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81화 (1,580/1,615)

전생검신 89권 11화

나는 세쓰의 줄기가 더 굵어진 김에 다시금 뇌룡일기공을 이용해서 대주천을 돌려보았다.

우우우 - !!

“……!!”

원래 모이던 생명력보다 세 배는 더 많이 모이는 거 같은데?!

나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생명력이 연단되는 걸 느끼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거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성과를 얻었군!’

세쓰가 생장한다는 게 이 수련에 있어서는 막대한 의미를 지니는 모양이었다. 설마 전뇌자는 이 모든 것을 미리 계산하고 내게 세쓰를 이식해준 것일까?

‘좋아. 그럼 계속 천 년이라도 좋으니 수련을…… 음?’

나는 신이 나서 뇌룡일기공을 수련하려다가 멈칫했다.

전뇌자를 떠올린 순간 문득 그동안 잊고 있었던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천 년이라도 즐겁게 수련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기에 연동된 의식의 흐름이었다.

[항아가 거짓말했다는 건 사실이야. 원래 이 공간은 기도 의념도 쓸 수 없는 곳이지만, [단말]인 나는 당신이 지불한 대가에 따라서 그 법칙을 바꿀 수 있어. 지금은 세계수의 핵을 제물로 소모하여 그 대가로 이 공간의 시간을 1만배 느리게 만들었지. 기와 의념을 포함해서 모든 능력을 쓸 수 있어.]

[아니. 체감시간으로 300년을 채우면 나가야 해. 말했듯이 [단말]은 중립이기에 당신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호의는 한계가 있어.]

수련세계가 만들어졌던 최초의 시기 - 전뇌자의 그 말이 기억났다.

…….

마, 맞다…….

그동안 생각 없이 수련을 하고 있었기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나는 그제서야 중대한 사실을 실감하고 말았다.

“300년을 다 채우면…… 이 수련세계는 붕괴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소리내어 그 말을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 세계는 전뇌자가 천암비서의 [단말]으로서의 권능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살려서 만들어낸 수련세계! 그러나 전뇌자가 말했듯이 처음부터 이 세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그 수명은 300년이 한계였다. 즉 300년의 유예가 끝나면 좋든 싫든 이 세계가 소멸되며 추방되고 말리라.

여태까지는 이 사실을 그리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300년이라고 하더라도 보통인간의 생애보다 3배는 긴 편이었기에 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리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미 그동안 미뤄뒀던 무공수련을 하며 최소한 200년 이상을 소모한 셈이었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몰아지경에서 미친 듯이 검술만 연마했던 그 시절에 굳이 몇 년이 지났는지 세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이거 잘못했다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수련세계가 없어져서 손해를 볼지도?!

‘음…… 수련세계가 사라진다 해서 내가 죽거나 피해를 입지는 않아…… 그냥 원래 세계로 튕겨나갈 뿐…… 하지만 이렇게 좋은 수련장소를 잃어버린다는 건 꽤나 손해가 아닌가.’

수련세계의 좋은 점은 단순히 조용히 수련을 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외부요인에 신경 쓰지 않고 온갖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심수력이 치우의 심장을 손에 넣은 거나 이광이 이강룡의 유진인 천화뇌룡신공의 비급을 얻은 것도 그러한 것이었고, 이 세계가 몇 번씩 파멸을 맞이해도 재생성된다는 것 또한 바깥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장점이었다. 위험한 수련 또한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매력인데 바깥에서 이랬다가는 당장에 온갖 신적 존재들이 시비를 걸어올 게 뻔한 데다가 윤리적으로도 무척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련세계에 남아 있는 시간동안 최대한 효율을 추구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 생각이 들자 곰곰이 생각에 잠겨서 머리를 굴렸다.

‘흠…… 세피로트의 수행을 좀 더 열심히 해서 짧은 시간에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게 좋겠군.’

