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73화 (1,572/1,615)

전생검신 89권 03화

부그르르

나는 번개를 내뿜으려는 물 밑의 빛에 좀 더 다가갔고, 거리가 크게 좁혀지자 갑자기 몸 전체에 강렬한 뇌전의 충격이 날아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지지지직!!

‘큭…… 아까보다 훨씬 강한 것 같군.’

뇌전의 절대량이야 아까 호수를 가득 채우던 때가 훨씬 막대했지만, 지금 날아온 뇌전은 무척이나 강한 힘을 압축한 듯했기에 공격의 질이 달랐다. 나마저도 번개 때문에 살짝 뻐근한 느낌이 들 지경이라면, 어지간한 마물이나 마왕은 이 공격을 맞았을 때 치명상을 피할 수 없으리라.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뭐가 있길래 이토록 강렬한 수호의 힘이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잠시 후 화안금정을 통해서 내 눈에는 웬 거대한 망치가 호수의 밑바닥에 박혀 있는 모습이 비쳐졌다.

무척 둔중하고 무거워 보이는 망치!

아까부터 뇌력을 호수에 뻗치는 범인은 아마 저놈일 것이다.

‘신력 때문에 보호받아서 화안금정이 아닌 육안으론 보이지도 않는군. 대단한 방어다…….’

나는 약 십여 장 앞에 있는 저 거대한 망치를 화안금정으로 주시했다. 보나마나 저 망치 주변에도 신력을 이용해 방어막이 펼쳐져 있을 게 뻔했기에 그냥 무작정 손을 뻗었다가는 쓴맛을 볼 게 뻔했다. 나는 신력의 방어막을 힘으로 파괴할까 생각하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뇌전망치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무척 고명(高名)한 신격이 사용하던 것이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제 기능을 잃고 깡통처럼 변해 버릴지도 몰라.’

내 경험상 극고(極高)한 격을 지닌 유물들은 자기만의 의지를 갖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칠요와 칠요의 정령 같은 것들이었다. 만일에 억지로 그런 유물을 취하려고 하다가 의지를 지닌 유물에게 거부당하면 아무리 대단한 신이라 해도 그 유물은 절대 쓰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악신들이 굳이 그 유물을 타락시켜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타락한 유물은 결국 원래 능력보다는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건 칠요에 못지않은 무기로 보인다. 그런데 저런 강력한 신의 무기가 왜 이런 외딴 연못에 봉인되어 있었던 거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좀 더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수상쩍었기 때문에 좀 더 단서를 얻어야 저걸 온전히 얻을 수 있을 듯했다.

잠시 수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나는 호수바닥에 있는 또 하나의 유물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음, 저건?’

엄청난 기백을 지닌 창!!

“……!!”

세, 세상에!

미쳤다!

방금 전에 봤던 뇌전의 망치도 장중한 기세를 지니고 있었지만, 저 창은 뭔가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다. 매끈하게 뻗어 있는 새하얀 창신(槍身)은 물론이고 창 그 자체에서 가공할 만한 무련(武練)의 기백 그 자체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무인(武人)만이 느낄 수가 있는 강고하며 철혈(鐵血)과 같은 기상 그 자체가 창의 형태로 벼려져 있는 느낌이었다.

혼(魂)이 우주를 꿰뚫는 듯한 아득한 느낌 - !!

나는 저 창을 본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 갖고 싶다!!’

어째서일까. 그 어떤 명검을 보아도 그렇게까지 큰 욕심이 난 적은 없었지만 지금 저 창을 본 순간 나는 무척 순수하게 창에 대한 탐욕이 들끓어 올랐다. 내가 주로 쓰는 무기가 검이지만 창 또한 오랫동안 수련했기 때문일까? 내가 저 창을 든 순간 무인으로서의 경지가 껑충 뛰어오를 것만 같은 기분에 홀린 듯이 그 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지. 일단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 해. 그것보다 저 창은 틀림없이 해방칠요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30번 전생하면서 보아왔던 모든 무기 중에 최고일지도 모른다. 해방 칠요의 힘이 정점에 도달하는 정도는 되어야 저 창에 비견할 수 있으리라!

