전생자인 걸 알았다면 그딴 내기는 안 했을 텐데.”

나는 깜짝 놀라서 갑자기 장내에 나타난 그 인물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천우진!! 네가 여기엔 무슨 일이냐?!]

그렇다.

망량선사의 제자이자 망량의 사제인 천우진!

이번 30번째 생에는 천계에 공양할 때 이용 해 먹었던 그 녀석이 예전과 별다를바 없는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었다.

비록 이번에는 천암비서 내부에서 28번째 생에서 만났던 그 천우진과의 인연이 더 깊었지만, 저 천우진 또한 나와 구면이었다. 나는 천우진이 하필 이 시점에 여기서 나타날 줄은 예상치도 못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30회차의 저 녀석이랑은 이번 생에 별로 얘기도 많이 안 해봤는데…….’

그러자 천우진이 불쾌함을 억지로 꽉꽉 누른듯한 특유의 말투로 씹어뱉듯이 말했다.

“스승님이 너 구해주라고 보냈으니까 왔다!!”

[망량선사가 널 보냈다고?]

“그래. 대가는 나중에 청구하겠다고 하셨다.”

[…….]

망량선사가 천우진을 보내서 날 구하려는 이유가 뭐지?

나는 그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왜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경계의 수호자로서 네게 과정을 바꿀 기회를 주겠다.]

[본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상대부터가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고 내 영역을 침범했으니 이번에는 나 또한 가만있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리하면 어떤 세계가 너의 꿈인지를 확실히 해라. 네가 바라는 현실이 무엇인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너 스스로가 [경계]를 잇는 존재가 되어라…….]

처음으로 탁록에서 현실으로 되돌아와서 주주들을 맞이하고 낭패를 보았던 바로 그때.

망량선사는 자신의 영역인 [경계]에 끼어든 누군가를 몹시 불쾌해했다. 그래서 특별히 연기라는 걸 잇게 하면서 나를 재차 탁록으로 보내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망량선사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다 그 누군가 때문일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망량선사가 보낸 것도 이해가 되는군…….’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천우진이 띠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넌 이미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다. 내게 권한을 주어서 여기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되실 정도로.”

[보면 모르냐? 신들이 패싸움을 하는 중인데 세상 누가 이걸 보고 안 위험하다고 하겠냐고.]

내가 천우진에게 핀잔을 주자 그는 성질을 냈다.

“그게 문제가 아냐! 스승님께서는 네 녀석의 운명에 이미 서(書)가 끼어들었다고 하셨다!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 말을 꼭 전하라고 하셨으니까 새겨듣지?”

[……?!]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머릿속에 뭔가 짚이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리고 내 생각대로라면 지금 천우진의 띠꺼운 말투 같은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하아, 열 내봤자 나만 손해지. 아무튼 난 사부님의 명으로 널 구해주러 왔다.”

천우진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네가 날 구한다고? 어떻게?]

“……바보 같다고 말하고 싶은데 대신격조차 죄다 속아버리는 걸 보니까 너무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오는군. 모르는 놈은 절대 눈치 못채는 술수니까…… 스승님이 날 왜 보냈는지 알 것 같아.”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던 천우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서 바닥에 있는 츠쿠요미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게 바로 [경계]라는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