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99화 (1,598/1,615)

전생검신 90권 06화

태허천존!

놈은 내가 언제나 수기공양을 하면 운(運)에 관련된 축복을 내려주던 놈이었다. 뿐만 아니라 천계에서 손꼽히는 대선(大仙)으로서 자신만의 궁(宮)을 지니고 있을 정도였는데, 문제는 태허천존의 정체 그 자체였다. 놈은 바로 [가면]이자 천계에서 꾸며지던 온갖 음모의 흑막이었던 것이다. 나는 여러번 전생하면서 이미 태허천존과 여러 번 얽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하도 잠잠했던 데다가…… 막상 현세로 되돌아오니 태허천존의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아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데…….’

설마 원시천존의 수제자이자 원시천반의 관리자인 태공망을 살해하고 그의 인두겁을 쓴 채 태연히 살아 있을 줄이야!

나는 태허천존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속셈이냐?]

“무슨 속셈이랄 게 있겠소? 설령 무슨 속셈이 있다 한들 이 지경까지 왔는데 무슨 상관이오?”

그렇게 너스레를 떤 태허천존이 슥 하고 주변의 광경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나 같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혼돈을 이 세상에 선사한 그대를 보고 있으니 가히 감탄밖에 나오지를 않는 판이오, 하하하하.”

[…….]

“이건 진심이라오.”

나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태허천존의 말대로 그가 천계에서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든간에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로 크게 판이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태허천존이 지금 상황의 핵심이라는 걸 알아챘다. 다른 천계인들은 그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따르고 있거나 지금 상황을 거스를 의지가 없는 반면, 태허천존은 상황에 따라서 천계를 등질수도 있는 인물! 지금 내가 전투를 피하고자 한다면 태허천존과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아직까지는 주변 분위기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걸 감지하며 말했다.

[…… 츠쿠요미는 또 어떻게 내가 30번 전생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

“글쎄, 왜겠소? 나도 잘 모르겠소만…… 헌데 생각해보니 내가 설령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더라도 당신에게 곧이곧대로 다 말해줄 이유는 딱히 없지 않소?”

[…….]

“어찌 됐든 지금은 적으로 만난 사이기도 하고…… 후후.”

나는 능글맞게 대꾸하는 태허천존을 보자 잠시 속으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수많은 대화경험에서 놈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다. 나는 한층 감정없는 눈으로 태허천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뭐냐?]

“이런, 이제야 본론에 들어온 것 같구려.”

태허천존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츠쿠요미와 손을 잡고 있소. 삼황오제의 이번 시도 또한 충분히 승산이 있다 생각해서 참여했지. 그런데 흘러가는 걸 보니 전생자인 당신의 역량이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구려……? 해서 나로서는 그대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싶군.”

[…….]

“나를 아군으로 받아들여 주시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걸 다 말해 드리지.”

역시 그런 건가.

‘저놈…… 원래라면 이 전장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겠지…… 하지만 굳이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나와 협상을 해 보기 위해서이다.’

원래 삼황오제의 편에 서서 함정을 함께 파는 입장이었지만 뜻밖에 내가 함정을 극복하고 꽤나 승산을 만들어내자 이번에는 내 편이 되려고 하는 것이었다. 내심 나는 태허천존이 박쥐 같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 해서 지금 태허천존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츠쿠요미…….’

지금 이 상황을 꾸민 흑막! 놈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하면 태허천존과 손을 잡는 것도 고려해볼만 할지도 모른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태허천존에게 말했다.

[너만한 힘이라면 굳이 내 편이 되지 않고 삼황오제 편에 서서 이 전쟁을 승리로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왜 굳이 그러려는 거지?]

태허천존은 진짜 정체를 드러낸다면 저놈은 삼황오제에 못지않은 힘을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봐 왔던 바로는 충분히 그 정도 힘을 지닌 흑막이었다.

“호오, 내 힘의 본질까지 대충 알고 있소?”

[알만큼은 알고 있지…… 너하고 술도 마셔 봤으니까.]

“크흐흐…… 역시 당신은 재밌는 사람이오.”

껄껄 웃던 태허천존이 내 말에 대답했다.

