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9권 07화
나는 다시금 이강룡이 있는 곳을 벗어나서 예전에 수련하던 장소로 향했다. 이강룡을 만나러 오기 전, 여기서 또 수련할 것을 짐작했기에 이 장소는 여전히 내 마력 때문에 탄생한 마물들이 가득한 장소가 되어 있었고 나는 천천히 그 마경(魔景)으로 걸어 들어갔다.
끼에에엑
촤좍
나는 달려 들어오는 나무형 마물들을 단숨에 검뢰로 찢어발기며 생각했다.
‘음…… 세피로트와 천화뇌룡신공을 같이 써야 한다니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사실 지금만 하더라도 그냥저냥 무공으로 마물들과 싸울 만해서 큰 필요성은 못 느끼고 있었다. 하물며 세피로트이자 마법이라고 하는 생경한 분야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니 감도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강룡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이런 수련법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중얼거렸다.
“우선 같이 쓰기 위해서는 세피로트의 기초부터 연마를 할 필요가 있겠군.”
지금 나는 세쓰를 움직여서 즉흥적인 주법(呪法)을 시전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데 이건 엄밀히 따지면 제대로 된 세피로트의 마법이 아니었다. 정통적인 마법의 기초를 익혀서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부터 배우지 않으면 이강룡이 제시한 수련법은 시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타닷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숲의 심처로 들어가서 깊은 동굴을 하나 찾아내었다. 그리고 단숨에 강기를 퍼부어서 근처에 있는 마물을 깡그리 다 없애 버린 후 동굴 안에 들어가서 명상을 시작했다.
‘우선 내가 세피로트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부터 되짚어 보자…….’
나는 세피로트의 특징에 대해서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해 냈다.
[기경혈맥이나 다름없는 힘이기에 기공(氣功)의 고수인 당신이라면 세쓰를 빠르게 통달할 수 있을 거야. 제갈사도 그 때문에 마법을 숙련시키기 위해 굳이 무공을 익혔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지?]
전뇌자의 말에 따르면 내 몸에 흐르는 세쓰는 기경혈맥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도 세쓰를 움직여보면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제대로 된 운용법은 배우지 못했음에도 세쓰를 이용해서 기생체의 감염을 막는 정도는 즉흥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기공의 고수였고, 그 기공의 흐름을 통제하는 건 내 전문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세쓰 또한 내공심법(內功心法)처럼 운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경혈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경혈맥은 기를 출납하는 통로지만 세쓰는 세계수의 마력을 출납하는 통로라는 차이점일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생각을 확장해 나갔다.
‘세쓰를 내공심법처럼 운용한 적은 없다. 하지만 한다면 일단은 삼재심법부터 시도해봐야겠군.’
강호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안정적인 기공!
나는 내공심법을 천천히 운용하며 세쓰의 힘을 위아래로 융기(隆起)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쓰의 힘이 출렁거리며 서서히 마력(魔力)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이윽고 아무 탈 없이 일주천(一周天)을 완료할 수 있었다.
우웅
한 번의 내공수련을 끝내자 내 전신에서 퍼런빛이 흘러나오면서 기광(奇光)을 방출했다. 나는 그 과정을 겪으며 생각했다.
‘이것 참 신기하군. 기(氣)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데 마력(魔力)이 마치 기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내공이 쌓이는 대신 마력이 쌓인다……!!’
그냥 마력을 쌓는 내공심법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기가 막힐 정도로 기와 마력은 충돌하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내가 충돌시키려고 해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동안 삼재심법을 반복하던 중 이 기이한 느낌이 어째서 나는 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기가 흐르는 기경팔맥과 같은 장소에 있지만 다른 장소에 마력이 흐른다. 음…… 이런 걸…… 차원(次元)이 다르다고 하는 건가?’
기가 좀 더 직접적으로 육체에 붙어서 흐른다면 마력은 다른 차원에서 은은하게 흘렀다. 굳이 비유하자면 두 개의 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의 고저(高低)가 완전히 다른 평행선(平行線)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일부러 기와 마력을 접목시키려 하지 않는한 굳이 기와 마력이 부딪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긴 당연할지도 몰랐다. 기와 마력이 충돌한다면 제갈사가 무공을 익힐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딱히 그런 쪽으로는 여러 가지 능력을 익히는데 제약이 따로 없는 듯했다.
나는 몇 번인가 더 삼재심법처럼 세쓰의 마력을 운용하다가 이윽고 특이한 현상이 발생함을 느꼈다.
치이익……!!
몸에서 연기가 흐르는 것 같더니 내 몸에서 희미한 안개와 같은 영기(靈氣)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영기가 무척 원초적인 [힘]의 덩어리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동안 내가 계속해서 마력을 쌓은 탓에 생긴 현상임을 짐작했다.
오오오오…….
