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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90화 (1,589/1,615)

전생검신 89권 20화

동영의 삼귀자씩이나 되는 대신(大神)이 설마 저렇게 처참한 꼴이 되어 있을 줄이야.

‘누가 저런 짓을…….’

스사노오의 참상을 보던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뭐지……? 스사노오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저 신력들의 파장이 뭔가 익숙하다.’

무척 익숙한 느낌이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능력일지도……?

하지만 신력의 파장을 다루는 능력은 내게 없었기에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왜인지 기술이 부족하다는 느낌에 나는 고민했지만, 이윽고 생각을 이어나갔다.

‘스사노오가 계속 부활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뭐지? 저 신력들 때문인가? 아니…… 저렇게 난잡한 신력들이 테스카틀리포카의 화염을 막을 만큼 강할 수는 없다. 뭔가 다른 곳에 부활능력의 근원이 있는 게 틀림없어.’

나는 주의깊게 스사노오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관찰을 하던 중 순간적으로 스사노오의 눈두덩 안쪽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며 빛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감이 온다. 저게 뭔가 중요한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옆에 있던 동방삭을 쳐다보았다.

[스사노오의 눈을 살펴봐야겠어. 도와줘.]

“괜찮겠어? 반죽음이 됐다고 해도 저 존재는 위격 높은 신(神)이야. 잘못 접근했다가는 뼈도 못 추려.”

[그런 건 내가 더 잘 알아. 잠깐만 파고들 수 있는 틈만 있으면 돼.]

“그렇다면야…….”

철컹

동방삭은 오트클레르를 집어넣었다.

“나와라!”

치치칭!

그러고는 대신에 하나의 검을 이기어검으로 띄워서 그녀의 모든 기운을 그 안에 밀어 넣는 듯했다. 의념천주와 함께 그녀의 모든 의념이 집중되기 시작하자 그 검은 가공할 만한 기운을 띄기 시작했고, 이윽고 영기의 색깔마저도 짙게 변할 정도가 되었다.

쿠구구!!

나는 이기어검에 이 정도의 기력을 쏟아붓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검 하나를 움직이는데도 엄청난 기력이 소모되어서 재빨리 적만 해치워도 모자랄 판인데 어찌 저런 낭비를 할 수 있겠는가? 과거 여동빈의 어검비행술에 경악했던 것도 이기어검이라는 기술 자체의 무식한 기력소모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동방삭은 어쩌면 기력만으로 어검비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

아, 아니 대체 무슨 내공이 저렇게 많아?!

나도 내공이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지만 저건 내가 가지고 있던 내공조차도 이미 몇십 배나 뛰어넘은 것 같은데……?!

나는 그제서야 동방삭이 뿜어내는 기의 양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마, 많아…….’

동방삭 하나가 가지고 있는 기(氣)의 양이…… 지구(地球) 전체에 있는 모든 기의 양보다 더 클지도 몰라!!

이런 미친!!

잠시 후 동방삭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대신 오시리스여, 그 모든 영계의 가호를 저 검에 불어넣으소서…… 기천의 마신(魔神)이 수호하는 상징을 새겨놓으소서…… 감히 말씀드리나니 저 검의 이름은 발로르(Balor)…… 고대에 봉인된 왕의 이름이오니.”

고대신의 가호가 검의 날에 올올이 새겨지는 게 눈에 보였다. 새하얀 고대어가 마지막 한 소절까지 새겨졌을 때 동방삭은 그 검에 손을 뻗어서 덥석 붙잡고는 일갈하며 참격을 내리쳤다.

“으아아아!!”

사신지혼(四神之魂)

비기(秘技)

삼천갑자파산검(三千甲子破山劍)!

꽈르릉!!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대신 오시리스의 가호까지 얻어낸 참격은 순식간에 차원(次元)까지 가볍게 쪼개어서 눈앞에 있는 모든 걸 깨뜨렸고, 그 일직선상에 있던 스사노오의 신체(神體)는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베여나갔다.

[크오오오!!]

막 일어서려고 하던 스사노오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그 모습에서 동방삭의 일격에 담겨 있는 힘을 알아채고는 경악했다.

‘너무 압도적인 기력이 신성(神聖)의 회복력조차 방해하는 건가……!!’

본디 신력이 물리적인 힘이나 기력에 완벽히 상성상 우위에 있다는 걸 감안 하면 삼천갑자파산검은 무식하게 기를 때려 박아서 그 신력의 우위를 잠시 추월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저런 식이라면 어쩌면 힘으로 신을 때려잡는 것도 가능할 것이리라!

저것이 삼천갑자 동방삭…….

