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64화 (1,563/1,615)

전생검신 88권 13화

…… 지금 이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수보리의 말을 듣자 어이가 없어져서 말했다.

“그, 그러니까 무생물에도 마음과 의지가 있다…… 그런 얘기요?”

“그렇지.”

“그럼 머리카락에도 저 돌멩이에도 바람에도 마음이 있다…… 는 거요?”

“왜 같은 얘기를 부연해서 말하는가? 이미 충분히 이해한 듯한데.”

나는 고개를 거칠게 저었다.

“아니 이해 못 했소. 그게 말이 되는 거요? 그냥 선문답이나 철학적 얘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무생물에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요! 그런 걸 납득하는 사람이 대체 어딨겠소?”

그저 비유적 표현으로 무생물에도 마음이 있다는 얘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수보리의 말대로라면 진정으로 이 세계에 적용되는 법칙으로써 모든 것에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것이었다.

그러자 수보리가 말했다.

“납득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팔식 자체가 그걸 증명하는 기술이라고 얘기했지 않은가.”

“아니…… 그러면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라던가 칼이라던가 그 모든 것에 마음이 담겨있다는 뜻인데 그래서야 어찌 살 수 있겠소? 이 모든 것을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 또한 잘못 이해한 거군. 마음이 있다고 해서 인격체로 꼭 대우해야 하는 건 아니야.”

“무슨 말이오?”

“마음이란 작용(作用)하는 것일세. 자네에게 심소(心所)에 관련된 복잡한 이론을 말해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테니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마음이라고 간단히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그 [의지]는 사실 복잡하게 분화되어 있네. 크게 발달된 의지가 있는가 하면 아주 미약한 의지가 잔향처럼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 그 모든 심법(心法)이 승화(昇華)하는 단계를 깨달음의 단계로 정립한 것이 바로 팔식(八識)일세.”

나는 끙 하고 침음성을 내고 말았다.

“……어렵지 않다고 해놓고 무척 어렵구려.”

“흐음. 아주 알기 쉽게 더 풀어서 얘기하는 편이 좋겠군.”

곤란하다는 듯 중얼거린 수보리가 내 가슴팍에 검지를 갖다 대며 말을 이었다.

“팔식의 세계에서 자네는 [백웅]이라는 형태를 하고 있는 - 고도로 발달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어. 자네의 물질적인 형태는 타인의 인지(認知)에 의해 분석된 것일 뿐, 사실 자네는 실체조차 없는 존재야. 사실 여기에는 백웅의 몸도 영혼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커다란 [마음]이 서 있을 뿐.”

“……?!”

“다만, 저기 있는 돌멩이나 스쳐 지나가는 바람 또한 [마음]이지만, 그들은 자네만큼 복잡하게 발달한 [마음]이 아닐세.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심소를 지니고 있는 존재일 뿐.”

나는 황당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무슨 그런 궤변이 다 있소! 난 지금 살아 숨 쉬고 있고 이 모든 게 실체란 말이오! 근데 왜 멀쩡한 사람을 가지고 실체가 없느니 [마음]일 뿐이라느니 하는 거요?”

“정말 그리 생각하나? 자네가 완벽하게 정립된 실체이며 그 누구에게도 부정될 수 없다고?”

“당연한 거 아니겠소!”

“대웅제국의 누군가가 자네의 일대기를 장편 서사시로 써서 그 주인공이 백웅이라고 치지. 그 서사시의 독자들은 저마다 백웅의 형태를 상상하고, 그의 성격을 상상할 것이야. 그 만변(萬變)하는 모습 속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상상한 백웅이 [진짜]라고 납득할 것이고, 그에게 있어서 진짜 백웅이 어떻든 상관없는 문제일세. 그에게 있어서는 자기 머릿속의 백웅만이 진실이기 때문이지. 자아(自我)가 세상을 완결시킨다면 더 이상 실체도 실존도 존재하지 않네. 그 모든 것이 [마음]이기 때문일세.”

“…….”

“그들은 자신의 [마음]으로써 백웅을 인지한 것이야. 여기에 백웅이 실체인가 아닌가가 끼어들 여지가 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실체가 아니라면 애초에 그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소.”

“아닐세. 세간에 전해지는 석가모니와 십대제자의 이야기가 실제 역사와 많이 다르듯…… 실존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야기는 존재할 수 있네. 심지어 기원부터 허구인 이야기도 무수히 많지. 실체는 인지를 필요로 하지만 반대로 인지는 꼭 실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세. 자네는 전생하면서 이런 예시를 무수히 겪었을 텐데?”