“쉽게 말하면…… 너무 치명적인 함정이라서라고 할까? 정말로 전생자인 당신을 멸(滅)할 수도 있는지라 도리어 마음에 들지 않는군. 아무리 그대가 무무의 괘를 뽑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전지에 휘말려 죽을 가능성은 높소이다.”

[…….]

모르겠다. 저 녀석의 의도가 읽히지 않는다.

너무 치명적인 함정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또 무슨 심리란 말인가?

“자아, 어쩌겠소? 내 제안은 한 번 뿐이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대로 전쟁을 재개하도록 하지.”

그리고 나는 놈이 유들거리며 하는 말에 결국 짜증이 나서 버럭 외치고 말았다.

[까불지 마!!]

“까불지 말라니 그건 무슨…….”

나는 태허천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손을 잡는다고? 지금 네가 뭐 그렇게 대단한 놈인 줄 아는 거냐?]

“음……?”

[지금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내가 좀 잘나가는 것 같으니까 마지막에 슬며시 나타나서 꿀이나 빨려는 속셈인 것 같던데 웃기는 소리!! 홍균도인도 건방지게 굴다가 나한테 홍몽(鸿蒙)을 털렸는데 뭐 어쩌자는 거냐!]

“호, 홍몽!!”

내 입에서 홍몽의 권능이 거론되자 태허천존은 순간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나는 내심 심계가 먹혔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홍몽의 권능이 뭐 하는 건지도 잘 이해가 안 되고, 정작 그 권능은 전뇌자가 천암비서 내부에 봉인해놔서 쓸 수도 없지만.’

태허천존과 홍균도인은 잘은 몰라도 큰 연관이 있었다. 당연히 태허천존은 홍균도인의 가장 강력한 권능이었던 홍몽의 권능을 알 것이라는 생각에 한 번 위압용으로 말해보았는데 생각보다 태허천존의 반응이 격렬하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거만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가 왜 굳이 태허천존 너를 안 찾아다녔는 줄 아나? 네놈이 뭘 하든 너는 이미 내 관심 밖이야! 도리어 지금이라도 내 밑에 고개 처박고 들어오지 않으면 나는 시간이 걸려서라도 네놈을 밟아 버릴 셈이다!]

“……!!”

[나와 손을 잡는다고? 까불지 마! 니가 내 부하가 되는 게 아니라면 용납 못해!]

부들부들

내 말에 태허천존은 약간의 굴욕감을 느끼는 듯 몸을 떨었다. 나는 그 반응이 분노처럼 느껴져서 잘못했나 싶었지만 내심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태허천존은 여전히 나한테 만만하게 느껴졌으며, 도리어 이렇게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잠시 후 태허천존은 무척이나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홍몽을 얻었다면…… 그 태도가 이해가 되는군…… 도대체 당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아…….”

[…….]

“좋소…… 부하가 되도록 하지. 다만 조건이 하나 있소.”

[무슨 조건?]

“츠쿠요미를 죽인다면 그 영혼은 내가 먹겠소. 어떻소?”

…… 뭐?

워낙 뜻밖의 요구였기에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이 왜 츠쿠요미의 영혼을 노리는 거지?’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별로 나한테 직접 관련있는 문제도 아닌데 그 정도는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냐. 이런 걸 섣불리 약속하면 큰일나는 거겠지.’

나는 한층 퉁명스럽게 태허천존에게 말했다.

[부하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군. 동료라면 몰라도 부하는 이것저것 조건을 걸 처지가 아니다! 꼬우면 그냥 이대로 싸우면 그만이야!]

“이런……!!”

순간 태허천존의 눈에서 강렬한 살광(殺光)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 살광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큭…… 너무 세게 나갔나?’

내가 내심 초조해하고 있을 때 태허천존은 한참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

“흐음…… 쉽지 않군…… 그러면 좋소. 이번 전투에서만 당신의 부하가 될 테니, 내 능력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시오.”

[너 하나 끼어든다고 전황이 크게 바뀐다는 거냐? 그 정도 능력이 있다면야 생각해보지.]

“…….”

[내가 원하는 건 피를 최대한 흘리지 않고 천계를 물러나게 하는 거다. 때려잡아서 몰살시키는 게 아닌데 할 수 있냐?]

“크흐흐…… 이거…… 너무 무시당했군.”

태허천존은 광소를 터뜨렸다.

“이 내가 그렇게 간단한 일도 못할 거라 생각하오?”

