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98화 (1,597/1,615)

전생검신 90권 08화

나는 기린이 뭐라 말하든 무시했다.

‘어찌 되었든 일단 눈앞의 난관은 타파했다!’

구천현녀가 쓰러지자 나는 이걸로 삼황오제의 소환을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삼대신수와 시바, 비슈누까지 내 편으로 만든 이상 이제 불완전한 삼황오제를 상대로 지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

하지만 나는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섬찟한 예감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뭐지?’

기분이 좋지 않다. 분명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을 텐데 왜 이렇게 안 좋은 기분이 들지?

분명 이 또한 ‘전생자의 직감’의 일부일 텐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너무 잘 풀려서? 아니…… 잘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내가 애매모호한 직감의 방향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삼대신수, 응룡이 말했다.

[구천현녀…… 소멸하기 전에 귀찮은 짓을 해버렸구나.]

[뭐?]

[소환이 시작된다.]

번쩍……!!

쿠콰콰쾅

그와 동시에 구천현녀의 소멸 후 남겨진 나후성과 계도성이 갑자기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너무나 환하고 거대한 빛이라서 잠시 장내에서 다투고 있던 모든 신격들이 잠시 움찔하고 있을 때, 허공에 또다시 거대한 차원문이 생겨나서는 무언가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수많은 기천의 영체(靈體)가 하나둘씩 빛을 발하며 허공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영체들은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는 듯했고 그 수가 상당해서 천여 명이 훨씬 넘어 보였다. 다만 대충 느끼기에 그들 중에서 이 전황을 바꿀 정도로 대단한 존재는 딱히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흠. 또 다른 세력의 출현인가?…… 아, 아니. 인간형……?’

하지만 나는 그 영체들의 모습이 대부분 인간형이라는 걸 알아채었고 좀 더 안력을 집중하자 그들의 모습이 무척 내게 익숙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

이윽고 그 영체 집단의 선봉에서 누군가 강대한 신선이 호령을 내지르는 게 들려왔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진정한 세계의 업(業)을 지키리라! 소멸을 각오하고 우주의 운명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리라!! 신장(神將)들은 앞으로!!]

두둥!!

그와 동시에 군갑(軍甲)을 착용한 신장들이 대거 앞으로 몰려나와 진을 치며 돌격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신장들의 배후에는 수많은 신선(神仙)들이 저마다 보패를 들고는 술수를 부리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아찔해져서 나도 모르게 외쳤다.

[제…… 제천대성!! 항우!!]

그랬다.

선봉 근처에 나와 있는 저 강대한 투선들은 바로 제천대성과 항우!!

그들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투선들이 이 자리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뒤편을 보자 중화팔선은 물론이고 장삼봉 진인과 여동빈 또한 도열해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삼대신수 기린의 귀찮아 하는 듯한 말에 나는 비로소 상황을 직시해야만 했다.

[구천현녀가 천계(天界)의 모든 전력을 소환했군. 그녀도 필사적이었겠지.]

그렇다.

천계소환!!

아마 구천현녀가 통솔할 수 있는 모든 천계의 존재들이 이 자리에 소환된 게 분명했다. 나는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윽고 내가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삼황오제는 이 싸움에서 패배하면 모든 게 끝이야! 구천현녀가 자신의 휘하세력이라 할 수 있는 천계를 동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구나!’

그리고 나는 잠시 후 구천현녀가 소멸한 바로 그 자리에서 비명을 터뜨리는 두 명의 신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이런 젠장……!! 이 놈들 왜 이리 필사적인가!]

쿠콰콰쾅

단말마 같은 비명 소리와 함께 시바와 비슈누의 신체가 튕겨져서 날아갔다. 나는 그들이 이쪽으로 오자 급히 물어보았다.

[이봐. 무슨 일이지?]

[…… 구천현녀 저놈…… 어찌 저리 철두철미할 수 있지?]

비슈누는 이를 갈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자기가 소멸되면 그걸 대가로 동시에 서왕모(西王母)가 소환되게끔 안배해 놓다니!!]

[……!!]

파지지직!!

아닌 게 아니라 구천현녀가 소멸된 바로 그 자리에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서왕모의 진신(眞身)이 출현해 있었다. 마치 흉측한 마수(魔獸)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저 서왕모야말로 삼황 여와가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자 화신이었으며 거신족의 장로를 일격에 찢어발길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존재였다.

