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70화 (1,569/1,615)

전생검신 88권 20화

내가 막혀 있는 ‘벽’을 타파할 방법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첫째, 또 다른 삼재(三才)의 이치를 찾아서 지금까지 모아놓은 삼재에 덧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이치가 3개가 되니 그 자체로 삼재의 균형을 이루기에 힘이 더 강해질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생각나는 삼재의 이치가 없는데…….’

나는 끙 하고 고민하면서 두 번째 해결법을 생각해보았다.

‘두 번째는…… 상쇄(相殺). 삼재의 이치를 이용해서 과집중되어 있는 힘을 없애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있다.’

방금 전 윤회에 도달했을 때 느꼈다. 나는 삼재의 이치를 이용해서 힘을 최대한 통제하며 끌어올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통제에 쓰이는 삼재의 이치를 역(易)으로 돌려 상쇄에 쓰이게 한다면 그때까지 모였던 힘을 크게 없애 버리는 게 가능했다.

그러면 힘이 무척 많이 감소할 것이기에 그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부담감이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리라. 어떻게든 ‘여섯 번째’ 회전으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어렴풋이 삼재(三才)를 역(易)으로 작용시키는 방법은 알 것 같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한 번 통제에 쓰이던 축을 이런 용도로 써 버리게 된다면 그다음부터는 통제력이 크게 사라져 버린다는 게 문제다.

‘음…… 뭔가 지금으로서는 둘 다 딱히 답이 없는 느낌이군.’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고민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며 명상하고 있으니 슉 하는 소리와 함께 저만치에서 이광이 빠른 경공으로 오는 게 보였다.

“용케 안 죽었군. 뭔가 진전이 있었소?”

나는 그런 이광을 힐끔 쳐다보더니 씩 웃어주었다.

“있었다.”

“…….”

“무척 큰 성취가 있었지.”

“그렇소?”

이광은 내가 자신감 있게 대답하자 불쾌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광이 내 성취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자 내심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다만 크게 내색하지 않고 담담한 말투로 이광에게 말했다.

“한 수 가르쳐주랴?”

그러자 이광은 더더욱 불쾌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이제 ‘기초’는 뗀 것같아 보이는 데 내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소?”

이제 더 이상 내게 천화를 가르쳐주기 싫으니 적멸무극과 암야참을 가르쳐달란 소리였다.

물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기에 나는 능글맞게 대꾸했다.

“네 멋대로 정하지 마라. 아직 감각을 익혔을 뿐이지 네가 말한 대로 ‘속성’을 얻어낼 수 있는지는 시험해봐야 한다.”

“알았소. 기초를 떼고 나면 내게도 무공을 전수하는 것이니,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시오.”

“크큭.”

나는 이광의 몸이 달아 있는 것을 깨닫고는 내심 킥킥 웃었다.

‘저놈도 적멸무극과 암야참이 얼마나 강대한 절세무공인지 알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배우고 싶어서 평정심을 잃고 있구나.’

물론 내가 이광 좋을 대로 끌려가 줄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아주 차분하게 내가 사신지혼의 속성을 얻을 만큼 얻은 후에야 놈에게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우우웅

나는 다시금 사신지혼의 윤회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아까와는 달리 전력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소회전(小回轉)이었다. 아까는 가진 힘의 10할을 다 끌어올렸다면 이번엔 겨우 1할을 끌어올리는 수준! 회전의 크기가 작은 만큼 부하도 작았고 그 덕에 나는 아까와 달리 별다른 고통 없이 손쉽게 회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츠즈즈……!!

“오.”

나는 천천히 기운이 움직이면서 동시에 내 손바닥 위에 소구(小球)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찬탄성을 내었다.

‘확실히 이젠 이광이 말한 게 무슨 말인지 알겠군.’

무작정 빠르게 기운을 회전시키는 게 아니라 등속(等速)으로 운동을 시키면 마치 과일의 즙을 짜듯이 천천히 속성이 알아서 빠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너무 속도가 빠르면 이 현상이 생겨나기도 전에 다음 현상으로 넘어가서 그저 다음 회전의 동력이 될 뿐이므로 천천히 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돌리되 속도가 일정해야 한다…… 그 이유도 알 것 같군.’

