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9권 06화
내가 잊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당연한 걸 왜 잊고 있었을까?
‘세 개의 힘이 균형을 이룬 채 변화한다…… 사실 삼재에 속하는 건 이 특성만 갖고 있어도 충분하니까 당연히 세피로트의 삼주 또한 삼재에 속한다!’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그동안 접목시킬 생각을 못 했던 이유가 뭐였을까?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고심하다가 문득 내 부상에 맺혀 있는 은빛의 삼각형을 쳐다보았다. 치링 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는 그 삼각형을 보던 나는 중얼거렸다.
“그동안 마법(魔法)은 쓸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군…….”
그렇다. 세피로트는 크게 분류하자면 결국 마법!
마법이란 대부분이 [옛 지배자]나 사악한 존재들의 힘을 빌려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마법도 있었지만 애초에 마법이라고 칭해지는 이유가 마(魔)의 힘을 사역하는 방법(法)이니 그 본질이 사악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전생하면서 질릴 정도로 마신이나 마족과 적대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하위권속이 부리는 마법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제갈사도 그렇고, 만나는 자들마다 내게 은근히 마법의 재능이 있다고는 했다.’
아마 제대로 연마했다면 마법을 대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망상이라기엔 내 마법재능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꽤 후했다.
하지만 나는 무술을 연마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졌기 때문에 마법을 수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마법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인신공양이나 제물을 통해 사악한 의식을 치러야 하는데 뭣하러 그런 인간같지도 않은 짓을 하겠는가?
그런 탓에 전뇌자가 반쯤은 떠먹여주듯이 세피로트의 마법에 입문시켜주고 세쓰를 내 몸에 깔아줬는데도 그동안 거의 손대지도 않았던 것이다.
‘신력이 강해지고 무공 또한 절대지경 이상의 반열에 오르면서 굳이 연마할 필요를 못 느낀 것도 크군…….’
어찌됐든 나는 이로써 마법의 영역인 세피로트 또한 삼재에 포함시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삼재라는 건 결국 세 개의 세력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순간 고심했다.
‘……사신지혼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분명히 이 세피로트는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사신지혼의 기운을 통제하는데 쓴 삼재의 기운은 삼보절기의 이치와 트리무르티 2가지인데, 세피로트가 합쳐지면 그걸로 3개째가 된다. 그렇게 된다면…….’
삼보절기, 트리무르티, 세피로트.
이 3개의 이치를 또다시 엮어서 삼재로 만들 수 있다면 그 통제력은 급증할 수도 있다!
단숨에 사신지혼의 현재 최후단계를 넘어설 수도 있는 것!
하지만 그 엄청난 이득에 반비례해서 나는 큰 걱정이 앞섰다.
‘삼보절기는 무공이고 트리무르티는 신력이고 세피로트는 마법…… 세 개의 이치는 모두 근원(根原) 자체가 완전히 다른 힘들인데 과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삼재를 이용해서 사신지혼을 통제하는 나만의 요령 자체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만으로 본다면 실패할 확률이 극히 높다고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세피로트가 마법이니…… 틀림없이 이걸 연마할 때는 사악한 의식과 제물이 필요할 것이다. 만일에 수련을 하다가 그런 난관에 부딪힌다면 윤리를 버리고서라도 세피로트를 익혀야 할까?’
내가 아는 세피로트의 달인은 총 3명이었다.
마법의 신인 헤르메스, 그의 제자인 시몬 마구스, 그리고 또 그 제자인 제갈사.
셋의 공통적은 대마도사임과 동시에 극히 사악한 성향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뜻이었다. 헤르메스나 시몬 마구스는 인신공양을 밥 먹듯이 했을 게 뻔했고 제갈사 또한 내 동료라서 망정이지 전생동료로 삼지 않았다면 그런 행위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자들의 면면을 본다면 세피로트의 성취가 높아질수록 마성(魔性)에 사로잡히며 사악한 행위를 연마해야 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
정말이지 사신지혼의 성취만 아니었다면 이런 걸 고민할 일도 없을 텐데…… 이미 무공도 신력도 막강해서 굳이 마법 따위를 더 이상 익힐 필요가 없는 상태가 아닌가?
