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검신 88권 08화
뭐라고?
이 자식 대체 무슨 소리를…….
내가 이환웅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약간 당황한 채 외쳤다.
“아니 그래도 사람을 죽이면 어떡하냐!”
“당신도 지금 상황을 이해 못 한 것 같군.”
“뭐?”
“생각해 봐. 당신 지금 명계의 전륜성왕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가 뭐야? 당신 또한 사실 명계의 주인이 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야. 적법한 계승자라 그 말이지.”
이환웅의 이어진 말에 나는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이 명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거나 다름없고 실제로 청양도 한번 되살려낸 적이 있잖아? 그러면 소녀도 한 번 죽였다가 되살리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
“생사의 권능을 갖고 있으니 당신에게 ‘살인은 나쁘다’라고 하는 인간의 도덕률은 적용되지 않는단 말이야. 그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겸사겸사 유소의 예언이 맞는지 틀린지 보게 소녀를 한번 죽여 보자고.”
이환웅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만일 예언대로라면 그 성가신 유소라는 놈은 한날한시에 같이 죽어줄 것이니 방해물이 제거되어서 좋지. 만일 예언이 틀렸다 하더라도 죽은 소녀를 명계에서 관리할 수 있으니 인간계에 가만히 놔두는 것보다는 백배 안전하지 않나?”
“……!!”
그, 그런가?
나는 과격한 듯하면서 묘하게 논리정연한 이환웅의 말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유망이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군. 한 번 죽여보자.”
“유망, 당신까지…….”
“뭘 그리 껄끄러워하는가.”
“죽는 건 아픈 겁니다.”
“그럼 안 아프게 죽이면 되지. 설마 신의 권능도 갖고 있는데 그 정도도 못 할까.”
“…….”
어라…… 내가 이상한 건가……? 소녀를 죽이는 게 정말 맞는 거냐?
내가 혼란스러워할 때 소녀가 입을 열었다.
“백웅 님. 제가 죽었을 때의 일은 저도 몰라요. 제 영혼이 명계를 거칠지도 의문이에요.”
“무슨 말이지?”
“저와 유소는 혼돈의 근원에서 비롯된 존재. 인간의 몸을 빌어 태어났지만, 인간의 영혼을 갖고 있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렇기에 제가 죽었을 때 그 영혼이 명계를 거치지 않고 갑자기 혼돈의 어딘가로 빨려들어 갈지도 몰라요.”
“흠.”
“저를 고통 없이 죽이신다 하면 그것도 좋아요. 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주시길…….”
소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무한]을 다루는 특별한 존재가 보통 인간의 영혼과 똑같을 거 같지는 않았고 자칫했다가는 소녀만 죽어 버리고 우리가 타 세력에 비해 가진 최대의 이득이 사라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환웅이 말했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그러면 이건 어때? 소녀 당신이 백웅의 인도에 따라서 명계에 가는 거야.”
“명계에 간다는 건 죽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 않은가요?”
“아니. 물리적인 죽음을 수반하지 않고 백웅의 권능으로 존재의 위치만 명계로 이동시키는 거지. 이 방식이라면 그저 명계 여행을 하는 것뿐이니 당신이 말한 위험은 없어. 이렇게 하면 최소한 소녀를 우리가 직접 호위할 필요 없이 명계에서 대신 보호해주는 게 가능해.”
이환웅은 그렇게 말하며 실쭉 웃었다.
“또한…… 여차할 경우에는 전륜성왕이 직접 죽음을 선사해줄 수 있지. 거기서라면 물질계와 달리 타 존재의 개입이나 변수 없이 확실히 죽일 수 있잖아. 저 자매가 어떤 흉계를 꾸미든.”
“…….”
소녀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을 죽이느니 마느니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이면 저런 반응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이환웅의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열산이었다.
쿵!!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열산은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환웅에게 외쳤다.
“이놈!! 감히 내 누이를 죽은 자의 세계에 유폐하겠다 그 소리냐!”
“당장 안 죽이는 것만 해도 많이 양보했지 않소? 그러는 당신은 이 땅에서 삼황오제나 날고기는 [옛 지배자]들을 상대로 끝까지 소녀를 지켜낼 자신이 있는 건지? 휘하에 있는 하급 마신 떼거지만 보내도 백웅 없으면 절대 못 막소.”
“……!!”
“명계라 해도 당신이 생각하는 지옥 같은 장소는 아니오. 도리어 이 원시시대보다는 훨씬 융숭한 대접을 받을 테니 취급에는 걱정마시오.”
