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69화 (1,568/1,615)

전생검신 88권 18화

나는 예전에 사신지혼을 크게 회전시킬 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눈을 반개했다.

‘천(天)의 백회혈(百會穴). 지(地)의 중완혈(中脘穴). 인(人)의 하단전(下丹田).’

일직선으로 정수리에서 단전까지 쭉 뻗어 있는 단 3개의 혈도. 이보다 단순할 수 없는 통로를 통해 운기하는 삼재심법이 거대한 사신지혼의 압력을 크게 분산시켜줬던 그때의 기억.

‘하지만 삼재심법은 최소한의 안정성을 만들어 주었지만 [윤회] 다음으로 넘어가기엔 역부족이었지…….’

나는 그때 5번째 회전으로 넘어가려고 온갖 생각과 고민을 하다가 삼재심법을 다시 수련하고 육합검법을 미친 듯이 수련하거나 했었다. 그러다 보니 육합검법에서 무류(無流)를 깨닫고 여동빈처럼 되기 위해서는 심류(心流)을 읽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여동빈의 월공투계처럼 심류를 읽어서 심수력의 복합기를 사전에 차단한다고 했는데, 어림도 없었고 계속 처맞았지…….’

…….

어라? 그 이후로 사신지혼 수련을 제대로 수련 했던가?

생각해보니까 엄청나게 방황만 하고 정작 얻은 것은 없었던 느낌인데…….

‘아…… 심수력이 사신지혼 복합기 가르쳐준다고 할 때 그냥 배울걸…….’

이래서야 그때 미뤘던 숙제를 이제서야 하는 꼴이지 않은가?

갑작스럽게 머릿속이 띵해지고 허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크게 젓고는 생각했다.

‘아냐!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연구를 했고 또한 암야참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고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 그때의 수련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었을 거야.’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내가 얻었던 심득(心得)을 이용해서 사신지혼의 윤회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끔 하는 게 아닐까?

‘흐음. 내가 얻은 가장 유효한 심득이라 하면 결국 [흐름]을 읽는 소양이다…….’

암야참을 쓰는 능력도 결국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다 보니 가능해진 것이고 천둔 뇌신검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점에 착안해서 [흐름]을 읽는 능력이 사신지혼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츠즈즈즈

어마어마한 기운이 내 몸 주변에서 모이면서 천천히 사신지혼의 첫 번째 변화를 개시했다. 용맥까지 빨아들인 기운이다 보니 이미 대자연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고 있었고 사방천지에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내 몸은 기(氣)로 인해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크, 안 되지. 생각할 여유는 있어야 하니 최대한 느린 속도로 전개해야겠다…….’

다행히도 이십 시진이나 천천히 돌리는 연습을 한 덕분에 거대한 기운이 전개되는 속도를 느리게 하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기운이 서서히 강렬해지는 걸 느끼자 순간 기분이 아찔해졌다.

‘큭!!’

작정하고 전력으로 사신지혼을 돌리니까 아까와는 굴러가는 힘의 단위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힘을 적게 발현했을 때는 손바닥에 잡힐 정도의 작은 공을 만지작거리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내 몸집보다 더 큰 바위가 굴러가는 느낌! 예전에 이만한 힘을 무식하게 돌리려고 했으니 맨날 몸이 터졌던 것이라는 게 새삼 실감 났다.

아니, 지금 고통에 겁먹을 때가 아니다. 이럴수록 냉정하게 내가 가진 심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착함을 되찾고는 생각했다.

‘[흐름]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지?’

처음으로 그걸 제대로 자각한 것은 신역에 이른 공손대랑과의 전투에서였다. 자연검을 구사하는 공손대랑을 상대로 나는 전조도 없고 형체조차 없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상대의 공격이 속도와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흐름]을 읽으려고 집중한 결과 무심지경(無心之境)에서 [흐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현실세계로 되돌아온 후 20년 만에 재회한 롤랑과의 일전, 거기에서 나는 [흐름]을 의식적으로 읽어내어 상대의 공격을 자유자재로 막는 방어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또한 진정한 암야참을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흐름]은 속도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우주 만물이 변화하기 전에 존재하는 [길]이다.

아난(阿難)과의 일전에서 대라육천세계를 상쇄하면서 얻어냈던 그 깨달음을 되새기던 나는 문득 뭔가를 알아채었다.

‘…… 설마?’

[흐름]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리법칙처럼 이 세상에 기계적으로 존재하는 수식인 것인가?

아니, 그런 수식이라면 머리 나쁜 내가 그냥 감각으로 쓰는 게 말도 되지 않는다. 이환웅이나 십이율주처럼 강인공지능을 심장에 꽂아놓고 그 연산력을 빌리는 등 말도 안 되는 수법을 써야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흐름]을 읽을 때는 절대지경 고수 롤랑이나 신역의 고수인 아지다하카의 공격을 자유자재로 회피하거나 반격을 막을 수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만한 고수들의 공격은 머리카락 한 올의 오차조차 용납하지 않으며 무척이나 정밀한 공격이었고 [흐름]을 읽으면 그보다 더욱 정밀하게 전조를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정확하게 [흐름]을 읽는데도 기계적 수식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대체 뭘까?

나는 그동안 [흐름]의 원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 그래…… 심류(心流)…… 나는 어느새 심류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힘]은 [흐름]보다 나중에 움직인다.