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전뇌자를 믿자.”
전뇌자는 어떻게든 내게 이 세피로트를 습득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었다. 전뇌자는 강인공지능이니 마법의 유해함을 모르는 게 아닐 텐데도 내게 이 힘을 부여한 것은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단 이강룡에게로 되돌아갔다.
파앗
나는 이강룡이 있던 뇌연으로 향했다. 그리고 뇌연 근처로 가자 가공할 뇌령이 웅크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연못가에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던 이강룡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못 보던 새 당신의 뇌령지기가 굉장히 커졌소. 원래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커진 것 같구려.”
이강룡은 빙긋 웃었다.
“후후, 사신지혼 덕분일세. 정녕 이 무공은 인간세상의 그 어떠한 무공도 비교할 수 없는 광고절금한 절세무공이군…….”
“나는 천화뇌룡신공을 연마하기 위해 마물을 열심히 잡았소. 헌데 잡다 보니 방심해서 죽을 뻔 했소.”
이강룡은 내 팔의 부상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그렇군. 기생형에게 당했군. 그럼 어쩔 수 없지.”
“마물이란 참 필멸자로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오.”
“그럴 수밖에. 은하계 저 너머에 있는 우주의 극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이니.”
그렇게 대꾸한 이강룡이 말했다.
“뭔가 나한테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 표정이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게.”
“…….”
눈치가 대단한데?
나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내가 세피로트와 삼재, 사신지혼에 관한 이야기를 다 해주자 이강룡은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한동안 침묵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세피로트가 꼭 사악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뇌자가 자네에게 전해준 것 같다고 생각하네. 세피로트를 익혀도 될 걸세.”
나는 이강룡의 말에 당황했다.
“음? 무슨…… 세피로트의 초대종사인 헤르메스도 악신이었고 그 제자인 시몬 마구스도 외신과 계약한 사악한 대마도사였소. 그런 자들이 주종으로 삼는 능력이 사악하지 않을 수 있소?”
이강룡은 내 말에 잔잔하게 대꾸했다.
“마법이 사악한 이유가 뭔가?”
“……? 인신공양을 하고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오.”
“역시 본질을 꿰뚫고 있군. 그래, 마법 그 자체는 그저 초상능력의 하나일 뿐이고 사실 마법이 사악한 기운을 띄는 이유는 사악한 의식을 이용해 사악한 기운을 소환하기 때문이야.”
“그거야 나도 아는 것이오. 하고싶은 말이 무엇이오?”
“헌데 생각을 해 보게. 세피로트의 마법을 창조한 존재가 마법의 신 헤르메스라고 했었지. 그런데 헤르메스 본인은 대체 어디에서 [힘]을 소환하는 것인가?”
“……!!”
“이미 마법의 신이 되었으니 그의 능력은 [옛 지배자]라 할 수 있어. 그는 원래라면 마법의 주체가 되어 신도들에게 힘을 내려주는 자가 되어야 하며 어디서 힘을 소환해서는 안 되지. 헤르메스가 그렇던가?”
어?
그러고 보니……?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 그러니까 세피로트의 종사들이 사악한 것은 그저 개인성향일 뿐이고 세피로트 그 자체는 사악하지 않은 힘일 수도 있단 말이오?”
“그건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 것 같군. 자네의 혈관과 온몸에 흐르는 세쓰를 한 번 느껴보게. 그게 근본부터 사악한 힘인지 아닌지를.”
“……아닌 것 같소. 이건 순수한 힘의 고리요.”
“이미 잘 알고 있군. 힘을 받아들이는 매개체 자체가 오염되지 않았다면 자네에게 세피로트의 힘을 부여하는 주체도 사악한 존재는 아니라는 소리야. 당연한 인과관계가 아닌가?”
“……!!”
“아마 내 생각은 이렇네.”
