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9권 16화
뭐라고? 10년내에 3회 전생?!
나는 그 말에 당황해서 외쳤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뭐라고 쓰여 있는가? 내 눈에는 외계어로밖에 안 보이는군.”
역시 그런가?
나는 옆에 다가온 이강룡에게 천암비서에 적혀 있는 걸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강룡은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10년 내에 빨리 죽으라는 말이군? 전생한다는 건 결국 죽어야 한단 말이 아닌가.”
“……그렇소.”
“재미있군. 마치 전생을 하라고 독촉하는 것 같아…… 수련세계 1000년 연장은 좋기는 하지만 그저 미끼일 가능성이 크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이강룡이 나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까짓거 그냥 적당한 때 죽어 버리면 어떤가?”
나는 난데없는 이강룡의 말에 깜짝 놀라서 버럭 외쳤다.
“뭐라고? 무슨 말을 그렇게 막 하는 거요.”
“막 하다니. 자네의 과거사를 거진 다 들은 입장에서 자네가 지금 꼭 해야 할 만한 일도 딱히 없어 보이네만…… 반대로 전생해서는 안 될 이유 같은 게 있나?”
“최소한 현세로 되돌아가서 연기(緣起)를 잇고, 동영 삼대신 스사노오의 비밀을 알아내야 하오. 그자가 사신으로 타락한 이유를 알아내야 앞으로 유리하오."
그러자 이강룡은 어리둥절해했다.
“허어, 그거 꼭 해야 하나?”
“무슨 말이오.”
“나 같은 필멸자 입장에서는 스사노오의 비밀 같은 게 큰 가치가 있지만 이미 자네는 그것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일을 많이 겪었잖은가? 그깟거 그냥 다음 생에 해결해도 될 것 같은데…….”
“…….”
“내가 틀린 말을 했나?”
그렇지 않다.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서 우물쭈물했다.
이강룡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의 현재 상황을 들으며 내가 느낀 게 무엇인 줄 아는가? 막연히 목적도 없이 눈앞에 생겨난 상황에 따라 일단 힘만 비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네. 사실 세피로트든 천화든 그만큼 강대한 신력을 지닌 자네에게는 크게 필요가 없을 힘인데도 지나치게 열중하는 것이 꺼림칙했어.”
“…….”
이강룡이 눈을 빛냈다.
“문제의 본질을 짚어보세. 자네가 왜 그렇게 열심히 힘을 쌓는지 내게 알려줄 수 있겠는가.”
“음…… 그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현세의 망량을 구하기 위해 아난을 쓰러뜨려야 하기 때문이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이 강한 자일뿐더러 신력이 통하지 않아서 신력 외의 다른 힘도 필요하오.”
“그 얘기는 들었네. 그런데 전생하면 무슨 상관인가? 망량이 저주를 받았든 말든 없던 일이 될 텐데 굳이 자네가 계속 이 삶을 이어나가려 집착하는 게 오히려 망량을 괴롭게 하는 거 아니겠나.”
“…….”
“뭐 그에게 다시 찾아가서 도전하는 건 무인의 자존심이 걸렸으니 그건 그렇다 치지. 그런데 다음 생을 시작하자마자 빨리 찾아가서 아난에게 도전하면 약속을 깬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그렇긴 한데…….
나는 말문이 막혔다가 또 다른 변명을 내세웠다.
“그것도 그렇고…… 삿갓의 무사가 내 전생을 끝장내버리려고 하는 중이오. 놈은 어쩌면 나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 최대한 경계하고 있소.”
이거야말로 커다란 이유라 할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적 중에서도 가장 찝찝하고 무서운 놈이 바로 그 삿갓의 무사인 것이다.
“거기에 대항하려고 전륜성왕에게 절연(絶緣)의 능력을 배우지 않았나? 그것도 이제 더 이상의 가르침보다는 스스로의 심득(心得)이 필요한 영역이니, 시간만 때워도 의미는 없겠군.”
“…….”