바로 그때였다.

신술(神術)

억년빙하월(億年水河月)

쩌저적!

과거 원시천반 내의 혈주이자 고대신선이었던 용길공주(龍吉公主)가 태허천존을 예고없이 신술로 공격해서 얼려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태허천존을 쳐다보며 손을 뻗고 있었는데, 그녀가 낭랑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히 봉인해 버려야 합니다!”

“알고 있네!”

신술(神術)

창천대신광(蒼天大神光)

신술(神術)

도법자연(道法自然)

고대신선인 남극선옹(南極仙翁)과 도덕천존(道德天尊)이 각각 나서서 자신들의 최대 비술로 억년빙하월의 얼음에 더욱 강한 봉인을 갖다붙이는 게 보였다. 저들은 천계의 초기에 존재하던 자들로써 그 힘이 신에 못지않은 존재들이었기에 태허천존을 기습해서 봉인할 만도 했다.

용길공주가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설마 태허천존이 혼돈의 존재인 [가면]이었고 태공망을 습격해서 그의 탈을 쓰고 있었다니…… 어찌 이런 일이.”

[…….]

“백웅이여! 당신의 흉계는 봉인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에 혼돈을 가져온 당신을 봉인하여 진정한 질서를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용길공주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태허천존을 그렇게 간단히 봉인할 수 있었다면 나도 전생하면서 그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텐데.]

“무슨…….”

슈와아악!!

그 순간, 태허천존이 갇혀 있던 억년빙하월의 얼음 속에서 광폭한 기세로 어둠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 안개와 같은 어둠이었는데도 터졌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엄청난 속도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기 때문이었다. 세 명의 고대신선들은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어둠 속에 갇혀 버렸으며, 태허천존이 불러낸 어둠은 삽시간에 수백 장 이상의 크기로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거대한 어둠의 내면에서 한마디의 언령(言靈)이 흘러나왔다.

[혼돈, 떠오를지니.]

푸콰콰콱

[크아아악.]

[으악.]

혼돈이 시간을 먹어치우듯 주변의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자 수많은 대라신선들과 신장들이 태허천존의 한 수에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저마다 술수를 시전해서 대항하려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고대의 신선들이 보패와 신술을 써도 대적할 수 없는 저 어둠을 상대로 일개 신선의 힘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전에도 한 번 봤던 광경이군…….’

나는 태허천존의 위력을 또 한 번 목격하자 전율이 일어났다. 예전에도 태허천존이 저것과 같은 수법으로 천계의 모든 병력과 서왕모를 막아섰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탕!!

개 중에서 제천대성과 항우 같은 최강자들은 태허천존의 어둠을 상대로도 쉽게 방어와 회피를 해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삼봉과 여동빈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자신들의 신역절기(神域絶技)를 써서 대항했는데, 신역절기는 확실히 태허천존을 상대로도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으아아.]

그러나 그런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저 술법과 보패에 의존하는 일개 술선(術仙)들은 그 격이 낮고 높고를 떠나서 모두가 혼돈에 흡수당하고 있었다. 종리권 같은 중화팔선조차 예외가 아닌 것을 생생하게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권능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핫 하고 깨닫고는 말했다.

[야!! 누가 다 죽이래?! 다 죽이는 거면 그냥 신수들도 할 수 있어!!]

[후후…… 성급하시군.]

혼돈의 중심에서 불쑥 하고 인간의 얼굴 같은 형태가 튀어 나오더니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아마 태허천존의 자아로 보이는 [그것]이 사악한 미소를 흘렸다.

[내 혼돈의 영역에 흡수된 자들은 일시적으로 내 안의 우주(宇宙)에 봉인된 것…… 혼절했으나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으니, 내가 원하면 다시 꺼낼 수 있소이다.]

[……!!]

우…… 우주?

설마 태허천존의 저 어둠의 술법이 우주단위의 술수였단 말인가?

나는 예상보다 더 수준이 높은 태허천존의 기술에 당황했는데 정작 태허천존을 보고 노기를 띠며 한마디를 한 것은 삼대신수 영귀였다.

[태허천존! 그 술수는 [가면의 우주]가 아닌가!]

[호오, 과연 우주의 모든 술법을 아는 영귀구려.]