이강룡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세피로트가 무한(infanat), 승화(sublimatyon), 지배(kontrol)의 삼주의 정신영역을 조종하여 높은 경지에 오르면 마신이 될 수 있는 마법이라고 했었지? 그 말에 따르면 마법의 신인 헤르메스 또한 그저 세피로트를 높은 경지까지 단련한 수행자일 뿐 힘의 주체가 아닐세. 경지가 높아서 마신이 되었을 뿐 세피로트 자체가 마신이 되기 위한 힘은 아니라는 소리야. 이건 천지 차이이니 아마 힘의 주체는 따로 있겠지.”
“힘의 주체는 누구요?”
“간단하네. 세피로트는 생명의 나무이며 카발라에서 비롯된 존재가 아닌가? 또한 나도 세피로트의 위계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모양은 영락없는 [나무] 그 자체였네.”
“나무…….”
“마법사의 신인 헤르메스조차도 그 하위종사에 불과할 정도의 나무는 전 우주에 하나뿐이지 않은가?”
그 순간, 나는 뭔가를 깨닫고는 크게 외쳤다.
“서, 설마…… 세계수?!”
내 말에 이강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챘군. 아마 세피로트란 세계수의 힘을 직접 소환하는 마법인 걸세. 그 힘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나 헤르메스 계열의 사법사(邪法師)들이 사악한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뿐일 테지.”
“……!!”
“삼주를 고도로 연마해서 접어드는 고위 마법단계라는 세피라라는 건 본격적으로 세계수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경지를 의미할 테지. 또한 세쓰라고 하는 자네 몸속의 회로는 사실은 세계수의 [뿌리]를 자네의 몸속에 넣어놓은 격일 걸세.”
나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설마 그동안 그 정체가 모호했던 세피로트의 마법이라는 게 세계수의 힘을 소환하는 마법이었다니?!
‘그렇다면 내가 흡수했던 이계의 존재, 아담카드몬이라는 놈 또한 세계수의 힘을 숭배하는 자였던 건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강룡에게 말했다.
“그럼 그 세계수는 대체 어디에 있소? 여태 그게 비유인 줄만 알았는데 당신 말대로라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오.”
“적어도 이 세계에는 없을 것이네. 그 세계수는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그 힘을 사역하는 자들의 근원은 이 세계가 아니니까.”
“무슨 말이오?”
“내가 고대신의 용병을 하다가 여러 번 들은 얘기가 있었지. 카발라를 따르는 자들의 기원은 머나먼 곳이며 이 세상에서 탄생하지 않은 신격들의 힘을 빌린다고.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아마 생명의 나무 자체가 외우주라는 곳에 존재하며 세피로트의 하수인들은 생명의 나무를 타고 이 세계로 넘어온 게 아닌가 싶네.”
“…….”
“그렇게 치면 충분히 세피로트를 익힐만한 값어치가 있지. 다른 [옛 지배자]의 힘을 빌리는 마법과 달리 그건 세계수의 힘을 빌리는 거니까 굳이 사악한 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고…… 세계수인 만큼 그 힘의 한계도 웬만한 마법보다 굉장히 높을 게 아닌가. 뭣보다 일개 수행자에 불과한 헤르메스가 마신이 된 것만 봐도 괜찮은 능력임을 알 수 있네.”
“그런 거군…….”
문득 나는 머릿속에 과거 제갈사가 손쉽게 이 세계의 주술사들을 격파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제갈사의 마법은 유독 마법관통력이 강해서 온갖 종류의 술사를 상대로 파괴력이 강했는데, 설마 근원부터가 이세계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단 말인가?
이강룡은 심유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또 하나…… 어쩌면 세피로트를 고도로 연마하게 되면 자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래서 전뇌자가 자네에게 기어코 배우게 한 게 아닐까 싶어.”
“무슨 소리요?”
“그건 전투용 능력이라기보다는 향후 [세계수] 그 자체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만일 자네가 그 힘을 지배하는 단계까지 간다면 말이지…….”
“…….”
