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89화 (1,588/1,615)

전생검신 89권 19화

후와아악

잠시 후 달을 가린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그 모든 천공의 구름들이 뱀에게 빨려드는 것 같았다. 칠흑의 구름을 잔뜩 흡수한 뱀은 빛을 뿜어내더니 이윽고 내 앞에 사람만한 크기의 물뱀의 형상으로 변해서 다시 출현했다. 형태를 바꾼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자, 이제 뭘 할 셈이지?]

테스카틀리포카의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장 동영의 스사노오 목부터 따러 가자고.]

다른 건 잘 모른다. 하지만 일단 동영 삼귀자이자 월신인 츠쿠요미의 흉계가 가득한 그 동영의 새하얀 공간 - 그곳부터 공략해야만 현세에 펼쳐져 있는 모든 난관들이 해결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류의 직감은 거의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도움으로 그 장소를 박살 내 볼 생각이었다.

[호오. 어떤 놈인지 알 것 같군…… 가자!]

[왜 박살 내는지는 궁금하지 않나?]

[왜 궁금해해야 하지?]

이어진 테스카틀리포카의 한마디에 나는 놈이 가진 자신감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이길 텐데.]

[……!!]

[그리고…… 저 고대신의 사도도 제법 하는 놈 같군.]

테스카틀리포카의 시선은 내 뒤편에 있던 동방삭을 향해 있었다.

동방삭은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에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인사했다.

“이 미천한 동방삭이 위대하신 고대의 태양신을 뵙니다.”

[크흐흐. 고대신 떨거지들의 문장을 잔뜩 갖고 있구나. 신들의 전쟁이 임박했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였던 놈들이 이제 와서 인간 따위에게 힘을 몰아주다니…….]

동방삭이 테스카틀리포카의 비아냥에 씩 웃으며 대꾸했다.

“귀하의 행보에 방해는 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길.”

[그렇겠군. 허나 내게 거스르면 가만두지 않겠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역시 그런가?

나는 방금 전 동방삭이 테스카틀리포카의 신력방출을 견뎌내고 지금도 태연히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를 눈치챘었다. 그것은 바로 동방삭의 이마에 떠오른 저 문양 자체가 또 다른 종류의 신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방삭은 어찌 된 일인지 신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고, 그 신력은 고대신에게 하사받은 게 틀림없었다.

즉, 동방삭은 틀림없이 고대신의 사도가 된 것!

나는 의아해져서 동방삭에게 물었다.

[어떻게 고대신의 사도가 된 거지? 누구의 사도냐?]

동방삭은 내 말에 차분히 대꾸했다.

“멤피스의 일부 신들과 사라센, 검은대륙의 정령들이 내게 권능을 주었고 거기에다가 에시르 신족들이 내 주된 후견인이지. 사실상 지구에 잔류해 있는 대부분의 고대신에게 후원을 받고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신적 권능만 백 가지가 넘지.”

[……!!]

뭐, 뭐라고?!

“뭐, 이 정도는 되어야 조디악 멤버의 수장 노릇을 하지 않겠어?”

동방삭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나는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당황해하며 물었다.

[그게 가능한 거냐? 대라신선조차 신력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오랜 기간 수련하거나 피해 버리는데……!!]

지금까지 전생하며 보아왔던 바로는 신과 인간의 중간자적 위치에 있는 신선조차도 순수한 신력은 절대로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다. 아무리 고대신이 질서의 성향이라지만…… 그리고 동방삭이 혼돈의 재능을 타고난 태초의 인간이라 하지만 신력을 그렇게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단 말인가!

내 말에 동방삭이 대답했다.

“보통 인간이면 이 정도로 신력을 받으면 몸이 터져 죽겠지만 난 상관없어. 다 네 덕분이지.”

동방삭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덕분이라고?]

“몰라서 묻는 거야?”

[……?]

잠시 어이없어하던 동방삭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모르나 보군…… 그러면 계속 궁금해하도록.”

[이봐!!]

“후후. 내가 왜 강하든 그게 지금 중요한 거야? 지금부터 동영의 스사노오한테 쳐들어가는 거면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을 텐데.”

[으음. 그건 맞는 말이군…….]