“…….”

“결과적으로 이 세상에 불변무상(不變無常)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아. 모든 것이 공(空)이며, 마음이며, 인지(認知)이며 식(識)의 일부일세.”

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전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해서 내가 보고 느끼는 실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소? 이론으로야 그렇다 쳐도 실체를 실체라 인정하지 않는다면 살아 숨 쉬는 이유조차 없지 않소?”

“그건 우리가 [굴레]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착각일세.”

“착각?”

수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갇힌 [큰 굴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실체라고 착각하지. 허나 이 굴레 바깥에서 보는 자들의 시선에서 우리의 실체는 말 그대로 덧없는 꿈결이나 다름없는 것일세. 사실 우리는 서로를 인지(認知)함으로써 존재의 가능성을 붙잡고 있을 뿐인데, 실체가 인지를 넘어서는 절대적인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

“아니…… 그걸 전부 착각이라 하기엔…….”

“내 말을 부정하고 싶은가? 좀 더 쉽게 예시를 들어줘야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는 침음성을 흘리고는 말했다.

“자네가 만났던 강인공지능이라는 존재…… 그리고 안드로이드였던 자들에게 마음이 존재한다고 치지. 허나 그들은 본디 온갖 자연의 무기화합물(無機化合物)이었을 뿐이었고 그 무기화합물이 인간(人間)의 형태를 띠고 인간의 생각을 하도록 조형되었을 뿐이야. 그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을 [연기]할 뿐인 존재일세.”

“……!!!”

“마치 [가면]이라는 종족과 같지. [가면]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생체가 아니라는 것 정도일세. 생각은 하되 마음은 없는 존재라…… 딱 비슷하지 않나?”

짤막하게 중얼거린 수보리가 말했다.

“허나 자네를 포함한 인간들은 ‘한없이 인간과 닮아 보이는’ 그 존재들을 인간이라고 인식하며 인지했어. 그리고 그 인지가 그들에게 마음을 불어넣은 것이야. 즉 인간이 아닌 무생물이라 하더라도 인지의 작용을 이용하면 그 존재에게 [마음]을 깃들게 할 수 있다는 예시가 되는 것일세.”

“인지(認知)가…… [마음]을 만들어낸다는 말이오?”

“정확히는 상자(相者)의 인과율을 생성함으로써 그들이 지니고 있던 마음의 식(識)을 보다 고차원적인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지.”

“…….”

이런 말도 안 되는 세계관도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신선한 경험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때 수보리가 싱긋 웃었다.

“팔식(八識)의 능력이란 바로 이런 원리로 모든 존재에게 잠재되어 있는 [마음]의 발단(發端)을 깨우치는 것이라 할 수 있네. 고통(苦)이라는 감정을 이용해서 말이야.”

“고통? 굳이 고통을 주어야 할 이유가 있소?”

“삶은 고통이라는 이야기를 괜히 했던 거라고 생각하나? 석가모니는 이 우주의 탄생조차도 누군가의 고통에서 시발(始發)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네. 존재를 각성시키는 가장 직관적인 감정이 바로 고통인 것이지.”

“으음.”

“자, 팔식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면 족할 듯싶군. 혹시 더 궁금한 게 있는가?”

수보리의 설명은 꽤 복잡해 보였지만 나는 그동안 공부한 게 있어서인지 대충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즉 그 어떠한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가질 가능성이 있으니, 고통을 주어서 마음을 각성시키는 능력이군…….’

정말 그 기본원리가 가능한지는 몰라도 수보리를 포함한 부처의 십대제자들이 직접 그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믿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아마도 아난 또한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기계의 몸에도 고통을 줄 수 있었으리라.

‘응?’

전생자의 직감이 뭔가를 말해준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수보리. 헌데 이 능력에는 약점이 있지 않소?”

“응? 딱히 이게 전투용 능력은 아니긴 한데…… 무슨 약점이 있단 건가?”

나는 방금 내 전생자의 직감에 따라 떠오른 의문을 조심스레 말했다.

“애초에 [마음]이 없는 존재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소.”

“…….”

내 말에 수보리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앙천광소했다.

“흐하하…… 크하하하하핫!!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마음]이 없는 존재라니…… 지금까지 내 설명을 뭘로 들은 건지 모르겠군.”

“…….”

“[마음]이 없어 보이는 무기물이나 대자연조차도 팔식을 쓰면 그 의지를 각성시키는 게 가능하네. 별조차도 가능하지. 애초에 [마음]의 발단이 아예 존재치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라 생각하는가?”