의사 단전의 영역에 도달한 어마어마한 내공을 바탕으로 사신지혼을 수만 년 동안 수련해온 자!

파가각!!

그러나 너무 큰 힘을 담았기 때문일까? 삼천갑자파산검을 휘두르자마자 그녀가 휘두른 검은 그대로 산산 조각나 버리고 말았다!

동방삭은 또다시 아공간에서 검을 소환해서 잡으며 외쳤다.

“뭐해? 빨리 가!! 이 기술은 아무리 대단한 검이라도 한 번 쓰고 나면 무조건 박살 난다!!”

[알았다!!]

파밧

나는 동방삭이 만들어준 틈을 타서 재빨리 스사노오에게 멸혼보로 접근했다. 아닌 게 아니라 원래는 아무리 스사노오가 무방비라도 신력 때문에 그대로 저주받아서 죽을지도 몰랐는데, 삼천갑자파산검이 신을 제압해놓은 덕분에 나는 별 탈 없이 접근할 수가 있었다.

슈욱

나는 허공에 도약해서 스사노오의 눈두덩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에서 빛나고 있던 것의 실체를 빠르게 확인하고는 침음성을 냈다.

[음.]

저것은…… 칼날인가?

나는 확인하자마자 지체없이 손을 휘둘렀다.

만상지투(萬像之偸)!

파밧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에 스사노오의 눈에 꽂혀 있던 칼날이 들어오자, 나는 칼날을 잠시 확인해 보기 위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칼날이 무엇인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스사노오의 전용무기인 토츠카노츠루기(十握劍)의 칼날이 아냐!’

스사노오와 토츠카노츠루기가 융합했으니 당연히 여기 꽂힌 것도 토츠카노츠루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칼날은 토츠카노츠루기가 품고 있는 신력과 완전히 다른 성질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칼날에 부여되어 있는 신력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도끼]의 날이 부서진 조각이다.

그리고 이 도끼 조각에 부여되어있는 신력은…….

[……!!]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순간적으로 알아챈 사실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동방삭의 사자후가 들려왔다.

[백웅!! 스사노오가 정신을 차린다!! 빨리 빠져나와!]

[…….]

크윽……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군!!

파밧

나는 재빨리 멸혼보를 시전해서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동방삭 옆으로 되돌아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저 멀리서 보고 있던 테스카틀리포카가 또다시 스사노오를 불로 지졌다.

후와아악

아마도 테스카틀리포카는 불사가 유지되더라도 스사노오를 계속 태우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주 간단하게 스사노오를 제압한 셈이었지만, 동방삭은 저 멀리에서 불타고 있는 스사노오를 보자 소름 끼친다는 듯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 없이 스사노오를 공략하려 했다면 엄청난 피해가 났을 거다. 내 삼천갑자파산검을 쓰면 웬만한 마왕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데, 설마 고작해야 잠시 멈춰놓는 것밖에 못 하다니…… 아마 수많은 대라신선과 인간들이 다 죽어 나갔겠지.”

[…….]

“백웅. 성과는 있었나?”

나는 동방삭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설마 스사노오를 저렇게 만든 게…….]

크아아앗!!

그때였다. 계속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불타고 있던 스사노오가 한 순간 광분하듯 엄청난 기운을 내뿜었고, 그 기운의 파장이 이 공간에 거대한 공진(共振)을 일으켰다. 이 공진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 있는지 그때까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던 베루스 등의 다른 조디악 멤버들은 갑자기 보호막이 깨져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보호막만 깨진 게 아닌지 다들 단숨에 피칠갑이 되어 치명상을 입은 듯했다.

“이런!!”

동방삭은 급히 그들 쪽으로 날아가서 구조하려 드는 듯했다. 나도 그런 동방삭을 도우려 했지만, 그때 어딘가에서 신언(神言)이 날아와서 내게 들려왔다.

[…… 배…… 백웅…… 그대인가…….]

…….

스사노오?!

분명히 이건 스사노오의 기척이었다. 내가 빠르게 스사노오를 쳐다보자, 만신창이가 된 스사노오는 비틀거리면서도 조금씩 정신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 온전히 정신이 되돌아오지는 않은 건지 띄엄띄엄 필사적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도, 도망…… 도망…… 쳐라…… 여기는…… 그대를…… 하…… 함정…….]

함정?!

[크아아아아악!!]

다음 순간 스사노오의 몸 내부에서 암광(暗光)이 치솟아 올라서 몸 전체에 균열을 만들어내었고 스사노오는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그의 몸 내부에서 또 다른 기운이 꿈틀거리며 나타나려는 현상이었고, 스사노오에게 무언가 지독한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유있게 스사노오의 변화나 관찰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함정이면…… 도망쳐야 해!!’

