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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91화 (1,590/1,615)

전생검신 90권 01화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나는 도저히 내 머리로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온갖 수많은 사건들이 지금 이 한순간에 결합되고 있다는 건 직감하고 있었지만, 그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단숨에 유추할 만큼 내 머리가 좋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책사들의 도움을 구한다 해도 그들 또한 손쉽게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아냐……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봤자 알 수 없다면 더 이상 고민하는 게 사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는 일단 탈출하는 것만을 생각한다!

나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난 죽을 거야.]

이 자리에서 죽어서 다음 전생을 시작하는 게 가장 안전하며 최선의 방법이다!

스으

그 말에 테스카틀리포카는 나를 힐끔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너무 포기가 빠르군. 무슨 상황인지 알기는 하고 마무리 짓는 건가?]

[…….]

[아무것도 모른 채 끝낸다면 다음에 똑같은 일이 또 생겨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텐데.]

그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눈앞에서 삼황오제가 난데없이 뭉쳐서 음모를 꾸미는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를 아는가 모르는가는 천지차이였다. 원인을 안다면 다음 생부터는 똑같은 짓을 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차분히 말했다.

[…… 정말로 삼황오제가 다 뭉친 거라면 내가 진실을 알고자 들이대려다가 영겁동안 봉인될 수도 있다. 신력도 거의 못 쓰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어.]

삼황오제의 위력을 늘상 보아왔던 나는 한 명 한 명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절대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나하나는 어떻게든 감당할 수준이 되긴 했지만, 그들이 떼로 덤벼든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그건 실로 만용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리라.

[흐흐. 지나치게 냉정하구나. 그렇다면 나도 하나 말해둘까.]

[뭘?]

이어진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은 정말로 내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날 믿어라.]

[……!!]

[삼황오제가 전부 달려든다 더라도 네게 멀쩡히 달아날 틈을 만들어 주지. 아직 설쳐보지도 않았는데 이 판이 끝나는 건 내 자존심상 용납할 수가 없다.]

테스카틀리포카의 말뜻은 명확했다.

이 자리에서 삼황오제 전체와 싸우는 한이 있어도 내가 이번 생을 이어나갈 틈을 만들어주겠다는 것! 그러므로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제안은 정말 뜻밖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설마 천고의 악신이 먼저 이런 말을 할 줄이야?!

나는 그만 당황해서 말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삼황오제가 뭉치면 얼마나 강하냐면…….]

[아주 잘 안다. 태고적에 내가 몇 번 저들과 겨뤄본 적도 있으니.]

[잘 아는데 어째서…….]

[잘 아니까.]

이윽고 테스카틀리포카의 눈이 암광(暗光)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굴레]를 넘은 지금의 나라면 감당하고도 남으리라!!]

[……!!]

그의 거대한 동체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자, 결정해라. 날 믿고 생을 이어가겠는가?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을 것이냐.]

[…….]

나는 테스카틀리포카의 엄청난 자신감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게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말대로 살아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나는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붙잡혀서 봉인당하면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문을 당할지도 몰랐다.

삼황오제가 직접 움직여서 짠 포위망에 당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창힐에게 50년 정도 당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일 게 분명하다.

과연 뭐가 맞을까?

나는 잠시 후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 널 믿겠다, 테스카틀리포카…….]

나는 의지를 굳히고는 버럭 외쳤다.

[나를…… 그리고 내 동료들을 살려다오!!]

이 자리에서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걸어보겠어!

악연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 녀석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거나 마찬가지니까!!

[크하하…… 아주 잘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광소를 터뜨렸다. 그러고는 크게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며 신언(神言)을 토해내었다.

[나는 검은 태양신, 테스카틀리포카!! 덤벼보아라, 잡졸들아!!]

검은 태양신의 노래(黑陽神之歌)!

쿠와아앗

다음 순간, 마왕 야마타노오로치를 순식간에 불태워 죽였던 수백 개의 암양(暗陽)이 장내에 소환되었다. 그 암양이 소환되는 순간 이미 소환되어 있던 다섯의 신격들은 의외라는 듯 이쪽을 쳐다보았고, 그들 중에서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무모하군.]