아무리 빠르고 강한 힘이라 하더라도 [흐름]보다 앞설 수는 없다.

평범한 무림세계의 무리(武理)로 볼 때 이는 단순히 화경(化經)에 불과하다. 화경은 물리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상대방의 힘을 받아넘기는 공식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무예수법이 더욱 고급화되고 의념까지 동원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단순히 물리법칙의 공식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기계처럼 물리법칙을 계산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공격을 읽을 수 있다. 그 말은 흐름에 실리는 것이 물리법칙보다 먼저 움직이는 무언가라는 뜻이고…….’

나는 그 존재가 무엇인지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백웅이여. 이 머리카락은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그게 바로 인지(認知)를 지닌 자들의 인식이네. 허나…… 진실로 팔식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면…… 이 머리카락 또한 생명이 될 수 있으며,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것이야.]

[마음이란 작용(作用)하는 것일세.]

[다만, 저기 있는 돌멩이나 스쳐 지나가는 바람 또한 [마음]이지만, 그들은 자네만큼 복잡하게 발달한 [마음]이 아닐세.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심소를 지니고 있는 존재일 뿐.]

그렇다.

사실 [흐름]이라는 것은 [마음]의 흐름(心流)였던 것이다!

‘하급 무술단계에서는 그저 상대방의, 생명체의 마음을 읽는 것만으로 화경을 성립시키지만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화경, 혹은 청경(聽經)이라는 무술의 [받아넘기기] 기술은 사실 생명체 외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 기술이다. 화경도 청경도 상대방이 움직이는 그 순간 근육의 움직임과 힘의 집중도, 혈관, 시선 등을 종합적으로 통찰해서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논리적으로 힘을 받아내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이 기술들이 절묘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마치 마음을 읽어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착각이었다. 크게 보면 이것은 생명체의 특성을 읽어내는 추리능력이었으며 상대가 생명체가 아닌 존재일 경우 기술은 원천봉쇄될 수도 있었다. 경험적으로 읽어내서 알고 있는 전조가 전제부터 달라진다면 추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웅제국의 전술무력요원이자 초절정고수였던 무천룡 주현성이 전투용 안드로이드가 발사하는 레이저를 화경으로 받아내지 못하고 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터득한 [흐름]은 설령 상대가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그 힘의 흐름을 미리 알아내는 게 가능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흐름]을 읽는 능력이 단순히 생명체의 낌새를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 사실은 과거 유망과의 대결에서 이미 심득으로 얻었던 사실이었다.

강대한 거신족이자 투신인 유망이, 수억 년 동안 정제한 무(武)의 정수(精髓)를 머금고서는 신력을 의념으로 변환한 채 날아오는 막강한 위력의 도(刀)!

내가 무쌍패 무위전변으로 그 도의 위력을 무(無)로 변환시킬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무쌍패가 위대한 무공이라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무쌍패의 해석에서 그 [힘]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었다.

무공(武功)에 마음이 있다고 가정하고, 마음이 있는 것과 아닌 것을 음양으로 구분했던 시도!

그 당시에는 그냥 무쌍패를 이런 식으로 해석해도 되겠다고 여기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던 거지만 돌이켜 보니 이는 수보리가 말했던 팔식(八識)의 가르침과 통하는 게 있었다.

‘[무공]자체가 마음이 존재한다고 가정했던 그때의 어거지 같은 무쌍패에 대한 해석…… 그 해석이 사실 가능성이 있었던 거야……!!’

물론 [무공]에 존재하는 마음은 보통의 인간들이 지닌 생명체로서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수보리의 팔식 이론에 따르자면 [무공]에는 [마음]이 깃들 수 있는 원천적인 공간인 심소(心所)라는 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 심소가 인간의 인지(認知)에 반응할 때 그 무공에는 마음이 생겨난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무공]에 존재하는 심소(心所)의 영역까지 느껴서 그 원초적인 마음의 발단(發端)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에 심류(心流)를 읽을 수 있었던 것 -

‘[무공] 그 자체는 당연히 그 어떠한 [힘]의 움직임보다 먼저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무공의 심류를 읽음으로써 모든 공격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통상적인 의지보다 더 빠르게 반사신경으로 무공이 발현되는 그런 경우라도 상관없다.

어찌 되었든 무공이 발현되는 인과관계보다 앞서서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그 어떠한 힘과 속도를 상대로 하더라도 맞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로소 내가 [흐름]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자, 나는 그제서야 신역(神域)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진정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물리법칙을 초월해서 무공 그 자체의 [마음]마저도 다룰 수 있는 경지!

이걸 어찌 무사(武士)로서 신의 영역(神域)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부르르

나는 그 순간 몸을 떨고 말았다. 그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아아……!! 월공투계라는 건…… 신역에 곧 진입하는 경지라는 걸 의미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월공투계(越空透界).

여동빈의 절대지경 기술로 알려진 그 기술은 사실 무예의 경지가 공(空)의 영역을 뛰어넘어(越空)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본다(透界)는 의미였고, 그 시점에 이미 신역에 도달할 수 있었던 여동빈의 무예의 소양을 상징하는 일반적인 기술일 뿐이었다!

