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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94화 (1,593/1,615)

전생검신 90권 04화

잠시 후 전욱이 자신의 암창을 [옛 지배자] 무리에 겨누며 말했다.

[아는 얼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얼굴도 있구나.]

[그래서 봐달라는 거냐, 전욱?]

[설마…….]

이윽고 전욱이 흑염(黑炎)의 거신(巨神)으로서 불길한 흉광(凶光)을 내뿜었다.

[그렇다 해도 오늘 본좌의 창에는 자비가 없으리라는 뜻이다!]

번쩍 -

한 줄기의 흑광(黑光)이 천공에서 마치 혜성처럼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흑광은 사실은 전욱의 힘을 머금은 거창(巨槍)이었고 그 창이 지상에 떨어지는 순간 그 근처에 있던 [옛 지배자]가 무려 다섯이나 당해 버리고 말았다.

쿠콰콰쾅

[크아아악!]

[으악!]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듯 옆에 있던 신농이 껄껄 웃으며 전방으로 돌진했다.

[크하하…… 패기가 대단하구나, 전욱! 이만한 숫자를 상대로 위축되지 않다니.]

꽈릉

[크아아아악……!!]

형언할 수 없는 마수(魔獸) 같은 형상을 한 [옛 지배자]의 몸통에 신농의 거대한 도끼가 박히자 그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존재는 신농의 공격에 일격에 소멸하지 않았고 도리어 수십 개나 되는 기이한 촉수를 뻗어내며 권능을 시전했다.

[이거나 받아라!]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소환된 수많은 나선(羅線)의 소용돌이! 그 소용돌이 하나하나에서는 기괴한 형광빛을 내뿜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지독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우주의 오염된 악기(惡氣) 그 자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신농은 그 반격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기합을 내질렀다.

[흐음!!]

후와아악

신농의 전신에서 뿜어져나온 백염(白炎)에 나선의 소용돌이는 단숨에 모조리 불타 버렸고 또한 신농의 도끼를 타고 백염이 흘러들어가서 그 [옛 지배자]를 불태웠다.

[끄오오오!!]

지금까지 신농과 전욱에게 마구 죽어나가던 하급 지배자들과 달리 그자는 백염에 타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마력으로 저항하는 기색이었다. 그 실력이 상당하다 여겼는지 거신의 신왕인 신농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호오, 이래도 안 죽어? 과연 광악(狂惡) 탄카라온…… 오십 개 이상의 성운(星雲)을 다스리는 지배자구나.]

신농과 탄카라온이라 불린 존재는 구면인 듯했다.

[시, 신농 네놈……!! 너희가 아무리 상위 위격이라지만 이 숫자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후후후…… 어중이떠중이가 아무리 모인들…… 오합지졸을 두려워할 것 같으면 과거 황제를 상대로 어찌 싸웠겠나?]

[…….]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존(至尊)이 생겼다. 너희는 후회하리라!]

콰아앙!!

[끄악.]

잠시 후 신농은 그대로 도끼를 더 세게 휘둘러서 그 [옛 지배자], 광악 탄카라온을 땅에 처박아서 완전히 제압해 버렸다. 신체(神體)가 크게 박살 난 탄카라온은 그대로 혼절해 버린 듯 뻗어 버렸고, 그의 몸에서 쉴새없이 신혈(神血)이 흘러나와 땅을 적셨다.

주춤…….

주변에 있던 [옛 지배자]들은 그 대결의 결과에 당황한 듯 주춤거리는 듯했다.

[탄카라온이……!!]

[신농이 저렇게 강한 존재였을 줄이야.]

나는 그런 [옛 지배자]들의 반응을 보고 내심 어이가 없었다. 신농과 전욱이 전투에 참가하자 그 위세가 가히 전장을 휘젓는 명장에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래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말을 걸었다.

[…… 뭐야? 아무리 삼황오제가 상대라지만 이렇게 격 차이가 날 수가 있는 거냐?]

내 말에 테스카틀리포카가 차분히 대꾸했다.

[너도 알고 있을 터이다. [옛 지배자]라고 뭉뚱그려서 불리지만 사실 상위마왕과 별 차이가 없는 놈도 많고 제각각 힘의 차이가 천차만별. 삼황오제는 그 수많은 우주의 지배자들 중에서도 단연 최상위로 인정받은 자들이며 그중에서도 신농과 전욱은 무투파로 이름이 높으니 저럴 만하지.]

[…….]

나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동안 워낙 대단한 강자들을 상대해서 깜빡 잊고 있었지만 이번에 삼황오제의 위치를 확실히 알게 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전 우주에서 손꼽히는 강대한 대신(大神) 8인의 연맹!

그 의미는 내가 예전에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애초에 인간들이 넘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젠장…… 하필 이 지구에 그런 엄청난 놈들이 몰려 있는 게 어딨냐고…….’

