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85화 (1,584/1,615)

전생검신 89권 15화

나는 메타트론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자기들의 신을 죽이고 새로운 창조신이 되어달라고?

너무 갑작스러운 데다가 무슨 의도인지도 파악할 수 없는 거창한 이야기였다. 나는 메타트론의 말이 진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해가 잘되지 않아서 그에게 질문했다.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왜 너희의 신을 죽여야 하지? 그리고 너희한테 신이 따로 있다는 거냐?”

[…….]

잠시 침묵하던 메타트론이 불쑥 입을 열었다.

[전생자여. 그대는 이 세피로트의 세계가 어떤 장소라고 생각하는가?]

“어? 어떤 장소냐니…… 세계수와 천사가 있는 세계지.”

[그대의 기준으로 이 세계는 ‘외우주’라는 장소에 속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 음, 그렇지. 아마 그럴 거야.”

나는 메타트론의 말이 두서없게 느껴졌지만 일단 하는 말은 이해가 되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메타트론의 말대로 이 세계수와 천사들이 가득한 세피로트의 세계 또한 일단은 우리의 세계는 아니었으니 ‘바깥’에 존재하는 외우주라고 보는 게 옳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메타트론이 말했다.

[허나 이 세상에 그대의 세계에 창궐한 [옛 지배자]라는 존재는 따로 없다. 그것은 그대가 보아왔던 다른 외우주들과의 차이점일 것이다.]

“……?!”

나는 메타트론의 말에 살짝 놀랐다. 그리고 믿기지 않아서 반문했다.

“진짜냐?! 여긴 [옛 지배자]가 없어?!”

[그렇다.]

“……!!”

생각지도 못했던 차이점!

설마 세피로트의 세계가, 내 모험의 초기부터 바라왔던 그 사악한 마신(魔神)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여기 말고 다른 외우주에도 [옛 지배자]는 무조건 존재했는데…….”

[…….]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하다면 대체 외우주의 달마가 일으킨 진공가향은 뭐가 되는 거냐고!”

내가 당황스러워서 언성을 높이자 메타트론이 잔잔하게 대답했다.

[전생자여. 외우주에도 [옛 지배자]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는가?]

“……? 아니. 왜 존재하는 건데?”

그냥 그러려니 해서 한 번도 의문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메타트론이 하는 말을 듣고 보니 의아했다.

[그들은 마치 겹쳐진 거울에 비쳐 있는 잔영(殘影)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들 자체가 우주가 탄생할 때 만들어진 혼돈에서 파생된 거울조각들…… 우주가 정해진 섭리대로 흘러간다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존재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허나 이 세피로트는 그 필연(必緣)을 거부하며 창조된 신세계(新世界)이다.]

“……!!”

[이 세피로트의 창조신(創造神)이 그렇게 의도하여 처음부터 법칙을 설계했기에 이 세계에는 옥좌의 잔영이 비치지 않는다…….라고 해석해도 좋으리라.]

나는 메타트론의 말이 약간은 어렵게 느껴졌지만 중요한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세피로트의 창조신이 처음부터 [옛 지배자]의 탄생을 막아 버렸다는 것!

나는 그런 게 가능하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메타트론의 말대로라면 이 세계수 세피로트의 세계는 여태껏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떠한 외우주와도 다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뚫어져라 메타트론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 믿기지 않는군. 그 창조신이란 자는 대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 거지? 설마 [아버지]인가?”

내 질문에 메타트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결코 그렇지 아니하다. 창조신 또한 [아버지]에는 미치지 못하지…… 허나 통상적인 신격과 굴레를 초월한 존재임은 확실하다.]

“외신(外神)이라는 거냐?”

[…… 알 수 없다.]

“네가 모시는 직속상관이라면서 왜 몰라?”

[그는 창조를 이룩한 후 단 한 번도 천사에게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철저한 관조자일 뿐…….]

“…….”

뭐, 뭐야…… 이런 이상한 세계를 만들어놓고는 직계권속에게 제대로 의사소통도 안 하는 게 말이 돼?

내가 내심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메타트론의 말이 이어졌다.

[또한 [옛 지배자]의 탄생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인소프 오르(Ain Soph Aur), 무한(無限)의 빛이다. 창조신은 우리 천사들에게 오로지 아인소프 오르를 수호할 의무만을 남겼다.]

“아인소프 오르? 아까 그 엄청난 힘 말이냐.”

