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97화 (1,596/1,615)

전생검신 90권 07화

크아아앗!!

다섯 신들의 동시 공격에 구천현녀를 수호하던 수많은 상위존재들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맞섰다. 그와 동시에 장내에 마력이 요동치며 들끓었고 시공간이 한층 더 폐색(廢塞)하여 사위가 어둠으로 물드는 게 느껴졌다. 그 농밀한 마력은 상당히 커다란 파장을 만들어 내었고 멀리에 있던 나도 살짝 휘청일 정도였기에 저 자리에 소환되어있는 수십 마리의 신적 존재들 또한 만만치 않은 놈들인 걸 알 수 있었다.

‘만신전의 정예들인가!’

하지만 그 순간 영귀와 응룡, 기린의 삼대 신수가 거의 동시에 자신들의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능을 담은 숨결을 토해내자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다.

번쩍 -

번개의 기운을 띄고 있는 거대한 광선이 대지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 앞에 있던 모든 존재들이 소멸했다. 말 그대로 예외 없이 모든 게 소멸당해서 단숨에 십수 개체가 먼지가 되었으며 그 광선은 순식간에 구천현녀를 관통하듯이 타격했다.

우웅!

구천현녀의 몸 주변에는 무지갯빛의 보호막이 생겨나서 그 공격을 막아내었으나 구천현녀의 날개옷이 순식간에 여러 갈래로 터져 나가서 너덜너덜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구천현녀 또한 크게 타격을 입었는지 휘청이는 기색이었기에 나는 방금 전 삼대신수가 뿜어낸 공격이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봉인이 해제된 구천현녀라 해도…… 삼대신수를 동시에 상대하기엔 힘에 부치는구나!’

물론 지금 그녀가 중대한 의식 중이라서 제대로 못 싸우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구천현녀의 패색이 확실해 보였으니 제대로 싸운다 해도 구천현녀가 그렇게 유리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으리라!

[크하하하하!!]

[잡졸들로 우리를 막을 수 있겠느냐!]

뿐만 아니라 한 번 삼대신수의 공격이 몰아치자 그 사이에 시바와 비슈누가 파고들어 나머지 만신전의 병력을 상대로 공격을 개시했다. 비슈누는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허공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었고 시바는 자신의 병장기를 휘두르며 혈광(血光)과 함께 학살을 시작했다.

푸콰콰콱

콰지직!!

거의 일방적으로 시바와 비슈누가 양 떼에 뛰어든 늑대처럼 모든 적을 잡아 죽이는 모양새였다. 나는 만신전의 정예 중에 마왕급이 아닌 하급의 [옛 지배자]라 불릴 자들도 더러 섞여 있음을 알았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자 새삼 지금 이들의 합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섯 명의 대신(大神)이 뭉친다는 건 가히 파천황(破天荒)이나 다름없는 것!

비슷한 위격에 비슷한 숫자가 대항하지 않으면 얘기조차 될 수 없다!

오래 지나지 않아 시바와 비슈누는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걸 쓸어 버렸고 이어서 시바의 가공할 신력을 담은 염주가 구천현녀의 방어막을 크게 후려쳤다.

[죽어라!!]

콰앙!!

그와 동시에 구천현녀의 날개옷이 거의 다 찢어졌는데 그 순간 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직감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기이잉 -

날개옷이 찢어진 자리에 드러난 건 인간 여성의 벗은 몸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의 실체! 마치 별의 정수가 응축된 듯한 청광의 구슬이 살아 숨 쉬듯이 빛을 내뿜고 있었으며 회로처럼 번져 있는 이질적인 피부 속에 무지갯빛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신이 유리처럼 깨지며 균열이 쩌적거리며 흐른다. 그 와중에 구천현녀는 마지막 인간의 형태에서 냉막하게 한마디를 했다.

[당신들이 모두 공격해 온다면 어쩔 수 없군요…… 저 또한 의식을 멈추고 진신(眞身)을 보일 수밖에!]

그 말이 끝나며 구천현녀의 전신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긴장했다.

‘인간형을 포기했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번쩍!!

다음 순간 구천현녀는 전신에서 빛을 내며 변신했다.

웅 - 웅 - 웅 -

나후(羅睺)와 계도(計圖)의 쌍성(雙星)이 소환되었다.