이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속으로 꿍얼거리고 있을 때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그렇다 해도 탄카라온이 일격에 패배한 건 놀랍군. 저 녀석도 한 끗발 하는 강자로서 전 우주에 명성이 높았는데…… 신농이 저렇게 강했나?]

[이상한 거냐?]

[이상하지. 내가 고대에 보았던 신농은 저만큼 강하지 않았다. 확실히 한 단계 넘어선 강함을 보여주고 있구나.]

[…….]

신농이 강해졌다고?

‘쳇…… 신력이 없는 상태라서 강함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적어도 예전 같은 신력을 갖고 있었다면 신력의 강함을 비교하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쉽지 않았다. 신력이 너무 낮아져서 높은 수준에 있는 자들의 강함을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워진 것이다.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자 테스카틀리포카는 이윽고 씨익 웃었다.

[크흐흐…… 하지만 네가 모은 주주들도 어중이떠중이만 있는 건 아니다. 곧 시작되겠군.]

응?

번쩍!

[이놈.]

[너무 설치는구나!]

말이 끝나는 순간 수신명왕과 라운캉이 동시에 전욱을 향해 달려들었다. 암창을 휘두르며 약한 지배자들을 썰고 다니던 전욱은 그 둘의 합공이 만만치 않다 여기는 듯 순식간에 권능을 발휘해서 막아내었고 그의 몸을 두르는 시꺼먼 방패가 소환되었다.

콰광!!

쿠구구구구…….

신들의 격돌 한 번에 단숨에 사위가 빛으로 물들었고 마치 핵폭발을 연상시키는 듯한 백색의 광휘가 사방에 가득찼다. 하지만 실제로는 핵폭탄을 몇천배 넘어서는 충격력이 분명했고 신격들의 충돌 때문에 허차원조차도 쪼개지며 시공간이 붕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우우우우……!!

수신명왕과 라운캉은 상당히 강한 존재들인 듯 아까와는 달리 전욱조차 쉽게 상대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일대일이면 몰라도 그들 또한 대신(大神)의 반열에 올라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크아아악!]

[덤벼라!]

그리고 그런 선봉의 기세에 힘을 얻었는지 다른 [옛 지배자]들도 덤벼들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그리고 무지개뱀이 자신의 손끝에서 기묘한 밧줄을 소환해서 들며 전장에 출현했다. 신농 또한 쇠도리깨와 도끼로 무자비하게 주변의 적들을 때려눕히다가 무지개뱀을 보자 행동을 멈추고 그녀를 주시했다.

[무지개뱀이여…… 반고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고신이여…… 그대만큼 오래된 존재가 그런 하찮은 모임에 들어가다니…… 그대의 오랜 명성을 흠모하던 이 신농으로서는 실망이외다.]

신농이 점잖은 말투로 무지개뱀을 힐난하자 무지개뱀은 흰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깔깔 웃었다.

[아하하…… 너 같으면 허공록이 보증하는 인과율의 자산을 의심하겠느냐? 그 말은 우주에서 둘째가는 절대자를 의심하는 것과 같으니,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흐음, 그렇기도 하구려.]

그렇게 대꾸하는 신농은 연신 무지개뱀의 밧줄을 신경 쓰는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아무리 신농이라 하더라도 반고의 권능이 담긴 밧줄을 경시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본녀도 보고들은 것이 있기에 [계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대충 알고 있지. 그렇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그렇게 대꾸한 무지개뱀이 둥글게 말아쥔 밧줄을 든 손으로 신농을 겨누며 말했다.

[너희야말로 왜 순리(順理)를 거스르느냐? 허공록이 보증하는 자산을 담보할 수 있는 존재…… 너희 삼황오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런 존재에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겉으로 보이는 힘이 전부이겠느냐?]

[……!!]

[지독하게도 오만하구나.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 말에 신농은 흠칫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후 자신의 무기를 더욱 세게 말아쥐며 말했다.

[이미 우리는 선택을 했소. 선배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거대한 계획이 있으니, 우리 걱정을 해줄 필요는 없소이다.]

[그래? 저기서 구천현녀가 몰래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 계획의 일부인가 보지?]

무지개뱀의 시선에는 전장에 끼어들지 않은 채 무언가 주술의식을 진행시키고 있는 구천현녀의 모습이 들어와 있었다. 무지개뱀의 말에 신농이 코웃음을 쳤다.

[눈치도 좋군. 허나 내가 막는 한 그대들이 구천현녀를 방해할 순 없을 것이오!]

[그래, 어디 해 보자꾸나!!]

슈우우웅 -

무지개뱀의 손에서 밧줄이 날아서 구천현녀를 노리듯이 발출되었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기 때문일까?

[흠……!!]

신농은 곧장 자신의 도끼를 휘둘러서 밧줄을 베어 버리려 했지만 다음 순간 밧줄은 도리어 도끼를 꽁꽁 묶으며 신농의 움직임을 봉쇄해 버리고 말았다.

[……!!]