[그렇다. 그것은 바로 대우주(大宇宙)가 창조될 때 생겨나는 태초의 빛…… 사실 그대들의 세계에도 존재했던 현상이다.]

“뭐? 우리 세계에도 있었다는 건 지금은 없단 말이냐.”

[아인소프 오르는 [굴레]가 시작되어 우주가 창조되는 아주 짧은 순간에 대우주가 펼쳐질 동력만을 제공하고 소멸된다. 허나 우리의 세계에서는 그 빛을 창조신이 직접 속박하여 세계수와 융합시켰다.]

“……!!”

[우리 세계의 세계수, 세피로트가 전 우주를 떠받칠 만큼 강력한 이유는 바로 아인소프 오르의 힘까지 얻었기 때문이지…….]

나는 메타트론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 너무 규모가 큰 얘기잖아.’

영지주의 마법사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아인소프 오르라는 게 우주탄생의 빛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고!

나는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아, 아무튼 너네 창조신과 아인소프오르가 [옛 지배자]가 안 나타나게 잘 막아낸 거네? 근데 왜 나한테 그 신을 죽이고 새로운 창조신이 되어달라는 거냐?”

[…….]

“딱 봐도 메타트론 너는 나보다 훨씬 강해 보이는데 그냥 네가 직접 쳐죽이지 그래!”

솔직히 내가 신력을 다 쓸 수 있다고 해도 메타트론에게 1초 만에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메타트론은 강해 보였다. 전 우주에서 저놈보다 강한 놈을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힘의 강함과는 별개로 나는 결코 그를 살해할 수 없다. 분노한 사이탄이 하지 못했다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

무슨 말이지?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메타트론이 말했다.

[아마도 창조신을 죽일 수 있는 건…… 아이온 혹은 데미우르고스 뿐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기에 그대에게 의뢰하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아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렇게나 너네의 창조신을 죽이려는 이유가 대체 뭐야?”

[이유 말인가…….]

메타트론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거짓된 세계에 속하는 우리들은…… 결코 [아이온]에 도전할 자격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온?”

[그대들의 세계에서는 승천(昇天)이라 표현하는 것이지…….]

승천!

내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자 메타트론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천사들은 태초의 악이 탄생하는 걸 막음으로써 억겁의 세월 동안 지고(至高)의 선(善)을 숭앙하고 지켜왔다…… 허나 결국 우리는…… 진정한 경쟁에 뛰어드는 기회를 박탈당한 외부자들일 뿐…… 또한 창조신이 바랬던 모형정원을 지키는 개에 불과한 처지…….]

“…….”

메타트론의 눈에서 황금빛의 잔광이 어렸다.

[전생자여…… 그대에게 이 세계를 넘겨주겠다…… 그 대신에 영겁의 관조자라 할 수 있는 이 세계의 창조신을 죽이고…… 우리에게 진정한 [아이온]에 도전할 기회를 다오!]

나는 천사왕 메타트론의 제안이 잘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세계에 대해서 약간은 이해를 한 것 같지만 메타트론 본인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건지 명확히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야 정확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저만한 고위존재가 사실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절대로 판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메타트론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애초에 나는 내 세계에 많은 인연들이 있어서 이런 알지도 못하는 외우주의 신이 될 이유가 없다고!”

[바로 그거다…… 그것이 바로 그대에게 가장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엉? 무슨 소리냐?”

이어진 메타트론의 말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의 창조신이 된다면 그대는 그대의 세계를 그대로 이 세계로 복사해 올 수 있다…… 모든 법칙을 의지하에 두고 그대만의 이상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지…… 당연히 [옛 지배자] 또한 아인소프 오르 때문에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뭐, 뭐라고!”

메타트론은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고 강변했다.

[그대는 정말로 그대의 우주에서 모든 이를 구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그것이 불가능함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대가 지키고 싶은 자들만을 이 세계로 넘어오게 하여 억년의 영광과 평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

나는 천사왕 메타트론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자신했던 대로, 놈의 제안은 내게 엄청난 유혹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나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그것도 [옛 지배자] 따위 존재치 않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건…… 사실은 이상적인 진공가향과 별로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나와 달마가 진공가향을 시도했던 이유도 사실은 전 우주를 제멋대로 주무르는 악신인 [옛 지배자]들의 횡포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기에 이럴 바에는 그냥 다 망해 버리자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주적인 자살이나 다름없는 진공가향을 선택했다고 해서, 우리 필멸자들에게 삶의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상적인 세계의 창조주가 되어서 내 동료와 친구들에게 평화를 줄 수 있다면 사실 더 이상 이 괴로운 전생을 이어나갈 필요도 없지 않은가?

