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90권 05화
나는 복희의 말에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무, 무슨……?’
어째서 복희가 저런 말을?
복희는 지금까지 내게 온갖 지원과 조력을 아끼지 않았던…… 반쯤은 동료에 가까운 자 아니었나? 아니, 나도 사실 복희를 어느 정도는 믿을만하다 생각했기에 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하기도 했었는데……!!
‘탁록시대에서 복희가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이제 와서 날 배신을…… 음?!’
하지만 나는 순간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확하고 냉정을 되찾았다. 그것은 여태껏 수많은 경험을 하며 느껴왔던 직감이 한 순간에 통일되어 전에 없던 통찰력을 내게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거대한 사건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내 머릿속에서 뭉쳐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말에 대꾸했다.
[…… 복희. 혹시 탁록시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오?]
“…….”
복희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에서 평소 감정이 느껴지던 인간형의 복희와 달리, 그가 감정을 모조리 배제한 채 철저히 대신(大神)으로서의 관점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후 말했다.
“우둔함 속에 본질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라…… 그것은 지능을 벗어난 직감의 영역. 허나 그 직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
“어쩌면 그 직감이야말로 그대의 가장 무서운 능력일지도.”
그렇게 중얼거린 복희는 자신의 부채를 팔락이며 말을 이었다.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질문이었네. 나는 자네가 만났던 그 복희가 아니지만, 그 기억은 가지고 있지.”
[뭐, 뭐라고?]
나는 복희의 말에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뜻이지?!’
언뜻 그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욱 차분하게 머릿속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좀 더 머리를 굴리다가 말했다.
[…… 어찌 됐든, 당신은 탁록시대에 나와 다니던 기억도 갖고 있고…… 모든 걸 알면서도…… 나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뜻이구려.]
“정답일세.”
[왜? 어째서 삼황오제를 모아 나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오.]
복희는 내 말에 선선히 대꾸했다.
“방금도 말했을 텐데. 우리가 전생자인 자네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그, 그러니까 왜 굳이 내게 반기를 든다는 거요? 내가 삼황오제에게 무슨 해를 줬다고…….]
나는 억울해져서 항변을 했다. 그러자 복희는 훗하고 웃으며 부채로 나를 가리켰다.
“무슨 해를 줬냐니. 전생(轉生)할 때마다 전생자의 능력을 이용해서 삼황오제를 농락한 게 한두 번인가? 결과적으로 황제 공손헌원이 봉인된 것도 다 자네 때문이고, 오제 중에서 요순이 인과율 때문에 소멸당하는 처지가 된 것도 자네 때문이지. 뿐만아니라 다른 삼황오제도 직간접적으로 자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온갖 수단으로 이용당하지 않았나.”
[……!!]
“달리 말하자면 자네보다 더 삼황오제에게 해를 끼친 존재가 있기는 한가? 전 우주를 뒤져봐도 없을걸세.”
나는 복희의 말에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옳았기 때문에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없는 머리를 쥐어짜서 버럭 소리쳤다.
[화, 황제 공손헌원을 내가 봉인한 덕에 당신이 그 위치에 있는 거 아니오? 당신을 미치게 해서 유폐시킨 원수를 대신 갚아준 거나 다름없는데 이리도 배은망덕할 수가 있소!]
“틀린 말은 아니군. 확실히 자네가 아니었다면…… [원래 역사]였다면 내가 이렇게 삼황오제의 지존이 되어 권력을 잡는 일은 없었을 테지.”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이 함정을 거두고…….]
“아니, 그럴 수는 없네. 나는 오늘 무슨 수를 써도 자네와 결판을 내야겠어.”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는 복희였다. 장난이나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단호한 태도였기에 나는 도리어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현실을 회피하지 못하고 인정해야만 했다.
저 복희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거나 세뇌당한 게 아니다.
온전히 자기의 의지로 나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점점 머리가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복희를 노려보았다.
[…… 진짜 이유를 말하시오. 아직은…… 당신의 일탈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있소.]
복희는 껄껄 웃었다.
“후후, 일탈이라!! 나 복희를 상대로 그리도 광오(狂傲)한 말을 할 수 있다니…… 그대는 그 말을 할 수 있는 자기자신의 오만함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오만하다고?]
“그래…… 이렇게 되었으니 솔직히 말해주지. ‘모든 걸 알게 된’ 나는 전생자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싫고 역겹다네. 심지어 그 황제 공손헌원보다 더욱 싫네.”
[……!!]
뭐라고?!
