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9권 01화
나는 이강룡에게 전후사정을 이야기했다.
휘이이잉 -
동굴 밖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약 한 식경 동안 대략적인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이강룡이 문득 입을 열었다.
“사대신기를 보여줄 수 있겠나?”
“어려울 것 없소.”
치잉!!
나는 사대신기 중 아그니, 바루나, 바유를 차례로 꺼내서 보여주었다. 이강룡은 순간 감탄 섞인 소리를 내며 아그니에 손을 뻗었다.
“오오……!! 이것이……!!”
“아니 잠깐!!”
나는 기겁을 해서 이강룡의 손을 쳐내려 했지만 이강룡의 손은 마치 미끄러지듯이 무척이나 교묘하게 공간을 파고들었다.
‘극쾌(極快)를 지니면서도 기교를 잃지 않다니!’
절대 초절정 수준이 아니다!
나는 이강룡의 출수(出手)에서 그가 지닌 무공수준이 절대지경에 이른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과연 뇌신류 종사라 할 만했다. 하지만 나는 [흐름]을 읽을 수 있었기에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이강룡의 출수를 막아서 도중에 그의 손을 쳐낼 수 있었다.
타앙
이강룡의 손이 내 손의 경력에 튕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이강룡이 주춤하고 뒤로 물러섰다. 이강룡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자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사대신기는 허락받지 않은 자가 만지는 경우 갑자기 해를 끼칠 수도 있소. 아그니에 당해서 불타 죽고 싶소?”
“과연…… 내가 경솔했네. 사과하지.”
이강룡은 자신의 손을 털며 말을 이었다.
“내가 평생에 걸쳐 찾아다니던 게 바로 그 사대신기였기에 순간 내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네.”
“…….”
그러고 보니 이청운에게서 들은 대로라면 이강룡은 자신의 제자인 이청운에게 그저 무공을 완성시키러 떠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련교주에게서 들은 건 달랐지…….’
나는 백련교주의 말을 생각해 냈다.
[이강룡은 뇌신류를 떠나기 전 수신류에 들러 사대신기를 찾겠다고 한 후 서고를 이 잡듯이 뒤져서 자료를 찾았다. 나 또한 그가 자료를 찾을 때 도와주었고 그는 사대신기를 찾기 전엔 돌아오지 않겠다 했었다.]
그 당시 그저 책벌레였던 백련교주와 마주쳤던 이강룡! 그는 뜻밖에도 무공의 완성보다는 사대신기를 찾겠다는 의지를 백련교주에게 밝힌 후 그에게 도움을 받아 자료를 찾고는 사대신기를 찾아서 떠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수제자 이청운에게는 사대신기를 찾으러 가겠다 이야기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왜 그랬던 것이오?”
“흠! 과연 신적인 능력을 지닌 자답게 온갖 것을 다 알고 있군. 독고운천과도 얘기해보았나?”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책벌레 독고운천은 이후 절대지경과 원영신의 절대고수가 되어 수신류의 종사이자 백련교주이자 무림지존이 되었소. 나는 후대의 사람으로서 한때 그와 대적하기도 했지.”
“……!!”
이강룡이 크게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뭐, 이젠 그 또한 내 동료 중 한 사람이오. 나는 전생을 반복하며 어쩔 수 없이 그와도 손을 잡게 되었소.”
“흠…… 그랬군…….”
“내 질문엔 아직 대답을 안 해 주었군. 왜 이청운에게는 사대신기를 찾는단 얘기를 안 했소?”
그러자 이강룡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 나는 사대신기가 있다면 본교(本敎)가 다시 성세를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찾을 생각이었네. 허나 종사가 사대신기를 찾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교단 자체가 존속할 수가 없지. 나는 이청운 그 아이가 뇌신류의 종사로서 튼튼하게 교단을 떠받쳐주었으면 했고, 또한 내가 지닌 업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세.”
“그런 거였군…….”
