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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662화 (1,561/1,615)

전생검신 88권 11화

나는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환웅은 뭔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그건…… 아니, 엄청난 걸 받아 버린 것 같군. 큰소리 칠만 해.”

“왜 그래? 뭔가 알고 있냐?”

“그것보다 백웅. 당신은 나한테 기억전송을 하려 했지만 지금 나는 기억을 전혀 전송받지 못했어.”

“어? 그렇냐?”

“이건 두 가지 경우를 의미해. 하나는 별개의 기억전송 기능이 있지만, 당신이 그 기능의 사용법을 모르고 있는 것. 혹은 처음부터 그 흑요석 목걸이는 기억전송 능력이 없고 그 신비한 장소로 몰래 들어가는 능력만 존재하는 보물이라는 것이지.”

“흠…….”

이환웅의 말대로였다. 이 흑요석 목걸이는 기억전송능력이 있는걸까 없는걸까?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뭐 그럼 한 번 더 해보자.”

“아, 아니 잠깐! 그건 안 돼!! 정말 신중해야겠는데!!”

갑자기 이환웅이 기겁을 하며 나를 만류했다.

“……?”

이 녀석 왜 이래?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흑웅이 끼어들었다.

[후자는 아닐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이환웅의 반문에 흑웅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예측한 것을 나도 예측했다. 그리고 아마 테스카틀리포카가 그만큼 엄청난 보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주인의 권능으로 인과율을 직접 얻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 자신이 [흑요석의 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것이 원인일 것이다.]

“호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본디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 닿을 수 있는 건, 테스카틀리포카가 전지(全知) 계열과 깊은 관련이 있는 혈맥(血脈)이기 때문이겠지…….]

“즉, 흑요석의 칭호를 지니고 있는 자라면 기억전송능력이 없을 수 없다는 말씀이군요.”

[바로 그렇다.]

나는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투덜거렸다.

“젠장.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도 알아듣게 좀 설명해줘!”

[주인. 내가 간단히 말해주겠소.]

이어진 흑웅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주인은 방금 들어갔던 곳은 허공록(虛空錄), 혹은 아카식 레코드라고 불리는 장소에 들어갔던 것으로 추측되오.]

“……?!

[주인이 아무거나 뽑았던 책에 누군가의 인생이 기록되어있다고 했었잖소? 그런 장소는 당연히 허공록뿐이지.]”

뭐, 뭣이라고?!

나는 너무 놀라서 손을 부들부들 떨 정도였다. 설마 말로만 듣던 장소에 내가 들어갔던 것이라고?!

흑웅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주인이 마주쳤던 그 절대적인 존재는 아마…… 선지자 종족의 신이자 외신격이며 허공록의 사서인 알 카르다흐라는 존재일 거요.]

“…….”

흑웅의 말대로라면 내가 항거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게 당연하다.

그 외신 알 카르다흐라는 존재는 우주 최고의 과학자인 나일라토프를 책장을 덮어서 잡아 버리는 무지막지한 위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격으로 따지자면 황제나 흉신을 일격에 벌레처럼 잡아 버렸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도저히 지금의 나로서는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놀라움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이환웅을 바라보았다.

“설마 방금 전에 나한테 한 번 더 시도하지 말라고 했던 건…….”

“당연히 알 카르다흐한테 또 걸리면 이번엔 당신이 영혼째로 소멸당할 위험이 크지 않겠어? 뭐, 걸릴지 안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냥 뛰어드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음, 그렇군…….”

“아무튼 위험부담과는 별개로 테스카틀리포카가 준 그 흑요석 목걸이는 엄청난 보물이 맞아. 뒷구멍으로라도 허공록에 잠입할 수 있다니, 전 우주의 마도사와 [옛 지배자]들이 눈이 벌개져서 미친 듯이 원할 만큼 대단한 물건이야. 테스카틀리포카가 당신에게 굳이 이걸 준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이환웅이 말을 이었다.

“백웅. 아마 그 흑요석 목걸이는 당신이 앞으로 수백번 전생해도 얻기 힘들 물건이 틀림없어. 이번 생에 그 목걸이를 이용해서 이득을 잘 챙기는 게 중요할 것 같군.”

나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어서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음…… 그런데 허공록에 들어갈 수 있다면 뭐가 좋은 거냐? 잘 모르겠다…….”

“…….”

[…….]

순간 이환웅과 흑웅,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레무리아 1세조차 황망한 표정을 짓는 듯했다.

이환웅은 잠시 머리를 짚다가 말했다.

“……어…… 참 좋겠지. 아무튼간에 걱정 마. 나와 흑웅 님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면 충분히 이득은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우선 지금 해야 할 일부터 정리하지. 지금 당장은 그 흑요석 목걸이의 기능을 재기동하기엔 위험해. 대신 좀 더 정확한 기능을 알아야 하니, 나중에 테스카틀리포카를 찾아가자.”