“도리어 다음 생으로 가서 그 업륜(業輪)이라는 걸 돌리는 게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네.”
“그, 그것도 그렇고 다음 생부터 흉신이 날뛰었을 때 대적할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오.”
“그렇군. 그런 얘기도 전에 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흉신이 안 날뛸 수도 있지 않은가?”
“…….”
“엄밀히 따져서 자네와 휴전협정을 맺은 게 풀린다 해서 바로 공격한다는 보장은 없지. 여태까지도 가만히 있었는데 자네가 먼저 찾아간 것뿐이지 않은가.”
“그건 내 희망사항이오. 게다가 이번에 휴전협정이 풀리면 나는 흉신에게 또 제약을 걸 수가 없게 되오.”
내 대답에 이강룡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하는군. 자네가 흉신을 너무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뭐라고?”
“다른 [옛 지배자]를 상대로는 극히 태연한 자가 왜 흉신을 대할 때만 객관적이지 못한지 모르겠어. 그가 그렇게 두려운가?”
나는 이강룡의 말에 잠시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소.”
이강룡의 말대로였다. 나는 흉신이 두려웠다.
‘원래 30번째 전생 초반만 해도 이렇게 두렵진 않았지만…… 지금은 달라.’
외우주에서 황제를 비롯한 만신전의 수많은 신격들을 말 그대로 학살하던 그 압도적인 무력(武力)!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전생자인 내 우위를 따라잡을 수도 있는 무량(無量)의 시공간을 다루는 능력!
휴전협정을 임의로 파기해서 나를 공격해 오던 흉신의 행태를 보면 내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약이 걸려 있어도 저따위로 구는데 제약이 풀리면 얼마나 깡패처럼 굴지 상상도 가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별생각이 없다가, 상대의 강대함을 알게 되면서 더더욱 공포심이 강해진다.
흉신이야말로 내게 있어서는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었다.
“흐음…….”
이강룡은 내 솔직한 대답에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가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건 흉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흉신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소리요.”
“말 그대로일세. 흉신은 언젠가 쓰러뜨려야 할 상대이지만 직접 상대한다기에는 그자가 너무 의뭉스러운데다 도리어 자네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느낌이 강하군. 이런 류의 상대를 자네가 쓸데없이 건드리는 게 도리어 우책(愚策)일 걸세.”
“……!!”
“아난 또한 마찬가지일세. 우연적으로 맞닥뜨린 강적이지만 사실 그자는 굳이 찾아내지 않으면 자네를 해하러 직접 찾아올 존재도 아니지 않은가? 흉신이든 아난이든 자네를 선공(先攻)할 존재가 아니야. 그러나 자네를 선공할 존재는 따로 있지.”
“그게 누구요?”
“이미 알지 않나? 자네의 미래를 예지하려는 존재…….”
“…….”
나는 이강룡의 말에 침묵했다. 마음 한편에서 제일 껄끄럽게 생각하던 걸 짚어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의 말에 반발했다.
“유소 그놈도 내 적이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놈은 결코 흉신이나 아난처럼 강대하지 않소. 그놈이 내 앞에 나타난다 해도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 있소!”
이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확신이었다. 아무리 유소가 전지능력자라 하더라도 내가 여태까지 쌓은 힘을 그리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원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강룡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역시 너무 얕보고 있군. 유소가 자네 앞에 나타난다면 단매에 때려죽일 수 있겠지만 정작 자네는 유소가 어딨는지 모르잖은가.”
“…….”
“모습을 감추고 흉계를 꾸미는 전지능력자…… 그것도 자네를 이용하려 든다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보네만.”
“그, 그렇다 해도 유소 녀석도 내가 전생하면 어쩔 수 없는 건 마찬가지잖소.”
“그래. 어쩌면 그게 유소가 자네를 바로 공격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이유일 수도 있네.”
“무슨 말이오?”