“뭐…… 그건 나중의 일일 테고, 일단은 세피로트의 마법을 연마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군.”
나는 신기한 눈으로 이강룡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어찌 이리도 이면의 세계에 대한 통찰력과 경험이 깊소? 아무리 고대신의 용병이라지만…….”
“깊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불운한 사고로 인해 죽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름대로 인류의 수호자 같은 위치에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나는 사실 마법도 조금 익혀뒀기에 세피로트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것은 이해를 하고 있네.”
“마, 마법도 배웠단 말이오?”
“사신을 토벌하다 보면 정령의 힘을 빌리는 마법은 안 익힐 수가 없다는 얘기지. 기(氣)를 쓰지 못하는 상황도 많으니까 말이야. 그럴 땐 이런 식으로…….”
이강룡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예고 없이 그의 손가락 위에서 한 줄기의 번개가 튕겨서 전방에 있던 나무를 열 그루나 날려 버렸다.
콰아아앙
“내 뇌령지기를 제물로 바쳐서 번개의 정령에게 부탁을 하는 마법 정도는 쓴다네. 풍신류라면 아마 풍령을 바쳐서 바람의 방패를 소환하거나 하겠지? 나는 풍령을 별로 못 써서 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
“사대무류 출신의 백련교인들은 아마 이런 마법은 모두 쉽게 쓸 걸세. 정령은 인간제물보다 자연지기를 제물로 더 선호하니까.”
“그, 그렇군.”
분명히 방금 쓴 건 기를 움직인 게 아니었기에 틀림 없는 마법이었다. 나는 이강룡이 정말로 일선에서 안 해 본 게 없는 이면세계의 전문가임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강룡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서방에서 모험하면서 느낀 거지만 사대무류는 정말 잘 안배되어 있는 무공일세. 사대무류를 익힌 자가 서방의 온건한 정령마술이나 마법을 배우기에 적성이 좋거든. 어쩌면 달마 조사 때부터 안배되어 있었던 걸지도.”
“…….”
“아무튼, 마법 얘기는 이쯤하고 천화뇌룡신공을 어느 정도 잘 익혔나 간만에 대련이나 합세.”
“좋소. 천화뇌룡신공만 써서 겨루는 거겠지?”
“당연하지.”
타닷 -
콰광!!
나와 이강룡은 천화뇌룡신공의 수법만 써서 싸우기 시작했다. 당초에는 이걸로만 싸우면 공격방어에 쓰는 술수가 제약되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싸우다 보니 그런 건 기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타당!
‘전혀 생각도 못 해 본 연계기다.’
이강룡의 초식 하나하나는 내가 3년 동안 뼈에 새겼던 모든 천화뇌룡신공 초식이 녹아들어 있었으나 그 연계와 응용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는 흐름을 미리 읽어서 적절하게 막고 피하며 대처했지만, 솔직히 신역의 경지를 밟지 않았다면 이강룡에게 얻어맞고만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공부가 된다. 이강룡의 수법 하나하나를 외우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약 오백 초식 동안 서로 말도 없이 대련을 하던 중, 이강룡이 뒤로 물러서며 껄껄 웃었다.
“하하하. 천화뇌룡신공은 아직 멀었지만 순수한 무공의 경지가 높아서 다 대처하다니…… 그게 바로 신역인가?”
“민망하군. 흐름을 읽는 능력에 많이 의존하고 있소.”
“뭐 어떤가. 그 자체로 무예 극한의 경지이니 안 쓰는 게 이상하지…… 헌데 무조건 선(先)을 잡는듯한 그 느낌을 공격에도 응용할 수는 없는 모양이군?”
“…….”
나는 뜨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내가 만났던 신역 경지의 고수들이 하나같이 지적했던 내 약점을 이강룡이 간파했던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문제요. 나보다 한 걸음 앞서 있는 존재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지를 모르겠군.”
“흐음…… 왜 앞서 있다고만 생각하는가?”
“나는 방어밖에 못 하고 그들은 공격까지 할 수 있으니 당연하지 않겠소.”