도대체 저 창은 무엇일까?

아마 신(神)이 쓰던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나는 의문점과 호기심을 품은 채 좀 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리고 약 오십여 장 내의 수중바닥을 들여다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뇌전망치와 신창뿐만이 아니군. 또 한 자루의 검이 있다…….’

촤아아아

또 하나의 신병(神柄)이 호수바닥에 꽂혀 있었다. 다만 이번의 무기는 검(劍)이었는데 검이라기엔 날이 무척 투박하고 마치 식물의 줄기처럼 삐뚤빼뚤했다. 저래서야 뭔가 벨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는데 나는 그 검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무척 강력한 빙령(氷靈)이 느껴진다. 아까 봤던 뇌전망치의 뇌령에 못지않군. 그렇다면 저것은…….’

빙마검(氷魔劍)!

아마 틀림없이 마검이라고 불릴만한 것이리라. 게다가 저렇게 강대한 속성을 품고 있는 마검은 도저히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고귀한 것이었다. 저것 또한 칠요 중 수요에 맞먹는 유물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순간 황당해졌다.

‘세상에. 이런 강력한 신병들이 이런 곳에 한데 모여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나는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음. 그러고 보니 저 무기들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칠요와는 다른 점이었다. 칠요는 만들어질 때 인신공양을 받은 경우도 많은 데다가, 칠요의 제작자 자체가 삼황오제와 [옛 지배자] 들이었기에 당연히 마기(魔氣)가 스며들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발견한 3개의 신병들은 하나같이 그런 마기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정순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 더 이상은 신병이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 있지는 않군. 그리고 이 세 개의 신병은 각각 간격을 두고 삼각형(三角形)을 이룬 채 꽂혀 있다.’

이른바 이 또한 삼재(三才)의 방위인 것인데 이게 우연인 것 같지는 않았다. 삼재의 도형은 서양 마술에서도 깊은 주술적 의미를 갖고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아마 삼재의 방위에 세 개의 신병을 둠으로써 보물을 보호하는 결계를 극대화시킨 것일거라 추측이 되었다.

그렇다면 얘기는 간단하다. 이 삼재의 방위를 파괴할 수 있다면 신병을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나는 탐색을 끝내고 일단 호수에서 빠져나왔다.

촤악

“이강룡. 내가 호수 밑바닥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들어보시오.”

나는 이강룡에게 내가 봤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이강룡은 큰 호기심을 느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호오, 그거 재밌는 얘기군. 세 개나 되는 절세신병이라?”

“뭐어…… 근데 힘으로 부수려 하면 자칫하다가는 세 개 모두 쓰지 못할 가능성이 있소. 뭔가 묘안이 없겠소?”

“흐음. 원래라면 뛰어난 서양의 정령마법사를 불러오던가 고대신(古代神)에게 축원(祝願)하여 허락을 받은 후 획득하는 게 정석일걸세. 헌데 그만큼 강대한 비보(秘寶)라면 이 방법도 통할지 의문이겠군.”

“전자는 인간의 힘이 보물의 힘에 미치지 못해서 같고, 후자는 왜 안 되는 거요?”

“보물의 주인은 틀림없이 고대신 중에서도 강력한 존재일세. 고대신 중에서도 투신(鬪神)이라 불릴만한 존재 아니겠나? 허나 내가 살던 시대에 인간이 축원을 올릴 수 있는 고대신들은 대부분 격이 낮은 존재였기 때문이지.”

“흐음!”

“격이 높은 자들은 대부분 [옛 지배자]에게 당해서 봉인되거나 아니면 아예 협정을 맺고 은거하고 있던 상황이었네.”

