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78화 (1,577/1,615)

전생검신 89권 08화

세라핌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한동안 나를 쏘아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듯이 고개를 저었다.

[셰파(shefa)가 요동치길래 어떤 수행자가 왔나 싶었는데 아주 천방지축이 들어왔구려.]

“셰파?”

[세계를 이루는 운명의 힘이오. 인과율의 흐름이라고 생각하시오.]

“흐음.”

그 말은 눈앞의 세라핌도 인과율을 어느 정도 읽는 능력이 있다는 말인가?

내가 세라핌을 쳐다보자 그가 잠시 후 말했다.

[본디 영혼의 불꽃은 그대에게 스며들어 영혼에 내구도를 강화시킴과 동시에 카발라가 나아갈 길을 자동으로 알려주게끔 되어 있소. 허나 그대가 거부하고 있으니 더 이상 억지로 강요하진 않겠소.]

“엉? 길잡이를 해준다는 거냐?”

[그렇소.]

“…….”

어라…… 저 불꽃을 튕겨내지 말걸 그랬나?

나는 괜히 후회되었지만 동시에 찝찝한 기분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 불꽃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내가 성가신 일을 겪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세라핌이 말했다.

[그렇다 해서 수행자에 대한 인도를 내팽개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대가 원한다면 기초적인 것을 설명해주도록 하겠소.]

“오!! 정말이냐?”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시오.]

나는 세라핌이 생각보다 착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냉큼 질문했다.

“이 세피로트의 수행은 최종적으로 어디까지 가게 되어 있는 거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이걸 모르면 앞으로 수련을 할 수 없다.

[중요한 걸 잘 물어보았소.]

화륵

세라핌은 또아리를 튼 몸을 고쳐앉았고 그의 몸에서 불꽃이 잠시 치솟았다. 제대로 얘기를 하려는 듯 자세를 잡은 세라핌이 입을 열었다.

[세피로트를 이루는 것은 총 10계의 세피라. 카발라의 수행자는 차례대로 단계를 밟아서 10계의 세피라를 모두 얻도록 되어 있으며, 그 경로는 총 22개요. 그리고 당신은 그중에서 최하위 단계라 할 수 있는 세피라인 말쿠트에 와 있소.]

“음…… 10단계 중에서 1단계라 그 말이지?”

[쉽게 말하자면 그렇소.]

“10계의 세피라를 다 얻으면 어떻게 되는데?”

[나도 모르오.]

“……?”

엥?

내가 어이없는 눈으로 세라핌을 쳐다보자, 세라핌은 왠지 웃는 듯한 기색이었다.

[후후. 나를 비롯한 세피로트의 천사(天使)들이 이 카발라의 길을 인도하는 이유는 사실 10계의 세피라를 모두 얻은 존재가 탄생할 수 있을 지를 지켜보기 위해서요. 여태 10계를 모두 지배한 존재는 등장한 적이 없었소.]

“뭐? 하지만 마법사의 신이라는 헤르메스는? 그놈은 마신(魔神)이 되었잖아.”

[헤르메스가 얻은 세피라는 총 5개요. 이를 5계(界)에 도달했다고 표현하지.]

“……!!”

[옛 지배자]에 버금가는 헤르메스가 얻은 세피라가 총 10개 중에 5개밖에 안 된다고?

당연히 10개를 다 얻은 놈일 줄 알았는데!

‘정말로 헤르메스 일파는 그저 세계수의 힘을 연구하는 마도사의 학파일 뿐이었구나! 세계수의 진정한 힘을 얻은 게 아니었어.’

10계 중 절반인 5계에만 도달해도 [옛 지배자]에 준하는 마력을 얻는다는 걸 보면 이 세피로트의 나무에 숨겨진 잠재력은 막강했다. 나는 호기심에 계속 질문했다.

“그…… 시몬 마구스라는 대마도사는?”

[그자는 4계에 도달했소.]

“4계에 도달해도 마신이 될 수 있냐? 그놈의 마력이 하위 마신격이던데.”

[그렇지는 않소. 허나 그 존재는 세피라의 성취를 이용해서 외신에게 귀의했소. 즉 그자의 힘은 외신에게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라서 이 세피라의 비중이 크지 않을 것이오.]

“……그렇군.”

나는 대화하다가 신기해서 세라핌에게 말했다.

“내가 말하는 놈들을 다 알고 있는 걸 보면, 세라핌 너는 카발라에 도전하는 수행자들을 다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소. 그자들이 처음 말쿠트에 도달했을 때 그들에게 영혼의 불꽃을 부여했던 것도 바로 나니까.]

“흠, 그랬구만…… 그럼 세피라의 경지를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대가 했던 것처럼 하면 되오.]