그 두 개의 별은 종말에 출현한다고 알려진 절망의 성좌였으며 사실 칠요의 시련 막바지에 수호자와 함께 출현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후와 계도가 출현한 순간 저만치에 있던 응룡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때는 응룡이 칠요성신의 힘을 얻어 태양계의 힘을 사역하는 최종적수로 등장했었다…… 물론 그 응룡에게 구천현녀가 무형의 형태로 강신(降神)해서 힘이 증폭되었지만…….’

나는 그때 파천의 가호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이겨내긴 했지만 사실 칠요성신과 구천현녀의 기운을 얻은 응룡이란 정상적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사실 지금 기준으로도 내 본체의 신력을 갖고 와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본체의 힘만 비교해보자면 그때의 응룡보다 구천현녀가 몇 배는 강할 테니, 나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이이잉 -

이윽고 나후와 계도의 쌍성이 소환된 한가운데에서 일그러지며 점차 소환된 것은 뜻밖의 모습이었다.

[……!!]

[아니?!]

[어찌 당신이 그 모습을…….]

마침내 소환된 구천현녀의 본체!

그 본체의 모습을 보고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삼대신수였다. 영귀, 응룡, 기린 할 것 없이 그들 모두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 크게 충격을 받아서 굳어 버린 듯했다. 그 사실은 구천현녀가 지금 소환한 본체의 모습이 그들에게 큰 자극을 줄만 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셋의 반응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모습을 본 순간 나 또한 경악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

어, 어째서 저 모습을……?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한없이 아름다운 빛의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조류와 닮아있지만, 지상의 동물과 차원을 달리하는 듯한 그 모습 - 나는 그 모습을 탁록시대에 복희와 함께 [경계] 근처까지 가서 만나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직접 얘기까지 해보았었기에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경악해서 외쳤다.

[봉황(鳳凰)……!! 어, 어째서!!]

그렇다. 구천현녀가 취한 본체의 모습은 바로 사대신수 봉황!!

칠요의 시련에서도 구천현녀의 진짜 모습을 육안으로 본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직접 본인이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어서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었는데 설마 사대신수의 시초이자 최강의 신수라 할 수 있는 봉황의 모습이라니!!

그러자 구천현녀가 힐끔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연 전생자…… 이미 봉황을 만나보았던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취한 이 모습은 바로 봉황의 것이지요.]

[왜 그 모습을 한 것인가?]

이어진 구천현녀의 대답에 나와 삼대신수는 다 같이 놀라고 말았다.

[태초의 태양계에서 봉황이 권능을 부여한 것은 저 삼대신수만이 아닙니다…… 봉황은 지구라는 행성 자체에 자신의 가호를 부여하였고, 저는 봉황 덕에 강대한 힘을 얻었습니다.]

[……!!]

[일개 행성의 의지가 이렇게 강할 수 있었던 게 우연이라 생각하셨나요? 수백의 [옛 지배자]가 거하며 강대한 마력을 뿜어내는데도 생명이 버틸 수 있도록 세상을 조율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봉황의 가호 덕이었습니다…… 저는 별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력했던 그분의 모습을 취할 것입니다.]

서, 설마…… 구천현녀 또한 봉황에게 권능을 받은 존재였을 줄이야!

스스스스 -

이윽고 구천현녀의 본체를 향해 나후와 계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흡수되려고 하는 나후성과 계도성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고는 외쳤다.

[화룡점정(畵龍點睛)!! 구천현녀가 나후와 계도를 얻으면 안 돼!! 막아!]

칠요의 시련 때 얻은 경험으로 보아 저건 위험하다!

‘봉황의 모습을 한 구천현녀의 두 눈에 나후와 계도성이 눈동자처럼 박히는 순간, 힘이 몇십 배로 증폭될 거야!’

그때 내 패배조건이 나후와 계도가 용의 눈동자를 이루어 화룡점정이 완성되는 것이었는데, 구천현녀 또한 마찬가지 수법을 쓸 확률이 너무 큰 것이다!

[으음!!]

[가자!]