“…….”

전에 없던 유혹에 나는 커다란 갈등을 느꼈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몇 가지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나는 죽겠다…… 죽고 나서 또다시 도전해 주겠다. 세상을 죽여 버릴 때까지!]

[백웅……!! 외신마저 멸할 수 있는…… 진정한 진공가향을 완성시켜 다오!!]

[의(義)란 무엇이죠? 기약 없는 영겁의 싸움 속에서 우주적 존재들의 수 싸움을 이겨내어 [옛 지배자]가 사라진 청정한 세상을 보는 게 정의라고 단정 지을 수 있나요? 그건 당신, 전생자만의 정의예요.]

[당신은 전생 때문에 멸망한 세계까지 구할 방법이 있어?]

수많은 다짐과 이야기들. 그리고 세계의 운명을 가름하는 고민들.

나는 그 말이 뇌내에서 주문처럼 메아리치는 동안에 도리어 정신은 더더욱 청명(淸明)해지고 의지가 견고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한참 후 메타트론의 말에 대답했다.

“메타트론. 내게 생각할 시간을 다오.”

메타트론은 정말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대는 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그럴 리가. 여태껏 들었던 제안 중에 가장 달콤했어. 다만…….”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 나는 아직 나만의 해답을 내지 못했어. 그걸 찾기 전에 너의 제안에 대답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적이든 아군이든 세계의 운명을 걸고 내게 신명(身命)을 맡겨왔다. 그들 모두의 각오는 진짜였으며 자기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기를 원했다.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 서면서 끝까지 떳떳할 수 있으려면, 이런 달콤한 해답에 마냥 모든 것을 맡기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메타트론이 제시한 길이야말로 가장 현명할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그 길을 택하기 위해선 나 자신이 확실하게 결론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왠지…… 나는 왠지 이런 고민을 예전에 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생각해서 헷갈리나……?’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메타트론이 말했다.

[그대에게 세계수의 뿌리인 세쓰를 이식한 존재…… 그 존재가 그대와 내가 만날 인과율의 싹을 틔웠다 할 수 있다. 그 존재는 분명 그대에게 또 다른 선택의 권리를 주고 싶었으리라. 나 또한 그 의지에 호응했을 뿐…….]

“전뇌자…….”

[좋다. 그러면 충분히 고민하고 다시 찾아오도록 하라.]

스스스스스

눈앞의 모든 것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메타트론의 마지막 한마디가 귓전에 남았다.

[그대가 10계에 오르는 그날…… 오늘의 대답을 들려주길 바란다.]

“…….”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수련을 하고 있던 마경(魔境)의 숲에 와 있었다. 세피로트의 시험을 빠져나와서 수련세계로 복귀한 것이다. 나는 방금 전에 메타트론을 만났던 게 틀림없는 현실이라는 걸 인식하면서 생각했다.

“살다 살다 자기네 신을 죽여달라는 놈은 처음 보는군.”

뭔가 좀 생뚱맞아 보였지만 어쩐지 헤르메스나 시몬마구스가 우리 세계로 넘어왔던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천사왕 메타트론의 제안에는 그다지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아마 이번 제안은 순수하게 내 선택에 달렸을 확률이 컸다.

‘놈 또한 내가 기회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어. 그래서 이번 교섭은 대등하다고 볼 수 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메타트론이 내게 대등한 교섭을 추구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자가 전생자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서일 것이리라. 그리고 그만큼 메타트론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우주에 새로운 초강자로서 출현할 확률이 높았다.

과연 그게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나는 내심 한숨을 쉬면서 어깨를 붕붕 돌렸다.

“에라이. 일단은 새로 얻은 세피라의 힘이나 시험해 볼까…….”

나는 이번에 8계 호드를 통과함으로써 8, 9, 10계의 세피라를 얻게 된 셈이었다. 이건 세피로트 마법에서 3계의 경지라고 불렸다.

‘그리고 대마도사 시몬 마구스가 4계, 마법의 신 헤르메스가 5계라는 걸 생각해보면 난 그놈들을 거의 따라잡은 거나 마찬가지야.’

2번만 더 승급하면 마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 또한 강력한 마도사가 된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 번 세피라의 힘을 끌어올려 보았다.