[외신(外神)의 힘을 빌리다니…… 그 술수를 쓰면서 동시에 ‘그 존재’가 이 세상에 강림할 수 있는 인과율이 쌓인다! 설마 그대가 태초부터 모든 이에게 파멸을 안겨주는 존재였을 줄이야…….]

엉? 설마…….

나는 영귀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니알라토텝!!’

태허천존의 혼돈은 바로 외신 니알라토텝이 보유한 혼돈을 소환하는 것이었던가!

당연히 외신의 술법이니 천계의 신선들은 쪽도 쓰지 못하고 모조리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다만 위격이 높은 제천대성이나 항우 같은 존재는 대항할 만 한 것이었고 혼돈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는 신역절기의 시전자도 맞서싸울 수 있는 듯했다. 뿐만아니라 저 술법은 시전되는 그 자체로 외신 니알라토텝이 이 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들 수 있기에 영귀가 태허천존의 술법에 노하는 듯했다.

그러자 태허천존이 새하얗게 웃었다.

[크흐흐. 그렇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술수는 아닌데 억울하군. 반고가 걸어놓은 제약 때문에 나도 이걸 쓰려면 꽤 눈치가 많이 보이는데 말이지.]

[혼돈의 ‘가면’의 말 따위를 누가 믿겠나.]

[허나 하나는 약속할 수 있지. 내가 이 혼돈을 소환한 이상…… 천계는 이 자리에서 끝이오.]

스아아앗

쿠구구구구

태허천존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어느새 천계의 병력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미 태허천존의 어둠에 집어삼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치 거대한 태풍의 소용돌이와 같은 기세로 뿜어져 나오는 혼돈의 촉수를 보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저렇게 강했다니…… 분명히 삼황오제의 본체에 대적할 만 하다.’

저놈이 더욱 강해지면 외우주에서 마주쳤던 홍균도인의 수준으로 강력해지는 것이다. 그때의 홍균도인은 황제 공손헌원조차 정색하고 상대해야 할 만큼 강했기에 나는 저놈이야말로 [가면]의 정점에 가까운 존재라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이 세계의 정사(正史)에서 삼황 복희를 습격해서 광룡으로 만들고 유폐시킨 게 바로 그 홍균도인 아니던가?

그 홍균도인의 본질을 이어받은 태허천존이야말로 진정한 흑막의 하나라는 건 누구도 이견이 있을 수가 없었다.

[츠쿠요미여. 동맹이 깨졌으니 그대의 술법 또한 깰 필요성이 생겼군…….]

잠시 후 혼돈 속에서 자신의 인간 형태를 드러낸 태허천존이 자신의 손가락을 마주치며 또다시 술법을 시전했다.

[혼돈이여, 정사(正邪)의 혼념(混念)을 깨뜨려라!!]

쿠오오오!!

다음 순간 거대한 태풍의 소용돌이 같은 혼돈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천공의 청월(靑月)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청월을 향해 뻗어 나가는 혼돈의 기세는 갈수록 장중해져서 마치 창(槍)처럼 변했는데, 말 그대로 태허천존의 전력을 다하는 듯한 기세였다.

‘응?’

저 녀석 천계를 아직 다 제압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딴 짓이야?

왜 갑자기 달을 공격하지?

내가 태허천존의 행동을 어리둥절하게 여기고 있을 때 청월에 마침내 혼돈의 기운이 닿으려 할 때가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관통당하려던 청월에서 거대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그 색깔이 적월(赤月)으로 변하고 말았다.

번쩍……!!

그와 함께 모든 전장을 메우는 적월의 섬광!!

그 섬광은 뭔가 물리적인 파괴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윽고 섬광의 전개와 함께 벌어진 일은 놀라웠다.

[……!!]

이, 이게 뭐지?

공기가 달라지면서 나는 뭔가 역한 기분 때문에 비틀거렸다. 그것은 이 세계를 이루는 법칙의 근간 자체가 바뀐 듯한 기분이었고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 안의 어떤 기운은 강해지고…… 어떤 기운은 약해졌다…… 혼란스러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나 뿐만이 아닌지, 잠시동안 모든 전장에 있던 [옛 지배자]와 고대신들이 비틀거리며 당황해했다. 그들 전체가 전투를 멈추고 소강상태에 들어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잠시 후 혼란을 점차 딛고는 삼대신수들이 정신을 차렸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응룡이 기분 좋게 말했다.