츠즈즈

나는 그 사실을 세 번째 사신지혼에서 느낄 수 있었다. 속도가 균일하지 않으면 충분히 기운이 짜여 나오지 않는 데다가 그 기운의 크기가 들쭉날쭉했다. 이번엔 실수로 속도의 조정을 실패했는데 그러자 최초로 얻어낸 속성에 비해서 소구의 크기가 작았던 것이다.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소구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속성끼리 힘의 균형이 안 맞을 것이다. 그러면 천화 같은 고급 응용기를 쓸 수 없는 거겠지.’

속성은 속성끼리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만 한다.

사신지혼처럼 강대한 무공일수록 그 균형을 요구하는 수준은 심화 될 것이리라.

슈우욱

나는 지금의 숙련도로는 여기까지라는 걸 깨닫고 사신지혼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수많은 연습을 해야만 등속운동을 안정적으로 해내면서 속성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서 보고 있던 이광에게 말했다.

“이광. 천화(天華)라는 기술은 이 모든 속성이 균일(均一)한 크기로 균형을 맞춰서 조합되어야 하는 건가?”

“요체를 깨달았군. 바로 그것이오.”

이광은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창을 비껴잡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대회전을 하면서 감을 잡은 모양이군.”

“아까도 말했지만 원한다면 내가 얻은 성취를 가르쳐 줄 마음이 있다.”

“일 없소. 틀림없이 당신만의 이론으로 얻은 전인미답의 경지일 텐데 내가 그걸 들어서 뭐에 쓰겠소?”

퉁명스럽게 대꾸한 이광이 말했다.

“아무튼 당신이 대공(大功)을 얻은 건 사실이니 천화를 수련하기 위한 고급 요령을 하나 더 가르쳐 주겠소. 잘 보시오.”

타닷

부웅!

연무장 위에 오른 이광이 창을 크게 휘두르며 자세를 잡았다. 전형적인 뇌신류 창술의 기본자세를 잡은 이광이 자세를 잡은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사부. 나는 사실 이 수련세계에서 수련만 했던 게 아니오.”

“그럼?”

“이 세계는 현실세계를 완벽히 복사해놓고 인간 및 지적생물체만이 존재치 않는 세계. 그렇다면 저쪽 세상에 있던 기진이보(奇珍異寶)와 유적은 그대로 남아 있단 소리 아니겠소.”

“그렇지. 그래서 심수력도 치우의 심장을 찾은 것이고.”

“나는 약 삼 년의 시간을 들여서 변황(邊荒)에서 뇌신류의 전대 종사인 이강룡(李强龍)의 흔적을 찾아내었소. 나의 진짜 태사부라 할 수 있는 그분의 흔적을.”

“……?!”

뭣?!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광의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강룡!!

그 존재는 바로 뇌신류의 전대 종사인 이청운의 스승으로서, 확실히 이광에게 있어서는 태사부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다만 그 존재는 나로서도 그저 이청운에게 뇌신류의 역사를 듣다 보니 알게 된 인물로, 사실 30번 전생한 나조차도 이강룡을 직접 본 적은 없었던것이다. 정확히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표현이 맞았다.

‘이번 30번째 생에서 그냥 이광을 항렬로 찍어누르려고 끌어다 온 전설 속 인물에 지나지 않는데…….’

설마 이광이 전전대 종사인 이강룡의 흔적을 찾아냈다니!

하지만 나는 예전에 거짓말한 게 있었기에 더 이상 놀란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호오, 용케도 찾았구나.”

“그분께서는 변황 오지에 있는 이름 없는 사막의 동굴에서 최후를 맞이하셨더군. 가장 광풍(狂風)이 밀어닥치는 지역의 동굴에서…… 어째서 사부는 태사부를 그런 곳에서 돌아가시게 놔두었소? 적어도 그분의 유골을 수습해서 고향에 묻어드려야 했을 터인데.”

“…….”

아, 젠장…… 이런 데서 옛날에 질러놓은 거짓말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나는 말이 길어봤자 이광의 눈썰미에 더 궁지에 몰릴 뿐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기에 그저 우울한 척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의 뜻이었다.”

“……그렇소? 흠…… 그럴지도 모르지.”