그런 상황이었구만…….

나는 새로이 알게 된 신들의 정보에 고개를 주억거렸고 이강룡은 호수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마 호수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신병들의 원래 주인은 내가 방금 말했던 고대 전쟁에서 패배한 고대신들일 걸세. 아주 먼 옛날에 [옛 지배자]와 북구 서방대륙을 지배하던 고대신 일족이 격돌한 전쟁이 있었으며 그 전쟁을 라그나로크라고 불렀다고 알고 있네.”

“라그나로크? 처음 듣는구려.”

“그쪽 언어로는 최후의 전쟁이라는 의미같더군. 라그나로크 이후 북구 서방의 고대신 일족은 몰락하였고 그 잔존세력이 드루이드들과 연합하여 서방의 수호자 일족에 합류했다고 알고 있네.”

“흠…….”

“어찌됐든 그들은 패배하긴 했어도 본디 고명한 신격. 자네 추측대로 섣불리 손대면 위험하겠지.”

“그래서 방법을 찾고 있잖소. 뭐 깔끔한 방법 없겠소?”

“…….”

이강룡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엔 한 번 나도 잠수해보겠네. 직접 봐야 알 수 있겠어.”

“갑시다.”

풍덩

이강룡과 나는 아까 보물을 발견했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꽤나 보물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서 전음을 보냈다.

[아! 번개의 힘을 조심…….]

꾸웅!!

[헉!!]

아니나 다를까 번개의 망치에서 토해진 강렬한 뇌전의 광선이 갑작스레 이강룡의 가슴을 강타했다. 나는 아까 저 뇌전의 위력을 직접 느꼈기에 깜짝 놀랐다. 웬만한 마족 따위는 순식간에 섬멸할 수 있는 위력일 텐데 이강룡이 이 일격에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강룡은 그저 따끔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피 한 방울 안 난 것이다.

[진작 말해주지 그랬나. 하긴 알아도 못 피할 거 같긴 하지만.]

[아, 아니…… 그거 굉장히 위력이 강하던데 어떻게 멀쩡한 거요? 무림인의 호신강기 따위로는 절대 못 막는 거였소.]

농담이 아니라 백련교주가 펼치는 호신강기라도 관통당할 정도로 강한 뇌전이었다. 그런걸 맞고도 멀쩡한 이강룡이 이해가 안 되었다.

이강룡은 씩 웃었다.

[나는 고대신의 가호로 모든 고대신의 신력에 대단히 큰 저항력을 갖고 있네. 그래서 자네가 아까 직접 느꼈던 충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력이 감소되지. 원래 위력의 일 푼도 안 되지 않을까?]

[……!!]

[사실 내가 용병시절 주로 싸우던 대상은 대개 [옛 지배자] 진영의 악신이었기에 별 쓸데없는 가호를 다 줬다 생각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군.]

고대신의 가호 덕분이었나……!!

다행히도 그 이후로 뇌전망치에서는 더 이상 뇌력이 날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둘러보며 신병들의 배치를 확인하던 이강룡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자네가 우려하던 대로야. 이 배치대로면 강제로 하나의 유물을 지키는 결계를 파괴하는 순간 나머지 2개의 무기에서 신력이 뿜어져 나와서 연쇄파괴가 일어날 것일세. 유물의 물리적 형태는 그대로일지 몰라도 유물이 보유하고 있던 신령스러운 기운이 모두 소멸할 걸세.]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사라지면 그건 그냥 평범한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끄응. 역시…….]

[아무래도 자네는 차례를 건너뛰고 들어와 버린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원래 여기는 바로 들어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거지. 이 연못의 뇌전을 흡수할 수 있는 보물이 따로 비장(祕藏)되어 있는 1차 던전(dungeon)이 따로 존재하며, 그 보물을 얻은 후에 시련을 통과할 고대신의 후계자라는 인정을 받은 후에야 도달할 수 있는 장소일 걸세. 그런데 중간단계를 모두 뛰어넘어 버리는 바람에 해법(解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난관이 된 걸세.]