보나 마나 계가 오를 때마다 난이도가 급증할 게 뻔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결국 결론은 남겨진 시간 동안에 더 집중해서 좋은 성취를 얻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 세피로트의 수련으로 되돌아가서 생명력을 연단하는 데 집중했다.

우우웅

그렇게 생명력을 정신없이 연단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몰아일체의 상태가 되어 밤낮없이 대주천을 2천여 번 이상 돌리고서야 겨우 3계의 반응이 찾아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미치겠군…… 생명력이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해?’

1계에서 2계로 오를 때 필요했던 생명력도 무척 많았는데 2계에서 3계로 가는데 필요한 생명력은 그 수십 배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생명력이라는 게 무척 관념적인 존재라서 구체적인 비교는 할 수 없어서 체감상으로만 알 수 있었지만, 어쩐지 이 정도의 생명력이라면 지상계에서 얻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앗!!

다시금 세피로트의 세계로 진입하자 내 발밑에 있던 거대한 나무뿌리가 서서히 상승해서 다음 세피라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와 달리 일직선으로 상승하지 않고 나무뿌리가 정중앙에서 꽤나 왼쪽으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저만치 먼 곳에 또 다른 세피라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이런 뜻인가? 내가 [힘]의 가호를 선택함과 동시에 길이 갈라졌구나.’

아마도 저 반대편의 세피라로 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기나긴 과정이 필요할 듯했다. 저 세피라를 얻지 못한다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정해진 길만 잘 가면 크게 손해 볼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우우…….

내가 세피라의 표식에 손을 올리자 환한 빛과 함께 시험의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새하얀 공간에 나타나 있는 또 다른 [천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대천사 라파엘. 세피로트 칠천의 지배자 중 한 명입니다.]

“…….”

[호드(Hod)의 시험을 받으시겠습니까?]

라파엘의 말투는 고즈넉하면서 예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태도와는 달리 라파엘의 모습은 일전에 보았던 가브리엘보다 한층 더 괴물에 가까워서, 나는 저걸 뭐라고 형용해야 할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거대한 여러 쌍의 날개가 달려 있는 것 이외에는 라파엘의 몸뚱이는 완벽하게 이형(異形)이었으며 마치 머나먼 별세계에 거주할 법한 이족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기에 망정이지 저건 그냥 괴물이지 않은가…….’

나는 라파엘의 기묘한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계의 장엄함에 약간 질려서 입을 열었다.

“뭔가 내가 아는 천사와 다르군…… 인간과는 눈곱만큼도 닮지 않았구나.”

그러자 라파엘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대꾸했다.

[인간과 왜 닮아야 합니까? 그들은 우리의 피조물에 불과하거늘.]

“…….”

[하급천사는 인간과 자주 접촉하고 다스려야 하니 유사한 형태이지만 우리는 [지배자]…… 그런 하찮은 존재의 형상을 굳이 따라할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그 말에서 라파엘이 인간세상에서 인식하는 [천사]의 개념과 완전히 다른 존재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라파엘의 말대로라면 고위급 천사일수록 인간의 형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걸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명칭만 천사일 뿐 천사족 출신의 신(神)이라 보는 게 더 알맞으리라.

내가 침묵하자 라파엘이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리 하시기를…… 사실 세피로트가 열린 후 3계에서 벌써 호드에 오는 존재는 당신이 처음입니다.]

“내가 [힘]의 가호를 선택해서 그런가?”

[그렇지요.]

“……잠깐.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왠지 고위계에 가면 다시 하위 세피라로 올 수 있다는 걸로 들리는데?”

내 질문에 라파엘은 미미하게 긍정하는 듯한 파장을 내뿜었다.

[가능한 일입니다. 이전에 얻지 못한 세피라의 힘이 아쉬울 경우 5계 이상에서는 지나쳐온 하위 세피라로 다시 진입하는 게 가능하지요.]

“……!! 정말이냐!”

[네. 하지만 일부러 그러는 자는 드뭅니다.]

“어째서지?”