오거천문의 문지기이자 전욱 만귀전의 서열 3위인 신격(神格), 열(噎)이었다. 그의 실력은 전(前) 거신족의 삼대전사이자 현 만귀전 2인자인 축융에 못지않았기에 테스카틀리포카의 암양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듯했다.

관복을 입은 만귀전의 열이 팔짱을 낀 채 테스카틀리포카를 올려다보았다.

[그대가 강대한 존재인 건 인정하지만…… 지금 누가 소환되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뭐? 무슨 말이지?

내가 열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자, 테스카틀리포카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호쾌하게 대꾸했다.

[‘그’가 진짜로 소환된다면 아무리 나라도 당해내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 전에 너희를 다 몰살시켜 버리면 그만 아니겠느냐?]

[오만하군……!! 위대한 분들을 노하게 하지 말라!]

불쾌하다는 듯 내뱉은 열은 서서히 합장을 하기 시작했다.

만귀천공진(萬鬼天空陣)

천억귀(千億鬼)

슈우우우

열의 전신에서 신력이 피어오르더니 천지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진(陣)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고대어로 가득한 그 진에서는 잠시 후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다.

끼아아아악!!

끄아아악!!

차마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인, 말 그대로 새까맣게 많은 무식한 숫자의 귀신(鬼神)! 그 귀신들은 하나하나가 신격인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강력한 요괴 급은 되어 보였는데 그 숫자가 대충 보기에도 이미 수천만, 억의 단위를 훨씬 넘어 보였다. 천지를 새까맣게 물들일 정도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그 귀신들을 보자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세, 세상에…….’

열에게 저런 술법이 또 있었단 말인가?

열이 호통을 쳤다.

[나 열이 전욱의 권리를 대행하여 만귀전의 모든 귀신들을 소환하노니, 천억을 가벼이 넘을 터!! 이따위 태양은 비벼서 꺼 주마!]

화아아악

잠시 후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던 귀신 무리들이 검은 태양에 부딪혀서 끝도 없이 소멸했지만,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거대한 암양은 점차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열이 자신했던 대로 ‘비벼서’ 끄는 게 점차 눈에 보였다.

귀신의 혼을 대신 태워서 신력을 없애는 술수 -

설마 마왕을 눌러 죽이는 태양을 상대로 저런 무식한 인해전술로 대항할 수 있을 줄이야!

‘역시 열 또한 우주에서 내로라하는 신격…… 충분히 우주적인 공포의 대상이다!!’

필멸자들은 저 귀신 100마리만 소환해도 전설적인 대술사라고 하는 판인데 열의 힘은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인간은커녕 대라신선조차 벌레나 다름없을 정도의 강대한 신력! 열이 만귀전 소속이라 그렇지 독립해서 홀로 [옛 지배자]라고 칭한다 해도 그 누구도 그 사실에 반박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이것이 본격적인 중상급 이상 신격들의 전투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겨우 그 정도로 이 몸의 태양을 끄겠단 말이냐?]

[뭣이……? 허억!!]

잠시 후 열은 크게 당황한 듯했고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빠지지직…….

빠지직!!

크기가 많이 작아진 것 같던 테스카틀리포카의 암양이 갑자기 부활하듯 그 크기를 부풀려서 팽창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귀신 떼를 도리어 더한 기세로 잡아먹으며 계속해서 커지기 시작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명백히 기세를 타고 있었고, 잠시 후 열은 합장한 손을 급히 떼는 듯했다.

[크윽!!]

화륵

열의 손바닥에 흑염(黑炎)이 맺혀서 그의 신체(神體)를 지지고 있었다. 술법이 역류하면서 도리어 열에게 타격을 입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만귀전의 귀신을 한꺼번에 소환해봤자 테스카틀리포카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열이 수세에 몰리자 세 명의 신격이 동시에 떠올라서 호통을 쳤다.

[받아라.]

[더 이상 까불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리석은 놈……!!]

녹신(綠神) 구망(句芒)의 양손에서 녹광(綠光)이 뻗어 나와서 직접 테스카틀리포카를 공격했고, 시세신(時世神) 열 명(咽鳴)이 자신의 쇠 도리깨를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그리고 사비시신(奢比尸神)이 알 수 없는 신급 저주를 읊으며 테스카틀리포카를 공격하니, 삽시간에 장내는 거대한 신력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전장이 되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허공에 뜬 채로 즐겁다는 듯 외쳤다.