영기는 한동안 내 몸을 맴돌더니 잠시 후 서서히 뭉쳐서 원(圓)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 원은 내 몸의 바깥에서 크게 그려지더니 점점 좁혀지면서 크기가 작아졌고, 종래에는 내 명치에 조그마한 원의 형상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고는 찌잉, 하는 느낌과 함께 전신이 떨리면서 조그마한 구슬이 내 몸에 생겨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음!”
이건 대체 뭐지? 기운이 뭉쳐서 구슬로 압축되었다는 건 알겠는데 설마 진짜 내 몸에 물리적인 뭔가가 생겨난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뭐가 뭔지를 알 수 없었다. 사실 세피로트에 대한 걸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뇌자도 반쯤 억지로 내게 기초인 세쓰를 알려줬을 뿐이고, 제갈사는 세피로트를 배운 게 아니라 이혼대법을 배운 것이었다. 제갈사가 쓰는 공격마법도 정통 세피로트를 계승받은 게 아니라 그의 천재성으로 이혼대법의 근원을 추적해서 개발해낸 자작주문 혹은 어둠의 세계에서 다른 마도서를 입수해서 배운 것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긴 시몬마구스 그놈은 제갈사의 천재성을 알고 있었으니 세피로트까지 다 가르쳐줬다가는 감당 못 하겠다 생각했겠지…….’
허나 500년 후의 대웅제국에 있던 대마왕 제갈사는 어떻게든 세피로트를 익혔던 모양이었다. 아마 내가 사라진 후에 뭔가 수를 쓰지 않았을까? 다만 500년 후의 제갈사와는 대화할 시간이 너무 없었기에 그 내역을 알 수 없었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강룡한테 세피로트의 수련법까지 상담하고 올 걸 그랬나…….’
나는 약한 생각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의지할 수는 없었다. 온갖 안배를 다 받아놓고 이런 것 하나 내 힘으로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한 고난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오기로라도 일단 내 힘으로 세피로트의 수련법을 알아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내 명치에 생겨난 조그마한 구슬을 움직여서 몸 밖으로 꺼내려고 먼저 시도해 보았다. 그러자 구슬은 내 의지대로 또르르르 혈맥을 따라 움직이더니 이윽고 내 손가락 끝에 맺혀서 빠져나왔다.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 구슬을 바라보았는데, 뜻밖에도 구슬은 무척 밀도가 높은 희뿌옇고 둥근 기운덩어리 그자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침음성을 흘렸다.
“음.”
이건 마치 기공수련을 하다가 느끼는 기단(氣團)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 같지 않은가?
보면 볼수록 기공과 유사했기에 나는 혼란을 느낄 지경이었다. 나는 잠시 후 손가락 끝에 맺힌 둥근 기운을 털어내보았다.
데구르르…….
그러자 둥근 기운은 빛을 내더니 이윽고 물질로 변해서 둥근 구슬로 변했다. 나는 그 둥근 구슬을 집어들고 잠시 관찰하다가 뭔가를 알아차렸다.
“뭐지 이건? 마력덩어리가 아니잖아.”
마력을 수련해서 쌓인 결과로 나타난 구슬이니 당연히 마력의 집합체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물질이 된 이 구슬은 마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 성분이 정체불명이었고 맨들맨들할 뿐이었다. 묘하게 말랑하기도 했기에 나는 이 구슬의 정체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
대체 이 구슬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비웠다.
‘에라 모르겠다. 버릴수도 없고 걍 먹어 버리자.’
꿀꺽
나는 도로 구슬을 먹어 버렸다. 그러자 잠시 후 구슬이 찌르르 울리며 다시 명치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느껴졌고 갑작스럽게 내 몸에서 마력이 물결치는 게 느껴졌다.
츠아아아아!!
“어…… 어?!”
동시에 구슬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며 녹아 버리더니 전신에 있던 세쓰가 크게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전신이 들끓는 느낌이 들자 나는 당황했지만 이윽고 이게 어떤 현상인지 알 수 있었다.
‘생명력이…… 강해진다!’
세쓰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맥동(脈動)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강렬한 영양분이 공급되었기 때문!
그리고 세쓰가 맥동하는 동안에 나는 갑작스레 환영이 머릿속에 스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
나는 그 나무의 가장 밑동에 서 있었으며 마치 나무에 비하자면 개미만도 못한 크기로 느껴졌다. 그것도 잘 봐준 것이었고 내 존재는 미물(微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무의 크기는 가볍게 행성 단위를 넘어가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보통 나무와 달리 무척 신비스러운 생김새를 하고 있는 기이한 수목이었다.
그리고 나무의 밑에서부터 중간에 하나씩 원(圓)이 표식으로 새겨져 있는 게 보였으며, 내가 지니고 있는 세쓰가 이 나무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굉장히 잘 이해할 수가 있었다.