“내가?”

내 반문에 세라핌이 천천히 대꾸했다.

[그대는 세계수 세피로트에 강인한 생명력을 바쳤소. 그대가 이 말쿠트에 도달한 것은 그 공(功)이 인정되어서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세라핌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하고 깨닫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강한 생명력을 많이 바칠수록 높은 세피라에 올라갈 수 있다 그 말이냐?”

[그렇소.]

“결국 이것도 제물을 바치는 거구만!”

나는 투덜거렸다. 뭔가 대단한 수련법인 줄 알았는데 결국 세피로트한테 생명력을 바치면 바칠수록 그 공을 인정받아서 높이 올라가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러자 세라핌이 말했다.

[그런 말 마시오. 전 우주에 세피로트만큼 공정하게 등가교환을 해주는 자는 거의 없으니까. 대부분의 사신(邪神)들이 필멸자를 상대로 얼마나 불공평한 짓을 하는지 알고 있소?]

“……알지.”

나보다 그걸 잘 아는 자는 없을 것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됐어됐어. 근데 그렇게 치면 생명력을 엄청 모아서 세피로트에 바치기만 하면 별다른 깨달음이 없어도 세피라를 오를 수 있다 그 소리야?”

[그 정도로 단순하지는 않소. 만일 그대가 다음 계인 2계에 도달해서 세피라를 택할 경우, 그대는 세피라의 수문장에게 시험을 받게 될 것이오.]

“시험?”

[그대가 지닌 마도의 역량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충분할지를 시험하는 것이지. 물론 세피라를 얻을 정도의 마력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세라핌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정리를 해 보았다.

‘생명력을 모아서 세계수인 세피로트에게 바치면 그 공적만큼 높이를 올려줘서 다음 세피라에 도달하는 구조. 다만 날로 먹지는 못하고 세피라마다 시험을 치러서 통과해야 하는 거군.’

이 정도면 거의 다 이해한 것 같다.

나는 세라핌에게 말했다.

“알았으니까 이제 슬슬 내보내 줘. 어차피 내가 지금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는 이 1계 말쿠트가 한계일 거 아냐?”

[좋소. 그대가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갈지 기대되는군…….]

그렇게 말한 세라핌이 눈에서 화염을 이글거리며 나를 쳐다보고는 뭔가 주문을 외치려 했다.

[……?!]

하지만 갑자기 세라핌이 주문을 외우다 멈추고 입을 쩍 벌린 채 굳어 버렸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세라핌을 쳐다보았다.

“야, 왜 그래?”

[이…… 이런. 당신은 대체 뭐 하는 존재요?]

“내가 왜.”

이어진 세라핌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그대…… 어찌하여…… 8계에 이르는 세피라의 열쇠를 이미 갖고 있소?]

“……뭐?”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8계까지 오르는 세피라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세피로트를 수련한 게 이번이 처음이고 기간도 며칠밖에 안 됐어. 세피라에 대해 들은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무슨 8계 얘기를 하는 거냐.”

[허나 그대는 분명히 그 열쇠를 가지고 있소. 그대의 팔에.]

“팔?”

나는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내 팔을 들어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

내 팔에 새겨져 있던 [이름]들이 빛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그중에서 하나의 이름이 무지갯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이탄 ]

나는 그 이름의 주인에 대해 순간적으로 기억을 떠올렸다.

[나의 이름은 사이탄(Satan)…… 신에 종속된 자…… 전능자의 나무에 거하는 뱀이다!]

그렇다. 사이탄이라는 놈은 500년 후의 대웅제국에서 맞닥뜨렸던 존재!

놈은 원래는 창힐의 권속이었으나 사실 권속이라기보다는 임시로 창힐과 손을 잡은 별개의 존재였다. 그래서 창힐 사후에 종말의 거룡과 협력하여 외우주로 탈출하려 했었고, 내게 선악과를 찾아줄 것을 요구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악과를 찾는 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서로 계약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내게 주었던 놈이었다.

그 후 사이탄의 힘을 빌어서 언령을 만들고 그걸로 신력을 통제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그의 힘을 써먹었는데, 여기서 뜻밖에 사이탄의 이름이 빛을 발할 줄이야?

그리고 사이탄의 이름을 확인한 세라핌이 깜짝 놀랐다.

[…… 오오…… 사이탄의 이름을 갖고 있는가……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너는 사이탄을 알고 있는 거냐?”

[그자는 신의 으뜸가는 종복…… 우리 세피로트 천사들의 왕(王)이었소!]

“……!!”

[어느 날 자취를 감추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설마 그대에게 이름을 귀속당했다니……? 대체 그대는……?]

사이탄이 세피로트 천사의 왕이었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었기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과거 언뜻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이시여. 저는 이상세계의 심판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었나이까?]