[크하하…… 너희는 본디 나라고 해도 얕볼 수 없는 삼황오제의 중진(重鎭)…… 전초전에서 날개 하나 정도는 잃을 각오를 했었다.]

그는 이윽고 광폭한 웃음을 터뜨렸다.

[허나 지금 보니 마치 갓난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과 같구나!!]

번쩍!!

바로 그 순간이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소환했던 수많은 암양 중 열 개 정도가 갑자기 소멸되더니 암광(暗光)으로 바뀌었고, 그 암광이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달려들던 시세신 열 명의 등 뒤로 쏘아져 왔다. 시세신 열 명은 그 기색을 알아차린 듯 급히 [작은 굴레]를 멈추는 듯했다.

시간정지!

‘저자는 시간계열의 신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구나!’

시세신 열 명의 기술이 펼쳐지자 모든 신격들이 잠깐이지만 멈춰 버린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보통 실력으로는 이렇게 될 수 없었고 신격 자체의 능력이 시간계열에 특화되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특이하게도 저자는 거신족의 신격이면서 시간을 다루는 것이다.

끼기긱…….

열명의 [작은 굴레] 조작에 날아들던 암광이 잠깐 속도를 늦추는 듯했다. 열 명은 기습을 막아낸 줄 알고 안도하는 듯했으나, 다음 순간 암광이 마치 화살처럼 더 빠른 속도로 내쏘아져서 시세신 열 명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푸콱!

[……!!]

시세신 열 명은 설마 당할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표정도 잠시, 암광에 꿰뚫린 부상에서 난데없이 또다시 암양이 소환되더니 열 명의 신체를 모조리 태워 버리고 말았다.

화르르륵

그것이 시세신 열 명의 최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강력한 신격이 소멸되자 나머지 둘은 당황한 듯했지만, 테스카틀리포카는 그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몰아치는 기색이었다.

꿀꺽

[맛있군!]

[헉……!!]

테스카틀리포카가 구망의 녹색 신력광선을 그대로 씹어먹어 버리자 구망은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듯 허우적거렸다. 딱 봐도 강력한 신의 일격이었는데 너무 쉽게 무효화시킨 것이었다. 동시에 테스카틀리포카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이번엔 내 차례다!]

푸화학

테스카틀리포카의 입에서 시꺼먼 어둠이 분사되어 부채꼴로 퍼져나갔다. 구망은 급히 그 어둠의 입김을 피하려 한 듯했지만,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이미 당해 버린 듯 그의 팔다리에 어둠의 기운이 달라붙었다. 그리고 어둠이 달라붙자 구망은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끄륵…… 끄아악…….]

괴로워하던 구망은 잠시 발버둥을 쳤지만 잠시 후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구망이 죽은 줄 알았지만 놀라운 일은 그다음부터 일어났다.

푸콱!!

구망의 머리 부분이 터져 나가고 그 대신에 그의 목줄기에서 뱀 머리가 새로이 돋아난 것이다! 그리고 튀어 나온 뱀 머리가 기분 좋게 하는 말에서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맛있구나!]

…… 설마 지금 순식간에 구망을 잡아먹은 건가?!

[으으윽.]

내가 속으로 경악하고 있을 때 저주를 부리려던 사비시신이 급하게 술수를 취소하는 기색이었다. 어차피 씨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일까?

그는 크게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구, 구천현녀…… 당신이 나설 차례요.]

[…….]

사비시신과 열은 감히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덤빌 생각도 못 한 채 주춤거리며 구천현녀의 옆에 붙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실력으로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다시 덤벼들 경우 순식간에 살해당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는 뜻이었다.

또한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에게 대항할 만한 힘이 있는 게 구천현녀 뿐이라는 걸 입증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관전하고 있던 나는 단숨에 상황이 어찌되는 건지 알아챘기 때문이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예전에 내가 상대했던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손에 넣었다……!!’

방금 살해당한 열 명과 구망 또한 나름대로 상위신격이었는데 가벼운 공격과 방어조차 감당하지 못해서 순식간에 죽고 말았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신력이 차원이 다른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구천현녀는 물끄러미 테스카틀리포카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위대한 고신이여…… 그대는 본디 그만큼 강하지 않았을 터…… 허나 지금은 마치 황제와 복희를 떠올릴 정도로 강대하군요.]