내 외침에 다섯의 신격들이 동시에 구천현녀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나후성과 계도성이 구천현녀 주위를 타원형으로 회전하며 신격들의 합공을 막아내기 시작했는데, 아까 구천현녀가 인간형일 때 막아내던 것과는 천지 차이로 보였다.

콰과광

시바가 전력을 다해 휘두른 염주조차도 막아내는 나후성! 시바는 완력으로 전욱에 비견되는 신이었는데 그런 시바의 공격조차도 큰 무리 없이 막아내는 걸 보면 지금 더 두 별에 맺혀 있는 신력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뒤에서 쳐다보던 비슈누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칠요(七曜)의 진(陣)을 미리 이 자리에 펼쳐놓았단 말인가? 참으로 철두철미하구나…… 심지어 그 사실을 아군이었던 우리에게까지 숨기다니.]

비슈누의 말이 뜻하는 바는 명약관화했다. 사실 이 자리에서는 삼황오제의 부활의식뿐만이 아니라 칠요의 기운을 불러오는 의식 또한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 그 때문에 아무리 본체를 드러낸 구천현녀라 해도 다섯 신의 합공은 감당할 수 없지만 칠요의 기운 덕에 비슷한 싸움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구천현녀가 말했다.

[만신전의 ‘누군가’가 배신할 거라는 미래가 예지되었으니까요…… 설마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지만, 배신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 흐하하. 그쪽의 전지(全知)도 맹탕은 아니라는 말이로구나. 그럼 물러나 볼까, 시바.]

슈욱!

비슈누는 껄껄 웃더니 갑자기 전선에서 물러나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비슈누와 시바는 인간형의 화신으로 변신해서 바로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신격을 보자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인마. 안 싸우고 뭐해?! 구천현녀한테 여유를 주면 나후와 계도를 흡수해서 더 강해진…….]

내 말을 끊고 비슈누가 말했다.

“안다. 하지만 무작정 공격해서야 아무리 대신격이 다섯이라 해도 지금의 구천현녀가 펼치는 쌍성의 방어를 못 뚫지. 칠요성신의 힘을 얻고 있는 구천현녀를 상대로는 이대로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비슈누는 어느새 강대한 신체(神體) 대신 화신 크리슈나의 모습을 취하고 있어서 육성을 내고 있었다.

[…… 그래서?]

크리슈나의 형상을 한 비슈누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해답은 바로 네가 쥐고 있다, 백웅.”

[내가?]

“그렇다.”

이어진 비슈누의 말에, 나는 어째서 비슈누는 물론이고 시바까지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를 알아챌 수가 있었다.

“바로 우리 셋이서 트리무르티(三位一體)를 쓰는 것이다.”

[……!!]

트리무르티!!

나는 비슈누의 말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비슈누의 입에서 트리무르티가 언급될 줄이야?

나는 혹시 하는 생각에 방금 눈치챈 걸 물어보았다.

[설마 트리무르티를 시전할 때 내게 맞춰주려고 인간으로 변신했단 말이냐?]

“그게 아니고서는 왜 이럴 때 인간형이 되었겠나?”

[…… 트리무르티는 보통 나 혼자서 쓰는 기술이었어. 브라흐마도 개인적으로만 쓸 뿐이었는데, 여럿이서 함께 쓰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냐?]

내가 의혹어린 말투로 비슈누에게 반문하자 비슈누는 피식 웃었다.

“브라흐마가 자세히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너도 우리가 고대에 수많은 신격과 전쟁을 치렀다는 건 알고 있을 터…… 그때 수의 열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던 건 언제나 우리 세 형제가 함께 시전했던 트리무르티의 술법이었다. 그 주술은 우리 셋이 함께 사용할 때 가장 강력한 것이다.”

[……!!]

“허나 브라흐마가 실종된 후 우리는 트리무르티의 힘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황제의 만신전에 굴복당하고 말았지…… 브라흐마와 달리 우리 둘은 트리무르티를 개인적으로 쓸 수 없으니까…….”

예전 생각을 하듯 눈을 감고 있던 비슈누가 천천히 눈을 반개하며 말했다.

“백웅이여. 네가 정녕 브라흐마의 의지를 잇고 있는 트리무르티의 전인(傳人)이라면 분명 우리와 함께 트리무르티를 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이라면 분명히 저 구천현녀의 방어조차 뚫을 수 있으리라!”