‘검선 여동빈은 월공투계를 완성했을 때 이미 지금의 내 경지인 [흐름]을 읽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내가 [흐름]을 읽는 것처럼 이 감각을 고도로 발달시켜서 원천심류(源泉心流)을 읽어내 완벽한 공방을 이뤄 일반적인 전투에 가볍게 활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게 바로 월공투계!’

신법에 쓰든 회피에 쓰든 공격에 쓰든 방어에 쓰든 그 모든 경지 그 자체가 월공투계인 것!

다만 여동빈 입장에서 인과율을 축적해야 쓸 수 있는 신역절기를 아무 때나 남발하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평소에는 절대지경의 틀 안에 맞춰서 시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만으로도 타 무인이나 신적존재들에게는 필살기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후발선제는 숙련도일 뿐 별개의 기술이 아니라는 여동빈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백련교 2대교주 호월 또한 월공투계와 같은 재주를 부릴 수 있었던 것!

‘그렇다면…….’

검선 여동빈이 신역절기를 본격적으로 난무하는 시점의 월공투계는 이 이상으로 가공할 위력을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나는 이제야 그 경지에 발을 디뎠는데 신역의 전투를 일상적으로 수백 년동안 수련해 온 여동빈은 어느 정도의 숙련도를 지니고 있을까?

그는 절대지경에 이른 시점에서 신역절기로 향하는 가장 정통적인 무(武)의 계단을 가장 빠르게 오른 인물일 것이리라. 다른 절대지경 고수들이 의념절기의 강력함에 취해서 길을 헤매는 동안 여동빈은 단 한 번도 길을 헤맨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에게 비교할 수 있는 건 장삼봉 진인 정도일 것이리라.

이런 전후사정도 모른 채 멋대로 사신지혼의 심류를 읽어서 심수력의 공격을 원천차단하겠다고 했던 과거의 내 행보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흐름]을 읽는 능력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건방을 떨었던 것인가? 심지어 단순히 무공경지만 따지면 초월자에 가까운 고대 백련교 종사를 상대로!

“……씨발…… “

나는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벌게졌고 이윽고 고개를 다시 한번 털었다.

‘으음!! 어찌 됐든…… 이제서야 나는 월공투계를 기술로서 다듬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거군.’

나도 이제 월공투계를 쓸 수 있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 기술을 쓴다고 하기도 뭣한 게, 이대로 [흐름]을 읽는 경지를 계속 다듬으며 발전시키고 평상시에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월공투계인 것이리라. 그저 숙련도를 올리는 작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가 새삼 월공투계를 의식하고 기술로 다듬을 필요가 있을까?

‘…… 그럴 필요는 없겠군.’

어차피 앞으로 계속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싸울 것이고 그 실전 속에서 수도 없이 [흐름]을 읽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경지가 정립되면 그뿐이다. 그러므로 기술로 다듬으려고 하는 별개의 노력 같은 건 무의미하기 짝이 없음을 깨달았다.

쿠르르르

“음!!”

나는 사신지혼의 첫 변화가 완료되며 장중한 힘이 퍼져 나오자 침음성을 흘렸다. 각오는 했지만, 첫 번째 변화에서 급격히 증대된 힘이 내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큭……!! 단숨에 수십 배는 강해진 것 같은데…… 원래 이 정도였나?’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사신지혼의 위력이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다. 만일 이런 증폭률로 5번째 변화까지 간다면 예전처럼 또 몸이 터져 죽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전에 생각을 빠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는 더더욱 명상에 집중했다.

‘…… [흐름]의 경지가 무엇인지는 이제 정리가 되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흐름]을 읽는 심득(心得)을 접목해서 사신지혼의 윤회를 버텨내는 데 쓸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무술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깨달았으되 그게 과연 이 사신지혼의 수련에도 통용되는 깨달음일까?

나는 언뜻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깨달음을 어떻게 해야 연결시킬 수 있을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 뭐지 뭐지…… 모르겠는데…….’

나는 오만가지 상념에 휩싸여서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맺힌 것 같았다.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혼란스러웠고, 그런 와중에도 사신지혼은 느릿하게 굴레를 움직여서 두 번째 변화에 이르렀다.

쿠구궁!!

“크으으압!!”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 소리를 억누르는 듯 마는 듯 애매하게 내고 말았다. 딴생각하다가 전신이 장침이라도 맞은 것처럼 후끈거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등 뒤에 태산(泰山)을 업은 듯 강렬한 부하가 몸에 걸리는 것을 느꼈고, 이제부터는 딴생각하기도 여의치 않을 정도로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예감했다.

‘헉…… 안 돼…….’

진땀이 송골송골 나온다. 이대로 가면 무조건 또 몸이 터져 죽을 건 확실하다. 지금 힘이 불어나는 모양새가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이런 젠장! 뭐라도 달라져야 할 거 아니냐?

나는 그동안 수많은 수련을 거듭했는데 정말로 그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그러면 그 고난의 시간들은 대체 뭘 위해서였는데!!

나는 속으로 비명 소리를 내지르면서 나 자신을 타박하고 질책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정신 줄을 잡으려고 하다가 결국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커서 어쩔 수 없이 삼재심법을 운용했다.

우우웅!!

빠르게 삼재(三才)의 묘용에 따라 힘이 움직였고 예전처럼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이 모여 있던 힘이 분산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힘이 분산되자 한결 나음을 느끼고 내심 한숨을 내쉬었지만, 상황이 그리 여의치 않음을 느꼈다.