키이이잉 -

“오오!!”

나는 그 순간 내 내면에 있던 세쓰의 줄기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내뿜으며 격동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전에도 세쓰가 급성장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전의 10배 이상의 힘을 잠재하게 된 기분!

‘이걸로 생명력을 연단하면…… 엄청나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뇌룡일기공을 끌어올려서 생명력을 연단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한 번에 맺히는 생명의 기운이 거의 10배 이상인 걸 느끼자 내 감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았어! 바로 4계를 얻는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뇌룡일기공의 대주천을 반복했다.

100번!

…….

1000번!!

…….

3000번!!

5000번!!

“…… 아오 미쳤냐고 제기라아아알!!”

나는 몇 달 내내 계속 앉아서 무한 반복수련을 하다가 염증이 나서 때려쳤다. 이전보다 훨씬 많은 횟수를 반복했는데 왠지 체감상 훨씬 더 요구하는 생명력의 수치가 높아졌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1푼도 안 채워진 느낌이야!! 뭔 놈의 생명력을 이렇게 많이 요구하는 거냐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십 년 동안 좌선명상만 해야 4계에 도달할 수 있을 확률이 컸다. 세쓰의 흡수율이 대량으로 강화되어도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요구량! 도리어 시몬 마구스나 헤르메스가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이런 비효율적인 수단으로는 답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강룡을 찾아갔다.

파앗!!

“잘 지냈소?”

“오, 자네인가.”

나는 이강룡을 만나서는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내 얘기를 한참 듣던 이강룡이 말했다.

“재미있군…… 헌데 10년 동안 좌선명상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인간의 수명 이내가 아닌가? 반복훈련이 고되긴 할 테지만 자네라면 못할 것도 없을 텐데 왜 도중에 포기하고 날 찾아온 거지?”

나는 이강룡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전뇌자가 설정해놓은 수련세계의 시간은 300년이오. 그리고 난 사실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지 못하오.”

“허어, 그랬군. 10년 동안 수련하다가 갑자기 이 세상이 사라져 버리면 곤란하다 이거군.”

“그렇소. 사실 그런 반복수련은 바깥에 나가도 할 수 있잖소? 그래서 좀 더 효율적인 수련을 하고 싶어서 조언을 듣고자 찾아왔소.”

“자네가 수련세계의 지속시간을 늘릴 수는 없나?”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애초에 전뇌자나 메피스토 같은 강인공지능들이 알아서 하던 일이오. 그리고 전뇌자는 천암비서의 심처에 갇혀 있고 메피스토는 소멸되어서 어찌할 방법이 없소.”

내 대답에 이강룡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 그래? 나는 아주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라고? 방법이 있겠소?”

“확실한 건 아닐세. 다만 시도해서 나쁠 건 없겠지.”

이강룡이 말을 이었다.

“결국 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천암비서 덕이잖나? 유지관리야 강인공지능이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그들이 천암비서에게 허락을 받았기에 이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지. 그렇다면 권력의 주체인 천암비서에게 뭔가 대가를 바친다면 쉽게 기간을 연장할 수 있을 듯싶군.”

“……!!”

어?! 그렇네?!

하지만 나는 이강룡의 말에 헛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말했다.

“그, 그럴듯하지만 이놈의 천암비서라는 게 너무 신비한 놈이라서 내 부탁을 들어줄지 아닐지 모르겠소. 그냥 내 말을 무시해 버릴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그래서 시도해서 나쁠 것 없다는 말을 한 것일세. 실패하면 뭐 어쩔 수 없는데 그렇다고 악영향이 있지는 않으니까.”

“흐음.”

“내친 김에 한 번 시도해보지 그러나? 괜히 나중에 깜박하지 말고.”

“알았소.”

나는 천암비서를 꺼내서 책을 향해 소리쳤다.

“천암비서!! 나는 이 수련세계의 시간을 연장하기를 원한다!! 어떤 대가를 원하냐!”

…….

한참동안 잠잠했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없자 머쓱해서 이강룡에게 말했다.

“음…… 역시나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

바로 그때였다.

촤라락 -

갑자기 공중에 천암비서가 붕 뜨더니 내 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천암비서의 장이 넘어가더니 시뻘건 피로 쓰여진 장이 나타났다.

그 곳에 쓰인 혈서(血書)를 읽은 나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

혈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업(業) - 10년 내에 3회 이상 전생(轉生)할 것.

보(報) - 수련세계 1000년 연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