그르르르

시꺼먼 번개를 몸에 둘러싸고 있던 서왕모가 눈에서 시꺼먼 안광을 흘리며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내가 힐끔 비슈누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아까 구천현녀가 소멸될 때도 피해를 입었고 서왕모에게 기습을 당해서 상당한 신력을 잃었다. 나와 시바는 당분간 싸우기 힘들다.]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천축 삼대신 정도 되는 대신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실력!

‘아마 서왕모의 천려오잔(天厲五殘)에 얻어맞았겠지…….’

서왕모 또한 우주적인 존재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젠장…… 어이가 없군…….]

나는 진심으로 황당해서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내 모든 행동은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한 것이라서 절대적 혼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 행동은 모르더라도 그 결과가 ‘아군의 배신’이나 ‘구천현녀의 소멸’이라는 걸 미리 다 예상해놓고 계책을 짤 수가 있다니?

‘이게 전지의 힘인가!’

정말 만만치가 않은데!

내가 내심 당황하고 있을 때 삼대신수 영귀가 말했다.

[백웅이여. 서왕모가 소환되면서 다시 삼황오제 소환의 진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소멸의 여파 때문에 아까보다는 의식의 흐름이 느려졌습니다.]

[……!! 그 말은…… 어찌 됐든 천계의 군세를 뚫고 서왕모를 없애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군요…….]

[뭐가.]

[서왕모가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해도 결국 삼황 여와의 화신…… 그런데 어째서 본체와 화신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음!!]

나는 그 말에 힐끔 상황을 살펴보았다. 저만치에서 테스카틀리포카를 상대로 2대1로 합공을 하고 있는 삼황 여와는 분명히 본체로 보였는데, 지금 출현한 서왕모 또한 진짜로 보였기 때문이다. 화신이란 본체가 직접 움직이는 분신이나 다름없어서 둘이 동시에 출현하는 건 이치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 걸까?

‘그러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하지만 나는 이윽고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 서왕모는 가능해.]

[왜입니까?]

[저 녀석은 특별한 화신이니까…… 여와 본체의 명령을 거스르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어.]

[허어. 처음 안 사실이군요…….]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28번째 삶에서 천계의 탑을 오를 때였다. 그때 서왕모는 여와의 명을 거스르고 멋대로 날뛰려 하다가 여와의 본체에 의해 제지당했던 것이다. 나는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서왕모가 너무 특별하게 만들어진 화신인 데다 힘이 너무 많이 주어져서 본체를 거스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었다.

‘흠. 하지만 서왕모와 항우가 삼황오제의 편에서 소환되었다는 건…….’

우웅!!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천계 측에서 추가로 더욱더 소환되는 증원을 보자 예상대로라는 걸 알아채고는 그만 이를 악물었다.

[젠장…… 역시 그렇군……!!]

나타난 것은 바로 태공망이었다. 보패 타신편과 사불상을 장비한 채 출현한 태공망은 내 쪽을 냉막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태공망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백여 명의 인간들이 출현해 있었다. 나는 그 존재들을 보자 뭐 하는 놈들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인계에 제 3세력으로 출현한 강동의 태공망…… 그리고 그가 거두었다는 무릉도원(武陵桃源) 출신자들이 모인 양산박(梁山泊)! 저놈들은 전부 혼돈의 재능을 각성한 인간들이다.’

그리고 일전에 마주쳤던 양산박과 달리 지금 저놈들은 웬만한 신선을 뛰어넘을 정도의 기세를 방출하고 있었다. 아마 태공망이나 구천현녀 등이 수를 써서 그들을 단시간에 강화시켰으리라.

뿐만 아니라 태공망 근처에는 용길공주 등 고대의 신선들도 출현해 있었다. 나는 사실상 전생하면서 만났던 중 최대규모의 천계세력을 맞닥뜨렸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태공망에게 외쳤다.

[태공망!! 설마…… 구천현녀도 서왕모도 당신도…… 전부 같은 편이었다고? 지상에서 천계 세력이 편을 갈라서 다투는 건 그저 연극이었을 뿐이었나?!]