[더 고위 세피라일수록 더 강력한 권능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차피 고위 세피라에서 더 많은 생명력을 바쳐야 하기에 웬만한 경우에서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

나는 라파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계(界)가 오를 때마다 바쳐야 하는 생명력의 단위가 달라지는데, 아무리 하위계라고 한들 진입을 위해 또다시 생명력을 모아야 하는 것은 부담이었다. 도리어 그런 일을 하는데 쓰는 생명력을 아껴서 더 고위 세피라에 더 빨리 오르는 게 백배 효율적이라는 소리일 것이다.

‘그렇게 치면 3계에서 바로 호드에 오는 게 특이한 일인 건 맞겠군…….’

나는 상황을 얼추 이해하고는 라파엘에게 말했다.

“호드의 시험을 받겠다. 빨리 진행해 줘.”

[그렇습니까……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쿵!!

이전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모래시계가 떨어져 내렸고, 동시에 사방에서 천사들이 나타났다. 총 4명의 천사들이 내 주변을 포위하는 건 같았는데, 나는 그 천사들의 모습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응? 생긴 게 많이 달라…….’

전에 나온 천사들은 비교적 인간형인 데다 완전히 순백의 천사라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나온 천사들은 완전히 시뻘건 중갑(重甲)과 창(槍)을 장비한 본격적인 군인(軍人)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붉은 투구 안에서 넘실거리는 것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순수한 에테르 덩어리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붉은 군인처럼 생긴 천사들을 쳐다보자 라파엘이 그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제 5위계의 역천사(力天使) 버츄즈(Virtues). 그들의 공격에서 이 모래시계의 시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티면 시련을 통과한 것입니다.]

나는 자신이 있었기에 씩 웃었다.

“이전 세피라의 시험과 거의 똑같군. 천사의 위계가 6위계에서 5위계로 한 단계 오른 것뿐이잖아.”

[흐음, 그대는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너무 오만하군요. 경각심을 위해 하나 말씀드리지요.]

라파엘은 내가 천사를 얕보자 불쾌한 듯한 파장을 내뿜으며 말했다.

[6위계의 천사가 10명 있어도 5위계의 버츄즈 하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들은 우리 천사의 세계에서도 꽤 인정받는 자들이라는 걸 알아두시기를…….]

“……호오.”

이전에 싸웠던 6위계보다 10배이상 세다 그 말인가?

나는 그렇다 해도 달라질 게 없었기에 검을 들며 말했다.

“재밌겠네. 시작하자고!”

[그러면 시련을 시작합니다.]

번쩍!!

무량단(無量斷)!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시작하자마자 무량단으로 사방베기를 해서 단숨에 4명의 천사를 베어 버렸다. 어찌 보면 단순히 의념을 실어서 엄청 빠르게 베는 것에 불과했지만 6위계를 일격에 절단 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먹힐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콰과과광!!

하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4명의 역천사 버츄즈들이 거의 동시에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나간 것으로 끝이었다. 버츄즈들은 저마다 바닥에 부딪혀서 비틀거렸고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흠? 확실히 방어력이 대단하군. 저 갑옷, 무척 단단하다…….’

일격에 절단내지 못한 이유는 버츄즈를 베기 전에 갑옷에 가로막혔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무량단을 맞은 붉은 갑옷은 베여서 동강 나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피해가 크게 감소되었는지 버츄즈의 영체(靈體)까지는 일격에 없애지 못한 것이다.

저 갑옷은 틀림없이 백련교주의 호신강기에 준하는 방어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도 첫 공격에 박살 냈으니 다행…… 어?’

그리고 정말 놀랄만한 일은 잠시 후 일어났다.

쿠구구!

버츄즈들은 제각각 손에서 기묘한 주문을 담은 술법을 소환하더니 자신의 갑옷에 갖다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갑옷은 잠시 후 원래대로 수복되었다.

슈슈슉!

“……!!”

뭐야?! 분명히 갑옷만큼은 두동강 내서 못쓰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붙인 거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원래 잘 붙는 재질이냐?”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은 뒤편에서 시련을 지켜보고 있던 라파엘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요. 버츄즈들이 물체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서 갑옷을 고쳤습니다.]