[과연 그렇군…… 이게 바로 츠쿠요미의 함정인가?]

[불쾌하면서도 놀랍군. 이러니 승리를 자신할 수밖에.]

기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런 기린을 슥하고 쳐다보았는데,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

시, 신력이 몇 배는 강대해졌다?!

‘왜?!’

아닌 게 아니라 기린 뿐만이 아니라 응룡, 영귀 모두가 방금 전까지 그들이 지니고 있던 위풍에서 몇 배나 강맹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들이 갑작스럽게 강해진 것을 보고 당황해하고 있을 때 저만치 있던 삼황오제의 전장에서도 이변이 일어난 것 같았다.

[크아아아악.]

[이, 이게 뭐냐!! 왜 약해진 거지?!]

대부분의 주주들이 경악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몸에 흐르는 강대한 혼돈의 기운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삼황오제들 본인조차 영향을 받았는지 전욱은 무척 불쾌해하며 노기를 띄어 으르렁거렸다.

[츠쿠요미…… 모든 일이 끝나면 가만두지 않겠다.]

반면에 신농(神農)은 굉장히 활기가 차서 껄껄 웃었다.

[크하하. 저놈들이 제 손으로 무덤을 팠구나.]

쿠구구궁!!

또한 테스카틀리포카와 복희, 여와가 싸우던 전장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테스카틀리포카가 한창 여유롭게 복희와 여와를 상대로 싸우다가 갑자기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번쩍!!

복희의 도끼가 스쳐간 자리에 테스카틀리포카의 사린(蛇鱗)이 깨지며 그을렸다. 지금까지 반고의 도끼가 내고 있던 부상보다 몇 배나 크고 치명적인 상흔인 것처럼 보였다.

‘설마……?!’

나는 지금 머릿속으로 떠오른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혼돈의 힘이 크게 억제되어 크기가 줄어든 태허천존의 혼돈 속에서 클클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 백웅이여…… 이해가 되었소? 당신들이 또다시 극복해야 할 함정이 무엇인지를.]

[…….]

나는 잠시 후 씹어뱉듯이 말했다.

[혼돈과 질서의 천칭이 바뀐 건가…… 혼돈은 약해지고 질서는 강해지는 방향으로!!]

[정답이오.]

과거 흉신이 행했던 혼돈강화의 역(逆)!

그때 흉신은 혼돈의 존재가 강해지고 질서의 존재가 약해지는 방향으로 세계를 변혁시켰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반대로 혼돈은 약해지고 질서는 강해진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삼황(三皇)은 강해졌으며 오제(五帝)는 약화되었고 질서의 삼대신수가 난데없이 강해진 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나는 태허천존의 말에 버럭 화를 냈다.

[이 미친놈아!! 네가 천칭을 바꾼 거지? 가만 놔두면 될 걸 왜 바꿨어!!]

혼돈의 존재가 대부분인 아군의 특성상 단숨에 우리가 불리해졌잖아!

[이런…… 무척 성급하구려. 달리 말하자면 술법을 깰 방법도 이것뿐인 것을.]

[뭐?]

[이 술법의 시전자는 바로 츠쿠요미. 츠쿠요미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천칭은 언제까지나 질서의 방향에 유리한쪽을 유지하게 될 것이오. 지금 내가 천칭을 바꾸지 않았어도 어차피 츠쿠요미가 곧 바꾸었겠지.]

태허천존이 자신의 거대한 촉수를 뻗어 저만치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츠쿠요미를 없앨 수 있는 건 바로 지금, 적월(赤月)으로 변화해 있을 때 뿐이오. 저 달의 한가운데에 뭔가가 있는 게 보이지 않소?]

[……!!]

[내가 천칭을 바꾸면서 저 달에 혼돈의 기운으로 봉인을 걸었소. 지금이라면 츠쿠요미를 쓰러뜨리기 쉬울 것이오.]

나는 안력을 돋우자 태허천존의 말대로 적월의 한가운데에 무언가가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존재의 명확한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음영(陰影)만 보아도 그게 신적인 존재라는 건 쉽사리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처음부터 이 전투의 승리조건은 명확했던 것이다.

아군에게 불리한 이 악조건을 딛고 적월에 있는 월신 츠쿠요미의 목을 따는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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