‘이것 참 이상하군. 구(球)에 걸리는 가속도가 따로 미친 듯이 회전하면서 힘을 안정시켜주지만…… 도대체 무슨 원리로 삼재심법이 힘을 안정시켜주는 거지?’

예전에는 이 비밀을 풀지 못했었다. 지금도 왜 이런지 이유는 모르지만, 요령껏 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삼재심법의 도움이 있더라도 이대로는 안 된다. 마지막 변화에서 나는 힘의 압축이 풀리고 뇌주(雷柱)처럼 변해 버리는 데다가 이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폭발을 해 버리게 된다…….’

이전에 한 번 겪었던 그 파멸을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온갖 죽음을 겪어보았지만, 그 순간에 느끼는, 뇌가 노릇노릇하게 익어 버리는 기분은 도저히 또 겪기 싫은 것이기 때문이다.

‘삼재심법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알아내야 해. 대체 뭘까…….’

삼재심법이 뭐길래……?

강호에서 가장 기초적인 심법이고 고작해야 인체의 3대 요혈을 왕복할 뿐인 단순 그 자체인 심법 아닌가?

혹시나 비밀이 있나 싶어서 몇 년 내내 삼재심법만 수련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특별한 점은 전혀 찾지 못했고 그냥 삼류 쓰레기 심법이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쓰레기 심법이 가장 뛰어난 기공이라 할 수 있는 구궁파천뢰를 응용한 최강의 내공인 사신지혼의 힘을 크게 삭감시킬 수 있는 것인가?!

…….

‘어라…… 잠깐…… 구궁파천뢰?’

나는 순간 사신지혼의 근간이 구궁파천뢰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구궁파천뢰의 근원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구궁파천뢰는 대웅제국 시절 내 동료들이 500년의 시간 동안 연구하며 발전시킨 궁극의 뇌신류 무공…… 하지만 뇌신류의 내공심법뿐만 아니라 이혼대법 또한 중대한 요결로서 합성되어 있다…….’

그 이혼대법의 특성 덕분에 뇌혼(雷魂)과 뇌백(雷魄)을 분리시켜서 뇌령의 구를 가속시키는 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혼대법이란 본디 살아 있는 존재의 혼을 상대로 하는 비술이다.

생각해보면 무생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구궁파천뢰의 뇌혼(雷魂)을 상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 아닌가?

어째서 이혼대법은 뇌혼을 다룰 수 있는 거지?

‘물론 이혼대법을 신을 상대로 써먹은 적도 있으니까 꼭 살아 있는 존재의 혼만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공 그 자체에서 혼을 뽑아내는 건 좀 이상…….’

내가 구궁파천뢰의 의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그게 바로 인지(認知)를 지닌 자들의 인식이네. 허나…… 진실로 팔식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면…… 이 머리카락 또한 생명이 될 수 있으며,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것이야.]

아까 떠올렸던 수보리의 팔식 이론.

나는 그걸 떠올리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

설마…….

사신지혼 또한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 마음속의 울림을 느끼는 순간, 나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삼재심법에 얽혀 있는 비밀의 첫 실마리를 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삼재(三才)란…… “

그리고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한다.”

전생검신 1632화

천지인(天地人).

동네 꼬마도 알고 있을 정도로 근본적인 세상의 개념이었다. 주역(周易)에서 나오는 개념으로서 하늘, 땅, 인간을 상징했으며 이를 삼재(三才) 또는 삼원(三元)이라 불렀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왜냐하면 하늘(天)이란 운명을 의미했고 땅(地)이란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대지를 의미했으며 사람(人)은 당연히 사람 - 이성이 깨어났을 때부터 당연히 인지하고 있던 이치를 새삼스레 느끼는 것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방금 깨달은 것은 그 삼재에 깃들어있는 또 다른 의미였다.

‘나는 이미 삼재를 깊게 익힌 적이 있다…….’

삼보절기(三步絶技)!

천지인(天地人)의 삼보(三步)로 완벽한 회피 및 공방을 할 수 있게 하는 그 절세신공은 뇌신류 천재들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것이었다. 나 또한 전생을 반복하며 그 수혜를 얻어서 익히게 되었는데, 한 번 제대로 익히고 나니 이후의 삶에서도 삼보절기의 도움을 톡톡히 받은 적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에서 삼재심법이 사신지혼의 힘을 중화시킬 수 있는 이유를 어렴풋이 감을 잡은 것 같았다.

‘…… 삼보절기의 삼재는 그냥 하늘, 땅, 인간이 아니야…… 무리(武理)이며 동시에 인과(因果)라고 할 수 있다!’

삼보절기는 인과(因果)의 무공!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삼보절기에서 천(天)과 지(地)의 2보가 없으면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무공이 전개되어 인(人)의 단계에 이르면 그 어떤 무공이라도 회피할 수 있게 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천보(天步)와 지보(地步)에서 상대의 공격을 회피할 근거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무공이었던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절세무공이자 보법 - 그것이 바로 삼보절기!

나는 과거에 진소청이 내게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자신을 북두칠성의 축으로 잡고 나머지 육성(六星)의 움직임을 머릿속에서 떠올리시오. 그렇게 해야 별을 이어붙이면서 천지인의 삼보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오.]