[…….]

[본디 이 연못의 뇌전을 전부 인간이 흡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누가 하겠나. 자네는 이 유적을 생성한 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청객이며 침입자에 지나지 않아.]

그, 그런 건가?

내가 상황을 이해하고는 멍한 표정을 짓자 이강룡이 말을 이었다.

[이런 경우 외법(外法)을 써서 해결할 수밖에 없어. 정상적인 파해법은 이미 존재치 않아.]

[외법이라는 건…… 꼼수 말이오?]

[그렇지. 규칙을 벗어난 영역에서 파해를 시도하는 게 옳을 듯하군. 다만 무식한 파괴력만으로 밀어붙이는 건 꼼수라 할 수 없네.]

[…… 뇌신류의 종사라면, 원래 꼼수 같은 거 쓰면 안 된다고 충고해주는 게 정상 아니오?]

[원리원칙대로라면 그렇지만 세상이 참 쉽지가 않더군. 꼼수를 안 쓰면 죽을 위기가 너무 많아서 나도 꼼수를 많이 쓰면서 살아남았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다소의 편법은 어쩔 수 없지.]

[…….]

이강룡 이 인간은 대체 서방에서 고대신의 용병으로 살면서 무슨 일을 겪은 거지…….

나는 잠시 기가 막혔지만 도리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한동안 꼼수는 좋지 않은 거라 생각하고 최대한 정석으로 부딪히려 했지만…… 이미 정석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무작정 꼼수를 봉인할 필요도 없지. 애초에 여기는 무(武)의 영역조차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꼼수는 내 주특기 영역이다.

최대한 잔머리를 굴려서 이 유적을 파해해 주지!

‘흠…… 그렇다면……!!’

그 순간 번뜩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잠시 후 합장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트리무르티!!

화앗

나는 트리무르티의 영역에 들어가서 홍옥을 기점으로 3개의 영역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각각의 영역에 [힘]을 분배하며 생각했다.

‘저 3개의 신기에 담겨 있는 신력은 전혀 내가 알지 못하는 신력이야. 애초에 갖고 있지도 않아. 그래서 신대도시 칼파에서 3대 천축신의 신력이 담긴 천상윤회옥을 복제해서 방어체계를 무너뜨린 방식은 쓸 수 없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신력이라 해서 방법이 없진 않다. 반대로 더욱더 이용하기 쉬울 수도 있다.

다만 시행착오가 필요할 뿐이다.

‘…… 어디 해 볼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상권(商權)의 동전을 창조한 후 손가락을 튕겨서 동전을 하나의 영역에 집어넣었다.

티잉

상권(商權)의 동전, 세성(歲星)의 뇌령(雷靈), 전욱의 시간조작!

이런 조합을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상권의 동전이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만 같은 느낌! 나는 두근거리며 조합의 결과를 지켜보았다.

치이이잉!!

명동하는 뇌음(雷音)과 함께 동전이 시퍼런 번개를 머금었다. 나는 이 동전의 정확한 효과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 시험해보기 위해 청뢰(靑雷)에 잠식된 동전을 거대망치를 향해 날려 보았다.

무슨 일이 생길까?

이윽고 거대망치를 감싸고 있는 새하얀 신력의 방어막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청뢰의 동전이 방어막에 부딪혔다. 그러자 갑자기 동전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치리리링!!

쿠구구

잠시 폭음과 함께 진동이 울렸다. 그러나 동전만 사라졌을 뿐 거대망치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나는 실패라는 생각에 투덜거렸다.

[에잇 젠장. 이 조합은 별로군.]

[백웅. 트리무르티를 쓴 건가?]

[그렇소.]

[어떤 조합이지?]