내 외침에 저만치에 있던 태공망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글쎄…… 연극까지는 아니었소. 적어도 우리는 진심으로 천계에서 독립하고자 했으니까. 허나 삼황께서 중지(衆智)를 모으셔서 모든 질서세력의 통폐합을 이뤄냈으니, 우리가 굳이 거역할 필요가 있겠소? 기왕 이렇게 된 거 거대한 흐름에 종속되기로 했을 뿐이오.”

[……!!]

“물론 지금도 큰 충성심은 없으나 일단 따르기로 한 이상 최선을 다해 싸워야겠지…….”

나는 상황이 어찌 된 건지 알 수가 있었다.

‘구천현녀와 서왕모, 여와 등의 실종…… 윗선이 모조리 실종되어서 천계가 서로 난립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것조차도 전생자인 내 이목을 가리려는 계책이었다……?’

아니…… 우연인가? 우연에 불과했지만 삼황을 끌어들이면서 계획적인 음모로 변화시킨 건가?

뭐지…… 대체 어디서부터 전지능력자의 계책이 시작된 거지?!

내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영귀가 내게 조언을 해 주었다.

[천계의 모든 전력이라…… 상대 못할 건 아니지만 서왕모까지 저렇게 출현한 걸 보면 저자들의 배후에서 또 어떤 흉계를 꾸몄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군요. 이대로 가면 끝이 없으니 당신이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내가 뭘 해야 하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겠지요…… 지금까지 그걸로 계속해서 역전을 이뤄내고 있으니.]

[…….]

[당신은 무무의 괘를 뽑은 자입니다. 당신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전지를 깨뜨릴 것입니다.]

영귀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옛 지배자]와 고대신들이 미친 듯이 개싸움을 벌이는 싸움판…… 여기에 아무리 천계의 모든 전력이 소환되었다고 해도 판을 뒤집을 정도의 세력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천현녀가 천계를 소환한 것은 비장의 한 수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이겨야 하므로 발악한 거나 다름없다.’

그렇다는 건 구천현녀든 서왕모든 천계의 모든 존재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이 자리에서 이기겠다는 각오를 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아마 내가 천계의 신선들을 쓰러뜨리더라도 힘만 빼고 크나큰 원한만 사게 될 게 뻔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내 눈에 띄는 천계의 주요전력들이 대개 아는 얼굴이라서 저들을 다 몰살시킨다는 게 전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젠장. 천계 녀석들은 다음 생에도 또 볼 얼굴이란 말이야…… 아무리 피치 못 할 싸움이라지만 학살은 하고 싶지 않아.’

전투는 가능한 피하면서 흑막을 드러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천계세력 중에서 그나마 공략할 구석이 있는 게 태공망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공망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중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 잠깐…… 그러고 보니…… 태공망이…… 원시천반을 나온것 자체가 이상한데……?’

내가 알고 있던 과거의 ‘그 사실’에 따르자면 뭔가 이상한데……?

지금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지만 이 문제가 정말 해결이 된 것이란 말인가?

[……!!]

서, 설마…….

이 판을 꾸민…… 전지능력자 놈의 진짜 속셈이란 건…….

그리고 삼황오제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 진짜 이유라는 건……!!

나는 그 순간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는 태공망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외쳤다.

[태공망!! 묻겠다! 설마 삼황이 [만신(萬神)을 파괴하는 자], 치우(蚩尤)를 부활시키기로 작정했단 거냐!]

“…….”

태공망은 내 말에 침묵했다. 그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생자는 모든 걸 알고 있다 하더니…… 숨겨봤자 소용없겠군. 맞소. 그게 우리의 계획이오.”

[……!!]

“당신도 알다시피…… 치우의 진짜 힘이 부활하면 이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자들이 소멸할 것이오!”

단정짓듯이 말하는 태공망이었지만 나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제길……!! 진짜 뭐하자는 거야?!]

나는 성난 목소리로 태공망에게 핏대를 세우며 따졌다.

[원시천반은 [만신을 파괴하는 자], 치우의 봉인이 걸려 있는 장소 아니었나! 고대인의 영혼을 봉인하는 1차 열쇠가 풀리면 치우가 봉인된 2차 열쇠도 개방되는 거 아니었냐고! 그 봉인을 지키는데 너와 고대신선들의 모든 의지를 걸었던 주제에 이런 식으로 삼황의 회유 때문에 다 풀어 버리는 게 말이 되냐!!]