잠깐 제정신으로 되돌아온 스사노오가 해준 저 말을 허투루 여길 수 없다!

아마 진실일 테니 빨리 도망칠 방법부터 생각해야 해!

나는 급히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외쳤다.

[이봐!! 여기서 달아나야겠으니 도와줘!]

[…….]

[왜 그래?]

어느 순간 허공에 부유한 채 가만히 있던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너도 어지간히 거물이 되었구나. 설마 저 오만한 놈들이 뭉쳐서 함정을 파는 걸 보게 될 줄이야…… 크흐흐!!]

[뭐?]

[이미 달아나기엔 늦었다. 뭔가 수를 쓸 수 있다면 빨리 써 보도록 해라.]

이어진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에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로서도 너희를 보호하며 싸울 만큼 만만한 놈들이 아니니.]

쿠우우우…….

콰지지직!!

잠시 후 스사노오의 전신 피부가 갈라지더니 거기에서 시꺼먼 촉수들이 잔뜩 튀어나왔고 그는 형체조차 알 수 없는 끔찍한 촉수의 괴물로 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사노오의 변이체는 갑자기 바닥에 축 퍼지더니 땅에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그 녹아내린 땅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시꺼먼 기운이 퍼져나가서 대지 전체를 먹빛으로 물들였다.

지이잉

천지가 온통 암흑으로 물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서서히 백광(白光)이 하늘에서 내리쬐기 시작했고 그 빛 속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 왠지 지금과 비슷한 광경을 살면서 봤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여덟 줄기의 빛 속에서 서서히 화신(化神)이 형태를 맺는 게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화신의 모습에 더 이상 생각하는 걸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제관(帝冠)을 쓴 장포(長布)의 제왕 -

그들 하나하나가 천천히 내려앉는 그 모습은 내가 분명히 본 적이 있었다.

‘천제단(天梯檀)…….’

그곳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광경.

공양의식.

[하늘]이 [땅]의 부름에 응답하여 내려오는 그 광경.

또한…… 이 자리에서 동영 삼귀자 스사노오가 [제물]로 바쳐져서 저들이 응답하여 강림(降臨)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우우

몇몇 자리는 비어 있다.

그러나 비어 있다 하여 그 빈자리만큼의 안도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만큼 누군가는 더욱더 강해졌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우욱!!

어느샌가 장내에는 너덧 명의 신적 존재들이 추가로 소환되어 있었다. 아마도 스사노오라는 거대한 제물 덕분에 진짜배기가 소환되기 전에 그 부하들을 소환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 중 짙은 녹광(綠光)과 청광(靑光)의 영기를 뿜어내던 존재가 쿵 하고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소호(少昊)의 종복, 녹신(綠神) 구망(句芒)이 위대한 분들을 영접하나이다!!]

저자는 분명히 백련교주를 만나러 갔을 때 보았던 신적 존재 -

그리고 구망의 맞은편에 서 있던 또 다른 자가 쿵 하고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신농(神農)의 종복, 시세신(時世神) 열 명(咽鳴)이 위대한 분들을 영접하나이다!!]

적황색 기운을 내뿜는 저 존재도 거신족인지 강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에 이어서 또 다른 존재가 무릎을 쿵 하고 꿇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 관복을 입은, 어둠의 기운을 내뿜는 존재는 과거 내게 [작은 굴레]의 권능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전욱(顓頊)의 종복, 오거천문(吳姖天門)의 문지기인 열(噎)이 위대한 분들을 영접하나이다!!]

…… 설마…….

나는 열까지 나오자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 구망을 비롯해 이 자리에서 영접을 위하여 출현한 자들은 하나같이 열과 동격, 혹은 그 이상에 있는 강대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내가 경악으로 굳어 있을 때 또 하나의 존재가 무릎을 꿇었다.

[제곡(帝嚳)의 종복, 사비시신(奢比尸神)이 위대한 분들을 영접하나이다!!]

저놈도…… 본 적 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은 다섯 번째 존재의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복희(伏羲)의 종복, 구천현녀(九天玄女)가 위대한 분들을 영접하나이다.]

스으으으

날개옷과 함께 출현한 구천현녀 -

그녀는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어째서……?

어째서 지상계에서 실종된 천계의 지존 구천현녀가 하필이면…… 하필이면 그 존재의…….

내가 멍하니 있을 때 테스카틀리포카가 내뱉은 신언(神言)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확정지었다.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모두 뭉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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