[그런가……!!]

스윽

내가 상황을 이해한 듯 하자 비슈누와 시바가 각각의 쌍장(雙掌)을 내밀어서 서로의 손바닥을 맞닿았다. 나는 그들 둘이 손바닥을 맞댄 걸 보자 자연스럽게 내가 서 있어야 할 장소를 알 수 있었고, 이윽고 나 또한 각각 비슈누와 시바와 손바닥을 갖다 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셋이서 삼재진(三才陣)의 형태로 손바닥을 갖다 대자 삼각형의 모양이 되었고, 그 상태에서 비슈누가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둘은 너의 미천한 신력을 도야시켜서 트리무르티 술법의 힘을 강화시키는 역할이다. 평균을 올린다고 볼 수 있지.”

나는 비슈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신력은 하찮은 수준이었지만 두 명의 대신이 지닌 신력이 강제로 내 수준을 끌어올려서 술법의 힘을 극대화시킨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라면 최소한 내가 과거 혼자서 펼치던 트리무르티보다는 훨씬 강한 위력이 보장되리라.

[흠…… 내가 트리무르티를 주도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이 모든 건 결국 너의 트리무르티의 숙련도에 달려 있다. 그건 우리가 도와줄 수 없는 영역…… 자신 있는가?”

[…….]

나는 침묵했다. 말은 쉬워 보였지만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난이도의 시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대신(大神)이 쏟아붓는 압도적인 신력!

그 신력에다가 나 자신의 힘을 끼워 넣어서 삼위일체의 중심을 잡는 건 엄청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거기에다가 그 균형을 유지하면서 원하는 효과까지 내려고 한다면, 실로 묘기(妙技)나 다름없는 재주라 할 수 있으니 내가 평소에 펼치던 트리무르티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난이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흐흐…… 비슈누. 너는 무엇을 위해 종말까지 살아남으려 했지?]

“……다시 브라흐마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주를 제패할 기회를 얻으려 했다.”

[강력한 신 다운 소망이군. 하지만 나는 그딴 건 상관없어.]

“뭐?”

어이없어하는 비슈누에게 나는 평소의 뒤틀린 심사를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나를 이용하려는 모든 놈에게 엿을 먹여주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너도나도 다 같이 뒈져 버리면 공평할 테니까 뭐든 할 수 있다고!!]

“……!!”

비슈누가 당황하자 나는 안광을 번득였다.

[내가 진심이 된 이상 이 개 같은 세상은 무조건 죽여 버린다!!]

그리고 내 생애 최고로 어려운 난이도의 트리무르티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순간 나와 시바, 비슈누의 머리 뒤에 원(圓)으로 이루어진 후광(後光)이 비치는 걸 알 수 있었으며, 그들 두 명과 내 정신이 합일(合一)되는 듯한 감각에 전율하고 말았다.

‘아!!’

‘이건…….’

‘시작되었군.’

이건 정말로 기이한 경험이었다. 내 생각이 시바의 생각이며 비슈누의 생각이었다. 또한 그들이 하는 생각조차도 내 자신의 것처럼 생생하게 이해되어서 완벽하게 공유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을 공유한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완벽하게 동화(同化)하며 공유되는 건 처음 겪는 일인 것이다.

어지럽다.

너무 많다.

너무 복잡하다.

너무…… 고차원적이다…….

‘크으으…… 으으…….’

나는 이 상태가 길어지면서 점점 내 정신이 혼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 공유하고 있는 시바와 비슈누, 두 명의 대신(大神)이 지니고 있는 정신이 너무 고차원적이라서 도저히 내 인간의 뇌에서 그 수준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생명체조차 아니며 수십억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신의 기억 자체가 인간의 뇌를 터지게 하고도 남게 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도 일렁이는 촛불처럼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을 수가 있었다. 나는 그 어마어마한 정보의 흐름과 고차원적인 정신을 간신히 감당해내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저, 전뇌자…….’

과거 전뇌자가 억지로 확장해놓았던 내 정신영역 - 거기에는 녀석이 남몰래 안배해 놓은 정신적 방어장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인간의 뇌라면 진작에 터졌어도 이상하지 않는데도 버틸 수 있는 건 그게 무척 컸다. 아마도 기억전송장치를 쓸 때 이미 안배해뒀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정신의 한 켠에 깃들어있는 기묘한 수형도(樹形圖)의 존재가 신들의 정신을 감당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나는 이것 또한 지금까지 내가 해온 수련의 성과라는 걸 알아차렸다.