내가 조합을 이야기해 주자 옆에 있던 이강룡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그 효과를 알 것 같군. 꽤 쓸 만한 효과야.]

[응?! 효과 있소?]

[잘 보게. 저 신력의 방어막은 원래보다 훨씬 더 약해졌어. 두께가 절반 이하가 되었지.]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내가 그 변화를 그제서야 알아채자 이강룡이 말을 이었다.

[동전은 매개체이고 뇌령은 연료이며 시간조작은 결과일세.]

[무슨 말이오?]

[즉 방금 쓴 능력은, 동전에 뇌령을 많이 불어넣을수록 [작은 굴레]를 많이 움직여서 동전에 접촉한 물체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게 되는 능력인 걸세.]

[……!!]

[트리무르티를 써서 그런 거겠지만 그 자체로 대라신선의 술법을 한참 초월하는 강대한 능력이야. 그 동전 덕분에 저 뇌전망치를 보호하는 신력의 방어막은 크게 약화되었군.]

동전이 신력방어막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서 약화시켰다는 말인가!

나는 크게 기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주 좋군!! 그러면 한 번 더 같은 능력을 써서 저 방어막을 완전히 달걀껍질처럼 만들겠소.]

[잠깐 기다리게.]

[왜 그러시오?]

나를 제지한 이강룡이 전음을 보내왔다.

[나쁜 능력은 아니지만, 왠지 이 상황에 어울리는 파해법은 아닌듯싶군. 결국 과정이 다를 뿐 [작은 굴레]를 조작하는 결과니까 말일세. 좀 더 괜찮은 조합을 시도해보는 게 어떤가?]

[흐음…… 그렇게 말해도 언뜻 떠오르지 않소.]

[자네는 수많은 종류의 ‘힘’을 갖고 있는 듯하군. 여태껏 한 번도 안 써본 능력을 먼저 써보는 게 어떤가?]

[한 번도 안 써본 능력?]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네는  왠지 쓰던 것만 쓰는 기분도 드는군. 수많은 모험을 하며 많은 능력을 비축해 놓았을 건데 잘 생각해보게.]

[…….]

내가 한 번도 조합에 써보지 않은 권능?

그런 게 뭐가 있지?

있긴 있는 거 같은데 하도 기억이 방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다.

‘아…… 맞다…… 이거 받아놓고 한 번도 안 썼네?’

문득 나는 과거를 회상하다가 마침 한 번도 안 썼던 능력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었다.

‘아니 이걸 왜 안 썼지? 굉장히 강한 능력인 건 틀림없는데…….’

이 능력을 줬던 주체들을 생각하면 이 능력 또한 내가 지닌 권능 중에 손꼽히는 강력한 게 틀림없다. 나는 이렇게 강한 걸 갖고 있으면서도 왜 안 썼나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어째서인지 깨달았다.

껄끄럽다.

이걸 썼다가는 능력을 준 주체들이 찾아올까 봐 무척 껄끄러웠던 것이다.

여태 신과 관련된 권능을 썼다가 세상이 뒤집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 세계는 수련세계. 그 신격들은 아예 존재치 않아. 맘껏 써봐도 되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주언을 배운 대로.’

폭광(暴狂)의 가면(假面)이여 임하거라.

치링!

속으로 주언을 암송한 다음 순간 내 손 앞에 폭광의 가면이 소환되었고 나는 곧장 세 개의 영역 중 하나로 던져넣었다. 그리고 연이어서 다른 두 개의 가면도 던져넣었다.

기만(欺瞞)의 가면(假面)과 음모(陰謀)의 가면(假面)이 나머지 두 칸을 채우는 순간, 나는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직접 가면을 쓰기는 부담스럽지만, 트리무르티의 재료로 쓰면 상관없겠지.”

그렇다.

지금 내가 조합한 것은 과거 삼황오제 중 삼제(三帝)가 내게 준 세 개의 가면! 특히 폭광의 가면은 전욱이 준 거라서 더욱 기억에 남았다.