“……뭐?”

[그들은 시간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조심하시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장 전방에 있던 버츄즈가 자신의 창을 고쳐잡더니 내게로 돌격해 왔다.

퓨웅!

‘꽤 빠른 찌르기군. 인간 중에서도 최상위권 고수가 아니면 보지도 못하고 죽을 거야.’

나는 버츄즈의 힘과 속도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신역에 걸친 내 경지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 생각하며 가볍게 [흐름]을 통해 흘려내고 반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흐름]을 타려고 하는 그 순간, 나는 내 몸이 갑자기 멈춰 버리는 걸 느꼈다.

엉?! 뭐야?

퍼엉!!

나는 급히 호신강기를 다 끌어내서 기를 일점집중시켜서 창으로 찌르는 부위를 막아냈다. 그러자 기운의 충돌 때문에 폭발음이 울렸고, 나는 약간 얼얼한 느낌과 함께 창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버츄즈가 도리어 놀랐는지 뒤로 물러서자 나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시간정지 능력까지 있어? 가지가지 하는군…….”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5위계 버츄즈의 능력이 내 기억속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방에 대웅제국이 쳐들어갈 때, 서방에서 인신공양을 이용해서 소환한 세피로트의 천사가 바로 5위계 버츄즈! 그 위력은 막강해서 서문혜가 자신의 능력을 써서야 겨우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상세계에서는 투선에 버금가는 놈들이 분명한 것이다.

‘그렇다는 건…… 3위계 호드의 시험은 투선급 강자 4명에게 합공당하는 셈이란 말인가?’

…… 이거 시험이 너무 어렵지 않아? 4위계나 5위계로 가면 대체 어떤 놈이 나오는 거냐?

나는 내심 어이없음을 느꼈다. 지금 내가 충분히 강하기에 망정이지, 수준이 낮을 때 여기에 도전했다면 손도 발도 못쓰고 탈락했을 수준의 난이도였다.

이것이 세피라의 시험!

내가 약간 당황한 것을 느꼈는지 뒤에 있던 라파엘이 즐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가브리엘 앞에서는 꽤나 호기를 부렸던 모양이더군요.]

“…….”

[그대 정도라면 모래시계가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티는 건 어렵지 않겠지요. 힘내 보십시오.]

약간의 조롱기가 섞인 그 말에 나는 순간 울컥하는 걸 느꼈지만 이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그럴 생각은 없는데?”

슈칵!

나는 다시 한번 무량단을 뿌려서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버츄즈 4명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그러자 라파엘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당신의 그 검술은 대단하지만 버츄즈가 지닌 갑옷은 수만년 동안 힘을 응축한 신물. 결코 버츄즈의 영체까지 한 번에 벨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 말에 굳이 대꾸하진 않았다. 따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역행을 이용해서 자신의 갑옷을 수복하고 있는 버츄즈들을 향해 안광을 번득였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무량단!!

슈콰콰콱

[소용없다니까…….]

무량단!!

[…… 설마…….]

무량단!!

[이런 무식한!!]

무량단!!

이윽고 뒤에서 지켜보던 라파엘이 어이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장내에는 더 이상 버츄즈들이 움직이기는커녕 내가 발현하는 검광(劍光)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퍼버버벅

[끄오오오.]

[크헉…….]

[크어어어!!]

버츄즈들은 비명을 지르며 계속 시간역행의 술법을 걸어서 자신의 갑옷과 영체를 회복시키고 있었지만 나는 쉴 새 없이 검광을 만개(滿開)하며 베었고, 장내에는 번뜩이는 수천 개의 검광이 쉴 새 없이 난무(亂舞)했다.

운무(雲霧)인가 싶더니 이윽고 내 검은 폭포수 같은 물결이 되어서 쏟아졌고 음속을 수십 배나 초월한 속도의 검광(劍光)이 여러 겹으로 불어나면서 영체를 베고 또 베었다.