번쩍
나는 다시 환영에서 현실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방금 전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세피로트의 나무…… 카발라 생명의 나무이자 세계수인가……!!”
이 세계에 존재치 않는, 외우주의 존재!
무한의 마력을 지닌 세계수이며 세피로트의 근원!
잠시동안 내 세쓰가 강한 마력을 공급한 덕에 그 [근원]인 세계수와 잠시 정신이 연결되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세피로트가 어떤 마법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이 세쓰를 이용해서 세계수의 마력을 소환할 수 있지만…… 역으로 세계수에 내 마력을 보낼 수도 있는 거였어!’
방금 전에는 세쓰를 이용해 스스로 마력을 생성하는 행위를 하고는 [먹는] 행위를 해서 세계수에게 마력을 전송한 셈이 된거였다!
그리고 아마 전뇌자가 내게 부여한 수많은 세쓰 덕에 손쉽게 세계수와 정신을 연결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전에 내가 보았던 그 원의 표식이 바로 고위마법의 경지인 세피라인가?’
나는 세피로트의 마법 수련과정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는 아직 최저단계의 수련자이지만 갈수록 세계수를 등정(登頂)하게 되고, 중간에 존재하는 원의 표식인 세피라에 당도하게 되면 마법의 경지가 오르는 것이다.
즉 나무를 오르는 행위 그 자체가 세피로트의 마법수련인 것!
본질을 이해 한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흠. 그러면 좀 더 고급내공심법을 수련해서 단숨에 마력을 많이 쌓고, 그걸 또다시 세피로트에 전송한다면…… 나는 나무를 오를 수 있는 걸까?’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나무를 오르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 대신에 방금 전에 내가 만들어냈던 구슬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구슬에는 마력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전신에 퍼져 있는 세쓰는 구슬을 섭취한 순간 생명력으로 요동쳤다…… 그 말은…….’
구슬은 바로 생명력 그 자체 아닐까?
‘그렇다면 방금 나는 마력을 정제해서 생명력을 만들어냈다……?’
나는 뭔가 이 세피로트와 세쓰의 관계를 알 것 같았다. 세피로트는 이미 무한의 마력을 지니고 있으니 더 이상 마력을 공급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세피로트에게 내가 전송한 것은 사실 마력이 아닌 생명력이 아니었을까?
만일 이 가설이 맞다면 세피로트는 마력보다는 생명력을 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
좀 더 내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가 필요하다.
“세쓰에 삼재심법을 무난히 쓸 수 있다면 이번엔 좀 더 고급 내공심법을 써 볼까.”
나는 이번엔 뇌룡일기공을 세쓰를 통해 운용해 보았다. 삼재심법보다 훨씬 더 강력하며 내공을 쌓는 효율이 좋은 일류심법이었다. 그리고 뇌룡일기공의 운행에 따라 약간은 복잡한 기경팔맥의 흐름을 따라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력은 거침없이 몸 내부를 물줄기처럼 쓸며 지나갔다.
츠츠츠츠
그러자 아까보다 더욱 격렬하게 마력이 유동했고 종래에는 갑자기 내 머릿속이 띵 하고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뇌(腦) 안쪽에서 새로운 공간이 넓혀진 것과 같은 신선한 느낌! 단숨에 생각의 범위가 넓어진 듯한 그 느낌에 나는 당황했다.
‘응?! 이건 또 뭐야…….’
마치 마력 그 자체가 내 정신세계를 확장시키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동안 혼란을 겪다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눈치챘다.
‘…… 상단전(上丹田)! 세쓰의 마력이 더 활성화되면서 상단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건가!’
마법 또한 술법과 마찬가지로 상단전을 위주로 하는 능력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었다. 아마도 마법사들은 이런 과정을 몇 번이고 고치면서 고위마법을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리라. 고통이라기 보다는 마치 황홀경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이었기에 그렇게 버티기 어렵지는 않았다.
두웅!
또다시 안개 같은 영기가 원형의 기단을 만들어내더니 빠르게 좁혀져서 내 내면에 구슬을 만들어내었다. 나는 이번에는 구슬을 굳이 꺼내지 않고 재차 뇌룡일기공의 일주천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내공수련은 원래 체력이 받쳐주는 한 반복하는 것. 어디 계속 구슬을 축적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자.’
웅 웅 웅 웅
나는 영기가 흘러나와서 구슬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서너번 이상 반복되는 동안, 내 감지능력이 점점 더 확장되어서 내 주변 백여 장 이내의 모든 산천초목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그 근처에서 얼쩡대는 마물들의 존재도 느껴졌는데, 이상하게도 마물들은 내 근처로 오지 못하고 멈칫거리며 빠르게 멀어지는 듯했다.