[구천현녀. 내게 대항할 셈인가? 지금 물러선다면 네 위치를 보아 죽이지는 않으마.]

선심쓰듯 말하는 테스카틀리포카였다. 하지만 정말로 선심을 쓰는 건 아니었고 테스카틀리포카에게도 구천현녀가 꽤나 귀찮은 상대라는 뜻이었다. 나는 테스카틀리포카가 저러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구천현녀가 어쩌다 보니 저기에 있지만 사실 나머지 넷과는 격이 다른 존재다.’

봉인이 풀릴 경우 어쩌면 삼황오제 하나하나와 동격일지도 모르는 존재!

지구(地球) 그 자체의 대지모신(大地母神)이라 할 수 있는 그녀는 결코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것이다.

구천현녀는 잔잔한 눈으로 테스카틀리포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째서 우리에게 저항하는 것입니까…… 이제야 겨우 질서의 계승자가 제 위치를 찾고…… 니알라토텝과 황제가 만들어낸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고 진정한 질서의 세계를 만들 기회가 왔는데…… 당신은 종말까지 혼돈의 외신들에게 농락당하고 싶은 것인지요?]

구천현녀의 의미심장한 말에 테스카틀리포카가 비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너희가 바라는 결말도 또 다른 세계의 종말이란 건 다르지 않지…… 그리고 백웅을 노리는 이상 너희는 나의 적이다!!]

[그렇습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한 번은 보여드릴 필요가 있겠군요…… 질서의 계승자가 제 자리를 찾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단호히 말한 구천현녀가 자신의 날개옷을 팔락거리며 허공에 흰빛을 내며 떠올랐다. 그녀의 신력이 급격히 솟구쳤고, 잠시 후 마치 일요(日曜)의 시련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강대한 힘이 그녀에게서 끓어오르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쿠구구구

그 기세에 테스카틀리포카는 여태까지처럼 쉽게 대하지 못하고 살짝 움츠리는 듯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인과율에 제약당하던 네가 그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다니…… 정말로 그 봉인을 풀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태초에 정해진 업(業)이라 그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게 아닌가?]

[…….]

[…… 그렇군. 그래서 전생자에게 대항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이냐.]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테스카틀리포카가 이윽고 자신의 전력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내가 더 강하다!!]

후웅

테스카틀리포카가 허공에 쌍월(雙月)처럼 생긴 두 개의 어둠의 태양을 소환해냈다. 그 두 개의 태양은 지금까지 불러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지 엄청난 힘이 맺혀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그 두 개의 암양을 자신의 몸 양옆에 설치하더니 잠시 후 권능을 발현했다.

암황마궁(暗皇魔宮)!

거대한 어둠의 빛이 장막처럼 온누리를 감싸기 시작하자 구천현녀가 중얼거리는 듯했다.

[설마 이런 강대한 변수가 있을 줄이야…… 정말로 전지(全知)를 따르는 게 맞는 것인가?]

파앗

다음 순간, 나는 내 몸이 완전히 다른 별세계에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정신이 들고 보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완전히 혼절해 있는 조디악 멤버들과 유일하게 멀쩡한 동방삭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얼떨떨하고 있을 때 동방삭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후우, 몇만 년 만에 만나자마자 세계가 멸망할 기로라니…… 나로서도 적응이 안 되는구나.”

그렇게 말한 동방삭이 오트클레르를 휘두르자 바닥에 누워 있던 조디악 멤버들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그들을 아공간으로 보내버린 것 같았다. 내가 동방삭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동방삭은 약간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두 개의 암양 중 하나에 차원을 창조하고 그 안에 우리를 밀어 넣었어. 구천현녀와의 싸움에 휘말려서 죽는 걸 막기 위해서야.”

[그런가…….]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백웅. 사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나는 지구에 있는 모든 고대신의 사도로서, 그분들에게 이번 전투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뭐라고 했는데?]

“모두가 거부하셨다. 대신에 내게 그들과 접촉해서 면담기회를 만들어보라 하셨지.”