“헌데 참으로 기묘한 일이군…… 자네가 전생자라는 존재이며 이 세계는 그저 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이고 그마저도 천암비서라는 책 속에 있을 뿐이라니…….”
이강룡은 문득 껄껄 웃었다.
“으하하하. 솔직히 내가 사대신기를 찾아 나서기 전이었다면 나를 놀리는 건가 싶었을 걸세. 허나 나름대로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군.”
나는 그의 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소리요? 사대신기를 찾아 나선 후 당신에게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겼던 거요?”
이강룡이 내 말에 대꾸했다.
“뭐, 심경의 변화라고 할 것 까지는 아니고…… 나는 사대신기를 찾기 위해 무림(武林)의 영역을 떠나서 [어둠]에 발을 담갔다네. 백련교 또한 종종 퇴치하던 이계의 마물(魔物), 그리고 사악한 이계의 종족들이 거주하는 그 세상에 말일세…….”
“아…….”
“흔히들 마도(魔道), 마계(魔界)라고 하던 그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니 말도 안 되는 일이 펼쳐지더군. 외계의 마족들과 신적인 존재들의 수준은 내가 머물던 무림과 차원이 달랐어. 그렇다 보니 여러 번 모험을 하기도 했고 그 와중에 새로운 힘도 얻곤 했네만…… 나는 실패했지.”
“실패했다는 게 무슨 말이오?”
그러던 이강룡이 자신의 목에 새겨져 있는 기묘한 주술각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이는가?”
“어…… 그건 뭐요?”
“자네는 아마 내가 죽기 전의 육체를 되살리면서 회춘을 적용시킨 모양인데, 그래도 이 주술각인은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군. 사실 이게 내가 죽은 직접적인 원인일세.”
“그 주술각인이 당신을 죽였단 말이오?”
이강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각인은 노화(老化)의 저주일세. 이 각인이 새겨진 자는 100배의 속도로 늙게 되지.”
“……?!”
“본디 나는 절대지경에 이른 데다 뛰어난 내공이 있어서 200년쯤은 거뜬히 살 수 있었네만 이 각인을 지우지 못해서 몇 년 가지 못해서 늙어 죽게 되었던 걸세. 1년만 있어도 100년을 늙는 셈이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말했다.
“그, 그런 일이…… 아니, 당신 정도 되는 자가 고작 저주 하나를 해주(解呪)하지 못해서 죽었다고? 차라리 백련교에 되돌아가서 해주를 연구해보지 그랬소.”
이강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백련교에 되돌아가도 방법은 없었을 것이네. 이건 [옛 지배자]에게 직접 당한 저주니까.”
“뭐라고?!”
“으음…… 나는……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인 후 [용병]처럼 활동했었네. 고대신에게 의뢰를 받아 사신(邪神)의 소굴을 소탕하는 역할을 많이 했지…… 그런데 그러다 보니 서방에 만연해 있던 [옛 지배자]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 것일세. 고대신조차도 내 저주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했었지.”
“…….”
“시간이 없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저주가 폭주하더라도 사람들의 피해가 없을 만한 곳을 골라서 그곳에 내 무공과 심득을 남긴 채 조용히 죽기로 했었던 걸세. [옛 지배자]의 저주는 악독하기에 내가 죽고 나서도 주위에 전염될 수 있으니까.”
“그 장소가 이 변황의 외딴 동굴이었던 거구려.”
“그런 거지.”
“…….”
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참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후대에 알려지진 않았어도 사대무류의 종사들도 참 많은 노력을 했구나. 그러나 일개인의 노력으로 바뀌는 건 거의 없었던 것인가…….’
그리고 왠지 고대신이라는 자들도 짜증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이강룡에게 사대신기의 정보를 주겠다는 미끼로 더러운 일을 잔뜩 시켜놓고는 막상 이강룡이 [옛 지배자]의 저주에 걸리니까 팽해 버린 게 아닌가? 그런 자들이 선(善)을 자처할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잡생각을 털듯이 고개를 털며 아그니를 들고 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가만있어 보시오. 한 번 아그니로 그 각인을 제거해 보겠소.”