내가 약간 당황하자 복희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고대에 내가 황제 공손헌원에게 패배하여 봉인당한 것은 분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능력부족으로 일어난 일. 천하(天下)를 건 제왕들의 쟁패(爭覇)에서 힘이 부족하여 패배했으니 승복할 수밖에 없는 일. 패배로 인해 생겨난 모든 결과를 감수할 생각이었네. 허나 전생자란 대체 뭐지?”
복희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싸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은 그대가 아직 전생자로서 어설프고 약하여 우리를 존중해주는 척하지만, 점차 회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를 그저 장난감처럼 여기게 되겠지. 전생자가 강해질수록 마땅히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겠는가? 또한 그대가 추구하는 대의조차도 불분명하여 천방지축 좌충우돌 하는 동안 세상의 질서는 더욱 꼬이고 있으며 그대의 제멋대로인 움직임 하나하나에 모든 것이 혼돈에 휩싸인다. 질서의 계승자인 나로서는 그대 같은 존재를 결코 좋게 볼 수 없어.”
[…….]
“충격받은 것 같군.”
[그렇게 보이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면?”
나는 도리어 침착해져서 복희를 마주 보며 말했다.
[내가 삼황오제를 장난감처럼 갖고논다고? 내가 정말 그럴 생각이었으면 난 좀 더 악랄하게 놀았을 거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당신만한 존재라면 알고 있을 거요.]
“…….”
[그렇기에 당신의 말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모든 걸 가식으로 숨기고 살아왔다는 건 믿을 수 없소. 진짜로 반기를 든 이유는 누군가가 당신을 부추겼기 때문이 아니오?]
“……흐음…….”
복희의 얼굴에 순간 난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복희는 도로 원래의 표정으로 되돌아와서는 말했다.
“어찌 되었든 달라지는 건 없네. 나는 최선을 다해 자네를 잡아서 봉인할 것이고, 자네는 그걸 피해서 이 자리에서 도망치면 될 걸세. 할 수 있다면 말이야.”
나는 복희의 말에 씩 웃으며 대꾸했다.
[후…… 복희. 당신은 바보가 된 것이오?]
“음?”
[전생자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죽음이라오!]
죽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면 그뿐이라고!
나는 말이 끝나는 순간 그대로 내 손에 전력을 끌어올려서 내 머리통을 쳐 버리려고 했다.
전륜성왕의 권능도 있지만 그냥 내가 죽음을 인정하기만 하면 아마 바로 죽을 수 있으리라.
멈칫!
하지만 나는 자살하기 직전의 찰나 멈춰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복희와 여와 등 수많은 신격들이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있다……?!’
내가 행동을 멈추자 복희가 유들거리며 말했다.
“왜 그러는가? 안 말릴 테니 어서 죽게.”
[…… 뭔가 수를 썼구려. 내가 이 자리에서 자살하거나 타살하거나 어떤 식으로 죽든간에 내 전생(轉生)을 막을 방법을 마련한 것이겠구려.]
복희는 내가 눈치챈 게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듯 순순히 말했다.
“맞네. 설마 그런 방법 하나 없이 자네를 가두는 함정을 팠겠나?”
저건 허세가 아니다.
내가 정말로 죽어서 전생할 수 있다면 삼황오제는 그대로 끝장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썼소?]
“후후후. 자네라면 알려줄 것 같나?”
[…… 지금껏 그 누구도 내가 자살해서 전생하는 걸 막지 못했소. 아무리 신이라지만 그런 방법이 있다고?]
나는 의혹 가득한 목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적들이 내 전생을 막으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죽어서 전생할 수 있었다. 내가 우격다짐으로 살려고 애를 썼던 이유는 가능하면 전생횟수를 쓸데없이 늘리지 않으려고 한 번의 생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뿐, 만일 정보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진작 사망횟수가 100단위를 넘었으리라.
그런데 눈앞의 복희와 삼황오제들은 내 전생을 당연히 막을 수 있다는 듯 태연한 태도라니?
‘대체 무슨…….’
그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테스카틀리포카가 내게 몰래 신언을 전달해 왔다.
[나는 알 것 같다, 백웅.]
뭐?
내가 테스카틀리포카를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저 너머에 복희가 아닌 또 다른 적이 도사리고 있다. 복희의 권능이 아니라 그놈이 뭔가 전생을 막는 술수를 펼치고 있을 테니, 그놈을 때려잡지 않으면 아마 전생할 수 없을 거다.]