“의념을 공격으로 전환하면 되지 않는가?”
“이 [흐름]이란 건 의념과는 완전히 다른 거라서 나 또한 읽고 나서야 알아차리게 되오. 의념보다 거의 무조건 빠른 것이오.”
“하긴 그러니까 생전 처음 겪는 초식도 막아낼 수 있는 거겠군. 흐음…….”
곰곰이 생각하던 이강룡이 말했다.
“[흐름]이란 마음(心)이라 했었지? 무공의 마음을 읽어낸다면 그 마음 자체를 조종할 수는 없는가?”
“조종하다니 무슨 엉뚱한 소리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소.”
이강룡은 내 말에 멋쩍게 웃었다.
“그런가……? 내가 엉뚱한 생각을 했나 보군. 허허.”
“…….”
뭔가 진도가 나가지 않는 느낌에 나는 검을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천화뇌룡신공을 제대로 익히려면 앞으로 적어도 10년 정도는 더 해야 할 것 같군.”
“3년 만에 이만큼 초식을 숙련시킨 것만 해도 대단하네만 욕심이 많군. 천화뇌룡신공을 그만큼만 써도 독보강호(獨步江湖)가 가능한데.”
“굳이 좋은 얘기 안 해줘도 되오. 방금 당신과 겨루면서 내 초식이 얼마나 조잡한지 깨달았으니.”
“흐음…….”
“내가 원하는 건 무림인들과의 비교가 아니오. 앞으로 신적인 존재를 상대로도 써먹을 정도가 되어야 하오.”
“그런가.”
이강룡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말한 건 사실이었다. 나는 이제야 천화뇌룡신공의 초식을 원숙하게 쓸 수 있을 뿐, 본격적인 응용과 연계에 있어서는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아직까지 무공을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또다시 마물들과 드잡이질을 하려니 지치는구려.”
“흐음. 하긴 사람과 싸우는 것과 달리 괴물과 싸우는 건 심적으로 힘든 일이긴 하지. 그러면 이건 어떤가?”
“뭔가 방도가 있소?”
이강룡은 씩 웃으며 말했다.
“자네. 싸우면서 느꼈는데 마음을 둘로 분리하는 것에 익숙하지?”
“……분심결(分心決) 말이군. 그렇소.”
“수련할 때도 써먹는가?”
“예전에는 많이 써먹었지만 사실 심력이 많이 들어서 요샌 굳이 쓰진 않았소.”
무당파 양의심공에서 비롯되어 뇌신류 천재들을 통해 발전된 분심결. 이는 마음을 나누는 양의심공의 본연의 위력도 지니고 있었기에 무공과 술법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도 한몫하고 있었다.
물론 경지가 낮을 때는 부단히 분심결까지 운용하면서 두 배로 노력하곤 했었지만, 요즘은 마음공부가 더 주류가 되다 보니 굳이 쓰지 않았던 것이다. 분심결은 단순암기가 아닌 이해의 영역에서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강룡이 말했다.
“이렇게 하도록 하지. 자네는 이제부터 천화뇌룡신공과 세피로트를 동시에 사용해서 마물과 싸우도록 하게.”
나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깜짝 놀랐다.
“무,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일세. 분심결을 쓴다면 두 개의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지 않은가? 이걸 이용해서 좌수와 우수에 제각각 다른 수법을 써서 싸우는 것일세. 여태껏 비슷한 걸 해봤으리라 생각하네만.”
“아, 아니…… 난 그런 건 여태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그냥 칼만 쓰면 썼지 그런 적이 없다. 술법을 간간이 같이 쓰기도 했지만, 무공의 보조로만 썼을 뿐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네. 어차피 천화뇌룡신공의 창안자인 나도 평소에 많이 하던 짓이니까.”
이어진 이강룡의 말에 나는 새로운 수련이 시작됨을 직감했다.
“이제부터는 마물과 싸울 때 무공과 마법을 동시에 써 보게. 두 개의 성취가 모두 높아질 테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