이 하나하나의 가면은 강대한 권능이면서 제약이라서, 나는 그 당시에 이 권능을 쓰는 걸 무척 주저했다. 왜냐하면 삼황오제가 황제 공손헌원에게 받은 제약이 나한테도 계승될까 봐 꺼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련세계인 데다가 직접 가면을 쓰지 않고 권능의 재료로 털어놓는다면 걱정할 게 없다!

위이이잉……!!

세 개의 가면이 각각의 영역을 차지하며 빛을 내는 순간, 나는 그 각각의 가면에서 안광(眼光)이 흘러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세 개의 가면이 회전하더니 중앙의 홍옥 앞에서 하나의 가면으로 합쳐지는 것을 보았다.

쩌엉!!

트리무르티가 끝나자 내 손에는 세 개의 가면이 지닌 특징이 합쳐진 듯한, 무척 화려한 가면이 들려 있었다.

‘뭐야? 세 개의 가면을 조합하면 한 개의 가면으로 변하는 거야?’

이런 적은 처음이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내가 눈을 멀뚱멀뚱 뜨자 이강룡이 나를 재촉했다.

[강력한 유물을 탄생시킨 건가? 아무튼 뭐든 간에 시도해 보게.]

[어…… 그게…… 이게 가면이라서…….]

[가면이면 얼굴에 쓰면 되겠구만 뭐가 문제인가.]

[…….]

왜지? 평소엔 가면을 잘만 썼는데 왜 이 가면을 쓰는 건 주저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잠시 후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 이 가면은 엄청 강해. 평소에 썼던 가면과 차원이 달라…….’

당연하다.

삼황오제 중 삼제의 권능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걸물(傑物)!

따지고 보자면 황제 공손헌원이 태초에 지니고 있던 권능에 무척 가까이 다가간 신물인 것이다.

자칫했다가는 내가 이 가면을 통제하기는커녕 가면에게 의식이 먹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불안감! 그 불안감이 나를 멈칫거리게 한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내면에 알 수 없는 조소의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래봤자 일개 가면인 것을.

…….

뭐야, 나 갑자기 왜 이렇게 감상적으로 변한 거야? 나는 나도 알지 못하는 마음의 요동에 잠시 당황하다가 고개를 털고는 천천히 삼제의 권능을 조합시킨 가면을 썼다.

그 순간이었다.

파앗!

나는 가면을 쓰자마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했다.

‘파…… 파해법이 뭔지 알아. 뭔가가 내게 그걸 내게 가르쳐 준다…….’

그것이 바로 제곡이 내려준 음모(陰謨)의 가면이 지닌 능력.

모든 종류의 신력에 대적하는 인과를 자동으로 생성해 준다!

나는 홀린 듯이 양손을 뻗어서 신력을 마치 실가닥처럼 뻗쳐서 세 개의 신기를 이루는 방어막에 접촉했다. 그리고 실 같은 신력이 모두 접촉을 하고 나자 그 실을 통해서 기만(欺瞞)의 가면이 지닌 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동화(同化)!

끼이이잉 -

마치 철을 긁는 듯한 기이한 이명과 함께 신력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호 금천이 내려준 기만의 권능에 의해 내가 가진 신력이 상대의 신력을 해석해서 잠시동안 그 신력의 파장과 동일하게 의태(擬態)를 하는 능력이었다.

잠시 후 세 개의 신력 방어막에 이어져 있던 내 신력의 실타래들은 제각각 첨단(尖端) 부위가 완전히 각 신력과 동화해 있었다. 전혀 거부반응도 생기지 않았고 여태껏 느껴지던 신력 방어막의 반탄력도 사라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기만의 가면이 지닌 고유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신력을 통해서 마치 활화산 같은 힘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수한 완력 그 자체를 실을 통해서 전달하는 과정이었다.