본디 삼보절기의 근원은 무당파 칠대절학 중 칠성둔영(七星遁影)에서 파생된 것이었기에 당연히 칠성둔영의 묘리를 익혀야만 삼보절기를 익힐 수가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진소청의 말을 이해 못 했었지만, 이후 백련교주 밑에서 열심히 수련하면서 숙련시켰고 그 후에는 이청운 밑에서 지옥훈련을 하며 묘역에 이르도록 내면화시킨 무공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별을 이어붙인다’는 진소청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청운은 내게 ‘삼보의 박자’를 새겨야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그냥 가르쳐주는 대로 미친 듯이 훈련만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북두칠성의 축이 된다는 것과 관련이 있었구나.’

별을 이어붙인다는 건 지배(支配)를 의미했다. 북두칠성을 모조리 자신의 발아래 두어 천(天)의 영역을 지배하겠다는 패도(覇道)의 무리(武理)! 삼보절기에 통째로 무당파 종사 장삼봉의 진신절학인 칠성둔영을 갈아 넣어서 양분으로 만들었으니 패도적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박자를 새겨야 한다는 것은 필요할 때마다 발밑에 두고 있는 북두칠성의 힘을 끌어와서 통째로 [공간]을 확보하는 데 쓰기 위해서였다. 발끝에 별(별)의 힘이 감돌고 있으매 정확한 호흡에 따라 출납(出納)할 수 있다면 그 공간장악력이 극대화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천(天)을 보좌하는 지(地)의 영역이었다.

그동안 체득만 했을 뿐 이론적으로 깊게 생각해본 적 없었던 삼보절기의 묘용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자, 나는 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삼보절기에서 내가 익힌 삼재는…… 허울뿐인 천지인이 아니라 삼재를 이용해서 공간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능력이었다. 또한 인과를 만들어 내는 데 중점을 둔 무공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게 내가 삼재심법을 운용할 때는 삼보절기로 깨우친 삼재가 반영된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삼보절기의 발달된 삼재의 개념이 적용됨으로써, [지배력]이 강화된 천지인의 힘이 사신지혼의 힘을 강제로 억누를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격(格)으로 친다면 온갖 절세무공을 혼합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삼보절기의 천지인 또한 그리 낮지 않으니까!

이렇게 보니 어느 정도 삼재심법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첫 실마리를 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흡!”

그러나 나는 잠시 숨을 크게 삼키며 긴장했다. 왜냐하면 갑작스레 사신지혼의 전개가 빨라져서 압박감이 느껴진 데다,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기 때문이다.

‘…… 아니, 삼재가 어떻게 반영되는 거지?’

나는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삼재심법의 내공 운용 자체는 그저 3대요혈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뿐인, 지극히 단순한 운기행공(運氣行功)인데 어떻게 삼보절기의 삼재가 반영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이윽고 처음에 떠올렸던 [마음]에 대한 것을 기억해내었다.

‘그래! [마음]이다…… [마음]이 반영된 거야!’

삼재심법이 아무리 단순한 심법이라지만 그 심법을 발현할 때는 기(氣)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의념(意念)또한 함께 작용한다. ‘오르락내리락하게 시킨다’라고 하는 단순한 명령이지만 그 또한 나의 의념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의념이 마음의 작용이 되어서 삼재심법의 내부에 존재하는 심소(心所)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을까?

원래라면 나는 이런 영역까지 파고들어서 삼재심법을 해석하는 게 터무니없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삼재심법은 저잣거리의 어린애한테 가르쳐줘도 금방 배울 정도로 단순무식한 심법인데 이렇게까지 해석할 일이겠는가? 강호의 무림인들 9할 9푼이 내 생각을 망상이라고 치부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여기까지 결론을 끌어내도 된다고 생각했다.

‘…… 달마의 외우주로 갔을 때, 나는 뇌룡일기공을 속성외법(速成外法)을 이용해 의념으로 강제로 요혈을 뚫어서 순식간에 절정지경의 내공을 성취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는 의념이 내공과 내단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음이고…… 또한 심기혈정(心氣血精)의 원리가 극대화된 것!’

나는 서서히 안광을 흘리며 깨달음을 심화시켜나갔다.

‘심기(心氣)가 혈정(血精)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단순히 의념이 기보다 상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의념으로서 내 안의 소우주(小宇宙)에 접촉하여 인지(認知)함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 또한 삼재심법에 숨겨져 있는 [마음]의 힘을 스스로 각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삼재에 섞여 있는 형이상학적인 고위개념을 단순한 물리적 현실에 덮어씌워서 그 작용을 바꿀 수 있는 것 -

그것은 사실 의념으로 의념절기를 썼던 것과 형태만 다를 뿐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

그런가?

그래서 상단전(上丹田)이라고 하는 것이었던가?

초상능력을 자유자재로 끌어쓸 수 있는 뇌(腦)라는 공간은 생각(生覺)이 시작되는 심소(心所)의 근원이기에 의념을 깨우치지 않아도 현실을 변화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기(氣)만을 다루는 하단전(下丹田)보다 격으로 볼 때 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단전이라 했던 것인가!

‘나도 따지고 보면 그 때 상단전을 이용해서 하단전을 뚫은 셈이니…….’

신기하다.