“무슨 의미요?”

“그 어떤 존재에게도 인지(認知)되지 않으며 전 우주의 그 누구와도 인과율이 존재치 않는 존재라는 것일세. 그런 존재야말로 진정한 무중무(無中無)이며 허중허(虛中虛)라 할 수 있겠지. 허나 천상천하의 신격들조차도 결코 그럴 수는 없거늘……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아니 애초에 그걸 [존재]라 칭할 수 있을까?”

“으음.”

그런가……?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한 걸까?

왠지 방금은 선명하게 경고를 느낀 것 같았는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뭐 아무튼 좋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팔식이라는 능력이 뭔지 이젠 대충 이해한 것 같소.”

“이해했다니 다행이군.”

“그럼 진짜 중요한 질문인데…… 내가 다시 싸웠을 때 그 아난이란 놈을 이길 수 있겠소?”

“…….”

내 질문에 수보리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는 아난도 자네도 그 힘의 한계를 어느 정도 가늠하고는 있네만…… 솔직히 지금의 자네가 아난을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

“그 정도요?”

“아난이 진짜 무서운 것은 대라육천세계가 그가 가진 힘의 끝이 아니라는 것일세. 그는 틀림없이 그 이상의 뭔가를 지니고 있을 것이네.”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이유가 있소?”

내 반문에 수보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융합]을 이룬 가면이라는 건 전례가 없는 존재야. 편의상 수만 배의 힘을 가진다고 말했지만 사실 아난은 마라 파피야스를 쳐죽일 때도 결코 그가 가진 힘을 제대로 다 쓰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네. 마치 벌레를 죽이듯이 가볍게 없애 버렸지.”

“음.”

“내 느낌을 말로는 잘 전달할 수 없군. 자네는 무수한 강자들을 보아왔을 텐데 내가 말한 것 같은 존재를 본 적이 없나?”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있소.”

…… 끝없는 강함과 전율, 공포만을 느낀 존재라면 외신이 아닌 존재 중에서 딱 하나 있다.

그리고 만일 아난이 그 존재에게 비견될 정도라면 지금 내가 놈과 싸우는 건 너무나 시기상조일지도 몰랐다.

그러자 수보리가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어떤 것이든지 좋으니 신력(神力)이 아닌 다른 힘을 키워두라는 것일세. 아난은 신력을 쓰는 존재에게는 상성상 절대적인 강함을 지닐 수가 있으니 신력을 아무리 키워도 그를 이길순 없을 것일세.”

“그렇군. 좋은 조언 고맙소.”

수보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신력을 완벽하게 분쇄할 수 있는 아난 같은 존재를 상대로는 지금까지처럼 편리한 수단으로 신력을 써서 힘으로 우격다짐하는 게 통하지 않을 확률이 컸다.

‘본체를 그 시대로 가져간다고 해도 딱히 아난한테 안 통할지도 모른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다면 뭔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도 좀 더 다른 방향성을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심사숙고 하던 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났군. 먼저 가보도록 하겠소.”

파앗

나는 그 자리를 나와서 그대로 인적없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품속에서 조심스레 책을 꺼냈다.

천암비서!

촤라락

나는 그 책을 펼치며 빠르게 책 내부의 세계로 들어갔다.

스스스스스 -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저절로 청룡무관의 연무장 위에 와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연무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제 내겐 천암비서의 단말이 없다. 원래 전뇌자가 단말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라졌고 메피스토 또한 소멸되었으니…… 그냥 책 내부로 들어오면 수련세계로 직통 되게끔 변한 거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청룡무관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유망에게서 역장류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이 수련세계에 있을 이광과 심수력을 만나 봐야 한다.

이들을 만나서 무(武)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예전보다 좀 더 할 이야기가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조금이나마 경지가 오른 상태에서 그들과 먼저 이야기해보아야 역장류를 배울 때 유리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게 청룡무관의 안쪽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오랜만이군. 이번엔 또 무슨 일이오?”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내 시야에는 청룡무관의 입구에서 어깨에 창을 얹은 채 곱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꼬나보고 있는 한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환골탈태를 거쳤기 때문일까? 그의 육체는 원래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리 무척 젊은 청년시절의 모습이었다.

나는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기(氣)가 조금도 새어 나오지 않아서 무(無)나 다름없음을 느꼈다. 나는 그런 그의 기세를 보자 순간 흠칫하고 말았다.