나는 동방삭이 왜 강한지 신경 쓰는 건 나중에 하기로 했다. 어차피 강한 동료라는 것만 알아두면 됐지 그 이상 뭐가 필요하겠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말했다.

[가자. 장소는 어디냐면…….]

[안 말해줘도 안다.]

[뭐?]

테스카틀리포카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뒤틀린 어둠이 펼쳐진 곳…… 그곳이 틀림없지 않겠는가. 지금 가겠다.]

후와아앗!!

테스카틀리포카는 그 말을 하자마자 곧장 몸에서 어둠의 마력을 뿜어내었고, 그 마력은 단숨에 나를 포함해 동방삭과 조디악 멤버 등을 휘감았다. 그리고 어둠에 휩싸였다고 느낀 다음 순간, 우리는 동영의 해안에 와 있었다.

쿠구구

‘백해(白海)!’

일전에 와 봤던 [하얀 바다]! 새하얀 빛의 너머에는 시퍼런 달이 수평선에 걸려 있었는데 청월(靑月)이 존재하는 수평선에서는 어둠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저 백해를 쳐다보며 말했다.

[조심하자고. 물리적으로는 수평선에 도달할 수 없게 되어 있고…… 또 뭐랬더라…….]

하도 오랜만이라 그때 얻었던 공략정보가 잘 기억나지 않아서 더듬거리자, 동방삭이 내 설명을 거들어주었다.

“수많은 신선들이 백해를 뚫으려 했다가 소멸되었고, 거기에다가 백해의 물 밑에는 야마타노오로치라는 마왕급의 마물이 지키고 있다는 게 문제잖아?”

[…… 맞아.]

그러고 보니 동방삭은 수만 년 동안 이 세계에 살았으니까 스사노오의 이계에 대해서는 도리어 나보다 더 잘 알겠구만…….

내가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자 동방삭이 말했다.

“백웅. 솔직히 탁록시대의 너는 전 우주에서 손꼽힐만한 강함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신력을 별로 못 쓰는 것 같아. 그래서 그런 너를 위해서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

[뭐? 어떤 선물?]

휘익!

잠시 후 동방삭이 자신의 근처에서 아공간을 열어서 내게 무언가를 던져주었고, 나는 탁 하고 바로 낚아채었다.

[…… 이건……!!]

내 눈빛이 흔들리자 동방삭은 씩 웃었다.

“당연히 힘이 딸리면 도구를 써야지. 그게 인간이잖아?”

동방삭이 내게 던져준 것은 바로 창(槍)!!

그것도 어마어마한 기백과 강대한 기풍을 지니고 있는, 내가 본 것 중에서 세계최고라 단언할 수 있는 절세 명창(絶世名槍)!

나는 이 창을 이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경악하며 외쳤다.

[오, 오딘의 창…… 궁니르!!]

“어?!”

도리어 동방삭이 약간 놀란 듯했다. 그녀는 약간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설명해주려 했는데 이미 알고 있다니…… 전생하면서 궁니르 본 적 있어?”

[…….]

나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설마 이 현실세계에서 동방삭이 내게 이걸 줄 줄이야!

‘수련세계에서 이강룡의 인도에 따라 찾아갔던 번개의 호수…… 그 호수바닥에 있던 신급무기 궁니르를 내가 무척 탐냈었는데…… 이런 곳에서 보게되다니.’

언제고 다음에 궁니르의 비밀을 알아내려 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궁니르를 다시 마주할 줄은 몰랐다!

나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수련세계에서 본 적 있어. 번개호수에 봉인되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흐응, 전생자라는 건 별의별 짓을 다 하고 다니는군. 나는 고대신들이 겨우 수습한 이 궁니르를 얻기 위해서 꽤 노력을 했는데 말야.”

샘난다는 듯 중얼거리던 동방삭이 이윽고 밝게 말했다.

“그럼 궁니르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미 알겠군. 잘 써봐.”

[…….]

“고대신들의 힘이 깃들어서 제어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멍하니 있다가 힘주어서 궁니르를 꾸욱 하고 잡아챘다.

[물론!!]

지난번에는 왠지 창 자체가 나를 거부하는 기운을 풍겨서 제대로 쓰기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최강의 무기에게 인정받는 것은 그 자체로 무사의 꿈이었기에 나는 내심 투지를 불태웠다.