딱히 이름은 없는 초식 - 그저 무량단을 난무하는 것뿐이기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마구베기] 정도가 적절했다. 사실 이런 마구잡이 초식을 고수들과 싸울 때 쓰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슈카칵

쉴 새 없이 검이 버츄즈들을 난도질하자 놈들은 결국 갑옷을 수복하기를 포기했는지 발악하듯이 시간정지를 쓰기 시작했다.

쩌저정!!

시간정지 때문에 내 움직임이 멈추자 놈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악을 쓰며 동시에 창을 날려왔다. 모르긴 해도 이 창 또한 신물이라서 잘못 맞으면 치명상일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럴 것을 예측하고 있었기에 눈에서 신광을 뿜어내었다.

뇌신검무(雷神劍舞)!

그 순간 뇌혼(雷魂)이 자전(自轉)했다.

번쩍 - !!

다음 순간 번개와 같은 일섬(一閃)이 회전격(廻轉擊)의 형태로 단숨에 네 명의 버츄즈들의 목을 베어 버렸다. 길게 번개의 꼬리가 남아서 타닥거리는 소리가 흘렀고, 나는 한 바퀴 반을 회전하며 그 자리에 검무(劍舞)의 전개를 멈추었다.

투두둑!

버츄즈들은 창을 뻗어오던 그 자세 그대로 멈추었고 놈들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힘을 잃고 천천히 쓰러졌다.

쿠궁

나는 천천히 내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모래가 반의반도 떨어지지 않았군, 라파엘.”

[…….]

라파엘은 경악한 듯 잠시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잠시 후 더듬거리며 말했다.

[방금전 버츄즈들이 펼친 시간 정지의 권능이…… 그대의 몸속에서 회전하는 기이한 기운 때문에 해제되었군요. 그건 대체 어떤 술수입니까?]

나는 그 말에 깔끔하게 대꾸했다.

“구궁파천뢰(九宮破天雷)!”

정확히는 구궁파천뢰를 사신지혼의 요결대로 운행할 때 내 몸속에서 꿈틀대는 뇌혼이 마치 혼백(魂魄)이 감응하듯 움직이는 걸 이용했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이 뇌혼의 힘이 시간정지 같은 사술(邪術)을 깨뜨리는 힘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시간을 억제하는 외부의 힘을 거부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구궁파천뢰의 운기를 이용해서 시간정지에서 벗어난 찰나의 순간, 단숨에 버츄즈들을 쓰러뜨린 것이었다. 놈들이 수비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일격에 죽일 수는 없었겠지만 시간정지를 믿고 공세로 전환했기에 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일격에 끊을만한 맥이 보였던 것이다!

‘물론 혼돈의 신력을 많이 갖고있는 덕에 시간 정지 속에서도 내 의식이 살아 있는 게 많이 유리하게 작용하긴 했지만…….’

어쩐지 이건 동료들에게도 시간 정지를 상대하는 해법으로 전해줄 만할 듯했다.

내 말을 들은 라파엘이 한참 후 경악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과연…… 오만할 만한 자격이 있군요. 그대가 호드의 시련을 통과했음을 인정합니다.]

쿠구구……!!

그의 말이 끝나자 내 앞에는 순백과 순흑의 구체가 떠올랐다. 나는 그 구체를 보자마자 말했다.

“보나 마나 힘과 지혜 중에 고르는 거지? 나는 [힘]을 고르겠어!”

[그렇군요…… 그대는 정녕 누구도 택하지 않았던 힘의 길을 고르는 것입니까…….]

우웅

그러자 순백의 구체가 내 심장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일전에는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순백이 [힘]을 상징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힘의 가호를 흡수하자 라파엘이 뜻밖의 말을 했다.

[위대한 검사여. 그대처럼 단시간에 3계에 도달한 자도 없었으며 [힘]의 가호만 선택한 자도 없었습니다. 이에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응?”

라파엘이 나를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천사왕 메타트론이 그대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저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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