꿀렁 꿀렁

공급되던 힘은 처음에는 그리 대단치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증폭되었다. 그 힘이 계속 쌓이는 동안에도 증폭율은 전혀 감소하지 않았고 이윽고 지상계의 단위로는 절대 측정할 수 없는 수준까지 물리적인 파괴력이 증대되어 있었다.

‘이것이 무한의 완력…….’

전욱이 내려준 폭광의 가면만의 고유능력!

물질계에서 이론상 무한에 가까운 물리력을 사역할 수 있는 능력!

잠시 후 그 미증유의 물리력이 한순간에 쌓여서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나는 신력의 방어막이 동시에 붕괴하자 개별적인 자폭장치가 전혀 발동하지 않는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제곡이 준 음모의 가면은 그러한 고대신 결계의 속성마저 처음부터 읽어내서 파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제곡이라는 혼돈의 신이 태초부터 지니고 있는 영성이었기에 아무리 고대신의 격이 높다 한들 무효화시킬 수가 없는 절대적인 상성이었다.

“……!!”

가, 강력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소호금천, 제곡, 전욱 세 명의 권능을 모두 사용해서 고대 투신의 결계를 파해 한 것이다!

쏴아아앗

그리고 결계를 파해 한 순간 나는 얼굴에 씌워져 있던 가면이 가루가 되어 소멸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내가 지니고 있던 방대한 신력이 매우 크게 소모되었음을 알아차렸고 현기증이 나서 휘청거렸다.

“큭…… 일회용인가?”

아무래도 일회용이라는 제약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게 그런 제약이 붙어 있더라도 소름끼칠 정도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엔 그저 고대신의 결계를 파괴하는 데 썼지만…… 만일 대신전투(對神戰鬪)에서 이 능력을 쓴다면……!!’

나를 상대하는 자는 한 번에 혼돈의 삼제를 상대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때 전욱이 나한테 이 능력을 주면서 굉장히 선심쓰는 듯 생색내는 게 이해가 안 됐는데 그럴 만하군.’

굳이 세 개의 권능이 조합된 가면을 쓰지 않더라도 하나하나의 가면이 무척 강력했다. 아마 필멸자 수준에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순간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근데 하나하나의 능력이 평소 그 3명의 신이 쓰던 능력의 속성과는 완전히 다른 거 같은데? 왜 그런 거지?’

전욱의 폭광은 비슷해 보였어도 제곡의 음모, 소호의 기만은 평소 그들이 다루던 힘의 속성이 아니었다. 특히 소호는 단순무식하게 파괴광선이나 블랙홀을 날리는 게 주 전투방식이었는데 기만의 능력은 무척이나 기교가 필요한 의태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강룡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 자네처럼 강력한 존재는 태어나서 본 적이 없네.]

[칭찬…… 고맙소. 헌데…….]

[뭐 또 궁금한 거 있나?]

나는 방금 느낀 의문점을 이강룡에게 이야기했다. 왜인지 몰라도 이강룡은 무척 이런 류의 이야기에 달통해 있어서 쓸모있는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내 말을 경청한 이강룡이 대뜸 대답했다.

[간단하군. 그 가면은 태초에 봉인된 그들의 능력일세.]

[태초에 봉인되었다고?]

[그래. 황제 공손헌원이 그들에게 가면을 씌워서 약화시킨 걸세. 원래 그들은 그 능력도 쓸 수 있었지만, 가면에 봉인시킨 후 두 번 다시는 쓸 수 없게 된거라 할 수 있네. 물론 그 대신에 오제들은 타 [옛 지배자]에 비해 무척 자유롭게 지상에 간섭할 권한을 얻었으니 무작정 손해는 아니겠지만.]

[……!!]

[전욱은 원래 폭광도 쓸 수 있었던 거고 소호도 원래는 기만 능력을 쓰면서 싸웠던 걸세. 물론 주 능력이 아니라 보조능력 개념이었겠지만.]