내 반문에 이강룡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는 지혜만을 가지고 있는 유소를 크게 두렵게 생각지 않고 절대강자인 흉신과 아난만을 의식해서 힘을 키우고 있네. 단순한 힘 대 힘의 대결이 될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야. 허나 유소는 그런 자네의 방심을 틈타 자신의 힘을 키우고, 자네가 힘을 쌓는 것을 즐기게 만들어서 이번 30회차 전생을 오래가게끔 유도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
“이번 생에서 유소를 감당 못 하겠다 생각하면 자네는 재빨리 전생해 버릴 테니까 자네가 최대한 자신을 얕보는 게 유소에게 있어서는 더욱 좋은 걸세. 그래야 자네가 별 대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국면까지 전생을 유지하려 들 게 아닌가.”
그,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이강룡의 관점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기에 나는 멍한 기분이 들었다. 유소 자체를 크게 신경 안 썼던 탓도 있지만 이미 내 생각과 행동이 유소에게 유도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후 핫하고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그, 그건 유소 녀석이 힘을 쌓을 대로 쌓은 나를 상대로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계책 아니오? 그놈은 그만한 자신감이 있단 말인가?”
“알 수 없네. 허나 그자가 진정으로 전지의 능력을 쓸 수 있다면…… 그럴 방법 또한 [알고 있겠지]. 그런 능력이니까.”
“…….”
“무엇보다도 자네 말대로라면 유소는 이미 [큰 굴레]를 넘어서까지 예지할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네. 어떤 의미에서는 황제 공손헌원의 인과율 계산조차도 넘어선 능력이지. 나는 도리어 유소를 그렇게 얕잡아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일세…… 아마 자네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모종의 수단을 갖고 있을 게 분명하네.”
“그 정도란 말이오……?”
“그래. 적어도 내 눈에는 그자를 두려워해서 전생해도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판단될 정도일세. 전지능력자가 함정을 깔아놓을 대로 깔아놓은 판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단 나을걸세.”
“…….”
이 정도면 유소의 위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환웅도 그렇고 이강룡도 그렇고 다들 유소가 심상찮은 존재이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심쩍어서 한 마디를 추가했다.
“이환웅도 그렇고 유망도 그렇고 유소가 위협적이긴 해도 내가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하긴 했소만...”
“그 말의 뜻을 여태 모르고 있었던 건가? 유소가 아무리 날고기어도 결국 자네 스스로가 유소를 거부하면 그 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야. 의지가 살아있는 한 자네가 절대 패배하지는 않는거지.”
“아!”
그런 뜻이었구나!
내가 뒤늦게 깨닫자 이강룡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나 그것은 너무 낙관적인 관측일 수 있네. 정녕 전지능력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면 자네의 의지와는 별개로 세상에서 가장 흉험하고 치명적인 함정을 팔 수도 있기 때문이지.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할까?”
“음... 그것도 그렇군.”
“내가 자네에게 원칙을 제시해 주지.”
“원칙?”
이강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첫째. [힘]이든 [지식]이든 더 이상 이번 생에 아쉬워할 것은 없다…… 둘째. 힘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타인이 자네를 조종하기 쉽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두 가지만 기억해두게.”
“너무 쉽게 단정 짓는군. 나는 아직도 힘과 지식에 목마른데 말이오.”
내 말을 들은 이강룡이 눈을 감은 채 널찍한 바위에 몸을 뉘였다.
“왜 그리도 목마른가? 정작 자네의 도움으로 부활하여 앞으로 몇 년 살지도 모르는 촛불 같은 인생인 나는 앞날에 두려움도 갈망도 없다네. 도리어 무한에 가까운 시간과 기회를 가진 자네가 좌불안석으로 떨고 있으니 이 어찌 우습지 아니한가.”
“……!!”
“자네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지? 살아가는 이유보다도 그걸 먼저 생각하면 좋겠네.”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나는 그 말에 뭔가 지금까지 목에서 맴돌던 불쾌한 갈증이 갑자기 조금 해갈되는 게 느껴졌다. 이강룡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왜 이리 불안하고 초조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모르게 또다시 상황에 휘둘리고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이번 생 초반에는 그저 편하고 즐겁게 사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된 거지?