“그렇군…… 제대로 기능도 설명 안 하고 가다니 그놈 참. 근데 테스카틀리포카가 지금 어디 있을까? 세상을 맘대로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짐작가는 곳은 있어. 다만 지금 당장 갔을 것 같지는 않으니 우선 다른 일부터…….”

“다른 일이라면?”

“우선 탁록촌으로 가서 남은 일을 해결하자. 몇 가지 할 일이 있는데 그것부터 해결하고 움직여도 늦지 않아.”

“알았어.”

파앗!!

나는 일행과 함께 탁록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오자마자 이환웅은 나를 이끌고 유망을 찾아갔다.

“음? 빨리 왔군. 무슨 일이냐.”

거대한 숲의 공터에서 청양에게 무공을 가르쳐주고 있던 유망이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키가 오 장이나 되니까 언제 봐도 거대해서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망에게 외쳤다.

“혹시 변신술 같은 거 쓰실 수 없습니까? 늘 올려다보니까 목이 아픕니다만.”

“후…… 거신에게 작아질 것을 요구하다니. 간이 배밖으로 나온 놈이구나.”

슈우욱!

헛웃음을 짓던 유망이 갑자기 크기가 줄어들어서 보통 인간의 크기가 되었다. 유망은 마뜩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모든 거신족이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지만 무척 싫어하는 행위다. 우리는 거대한 모습이 위엄있고 멋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너라면 생쥐크기로 변신하는 걸 즐기겠느냐?”

“아…… 죄송합니다.”

“그래, 할 말이 뭐냐?”

나는 힐끔 이환웅을 바라보았고, 이환웅이 한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일전에 백웅에게 가르쳐주기로 약조하신 역장류(力場流)를 전수해 주십시오.”

“……?!”

엉?!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놀랐고, 유망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와 이환웅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확실히 그러기로 했었지. 너희가 웬 초기주주 서명을 받는답시고 뒤로 미루더니만 이제 배울 생각이 들었나?”

“네. 지금이 딱 적기인 것 같군요.”

나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이환웅에게 말했다.

“이봐. 역장류라니 갑자기 무슨…… 이게 맞아?”

“뭔가 문제라도?”

“아직도 이것저것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을 거 같은데 무공을 배운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이 있을까?”

내가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일전에 이환웅이 무려 아홉 가지 이상의 산적해 있는 숙제를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그걸 다 해결하고 다니려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녀야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공, 특히 유망의 절세신공을 배우려면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할 텐데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러자 이환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생각해봐. 저번에 내가 말했던 당신의 과제는 사실 지금까지 거진 다 해결했어.”

“뭐?”

“첫 번째, 유소와 소녀의 일은 미래에 있을 유소를 경계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야. 유소는 근본적으로 당신을 이길 수는 있어도 소멸시킬 수 없는 존재일 테니까. 둘째, 황제와 복희는 이제 잠재적인 적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들의 면전에 가서 선전포고라도 할 건가? 이건 단순히 우리가 힘을 기르며 은인자중하면 될 문제야. 셋째, 상권은 지금 내가 권리를 양도받았으니 당신이 갑자기 미래로 사라져도 알아서 잘 불릴 수 있어. 넷째, 사대신기의 인드라는 좀 있다 해결해도 돼. 어차피 가만히 있는 인드라가 갑자기 당신을 해코지하진 않지. 다섯째, 천축 삼대신과는 혈맹을 맺었고. 여섯째, 인온의 권능은 이번 생에 안 해도 돼. 일곱째, 특별배당으로 탁록촌 사람들을 강화시켜서 이제 각자 한 사람 몫은 하게 만들었어. 여덟째, 케찰코아틀을 부활시키려다 테스카틀리포카가 부활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큰 이득을 얻었지. 아홉 번째, 심수력과 이광을 찾아가는 것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당장 급한 문제가 전혀 아니거든.”

“…….”

“이것 봐. 사대신기 인드라를 만나보는 것과 천암비서 내의 두 사람을 만나는 거 외엔 딱히 없잖아? 내 나름대로는 빠르게 해결한 것 같은데?”

나는 이환웅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는 그렇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환웅은 정말로 난마(亂魔)처럼 꼬여 있던 온갖 숙제를 빠른 속도로 해결해준 것이다.

‘무,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인 놈이군!’

해야 하는 일만 딱딱하면서 우선순위가 후순위인 일을 나중에 처리하는 냉철한 솜씨!

이환웅이 유능하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가 내심 놀라워하고 있을 때 이환웅이 느긋하게 말했다.