[…….]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삼황오제가 모두 힘을 합친 상태라면 지금 이 지구상에 그 어떤 신의 세력도 그들에게 대적할 수 없다. 차라리 하위세력으로 종속되는 걸 택한 거지.”

나는 그 말을 듣자 상황이 얼마나 암울한지를 알 수 있었다. 고대신들이 내편인 줄 알았는데 압도적인 최강세력인 삼황오제가 출현하니 단숨에 등을 돌린 것이다.

[…… 그래서?]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어차피 고대신의 사도라는 직위도 힘을 위해서 임시로 받은 것뿐인걸.”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 동방삭이 나를 쳐다보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아마 구천현녀보다 강할 거야. 하지만 이대로라면 삼황오제가 완전히 소환되는 걸 절대로 막지 못해. 그리고 그들이 다 소환되면 아무리 테스카틀리포카라도 소멸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동방삭이 전에 없이 암울한 표정으로 썩어들어갔다.

“글쎄…… 나야말로 묻고 싶은 걸…… 어쩌다가 저만큼 강대한 놈들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너를 함정에 빠뜨린 건지…….”

[…….]

“백웅. 할 수 있겠어? 이 자리에서 탈출한다면 삼황오제에 대적할 세력을 만들 수 있어? 그렇지 않다면 지금 살아나가는 것도 무의미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나는 동방삭이 이 질문을 통해서 뭔가를 결정하려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러고는 대답했다.

[난 그래도 살 거다. 테스카틀리포카를 믿어보기로 했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마.”

[말해줘. 내가 뭘 해야 하지?]

“무량대천(無量大天)의 궁전(宮殿)에 가야 해. 내가 보기에 삼황오제의 연맹에 대항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는 그 존재뿐이야.”

무량대천의 궁전?

쿠궁!!

내가 그 말뜻을 생각하기도 전에 이 어둠의 별세계가 크게 흔들렸다. 그 진동과 함께 동방삭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테스카틀리포카가 이 함정을 뚫고 ‘틈’을 만들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네. 지금 우리 힘으로는 끼어드는 것 자체가 방해야.”

[…….]

정말 그런가?

이대로 테스카틀리포카를 응원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아니야…… 왠지 이대로 가면 최악의 결과만 남을 거라는 직감이 든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구천현녀와 싸우는 테스카틀리포카를 도와줘야만 희망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동방삭의 말대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내가 끼어드는 것 자체가 민폐였다. 지금 이 몸이 가진 힘으로는 아까 순식간에 죽어 나간 구망과 열 명조차도 상대하기 힘든데 그보다 아득하게 강력한 힘을 지닌 최고 위격의 전투에 어찌 간섭하겠는가?

‘으으…… 젠장…… 동방삭이 와준 건 고맙지만 동방삭 말고 다른 탁록의 동료들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혹시나 다른 결과가…….

…….

잠시만…… 동방삭은 설마…….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가 떠올라서 동방삭을 쳐다보았다.

[동방삭. 네가 고대신의 사도로 선택된 이유는 사신지혼(四神之魂) 때문인 거지?]

의외의 질문을 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동방삭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가 잠깐 가르쳐준 것뿐이었지만 탁록촌 사람들 대부분이 사신지혼의 기초를 배웠지. 그리고 사신지혼은 신의 [그릇]을 만드는 무공이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사신지혼을 오랫동안 수련해서 신의 힘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야.”

[역시 그랬군.]

“그게 왜?”

[아니…… 너희한테 사신지혼을 가르쳤던 바로 그때가…… 바로 [특별배당]을 하던 시기였잖아. 기억나냐?]

“아…… 그랬지. 그때 얻었던 힘도 굉장히 유용했어.”

[10명의 초기주주…… 라는 거지.]

“……?”

나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고 초기주주의 명맥이 이어졌다는 거야…….]

동방삭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듯 의아해했지만 나는 이윽고 씩 하고 웃으며 하늘 높이 손을 뻗었다.

[전 우주의 회원 여러분…… 나 백웅이 회장(會長)으로서 말한다.]

이어진 내 말에 갑작스럽게 테스카틀리포카가 만들어낸 암황마궁의 공간이 크게 뒤흔들렸다.

[나한테 배당금 받고 싶은 놈들은, 지금 당장 전부 여기로 튀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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