그러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준비는 끝났나? 그럼 먼저 가서 다 죽이겠다.]

후와아악……!!

테스카틀리포카의 한마디와 함께 그의 몸이 급격히 커지더니 이윽고 백해의 하늘을 가를 정도로 거대한 날개 달린 뱀이 되어 비상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날아가자 동방삭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마왕 야마타노오로치가 나타난다!!”

푸확!!

아니나 다를까, 테스카틀리포카의 동체를 노리고 백해의 바다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뱀이었고, 바다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해 보였다. 무려 여덟 개의 머리가 한 번에 튀어나와서 테스카틀리포카를 공격하는 것이다!

콰드득

잠시 후 야마타노오로치의 머리 중 세 개가 테스카틀리포카의 몸뚱이를 물어뜯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에서 보고 있던 나는 경악했다.

[아니!! 설마……!!]

너무 쎄게 물린 거 같은데 설마 당하는 건가?!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는 게 잠시 후 증명되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경멸어린 신언(神言)을 내뿜으며 권능을 시전했기 때문이었다.

[하찮은 놈…… 불타죽거라!!]

검은 태양신의 노래(黑陽神之歌)!

테스카틀리포카의 머리 뒤편에서 시꺼먼 암광(暗光)과 함께 흑백이 역전된 듯한 후광(後光)이 떠올랐다. 동시에 테스카틀리포카의 몸 그 자체가 마치 시꺼먼 기운의 덩어리처럼 변모했고, 거기에서 시꺼먼 원구(圓球)가 나타나서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키아아악.]

잠시 후 테스카틀리포카를 물어뜯었던 야마타노오로치의 대가리 중 3개는 단숨에 어둠의 태양에 휘말려서 불타서 바싹 말라 버리고 말았다. 야마타노오로치는 크게 당황한 듯 물러나려 했으나 잠시 후 더욱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투두두두둥

테스카틀리포카의 몸 주변뿐만이 아니라 허공 전체를 가득 메우는 검은 태양! 무려 수백 개나 되는 거대한 검은 태양들이 소환되어 공간을 꽉꽉 채우자 하늘이 뒤덮이는 착각이 들었다. 잠시 후 그 흑양들이 동시에 백해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자 장관이 일어났다.

파스스스

백색의 바다가 단숨에 흑양에 닿인 곳부터 소멸되어 증발했다. 또한 흑양의 기세가 강해질수록 도리어 그 공간에는 어둠의 불꽃이 피어올라서 마치 흑화(黑花)가 만개(滿開)한 듯한 형상이 되었고 끔찍할 정도의 마력(魔力)이 천지간에 넘쳐흐르는 게 느껴졌다.

치지직

잠시 후, 야마타노오로치와 함께 백해(白海) 전체가 탄화(炭化)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을 불태워 버렸는지 지저(地低)에서 용암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는데, 그 용암조차도 테스카틀리포카가 불러낸 검은 태양의 기운에 닿자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

삼황(三皇) 신농이 본체를 드러냈을 때만큼 압도적인 화염……!!

나는 테스카틀리포카가 불러낸 검은 태양의 힘이 가공할만하다는 걸 깨닫고는 나도 모르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지? 나하고 싸울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내가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동방삭이 중얼거렸다.

“야마타노오로치는 틀림없이 달기에 버금가는 최상급 마왕(魔王)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런 놈을 벌레처럼 죽일 수 있을 줄이야…… 엄청난 걸 불러왔구나, 백웅.”

[…….]

쉬익

테스카틀리포카가 다시 날아서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그는 분명히 수평선 너머에 있던 청월(靑月)을 목표로 삼고 있었고 틀림없이 거기에 목표인 스사노오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던 동방삭이 말했다.

“오트클레르를 써서 이동하자. 저 흑염에 닿으면 너라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그래.]

쩌엉!

동방삭이 서방명검 오트클레르의 권능을 써서 다시 이질적인 공간으로 모두를 이동시켰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어둠의 태양에 닿으면 이 자리에서 무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트클레르를 든 채 걷고 있던 동방삭이 말했다.

“당초 네 책사들과 논하던 계획은 네게 신앙의 힘으로 신력을 더 쌓게 해서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권능을 이용해서 손쉽게 야마타노 오로치를 해치우는 거였어.”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나?]