신농은 자신의 도끼가 밧줄에 묶였음에도 꼼짝도 못하는 기색이었다. 정확히는 도끼를 버리는 선택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지개뱀은 요사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눈치챈 것 같구나. 네가 손을 떼는 순간 그 밧줄은 도리어 네 본체를 묶을 것이다.]

[선배께서 계략을 부리셨구려.]

[삼황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대가라면 싼 것이지. 그럼 그 상태에서 모든 이의 합공을 얼마나 막아낼지 볼까?]

취이이익

크에에에엑……!!

무지개뱀이 전황을 바꾸자마자 눈치를 보고 있던 [옛 지배자]들이 단체로 몰려들어 신농과 전욱을 떼거지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강자들의 손발을 봉쇄한 틈에 다구리를 친다는 단순한 전략이었지만 이만큼 숫자가 차이가 난다면 가장 강력한 전략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쾌재를 불렀다.

[좋아!! 이대로라면 이기겠군!]

상식적으로 수백 명 대 두 명에 불과하다.

아무리 신농과 전욱이 예전보다 강해졌다 한들 질 리가 있겠는가!

[…….]

하지만 그 상황을 보며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고 있던 테스카틀리포카가 문득 말했다.

[여유부릴 때가 아니구나. 백웅, 넌 대체 얼마나 흉악한 놈과 적이 된 거냐?]

[어?]

[…… 시작되겠구나.]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이 끝나는 바로 그때였다.

우웅…….

갑자기 천공에서 일어나던 개기월식 같은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 이윽고 달 너머에서 ‘무언가’가 출현했다.

그것은 한 쌍의 존재 -

달을 등지고 하늘에 떠오른 그 두 명의 존재는 잠시 후 그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 형상이 무척 익숙하다는 걸 깨닫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여…… 역시……!!’

신농과 전욱이 동시에 나타났을 때 예상은 했지만……!!

그리고 그들 중 절세의 미청년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는 부채를 든 채 고고한 기색으로 장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이윽고 훗 하고 웃으며 장내에 쩌렁쩌렁 외침을 전달했다.

[모두들 잠깐 그만두게!]

쿠웅!!

[……!!]

[……?!]

[헉……?!]

단지 한마디의 신언(神言)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 모든 [옛 지배자]들은 일 거에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그것은 신농과 전욱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신언을 들은 모든 존재들은 약간 비틀거리고 있었으며 크게 억눌린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런 자들 중에서 오로지 테스카틀리포카만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멀쩡했으며, 그는 불쾌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놈이 삼황오제의 대장이 되었군…….]

나는 지금 상황이 어찌 된 일인지 알아채고는 전율로 몸을 떨었다.

‘미…… 미친…… 그냥…… 힘으로 찍어누른 거야!’

지금 일어난 일은 단순했다. 달을 등지고 나타난 저 미청년이 단순히 신력을 뿜어내어서 좌중을 기세로 제압한 것!

물론 기세로 제압한다는 건 특별한 권능이 아니라 그저 기운의 방출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정수준 이상의 존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 자리에는 상위신격도 적지 않게 있기에 보통이라면 그저 기세 좋은 호통소리에 불과할 것이리라.

그러나…… 저 외침에 달려 있는 힘이 너무 강대했다.

단지 그 힘의 단위가 너무 달랐기 때문에 일시에 장내의 모든 존재들이 짓눌린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저 존재야말로 압도적인 절대자(絶對者)의 위치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세상에 한창 싸우고 있는 기백 이상의 [옛 지배자]와 삼황오제를 단숨에 외침만으로 눌러 버릴 수 있다니!

그 무시무시한 위업을 달성한 존재는 잠시 후 시선을 옮겨서 내 쪽으로 향했다.

그는 분명히 나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고, 나는 그의 시선을 받는 순간 얼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크…… 으윽…….’

겉으로 보이는 건 인간족의 절세미청년의 아름다운 외모이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는 것은 창세기부터 살아온 거대한 태룡(太龍)이자 대신(大神)의 권능이었다. 나는 몇십 번이고 보아왔던 그 존재를 이렇게 적으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곤혹스러웠다.

잠시 후 그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네가 전생자(轉生者) 백웅이로군. 반갑네.”

[…….]

나는 한참 후에 마음을 추스리고는 속에서 긁어내는 듯한 목소리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복희……!!]

삼황(三皇) 복희(伏羲)가 그의 혈육인 삼황 여와와 함께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서 복희에게 외쳤다.

[당신은 삼황오제의 새로운 지존이 된 것이오?!]

내 질문에 복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황제 공손헌원이 봉인되었으니 내가 이제 그들의 지존일세.”

[그럼 어째서 이런 짓을…… ?! 삼황오제 전부를 다 동원해서 함정을 파다니!! 왜?!]

“어째서냐니. 당연한 거 아니겠나?”

이어진 복희의 한마디에 나는 그만 굳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 삼황오제가 전생자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는 이번뿐이니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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