“사대신기 중 뇌신기 인드라는 당신을 갑자기 공격해서 죽였을 정도로 위험한 놈이야. 좀 더 힘을 키우고 준비한 다음에 얘기해도 늦지 않지. 사실 다음 생에 해결해도 되는 일 아니겠어? 그런고로 지금은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기이고, 이 휴식기에 마냥 노는 게 아니라 다음 스텝을 위해서 힘을 쌓아두는 게 효율적인 빌드업이라 그 소리지.”

“……가끔 네가 말하는 용어가 잘 이해 안 될 때가 있지만 아무튼 대충은 이해했다. 그래서 역장류를 배워두는 게 효율적이란 말이지?”

“그래.”

“그런데 난 재능이 없어서 역장류를 배워도 빠른 시간에 습득하지는 못할 건데…….”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같이 배울 거야.”

“뭐?”

“당신이 완전히 습득 못 해도 내가 습득해서 나중에 틈틈이 가르쳐주면 되잖아? 책사는 이런 일도 해야 하는 거겠지.”

“흐음.”

이환웅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자기가 당연히 더 빨리 배울 거라는 말은 왠지 건방져 보였지만, 사실이었기에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이환웅의 무재(武材)는 자력으로 절대지경에 이를 정도였으니 나 따위와 비교하는 건 봉황과 개구리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역장류를 배우는 건 단순히 당신의 능력만 강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야. 사실 당신보다는 다른 동료들이 역장류를 배웠을 때 효율성이 크겠지. 당신이 일단 배워두기만 하면 다음 회차에는 다른 동료들이 기억을 전승받아서 역장류를 추가로 발전시킬 수 있겠지.”

“어? 아…… 그럴 수도 있겠군.”

“인간족은 유망 님처럼 신력을 의념으로 바꾸는 재능이 없어서 크게 강력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신적 존재들을 카운터치기엔 유리해질 거야.”

나는 그제서야 이환웅이 역장류를 배우고자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망의 역장류는 거신지무(巨神之武)라고도 불렸으며 신력(神力) 그 자체의 파장을 이해하고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 능력이 있었다. 만일에 인간들이 신족에 대항해서 싸우고자 한다면 이 역장류가 굉장히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순간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응? 그러고 보니 이 역장류는 필멸자가 신에게 대항하기에 굉장히 좋은 무공인데…… 어째서 내가 사는 후대에는 전승되지 않은 거지?’

유망이 귀찮아서 아무에게도 전수하지 않은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청양에게도 전수했는데…….

나는 의문을 느꼈지만,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배우겠어!!”

“후후. 그럼 내 무공이 전생자를 통해서 우주 전체에 퍼지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군.”

왠지 흐뭇해하는 유망이었다. 저 반응을 보니 그 또한 뭔가 가르치는 게 기분이 나쁘진 않아 보였다.

그러자 이환웅이 나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수련하기 전에, 당신은 수보리를 따로 만나고 나서 다시 여기 오면 돼.”

“어? 갑자기 왜…….”

여기서 수보리가 왜 나와?

나는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환웅의 이어진 말에 뭔가를 깨달았다.

“미래에 만났던 그놈…… 그 대항책도 신경 써야겠지.”

“……!! 그렇군. 다녀오겠다.”

“먼저 배우고 있지.”

타앗

나는 이환웅을 남겨두고 탁록촌으로 돌아가서 수보리를 찾았다.

“수보리. 여기 있었군.”

수보리는 한 모옥에서 가부좌하고 앉아서 무언가 명상을 하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전신에서 비취색의 영기를 뿜어내고 있던 수보리는 나를 발견하자 말했다.

“백웅. 무슨 일이지?”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소.”

나는 수보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미래의 세계에서 석가모니의 십대제자인 아난을 만났소.”

“……!!”

흠칫!

수보리는 갑자기 얼굴에 큰 동요를 보였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던 수보리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열등감과 분노, 괴로움 같은 감정이 묻어나왔다. 수보리가 동요를 보이자 나는 말을 이었다.

“그는 융합을 이룬 가면이더군. 그 힘으로 단숨에 비슈누의 본체를 일격에 저세상에 보내는 걸 봤소.”

“……후, 후후…… 과연…… 그럴 만하지…….”

“수보리. 당신 또한 아난과 같은 십대제자요. 그리고 가끔 언급하는 걸 보면 당신은 아난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소. 헌데 그렇게 중대한 존재를 내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뭐요?”

수보리는 나와 수련세계에서 수백 여년 가까이 같이 지내면서 융합의 가면에 대해 간접적으로 한두 마디 짧게 언급하는 것 외에는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 당연히 나로서는 무슨 의도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는지 추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말로 아난과 같은 십대제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

수보리는 잠시 후 주먹을 꾹 쥐더니 입을 열었다.

“백웅 자네는 벌레나 다름없이 취급하던 존재가…… 갑자기 나를 벌레 취급하던 때의 기분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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