“그래. 하지만 지금 보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테스카틀리포카 자체가 검은 태양신이라서 어차피 극성인 태양 속성이긴 하네. 설마 계산하고 소환한 거야?”

[…… 그럴 리가.]

아무 생각 없이 제일 쎈 놈 소환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 뭐…….

차마 뒷말을 내뱉을 수가 없어서 꿍얼거리고 있자 동방삭이 씩 웃었다.

“참 신기한 일이지. 온갖 똑똑한 인간들이 모여서 책략을 짜는 것보다 네 생각 없는 행동이 훨씬 더 정답에 가깝다니…….”

[칭찬이냐 욕이냐?]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우둔한 것도 때로는 득이 되는 걸지도?”

그렇게 대꾸하던 동방삭이 멈춰 섰다.

[왜 그래?]

“앞에서 전투가 시작되었어. 아마도 차원 너머에서 스사노오의 본체와 테스카틀리포카가 싸우기 시작한 것 같군.”

[……!!]

시작된 건가!

“그리고 우리도 슬슬 싸워야겠는 걸.”

스스스스…….

갑자기 총천연빛의 오트클레르 내부공간 여기저기에서 기이한 존재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단숨에 포위한 약 십여 개체의 ‘적’들을 본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시키가미(式神)?]

종이로 이루어진 저 몸뚱이는 동영의 음양사들이 주로 쓰는 술법인 시키가미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저 시키가미의 종이몸뚱이 여기저기에서 흉측한 촉수들이 튀어나와서 꿈틀거리고 있으며, 심지어 저 시키가미는 생김새가 인간과 무척 흡사하게 생겼다는 점이었다.

‘상당한 마력을 갖고 있군…….’

심지어 웬만한 대요괴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내재하고 있는 것 같아서 생긴 것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될 상대처럼 보였다. 그러자 조디악 멤버들이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후열에 있던 파우스트가 입을 열었다.

“저것들은 공생자(共生者)로군.”

[공생자?]

파우스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연구하던 분야요. 인간에게 인위적으로 마(魔)를 이식해서 능력을 강화하는 융합체, 그것이 공생자요. 저자들도 마찬가지로 몸 내부에 마를 받아들여서 융합한 것이오.”

[…… 잠깐…… 저것들, 그냥 마물이 아니라는 거요? 설마.]

“인간이오. 단 식신의 몸뚱이에 인간의 육체를 융합시키고 거기에 또다시 마를 융합했으니 3단 융합체로군.”

[……!!]

나는 촉수들이 꾸물거리며 인간의 얼굴을 따라 하는 형태를 보자 역겨움이 단숨에 치솟아 올랐다. 파우스트의 말을 듣자 눈앞의 괴물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동영의 음양사…… 세이메이 일족이 스사노오의 마력 때문에 저 꼴이 되어 버렸군.]

동영이 난장판이 되면서 수많은 음양사들이 죽었다고 알려졌는데 아무래도 스사노오의 마력이 그 음양사들의 시체를 끌어와서 죽어서도 자신을 위해 싸우게 하는 병졸로 만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저들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흉측한 촉수의 마물이 된 것이리라.

우두두둑!

파우스트가 자신의 몸을 변화시키며 말했다.

“나는 공생자이면서 공생자의 천적인 이율배반자(antinomie)이니 일격에 놈들을 소멸시킬 수 있소. 허나 그렇지 않다면 저자들은 세포 한 조각이 살아 있는 한 재생하니 조심하시오.”

슈욱

콰지직!

파우스트가 일전에 보았던 기이한 괴물의 형태로 변신해서 늑대인간처럼 거대한 손으로 근처에 있던 괴물 한 마리의 머리통을 터뜨리자, 괴물은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소멸하기 시작했다.

확실한 천적으로서의 힘!

나는 그런 파우스트의 위력을 보자 내심 생각했다.

‘과학자 파우스트는 [옛 지배자]의 마(魔)를 연구해서 대항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던 거군. 동시에 마와 융합한 존재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까지도…….’

이제야 파우스트의 절대지경에 준하던 과거 강함에 대한 비밀이 풀린 느낌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서 왕도 엑스칼리버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베루스도 인(印)을 맺으며 전투를 개시했다.

크아아아!!