이미 고대에 초극지경에 도달한 고수들이 존재했던 것일까? 내가 이제서야 자각한 이론이 이미 무림 수천 년 역사에 자연스러운 상식으로 배양되어 있다니.

‘좋아! 이제 이론은 정립됐다!’

나는 얼추 지금까지 생각 없이 체득했던 것들이 이해의 영역으로 넘어가자 자신감을 얻을 수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내가 얻어냈던 삼보절기에 있는 삼재(三才)의 묘리가 삼재심법에 스며들어서 사신지혼을 분산시킬만큼의 지배력을 발휘했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부터 문제는…… 그 지배력을 어떻게 강화시키느냐는 거겠군.’

네 번째 윤회의 회전까지는 가능하지만 ‘다섯 번째’에서 힘을 못버티고 터져 나간다는 것 - 그것은 삼보절기에 속한 삼재의 이치만으로는 사신지혼의 극강한 힘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의미했다. 극상의 무공인 만큼 그 깨달음이 어느 정도는 사신지혼이라는 궁극의 무공을 제어할 수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삼재의 이치를 강화시켜서 그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사신지혼의 힘이 한층 더 고르게 분산되어서 다루기 쉬워질 것이고 다섯 번째 회전의 힘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삼재를 강화시키는 방법이라…… 뭐가 있을까?’

나는 그 수단을 곰곰이 생각하던 중 내장이 끓어오르는 듯한 격통에 움찔했다.

‘끄으으윽!!’

마치 산 채로 식칼에 배를 찔린 듯한 고통! 워낙 고통에 익숙했고 내성이 있어서 신음 소리도 흘리지 않았을 뿐 고통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고통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알아차리고는 당황했다.

‘…… 벌써 세 번째 회전으로 넘어가는가!! 슬슬 제어력이 떨어지는군…….’

그러면 이쯤에서 다시 삼재심법을 발현해서 힘을 분산시켜주면 한 번의 고비는 넘길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삼재심법대로 힘을 운용했다.

우우웅

경험대로 내 힘은 크게 안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삼재심법을 운용하는 찰나,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응? 삼재? 삼(三)…… 내가 이거 비슷한 걸 어디서 들어본…….’

잠시 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

나는 질끈 눈을 감고는 빠르게 정신을 집중했다.

촤좌좍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신적 공간에 갑작스럽게 뛰어들면서 새하얀 장소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는 이 새하얀 정신공간에서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새빨간 홍옥(紅玉)을 보며 생각했다.

‘…… 신기(神技) 트리무르티(三位一體)!’

내가 [계승지]에서 천축의 창조신 브라흐마에게서 전승받은, 신만이 쓸수 있는 전용신기!

삼위일체라는 이명(異名)을 지니고 있는 이 기술은 본디 3가지 다른 속성의 신력(神力)을 배합해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는 브라흐마의 정체성이기도 했기에 트리무르티를 보여주는 순간 브라흐마의 형제신인 시바와 비슈누를 바로 설득시킬 정도였다.

‘여태껏 트리무르티를 주로 쓰는 방법은 3가지 신력을 조합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애초에 브라흐마가 창조신이라서 그렇게 쓰는 게 제일 효율적인 기술이기도 하지.’

천상윤회옥이든 조합속성의 암창이든 일단 트리무르티로 만들어 내기만 하면 무척 쓸모가 있었다. 나는 그 기억을 되새기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트리무르티에 조합할 수 있는 건 신력뿐만이 아니다.’

최근 현실세계로 되돌아갔을 때, 나는 사룡왕(死龍王)의 마력과 나 자신의 기(氣), 그리고 새롭게 신앙으로 얻은 신력을 조합한 적 있었다. 긴가민가했었지만 그 때 굉장히 조합이 잘 되었었고 그 결과 파괴신 시바의 압력마저 떨쳐낼 수 있는 흑룡갑(黑龍甲)의 기운을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트리무르티에 3속성의 신력을 넣는 것은 보통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신력이라서 보편적으로 가장 강력한 조합을 쓰는 것일 뿐, 신력 외의 [다른 힘]을 넣지 못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마력이든 기든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라면 뭐든 조합할 수 있는 게 바로 창조신의 고유능력, 트리무르티일 것이다.

‘그 범용성 자체가 트리무르티가 강력한 신기인 이유일지도…….’

츠즈즈즈

나는 의식세계에 존재하는 새빨간 홍옥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조용히 염원했다.

‘삼재(三才)의 이치…… 천지인(天地人) 또한 조합이 되는가?’

잠시동안 홍옥이 반짝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윽고 홍옥에서 서서히 빛이 일어나더니, 홍옥을 중심으로 분할되어 있는 세 개의 공간이 제각각 홍녹청(紅綠靑)으로 빛나는 게 보였다.

‘홍녹청……!! 저것은 삼원색(三原色)인가?’

아무래도 삼위일체의 의식세계에서는 천지인을 상징하는 색깔으로 삼원색을 선택한 듯했다.

나는 그 색깔이 가득 찬 것을 보자마자 염원을 뻗어냈다.

조합!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트리무르티의 세계에서 의식이 튕겨나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내 내부에 새로운 힘이 팽창해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쿠구구구!!

“……!! 좋아!”