“웃기지 마라. 죽음의 세계에 끌려가서 언제 너희들 뜻대로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내 누이를 놔둔다니…… 나 열산은 절대 그런 걸 허용할 수 없다!”
쿠구구구!!
열산이 포효와 함께 자신의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 힘의 소용돌이가 갑자기 공터에 휘몰아쳐서 광풍을 일으켰다. 이건 단순한 광풍이 아니라 힘의 덩어리가 뭉친 것이었고 열산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망이 말했다.
“역시 싹수있는 놈이군. 인간 출신인데 벌써부터 마왕 수준을 넘어서고 있어…… 단순히 신의 혈맥이 짙은 정도로는 이 정도의 잠재력을 가질 수가 없는데…… 뭔가 비밀이 있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유망이 문득 허공에 자신의 도(刀)를 들어서 내리쳤다.
쩌엉!!
“……!!”
갑자기 방출되던 열산의 힘이 끊기면서 그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열산의 몸뚱이에 커다란 도상(刀傷)이 아로새겨진 걸 보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역시 유망이군.’
단순히 신력을 의념으로 바꾸는 능력을 써서 막강한 의념의 도(刀)를 내리쳤을 뿐인데 단숨에 열산을 제압하다니! 열산이 원래부터 탁록시대의 신화적인 괴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먹고 다니는 놈이라는 걸 생각하면 유망의 힘은 차원이 달랐다.
유망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애송이 놈아, 진정해라. 네가 혈육으로서 분노하기엔 소녀는 너무나 의심스러운 존재이며 스스로 그 의심을 거둘 만큼 우리에게 신뢰를 주지도 못했으니. 사실 이런 문제는 점잖게 말로 할 필요가 없고 당장 소녀를 베어 버려도 어쩔 수 없다는 건 네놈도 알고 있으리라.”
“크윽…….”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않겠나? 백웅이 소녀를 명계에 데려가는 대신 열산 네가 탁록촌에서 공을 세운다면 언제든 면회할 수 있기로. 또한 백웅은 열산의 성장에 전폭적인 도움을 주며 탁록촌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걸로 하지.”
“…….”
열산은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자신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열산이 마지못해서 말했다.
“……또 하나, 유소와 소녀가 수상하지 않다는 게 증명된다면 더 이상 이들을 의심하지 말고 유폐를 풀어주시오.”
“그건 앞으로 유소와 소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알았소.”
나는 그렇게 이야기가 정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히죽 웃고 있는 이환웅을 보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 설마 처음부터 소녀를 죽일 생각은 없었던 거 아닌가?’
당연히 이환웅이 소녀를 죽이려는 것도 내가 막을 줄 알고 공격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장 죽여버리는 편이 낫다고 겁을 잔뜩 준 후 소녀를 명계에 데려가는 제안을 내세워서 자연스럽게 통과시켰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결국 이환웅은 소녀를 명계에 보낸다는 목적을 별다른 저항 없이 달성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심계(心計)라면 이환웅은 무서운 놈이 아닐 수가 없다.
“…….”
긴장을 놓고 있으면 안 될 것 같군.
내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환웅이 말했다.
“자, 소녀는 명계로 데려가는 걸로 정해졌고…… 유소가 어떤 술수를 써서 은신했는지는 사실 개인적으로 짐작 가는 바가 있소.”
“어떤 짐작이냐?”
유망의 질문에 이환웅이 차분히 대답했다.
“유소는 자기 자신을 백웅이 이 시대에서 무슨 수를 써도 찾을 수 없다고 자신했잖소? 그럼 얘기는 간단하지. 유소는 이 시대에 없다는 말이오.”
“……? 설마, 네 말은…….”
“그렇소. 유소는 소녀가 지닌 전능(全能)의 능력을 빌려서 시간이동(時間移動)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오.”
“……!!”
웅성
그러자 좌중에 모인 사람들이 다들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유망도 시간이동 얘기에는 약간 당황한 듯했고 그런 반응은 유소의 혈육인 소녀와 열산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동!!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생각한 사람이 있긴 했을까?
유망이 말했다.
“신격들이 [작은 굴레]를 이용해서 자신의 사도나 화신을 과거나 미래로 보내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허나 그래봤자 시공의 기록이 남으므로 결국 어떻게든 행보를 추측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환웅은 능글맞게 웃었다.