[만왕의 왕이 내리는 종말과 계시라 하는 것이 정녕 존재한다면…… 나 천사의 왕 사이탄은 더 이상 심판자이자 종언자가 아닐지니!]

[신이시여, 이 세계에 희망이 없다면 바깥 세계, 외우주에서 진정한 만왕의 왕을 찾아볼 것이오! 그자야말로 진정한 왕 중의 왕이 아니겠소? 어차피 멸망이 기약된 세계라면 더 이상 선악과는 필요 없을 테니 따가겠소.]

…… 아!

과거 사이탄의 이름을 이용해서 흑웅을 부활시키려고 수천 번 넘게 암송을 반복했을 때, [이름]의 힘이 역류해서 사이탄의 기억이 내게 역류해서 이상한 환영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환영의 기억을 더듬으며 세라핌에게 말했다.

“세라핌. 혹시 천사의 왕 사이탄이 시온 산(山)이라는 곳에 있었느냐?”

[시온은 천사들의 고향이자 본거지요. 그대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이오?]

“…….”

아무래도 세라핌의 반응을 보니 사이탄의 기억은 진짜인 모양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게 나는 사이탄이 시온 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대로라면 사이탄은…….’

나는 짐작가는 의문 하나를 세라핌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 천사들이 모시는 [신]이라는 건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냐?”

천사의 왕 사이탄이 분개하면서 반기를 들었던 ‘신’이라는 존재!

사이탄은 ‘신’에게 분노하면서 선악과를 이용해서 외우주로 떠났고 결국 우리 세계로 흘러들어온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 ‘신’이란 대체 뭘까?

[…….]

내 질문에 세라핌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말해줄 수 없는 것이오. 대신에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해줄 수가 있소.]

“뭔데?”

[그대가 갖고 있는 그 ‘사이탄’이라는 이름의 열쇠는 현재로서는 사용할 수 없소.]

“엥? 왜 안 되는데?”

내가 반문하자 세라핌이 대꾸했다.

[사이탄은 현재 천사왕의 영육(靈肉)을 잃어버리고 [이름]만이 남은 상태. 그렇기에 세피라의 열쇠로서 기능할 수 없소.]

“뭐? 그런 게 어딨냐. 사용할 방법을 말해줘.”

[사이탄의 영육을 부활시키면 될 것이오.]

“부활이라…… 그건 간단하지.”

나는 곧장 전륜성왕의 권능을 써서 사이탄을 부활시키려 했다. 하지만 내가 권능을 집중시키는 순간, 갑자기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손에 큰 통증이 찾아왔다.

“크윽!!”

내가 통증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자 세라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대는 위대한 신의 권능을 쓸 수 있는 모양이지만, 이곳은 세계수 세피로트의 품 안이오. 이곳에서는 외신이 아닌 한 그 어떠한 지배자도 권능을 쓸 수가 없소. 세계수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신력을 모조리 분해해 버리기 때문이오.]

“……!!”

신력이 분해된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내가 눈을 크게 뜨자 세라핌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수법을 써서 부활시킨다 하더라도 열쇠는 기능하지 않소. 왜냐하면 천사왕의 영육과 그 본질이 세계수에 귀속되어 있기에 열쇠가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사이탄을 부활시킬 만큼의 생명력을 모아서 세계수 세피로트에 기원하시오. 그러면 세계수는 그대의 소망을 들어줄 것이오.]

결국 생명력을 모으라는 결론이 나오는 건가?

세계수 세피로트는 체계가 어려운 것 같아도 ‘생명력’ 하나만 이해하고 있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흐음. 어느 정도의 생명력이 필요한데?”

[적어도 지금의 그대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오. 최소한 세피라 3계 이상은 되어야 시도할 수 있을 것이오.]

“……그 정도냐?”

[이것도 적게 잡은 것이오. 만일 그대가 진짜 전성기의 천사왕 사이탄을 부활시키려 한다면 상위의 [옛 지배자]나 다름없는 존재를 부활시키는 것이니.]

세라핌의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슨 개소리냐? 사이탄은 강력한 마왕이긴 하지만 [지배자] 수준은 아니었어.”

[사이탄이 그대의 세계에 넘어갔다면 아마 선악과를 사용했을 터. 허나 그는 타계에 넘어가는 댓가로 그의 힘은 크게 강등당했을 게 분명하오. 보통 외신이 그러한 이동을 허락하는 경우에는 상응하는 제약을 붙이기 때문이지.]

“뭐…….”

[그대가 아는 것보다 사이탄은 훨씬 강력한 존재요. 그의 후임으로 출현한 천사왕 메타트론만 하더라도 단숨에 은하계를 불태울 수 있는 존재이며, 전성기의 사이탄은 그보다 더 강했소.]