…… 지금 이런 내 모습이야말로 가장 싫어했던 게 아닌가?
여유를 갖고 싶어서 모든 걸 던져 버렸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또다시 삶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이 모순 -
나는 그 모순을 깨닫고는 갑자기 모든 게 환멸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정말 어리석구나.
욕심이 없는 척하면서 삶에서 바라는 게 너무 많구나!
‘벗어나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 순간, 나는 왜인지 몰라도 부처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떠오름을 느꼈다. 후광을 비치며 좌선명상하고 있는 부처의 모습을 상상하자, 나는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몹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생각했던 부처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부처의 상(像)이 떠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깨달았다.
[굴레]를 벗어난다는 것.
나는 부처가 그 업적을 이룩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마음속에서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부처를 진심으로 부러워하게 된 것이다.
삶의 희로애락애오욕을 던져 버리고 열반(涅槃)에 이른다는 것 -
그 진정한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
[옛 지배자]조차 없는 세계를 안겨주겠다고 했던 천사왕 메타트론의 제안…….
’나는 그 세계에서 산다면 잠시 동안은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료들과의 행복한 삶에 나름대로의 보람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은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끝맺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다.
결국 내가 속해 있는 이 [굴레]에서 도망친 것일 뿐, 굴레 자체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약육강식…… 사신과 종말…… 이 사악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굴레] 그 자체를 깨부술 수 있는 걸까?’
석가모니처럼 법리(法理)를 깨달아서 [큰 굴레] 그 자체의 현현이 되어야 할까?
그러나 그러기에는 부처의 지고지상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보장이 조금도 없다. 백골이 진토되도록 명상하고 또 명상해도 못 얻을 수도 있으리라. 깨달음이란 단순히 시간으로 해결되는 게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었다.
문득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검신(劍神)이라도 되어야 생각해볼 수 있겠소.”
그래, 아마 그럴 것이다.
검의 신이라도 되어야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내 검으로 이 개 같은 운명을, 이 개 같은 세상을 베어 버릴만한 경지가 된다면 어쩌면…….
이강룡이 말했다.
“얻지 못한 것에 집착하지 말게. 그 대신에 자네가 어떤 결말을 바라는지부터 생각하게.”
“결말이라…….”
이강룡이 누워 있던 상태에서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래. 자네가 전생자로서 신적 존재에게 아무리 휘둘린다고 하더라도…… 결말을 정하는 것만큼은 자네만의 권리일세. 여태까지도 계속 그래왔지 않은가?”
“…….”
“이만큼 커다란 판이 벌어졌다면 그에 걸맞는 결말이 필요해. 그래야만 31번째 생부터 자네는 또다시 방황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위해서 올바로 노력을 할 수 있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결말이 필요하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내가 방황하는 세월 100년 치를 줄여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이강룡의 말을 홀린 듯 듣고 있다가 잠시 후 말했다.
“믿기지가 않는군…… 뇌신류에 어찌 당신처럼 올곧은 종사가 있었단 말이오? 이청운도 이광도 성격 참 더러웠는데.”
이강룡의 인성과 품격을 보면 정파의 대종사(大宗師)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뇌신류 출신으로서 이런 존재가 있었다니 전혀 몰랐다.
내가 당황하고 있자 이강룡이 껄껄 웃었다.
“허허. 나도 중원에 있을 때는 성격이 더러웠네. 허나 서방에서 온갖 괴물들을 만나며 힘만으로 안 되는 게 많이 있다는 걸 깨닫고 겸허해졌을 뿐이지.”
“…….”
“뇌신류는 그런 성격인 게 당연하니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네.”
“지금 당신 말 자체가 참 이상하지만 그게 사실이니 뭐라 할 수도 없구려…….”
“아무튼 그래, 생각은 좀 정리되었나?”