사방에서 촉수 시키가미들이 잔뜩 덮쳐오는 상황! 처음에는 열 몇 마리밖에 없었던 괴물들이 점차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고, 동방삭은 오트클레르를 날려 이기어검으로 단숨에 몇 마리를 해치웠다.

촤좌좍

동방삭이 마음에 안 드는 듯 푸념을 했다.

“하아, 마도구의 내부공간까지 인위적으로 적을 침투시킬 수 있다니…… 누군가의 악의가 느껴지는데?”

카가강! 카강!

나는 궁니르를 휘둘러 사방에서 덮쳐오는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하나하나가 초절정고수라도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육체적 위력을 지니고 있었고 심지어 방금 동방삭에게 쓰러졌던 적들도 금세 재생해서 일어나려는 게 보였다. 원래라면 굉장한 난관이겠지만 나는 도리어 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지……?’

수련세계에서 잡았을 때와 비교하면 저항이 별로 없다!!

그때는 마치 기를 쓰고 나를 밀어내려고 하는 궁니르의 격렬한 저항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리 호응해주진 않으나 그렇게 반발하지도 않는 무난한 느낌이었다. 마치 이강룡이 쓸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기에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때와 지금은 궁니르의 반응이 다른 것일까?

왜 신력도 없는 지금 상태에서 더더욱 궁니르가 호의적인 거지?

‘흠. 그렇다 해도 궁니르가 날 주인으로 인정해 준 건 아냐…… 그냥 평범하게 쓸 수밖에 없군.’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이 정도의 신병(神柄)이라면 반발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정도다!

찰(札)!!

퍼버벙

나는 단숨에 찰의 찌르기를 뿜어내어서 일 초에 여러 방위를 찔렀다. 단숨에 오십 방위 이상을 찌르자 수십 마리가 우르르 쓰러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고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환초식으로 달려들어서 다섯 마리를 단숨에 이기어창(以氣御槍)으로 꼬치처럼 꿰뚫어 버렸다.

나는 이기어창을 회수하며 창을 빠르게 회전시켰고 괴물들이 산산조각 나서 털렸다.

후두둑

터업 하고 손끝에 달라붙는 이 창의 감각! 역시 신의 창답게 휘두를 때마다 느껴지는 게 보통 창과는 정말 달랐다. 무기 자체의 위력에 이토록 취해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좋았어…… 이 정도면 궁니르도 쓸 만해!

내가 내심 신바람이 나고 있을 때 동방삭이 불쑥 말했다.

“스사노오한테 테스카틀리포카가 치명상을 입힌 것 같네. 설마 이렇게 빨리 결판을 낼 줄은 몰랐는데, 역시 태양신의 속성을 가진 테스카틀리포카가 훨씬 우위였던 모양이야.”

궁니르로 신나게 괴물 세 마리의 목을 단숨에 쳐서 날리고 있던 나는 그 말에 동방삭을 뒤돌아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고대신의 사도로서 신각(神覺)이 있으니까. 좀 더 놀아줘도 좋겠지만 슬슬 우리도 정리하고 이동하자.”

[그렇게 말해도 이거 끝도 없이 쏟아지는데.]

우르르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일행과 함께 백여 마리가 넘는 괴물을 벤 것 같지만 그게 빙산의 일각처럼 여겨질 정도로 계속 괴물들이 어딘가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수백 마리가 넘는 숫자라서 이걸 처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동방삭이 자신의 이마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는 은빛 안광을 빛내기 시작했다.

“고대신 아누비스의 천칭이여…… 부정한 죽음을 심판하라!”

지잉!

다음 순간 모든 마물들의 머리 위에 희미한 천칭 모양의 환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저울이 일제히 한쪽으로 기울어 버리는 순간, 장내에 있던 모든 마물들이 말 그대로 모래처럼 폭삭 주저앉아서 소멸하고 말았다.

쏴아아…….

수백 마리의 마물들이 단숨에 전멸하고 모래 흐르는 소리밖에 남지 않자 나는 기가 막혀서 말했다.

[뭐야?! 이렇게 쉽게 해치우다니…….]

“원래 고대신의 힘은 [옛 지배자]의 마력에 오염된 존재에 상극이야. 무림인처럼 무식하게 때려잡는 것보다 백 배는 편하지.”