이광은 별로 트집 잡지 않고 넘어가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그곳에서 이강룡 태사부께서 남긴 유진(遺塵)이라 할 수 있는 무공, 천화뇌룡신공(天華雷龍神功)을 얻었소. 그리고 그 천화뇌룡신공에서 요령을 얻어내어 사신지혼에 접목(接木)시켰고, 본류(本流)의 종사(宗師)에 대한 예우로 내가 얻은 필살기의 경지를 천화(天華)라고 지었던 것이오.”

“…….”

“사부도 천화뇌룡신공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 따로 설명은 하지 않겠소. 그러나 천화뇌룡신공을 숙련시켜서 익힌 자라면 이 한 수만 봐도 천화의 대략적인 심득(心得)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오.”

타앗!!

그 말을 끝내자마자 이광은 크게 발을 내디디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단숨에 천상제의 경공으로 다섯 번이나 허공을 박찬 이광은 순식간에 십여 장 위로 뛰어올랐고, 그 상태에서 그대로 자신의 창을 크게 휘두르며 지상으로 일섬(一殲)을 내쏘았다.

천화(天華)

천룡일섬(天龍一殲)!

꾸콰쾅!!

빛과 함께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연무장에 자욱한 연기가 흘렀다. 생각보다 광세절학 치고는 범위가 좁아 보였지만 나는 천룡일섬이 지상을 타격하는 그 순간을 확인했기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타격하는 마지막 순간에 파괴력이 급증했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연무장에는 딱 창날이 꽂힐 정도의 무척 좁은 파괴흔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흔적에 깃들어있는 것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집중도!

초고수끼리의 대결에서 필요한 것은 지형을 바꾸는 광역파괴력보다는 고수의 방어를 관통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공격력이라는 걸 감안 한다면 지금 이광의 천룡일섬은 가히 감탄이 나올 정도의 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점의 파괴력만큼은…… 내가 가진 무공 중에서도 비교할 만한 게 세 손가락에 꼽겠구나.’

이광이 첫 대면에 내게 쏘았던 창섬이 바로 저거였던 것 같은데 내가 용케도 막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천화 천룡일섬을 내심 평가하고 있을 때 땅에 내려앉은 이광이 말했다.

“충분히 느꼈을 테지만, 천룡일섬에 실리는 힘의 기전(機轉)은 회룡섬(回龍殲)과 뇌천비격(雷天飛擊)의 조합이오. 회전의 공정(工程)에 사신지혼의 회전을 동기화시켜서 축에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그러면 회전이 알아서 가속하면서 속성이 지닌 잠재력을 최대치까지 뽑아서 일점파괴력을 극대화시키지.”

“…….”

“다른 방식으로도 응용이 충분히 가능하오. 천화뇌룡신공을 익혔을 테니 지룡섬(地龍殲)이나 환우열광권(煥雨熱光拳)도 이미 알 것 아니오? 범위를 쭉 늘이든가 연타로 전환하든가…… 속성의 구체를 여기에 흡수시키는 요령만 익숙해지면 천화까지는 금방 도달할 수 있을 거요.”

“…….”

“흐음…… 사부 같은 초고수에게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주게 될 줄은 몰랐군. 사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나도 내가 익힌 무공을 좀 자랑해보고 싶었으니 양해해 주시오.”

이광은 그 답지않게 멋쩍은 듯 험험 거렸다. 아무래도 나한테 너무 자세하게 알려줘서 내가 그 설명을 듣고는 자기를 무시하는 거라고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니거든…….’

씨발…… 또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애초에 이강룡의 천화뇌룡신공을 배운 적도 없을뿐더러 회룡섬과 뇌천비격 또한 그 안에 수록된 무공일 테니 내게 있어서 이광의 설명은 외계어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 모른다고 가르쳐달라고 따지기에는 내가 이강룡의 제자라고 뻥 쳐 놓은 게 있었으므로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제야 이광을 상대로 놀려먹을 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는데 여기까지 와서 체면을 상해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화처럼 중요한 기술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우고 넘어가면 결국 내 손해다. 모르긴 몰라도 저 천화라는 기술을 제대로 익혀야 사신지혼의 제대로 된 전투법을 익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광이 수십 년에 걸쳐서 연구한 걸 받아먹는 셈이니 여기서 체면만 따지다가 못 배우는 불상사는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어떻게 해야 내 자존심도 지키고 실리도 챙기지?