이강룡의 반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되었소. 나는 10년내에 무조건 죽어서 전생할 것이오.”
유소라는 놈이 실제로 강대한 위협이라는 걸 납득한 이상 오래 끌 필요가 없다.
놈이 이상한 수작을 부리기 전에 빨리빨리 정리해 버리고 놈의 전지능력을 벗어나 버리는 게 상책!
그리고 수련의 굴레에 매몰되어 있는 것보다 얽혀있는 수많은 사건부터 해결하는 게 도리어 내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오. 마음을 정한 모양이군.”
“생각을 해보니 밀려 있는 일들을 정리한다면 굳이 10년까지 걸리지도 않을 것 같소. 지금 당장 시작하도록 하지.”
“무엇을 먼저 할 생각인가?”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거야 오늘부로 수련세계를 끝내는 것이오.”
“흐음?”
“당신은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 주시오.”
“알았네.”
파앗!!
나는 즉시 신력으로 순간이동해서 이광을 찾아갔다. 이광은 웃통을 벗고 연무장에서 화려하게 창술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내가 찾아오자 인상을 찡그렸다.
“사부. 갑자기 무슨 일이오? 오지 말라고 했을 터인데…….”
“이광. 팔자 좋게 수련이나 하는 건 오늘로 끝이다.”
“……설마.”
“밖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날 따라와라.”
이광은 무척 싫어하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싫소. 내가 무공수련에 이토록 몰입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이전처럼 사부 혼자 나가시오.”
“개소리 하네.”
“뭣이…….”
“내가 가자면 가는 거다. 이얍!”
쉬이이익!!
나는 기합을 내지르며 신력을 써서 시공간을 조작한 뒤 그대로 아공간에 이광을 통째로 집어넣어 버렸다. 신력의 권능이라 그런지 이광은 조금도 반항하지 못하고 갇혀 버렸다. 이광이 과거의 검마처럼 진정한 태허를 깨달았다면 이번 공격에 반항했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태허의 경지와 단순한 무공의 강함은 딱히 비례하는 건 아닌 거군.’
동시에 신력의 사기적인 힘을 새삼 확인하고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신지혼에다가 천화까지 깨달은 이광의 현재 전투력은 웬만한 마왕보다 더 강력할 텐데 그런 놈을 단순히 신력 좀 부려서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니, 신격들 눈에는 필멸자들이 장난감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리라.
‘ 천화를 아직 습득하지 못한 건 아깝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바깥 세상으로 나가서라도 천화는 다시 익힐 수 있다. 천화의 기초가 되었던 천화뇌룡신공을 숙련자의 경지로 익혔으니 향후 전생하면서 다른 동료의 도움으로 다시 수련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쉬익
나는 이광을 봉인한 후 곧장 심수력에게로 향했다. 내가 눈앞에 나타나자 심수력은 침음성을 흘렸다.
“흠…… 이광을 단숨에 제압한 모양이군. 과연 대단한 힘일세.”
나는 의외라서 대꾸했다.
“몇천 리가 넘게 떨어진 거리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오. 당신은 그걸 감지했단 말이오?”
“물론일세…… 이 치우의 심장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은 그 정도는 충분히 된다네.”
“…….”
심수력이 반항한다면 이광 때처럼 쉽게 집어넣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단순히 감이 아니라 실제로 심수력이 지닌 힘의 크기가 어지간한 신격을 초월하고 있었다.
‘지금 심수력이 지닌 힘은 신(神)의 경지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심수력은 나조차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상대일지도 모른다.
설마 수련세계에서 수백 년간 수련만 했던 백련교 고대종사의 힘이 이 정도나 될 줄이야…….
“걱정 말게. 나는 자네에게 순순히 협력할 생각이니 마음대로 하시게.”
심수력이 그렇게 대꾸했지만 나는 뭔가 마뜩잖았다.
“당신은 너무 거대한 힘을 얻었소. 치우의 심장이 아무 대가 없이 그 힘을 빌려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소.”