그랬다. 과거 내가 무릉도원에 왔을 때 태공망에게서 들었던 무릉도원 원시천반의 진실이란 바로 [만신을 파괴하는 자] 치우의 봉인이라는 것!

고대인의 봉인은 별것 아니지만 사실은 치우가 풀려날 수 있는 2차봉인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목숨걸고 무릉도원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따지자 태공망이 쓴웃음을 지었다.

“많은 걸 알고 계시군. 그럼 이 세상 곳곳에 치우의 팔다리와 심장이 봉인 되었는데 원시천반의 2차봉인은 치우의 ‘무엇’을 봉인하고 있었는지도 알고 있으시오?”

[……?]

어? 그건 모르는데…….

생전 처음 듣는 정보에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태공망이 말했다.

“사실 봉인하고 있었던 우리도 모르고 있었소. 허나 삼황이 치우의 봉인을 풀기로 결의한 후 비로소 우리에게 알려주었지. 원시천반에 봉인되어 있던 것은 바로…… 치우의 기억(記憶)이었소.”

[기억……? 치우의 영혼 같은 게 따로 있었단 말이냐.]

“영혼과 기억은 다른 것이오. 원시천반에 봉인된 것은 말 그대로 치우의 잔재사념 같은 것이었지. 허나 사실 그 기억이야말로 치우의 진정한 힘이었으니…….”

잠시 침묵하던 태공망이 묘한 미소를 띄며 말을 이었다.

“그 힘은 아주 아름다운 것…… 우주의 본질을 얻을 수 있을 만큼 고귀한 것이 아니겠소? 후후후…….”

[…….]

뭔가…… 이상하다.

나는 눈앞의 태공망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다. 분명 태공망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고 말투나 행동거지가 전혀 다른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태공망이 과거 내가 보았던 그 태공망이 맞는지 잘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것은 내 직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달라.’

내가 아는 태공망은 자신의 의무에 매몰되었을 지언정 자신이 수호하던 것에 ‘욕망’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었다.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점이 있지만 그런 게 도리어 원시천존의 수제자이자 전설의 기인이라는 면모를 돋보이게 해주는 자였던 것이다. 그런 태공망의 본질을 알고 있는 나는 눈앞의 존재가 수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 나는 나도 모르게 상대의 정체를 간파한 것 같았다.

‘설마?’

그러고는 내 의심을 확신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너…… 태공망이 아니군.]

“……!!”

내 말에 태공망은 흠칫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대꾸했다.

“무슨 소리요? 타신편과 사불상을 다룰 수 있는 게 나 외에 존재하겠소?”

[가면을 벗겨서 뒤집어쓴 거겠지. 태공망의.]

“…….”

나는 놈을 노려보았다.

[왜 태공망을 죽인 거지? 아니…… 언제부터 개판을 치려고 준비한 거지? 항우를 꼬셔서 지상에 내려왔던 바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변신해 있었던 건가?]

“후후. 어이가 없군. 헛소리를 하면 할수록 당신은 삼황오제 소환의식을 막을 시간을 낭비해서 불리해질 터…… 멋대로 지껄이시오.”

계속 놈이 시치미를 떼자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럼 당장 이 자리에서 네가 가짜라는 걸 증명해주지.]

“어떻게?”

이어진 내 말에 자칭 태공망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네 이름을 걸고 네가 진짜 태공망이라고 온 세상에 외쳐봐라! 할 수 있다면 아까 구천현녀 때처럼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이 자리에서 패배를 인정하겠다.]

“……!!”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해 봐라, 당장!!]

“…….”

나와 태공망의 대화에 모든 신적 존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천계의 모든 존재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머뭇거리며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태공망]이 천천히 자신의 턱선을 향해 손을 갖다대었다.

달칵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무척 익숙한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츠쿠요미노미코토(月読尊)의 말대로라면 고작 30번밖에 전생하지 않았을 텐데…… 벌써 [가면]은 이름을 맹세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던 거요?”

[…….]

“전생자 백웅, 당신은 정말 기대 이상이오, 하하하하하!”

나는 세상에 드러난 놈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예상하고 있던 놈의 정체를 나직이 말했다.

[태허천존(太虛天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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