“할 수 있겠나?”
“흥…… 아그니로 그게 안 되면 대체 뭐가 가능하겠소.”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곧장 아그니에 신기를 불어넣은 후 이강룡의 목을 지졌다.
지지지직!!
잠깐 살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날 정도였지만 이강룡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통을 참는 듯했고 그 인내력은 과연 뇌신류의 종사라 할 만했다. 그리고 잠깐 있다가 아그니를 떼자, 이강룡의 각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거울을 창조해서 그에게 보여주자, 이강룡은 크게 놀란 듯했다.
“……!!”
“보시오. 간단하잖소? 사대신기로 못 지우는 저주 같은 건 없소.”
“그, 그렇군…….”
그렇게 한동안 멈춰 서 있던 이강룡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마음을 정했네!! 자네가 원하는 그 무엇이든, 나 뇌신류 종사 이강룡은 자네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하겠다!”
사대신기를 써서 저주의 각인을 지운 게 이강룡에게는 인상 깊게 남은 모양이었다. 나는 구차하게 이런저런 협상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하며 말했다.
“어…… 음…… 그…… 당신이 선대 뇌신류의 종주이지만 경어는 앞으로도 안 쓰겠소. 괜찮겠지?”
“물론. 이미 자네는 신이나 다름없는데 그딴 게 무슨 상관이겠나?”
“그럼 또 하나…… 사실 수련에 관한 것인데.”
나는 이광에게 얽힌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한참이나 듣고 있던 이강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는 내게서 천화뇌룡신공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단 말이군. 그렇지 않은가?”
“그렇소.”
“흠…… 하지만 나로서도 그 이광이란 자가 익힌 천화의 경지는 감도 잡히지 않네.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무엇을 말이오?”
“내게도 그 구궁파천뢰와 사신지혼을 가르쳐 주게. 나 또한 익히다 보면 이광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먼저 알아서 자네에게 알려줄 수가 있겠지.”
“당연히 그리할 생각이었소. 앞으로 같이 열심히 수련해 봅시다.”
내가 또다시 수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려는 찰나, 이강룡이 입을 열었다.
“아, 수련 장소는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하세나.”
“응?”
“천화뇌룡신공은 극한의 뇌기(雷氣)에 감응하는 성질이 있기에 뇌력이 충천한 곳일수록 수련속도가 빠르다네.”
“그런 곳이 있소?”
“고대신의 용병으로 살면서 봐둔 곳이 있지. 내가 안내하겠네.”
파앗 - !!
나는 이강룡을 따라서 빠른 경공으로 변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동안 뛰다 보니 변황에서 한 번 지나쳤던 지역을 스쳐 가게 되었고 나는 산 꼭대기에 있는 그 장소를 보자 잠시 멈춰 섰다.
“음…… 저기는…….”
“백웅. 왜 그러나?”
내가 뚫어져라 바라 보는 장소는 바로 내가 전생에서 비교적 초기에 가봤던 장소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장소를 소리 내어 말했다.
“주르반의 유적.”
서방 밀교의 고승이었던 카란 라마의 안내를 받아서 찾아냈던 배화교의 유적!
바로 저곳이 실질적인 배교의 본산이었으며 마왕 벽지상이자 시몬 마구스라고 하는 존재가 출현하는 장소였다.
우연이겠지만 저 장소를 스쳐 지나가자 나는 문득 호기심이 들었고 이강룡에게 말을 걸었다.
“이강룡. 잠깐 저기에 같이 가 봅시다.”
“흐음…… 사악한 유적 같은데…… 뭐 자네라면 문제없겠지. 가봅세.”
타닷
산 중턱에 있는 새하얀 사원, 주르반의 유적에 들어오자 예전에 기억하고 있던 장소인 제단이 보였다. 물론 이 수련세계에 도왕 벽지상이나 시몬 마구스 따위는 존재치 않기에 나는 예전에 느끼고 있던 농염한 사기(邪氣)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잠시 제단 근처를 둘러보다가 뭔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이건?’