‘세피라……!!’

세피라의 [힘]을 택하여 중첩한 덕분에 정신방어력이 더욱 크게 상승한 것일까?

마치 내 정신세계가 뿌리뽑히지 않게 단단하게 받쳐주는 굵은 거목이 심지(心志)에 굳세게 버티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런저런 요인 덕분에 대신과 정신을 공유해도 버틸만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리자 시바가 놀랍다는 듯 정신으로 말을 걸었다.

‘과연 전생자인가…… 그 미천한 육체로 이만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니.’

‘시바, 이제 와서 부정해서 무엇하겠나? 저자는 이미 대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개화(開花)하기 직전이다…….’

‘흐음…….’

‘복희가 전생자를 친 이유도 바로 그거겠지…….’

비슈누가 그렇게 말하며 정신으로 내게 말했다.

‘백웅이여…… 정신의 공명(共鳴)은 안정되었다. 이제 트리무르티로 무엇을 창조할 셈인가?’

‘…….’

‘참고로……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브라흐마는 우리 셋의 신력을 모두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기적(奇蹟)을 일으켰다…… 기적을 창조하는 것 또한 창조신의 능력이지…….’

나는 그런 비슈누의 말에 응답했다.

‘지금 그런 기적은 의미 없어…….’

‘그렇다. 네 힘이 우리 둘에 비하면 너무 약하기 때문이지…… 세 개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서의 증폭율이 가장 좋은데 지금은 너무나 균형이 나쁘다…….’

‘…….’

‘자아…… 무엇을 할 셈이냐? 단순한 힘의 증가로 이길 수 없는 지금…… 트리무르티로 ‘무엇’을 창조하여 전세를 역전시킬 셈인가!’

비슈누는 마치 나를 시험하듯이 캐물어 왔다. 나는 비슈누의 질문이 현재 내게 닥쳐온 가장 큰 시련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신력을 증폭시켜 싸우는 게 제일 쉽고 강할 것이다. 브라흐마가 과거 자신의 형제들과 트리무르티 합진을 썼을 때 그런 술수를 부린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신력이 증폭된 천축삼대신은 황제나 흉신조차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절대강자의 반열에 올랐으리라.

하지만 비슈누의 말대로 지금 나는 브라흐마가 썼던 전략을 쓰지 못한다. 지금의 나는 브라흐마는 커녕 일개 마왕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지도 몰랐다.

과연 내가 트리무르티로 무엇을 창조해야 할까?

뭘 창조해야 구천현녀의 본체를 물리치고 그녀에게 나후와 계도가 합일하는 걸 막을 수 있지?

어떻게 해야 두 가지를 다…….

‘……?’

그 순간, 나는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 개 다 할 필요가 있나?’

그냥 할 수 있는 거만 하면 되잖아?

그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잖아?

‘음……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순간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내 의지를 이용해 ‘창조’할 물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떠올린 물건의 상(像)을 공유받은 두 명의 신, 시바와 비슈누는 순간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 엉?’

‘허어어……? 이런 미친 생각을.’

둘 다 황당해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였다.

‘이 새끼들아, 날 믿어!! 일이 잘못되어도 난 괜찮아!’

‘너만 괜찮은 거 아니냐?’

나는 움찔했지만 도리어 성을 버럭 냈다.

‘들켰군……!! 근데 그럼 어쩔 건데?’

‘…… 크하하하!! 재미있군! 해볼까!’

‘으음. 어쩔 수 없구나…….’

시바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의지에 공명했고, 남은 비슈누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의지를 내게 맡겼다.

그들이 내 의견에 동의함으로써 트리무르티가 성립하자, 우리 셋이 쌍장을 맞댄 채 삼재진(三才陣)을 이루고 있는 장소의 정중앙에 무언가 새하얀 빛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

마침내 트리무르티의 힘으로 창조되어 소환된 그 물건을 본 나는 곧장 두 개의 둥그런 구체를 내 손에 거머쥐었다. 지금 저 천공에 떠 있는 것과 크기는 다르지만 두 명의 대신(大神)의 힘을 담은 트리무르티로 창조된 만큼 본질은 같다고 확신을 할 수가 있었다.