[뭐, 뭐라고!]
[헌데 이상하군. 아까부터 그놈의 실체를 느끼려 했지만 희미한 흔적만 있을 뿐 도저히 실재하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내 신력으로도 탐지할 수 없다니, 이런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건가……?]
의혹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아무튼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각오 단단히 해라, 백웅.]
[…… 알았다!]
나는 그렇게 대꾸하면서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길…… 이렇게 철두철미한 함정이라니. 만일에 정석적으로 스사노오를 토벌하려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이 자리에 왔다면 죄다 죽거나 인질로 잡혔을 것이다.’
동방삭과 테스카틀리포카를 데려온 선택이 결과적으로 옳았던 것이다. 둘 다 자기 몸 건사해서 도망칠 능력이 있을 뿐만아니라 숫자가 적기 때문에 발목 잡힐 일도 적었다. 괜히 많은 숫자의 동료를 끌고 와서 스사노오를 치려 했다면 최악의 결과가 되었으리라.
쿠구구구…….
다음 순간, 테스카틀리포카가 서서히 힘을 내뿜으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엄청났는지 좌중의 모든 신격들이 그를 쳐다보았고 복희 또한 부채를 부치던 걸 멈추고 그를 주시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복희에게 말했다.
[복희여. 전생자를 무척 싫어하는 것 같더군.]
“그래서 불만인가?”
[그럴 리가…… 사실 나도 백웅 저놈이 싫다. 내 목을 베어 버린 게 저놈이란 말이다.]
“호오.”
[나중에 몰래 패 버릴 생각이다.]
뭣이!! 이 새끼가 그런 생각을!
내가 당황해서 테스카틀리포카를 올려다보자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 하지만 저놈은 재밌는 놈이야. 앞으로도 나를 재밌게 해줄 테니, 너희처럼 억지를 쓰면서까지 없애려 할 이유는 없다.]
“억지라. 우리 삼황오제가 무슨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건가?”
[크흐흐. 내가 말을 잘못했군. 억지라기보다는 꼭두각시 놀음이라고 해야 하나?]
테스카틀리포카가 진득하게 비웃음을 지었다.
[진심으로 전생자를 쓰러뜨리고 그 자리를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 자신의 뜻이 아니라 네 배후에 있는 누군가가 그러고 싶은 거고 네놈들은 그놈의 칼이자 꼭두각시일 뿐이다.]
“…….”
[자아, 태룡 복희여…… 힘을 보여라. 네가 지금이라도 천하를 제패한 강대한 힘을 과시하려고 손이 근질근질하다는 게 느껴지는구나!]
테스카틀리포카의 도발에 복희는 훗하고 웃었다.
“역시 자네는 대단한 존재가 맞군. 그걸 눈치채다니…… 원한다면 보여드려야지.”
우우우우 - !!
다음 순간, 복희의 몸 주변에서 시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잠시 후 복희 앞에 소환된, 크기가 일 장을 훌쩍 넘는 거대한 도끼!
“그리고 전황을 비슷하게 맞춰놔야겠군.”
그 도끼를 거머쥔 복희는 주문을 외우듯 천공에 신언(神言)을 외쳤다.
[나 복희가 만신전의 주인으로서 명한다. 모든 권속은 이 자리에 소환되어라!]
지잉
지잉
그와 동시에 하늘 여기저기에서 황금빛의 원형 소환진들이 생겨나며 거기서 강한 신력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상에서 보고 있던 무지개뱀이 침음성을 흘렸다.
[만신전의 권속……? 정말로 복희가 황제 공손헌원의 만신전을 차지했단 말이더냐!]
무지개뱀 뿐만 아니라 하나둘씩 소환되는 신격들을 지켜보던 주주들은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저, 저것은 응룡.]
[기린(麒麟)도 있다!]
[영귀도!]
[사대신수가 만신전의 편에 섰단 말인가…….]
우우우우…….
그들 말대로였다. 내가 익히 본 적있던 사대신수 중 셋이 단숨에 장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들 또한 고대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며 [옛 지배자]에 못지않은 격을 지닌 자들이었고 전 우주에 명성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둘씩 소환되는 만신전의 신격들도 제법 숫자가 많아 보였다. 나는 뿐만 아니라 다른 오제의 신전에 속해 있던 영수와 마왕들도 소환되기 시작하는 걸 보자 그만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이, 이러면 숫적 우위도…….’