“허허! 아마 그렇겠지. 허나 이 힘의 끝이 파멸이라 하더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아니겠는가?”
“…….”
“걱정 말고 나를 자네의 도구로 사용하게."
그렇게 말한 심수력이 내게 무릎을 꿇고 백련교의 예법에 따라 절을 했다.
“어차피 자네가 준 목숨. 자네가 어떤 결말을 바라든 간에 나는 백련지종(白蓮之宗)의 뜻을 받들도록 하겠네.”
“……고맙소.”
쉬익!
나는 심수력 또한 아공간에 넣고는 이강룡에게로 되돌아갔다.
“두 명을 모두 봉인했소.”
이강룡은 내 말에 눈에 이채를 띄었다.
“벼락같은 일처리 속도를 보니 진심으로 이곳을 나갈 셈인가 보군. 일부러 이러는 이유를 들을 수 있겠는가?”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3개의 세계를 모두 왔다 갔다 하기에는 너무 헷갈리고 꼬여서 안 되겠소. 어차피 이 세계의 유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냥 비워두는 게 속 편하다 생각해서요.”
“그렇군. 세피로트도 충분한 경지까지 얻었으니 이젠 활약할 일만 남은 건가…….”
나는 이강룡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너무 일이 꼬여 있었으니 쾌도난마(快刀亂魔)처럼 해결할 생각이오. 나와 같이 갑시다.”
“좋지.”
파앗!!
잠시 후 나는 이강룡과 함께 현실세계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이환웅을 찾아가서 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한창 사신지혼을 수련하고 있던 이환웅은 잠시 동안 넋 나간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 잠깐 사이에 또 몇 년 치의 수련을 하고 왔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예측을 못 하겠어.”
“뭐 나쁠 건 없잖아?”
“흐음. 그렇긴 한데…….”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묵혀놨던 일을 빨리 진행해서 10년 내에 전생할 생각이야. 내 계획에 맞춰서 도와줘.”
“……엉? 뜬금없이?”
이환웅은 어이없어했지만 내 심경변화에 대한 얘기를 듣자 납득 하는 듯했다.
“하긴 나도 그 생각은 했어. 전지 능력자가 딴짓 못 하게 그 전에 죽어서 전생하는 게 최선이긴 하지.”
“일단 복잡하지 않게 수련세계는 정리해서 거기서 수련하던 무인들을 데려왔어.”
“좋은 생각이야. 이제 탁록 시대와 미래, 2개만 생각하면 되니 한결 편하겠군."
“이제 뭘 하면 될까?”
“…….”
이환웅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유망 어르신에게 역장류(力場流)를 배우는 게 우선이야. 다만 10년 내에 전생하는 게 목표이니 가능하면 속성으로 배울 방법이 있는지 물어봐야겠군.”
나는 이환웅과 함께 뒷산에서 훈련하고 있던 유망과 청양을 찾아갔다. 그리고 유망은 속성으로 수련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역장류 속성수련? 가능하지! 안 그래도 원한다면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정말입니까?”
“물론…… 다만 재능이 좀 필요하다만.”
그렇게 말한 유망은 자신의 거대한 손바닥을 내밀어서 내 쪽으로 향했다.
“이걸 되치기 해보아라.”
쿠웅!!
갑자기 거대하면서 느릿한 장풍(掌風)이 날아들었다. 나는 그 장풍이 그리 빠르지 않으나 그 장풍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잠재력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
꽈과광
나는 다음 순간 도저히 정면에서 막아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멸혼보로 피해 버리고 말았다. 내가 피해 버리자 유망이 실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뭘 하는 거냐. 피하면 수련이 안 되잖아.”
“미…… 미친 겁니까?”
나는 당황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력의 파장이 대체 몇 개나 되는 겁니까! 그런 걸 정면으로 받으면 무조건 죽는단 말입니다!!”