‘……더…… 강해졌다!’

어떤 경지인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다. 겉으로만 보면 반박귀진의 경지인 것처럼 보였지만 신역에 도달한 내 감각은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틀림없다.

이광은 과거에 봤던 그의 경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진 것 같다.

나는 잠시 동안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광. 잘 지냈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이 수련세계에서 계속해서 수련을 하고 있던 이광이었다. 이광은 냉막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말없이 걸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벅. 저벅.

그러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나를 지나쳐버리고는 청룡무관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콰앙!

“…….”

아니 저 새끼 왜 저래?

뭐 잘못 처먹었나?

내가 황당해서 쳐다보고 있을 때, 안쪽에서 육합전성이 들려왔다.

[나는 지금 당신과 대련 따위 하고 싶지 않으니 거기서 말 하시오.]

뭐라?!

그, 그러니까 여기 서서 얘기하고 있으면 내가 대련하자고 말할까 봐 미리 들어갔다는 거냐?!

이런 건방진 새끼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떻게 알았지?

이광에게 대련을 요청할 생각이었던 나는 속으로 부글거리는 걸 참으며 이광에게 외쳤다.

“이광!! 무인(武人)이 무(武)를 버려서 쓰겠나? 나하고 대련이나 한 판 하자!”

지금까지 수련세계에서 계속 무예를 갈고닦았던 이광과 싸우면서 경험을 좀 더 쌓으면 아난에게 대항할 만한 무예의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자 이광의 귀찮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지금 무척 심란하오. 정 그렇다면 몇 수만 보여드리지.]

치이잉!!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대련장에 있던 철창 중 한 자루가 허공을 날아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내 맞은편에 대치하여 공중에 붕 떠있었다.

‘이기어창(以氣御槍)인가?’

확실히 지금 보여주는 것만 하더라도 중원무림에서는 전설적인 고수라 불릴 만했지만 무수한 초고수를 봐 왔던 내 눈에는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자신감을 느끼며 씩 웃었다.

“건방지게 스승을 상대로 얼굴도 안 내밀고 이기어창으로 대적하다니. 금방 그 얼굴을 새하얗게 만들어주마.”

잠시 침묵하던 이광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이게 이기어창이라고? 실망이오.]

“어?”

[높은 무술의 경지에 걸맞지 않는 안목이군. 그럼 어디 받아보시오.]

투왁!!

채앵

다음 순간, 나는 [흐름]을 읽어서 간신히 내게로 투사되어 온 이광의 창을 받아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흐름을 읽은 것보다 이광의 기세가 훨씬 더 강맹했기에 벅차다는 느낌이 가시지가 않았다. 게다가 창끝에서 느껴지는 역도(力道)가 굉장히 강인했기에 나는 창날과 대치하고 있던 칼날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느꼈다.

‘크윽……?!’

뭐, 뭐지?

신역의 [흐름]으로 받아낼 수는 있는 것 같지만 도저히 이 창에 실려있는 무예의 성질을 모르겠어!

‘하지만…… 이기어창이 아닌 건 확실해.’

도대체 이건 어떤 무예인가?

이광의 냉막한 육합전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천화(天華).]

내가 그 말의 의미를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이광의 한 수가 마치 섬광처럼 날아들었다.

사신지혼(四神之魂)

천화(天華)

뇌공섬(雷空殲)

꽈릉!!

투확.

“……!!”

나는 [흐름]을 읽어내어 이광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었지만, 그 순간 내가 들고 있던 검은 압력 때문에 튕겨 나가서 허공을 날았고, 이윽고 요란하게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쨍그랑

방금 전 나를 향해 쇄도한 것은 분명 이광이 즐겨 쓰는 필살기인 뇌공섬이었다. 하지만 그 뇌공섬에 실려있는 힘은 지금까지 이광이 쓰던 것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했고, 나는 힘을 흘려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대로 받아내지 못해서 무기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광이 쓰는 기술에 대적까지는 할 수 있지만, 도저히 간파를 할 수 없는 상태!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느껴진다.

이광의 무위는 미래의 세계에서 만났던 고수들 중 아수라를 제외하고는 비교할 자조차 없다!

마지막에 본 이후로 기껏 수십 년 정도의 수련이 추가되었을 텐데 이 정도란 말인가?!

내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멍하니 있자 이광이 말했다.

[나는 지금 내 기술을 상승(上昇)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중이오. 내 폐관수련을 방해하지 마시오.]

나는 그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이광은 사신지혼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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