주주들의 숫자가 이백에 가까워보이니 아직은 숫자가 이쪽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삼황오제가 제대로 소환된다면 결국 오십여 명 정도 소환되어 있는 만신전의 권속들이 더욱 큰 우위를 갖게 될 것이리라. 질적 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진짜 당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 복희가 소환한 저 도끼의 정체 때문이었다. 나는 그만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반고의 도끼……!!]
탁록시대에 기린이 지키고 있었으며 내가 복희를 도와 얻게 한 전설의 도끼.
저걸 복희가 갖고 있다니!!
‘대체 어떻게?’
나는 지금 상황이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물론 기린이 이미 저쪽 편에 섰으니 기린이 복희에게 양도했다고 하면 해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복희의 광증이 다 치료되고 몰래 사대신수를 싹 다 규합해서 도끼까지 다 얻었단 말인가? 모든 걸 다 알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복희가 반고의 도끼를 까닥이며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선공은 양보하지 않겠네. 그랬다간 자네한테 질 것 같거든.”
콰앙!!
다음 순간, 복희가 도끼를 휘둘러서 찰나지간에 테스카틀리포카의 육중한 동체를 때렸다. 대신답게 복희의 움직임은 시공간을 초월해 있었으며 그저 휘둘렀다는 결과만이 남아 있었고, 전형적인 신적 권능 중 하나였다.
콰지직……!!
복희의 도끼를 막은 테스카틀리포카의 비늘은 산산조각나서 흩날렸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직격을 피하긴 했지만 살짝 스쳤기 때문일까? 잠시 후 테스카틀리포카가 몸을 크게 꿈틀거리며 포효했다.
[혼돈의 극상성인 데다가 전성기 반고의 신력이 그대로 부여되어 있다니! 그런 사기적인 무기를 쓰는 게 어딨나!]
…… 젠장!
저러다가 테스카틀리포카가 당하는 거 아냐?!
“…….”
하지만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우위를 차지한 것 같았던 복희도 한 번의 공격 이후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그는 크게 당황한 듯 말했다.
“미쳤군…… 이런 말도 안 되는 내구도를 가진 신체(神體)라니…… 굴레를 여러번 넘으면 이런 괴물이 되는 건가? 본체가 다 소환될 때까지 버틸 수밖에는…….”
쿠콰쾅!!
말이 끝나는 순간 테스카틀리포카가 소환한 무수한 숫자의 암양이 복희를 타격했다. 복희는 술법으로 방어했지만 크게 밀린 듯 그의 전신이 살짝 그을려 있었다. 공방을 주고받은 테스카틀리포카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크하하, 그래…… 엄살 좀 부려봤다. 그 무기를 갖고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쿠콰콰쾅
나는 이윽고 테스카틀리포카가 격렬하게 복희를 몰아치기 시작하고 복희는 연신 방어와 반격을 거듭하며 대적하는 걸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복희! 내가 돕겠다!]
심지어 복희가 더 몰릴 것 같자 여와가 끼어들어서 복희를 돕기 시작하는 듯했다. 여와의 신적 권능이 펼쳐지며 복희의 방어를 도와주자 복희는 좀 더 수월하게 도끼를 휘둘러 테스카틀리포카를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나는 그제서야 장내의 힘의 균형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불완전하게 소환된 복희나 여와로서는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테스카틀리포카가 강해진 것이다! 도리어 반고의 도끼를 이용해야만 괴물을 잡는 용사처럼 간신히 대결이 성립되는 수준이 분명했다.
그리고 삼황 두 명이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달라붙자 장내에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만신전과 주주들의 대규모 대결이 시작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어!’
나는 그 찰나의 순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채고는 천공에 떠 있는 만신전 권속들 중에 두 명의 신격에게 말을 걸었다.
[시바! 비슈누!!]
흠칫!
그들 두 명은 나를 발견하자 당황한 듯했다. 나는 그들에게 가타부타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씩 웃으며 엄지를 내밀었다.
[우린 친구 아니냐! 어!]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시바가 호응하듯 외쳤다.
[알았다!]
[후우, 이렇게 되나…….]
슈슉……!!
그와 동시에 시바와 비슈누는 만신전의 편에서 이탈해서 바로 내 곁으로 와 버리고 말았다.
바로 내 편이 된 것이다.
[…….]
[…….]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주주들과 만신전 권속들, 그리고 한창 싸우고 있던 신농과 전욱조차 당황한 듯 멍해져서 나를 쳐다보았다.
한참의 침묵 끝에 신농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내 오래 살았지만 저렇게 인맥이 대단한 자는 처음 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