[그, 그렇군…….]

그렇게 치면 지금 내가 얻은 가면의 3신 합체는 생각보다 더 대단한 능력인 거 아닌가……?

내가 내심 기분이 좋아서 흥분하고 있을 때 이강룡이 말했다.

[이제 저 신병들은 완전히 방어가 풀렸어. 단 영기(靈氣)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 조심하게.]

[영기가 날 공격할 거란 말이오?]

[저만한 격을 지닌 신기는 자기 의지가 있지. 그래서 자네를 시험하려 할 가능성도 커.]

[음. 그렇긴 하지.]

[자, 하나하나 거둬들이게.]

나는 빤히 전방을 바라보다가 제일 먼저 창을 향해 헤엄쳐 갔다.

‘역시 이 창이 제일 갖고 싶어.’

이 창은 정말 엄청난 창이다. 딱 봐도 무인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는 엄청난 기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를 수련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었다. 그건 신기나 영기와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내가 창을 손에 잡는 순간이었다.

쏴아앗

갑자기 창에서 새하얀 영기가 쏟아져 나오더니 새하얀 형체를 만들어 내었다.

백전연마의 노전사(老戰士)!

고오오오!!!

한쪽 눈이 애꾸인 그 노전사에게서는 가공할 투기(鬪氣)가 느껴졌다. 그 투기가 어찌나 강한지 저만치에서 바라보던 이강룡이 노전사의 기백 때문에 움찔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저릿저릿

‘무리도 아니지…….’

지근거리에 있는 나는 마치 거대한 폭풍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전사(戰士)가 도달할 수 있는 극의(極義)에 이미 올라서서 정점을 찍은 존재가 틀림없으리라.

이 노전사가 전투에 지니고 있는 집념과 의념(意念)은 가공할 만했다. 수많은 절세고수를 보아 왔지만 이 척안의 노전사만큼 뛰어난 기백을 본 적은 손에 꼽을 만했다.

실체도 아닌 영체이며 잔류사념일 뿐인데 이토록 강력하다니.

‘이건 분명 잔류사념이다. 본체의 힘에 비하면 1푼조차 안 되는 흔적에 불과한데…….’

생전에는 대체 얼마나 강력한 신이었을까?

이 자는 틀림없이 고대신 중에서도 최상위의 투신(鬪神)이었으리라. 이렇게 강력한 신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한쪽 어깨 위에 까마귀가 앉아있는 그 척안의 노전사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손에 창을 거머쥐고 있던 노전사는 한참 동안 나를 주시하다가 문득 증오가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로키…… 가면을 쓴 자여…… 네가 감히…… 우리를 또다시 농락하러 왔느냐!! 이 궁니르를 손에 넣으러 왔느냐!]

로키?

내가 그 말을 이해하려고 할 때 척안의 노전사가 갑자기 옆에 있던 창을 손에 잡으며 내게 투척했다.

[죽어라!!]

퍼엉!!

나는 그 순간 전혀 피하지 못하고 창에 머리가 꿰뚫렸다. 아니, 꿰뚫렸다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고 사실은 환영의 투념(鬪念)가 내게 날아온 것이었다. 환영에게서 의념 그 자체가 날아오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나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아아앗

척안의 노전사의 환영은 서서히 사라졌다. 아마 소멸된 후에도 너무나 원통했기 때문에 저절로 잔류사념이 나를 공격한 것이 분명했다.

[이…… 이게 무슨.]

고대 투신의 잔류사념이 저렇게까지 원(怨)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뒤에서 이강룡이 말했다.

[설마 했는데 오딘(Odin)이었군…….]

[오딘?]

이강룡은 수중에서 부그르르 거품을 한 번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신 중 최강의 투신(鬪神)으로 명성 높던 자로서 에시르 신족의 수장이며 신왕(神王)일세. 그리고 이곳은 오딘이 소멸한 장소가 분명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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