나는 사방에 휘몰아치던 기(氣)의 폭풍이 크게 수그러들며 파괴의 힘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내가 사신지혼을 전력으로 발동하는 동안에 청룡무관은 파괴된 지 오래였고 지평선 너머까지 모든 것이 파괴되어 황무지가 되어 있었고 천지가 귀곡성을 내며 울부짖고 있던 중이었다. 전 세계의 기가 나에게 감응하는 느낌마저 들고 있었는데 그 광대한 힘의 파괴가 수그러들면서 땅거죽이 갈라지며 지진이 일어나는 기세가 멈춘 것이다.

힘이 안정된다.

새로운 삼재의 이치 - 트리무르티가 더해지면서 사신지혼의 가공할 힘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새 나는 내장을 찌를 듯한 고통이 사라지며 무척 자연스럽게 힘의 구체가 가속하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예전 이상으로 안정적이다. 이 힘이 엇나가리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최상위 신의 신기까지 발동시키면서 삼재의 이치를 갖고와서 사신지혼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썼으니!

나는 어느새 세 번째 회전이 끝나고 네 번째 회전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고 그 순간 갑작스럽게 엄청난 기세로 힘이 폭발하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쿠궁!!

꽈릉

내면에 광대한 번개가 몰아쳐서 뇌전의 바다를 이루는 듯한 느낌!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자연(大自然)의 기운이 단숨에 그 단위를 증폭시키면서 도저히 이 조그마한 행성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의 기세로 팽창하고 있었다. 나는 이 기운이 점차 뇌신지혼(雷神之魂)의 형태로 응축되며 내 몸이 자력(磁力)을 형성하기 시작한 걸 알아차렸다.

‘으음!! 강하다……!!’

새로운 삼재를 도입하면서 안정시켰는데도 슬슬 가슴팍과 내장에 고통이 맺히는 걸 보면 또다시 신체가 견딜 수 없을만큼 부하가 급증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순식간에 힘이 수백 배는 뛰어오르는 미친 증폭률이 느껴지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여태껏 내 안에 잠들어있던 세성의 뇌전이 본격적으로 활성되며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걸 느꼈다.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세성 전체에 휘몰아치던 뇌전의 폭풍…… 그 힘의 단위는 지구의 몇천 배 이상…… 여태껏 내가 그 뇌력을 제대로 쓴 적이 없었는데 사신지혼이 본격적으로 그 잠재력을 끌어내기 시작한 거다.’

예전에 몸이 뇌주가 되어서 결국 폭발했던 건 뇌전의 잠재력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지금 냉정하게 그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이젠 ‘다섯 번째 회전’에 도전해볼만한 상황이라는 걸 의미했다.

순간 나는 망설임을 느꼈다.

‘정말 이대로 도전해도 될까?’

삼재의 이치를 깨달으며 크게 심상세계의 통제력이 늘어났지만, 정말로 내가 이 막강한 힘을 다룰 수 있는 것인가?

예전에는 엄두도 못냈는데 또다시 폭발하는 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윽고 각오를 굳힌 채 내면의 사신지혼을 굴리기 위해 구궁파천뢰에 한층 더 힘을 붙였다.

“으아아아아!!”

어차피 죽기로 각오하고 도전한 게 아니었나!

백 번 죽더라도 경지를 얻기만 하면 내가 이긴것이다!!

쿠오오오 - !!

윙 윙 윙 윙 윙 -

내 몸 주변에서 각각의 속성을 띈 3개의 광구(光球)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구들을 힐끔 보며 생각했다.

‘나는 회전에만 전념해서 이걸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광이나 심수력의 복합기라는 건 가벼운 회전과 함께 이 광구만을 빠르게 얻어내는 요령이라는 거겠지. 저 광구가 바로 사신지혼 각각의 속성이니까.’

사실 지금도 저 광구를 어찌 통제할지 감이 안 온다. 하지만 우선은 거대한 회전부터 통제한 후에야 광구를 움직일 수 있는 감각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이광의 말대로라면 ‘다섯 번째 회전’에서 이 모든 광구는 소멸된다…….’

왜 소멸되는 걸까?

설마 거기에도 뭔가 비밀이 있나?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윽고 정신을 집중하고는 더욱 강하게 내면의 기운을 몰아붙였다.

꽈릉 - !!

다음 순간, 내 몸을 빠르게 회전하던 소구 3개가 갑작스럽게 내 몸에 흡수되는 게 느껴졌다. 이건 예전에도 느꼈던 현상이기에 나는 잠시 숨을 참았고, 이윽고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력한 뇌력이 증폭되는 걸 느꼈다.

쿠콰콰콰

‘기…… 기분 탓…… 인가? 어째 저번보다 더 번개가 강한 것 같은…….’

나는 이를 악물며 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번개의 힘을 이겨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힘이 어느 정도 정점에 도달하자, 몸이 뇌주(雷柱)로 변하는 그 때의 감각이 새로이 내 몸에 내려앉았다. 나는 죽음이 한층 가까워졌음을 느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기합을 내질렀다.

“아아아아!!”

번쩍

나는 뇌신지혼의 상태에서 끝도 없이 번개로 가득찬 공간이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번개가 형상화하면서 공간을 집어삼키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 기운은 잠시 후 눈앞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기 시작했고,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끝없이 뇌력을 견뎌내며 정신을 집중했다.

파지직 파직

“…….”