“후후, 다 알면서 왜 말을 돌리십니까? 제가 말하는 게 [작은 굴레]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계실 텐데.”
“…….”
“[전능]의 능력을 빌리는 것인데 그렇게 규모가 작을 리가 없지요. 유소는 전능의 힘으로 [큰 굴레]를 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망은 살짝 당황한 듯 저절로 욕을 중얼거렸다.
“미친놈이……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큰 굴레]를 그렇게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당연히 쉽게 넘을 수는 없겠지요. 이 세상의 그 어떤 신격도 인위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는 [큰 굴레]를 넘은 당사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한 이환웅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고 탁록촌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머리를 긁적거리자 이환웅의 말이 이어졌다.
“백웅은 천암비서라고 하는 천하의 기물을 이용해서 [큰 굴레]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백웅은 신력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인간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굴레를 넘어선 [외신] 같은 것도 아닙니다. 꼭 외신이 아니라 해도 굴레를 뛰어넘는 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실제 사례지요. 그렇다면 타고난 혼돈의 존재이자 혼돈의 중심에서 비롯된 유소라는 존재가 전능의 힘을 이용해서 [큰 굴레]를 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
유망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네 말대로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너무 큰 비약이다. 무엇보다도 저 자매는 자신의 것이 아닌 상대방의 능력을 쓸 경우 열화(劣化)시켜서 약해진 능력을 쓰지 않는가? 아무리 전능의 능력이라 하더라도 열화된 능력 따위로 [큰 굴레]를 넘는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냐.”
“신격들은 [무한]의 권능을 지닌 소녀의 힘에 탐욕을 느끼고 그녀를 노리고 천지사방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온전한 [전능]을 품고 있는 능력이니까요. 그런데 그에 비교해서 전지(全知)의 능력이 과연 하위능력일까요?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 전지전능을 구현하는 레벨에 간다면 전능이 전지보다 우월하겠지만 저 두 자매는 그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즉 유소의 전지능력도 소녀의 전능에 못지않을 가능성이 크지요.”
그렇게 말한 이환웅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 눈빛에는 명백한 의심이 담겨 있었다.
“전지…… 모든 것을 안다…… 그건 열화된 [무한]의 능력을 응용해서 [큰 굴레]를 넘을 방법 또한 [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뭐라고? 그런 방법이 어딨느냐.”
“우리는 모르죠. 하지만 전지능력의 소유자라면 알 겁니다. 그것도 소녀에 맞먹는 능력자인데 그것도 모를까요?”
“너무 확신하는군.”
“확신할 수밖에요.”
이환웅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가슴팍을 엄지로 꾹 찍었다.
“저는 강인공지능을 심장에 박아 넣고 쓰고 있는데 이 강인공지능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와 창의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고작 인간의 문명에서 개발할 수 있는 AI 따위가 이 정도의 지능을 지니고 있는데 진정한 혼돈에서 비롯된 전지(全知)가 그런 능력이 없겠습니까?”
“…….”
“전능능력을 활용하는 전지능력자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이환웅의 말에서 흔들림 없는 확신을 느꼈는지 유망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환웅의 말에서 진심을 느끼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래…… 이환웅은 우주 최고의 과학자인 나일라토프의 수제자이며 강인공지능의 소유자…… 그 누구보다도 전지의 능력을 확실히 예감할 수 있는 존재일 거다.’
이건 이환웅의 억측이라기보다는 실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았다.
이환웅은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유소라는 존재는 사실 [미래]에서 백웅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뭐……? 백웅을?”
“그녀는 이미 소녀에게 밝혔으니까요. 전생자가 자신들의 운명을 뒤바꿀 존재일 거라고. 그리고 일부러 탁록촌에서 사라져서 [큰 굴레]를 이동했다면 제일 갈 만한 곳이 어디겠습니까? 전생자 백웅과 가장 큰 관련이 있는 장소일 수밖에 없고 그곳은 바로 백웅의 고향인 미래의 중원대륙인 겁니다.”
“……!!”
그, 그럴 수가?!
나조차도 깜짝 놀라서 이환웅을 바라보자 이환웅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으며 말했다.
“백웅.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뭐, 뭐냐?”
이어진 이환웅의 말에 나는 섬찟해짐을 느꼈다.
“……정말로 유소가 그런 클래스의 전지능력자라면…… 당신과 내가 이렇게 대화하는 것조차도 이미 예측했을 거란 사실이지.”