나는 시바와 비슈누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미 나와 생각을 공유해서 내가 무슨 수를 쓰려는지 알고 있었기에 말없이 내가 들고 있던 구체 위에 손을 올렸다.

슈슈슉!!

그 순간 시바와 비슈누의 형체가 사라지더니 그대로 구체에 흡수되어 버렸다!

‘됐어.’

준비가 끝난 나는 두 개의 공 같은 물체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눈동자가 갖고 싶나? 그러면 내가 선물해 주마, 구천현녀!!]

다음 순간, 나는 전신의 모든 기예를 끌어올려서 구천현녀를 향해 수법을 시전했다.

만상지투(萬象之偸)

신투비기(神偸秘技)

[소매 되돌려놓기!!]

투웅!!

그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던 두 개의 구체가 슉 하고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구천현녀가 갑자기 크게 당혹한 듯 허우적거렸다.

[이…… 이건…… 어떻게……!!]

쿠구구구!!

그렇게 외치는 구천현녀의 힘은 갑작스럽게 크게 증폭해 있었다. 그것도 방금 전까지보다 몇 배 이상 증폭해 있어서, 그냥 힘만으로는 테스카틀리포카에 준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구천현녀는 그 힘으로 이 쪽을 공격해오지 못하고 그저 멈춰있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저항하듯이 자신의 봉황 날개를 허우적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아아아…… 하아아아아아!!]

구천현녀가 갑자기 이상현상을 보이자, 천공에 떠있던 사대신수 영귀가 이상하다는 듯 내게 질문해 왔다.

[백웅이여.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왜 구천현녀가 나후와 계도를 흡수했는데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

나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구천현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히죽 웃었다.

[자기 눈이 아니거든!]

[……?]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사대신수 응룡이 뭔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 나후와 계도가…… 여전히 떠 있군! 설마?]

[그 설마다.]

[그대는 정녕 미쳤는가…….]

이윽고 응룡이 두렵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은은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구천현녀가 얻은 나후와 계도는…… 시바와 비슈누란 말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다.

내가 트리무르티로 창조한 것은 바로 나후성과 계도성!

그리고 그 두 개의 별에 시바와 비슈누가 자신들의 신격(神格)을 동화시켜서 합일한 후, 그대로 내가 만상지투를 이용해서 구천현녀의 두 눈에 박아넣어 버린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트리무르티로 창조한 나후와 계도 또한 진짜나 다름없기에 강화조건을 만족한 구천현녀는 당연히 신력이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나후성과 계도성에는 시바와 비슈누가 깃들어 있었기에, 지금 구천현녀는 자신의 몸속에 침입한 시바와 비슈누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기린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어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한 거지?]

[비슷한 경험이 있거든.]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응룡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물론 응룡은 자기를 왜 바라보는지 의아해하는 시선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다 경험 덕이지.’

과거 칠요의 시련에서 소환된 응룡을 상대로 어떻게 이겨야 할지 온갖 지혜를 짜내었을 때 나왔던 결론이, 바로 응룡의 눈깔에 들어가는 나후성이나 계도성을 중간에 지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눈깔을 지배하면 최소한의 승산을 낼 수 있었기에 그런 전략을 짰던 것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른 전법 또한 가능했다.

만일에 그 눈깔 자체를 이미 지배해 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진짜 나후계도 대신에 상대의 몸에 넣어버린다면?

그 결과는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치명적인 내상(內傷)을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게 된 구천현녀는 아무것도 못 하고 시바와 비슈누의 합공에 벌벌 떨고만 있는 것이다.

[으아아아아…… 아아아악!!]

퍼어엉!!

잠시 후 구천현녀는 거대한 단말마를 내지르더니 그대로 허공에 빛과 함께 비산(飛散)하고 말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지!! 잘 가라 구천현녀!]

[…….]

[…….]

[…… 왜 너희들은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냐?]

삼대신수가 나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길래 내가 불만스러워서 한마디를 하자, 기린이 마지못해 한마디를 했다.

[너같이 무서운 인간은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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