[…….]

“특히 멤피스 계열은 하위 융합체를 즉사시키기 쉽거든.”

나는 동방삭의 힘을 내심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라신선의 술법이라 하더라도 이토록 쉽게 저 마물들을 잡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물들의 내면에 대요괴를 뛰어넘는 마력이 가득 차 있어서 술법저항력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걸 가볍게 무시하고 마물들을 일 거에 소멸시켰다는 건 동방삭이 쓸 수 있는 고대신의 권능이 대라신선을 초월했다는 뜻이었다.

[에잉.]

“아하하. 궁니르 더 써보고 싶었는데 아쉽지?”

[…….]

괜히 언짢아하던 내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뻘쭘하게 시선을 돌리자 동방삭이 웃었다.

“걱정 마. 아무래도 우리가 테스카틀리포카를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으니까 지금부터 신나게 싸울 것 같네.”

[뭐? 또 무슨 일이 생긴 거냐?]

“일단 가봐야 알 것 같아.”

슈욱

우리가 오트클레르의 공간을 나와서 청월(靑月)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쿠구구구……!!

청월이 고고하게 하늘에 떠있는 가운데 거대한 날개 달린 뱀, 테스카틀리포카가 천공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전신이 너덜너덜해진 스사노오의 본체가 있었는데, 나는 그 스사노오의 본체를 보고는 흠칫하고 말았다.

‘아니!’

저게 정말 스사노오란 말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사노오의 몸에는 온갖 종류의 신력들이 잡탕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본디 스사노오는 자기자신의 신력을 굳세게 연마하는 무투파였는데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온갖 신력이 스사노오의 몸에 달라붙어 있어서 흉악한 뿔과 촉수를 내뿜고 있었다. 또한 스사노오의 두 눈 또한 텅 비어서 시꺼먼 눈두덩만 남아 있었기에, 나는 스사노오가 누군가에게 눈을 뽑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어어어…….

스사노오는 기이한 신음을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스사노오의 입 안쪽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걸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혀도 뽑힌 것 같군.’

누가 저토록 잔인한 짓을 했단 말인가?

테스카틀리포카는 그냥 상대를 태워죽일 뿐이니 일부러 저러지는 않았으리라. 게다가 눈과 혀는 오래된 상처라는 게 느껴졌다.

그어어어어……!!

스사노오는 그 모습에 한 치의 이성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며 이미 검은 태양신에게 잔뜩 당한 듯 전신에 일그러진 화상이 가득했다. 손끝과 발끝이 몽땅 불타있어서 치명상이라는 걸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승부는 이미 난 것 같은데도 테스카틀리포카는 스사노오를 끝장내지 못하고 허공을 빙빙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저러지?’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테스카틀리포카가 내게 신언을 말했다.

[백웅이여…… 저놈은 왜 태워도 태워도 부활하는 것이냐?]

[뭐라고?]

[벌써 여덟 번은 넘게 태웠다…… 허나 계속 부활하고 있으니…… 그리고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칼날이 왠지 위험하게 느껴지는구나.]

[…….]

저 말대로라면 테스카틀리포카와 스사노오의 실력 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스사노오의 힘으로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손끝도 댈 수 없을 정도였으며 반대로 이성이 건재한 채 스사노오가 온갖 전략을 짜서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덤벼들어야 정상인 실력 차일 것이리라. 심지어 이성도 없는 상태이니 테스카틀리포카는 진작 스사노오를 결단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테스카틀리포카의 말대로라면 스사노오는 무한히 부활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테스카틀리포카는 스사노오의 몸에서 돋아 있는 기이한 칼날을 위협적으로 느끼는 모양이었다.

‘어깨…… 등골…… 무릎 같은 곳에 튀어나와 있는 저 칼날……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나는 칼날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잠시 후 뭔가를 깨달았다.

[…… 아.]

[놈의 비밀을 알아내었는가?]

나는 잠시 후 침음성을 흘리며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에 대답했다.

[저건 토츠카노츠루기(十握劍). 삼귀자 스사노오의 전용무기다.]

스사노오가 소유했던 전설상의 신검이자 동영 최강의 검, 토츠카노츠루기.

누군가가 스사노오의 눈과 혀를 뽑고 그의 무기를 육체와 융합시켜 버린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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