“……!!”

순간 나는 무척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빙긋 웃으며 이광에게 말했다.

“물론이다. 듣자마자 바로 이해했으니 걱정 말아라, 하하.”

“과연…… 그걸 한 번 듣고 알았단 말인가? 짜증나지만, 당신은 뇌신류의 종사를 자처할 만하군.”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이제 나도 기초를 웬만큼 수련한 것 같으니 네게 약속대로 적멸무극과 암야참을 가르쳐 주마. 어떤 걸 먼저 배우고 싶으냐?”

“적멸무극이오!”

“망설임이 없군. 암야참보다 그걸 먼저 배우고 싶은 이유가 뭐냐?”

“적멸무극은 내가 과거 아수라에게 들은 대로라면 지상최강의 위력을 지닌 절세무공이오. 적멸무극과 천화를 조합한다면 심수력의 방어도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것이오!”

“……그래, 알겠다. 적멸무극을 가르쳐 주지.”

나는 그 후 약 칠 주야에 걸쳐서 적멸무극을 이루는 6대 무공을 하나하나 가르쳐주고는 수련법도 알려주었다. 내가 적멸무극을 배운 건 아니었지만 상세한 원리와 파해식까지 철저하게 가르침 받았기에 이론상의 수련법은 알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광은 천재답게 고작해야 칠 주야 만에 내가 가르쳐준 모든 것을 암기한 것 같았다. 이광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윽고 환희에 젖었다.

“이거면…… 할 수 있겠군. 충분히 심수력을 쓰러뜨릴 수 있겠어.”

“그런가?”

“사부는 이 적멸무극을 익히지 않았소?”

“그래. 이론만 알고 있고 수련은 안 했다.”

“아까운 짓을 했군. 이걸 익힌다면 충분히 최강이 될 수 있을 텐데.”

“최강이라…….”

나는 그렇게 대꾸하면서 생각했다.

‘이광…… 나라면 적멸무극이 아니라 암야참을 먼저 선택했을 것이다.’

이건 근거 없는 비하가 아니었다. 신역에 발을 디딘 나이기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이광의 적멸무극은 천화와 조합될 경우 심수력의 잠재방어력을 뚫을 만큼 강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었다. 뭐라고 이론은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적멸무극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암야참은 겉으로 드러나는 파괴력은 적멸무극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이광도 그걸 알기에 암야참 대신 적멸무극을 택한 거겠지만 사실 아니었다. 암야참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은 사실 심수력의 천적(天敵)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 과거 아수라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너한테 적멸무극은 못 가르쳐줘. 절대로 안 가르칠 거다.]

[그걸 배우면 넌 분명히 단판싸움에서는 세계최강이 될 거다. 구궁파천뢰와 결합할 수 있으면 틀림없이 그렇겠지. 하지만 결국 [길]을 수천 년 넘게 빙빙 돌아가게 될 테니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거다.]

…….

그때의 나는 아수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했다. 세계최강이 되는데 어째서 안 가르쳐주는 것인가?

하지만 난 이제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내가 적멸무극을 선택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실제 예시가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작정하고 적멸무극을 배웠다면 결코 [흐름]을 읽는 경지에는 도달할 수 없었으리라. 아수라는 그때 이미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수라…… 고맙다.’

고마우면서도 왠지 가슴이 뛰었다.

이제야 내가 그 당시의 아수라가 도달한 경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때의 아수라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실감한다.

사실 나는 그때의 아수라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비로소 검신(劍神)을 말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리라.

“이광, 너는 진정으로 [힘]을 잊어버린 게 아니었구나.”

“무슨 개소리요? 상대가 무한의 힘을 갖고 있으니 기술으로 승부를 보려는 거지 힘 그 자체의 중요성을 간과할 리 없잖소.”

“그런 얘기가 아니다.”

“……?”

이광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이광이 거대한 깨달음을 얻었나 싶었지만 사실 그냥 상대에 맞춘 전투법의 연장이었을 뿐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나는 이광에게 말했다.

“너도 나도 붙어서 수련하면 서로 불편하겠지. 나는 나만의 장소로 가서 따로 수련하겠다.”

“듣던 중 고마운 소리로군. 잘 가시오.”