나는 금세 마물들이 내게서 멀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기가 심화되며 더 깊은 기운을 방출해낸다. 이 심상치 않은 영기를 느낀 마물들이 위험을 느끼고 알아서 멀어진 거군.’
지금 나는 신력과 내공을 스스로 제약해 놨기에 따로 그 정도의 위압감을 뿜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지금 수련하고 있는 세피로트의 영기 자체가 지닌 힘이 이 숲의 마물들을 압도할 정도의 기운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눈을 반개하며 수련에 더욱 몰입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우우우우우……!!
어느 새 명치에 맺혀 있는 구슬은 무려 여섯 개나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즈음 나는 구슬이 알아서 융화되며 하나로 녹아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 구슬은 서서히 내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느껴졌다.
‘으음…… 뭔가…… 더 이상 구슬을 모았다가는 통제하지 못할 거란 느낌이…….’
나는 내 직감을 믿고 더 이상 구슬을 축적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아까처럼 손가락 끝으로 구슬을 만들어내 보았다. 나는 새롭게 나온 구슬이 다소 시뻘건 색깔이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그대로 다시 삼켰다.
꿀꺽
화아아앗!!
그 순간, 나는 다시 나무의 환영을 보았다. 그러고는 거대한 세피로트 앞에 서 있던 내 발밑에서 거대한 나무줄기가 치솟더니 저절로 나를 위로 올려보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오?’
어떻게 나무를 오르나 싶었는데 이런 식이었어?
내가 신기해할 때 나는 어느 새 꽤 높은 곳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내 눈앞에 둥그런 표식이 하나 새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나도 모르게 그 표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앗!
표식을 향해 손을 뻗어서 만진 순간, 나는 새하얀 원형의 넓은 공간에 서 있었다. 이 공간의 하늘에는 형이상학적인 기이한 글자들이 잔뜩 떠 있었고, 내 맞은편에는 뱀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뱀?
나는 저 뱀에게서 호의도 악의도 아닌 느낌을 받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순백의 무언가라고 할 수 있었다. 영적 존재가 틀림없는 뱀을 조용히 나 또한 주시하자, 뱀에게서 [의지] 그 자체가 날아 들어왔다.
[첫 번째 세피라인 말쿠트(Malkuth)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카발라의 수행자여.]
나는 나도 모르게 대꾸했다.
“말쿠트? 너는 누구지?”
[……!!]
그러자 뱀은 크게 놀라는 듯 자신의 몸을 떨더니, 이윽고 자신의 목을 길게 쭉 늘이며 나를 관찰하는 듯했다.
[설마 필멸자의 육체를 지니고도 세피라 내부에서 입을 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니……!! 당신은 이미 위대한 영성(靈性)을 손에 넣은 존재구려. 이런 일은 세피로트가 창조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오!!]
“아니 너는 누구냐니까.”
[영겁의 시간을 살며 설마 내 소개를 하게 될 줄이야…… 나는 불꽃의 뱀, 세라핌(Seraphim)이오.]
화르륵
불꽃의 뱀 세라핌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내 주변에 여러 개의 불꽃이 일렁이며 떠올랐다. 내가 힐끔 그 불꽃을 바라보자 세라핌이 말했다.
[카발라에 도전하는 모든 존재에게는 아인소프에 도달할 수 있는 내면의 불꽃이 존재하오. 인간세상에서는 흔히들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흠.”
[허나 이 나무를 오르다 보면 험난한 시련이 가득하니, 그 영혼의 힘 또한 손쉽게 소모되는 것…… 나 세라핌은 말쿠트에 도달한 수행자에게 여분의 영혼을 나눠주어 그가 쉽사리 포기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오.]
“엉? 설마…….”
[자아, 영혼의 불꽃을 받으시오.]
후웅!!
다음 순간, 갑자기 주변에 있던 불꽃들이 동시에 내게 덮쳐왔다.
“헉!”
무쌍패(無雙覇)!
타다당
나는 나도 모르게 신역의 [흐름]을 읽으며 무쌍패를 써서 모든 불꽃들을 튕겨내버리고 말았다.
[…….]
“…….”
불꽃의 뱀이 당황스러워했다.
[나 세라핌이 부여하는 불꽃을 튕겨낼 수 있다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왜 튕겨냈소?]
나는 뻘쭘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불꽃이 날아오니까 놀랬잖아…… 공격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다 보니까.”
[공격이 아니니 안심하고 받아들이시오.]
“아프냐?”
[수행자의 내면을 시험하기에 조금은 고통스러울 수 있소. 영혼이 불타는 고통을 견디고 나면 커다란 영성의 향상이 이뤄질 것이오!]
후웅!!
다시 불꽃이 내게로 덮쳐오자 나는 또다시 극한의 집중력으로 무쌍패를 발휘했다.
타다당
[…….]
“…….”
잠시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고, 나는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굳이 그거 안 받아도 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