장풍처럼 생긴 그 신력의 파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신력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도저히 몇 개인지 셀 수조차 없었기에 나는 대항을 포기하고 피한 것이다. 아무리 내가 신력을 끌어내어서 전력을 다해도 방금 전 유망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서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자 유망이 말했다.
“속성수련이니까 위험한 게 당연하지. 내 파장을 맞으면 네가 알아서 그 파장을 해석하고 의념천주를 이용해서 자신의 의념으로 소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력의 파장을 조종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지.”
언뜻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개소리라는 걸 깨달은 나는 버럭했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수련법이 어딨습니까? 일단 맞으면 죽지 않습니까?”
“아슬아슬하게 안 죽어. 내가 그렇게 의념으로 만들어놨거든.”
“…….”
“이 속성수련을 하면 길어도 100년이면 역장류를 터득할 수 있다.”
“속성수련이 100년이 걸린다니…… 제대로 수행하면 몇 년인데요?”
“경험상 5천 년이 조금 넘던데…… 그것도 외계종족이니까 너희 인간은 몇 년 걸릴지 모르겠다.”
그렇게 대꾸한 유망이 청양의 어깨를 두들기며 껄껄 웃었다.
“역장류를 인간한테 가르쳐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청양이 정식수련의 결과를 내게 알려주겠지.”
“…….”
이런 미친…….
‘속성수련을 하면 재능 하나만 믿고 사경을 헤매면서 100년 동안 고통을 겪어야 하고…… 재능도 없으면 그냥 고통스러워하다 죽는 거고…… 정상적으로 수행하면 인간의 경우 몇천 년 이상이 걸린다는 건가?’
무슨 이런 막장스러운 무공이 다 있어!
아니 이게 무공이긴 하냐고!
내가 넋이 나가서 멍청히 있자 옆에 있던 이환웅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백웅. 넌 재능이 없으니까 그냥 역장류 수련은 포기하자. 이건 도저히 10년 내에 못 익혀.”
“아니, 전륜성왕의 권능으로 죽음을 거부하고 끝까지 버티면 될지도…….”
“10년 내에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 게다가 말이 100년이지 1000년씩 죽음의 고통을 겪다가 미쳐 버릴지도? 이런 류의 고통에는 별로 내성이 없잖아?”
“…….”
“그리고 정식수련을 해도 아마 답이 없었겠군. 청양은 태어날 때부터 상단전이 트여 있어서 재능이 극히 천재적인데도 지금 그조차도 역장류의 기초조차 익히지 못했어. 뇌신류의 무공보다 100배는 더 재능을 요구한다.”
“아니 그래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역장류 습득은 너무 아깝다.
우주에서 아마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신력 그 자체를 파장으로 조종하는 무공!
이걸 익힌다면 엄청난 전력의 상승이 일어날 게 분명한데 포기해야 한다는 게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이환웅이 말했다.
“역장류를 다음 생에 익힐 방법은 따로 있으니까 걱정 마.”
어? 그런 방법이 있다고?
내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근처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유망이 씩하고 웃었다.
“크흐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군. 허나 내게 가르침 받지 않는 게 무척 괘씸하니 너희에게 단서를 알려주진 않겠다.”
“너무하시는군요. 전 우주를 다 뒤지란 말씀이십니까?”
“글쎄……? 은근히 숫자가 꽤 되니까 찾기는 어렵지 않을지도.”
“…….”
이환웅은 무척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자.”
유망의 앞에서 물러 나온 이환웅은 잠시 후 외딴 곳에서 내게 말했다.
“역장류를 다음 생에 배우는 방법은 간단해. 또 다시 유망을 찾아내던가, 혹은 백웅 당신의 시대에 존재하고 있을 역장류의 고수를 우주 어딘가에서 찾으면 그만이야.”
“어?! 그게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야. 유망이 ‘인간’을 가르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는 수십억 년 이상 살면서 많은 외계종족과 교류했어. 그동안에 많은 제자를 가르쳐봤을 거고 그중에 역장류를 제대로 배운 자도 있겠지. 즉 유망의 유파, 역장류는 백웅 당신의 시대에도 존재할 테니 그걸 찾아내기만 하면 돼.”