“…….”

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자 세라핌이 말했다.

[그렇다 해도 전(前) 천사왕의 이름을 갖고 온 자를 허투루 대할 수는 없구려. 이건 내 선물이오.]

화르륵!!

세라핌은 갑자기 허공으로 불을 뿜었는데, 그 불에서 웬 커다란 장검(長劍)이 출현하더니 내게로 날아왔다. 빠르지 않은 속도라서 내가 거뜬히 받아내자, 화염의 검은 마치 처음부터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게 기운을 일체화시키기 시작했다.

우웅!!

그리고 나는 이 화염검에서 무척 청빈(淸斌)하며 강력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지상의 무기와는 차원이 다른 영기(靈氣)가 느껴졌기에 나는 약간 놀라며 말했다.

“이건?”

[나 치천사(治天使) 세라핌의 화염검이오. 앞으로 그대의 영혼에 귀속되어 원할 때 언제든 불러낼 수 있을 것이오.]

“호오! 이건 아까 영혼의 불꽃과는 다른 건가?”

[영혼의 불꽃은 카발라의 수행자라면 누구에게나 나눠주는 거지만 그건 내 전용무기요. 즉 당신한테 그 화염검을 준 이상 나는 두 번 다시 화염검을 쓸 수 없소.]

“…….”

뭐?! 자신만의 전용무기를 내게 주었다고?!

나는 무인으로서 그게 얼마나 커다란 선택인지 알고 있었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봐. 처음 본 사이에 너무 막 퍼주는 거 아니야?”

[이 또한 인과율이오. 나는 한때 사이탄 님께 커다란 은혜를 입었으니, 그대에게 대신 보은하는 것이오.]

“…….”

스으으으

서서히 눈앞의 광경이 뿌옇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완전히 눈앞이 흐릿해지기 직전, 세라핌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부디 앞으로 그대가 사이탄 님을 부활시킬 수 있기를…….]

파앗!

나는 잠시 후 다시 현실세계로 되돌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눈을 끔벅거리다가 옆으로 손을 들며 정신을 집중했다.

화악!

그러자 내 손에는 단숨에 세라핌의 화염검이 소환되었다. 나는 그 화염검에 넘실거리는 기운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까와는 달리 이걸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소환되는군.”

화염검은 소환되는 대가로 내 마력을 먹어치우는 듯했다. 나는 마력이 충분히 많았기에 화염검을 들고 있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지만, 다시 소환을 해제했다.

슈욱

“사이탄이라…….”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설마 여기서 사이탄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이탄한테 선악과를 준다고 해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군…….’

생각해보면 굳이 세피로트를 높은 경지로 익혀서 사이탄의 영육을 부활시키지 않아도 선악과를 찾아내기만 해도 계약에 따라 사이탄은 부활하게 되어 있었다. 그게 바로 나와 사이탄이 맺은 ‘이름’의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다…….’

사실 그 때의 계약은 압도적으로 내가 유리했다고 할 수 있다. 사이탄은 28회차 때 그 부탁을 해놓고 내 [이름]으로 귀속되었고 그 이후로 나만 이득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힐조차도 맘대로 부려먹기 힘들었던 그 사이탄이 과연 자기한테만 불리한 계약을 했던 걸까?

정말 이대로 선악과를 찾아도 되는 걸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짐했다.

“계약대로 하기보다는 세피로트의 수련으로 소환하는 게 더욱 나을 거 같군.”

외우주에서 나일라토프를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사실 선악과를 얻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상적인 방법을 따라서 사이탄과 약속을 지켜주면 왠지 내가 손해를 볼 거라는 직감이 든 것이다. 나는 차라리 수련을 겸하면서 사이탄도 소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뇌룡일기공을 이용해서 같은 방식으로 구슬을 모아서 커다란 생명력을 섭취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세피로트의 세계로 이동하지 않았다. 나는 이 현상을 보자 생각했다.

‘과연. 1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생명력의 양과 2계에 도달하기 위한 생명력의 양은 큰 차이가 나는 건가?’

그리고 어째서인지 몰라도 나는 그 차이가 약 100여 배 정도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이건 아마 카발라 수행자로서의 직감일지도 몰랐다.

“…….”

그렇다면 다소 귀찮더라도 이 작업을 100여 번 반복한다면 2계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런 단순한 방법보다는 다른 방법을 실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우우

나는 눈을 반개하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씨익 웃었다.

‘삼재심법과 뇌룡일기공만으로 이 정도의 효율이라면……!’

사신지혼!

천하제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내공인 사신지혼으로 세피로트를 수련한다면 나는 엄청난 속도로 다음 진도를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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