“대신 수련하다 막히면 종종 찾아오마.”

“오지 마시오!”

이광의 목에 핏줄이 생길 정도로 그가 짜증을 내었지만 나는 무시하고는 신력을 써서 공간이동을 했다.

파앗!

나는 이윽고 변황에 도착했다. 변황의 황량한 사막에 도착한 나는 이윽고 신력을 크게 돋우어서 화안금정을 발동했다.

우웅

‘어디 보자…… 이광의 말대로라면 변황에서 가장 광풍이 몰아치는 지역이다. 그럼 바람의 흐름이 거센 지역을 찾아볼까.’

휘오오오

나는 약 사흘 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며 화안금정으로 변황의 곳곳을 탐색했다. 그리고 꼼꼼하게 뒤진 결과, 이광이 말한 듯한 지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군!’

거대한 바람이 자주 불어닥치는 황량한 사막, 그리고 여기저기에 보이는 자연적인 기암괴석의 동굴!

나는 여기가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화안금정으로 수상한 게 없는지 내부를 투시해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펴보던 중 사람이 머물렀던 것 같은 공간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저벅

“이광, 그의 유골과 비급을 수습해 갔구나. 그래도 종사에 대한 예의는 있는 놈이군.”

그렇다 해도 그가 생전에 입던 옷가지와 여러 가지 생활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 흔적을 살펴보다가 손을 뻗었다.

“이 정도 흔적만 있어도 여기에 관련된 혼을 불러들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

이혼대법!!

나는 옷가지에 손을 뻗어서 거기에 스며들어있는 백(魄)의 흔적을 통해서 혼(魂)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수법을 쓸 수 있기에 이혼대법의 대가는 천하제일의 추종술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혼을 끌어들이다 보니, 나는 혼 대신에 백만 잔뜩 모여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엥? 왜 혼은 없고 백만…… 아!!”

나는 어리둥절하다가 문득 뭐가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맞아!! 이 세계는 생명체와 지적 존재가 없는 세계…… 혼 또한 하나의 존재로 인정받으니까 당연히 혼은 없겠지! 하지만 구궁파천뢰가 멀쩡히 운용될 수 있는 건 혼과는 다른 개념인 백(魄)이 이 세상에 멀쩡히 존재하기 때문……!!’

그렇다면 가능할까?

백이란 영혼의 흔적에 지나지 않고 어찌 보면 그냥 에너지 덩어리일 뿐이기도 한데 이것만 갖고 가능할 것인가?

나는 이혼대법을 배우고 나서 처음 겪는 사태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윽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앞으로 손을 뻗고는 외쳤다.

“……나 백웅이 명하노니, 살아나라!!”

나는 어찌됐든 저승의 제왕으로서의 권능을 갖고 있다. 겨우 이 정도의 난관 때문에 포기할 순 없지!

파앗!!

복희에게서 배웠던 요령대로 신력을 불어넣으며 외치자 잠시 후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스슥 하며 시꺼먼 연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연기는 사람의 형상을 하기 시작했고, 점차 부피감을 가지면서 현실에 구현화되는 게 눈에 보였다.

약 일 각이 지난 후, 그 형체는 완연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호걸(豪傑)처럼 생긴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서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남자답게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상당한 미남으로 보였다. 장대한 체구라는 게 정말로 보통 사람 기준으로는 굉장히 컸기에 보통 키보다 머리가 두 개 정도는 더 커 보이는 장대한 사내였다.

그는 마치 잠에서 막 깬 듯 몽롱한 표정이었는데 이윽고 눈을 비비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여기는 어디지? 그리고 나는 어째서 젊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인가?”

“…….”

“마치 꿈결을 걷고 있는 것만 같군…… 그보다 그대는 대체 누구인가?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 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뇌신류의 종사인 이강룡(李强龍)이오?”

“……?”

그는 어리둥절해하다가 대꾸했다.

“그렇네. 내가 이강룡인데 자네는 누구인가?”

나는 잠시 후 포권하며 몸을 숙여 그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나는 뇌신류의 후대종사인 백웅이라 하오!!”

이광을 상대로 자존심도 실리도 잃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어 버리지 뭐!!’

뇌신류의 태종사인 이강룡 본인을 살려내서 그에게 천화뇌룡신공을 배우면 그만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