“오오!!”
그런 방법이!!
하지만 나는 문득 뭔가를 알아채곤 말했다.
“잠깐…… 역장류가 전승되지 않으면 어떡하냐?”
“그럼 뭐…… 유망이 그 시대에도 존재하기를 바라고 유망의 존재를 탐색하거나 아니면 영영 포기해야지…….”
“…….”
“물론 이건 차선책의 차선책이야. 아무래도 유망은 당신의 시대에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커 보이거든.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역장류의 실체 자체를 알아내야 하는 거지.”
“뭔가 방법이 있냐?”
이환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당연히 있지. 이번에 현실로 되돌아가면 끝이 아니라 다시 되돌아올 거 아니야? 그럼 정상적으로는 단시간에 못 익히는 역장류를 이번 생에 익힐 수도 있는 꼼수가 있어. 그걸 위해서 우선 백웅 당신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말이야…….”
“뭔데?”
“이제 탁록시대의 활동을 그만두고 [미래]의 현실로 되돌아가는 거야.”
“……?!”
나는 난데없는 이환웅의 말에 황당해서 대꾸했다.
“갑자기 왜 그런 해결책이 되는데? 이 탁록시대에서 더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지 않나?”
이환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할 거 다 하면서 시간을 때우겠지만, 지금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도리어 이쯤에서 현실로 되돌아가는 게 맞아.”
“왜?!”
“그 이유는…….”
나는 이환웅의 설명을 들은 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가 있었다. 그러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 그 말대로 하겠어.”
“좋아. 그럼 이제 되돌아가 보자고.”
파앗
‘아마 되돌아가는 방법은 이전과 같겠지.’
나는 저승세계의 거울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잠시 기다리자, 개구리가 개굴개굴 우는 소리와 함께 나는 아련하게 수면에 빠지게 되었다.
…….
오솔길이다.
운무(雲霧)가 가득한 이 오솔길에 또 왔다는 생각이 들자 감회가 새로웠다. 꽤나 탁록시대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솔길 저편에서 익숙한 흑묘가 출현했다.
[커다란 선택을 마치고 왔구나.]
“…….”
나는 놈을 쳐다보며 대꾸했다.
“나는 메타트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넌 내가 그렇게 선택할 걸 알고 있었던 거냐?”
[네 선택의 결과는 모른다. 그저 선택이 있을 거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그렇게 대답한 흑묘는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 모든 선택은 네 모든 업(業)이다. 그 업보에 관여할 권리는 내게 존재치 않는다.]
“제기랄……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나는 인상을 찡그린 후 투덜거리며 말했다.
“됐고 망량선사!! 연기를 모아왔으니 나를 현실세계에 되돌려놓아 줘. 이만큼 모았으면 된 거 아니냐?”
[연기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면서 얼마나 모았는지는 어찌 아는가?]
“……뭐야, 안 모였다는 거냐?”
[아니. 충분히 많이 모였다.]
“…….”
가만 보면 망량선사 놈도 날 자꾸 놀려먹으려 하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망량선사를 째려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네 말대로 연기를 모아왔는데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그 ‘간섭자’를 상대로 뭔가 유리해진다고 네가 말했었잖아.”
[물론…… 너를 되돌려보냄으로써 현실세계와 탁록의 시대 사이에 ‘연(緣)’이 생겨났다. 그 연이 실처럼 두 세계를 묶게 되었고, 실을 직접 가져온 너에게는 인과(因果)를 조정할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네.”
나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좀 알기 쉽게 설명해달라고 인마!!”
[그래…… 알기 쉽게 설명해 주마.]
이어진 망량선사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굳어 버리고 말았다.
[너는 탁록시대에서 단 한 명을 선택해서 현실세계로 소환할 수 있다. 네가 선택한다면 그자는 잠시 후 오솔길 저편에서 걸어와서 너와 함께 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