미로 같은 통로의 안쪽, 커다란 벽에 붙어 있는 거대한 원판이었다. 원판은 굉장히 커다랬고 크기가 무려 이 장이 넘었다.
‘원판?’
그런데 알 수 없는 외계어가 가득 음각되어 있는 원판이라서 영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내 뒤를 따라와서 원판을 보던 이강룡이 입을 열었다.
“이건 외신도(外神圖)로군.”
“외신도? 그게 뭐요?”
“고대신에게서 배운 지식일세. 이 세계의 [굴레] 바깥에 존재하는 외신들은 그 숫자가 늘 정해져 있어서 수많은 마도사들이 희생을 치르며 그 외신들의 이름과 숫자를 조사했다더군. 그리고 그 외신들의 이름과 칭호를 상징으로 변환시켜서 기록해놓은 게 바로 외신도라고 하는 것이네.”
“…….”
“보게. 이 외신도의 정중앙에 0을 상징하는 글자가 있지. 이는 위대한 [아버지] 아자토스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정점으로 하여 여러 명의 외신들이 숫자와 함께 새겨져 있네.”
나는 설명을 듣다 보니 기가 막혀서 이강룡을 쳐다보았다.
“아니…… 뇌신류의 종사 맞소? 제갈사보다 더 마도에 능통한 느낌인데?”
“그런가? 나는 용병으로 살았던 시기에 사대 신기를 찾기 위해 워낙 마도지식에 몰두하며 살아서…… 어지간한 마도사보다 아는 게 많을 걸세.”
“…….”
이강룡은 기막혀 하는 내 시선을 무시하고는 손가락으로 외신도를 짚어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0의 아자토스 위에 있는 정북(正北) 방향의 존재. 이자는 1으로서 전지(全知)의 마신(魔神)이며 신왕(神王)으로 불리는 존재일세. 전 우주의 2인자라 할 수 있지.”
“으음…… 들어봤던 것 같군.”
“이 외신도는 일종의 위계도인걸세.”
“그렇다면…….”
나는 외신도를 잘 살펴보았다. 그리고 드문드문 해석이 되는 고대 외계어를 발견하고는 대충 의미를 알 수 있었다.
‘0의 [아버지]를 제외하고 외신의 총 숫자는 13명인가……?’
외신이 13명이라는 정보를 얻은 셈이 되는 건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이 원판이 움직여진다는 걸 깨달았다.
끼리리릭…….
끼리릭…….
“이거 원형으로 움직여지는구려.”
“허, 그렇군. 총 6개의 각각 다른 원륜(圓輪)을 움직이는 구조인가?”
“무슨 의미지?”
“…….”
한동안 생각하던 이강룡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 외신도는 현재 틀린 상태라는 말이겠군. 정해진 위치에 정해진 외신이 있어야 하며 그 이름이나 위계 또한 올바른 상태로 되돌려놔야 해.”
“그 말은…….”
“이 6개의 원륜을 올바른 위치로 만들어서 올바른 위계도를 완성한다면 숨겨진 무언가가 출현한다는 이야기일 걸세.”
“……!!”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세상에…… 주르반의 유적에 이런 게 또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전욱의 유적도 뒤지다 보니 새로운 게 또 나오긴 했지만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이강룡에게 말했다.
“이걸 힘으로 깨부수면 안 되겠소?”
“글쎄. 이런 건 그렇게 하면 절대 안 풀리는 걸세. 뭣보다 이런 류의 수수께끼에는 공통점이 있지.”
“어떤 공통점이오?”
“결국 그 마도사가 모시던 신의 위격(位格)에 따라 보상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것일세. 자네는 이 유적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던데 그 마도사가 어떤 신을 섬기고 있던가?”
이 곳을 지배하던 마도사는 시몬 마구스…….
그 시몬 마구스가 섬기던 신은…….
“…….”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 나중에 어떻게든 풀어야겠소.”
엄청난 보상이 예약되어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