나는 잠시 후 주먹을 꽉 쥐었다.

‘성공…… 했다!!’

다섯 번째 사신지혼에 도달한 것이다!!

‘사신지혼의 윤회(輪回)에 도달했는데도 살아남았어……!!’

나는 새로운 업적을 쟁취했다는 생각에 큰 희열감을 느꼈다. 지금 가공할 힘 때문에 전신이 아리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이 정도면 통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전처럼 번개의 힘을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고 목내이처럼 쩍쩍 갈라져서 처절하게 사망했던 당시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음…… 이광의 말대로 내가 얻어냈던 속성인 소구(小球)는 모두 사라졌군. 그 녀석이 거짓말한 건 아니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내 안에 존재하는 뇌력이 어느 정도로 강대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내 몸이 기묘한 형태가 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건?’

내 몸은 통상적인 뇌신지혼처럼 뇌인(雷人)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내 좌수(左手)는 시꺼멓게 물들어있었고 우수(右手)는 반대로 새하얗게 물들어있었다. 좌흑우백(左黑右白)의 쌍수(雙手)로 변한 내 몸을 보자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내 몸 전체를 어떻게 해야 관조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흠…… 화안금정이라도 써 볼까?’

화안금정을 쓰면 시야를 외부에 생성해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화안금정을 시전해서 나 자신을 거울로 비추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 고리?’

이상하게도 내 머리 위에는 새하얀 원반 형태의 고리가 떠올라 있었다.

이 고리는 대체 왜 생긴 걸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가도 한번 지금 상태에서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디 한 번 빠르게 움직여 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앞으로 움직이려고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번쩍 - !!

후웅

나는 그 순간 내가 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으로 와 버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헉?!

새까만 우주공간 속에서 나는 대체 내가 어딨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으며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태양이나 지구 같은 별조차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저 멀리에 존재하는 시꺼먼 어둠이었다.

우우우 -

분명 천문학적으로 머나먼 거리일 텐데도 나는 저 어둠이 시야를 절반이상 채울 정도로 거대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사실에서 저 거대하고 어두운 천체가 태양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어두운 천체가 무시무시한 인력(引力)을 발휘하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 힘에 빨려들어가지 않으려고 우수를 휘둘러서 장풍(掌風)을 내뿜었다.

투웅 -

그 순간 나를 휘감으려던 인력은 순식간에 소멸되었고 그 대신에 잠시동안 내가 방출한 광대한 빛이 그 어두운 천체를 뒤덮으며 역광(逆光)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내가 방출한 힘이 상상 이상이었는지 저 눈앞의 말도 안 되게 거대한 천체가 잠시 발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우우…….

불길한 울림이 천지간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어두운 천체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혼돈이 되어 서서히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것’이 한없이 불길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는 급히 마음속으로 염원했다.

‘되, 되돌아가야겠다!’

저건 대체 뭐야?

뭔가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린 것 같은…….

하지만 더 이상 건들지 않으면 될 것 같은 직감 또한 들었다.

번쩍 - !!

그리고 나는 다시금 원래 위치에 되돌아와 있었고, 중원대륙이 파괴된 지형의 지구를 우주공간에서 볼 수가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전뇌자에게 부활되었을 때처럼 사신지혼 때문에 별이 파괴되는 건 모면했고 대륙 하나 날아가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신력을 써서 대륙을 원상복구시키고는 다시 땅에 내려앉았다.

타앗

나는 다시 복구된 청룡무관 위에 내려앉으며 생각했다.

‘그렇군…… 윤회를 한 바퀴 돌리는데 성공할 경우…….’

뇌신지혼은 빛의 속도를 아득히 초월하는 게 가능하다.

어쩌면 단숨에 광년(光年) 단위를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전투는 해 보지 않았으나 아까 발휘했던 장풍의 위력을 보면 그 또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일반적인 위력을 초월하는 것이리라.

이는 원래 내가 사용하고 있던 사신지혼의 일반적인 강화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나는 이를 초강화(超强化)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뇌신지혼의 초강화를 쓰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건 알게 됐는데…… 다른 3속성으로도 초강화를 할 수 있을까?’

그건 알 수가 없는 문제였다. 어쩌면 뇌신지혼에 쓰인 세성의 번개처럼 강대한 동력이 또 추가로 갖춰져야만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하나, 나는 이 상태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를 깨달았다.

“……엄두가 안 나는군.”

사실 지금 이 상태에서도 힘이 너무 막강해서 날뛰는 야생마를 억지로 잡아채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곧 이 변신상태가 풀릴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이 힘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엔 아직 이른 것 같았다. 통제력을 그토록 키웠는데도 간신히 힘을 다룰 정도라면 -

‘다섯 번째를 넘어서 여섯 번째…… 새로운 2바퀴째의 윤회를 돌리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파앗 -

나는 잠시 후 변화상태가 풀리자마자 청룡무관의 수련장 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더 이상의 무리(武理)가 존재할까? 삼재의 이치가 사신지혼을 억제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이나 뛰어난 무예의 이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신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트리무르티까지 억지로 삼재로 해석해서 집어넣었는데 이 이상의 통제가 가능할까……?’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상념을 반복하며 고민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아.”

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이치를 덧대던가…… 상쇄(相殺)를 하던가…… 둘 중 하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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